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0:22-25
어떤 회사에서 신문에 모집광고를 내었습니다.
광고를 보고서 7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시험을 쳐서 그 가운데 적당한 사람들을 뽑기로 했습니다.
시험은 간단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색달랐습니다.
지원자들은 차례대로 줄을 서서 한 사람씩만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시험장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양 사방 벽에 큰 거울이 하나씩 걸려있을 뿐이었습니다.
지원자들은 그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거울 위에 쓰여있는 질문에 맞으면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답안지에 적도록 되어있었습니다.
첫 번째 거울은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거울에 비친 이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두 번째 거울은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여하에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세 번째 거울은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까?"
마지막 네 번째 거울은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사람은 정말로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그것이 시험의 전부였습니다.
시험을 다 치르고서 시험장 밖으로 빠져 나오는 사람마다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앉아서 수군거렸습니다.
"참, 싱거운 시험도 다 있네. 사람을 뽑으려면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쳐서 실력으로 뽑아야지. 어린 아이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야?"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 있는 듯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드디어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70명 가운데 단 한 사람만 합격하고, 나머지 69명은 모두 떨어졌습니다.
합격한 사람은 네 가지 질문에 모두 솔직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회사는 자기의 실력을 뽐내면서 큰소리치는 사람을 원치 않았습니다.
정직한 사람을 원했습니다.
자기의 부족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 줄로 생각했다가 넘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잘난 척 하다가 낭패를 당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내 능력으로 세상을 살려고 해서는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입어야 합니다.
기독교를 보혈의 종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흘린 보혈의 은총을 깨닫고 확신하는 성도는 보혈의 능력을 받습니다.
피는 신비롭습니다. 핏속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을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라고 했습니다.
피흘림은 죽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 그 사망의 형벌은 피흘림이라고 하였습니다.
핏속에는 속죄의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장 22절에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죄는 인간다운 삶의 기능을 마비 시켜서 사람을 부패하게 만듭니다
죄는 저주와 심판을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죄를 위하여 피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3대 명절이 있습니다.
출23:14에 보면,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유월절과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중에서도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간 종살이를 하다가,
해방이 되어서 탈출한 그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광복절과도 같은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때에, 악한 바로왕에게 열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중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열 번째 재앙이,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할 것 없이 애굽 전역에 살고 있던 처음난 것들은 다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는 한 사람도 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출12:21이하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을 불러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그 집 문설주에 발라 있으면,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그냥 넘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믿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집 문 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뿌려서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습니다.
이 날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생명을 상징하는 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피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에 생명을 건짐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구약에서 모든 죄인들이 사망에서 구원받아 영생 얻는 길은 오직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제 신약시대에는 어린양 대신 예수님의 피를 우리의 마음속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림으로 우리는 영생의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악한 사탄 마귀는 항상 우리가 약할 때를 노리고 불행과 재난과 불안을 주어서 자살까지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악한 사단 마귀는 예수님의 보혈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슴에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고 힘입음으로 악한 사탄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이제 며칠 후면 미국 뉴욕 세계 무역센터가 9.11 테러를 당한 벌써 1주년이 되었습니다.
미국이 9.11 세계 무역센터가 테러를 당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을 때에
미국은 여당이고 야당이고 온 국민들이 한 마음이 되어 부시 대통령을 지원했습니다.
이와 같이 피를 보면 사람은 한 마음이 됩니다.
형제간에도 집안에선 싸우던 동생이 밖에 나가서 누구한테 맞아 코피라도 터지고 오면 형이 쫓아 나가서 앙갚음을 하고야 맙니다.
이것은 형제간이 피로써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피를 보면 물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 마음이 되고 뭉칩니다.
초대교회가 수많은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의 신앙은 강건하였고 기독교 역사상 가장 훌륭한 예수님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예수님의 피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지금 중국의 지하교회가 무서운 핍박을 받습니다.
몰래 드리는 주일 예배 때 광고 시간에 아무개 집사가 성도가 지난 주일에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심지어 총살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때 그들은 예수님의 피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눈물 뿌리며 기도하고 오히려 더 굳게 뭉치고 더 열심히 예수를 전파합니다.
기독교 역사는 예수의 피가 흐를 때에 교회가 놀랍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도 일제 시대에 주기철 목사를 위시한 많은 순교자의 피뿌림이 있음으로 놀랍게 부흥의 역사를 이룩한 것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가 갈라지고 싸우고 쇠퇴하는 이유는 목회자와 성도들의 삶속에 피 흘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다'(Jesus died for me)라는 네 마디 말을 확신하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흘리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성령은 그 집사님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피를 뿌려주고 보혈의 능력이 입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이란 성도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확신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오래 믿어도 어린양 예수의 피뿌림을 의심하고 잊어버린 사람이라면 진정한 참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입으면
온전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단이 주는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 날수 있습니다(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한 어머니가 서울로 유학간 아들이 가있는 하숙집을 찾아갔더니
아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방안 벽에는 온갖 여배우 사진등 음란스러운 사진들이 가득하였습니다.
어머니는 밭갈고 논갈다 갈라져 피흘린 어머니의 손가락을 찢어 혈서를 섰습니다.
“너는 이제 내 아들이 아니다” 혈서를 벽에 붙여두고 그냐 내려왔습니다.
어머니의 피를 본 아들이 크게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방탕했던 삶을 청산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던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즐기던 악하고 불결한 것도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 앞에 쫓겨나고 깨끗하게 씻음 받아 온전한 믿음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입으면 소망이 있습니다(23).
영국의 화가 “헌트”가 그린 <세상의 빛>이라는 명화가 있읍니다. 계시록 3장 20-22절의 성구를 주제로 그린 그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린 왼손에 등불을 가지시고, 못 자국난 오른손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 집의 손잡이는 안으로 달려 있고 바깥쪽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며, 안쪽에서 열기를 기다리시고 있습니다.
밤도 침침하게 깊었고 예수님은 문을 두드리시며, 들어가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에 담쟁이 넝쿨이 휘감겨 있는 것을 보면 오랫동안 문이 열리지 않은 집입니다
누구와도 교제를 끊고 지냈습니다.
독단적이고 이기적이며 외고집의 닫혀진 마음 절망에 쌓인 마음의 주인이 살고 있습니다.
그 집안 사는 주인공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가 그 집에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동안 우리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과 담을 쌓고 있습니다.
마음에 문이 열리지 않았고 대화가 없으며 미움이 대신 가득찮습니다.
소망의 등불을 든 주님이 들어오시면 주님과 함께 소망의 빛을 누릴 것인데 우리는 고집이 있음으로 마음에 문을 열지 않습니다.
이제 주님을 맞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소망의 빛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입으면 서로 돌보고 격려해야 합니다 (23).
미국의 한 잡지에 할머니 한 분이 이런 광고를 냈다고 합니다.
저에게 전화를 걸어 주시는 분에게는 1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고 전화를 걸어 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이런 광고를 내었겠습니까
현대인들은 주위에 사람이 없어서 고독한 것이 아니라
삶의 애환을 함께 나누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이웃이 없어서 고독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사람은 많아도 서로를 위하는 진정한 이웃이 없는 시대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누구나 열등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열등감을 위장하기 위하여 치장을 하고 허세를 부립니다
그러나 만약 자신의 약점이 열등감이 발각되면 상대방을 사정없이 비판하고 대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등감이 많을수록 상대방을 얕잡아 봅니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얕잡아 봅니다 배운 사람은 무식한 사람을 얕잡아 보고
남편이 아내를 얕잡아보고 가정을 소홀히 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얕잡아보니 남편을 섬기지 않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님을 얕잡아보니 모시기를 싫어합니다.
바리새인과 유대인은 예수님을 얕잡아 보고 모욕을 했습니다.
얕잡아 보는 마음을 가지면 평화가 깨지고 갈등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흘림을 고난을 깨닫고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남을 존중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매일 걱정과 근심에 쌓여 살며 때로 역경과 실패로 허탈해 하며 낙심을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때로 삶의 어려움을 당하여 미끄러지고 넘어집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자신을 격려하고 믿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확신을 주고 힘을 줄 사람 다시 시작 할 수 있도록 일으켜 주는 사람,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의지를 북돋아주는 것이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격려한다는 것은 대단히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어느 시골에서 한 아이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항상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처녀 때에 낳은 사생아였으며 아버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마을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주일날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것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예배시간이 시작된 뒤에 들어갔다가 축도가 마치기도 전에 교회를 빠져 나와야 했습니다.
그 누구도 이런 아이의 행동에 대하여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과는 달리 예배를 마치고 조금 늦게 어른들 사이를 빠져 나오는데,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넌 누구냐? 네 아버지는 어느 분이시지?" 돌아보니 거기 목사님이 사랑의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서 계셨습니다.
아이가 당황해 하는 순간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 네 얼굴을 보니 누굴 닮았는지 알겠구나. 네 아버지는 하나님이시지?"
목사님의 그 따뜻한 말 한마디를 통하여 소년은 용기를 갖게 되었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은 벤 후퍼라는 사람이며
그는 후일 미국 테네시 주 국회의원에 두 번이나 당선되었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아름다운 삶을 향기롭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간증하였습니다.
"주일 예배 후 목사님이 제게 하신 그 한마디가 저의 인생을 오늘의 나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격려는 칭찬하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칭찬은 어떤 사람이 행한 일을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정은 그런 의미에서 칭찬보다 훨씬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늘 어려운 문제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많은 격려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나 다른 사람을 격려하기를 인색합니다.
좀처럼 칭찬과 격려하려 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격려는 죽을 사람을 살립니다.
위로와 격려는 실패의 사막에서 헤매는 사람을 오아시스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에게 유리한 이기적인 처신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낙심을 하고 좌절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간에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본문은 격려를 받는 편보다는 격려를 하는 편에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험한 세상에 방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진맥진해서 이젠 더 이상 걸어가기 어려운 상태에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실패하여 넘어져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도 많습니다.
버림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바로 내 아내요 내 남편이요 내 자식들입니다.
그럴 때 그들을 격려하며 북돋아 줄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우리들의 격려입니다.
어떤 사람이 단체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방을 배정하는데, 평소에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과 한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주최측에 쫓아가서 방을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방이 다 짜여져서 안되니 그 사람과 같이 지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번 일로 여행을 망쳐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미운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일단 경우에 어긋나지 않게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대화도 군소리는 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말만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 들어와서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말도 필요한 말만 곱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오해했던 것도 풀리게 되었고 결국 가까워져 돌아 올 때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 때는 하나님은 꼭 좋은 사람 내 마음에 맞는 사람만 짝져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짝져 주시기도 합니다.
바꿀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싫은 사람과도 같이 살게 하고 말하기 싫은 사람과도 말하도록 우리를 훈련을 시키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은 미운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여행이 끝나면 우리 모두는 영원한 본향 하늘나라에 가서 살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잠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사는 것도 잠깐입니다.
우리가 부부로 사는 것도 영원히 사는 것 같지만 잠깐 사는 것입니다.
잠깐 사는 인생인걸 우리가 단정하고 예의 바르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의식하여 살 때에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결국 좋은 사이로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족관계도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4장에 보면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고 합니다.
여행하다가 그 중 하나가 넘어지더라도 다른 하나가 붙들어 일으켜 줄 수 있지만
혼자면 붙들어 일으켜 줄 사람이 없어 큰 화를 당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면 함께 누워 따뜻하게 할 수 있지만 혼자면 추워서 견딜 수 없으며,
한 사람이면 강도들이 닥쳤을 때 패할 수밖에 없지만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할 수 있습니다.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삼겹줄속에 살 때에 넘어지더라도 서로 붙들어 줄 수 있고,
외로울 때에 서로 위로해주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에도 일어날 힘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넘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넘어질 수도 있고,
여러분이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붙잡아줘야 하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서로 위로와 격려가 없으면 이 세상을 살수가 없습니다. 너무 차가운 세상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입은 사람들은 25절에 모이기에 힘을 써야 합니다.
교회는 거울과 같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울을 보면서 아름답게 화장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바로 고치듯이
성전에 나오면 하나님 앞에 뉘우치고 반성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자신을 바로 고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사람은 거울을 자주 봅니다.
아침 저녁으로 보고 밥 먹은 다음에도 돌아앉아서 거울을 봅니다.
그러나 거울을 통하여 볼 수 있는 것은 겉모습뿐입니다
우리는 거울을 자주 보듯이 교회나와 내 속마음과 양심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외모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령도 바르게 고쳐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세탁소와 같습니다.
세상 살면서 더럽혀진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깨끗이 해야합니다.
교회는 우물과 같습니다.
요7:37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정비소와 같습니다.
우리의 녹슬고 무너져 가는 믿음이 말씀을 통하여 강건해지고 은혜로 말미암아 새힘을 얻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하여 성전을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고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안식일을 정하시고 거룩한 성전으로 우리들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는 복받을 줄 믿고 나와야 합니다.
시73: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이 나오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성전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영광스러운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점점 교회에 모이기를 중단하고 있습니다.
생활하기가 피곤하고 힘들다 보니 모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마지막 때의 징조는 사람들이 주님 앞에 모이기를 힘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이제 주님이 심판주로 재림 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소중한 기관이 두개 있습니다.
첫 번째 세운 공동체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겠다고 가정의 공동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황금이 소중해도 가정이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일날 예배 나오는 것,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고 빼먹습니다.
우리들에게 금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 나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 백화점이 화려하고 빌딩이 삐가번쩍하여도 그곳에는 이기주의와 탐욕과 약육강식의 계산만 있을 뿐 은혜가 없습니다.
그러나 쓰러져 가는 누추한 교회라도 그곳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노예 해방과 관련해서 링컨 못지 않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여성이 있습니다.
"Uncle Tom's Cabin(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라는 책을 써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스토우부인입니다.
그는 글로써 노예해방 운동의 불씨를 모든 사람들에게 당기게 했습니다.
한 번은 링컨 대통령과 스토우부인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스토우부인을 보는 순간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Uncle Tom's Cabin"이라는 책을 쓴 스토우부인이 우락부락하게 생기고, 여장부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니까 너무나 가냘프게 보였습니다.
바람이라도 한 번 세차게 불면 날아갈 버릴 듯한 나약한 모습의 여성이었습니다.
몸도 왜소했습니다.
그래서 링컨 대통령은 자기의 솔직한 심경을 스토우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Uncle Tom's Cabin」을 쓰신 분이 이렇게 연약한 여성인 줄 몰랐습니다."
그 때 스토우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책은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노예해방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입니다. 저는 그저 잠시 그 분의 대필자가 되어드렸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하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 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필자 대역자일 뿐입니다.
단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만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언제나 내 앞에 모시면서 예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 하시도록 하십시다.
그래야 무슨 일이든지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뿌림을 받아 살아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을 우리의 가슴에 뿌려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다'(Jesus died for me)라고 네 마디 말을 확신하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보혈의 능력”을 덧입어 마귀가 주는 악한 양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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