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272

바울의 종말론(그리스도의 재림)

바울의 종말론(그리스도의 재림) 바울의 종말관 사상은 구약성서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그 당시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 사13:6-10; 살전5:3.) 바울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그는 그가 배운 유대 학문과 유대교적인 교육을 통해서 얻은 언어를 종종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특히 이사야 26장 1. 주의 오심 : 사26:21; 살후2:1 2. 심판의 임함 : 사26:21; 살후1:92:8 3. 죽은자의 부활 : 사26:19; 살전4:16 4. 나팔소리 : 사27:13; 살전4:16 5.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불러 모으고 회집할 것, 이는 마지막 날에 관한 유대사상의 필수적인 요소였다. : 사27:12; 살전4:17 또한 기본적으로 독특한 특징과 초점에서 ..

성경적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

성경적 종말론에 대한 바른 이해 종말론에 대한 소위 『세기말적인 관심』이 고조되어 그 절정에 달한 듯한 느낌을 받는 이 때에 각종 잘못된 세기말적 종말론』에 대한 비판들이 속출하고 있으나 막상 그 내용들을 읽어보면 『유행을 좇아가며』고정 관념과 지나치게 주관적이거나 보편적 이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또 이것이 오늘날 『종말론의 페허』가 기독교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스러움마저 우리에게 안겨다 준다. 그런고로 우리가 오늘날 모두 알고 소유하기를 원하는바 「성경적 종말론」에 대한 바르고 균형잡힌 이해를 도모하기 위하여 필자는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제한된 지면에서 필자가 맡은바 이 주제에 대하여 (1) 철학과 종교에 있어서의 종말사상과 (2) 교회사에 있어서의 종말론과 (3) 종말론의 ..

말세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

말세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 (벧전4;7-11) 서론: 1.말세에 대한 사람들의 주장들 1) 말세는 없다. 2) 말세는 있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3) 말세는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시대는 말세지말이다. 본론: 1. 말세의 뜻 1) 만물의 마지막 ( 4;7전) (지구의 종말, 세상 문명의 종말 ) 2. 말세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말세인가? 1) 예수님 초림부터 예수님 재림까지이다. ( 히.1;1-2,9;26, 벧전,1;20, 4;7전, 고전.10;11, 약.5;3) 3. 말세가 있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 1) 성경 말씀의 기록때문이다. 4. 말세에 관한 성경 용어들 1) 정한 때 끝 ( 단.8;17,19) 2) 이 모든날 마지막 (히.1;2) 3) 마지막 때 (단.8;23) 4)..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들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들 기독교 종말론 역사적 전천년설/세대주의적 전천년설/무천년설/후천년설 기독교 종말론에는 네 가지 관점을 다룬다 네 개의 종말론은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지만 종말론의 복잡한 미로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어떤 종말론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영적인 방향성이 확연히 달라진다 종말론을 연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밀레니엄이다 ​ 밀레니엄(Millennium)은 라틴어로 "천년"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헬라어로는 킬리아즘(Chiliasm)으로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여섯 번 사용되었다 ​ 1. 전천년설 :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있다는 형태다 2.후천년설 :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후에 있다는 형태다 ​ 두 가지 형태에는 각각 두 가지 관점이 있다 1..

성경을 통해본 종말의 징조

성경을 통해본 종말의 징조 아기를 밴 여인이 해산할 기한을 짐작할 수 있듯이 재림의 날도 정확한 때는 알 수 없으나 그 시기는 징조를 통해 알 수 있게 하셨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으오리까" (마24:3) 라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시며 세상 끝 즉 예수님의 재림 전에 있을 징조를 가르쳐 주셨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 알라"(마24:33) 하셨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는 징조는 무엇일까? (1) 전쟁 (마 24:7) 인류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때가 거의 없지만 여기서 말하는 전쟁은 나라가 나라를 치는 전쟁도 있지만 민족 내분으로 민족과 민족이 서로 치는 골육상잔의 싸움이 재림의 징조로 주어지고 있다..

영원한 형벌에 대한 여러 가지 이름들

영원한 형벌에 대한 여러 가지 이름들 ① 지옥(Hell) 지옥(地獄)이란 우리말로는 땅에 있는 감옥이란 말이지만 실제는 땅에 있는 지하에 있는 감옥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우주가 아니라 다른 공간과 다른 시간 속에 하나님은 악한 영들과 악한 영혼들을 형벌에 처하는 무서운 곳을 만들어 놓으실 것이다. (마5: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종말의 징조들

종말의 징조들 종말에 관한 총괄적인 내용을 요한계시록과 연계하여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감람산에서의 예언을 토대로 종말론을 요약합니다. . 마24:3-5 ‘3.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 예수께서 십자가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세상 종말에 관한 예언을 주셨습니다. 공관복음서(마24;막13;눅21;)에는 같은 배경의 말씀이 나오는데 종말 예언을 같이 들었던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 감람산에서의 종..

시편의 종말론

시편의 종말론 1. 서론 시편은 종말론적인가? 혹은 시편은 종말론을 포함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긍정적일 것이다. 19세기까지는 시편이 전통적으로 메시야적으로 이해되어 왔고, 시편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들로서 여러 번에 걸쳐 신약에서 인용되거나 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신약 혹은 신약의 저자들은 시편을 종말론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하겠다. 카일과 델리취(C. F. Keil and F. Delitzsch)는 시편이 메시야를 예언하거나 상징하는 방식이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고 보았다. 보스(G. Vos)는 시편에서 왕이나 기름 부음 받은 자(메시아흐)가 메시야에 대한 직접적 예언인지 혹은 모형론적 용법인지 혹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 것인지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이해 즉..

종말론에 대한 신학적 견해

종말론에 대한 신학적 견해 1. 들어가는 말 1)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는 모든 "경륜의 진리(Dispensational Truth)"를 푸는 열쇠 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믿지만 그 시기에 관해서는 의견의 차이가 있다. 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는데 하나는 '후천년주의자'들과 다른 하나는 '전천년주의자'들로 나누어진다. 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이전에 재림하실 것을 믿으나, 후천년주의자들은 천년 왕국 이후까지는 주님께서 재림하시지 않는다고 믿는다. "천년"은 요한계시록 20:1-7에 기록되어 있는 1000년의 기간을 말한다. 전천년주의자들 모두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계시록 20장의 이 구절에 그들의 신앙의 근거를 두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사실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

시간과 종말

시간과 종말 성경이 우리들 개인의 미래와 세계 및 인류의 미래 일반에 관하여 우리에게 계시해 준 것에 대한 조직적인 연구를 「종말론」이라 한다. 인간은 어차피 종말론적인 실존이다. 그리고 시간은 종말을 향할 뿐이다. 1. 시간의 의미 역사에 관한 문제는 결국에는 시간의 문제로 연결된다. 인류는 나면서부터 시간에 의하여 제약되고 시간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결국에는 시간에 의해서 그 존재를 상실해 버리고 만다. 이같이도 강력하고 극복할 수 없는 시간이란 도대체 어떠한 것인가? 우리가 보통 경험하는 시간은 미래(not yet)에서 현재(now)에 이르러 과거(no longer)로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그러한 시간을 경험한다. 여기에는 일방통행만 있다. 인간에게 주는 슬픔이 「세상에서의 가장 깊은 원천」(K.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