제 1장 영화로우신 주님의 환상(요한계시록 1:1~20)
Ⅰ. 서 언(1:1~3)
이 단원은 몇 가지 사실로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첫째, 계시의 의미, 둘째, 계시가 주어진 절차, 셋째, 계시의 중요성이 바로 그것들이다.
1. 계시의 의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밝히고 있다. 계시와 영감은 다르다. 계시는 인간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신을 나타내심이고, 영감은 인간의 내면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란 말씀 속에서 이중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하나는 이 책 속에 기록되어 있는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은 계시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책이 역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계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어떻게 승리하실 것과 또 영광을 얻으시고 만왕의 왕이 되실 것을 보여주고 있다.
2. 계시가 주어진 절차
첫째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그에게 주셨다.”고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주의 질서를 엿볼 술 있는데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가장 우월하신 분이시며 도 만물이 그로부터 말미암았다는 사실이다(고후5:18). 또 한 가지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주께서 비록 하늘에 올라가셨으나 종의 자리를 아직도 견지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그가 이 땅에 계셨던 것처럼 그는 지금 하늘에 계신다(요 5:19,20 ; 12:49,50). 그가 지금 영광중에 계시기 때문에 종의 자리를 거절하신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천사장과도 지극히 다르신 분이다.
둘째로 “그의 천사를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성경 말씀은 천사들의 손을 통하여 전달되었다(행7:38, 히2:2, 행7:53, 갈3:19). 이유인즉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들이기 때문이다.(히1:14)
셋째로 “그의 종 요한에게……지시하신 것이라”고 했다. “지시했다”는 말은 지적하거나 수행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넷째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는 말씀이다. 요한은 자기가 받은 계시를 기록하여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가 전하고 있는 바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인 것이다.
3. 계시의 중요성
첫째로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을 계시해주셨다. “반드시”란 말이 어떤 변화를 조건으로 한 말은 아니다. 그리고 “속히”란 말은 지체하지 않을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런 사실에 대하여 너무 태만하고 또 뒤로 미루어 버리는 습관이 젖어 있는 것 같다.
둘째로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이 계시를 주셨다는 것이다. 이 계시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종들에게 관계되는 계시이다. “종들”이란 말은 원래 “매여 있는 종들”이란 뜻이다.(고전6:20)
셋째로 여기에 귀한 약속이 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거룩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1:3). 똑같은 약속의 말씀이 22장 7절에 나오는데 거기에는 읽는 것과 듣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22장에 이르렀을 때에는 시간적으로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읽었을 것이고 다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두어야 할 첫 번째 일은 "지키는 일“ 밖에 없을 것이다.”때가 가까움이라“고 말할 때의 ”때“는 주의 재림을 의미한다. 그때의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11:15~18). 여기에서는 주로 신자들이 받을 축복을 논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시간이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것의 도래를 보지 못하고 있는가? 주께서 세상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그 귀한 사실 때문이다(벧후 3:8,9).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신자들이 아직도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시간은 여전히 다가오고 있다. 비록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형편뿐만 아니라 교회의 형편마저도 그 때가 가까웠음을 확신시켜주고 있다.
Ⅱ. 문안과 축복(1:4~5a)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 하노니” - 비록 일곱 교회들이 각자의 편지들을 받았지만,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모두에게 동시에 전서(Whole Book)을 보낸 것이다. 일곱이란 숫자는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일곱 회는 모든 교회를 대표한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들에게 주시는 그 말씀은 곧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기에 사용된 인사말은 바울의 그것과 유사하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여기에 사용된 삼위 하나님의 이름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다른 서신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첫째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 - 이 명칭이 바로 본서에 사용된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다. 세상은 시시각각으로 급격하게 변화를 일으키지만 하나님은 결코 변치 않으신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도 변치 않는다.
둘째로 “그의 보좌 앞에 일곱 영”이 있다고 했다. 일곱 영이라 할 때 결코 숫자적인 개념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엡 4장). 그것은 단지 성령의 다양한 사역을 지적하고 있을 뿐이다(4:5 ; 5:6).
셋째로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고 했다. 이것은 주께서 행하신 이 땅 위에서의 사역과 그가 어떻게 승리하실 것, 그리고 장차 그가 얻을 영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그와 같은 삼위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Ⅲ. 송 영(1:5b~7)
요한이 이 시점에 이르자 그는 찬송을 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찬송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신 그 분”에게 요한은 찬송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두 가지 차원에서 고려된다. 첫째로 과거라는 시점인데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는 것이고, 둘째는 현재와 미래에 경험하게 될 것으로서“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희미하게 경험하고 있는 바는 장차 완전하게 실현될 것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장차 요한과 더불어 말하리니,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할 것이다.
그가 받은 사랑을 생각할 때 요한이 어찌 찬송하기를 주저했었겠는가? 그러면서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세상형편을 그려보며 경고의 말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볼지어다”라고 시작되는 7절 말씀은 장차 선포될 메시지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능력 있는 말 아닌가.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리워 가신 것처럼 그는 구름을 타고 다시 재림하실 것이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 1장 9절~11절 사이에 나타나는 말씀과 완전하게 일치하고 있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 - 이 말씀은 마태복음서 24장 30절 말씀과 일치한다.
Ⅳ. 하나님의 증거(1:8)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동일하신 분이시며, 또 한 전능하신 분으로 증거하신다. 그와 같은 증거의 목적은 환난 날에 우리로 하여금 전적으로 당신만을 의뢰하도록 격려함에 있다.
Ⅴ. 요한이 현재 자신의 형편을 말함(1:9~10a)
첫째로, 요한은 “너의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요한이 그와 같은 엄청난 환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우리의 형제라고 부르고 있다.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 또 환란 중에 있으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행14:22).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내한다. 그러므로 이 인내는 그 자체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너희와 동참한 자”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사람의 유업임을 지적해준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환란과 인내에도 동참하지 않으면 안된다.
둘째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라고 밝힘으로써 자신이 처해 이는 당시의 형편을 전하고 있다. 당시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핍박을 받아 외딴섬에 귀양살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비록 사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신세가 되긴 했지만 주님은 그와 함께 계셨고 하늘은 그를 향하여 문을 넓게 열어주었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계시를 받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환란은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된다.
셋째로 요한이 환상을 본 날은 주의 날이었다. 말하자면 주일의 첫날이었다. 혹자는 그 날을 여호와의 날인 주의 날이라고 한다.
넷째로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라는 말이 환상을 보는 사람의 영적상태를 설명해준다. 요한은 육체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지만 영적으로는 참으로 강건하고 또 활력이 넘쳤다.
Ⅵ. 영화로우신 그리스도의 환상(1:10b~16)
첫째로 요한은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나팔은 백성들을 소집할 때 분다. 여기에서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도록 특별히 주께서 요한을 부르신 것이다. 이 일곱 교회들은 그 당시에 실재했던 교회들이다. 그들은 세세토록 오고 올 모든 교회의 표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특별하게 선택받은 교회들인 것이다.
둘째로 일곱 금촛대를 볼 수 있었는데 그것들은 일곱 교회들이었다(20절). 그 교회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반드시 나타나게 될 영적 실재로서의 교회들이었다. 왜냐하면 그 교회들은 주를 위하여 이 어두움의 세계를 채워지지 않으면 결코 빛을 발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들은 성령의 기름으로 충만하게 채워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셋째로 요한은 “인자 같은 이”를 보았다. 인자는 교회들을 돌보기 위하여 촛대 사이를 거닌다(2:1). 이 분의 모습이 어떠했던가? 그가 비록 인자의 모습처럼 보이긴 했지만 과거 이 땅에 계실 때의 모습과는 약간 다른 것 같다/ 그러므로 “~와 같은”이란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 분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1)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 이것은 주의 영광, 즉 그가 성육하시기 이전에 가지셨던 바로 그 영광을 말한다(사6:1). 그는 지금 과거의 영광으로 복귀되신 것이다. 그가 입은 옷은 그 분의 원래의 영광을 암시하는데 이것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제사장 됨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우리의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히8:1).
(2) “가슴에 금띠를 띠고” - 이것은 그의 공의와 신실성을 증거한다(사11:5).
(3)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 이것은 어떻게 그가 영광을 얻었으며(잠16:31 ; 20:29), 또한 그가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가를 보여준다(단7:9).
(4) “그의 눈은 불꽃같고” - 불은 연단하여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 것인가를 가려내는데 사용되었다(벧전1:7). 그의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실 때 모든 것이 여지없이 폭로되고 말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인용된 불은 주의 눈을 의미하는 불이다. 고린도전서 4장 5절 말씀의 의미도 여기에서 뜻하는 바와 일치한다.
(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 발은 걸음을 위한 것이고 성경에 나타는 주석은 심판을 뜻한다. 주석으로 징을 박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 심판이 거행된다. 주님의 두 발길이 지금 교회에 이르렀기 때문에 주님은 교회를 먼저 심판하고 계신 셈이다(벧전4:17).
(6)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 이것은 그의 음성이 위엄과 권능으로 충만하심을 시사해준다(시29:3, 4).
(7) “그 오른 손에 일곱별이 있고” - 이 별들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다(20절). 그들이 주의 오른 손에 붙들려 있다함은 그들이 지금 주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고 있을뿐더러, 또한 통제와 보호도 받고 있음을 뜻한다.
(8)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 이 검은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를 다스리는데 사용된다(19:15~21 ; 2:16).
(9)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 주님은 변화산상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변형되셨다(마17:2). 변화상상의 장면은 천국의 모형이었다. 왜냐하면 주님은 천국에 계실 때 가장 영화로우셨기 때문이다.
Ⅵ. 주의 명령(1:17~20)
주께서 사람에게 현현하실 때마다 그는 항상 위임령을 수반하신다. 이번에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다.“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 그리스도의 영광은 요한이 그것을 볼 때에 죽은 자처럼 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것은 요한에게만 있었던 일이 아니고 이사야나 욥, 그리고 다니엘도 다같이 경험한 바 있는 일이다(사6:1~5, 욥42:5,6, 단10:2~9)
요한은 구원받은 사람이요, 또 주님과는 가장 깊은 친밀관계를 맺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광의 주를 볼 때 엎드러져 죽은 자처럼 된 것이다. 하물며 구원받지 못한 육체의 사람이 주를 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육체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며(갈5:19~21),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그것을 보지도 못할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요3:3). 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주는 말씀인가! 육체에 속한 사람이나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진실로 영광의 주를 뵙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 장차 재림하실 때에 그의 영광은 오늘의 그것보다 훨씬 더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떨며 산들을 향하여 자신을 가리워달라고 외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뿐이다(계6:16, 눅21:26).
“그가 오른 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 얼마나 자비 하신 말씀인가! 그가 비록 영광중에 계실지라도 그의 사랑은 조금도 덜함이 없지 않은가. 만일에 장래의 영광이 사랑과 밀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그것을 얻는다고 해서 유익될 리 만무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이 땅 위에서 많은 병자들을 어루만져 주셨던 바로 그 분의 손길이 지금도 어루만져 주시고 있다. 과거에 많은 상한 심령들을 위로하셨던 그 분의 말씀이 지금도 속삭여지고 있다. 그 분의 손길과 그 분의 말씀은 요한을 위로했을 뿐 아니라, 또한 능력도 제공했다(단8:17,18, 10:9, 10, 18, 19과 비교해보라). 주님의 손은 능력을 주시고 주님의 말씀은 위로를 베푼 것이다. 주님의 사랑이 과거와 여전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두려움은 서서히 요한에게서 사라지고 대신에 능력과 위로가 그의 분복으로 찾아오게 된 것이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자라” - 여기에서 우리는 주께서 자신을 계시하기 위하여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셨음을 본다.
첫째는 그의 영광이다. 요한이 그것을 보자마자 그는 곧 이것을 깨닫게 되었다.
둘째로 그의 말씀이다. 여기에는 요한이 육체의 눈을 가지고 볼 수 없었던 내면적인 그 무엇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을 계시하기 위하여 말씀을 사용하실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 우리는 그 분에 관한 세 가지 사실을 추론해낼 수 있다.
(1) 그의 신분이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발견되는 여호와의 명칭이 바로 그것이다(사41:4 ; 44:6 ; 48:12)이 표현은 주님을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구별짓는 말이다.
(2) 그의 생명이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 이것은 그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전에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죽었으나 이제 그는 부활하셨다. 그는 이제 다시 죽지 않겠고 세세토록 영생할 것이다.
(3) 그의 권세이다.
“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 이 부분을 더욱 세밀하게 살펴보자. ‘죽음’은 육체와 관련된다. 하지만 음부는 영혼과 관계있다. 사람이 죽으면 즉시 그의 영혼은 음부로 내려간다. 음부는 낮은 곳이며 지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마12:40, 민16:30~33). 음부는 두 구획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곳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이다 (눅16:19~31).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원한 구분은 한편으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불못으로 나누이는 그 때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열쇠”는 문을 여는데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망과 음부가 닫혀질 문이 있음을 시사한다(마16:18, 행 2:24). 열쇠를 가진 자는 따라서 권세를 가진다. 죽음과 음부의 권세가 전에는 사단의 손에 있었으나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음부와 죽음의 세력이 무력해지고 말았으며 더군다나 그 열쇠도 지금은 주님의 손에 넘겨지고 말았다. 이 얼마나 위대한 승리인가! 이 승리로 말미암아 주님은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해방시켜 천년왕국에 참여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여기에서 “그러므로”란 말은 앞서 언급한 사실들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뜻한다. 주께서 승리를 거두셨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 일들이 마땅히 기록되어져야 한다. 더군다나 19절 말씀은 이 책을 세 부분으로 분명하게 갈라놓는 역할도 한다.
(1)본 일들(과거), (2)이제 있는 일들, (3) 장차 될 일들(미래) 이 바로 그것이다.
“보았다”는 동사는 원래 완료형으로서 이미 어떤 것이 보여졌음을 뜻한다. 이것은 1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요한이 본 환상과 관계된다. 이제 있는 일들이란 지금 현존하고 있는 일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있는 일들은 2장과 3장에 나타나고 있는대로 교회시대에 실존하고 있는 것 들이다. 반면에 장차 될 일들이란 교회시대가 지나간 이 후에 계속해서 이러나게 될 일들을 말한다. 4장부터 19장에 이르기까지 매장들은 장차 일어나게 될 일들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요한계시록이 많은 신비로 가득차 있기는 하지만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선비들은 그 성경 자체의 조명에 의해서 더욱 분명해진다. 일곱 촛대가 일곱 교회인 것은 아주 쉽게 깨달았다. 그리고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었다. 그러면 이 사자들은 누구인가? 어떤 주석가들은 이 사자들을 목사나 주교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 다른 무엇에 비유되어 해석된 것처럼 일곱 교회들도 그 무엇에 비유하여 해석되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만일에 일곱 교회가 순수하게 교회 그 자체들이라고 본다면 사자들도 역시 사자들로 순수하게 해석 되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더군다나 사자들이란 이미 별이란 신비한 단어로부터 해석되어진 것이 아니던가? 만일에 우리가 그와 같은 방법으로 사자를 목사나 주교에 제한시켜 설명해버린다면 우리는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그 신비를 해석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확신하기는 주께서 그러한 해석 방법을 원치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자들을 어떤 인물로 보아야 할 것인가? 가장 그럴싸한 대답이 여기 있다. 교회들이 교회들이었던 것처럼 사자들도 사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어떤 종류의 사자들이었을까? 성경에 의하면 두 종류의 사자들이 있는데 하나는 하늘에서 온 사자들이고(마22:30), 또 다른 하나는 인간 사자이다(학1:13). 본문에 나타나는 사자들을 반드시 하늘에서 온 사자들이라고 볼 수 없다. 이유인즉, 첫째로 하늘에서 온 사자들은 비록 그들이 교회를 섬길 수는 있어도 교회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하늘에서 온 사자들은 영물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물리적인 편지를 받을 수 없다.
셋째로 본서는 하나님이 그의 사자를 통하여 지시하신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만큼, 어떻게 하늘에서 온 사자가 자신에 대하여 기록할 수 있겠는가? 넷째로 주님은 서머나교회의 사자를 불러 “죽도록 충성하라”고 권고하셨다(2:10). 그러나 이런 일은 하늘에 있는 사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들이 하늘에서 온 사자들이 아니라면 인간 사자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실예들을 고린도후서 8장 23절과 빌립보서 2장 25절에서 보여준다. 우리가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할 사실은 사자들이란 바로 대표자들이란 점이다. 그들은 교회를 대표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 앞에서 별의 모습으로 상징된 것이다. 왜냐하면 별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러 교회들의 다양한 영적 상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겠다. 마지막으로 별들이 주의 손에 붙들려 있다함은 그들이 지금 주님에 의해서 쓰임받고 있음과 또 주님께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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