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론에 대한 신학적 견해
1)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는 모든 "경륜의 진리(Dispensational Truth)"를 푸는 열쇠 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믿지만 그 시기에 관해서는 의견의 차이가 있다. 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는데 하나는 '후천년주의자'들과 다른 하나는 '전천년주의자'들로 나누어진다. 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이전에 재림하실 것을 믿으나, 후천년주의자들은 천년 왕국 이후까지는 주님께서 재림하시지 않는다고 믿는다. "천년"은 요한계시록 20:1-7에 기록되어 있는 1000년의 기간을 말한다. 전천년주의자들 모두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계시록 20장의 이 구절에 그들의 신앙의 근거를 두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사실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 이전에 재림하실 것인지 아니면 이후에 재림하실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요한계시록 훨씬 이전에 기록되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명료한 말과 강력한 어조로 왕이신 메시아의 통치 아래서 이땅 위에서의 의와 화평의 시대가 올것을 예언하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약속된 메시아가 통치하시는 "지상 왕국"에 대해 그들이 믿었던 것은 잘못된 믿음이 아니였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결코 그들이 그러한 믿음을 갖는 것에 대해 책망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에서 명백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때에 이스라엘에 그 왕국을 회복하시겠나이까"(행 1:6)라고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지상 왕국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내가 와서 세우고자 하는 왕국, 즉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왕국은 영적인 왕국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단지 "너희에게는 그 때나 시기를 알게 하신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 메시아의 재림에 관한 구약 성경의 전체 가르침은 "천년 왕국 이전"에 오신다는 것이다. 전천년주의자들이 계시록20:1-7에 나오는 "천년"에 관한 구절을 인용하는데 있어서 이 구절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이 구절이 "의와 화평의 시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창세기 2:1-3 의 "안식"에 기반을 둔 유대인의 전통은 창조 때로부터 "일곱 번째 천년"이 "안식 기간" 즉, "천년 왕국"이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계시록에 기록된 "천년"에 대한 구절은 유대인의 이러한 전통을 단순히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그 구절을 없애 버리더라도 이러한 관점을 약화시키지는 못한다. 그것은 단지 그 기간에 대해서 지속되는 길이만이 불확실한 채 남아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사도 시대의 교회"(초대 교회)는 천년 왕국 이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전 천년설)을 믿었으며, 그 후에도 200년이 넘도록 어떠한 다른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부"들의 저술들이 풍부하게 그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러나 A.D.250년 경 교부들의 중의 하나였던 오리겐(Origen)이 성경의 말씀은 단지 성경 진리의 "알맹이"를 숨겨 놓은 "껍질"에 불과하다는 착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은유적(allegorize)"이고 "영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성경을 "은유적"이고 "영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의 학파를 창설하였다. 그 때로부터 교회와 성경은 수많은 곤욕을 겪게 되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대부분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지상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2) 콘스탄틴이 AD 323년에 로마의 황제가 되었을 때 기독교에 호의적이었으며, 그는 교회와 국가를 통합하였다. 그리하여 성경 해석상에 새로운 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믿음으로는 로마가 적그리스도가 앉는 자리가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콘스탄틴이 적그리스도가 아닌가?"하는 의문이 제기되었고, 그 소문은 은밀하게 퍼져 나갔다. 그 같은 소문은 로마 황제에게는 불쾌한 것이었으므로 안전한 해석이 고안되고 채택되게 되었다. 즉 "적그리스도는 '이교도 로마'였으며, '천년 왕국'은 콘스탄틴이 즉위했을 때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콘스탄틴 황제가 교회에 수여한 특혜와 특권에 의해 채택되어졌으며, 심지어는 구약에 있는 천년 왕국의 축복들이 유대인에게서 교회로 옮겨졌다는 주장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적그리스도라는 주장은 가라앉지 않았다. 계시록을 정경에서 삭제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되자 마침내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성경은 봉인된 책이 되었고 암흑의 밤이 모든 기독교계 위를 휩쓸었다. 그 결과가 곧 "암흑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그 암담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증인들이 없지 않았다. 폴리시안즈(Paulicians), 알비게네스파(Albigeneses), 왈덴파(Waldenses) 등이 주님의 천년 왕국 이전 재림을 증거 하였다. 그러나 암흑시대가 영원하지는 않았다. 때가 차자 종교개혁의 선두 주자인 죤 위클리프가 일어났으며, 곧 그 뒤를 이어 마틴 루터가 나타나 어두운 암흑시대를 물리쳐 버렸다. 주님께서 천년 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전천년설)는 교리가 재생되었으나 개혁자들 또한 널리 나아가지 못했다. 이 기간은 종교적 분쟁과 새로운 기독교 종파가 형성된 기간이였다. 그 결과 "영적인 것"에 대한 물결이 쇠퇴하고 이성주의가 성장하면서 이 세상은 심판을 향해 급히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 통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요구되었다. 영국 교회의 목사인 다니엘 휫비(Daniel Whitby,1638-1726)가 이러한 이성주의를 창안하였는데, 그는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다윗의 보좌가 다시 설립된다는 약속들을 읽으면서 "이 약속들은 영적인 것으로서 교회에 적용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견해를 그는 "새 가설"이라 불렀다. 그는 이스라엘과 시온산은 교회를 상징하며, 이방인이 유대인에게 굴복하게 된다는 약속은 이방인이 개종하여 교회로 된다는 단순한 예언으로 보았다. 또 사자와 양이 함께 누워 있다는 것은 옛 성품과 새 성품의 조화를 상징하며, 예루살렘에 외관적이고, 눈에 보이는 왕국이 설립되고,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통치한다는 것은 지상에서 인간과 영적인 존재들이 다함께 혼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저속하고, 육신적이며, 이성에 반대 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새 가설"은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마호메트교가 전복되고, 유대인들이 회심하며, 적그리스도인 교황과 함께 로마 카톨릭 교회도 멸망하게 될 것이고, '천년 왕국'으로 알려진 1000년간의 의와 화평의 시대가 뒤따를 것이며, 그 기간이 끝날 무렵에 잠시 동안의 배교가 있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심으로 끝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는 죽은 자들의 일반적인 부활, 그리고 일반적인 심판이 뒤따르며, 땅은 불로서 멸망하게 되는데 그후 영원한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시대는 "새 가설"에 대해 호응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 당시의 공개적인 부정으로부터 반작용이 일어났다. 영국 전 지역에서는 기독교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다. 휫필드(Whitefield)와 웨슬리(Wesley)의 영향 아래 "대부흥"이 일어났으며, 그것은 마치 휫필드가 주장했듯이 천년 왕국이 곧 도래할 것처럼 보였다. 그도 역사의 사건들을 오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천년 왕국 안에 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어느 곳에서나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으며 교회의 확립된 교리가 되었으며, 그것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후천년주의"의 관점으로 알려진 것으로 교회의 전통적 신앙으로 간주되었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에도 지지를 받고 있는 "천년 왕국 이후 재림설(후천년설)"이 겨우 2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반면 천년 왕국 이전 재림설(전천년설)의 역사는 이사야와 다니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 "거짓 교리"인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은 구약 성경에서 각 장들의 머리 제목으로써 성경들을 통해 가르쳐지고 있다. 예로 이사야 43,44장의 제목에 "주님께서 그 분의 약속으로 교회를 위로하신다"라고 되어 있지만, 그러나 그 장들은 결코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다. 우리가 그 장들을 읽을 경우 그것은 야곱과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의 장 제목이 발행자에 의해 붙여진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제목일 경우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계시록"의 제목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계1:1 로 불려져야 하는데 "요한 계시록"이라고 되어 있다. 3) 천년왕국 이전 재림의 해석을 달리하는 "과거학파(Preterist)", "역사학파(Historical)", "미래학파(Futurist)"가 있다. 이들은 서로 상반된 주장을 가지고 있다. ㉮ "과거학파"는 예수회 일원인 알카사가 창시하였다. 그는 서기 1614년 묵시록(apocalypse)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완전히 체계화하여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는 그 논문에서 계시록의 범위를 사도 요한의 사건으로 제한하려고 했으며 로마의 타이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후 뒤이어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그 당시의 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이 때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믿고 있으며 네로 황제가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단정을 내렸다. 그가 의도하는 바는 분명히 "음녀 교회"로 낙인찍힌 로마 교회와 "적그리스도"로 일컬어지는 교황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그의 견해는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 "현재주의자(Presentist)"라고 하는 "역사학파"는 요한 계시록이 요한의 시대에서부터 마지막 날까지, 이 세계와 교회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계속해서 예언한 책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요한 계시록에 나타난 상징들은 현재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역사적 사건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은 적그리스도란 한 인간이 아닌 어떤 "체제"를 가리키며 음녀 교회로 일컬어지고 있는 로마 교회가 바로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시간 요소"를 "연일"로 해석한다. 이 학파에는 유능하고 능력 있는 몇 명의 변호사들이 있었다. 이 학파는 과거학파처럼 초대 교회에서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2세기 중엽에 나타나 13세기 초에 수도원장 요아킴(Joachim)이 이를 체계화했다. 그후에 종교개혁의 선구자들과 지도자들이 이 학파의 견해를 정식으로 채택하고 교황에게 적용했으며 엘리코트의 저서인 "호라에 아포카립티카(Horae Apocalypticae)"에서 그 견해는 절정이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견해는 카톨릭을 반그리스도적인 세력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종종 프로테스탄스적 해석이라 일컬어진다. 종교 개혁자들에게 이것은 강력하고도 가공할 무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견해가 진리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16세기 장렬한 순교의 비밀은 여기에 기인했던 것이다. ㉰ "미래학파"는 묵시록은 몇몇 상징들을 제외하고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며 3장 끝부터 계시록 끝까지는 장차 이루어질 예언이며 6장 처음부터 19장 끝까지의 대부분의 내용은 다니엘이 예언한 70주 가운데 마지막 한 주 기간 중에 일어날 일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견해의 역사는 단지 16세기말부터 오늘날에 이르고 있지만 가장 오래된 견해이다. 이 견해의 큰 특징은 초기 교회의 교부들이 이미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으로 올바른 성경 해석이었지만 교황이 세력을 잡게 되자 세상에서 잊혀 졌다가 나중에 다시 되살아났다. 미래학파의 견해가 현재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16세기 말엽 예수회의 일원인 리베라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도 예수회의 일원인 알카자와 마찬가지로 교황이 "적그리스도"의 낙인을 면하게 하려고 애썼으며 계시록의 예언을 먼 훗날로 돌렸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 견해를 받아들였으나 오랫동안 외부로 유출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이 견해가 다시 살아났다. 이 마지막 견해가 셋 가운에 가장 널리 인정받은 견해이다. 그러나 이 견해를 교황 체제와 마호멧 체제를 무시하고 있다고 하여 비평하고 있으나 사실과 거리가 멀다. 이 견해에 의하면 그러한 체제들은 모형과 원형이 예시되어 있으며 그들 가운데 앞으로 나타날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래학파의 성경해석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는 예언이 성경의 신비를 푸는 열쇠이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의 최종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지금 이 세상은 어둡지만 "확실한 예언"이 우리를 비춰 주고 있다(벧후 1:19). 예언은 일기예보처럼 아무렇게나 추측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언은 미리 기록된 역사이다" 이런 식으로 예언을 생각하고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진리대로 천년 왕국 이전에 재림하신다는 말씀을 깨닫게 되면, 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책이 될 것이다. 교리와 예언적인 진리가 정돈되어 더 이상의 혼동이 없게 되어 우리의 신학 체계는 질서가 잡힐 것이다. 2. 전개되는 말 1. 세가지 종말론 현재 대두되고 있는 종말론으로는 후천년설, 무천년설 그리고 전천년설이 있다. 1) 후천년설 이 시대의 마지막 1천년 동안이 상징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학설로서 우주적 평화와 의의나라가 1천년을 지속하기 전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의 교회에서 영적으로 통치하실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19세기에 우세하였고 한 때는 후천년주의 입장이 자유주의나 보수주의의 신학자들간에 상당히 인기가 있었고 많은 성경 주석가들이 후천년설을 근거로 해서 저술하였다. 이 후천년설에 따르면 이 세상의 우호단체들, 평화봉사단, 식량원조기구, 유네스코, UN, 반전주의자, 인종차별 반대 단체들이 나서서 세상을 정화시켜 평화의 1천년을 이루면 그때에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들, 무신론자들, 불가지론자들 모두가 후천년주의 자들이다. 이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제거하거나 무시해 버린다. 단지 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하여 가장 잔인한 행위로 인간에게 가하고 있을 뿐이다. 고문, 투옥, 속임수, 도둑질, 거짓말 등이 수없이 자행되어 왔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헤겔, 엥겔스, 칼막스, 스탈린, 레닌, 트로스키, 카스트로, 모택동, 김일성 등등의 가르침이며 대다수 유수한 대한 교수들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이러한 발상은 또한 진화론적인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노력으로 구분을 없앰으로써 이 지상에 완전한 평화적 통치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남자를 여자같이, 여자를 남자같이, 흑인을 백인같이, 백인을 흑인같이, 부자에게서 돈을 뺏어다가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서양인을 동양인같이, 동양인을 서양인같이, 천주교를 개신교같이, 개신교를 천주교 같이 하여 끝내는 하나님을 마귀 같이, 마귀를 하나님 같이 만드는 것이다. 만일 모든 것을 통합시켜 하나의 공통분모로 가제와 구별없이 만들려고 한다면 마지막에는 천국을 지옥같이, 지옥을 천국같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생각인가? 만일 모든 반대로 제거하고 상대편에게로만 치우친다면 그 종국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지옥 안에 천국이고 천국 안이 지옥인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바와 똑같다. 「악은 선하다 하고, 선은 악하다 하는 자들과, 빛 대신 어두움을, 어두움 대신 빛을 두며, 단것대신 쓴 것을, 쓴 것 대신에 단 것을 두는 자들에게 화로다.」(사 5:20)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왕국이 단순히 자연적인 과정을 통해서 올 수 있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성경에서 가르친 인간의 죄 문제를 알았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파해서 인류의 대부분이 구원을 받고 난 후 성경의 능력 아래 그리스도의 교회가 지상에서 막강한 능력이 되리라고 믿었으며 그렇게 되면 1천년이라는 우주적 축복(천년왕국)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1차적인 대공황, 공산주의, 나치주의, 2차 대전, 도덕적 타락, 동성연애, 각종 질병 등 인간이 개선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세상은 점점 퇴폐해 가고 아주 비관적이고 실망적인 양상을 이루어 가고 있다. 사회는 불안이 가중되고 있고 성경과 맞지 않는다. 성경은 예수님의 재림 이전의 현상들을 평화가 아니라 환란과 전쟁, 전쟁의 소문들이 있을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마태복음 24장, 디모데후서 3장 등)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의 세상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데 있지 않다고 가르친다. 세계의 복음화, 민족 복음화, 21세기 운동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펴는 하나의 캠페인에 불과하다. 이것이 19세기에 유행했던 후천년설이다. 그 당시에 영어성경 <킹제임스성경>으로 설교한 영국과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거듭났지만 종교적이고 미신적인 사람들은 왕국이 오는 줄로 생각했었다. 2) 무천년설 무천년설이란 천년황국이 그리스도의 초림시에 시작된 것으로 믿으며 성도의 마음속에서나 사후의 중간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영적으로 적용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무천년 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지상에서 1천년간을 직접 통치하실 것을 믿지 않는다. 이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것이 마지막 심판으로 끝이 난다고 믿는다. 이 무천년설은 먼저 장로교회와 카톨릭에서 채택하였고 그 후에 많은 다른 단체들도 채택하였다. 이들이야말로 천국 (Kingdom of heaven)과 하나님의 나라 (Kindom of God)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대부분의 교단들이 이 무천년주의 이론을 그들의 종말론으로 택하고 있다. 무천년주의자들은 물뿌리는것을 침례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물뿌리는 것(Sprinkle)은 침례 (Baptism)가 아니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지상에다 천년왕국을 수립하지 않으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은 성경적이며 실제적인 기간이 아니라 성도가 사탄을 이기는 성경적 묘사라고 주장한다. 또 그 기간은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이라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갑자기 오시며(고린도후서 5:10. 그리스도의 심판) 그때는 거듭 났던 거듭나지 않았던 간에 (마 25:31-46. 민족들의 심판) 모두가 살아나서 (계 20:11-15. 큰 백 보좌 심판)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며 한 번의 심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3) 전천년설 전천년설은 왕이 오시기 전 이 세상의 1천년 동안은 지배도 평화도 없으며 인간에게는 선도 없다는 것이다. “악인에게는 화평이 없다”고 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느니라.(사57:21) 화평의 왕이 오실 때까지는 전쟁과 전쟁의 소문들만이 있을 뿐 진정한 평화는 없으며 주님이 오시면 천년왕국이 시작된다는 견해이다. 이세상의 제도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스도께서 포도원 주인의 아들로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를 포도원 밖으로 던져서 죽이고 말하기를 “이제 포도원은 우리의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를 무덤에 넣고 그 무덤을 봉해 버린 후 그를 완전히 제거해 버렸다고 믿었다. 그런 후에 그들은 자기들의 도덕기준과 윤리 강령과 생활의 기준들을 세웠었다. 그 결과 지난 2000년 동안 이세상은 피 흘림과 전쟁뿐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마약, 매음, 강도, 절도, 고문, 고통, 죽음 등은 이미 사람이 사는 사회의 일반화된 현상이 되어 버렸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러한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주님이 오셔서 계속 통치하신다는 것은 구약에서만의 약속이 아니다.(시2:9,슼9:10) 「네가 그들을 철장으로 깨뜨릴 것이며, 토기장이의 질그릇 같이 산산히 부수리라 하셨도다.」(시2:9) 「이세상의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서 그분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계11:15) 이것은 흔히들 말하는 영적인 나라가 아니라 실제적인 왕국을 말한다. 전천년주의는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이 오시며 직접통치하시는 지상의 실제적 왕국이고(사2:4,35:6, 슼14:3-4,계20장) 성경해석을 문자적으로 하고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기에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차이가 나지 않으며, 다니엘의 70째주(단2:31-35,36-45,9:24-27)가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고 있고 교회사의 지지를 받으며, 요한복음5장28-29절과 요한계시록 20장6절의 주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전천년주의는 3가지 종말론 중의 하나가 아니라 성경적 교리임을 밝혀준다. 무천년주의와 후천년주의를 따르려면 적어도 성경의 80%는 그대로 지나쳐야한다. 이상의 세가지 학설에 따라 신학노선에 현저한 차이점이 있다. 첫째는 먼저 구령(Soul willing)하는 문제다. 전천년주의자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거듭나게 한 후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로 이겨오는 구령에 사역의 최우선 순위를 두는 반면, 후천년주의자들과 무천년주의자들은 구령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교회는 웅장해야하고 예배는 성스러워야하며, 다만 전도할 뿐(예: 예수 믿으면 좋습니다.) 구령은 하지 않는다. 교회사에 나타난 위대한 구령자들은 모두 전천년설의 지지자들이었다. 오늘날의 명성있는 구령자들은 모두 전천년주의자들이다. 반면에 후천년지지자들과 무천년지지자들은 구령을 하지 않는다. 두 번째 현저한 차이점은 전천년지지자들이 사용하는 성경과 후천년지지자들이 사용하는 성경이 다르다는 점이다. 전천년지지자들은 주로 (King James Bible) 킹제임스성경을 쓰는 반면 후천년지지자들과 무천년지지자들은 주로 미국 표준역(American Standard Version)이나 개역표준역본(Revised Version), 새국제역본(New International Version)을 사용하고 있다. 즉, 한글성경으로 비교한다면 한글개역성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한글킹제임스성경과 한글개역성경을 비교할 때 한글개역성경은 신약에서만도 무려 2,200단어 이상이 삭제되었다. 원문을 손상시킨 부분이나 잘못된 부분도 상당하다. (“하나님께서는 한가지 성경만 쓰셨다.”고 하셨는데) 한글개역성경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격하시키기 위하여 주요한 부분들을 삭제시킨 성경인 것이다. 전천년설은 후천년설이나 무천년설에 대항하는 학설이 아니라 성경적인 학설이다. 후천년설이나 무천년설을 따르면 성경의 80%는 덮어두어야 한다. 4/5의 성경 없이 성경교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믿는가? 참으로 어리석은 학설이다. 2. 구름 속으로 끌려 올려 올라가리니(살전 4:16,17, 휴거) 【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마지막 나팔에 눈 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15:52) 1) 모든 일들이 눈 깜짝하는 순간에 일어난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눈 깜짝하는 순간에「마지막 나팔」이 있게 된다. 여기서 나팔은 나팔(trumpet)이라는 악기가 아니라 나팔이 내는 “나팔소리(trump)”를 말한다. 이 나팔소리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나팔”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나팔소리는 천사들의 나팔소리가 아니다. 소위 대환란 이후 휴거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도 다니엘서의 70주 동안 대환란을 거친 뒤에 일곱 나팔이 울리고 그 일곱 나팔 중에서 마지막 나팔과 함께 휴거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나팔이라는 악기를 나타내는 “trumpet”(트럼펫)"이고 여기 고린도전서 15장의 나팔은 “trump”즉 “나팔이 부는 소리”를 말한다. 결국 trumpet이라는 악기가 아니고, 악기의 소리이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은 천사들이 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천사들이 부는 나팔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8장 2절을 보자. 「그때 내가 보니, 일곱 천사가 하나님 앞에 섰고 그들이 일곱 나팔을 받더라.」다음 요한계시록 8장 6절에서 「그때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준비하더라.」또 요한계시록 11장 15절을 보자.「그 후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이 있어 말하기를...」 이와 같은 요한계시록의 상황을 정리하면 일곱째 천사가 “나팔”(trumpet)이라는 악기를 “받고” 그 나팔이라는 악기를 “불려고” 준비하더니 마지막에는 그 나팔이라는 악기를 “부니”라고 말씀한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에서는 “마지막 나팔”이 곧 “마지막 나팔”이라는 “악기”이다. 그러나 고린도전도 15장에 마지막 나팔은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마지막 나팔”과 전혀 다르다. 이 나팔소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16~18에서 말씀하고 있는 “나팔소리”를 말한다. 2) 「주께서 호령과 산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나서, 살아남아 있는 우리도 공중에서 주와 만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올라 가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영원히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8) 여기에서 나팔소리는 분명히 천사들이 부는 나팔소리가 아니다. 이 나팔소리는 “하나님의 나팔소리”라고 명백하게 말씀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천사들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는 천사장이 나온다. 천사장은 일반 천사와 다르다. 천사장은 천사장이다. 일곱 천사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장”이다. 일곱 천사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장이다.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리고 “미카엘 천사장”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이 장면에서 다니엘의 70제 주가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대환란 (The great tribulation)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시점이다. 다니엘 12장 1-2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미카엘이 일어서리니, 이는 네 백성의 자손을 위하여 일어난 위대한 통치자라. 또 고난의 때가 있으리니, 그것은 민족이 생긴 이래로 그때까지 결코 없었던 것이다. 그때에 네 백성이 구제될 것이니, 곧 그 책에 기록되어 발견될 모든 자들이라. 땅의 흙속에서 잠자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날 것이며, 얼마는 영원한 생명을 얻겠고 얼마는 수치와 영원한 모욕을 받으리라.」(단12:1-2) 미카엘은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천사요, 영적세계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통치자임을 분명하게 천명한다. 예레미야 30장7절에서「야곱의 고난의 때」라고 지칭되는 이 대환란 기간이 여기서도「고난의 때」라고 지칭된다. 이스라엘이 대환란 때 당하는 고난을 성경은「진통하는 여인」(렘 30:6) 비유하며 이 기간을 유대인들이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겔 20:37) 될 시기라고 언급한다. 이때의 고난이 어찌나 심각하던지 다니엘 12장1절에서「민족이 생긴 이래로」처음 있게 될 일이라고 서술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마 24:21) 이라고 말씀하셨다. 대환란에 대해 중요한 것은 대환란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대환란을 겪지 않고 그 직전에 휴거된다는 사실이다. 더욱더 알아야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진압하시고 대환란을 끝내신 다음 천년왕국을 세우시게 된다는 사실 등을 성경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이것을 부인하거나 왜곡하거나 애써 외면하면서 인간의 힘으로 세계 평화를 이룩한다고 떠드는 자들은 모두 마귀의 앞잡이들이다. 고린도전서 15장52절에 나오는 “마지막 나팔”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마지막 나팔”과 혼돈하면, 대환란 이후 휴거설을 주장하는 이단 교리가 고개를 들고 교회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대환란을 거치게 된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내세우게 된다. 필자는 1979년 복음을 알고 33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대환란 이후 휴거설을 가르치는 교단에서 생활하였으며 교리적으로 많은 혼란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대환란을 거치게 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대환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대환란 이후 휴거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대환란 이전 휴거”를 말하고 있는 고린도 전서 15장의 “신비”를 알지 못한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대환란을 거쳐야 한다면 그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은 체계가 아니고 믿음과 행위로 구원 받은 체계에 놓이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다.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 믿음과 행위로써 다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영원한 생명이 보장되었는데 대환란을 또 거쳐야 한다면, 그리고 믿음과 행위를 또 보여야 한다면 이미 보장된 영생은 거짓말이란 말인가? 대환란을 거치는 동안 자칫하면 영생을 다시 놓칠 수도 있다는 교리는 전혀 성경 말씀의 진리와 상반되는 이단 교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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