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의 종말론
1. 서론
시편은 종말론적인가? 혹은 시편은 종말론을 포함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긍정적일 것이다. 19세기까지는 시편이 전통적으로 메시야적으로 이해되어 왔고, 시편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들로서 여러 번에 걸쳐 신약에서 인용되거나 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신약 혹은 신약의 저자들은 시편을 종말론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하겠다. 카일과 델리취(C. F. Keil and F. Delitzsch)는 시편이 메시야를 예언하거나 상징하는 방식이 다섯 가지 종류가 있다고 보았다. 보스(G. Vos)는 시편에서 왕이나 기름 부음 받은 자(메시아흐)가 메시야에 대한 직접적 예언인지 혹은 모형론적 용법인지 혹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 것인지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이해 즉 신약과의 관련성 속에서의 시편의 종말론적 단초를 찾아내려고 하는 시도는 시편의 종말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닥칠 때 또 다른 해석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시편에 나타난 메시야적 기대는 무엇이며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라는 질문과 또 그것을 넘어서 과연 시편이 통일성 있는 종말론적 전망을 담고 있는 하나의 책인가 하는 것이다. 시편이 전체로서 통일성 있는 하나의 책으로 간주될 때만 “시편의 종말론은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경우에만 그 종말론은 단순한 메시야적 예언의 모음 이상의 온전한 그림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비교적 근자의 시편 해석 방법론 중에서 궁켈(Herman Gunkel)의 양식 비평은 각각의 시편은 그것이 기원한 삶의 자리가 있으며 그 자리에 따라 동일한 양식이 형성되므로 각 시편은 양식에 따라 분류되고 이해되어야 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방법론은 개별 시편의 양식만을 중요시하므로 전체로서의 시편이 어떤 연속적인 내용의 흐름을 가지거나 통일성 있는 작품으로서 전체적인 메시지를 가질 것이라는 견해에는 부정적이다. 궁켈의 방법론을 기초로 하는 모빙켈(S. Mowinckel)의 제의적 해석의 경우에도 각 개별 시편의 제의적 배경에만 관심을 갖지, 그 개별 시편이 시편 전체 속에서 갖는 의미와 역할에는 무관심하다.
이와 같은 종래의 방법론은 시편집(the Psalter)을 서로 관련이 없는 시편들을 임의로 모아 놓은 모음집으로 가정하였으나, 보다 최근에 나타난 차일즈(B. S. Childs)의 정경적 방법은 전체 시편이 신앙 공동체 내에서 가지는 권위적 기능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전체 시편을 서론(시 1편) 및 종결부(할렐루야로 시작되는 마지막 5개의 시편들)를 가지며 다섯 개의 분리된 부분들로 구성된 하나의 전체로 본다. 이런 정경적 관점을 취하는 연구자들은 전체 시편이 의도를 가지고 편집되었고 시편 전체가 특정한 신학을 제시하고자 하며, 각각의 시편은 그 정경적 배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견지한다. 이러한 “전체론적 관점”은 개개의 시편이 그 자체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을 수 있으나 시편 전체의 구성과 신학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함을 가정한다.
시편 전체가 하나의 책이며 일관된 메시지를 가질 수 있다는 가정은 시편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가고 있다. 노워크(Nick Nowalk)는 시편들을 개별적인 시편으로서가 아니라 전체로서 하나의 이야기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시편 전체가 다윗에 관한 과거의 이야기와 다시 올 새 다윗의 이야기라고 간주한다. 그에 따르면 “올바로 이해된 시편들은 철저히 메시야적이고 종말론적이다.” 차일즈(B. S. Childs)의 제자로서 시편을 연구했던 윌슨(Gerald H. Wilson)의 작품 The Editing of the Hebrew Psalter는 이러한 정경적 혹은 전체론적 접근방법으로서 기념비적인 것이라고 평가된다.
그는 시편의 표제가 편집자들이 시편의 구조에 대해 어떤 정보를 표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고 보고, 표제 및 구조적으로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시편을 연구함으로써 시편의 구조와 내용을 밝히고자 한다. 하우스(Paul House)에 따르면 이 방법은 정경 구조 분석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윌슨의 방법론에 기초한 연구에서 존 왈튼(John Walton)은 시편 전체를 다윗 언약에 관한 칸타타로 규정하며, 서론(1-2편) 및 마지막 찬양시(시 146-150)를 포함하여 각 권이 전체로서 이어지는 내용들을 구성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하우스는 똑 같은 정경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시편 전체가 통일된 메시지를 가지도록 각 권들이 구성되어 있음을 밝힌다. 그러나 이런 연구들의 결과는 각 권들의 내용을 요약하고 시편 전체가 통일성 있는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 시편의 서론에 나타난 종말론적 개념이 각 권들의 메시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해 분석하고 있지 못하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화이팅(Mark J. Whiting)은 시 1-2편이 통일성을 가지고 있으며 시편 전체를 해석하는 해석학적 렌즈의 역할을 담당하는 서론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시 1-2편이 시편에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들인 토라와 지혜, 왕권 개념(여호와 및 다윗), 종말론, 피난처로서의 여호와, 시온 신학 등을 통괄하는 역할이 있음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가 시편 전체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들이 시 1-2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인 반면에, 시편 전체에서 그런 종말론적 메시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는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각 시편이 원래 독립적으로 쓰여진 것을 인정하더라도 시편 전체가 정경적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하는 하나의 책으로서 편집되어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과 시 1-2편이 시편 전체의 서론이라는 전제 하에 시편의 종말론은 무엇인가를 추구한다. 특히 본 논문은 시1-2편에 나타난 지배적인 두 가지 주제인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이 시편 전체의 종말론적 구도로서 기능함으로써 시편 전체의 메시지와 종말론적 신학을 구성하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그리하여 먼저 시편의 편집에 나타난 종말론적 정향성은 무엇인지(제2장), 시편의 서론인 시 1-2편의 메시지 즉 시편 전체의 종말론적 전개를 위한 기본적 구도는 무엇인지(제3장), 그리고 시편 전체에서 이러한 종말론적 구도가 어떻게 발전되어 나타나는지(제4장)를 살피고, 마지막으로 시편의 종말론에 대해 요약하며 결론을 맺고자 한다(제5장). 본 저자는 특별히 시편의 종말론적 구도를 분석할 때 시편 각 권 별로 주요한 구조적 위치에 있는 시편들과 시 1-2편에 나타난 주제들과 연결되는 시편들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2 시편의 편집에 나타난 종말론적 지향성
시편은 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시 1-41편, 시 42-72편, 시 73-89편, 시 90-106편, 시 107-150편), 이는 모세 율법이 다섯 권의 책으로 주어진 것과 의도적으로 대응시키려고 했던 편집적 의도가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시편의 각 권은 모두 송영으로 끝난다는 점도 의도적인 편집적 작업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레페브르(Michael LeFebvre)는 시편이 편집된 문헌임을 나타내는 증거로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시편의 표제, 5권으로의 구분, 연결부 시편들(seam psalms), 시 1편과 시 150편의 서론과 결론적 기능.
윌슨은 시편의 표제를 연구한 결과 시편은 복잡한 편집적 손길이 있는 모음집임을 발견한다. 첫째, 표제에 나타난 저자의 표시는 시편들의 모음을 위한 중요한 기준을 제공한다. 둘째, 시편의 표제에 나타난 장르(미즈모르, 마스킬 등)에 따른 시편의 모음이 나타난다. 셋째, 표제가 없는 것은 이웃 시편들을 짝으로 묶는 역할을 한다. 또한 윌슨은 제왕시의 위치 및 각 권의 마지막에 나타난 송영 사이에 대응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제1권과 제2권의 역경에서의 구원을 통해 제3권의 시 89편에서의 위기 상황을 거쳐 마지막 부분에 있는 송영과 찬양으로의 내용상의 흐름이 있음을 관찰하였다. 이러한 개념상의 전개는 시편의 편집자의 의도적인 신학적 표현으로 간주된다. 제1권의 시작 부분에 시 2편의 제왕시 및 제2권의 끝부분인 시 72편과 제3권의 마지막인 시 89편에 제왕시가 나타나는 것은 다윗 언약에 대한 선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윗 언약의 실패를 제시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윌슨은 제1-3권이 다윗에 대한 선택과 구원 이후의 다윗 계통의 역사적 실패를 추적하는 반면 제4-5권에서는 이에 대한 응답으로서 우주의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찬송을 받으시고 다스리실 것을 주요 주제로 삼는다고 본다. 그는 나중에 저술한 또 다른 책에서 제1-3권은 단순한 역사적 회고라기 보다는 다윗 왕국의 회복에 대한 기대를 포함하는 종말론적인 시편들이라고 본다. 또한 제4-5권은 지상의 다윗 왕국에 대한 소망으로부터 시각을 전환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주장을 통해 오직 여호와만을 의지하고 신뢰할 것을 격려하기 위해 나중에 첨가된 부분으로 간주한다.
윌슨의 연구는 시편의 편집적 손길을 증명하고 시편 전체의 신학적 통일성을 제안한다. 다만 제3권의 결론부인 시 89편의 긍정적인 종말론적 역할과 제4-5권의 여호와의 왕권이 가지는 종말론적 함의에 대해 충분한 인식을 결여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부분으로 평가된다. 윌슨의 연구에 대하여 미첼(David C. Mitchell)은 시편 연구에 관한 윌슨의 업적을 대부분 인정하면서도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윌슨을 반박한다. 첫째는 시편이 교훈적이거나 지혜문학이라기 보다는 예언적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시편의 기조 의제는 종말론적이고 메시야적”이라고 주장한다.
윌슨은 제1-3권이 “다윗 언약의 실패에 대한 회고”를 다루고 제4-5권이 비메시야적이고 역사적-교훈적이라고 보는 반면에, 미첼은 시편 전체와 특히 제4-5권이 “종말론적-메시야적”이고 미래의 다윗 왕의 오심을 다룬다고 본다. 시 4-5권을 종말론적으로 보는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1) 제왕시들(royal psalms)이 시편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다윗 언약의 실패를 부각한다기보다 다윗의 자손의 옴에 대한 미래적 의미를 지시한다. (2) 다른 많은 시편들(예를 들어, 시 21, 46, 47, 48, 67, 80, 83, 87, 93, 97, 98편 등)이 본질적으로 궁극적인 어조를 띠거나 종말론적이다. (3) 표제에 나타난 이름들(다윗, 아삽, 헤만, 여두둔, 모세 등)은 선지자로 간주되며, 그들의 이름이 포함된 시편들은 미래 예언적으로 간주된다. 또한 (4) 시편이 완성되던 제2성전시대에는 메시야적 기대가 지배적인 시대라는 점과, (5) 19세기 이전까지는 유대교나 기독교 전통에서 시편의 종말론적 해석이 규범적이었다는 점 등이다. 윌슨의 연구에 대한 미첼의 비평은 윌슨의 연구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전체 시편의 종말론적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윌슨의 분석에 대한 미첼의 두 번째 반론은 시편의 제1-3권이 독립된 모음집으로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윌슨은 제4-5권이 제1-3권에 나타난 다윗 집안의 언약적 실패에 반응하여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도움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제4-5권에 나타난 다윗의 모습은 여호와를 신뢰하는 신앙의 모델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4-5권은 기본적으로 지혜 문학이며 비메시야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첼은 제1-3권이 독립된 단위로 존재한 적이 결코 없으며 단일 과정에 의해서 제4-5권과 함께 편집되었다고 본다. 윌슨에게는 11QPsa의 존재가 주후 1세기 후반까지도 시편의 정경 형태가 유동적이었다는 증거임에 반하여, 미첼은 LXX가 이미 주전 2세기에 번역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정경이 확정된 것이며 따라서 11QPsa의 존재가 제4-5권이 나중에 추가되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미첼은 시편(예, 110편)에서 여호와와 다윗의 왕권은 의도적으로 혼돈되어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고 본다. 그는 이러한 융합이 메시야를 인간적이면서도 신적인 속성을 갖는 자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시편 제1-3권은 윌슨과 미첼이 다윗 왕국에 대한 미래적 소망으로 보았던 반면에, 시편 제4-5권에 관해서는 미첼은 윌슨의 견해와는 달리 종말론적으로 이해한다. 시편 제4-5권의 편집적 과정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윌슨의 주장에 대한 미첼의 비평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고 하겠다. 이런 미첼의 관점은 시편 전체가 종말론적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이런 견해는 또 다른 학자에 의해서도 지지된다.
테일러(Glen Taylor)는 시편이 전체로서 “모형론적으로 예언적”(typologically-prophetic)이라고 본다. 그 이유로서는 첫째, 시편들의 중심에 나타나는 다윗 혹은 왕적 인물은 다윗의 아들 및 사무엘하 2:7의 성취로서의 예수님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둘째, LXX에서의 “악장을 위하여”(for the choir director) 시편을 다윗 예언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종말론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함축한다. 셋째, 11QPsa에서 보는 것처럼 쿰란 공동체는 시편을 다윗이 예언의 영에 의해 저작한 예언으로 이해하고 있다(cf. 삼하 23장). 넷째, 시 1-2편이 서론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시 2편이 메시야적으로 이해되어 왔던 것처럼 시 1편도 신명기의 제왕법과의 관련 때문에 메시야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섯째, 비록 윌슨이 제4-5권을 여호와의 왕권에 관해 확인하고 있다고 강조할지라도, 거기에는 다윗적 왕권이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시 110, 132편에서 보듯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편은 전체적으로 종말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편의 구조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관찰과 상기의 여러 논의들을 고려할 때, 시편은 모세오경의 체계를 따라 의도적으로 다섯 권의 책으로 편집된 모음집이며, 전체적으로 종말론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구성된 문헌으로 이해된다. 그렇다고 이런 견해가 각각의 시편 모두가 메시야적인 예언적 장르라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시편은 전체로서 종말론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관점은 시편의 편집적 통일성을 제안한다.
3 시편의 서론(시 1-2편)에 나타난 종말론적 구도
시편 전체의 서론으로 기능하는 시 1-2편에는 시 1-2편이 종말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이는 여러 흔적들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시편 전체를 동일한 시각으로 볼 것을 요청한다. 먼저, 시 1편 전체에 걸쳐 의인과 악인의 대조가 지배적이다. 앤더슨은 1편이 의인의 행복(1-3절)과 악인의 패망(4-6절)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며, 보타(Botha)는 시 1편에서 의인과 악인 사이의 대조를 포함하여 일곱 가지의 대조적 개념을 찾아내었다. 이러한 지혜문학적 특징은 이 시편이 종말론적으로 해석 및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낸다. 이 시편에 나타난 의인과 악인은 두 개의 공동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공동체의 종말론적 분리로 이해된다.
시 1편에는 토라를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의인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으로 제시되고 있는데(2절), 여기서의 토라 역시 종말론적 적용성을 내포할 수 있다. 하우스는 시 1편에 나타난 의인의 생활양식, 토라에 착념함으로 인한 번영, 의인과 악인의 구별 등의 지혜사상은 신명기 27-28장, 여호수아 1:1-9, 열왕기상 2:1-10 등의 본문을 상기시킨다고 본다. 신명기 27-28장은 신명기 언약의 축복과 저주 조항으로서 의인과 악인은 토라(혹은 언약)에의 순종 여부에 의해 갈라짐을 함축한다. 여호수아 1장은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율법을 순종할 것을 당부하며, 열왕기상 2장에서는 다윗이 솔로몬에게 똑 같은 당부를 함으로써 율법 순종의 중대성을 강조한다.
이 본문들과의 연결성을 받아들인다면, 시 1편은 오경의 율법의 핵심인 쉐마를 반영함으로써, 시편과 시가서 전체가 오경의 율법에 근거한 것임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또한 왕정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의 역사(혹은 역사서) 전체의 서론(들)과 연결됨으로써 시편은 토라가 신명기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민족에게 삶의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선지서(역사서 포함)에서 이스라엘 왕들과 백성들의 삶을 평가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과 동일한 역할을 하게 되는 언약적 토라임을 함축한다. 결국 시편은 또 다른 토라로 이해된다. 따라서 시 1편의 토라를 지키는 것은 선지서(역사서)에서처럼 종말론적 기대를 갖는다.
1:5절에서의 심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김정우는 이 심판이 내세에서 이루어지는 최종적인 심판을 의미하기 보다 “시편의 신학 전체를 볼 때 현세 속에 나타나는 심판이 더욱 강조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가 고대 역본들(LXX, Vul, Targums)에서는 그것이 종말론적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켰음을 인정하였듯이, 시 1편의 종말론적 성향을 고려할 때 최종심판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시 1편에서 악인을 비유한 겨(4절)는 구약에서 종종 종말론적 심판의 문맥 속에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화이팅에게는 “멸망”(6절)은 종말론적 심판을 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시 1편은 신명기적 축복과 저주의 관점에서 시 1편을 읽도록 제안한다. 김정우에게는, 여기서 바람은 추수심판으로 제안된다. 이는 신약에서 종말론적 심판을 일컫는 표현으로 사용된다(예, 마13:39-40). 따라서 시 1편은 모세 오경의 토라에 천착하는 것이 현세적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방도임은 물론 종말론적 심판을 통과하며 종말론적 공동체에서의 구원과 축복을 누리는 근거가 됨을 말할 수 있다.
시 2편은 제왕시로서 시편 전체에 나타나는 제왕시들의 서론 역할을 한다. 제1장(1-3절)에서는 이방 나라들과 민족들이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을 대적하여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분노하고 소동한다. 젱어에 따르면, 시 2:2의 메시야 왕을 향한 열방들의 분노와 소동은 고대 이집트의 천지창조 개념에 나타나는 혼돈의 물의 이미지(시 46, 48, 83; 사 17:12-14)를 반영한다. 이것은 시 2편의 신화적(즉, 천상적) 종말론적 차원을 드러낼 수 있다. 이 견해는 제2장(4-6절)에 의하여 강화될 수 있는데, 거기에서는 천상적 시각이 나타나며, 이는 종말론적 성취에 관한 전망을 요구한다. 민족들의 소동에 대하여 하늘에 계신 여호와는 그들을 비웃으시며(4절), 여호와의 거룩한 산 시온에 그의 왕을 세우신다(6절). 여기서 시온의 선택과 다윗의 선택이 연결되며 동시에 이루어짐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다윗의 보좌는 이 세상에서의 주님의 통치를 대표해준다.”
시 2:6에 나타난 시온은 시 1편의 토라가 나타나는 시온과 연결된다. 시온에 대한 관심은 시편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며, 종말론적 환상을 제공한다. 시 1:3의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이미지는 이사야 58장에 나타난 물댄 동산으로서의 종말론적 전망과 공명한다. 이 시온은 종말론적 기대와 전망을 갖는다. 이것이 이사야서의 종말론적 개념과 공명하는 것은, 이사야서의 종말론 안에서 시온과 토라가 연결되기 때문이다(사2:2-5; 사 56:1-8; cf. 사60:1-3).
시 2편의 “다윗의 후손”은 후대 종말론적인 메시야 사상의 모체가 된다. 그러나 크라우스에게는, 시 2:7에서 하나님께서 왕을 ‘아들’ 이라고 부르는 것은 입양 관계가 성립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입양관계가 선지자의 선포하는 법적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본다. 김정우 또한 왕이 “입양”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이 이집트에서는 신화적으로 이해되어 바로가 신의 현현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나, 이스라엘에서는 다윗계 왕이 언약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이것이 틀림이 없으나, 시 1편이 신화적 개념과 천상적 시각을 반영하는 시임을 고려한다면, 여기서의 아들도 신화적(즉, 천상적) 개념으로, 따라서 실체적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는 또한 이 시편이 종말론적임을 의미한다.
제3장(7-9절)에서 메시야 왕에게 약속이 주어진다. 시 2:7의 “영”은 다윗 언약의 체결과 관련된 것으로서 “왕의 입양”(시 2:7), “하나님의 약속”(시 2:8-9)과 “하나님의 심판”(시 2:10-12) 및 왕이 지켜야 할 의무 등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즉 영은 다윗 언약의 실체적 내용이다. 왕이 이방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그의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겠다고 약속하는 시 2:8에 관하여 김정우는 이렇게 논평한다. “주님은 창조주며, 온 세상의 통치자이시므로(시 24:1-2, 89:11; 사6:3), 그의 아들인 이스라엘의 왕은 그의 상속자요, 세계적인 통치권을 부여 받는다…. 다윗 왕은 온 세상을 다스릴 권세를 부여 받는다(시 72:8 이하; 89:26-28).” 그렇다면 8절은 다윗계 왕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에게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문자적인 표현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본 저자는 이 표현이 문자적인 표현이며, 시 2편은 신화적인(즉, 천상적인) 언어로 표현된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론적 개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제4장(10-12절)에서 왕들과 세상의 통치자들은 메시야 왕을 섬기도록 개종이 필요함이 언급된다. 그들이 여호와께 피함은 종말론적 전망을 가질 수 있다. “이 시편[시 2편] 속에 담긴 메시아 왕의 우주적 통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다.” 시 2편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다만 궁극적인 통치자인 여호와와의 관계를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주권자이다(6절, 9절, 11절). 결론적으로 시 2편은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메시야 왕을 지시하면서도 역사적인 다윗의 후손에게 은유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시 1-2편은 통일성을 이루고 있음이 관찰되어 왔다. B. W. 앤더슨(B. W. Anderson)은 시 1편은 “하나님의 토라 혹은 ‘교훈’ 을 찬양하는 시”이고, 시 2편은 “시온의 거룩한 언덕에 야훼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의 취임을 다룬 시”인데, 이 두 편이 함께 시편전체의 서론을 구성한다고 본다. 김정우는 시 2편이 다윗 언약(삼하7장)의 핵심을 담고 있으며, 따라서 시 1-2편은 시내산 언약(시 1편)과 다윗 언약(시 2편)을 시편(the Psalter)이 그 신학적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본다. 결국 시 1편과 2편은 시편 전체의 핵심 주제에서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을 통합적으로 제시하며 전체 시편의 종말론적 전망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는 의인과 악인, 토라, (종말론적) 심판, 메시야 왕과 그의 통치, 열방 및 시온의 주제가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전체 시편이 과연 그 종말론적 신학으로서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의 (종말론적) 성취를 말하고 있는가? 이것은 다음 장에서 다루게 되는 우리의 관심이다.
4 시편에 나타난 종말론적 발전
우리는 이 장에서 서론(시 1-2편)에 나타난 주제들이 시편 전체에서 어떻게 발전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시 1-2편에서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이 종말론적 기저로 작용하고 있음을 살펴 보았으므로, 이 장에서는 그 두 언약의 주제들이 시편의 전체에서 어떻게 발전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제 우리는 각 권의 처음과 끝 등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편들과 시 1-2편의 주요 주제들이 나타난 시편들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에는 토라 시편(1, 19, 119)과 제왕시편 및 여호와 통치시(93, 95-100) 등이 포함될 것이다. 우리는 분석을 위해 전체 시편을 세 단락으로 나눈다(1-2권, 3권, 4-5권). 왜냐하면, 다윗의 생애를 주로 다루는 제1-2권이 시 72:20에 의하면 다윗의 기도로서 원래적인 한 묶음으로 모아지고 포로전기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며, 제3권은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을, 또한 4-5권은 포로후기의 상황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또한 토라에 관한 내용이 제2권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도 1-2권을 함께 묶어서 분석할 좋은 이유가 된다.
4.1 제1권 및 제2권(시 3-41편; 시 42-72편)
제1권(시 3-41편) 및 제2권(시 42-72편) 전체가 다윗의 시로 여겨진 듯하다. 제1권의 시들은 대개 다윗의 생애와 관련되거나 다윗의 생애의 사건을 다루는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다윗을 부르시고 왕으로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 속에서 고난으로부터 그를 구원하신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제2권 역시 다윗의 생애를 다루고 있으나, 제2권에서는 다윗이 왕이 된 후에 그의 통치 기간을 통하여 그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며 후계자인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다.
토라 시편인 시 19편은 토라가 기록되지 않은 토라(1-6절)와 기록된 토라(7-14절)로 나눌 수 있음을 말한다. 이 시편에서 창조 질서는 말씀과 지식으로 표현되므로 기록되지 않은 토라로서(2절)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세상 끝까지 전한다(1-4절). 창조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의 계명을 아는 것과 연관되며(호6:6), “자연에 대한 지식이 율법에 대한 지식과 맞물려 있다.” 11절에서 토라와 해가 연결이 되는 것은 토라의 범위가 기록된 말씀을 넘어서 기록되지 않은 창조에 나타난 지혜에로 확장됨을 함축하고 있다. 토라는 의인의 삶의 지침이며 토라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께 대한 호소의 근거가 된다(시 18:4-6, 21-22). 대개 토라의 주제는 의인과 악인의 주제와 관련되며, 이는 종말론적 전망을 기대한다.
일반적으로 제왕시로 알려진 시 18편에서 다윗 언약(50절)과 토라(21-22, 30절)가 결합된다. 전쟁의 위험에 처한 왕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으로 전쟁에 승리한 왕은 인자를 베푸신 여호와께 감사드린다(50절). 기도에 대한 응답과 승리의 구원은 다윗 언약에 근거한 것일 뿐만 아니라(50절), 토라를 지켜왔던 왕의 삶에 대한 응답이다(21-22절). 시45편은 왕의 결혼식을 위해 지은 시일 수 있다. 6절에서 시인은 왕을 향하여 하나님이라는 칭호로 부른다. 루카스(E. Lucas)는 6절이 다윗 언약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절은 시 2:7과 연결된다.
신뢰시라고 종종 불리는 시 46편에는 시온의 주제가 두드러진다. 신화적인 용어로 표현되어 있는 권능을 가진 창조주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시온은 안전하며(1-3절), 이 시온에는 에덴동산의 이미지가 종말론화되어 나타난다(4절). 제2권의 마지막 시편인 시 72편에서는 시 2편에서 왕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재확인된다. 하나님은 다윗의 아들을 왕위에 즉위시킴으로써 다윗 언약을 지키신다(1-2절; cf. 삼하7:12). 영원한 다스림(5절) 및 온 세상의 통치(8-11절)를 위한 간청은 사무엘하 7:16과 시 2:1-11에 나타난 다윗과 맺은 약속의 성취를 기대한다. 왕의 공의로운 판단 기준들(1-4절)은 신명기 17:14-20에 나타난 모세의 열왕 규례들과 일치한다.
17절에서 열왕이 이 왕을 통해서 복을 받으므로 아브라함 언약이 성취된다. 따라서, 시 72편은 아브라함 언약, 시내산 언약 그리고 다윗 언약을 서로 통합시킬 뿐만 아니라 그 약속들의 미래적인 완전한 성취를 기대하게 한다.
요약하면, 제1-2권에서 토라는 언약의 토라로서 개인 경건의 수단이며, 심지어 왕에게도 여호와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여기서 왕은 거의 분명히 다윗 왕을 지시하나 간혹 왕권은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며 (18:43-45; 72:8-11), 왕의 승리는 여호와의 그것과 동일시되기도 한다(21:13). 시온에 세워진 왕은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며, 심지어 하나님으로 부르기도 한다. 하나님의 임재로 시온은 열방의 도전에도 안전하다. 하나님의 언약은 미래적 성취를 기대한다.
4.2 제3권(시 73-89편)
제3권(시 73-89편)은 다윗의 시(시 86편)를 중심으로 교차대조적인 구조를 보이고 있다. 제3권은 다윗 왕 계보와 이스라엘의 언약적 실패를 인하여 나라가 멸망에 이르는 비극적인 역사를 기술한다. 시 78편은 이스라엘에 대한 선택과 국가의 설립 이후에 이스라엘의 언약적 실패를 그리고 있다. 또한 제3권의 마지막 시편인 시 89편은 다윗 언약의 실패를 다루고 있으며, 바벨론 포로를 내다보고 있다.
시 78편에서 토라(내 율법, 1절)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의 율법을 가리킨다(5절). 시 78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않고 그의 율법을 준행하지 않았음을 탄식한다(10절). 제3권에서 유일한 다윗의 시(기도)인 시 86편에서는 토라를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과 동일시되며,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 위하여 주의 도를 가르치시고 주의 진리를 행할 필요가 있음을 드러낸다.
궁켈이 제왕시로 분류한, 제3권의 마지막 시편인 시 89편의 첫 부분에서는 시 2편에서 왕에게 주어진 약속들이 반복된다(1-37절). 이 시편은 “이전”(19-37절)과 “이제”(38-51절)를 통해 여호와께서 전에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으나 이제는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 다윗을 버리셨다는 것이 반복적으로 강하게 대조된다. 윌슨에 따르면, 서론부에 나타난 다윗 언약(시 2편)이 제1-3권의 결론부에서 무위로 돌아가며 다윗 자손들의 고뇌에 찬 절규로 귀결된다(시 89:46). 그러나 맥칸(J. C. McCann)은 특히 시 2, 72, 89편의 위치는 시편 제1, 2, 3권의 몸통에 다윗 언약의 실패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지만, 시편집 안에서 제왕시의 위치는 전체 시편에 미래적 정향성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시 89편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다윗언약을 버리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은 땅과 왕조가 사라짐으로써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 언약이 위태롭게 된 것처럼 보이는 가운데서도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지 않다(46, 49절). 하우스에 따르면, 시인은 이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 여호와의 성품에 달려있다고 이해한다(89:1-4, 5-18). 하나님은 변개치 않으시는 분이시므로(출 3:14, 신33:27), “여호와의 약속은 그의 성품에 근거하여 장차 성취될 것임에 틀림없다.” 시 89:50-51은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며 다윗의 고난에 대한 묘사가 미래적인 다윗 후손에게로 변형된 것이다. 따라서 89:52절의 송영은 현재 다윗 언약이 위기에 처했으나, 하나님의 확실한 성품과 다윗의 고난 및 승리의 패턴에 대한 믿음 때문에, 궁극적으로 회복될 종말론적 전망을 함축한다.
시 89편에서는 언약은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의 통합적 개념임을 함축한다. 여호와는 그의 다윗 종에게 언약을 맺으며(3절), 나의 인자함을 영원히 지키고 다윗과 맺은 나의 언약을 굳게 세우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다윗의 자손은 여호와의 토라(즉, “내 법”, “내 규례”, “내 율례”, “내 계명”)를 지켜야 할 것을 요구 받는다(30-31절).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깨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셨으나(34절),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노하사 물리치시고 그를 버리셨으며, 주의 종의 언약을 미워하시고 그 종의 관을 땅에 던져 욕되게 하신다(38-39절). 그들이 토라와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시 78편). 결국, 제3권에서 토라를 통해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이 통합되며,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므로 언약의 실패가 나타난다.
요약하면, 제3권에서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이 토라를 불순종하고 언약을 깨뜨림으로써 하나님께서 다윗을 미워하시고 언약이 위기에 처했으나, 다윗 언약의 약속은 여전히 미래적 기대를 여운으로 남긴다.
4.3 제4권 및 제5권(시 90-106편; 시 107-150편)
제4권(시 90-106편)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도 하나님은 어떻게 신실한 자들을 기억하시고 돌보시며 채워주시는지를 보여준다. 제4권을 마감하는 역사적인 개요인 시 105-106편은 바벨론 포로에서부터의 귀환을 비는 기도로 마무리된다(106:44-46). 또한 제5권(시 107-150편)은 포로귀환 이후의 삶을 다루며(예,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인 시 120-134편), 온 세상의 창조자로서 세상을 다스리시며 이스라엘을 돌보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예, 할렐루야 시편인 시 146-150편).
제4권의 첫 시편으로 모세의 시편(시 90편)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나라의 멸망 이후에 새로운 언약적 통치의 회복의 토대를 놓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시 90편이 89편과 신학적 조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 89편은 다윗 언약의 실패를 애통하였으나(1-2, 28, 49절), 90편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심판 후에 인자를 새롭게 베푸심으로 돌아오셔서 주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우리를 견고하게 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주의 진노가 시 90편에서 새로운 요소로 나타나지만(7-12절), 시 89편의 맥락에서 이해할 때 그것은 언약의 실패로 인해 다윗에게 임한 것이다. 그렇다면 90편의 인간의 유한성 및 죄성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나타난 언약적 실패를 함축하며, 결국 90편은 이사야 40장이 멸망 이후의 회복을 기대하는 것처럼 89편에 나타난 멸망 이후의 회복에 대한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 모세를 통해서 언약적 통치가 개시되었던 것이 또 다시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고로 제3권에서 토라와 언약의 실패가 나타났지만 제4권에서 토라가 회복되며 제1-3권에서의 개념을 유지한다.
시 105편에서는 여호와께서 족장들에게 하신 약속이 여호와의 언약으로 언급된다(8-9절). 이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다. 또한 이것은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로서 이스라엘과 맺은 시내산 언약과 동일시된다(10절). 노아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이 영원한 것처럼, 시내산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 출애굽과 광야에서의 여호와의 구원은 거룩한 말씀이라고 일컫는 아브라함 언약을 기억하심으로 인하여 베푸시는 은혜이다(26-42절).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토라 즉 여호와의 율례와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다(45절).
제5권에서 이스라엘이 멸망 당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이다(107:11).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기억하신다(시 111:5). 이는 언약(즉, 토라)에 약속한 축복들을 베푸심을 의미한다. 토라 찬가로 불리는 시 119편은 공동체적 그리고 개인적 행동의 기초로서의 율법을 재확증해 준다.
시 119편은 시편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특히 이 시편은 제왕시와 토라시를 통합하므로 시편의 서론(1-2편)은 물론 또 다른 토라 시편인 시 19편 및 제왕시편인 시 18, 72, 89편과 제4권의 역사적 개관에 대한 송영을 나타내는 시 105-106편(105:45, 106:19-20) 및 대할렐루야 시편의 토라 찬가인 시 147편(19-20절)과도 핵심 주제에 있어서 연결되고 있다. 김정우에 따르면, 시 119편은 제5권의 첫 시편인 시 107편의 최종적 질문 “지혜자는 누구인가”(43절)에 대한 대답으로 볼 수 있다(98절). 또한 이 시편은 순례의 주제에 있어서도 107편(2-3절)과 118편(26절) 및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인 120-134편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역할을 한다. 시 119편에서 토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져서 영원하며(160), 완전하며(96), 정직하며(137), 진실하며(142), 무한하다(96). 맥칸은 토라가 율법주의나 사변주의적 개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시 119편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교훈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레벤슨(Jon D. Levenson)을 따라, 그는 시 119편의 토라가 (1) 구약에 포함된 성문서를 포함해서 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전통 (vv. 99-100), (2) 우주적 혹은 자연적 법칙(vv. 89-91), (3) 중개되지 않은 신적 가르침(vv. 26-29) 등을 가리킨다고 본다.
또한 시 130편에서 시인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주의 말씀을 바란다(5절). 여기서 여호와의 말씀은 여호와와 동일시된다. 시 132편에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상기시키며 다윗의 자손들이 지켜야 하는 여호와의 언약과 증거를 언급한다(12절). 시 136편은 여호와의 인자가 영원함을 반복적으로 찬양하는 언약 찬송이다. 시 147편에서는 자연의 질서를 그의 명령, 그의 말씀이라고 칭하며(15-18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토라 즉 율례와 규례도 그의 말씀이라고 칭한다(19절). 시 148편에서도 자연 질서를 명령과 여호와의 말씀으로 칭한다(6, 8절). 이는 시 19편의 주제의 명료화이다(위를 보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법도 즉 토라를 지키지 못하였다(20절).
제4권과 제5권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왕국에 대한 언급은, 만일 지상의 신적 왕이 하나님의 계획들을 지키기만 한다면, 지상 왕의 효과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시 89편에서의 왕에 대한 거절이 시 2편 및 다른 제왕시들에 나타난 왕권 이데올로기의 폐기를 반드시 의미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여호와의 왕국이 강해질수록, 다윗의 왕국을 설립하고 재설립하는 기회는 더 좋아진다.”
맥칸은 윌슨의 분석을 따라 제4-5권이 제1-3권에서 제기된 문제 즉 특히 시 89편에 나타난 다윗 언약의 실패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제4권은 전체 시편집의 최종형태의 편집적 중심이며, 이는 제4권의 중심부에 전략적으로 위치한 즉위시편들(93, 95-99)에 나타난 것처럼 여호와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고로 그에게 즉위시편들은 시편집의 최종형태에 있어서 신학적 중심으로 기능한다. 이것은 그에게 시편집의 서론부에 있는 시 2편의 주제가 단지 다윗 왕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론하게 한다. 그러나 맥칸의 분석은 종말론적 전망을 결여하고 있다.
시 4-5권의 여호와의 통치와 그에 대한 찬양은 종말론적 성격을 가지며, 여호와의 종말론적 통치는 메시야 왕의 통치를 내포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테일러는 시 4-5편에서의 여호와의 통치를 부정하지 않지만, 시 110, 132편에서 나타난 것처럼 메시야적 다윗적 왕권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빈센트는 제5권 시편의 저자의 관점에서 다윗이 매우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관찰한다.
시 93편은 여호와 통치시 혹은 야훼 왕권 찬양시로서 시 95-100편에서 뒤따라 이어지는 여호와 통치시편들의 서주곡이다. 이 시편은 창조의 모티프 즉, 천지 창조에 나타난 여호와의 주권(1-2절)이 출애굽을 포함하는 혼돈 정복의 모티프 즉, 혼돈의 세력을 정복하시는 하나님의 주권(3-4절)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한 성전에서 이러한 주님의 주권이 칭송된다(5절). 이런 혼돈 정복의 모티프 및 시온 주제는 시 2:1-6의 성취일 수 있다. 서론에서처럼 이런 주제들은 토라 주제와 연결된다.
시 93:5의 주의 증거(edut)들은 “주님의 통치의 핵심”으로서 “홍수를 정복하는 능력의 말씀”이 되며, “주의 집에서 선포되는 법도”가 된다. 여호와의 인자는 그의 언약과 토라를 지키는 자에게 베풀어지므로, 그의 말씀과 토라를 행하는 자들은 언약을 회복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시 103:17-21). 시 94편은 여호와의 왕권 찬양시편들 가운데서 일견 부자연스러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듯이 보이나, 여호와의 통치가 이루어져야 하는 영역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시 94편은 정의를 왜곡하는 악한 인간 재판장들과 참 재판장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대조를 그 특징으로 하며, 공동체 안에서의 미쉬파트의 상실이 시인의 고통의 원인이며 그곳에서 여호와의 통치가 일어나야 할 것을 말해준다.
하우스에 따르면, 여호와의 왕권 찬양시편들(93, 95-100)은 시 89편에 나타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옛 진리들을 선포한다. 이 시편들에 나타난 중요한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여호와의 통치(93:1, 96:10, 97:1, 99:1), (2) 온 땅의 심판자이신 여호와(96:11-13, 98:8-9), (3) 통치와 심판을 가져오는 창조주로서의 주권(93:1-15, 95:1-7, 100:3), (4) 여호와의 유일무이성과 비교불가능성(96:4-5, 97:6-7, 97:9). 이러한 여호와의 통치는 제3권에서의 언약적 실패로 인해 전에 가졌던 다윗적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회복될 것임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왕권은 종말론적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제5권은 메시야적 기대를 여전히 새롭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센트는 여호와의 왕권 찬양시에 나타나는 야훼 말락이 종말론적인 소망을 확증하는 것으로 본다. “하나님이 왕이시기 때문에 그의 약속들이 성취될 것이다 혹은 그 자신이든 그의 대리로서 미래의 메시야적 왕이든 올 것이다.” 알렌(Leslie C. Allen)은 여호와의 왕권 찬양시가 제4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적 측면뿐만 아니라 미래적 측면을 포함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고 본다. 왕권 찬양시를 마무리하는 시 100편에서는 미래의 구원이 종말론적 공동체로 완성될 것을 함축한다(100:3).
시 110편에서는 왕의 신적 출생에 관한 진술이 반복되고 원수가 그의 발 아래 있게 될 것이 약속된다. 이 시편은 과거에 대한 반복적 진술이라기보다는 미래적 약속의 성격을 갖는다. 크라우스는 시 110편을 “예루살렘에 행해진 왕의 즉위 축제 때 있었던 상황 묘사나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전통적으로는 메시야 예언시로 보며(어거스틴, 헹스텐버거, 박윤선) 종말론적 성취를 기대한다. 하우스는 제4권에서 다윗 언약이 거의 언급되지 않으나 시 110편이 여호와께서 다윗 언약을 버리셨을 것이라는 근심에 대해 응답하면서, 다윗 자손을 향한 하나님의 선택을 재확증하고 있다고 본다.
하우스는 시 110편이 다윗 언약의 중요성과 영속성을 재확증할 뿐만 아니라 그것의 한시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다윗 언약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성취를 위한 배경을 가져오므로, 왕이자 제사장인 메시야적 왕이 출현하여 영원히 존재할 것을 이 시편은 말하고 있다. 미첼은 시 110편에서 여호와의 왕권과 다윗의 왕권이 의도적으로 혼돈되어 위격적 연합(hypostatic union)을 이룬다고 본다. 왕을 말하는 1절에서의 주는 여호와를 말하는 5절에서의 주와 의도적으로 혼합된다.
이러한 융합은 메시야를 인간적이면서도 신적인 속성을 갖는 자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서 두 왕권이 “상호 배타적이 아니다.” 시 132편에서는 여호와와 그의 왕 사이의 언약에 관련된 약속들이 순종의 언어들과 함께 다시 취해진다. 시 144편도 주의 종 다윗을 언급함으로써 제왕시의 주제를 이어간다(10절).
대할렐루야 송영(시 146-150편)은 여호와의 통치가 완성을 이룸을 확신하므로 종말론적 기능을 갖는다. 고로 각 권 말미에 나타나는 송영과 시편 말미의 대할렐루야 찬양은 시편 전체에 종말론적 정향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요약하면, 제4권은 과거의 모세의 시대와 같이 새로운 언약 통치의 초석이 놓여질 시대를 기대한다.
제5권은 여호와의 왕권과 연합한 메시아 왕의 종말론적 통치를 기대한다.
토라가 새롭게 회복되며 여호와의 완전하고 영원한 통치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다윗왕적인 메시야의 통치가 새롭게 나타남으로 여호와의 구원의 성취되고 시온의 통치가 회복될 것이다.
5 시편과 종말론: 요약 및 결론
시편은 전통적으로 종말론적이며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시편의 종말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시편은 전체로서의 하나의 통일된 신학과 메시지를 포함하는 책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정경적 접근은 그런 가정을 검증하며 그런 토대 위에서 시편을 연구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정경적 방법을 통해서 시편이 통일성 있는 작품이라는 가정하에 시편이 과연 종말론적인지 만일 그렇다면 그 종말론의 내용은 무엇인지 연구한다.
먼저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시 1-2편이 시편 전체의 서론으로서 시편 전체의 메시지와 신학을 담고 있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본 연구는 시편의 서론인 시 1-2편이 과연 종말론적인 전망들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밝힌다. 또한 본 연구는 시편의 편집자들이 전체적인 편집 구조에 종말론적인 기대를 포함하고 있음을 밝힌다. 더 나아가 본 연구는 시 1-2편에 나타난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이 시편 전체의 종말론적 기대를 구성하는 기본 구도라는 가정 하에, 시편의 전체에 나타난 종말론의 내용은 무엇인지 각 권 별로 연구한다.
시편은 편집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진 책으로 간주된다(제2장). 시편이 5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새로운 토라로서 모세의 율법이 5개의 책으로 이루어진 것과 의도적으로 대응시키려 했던 편집적 의도의 반영이라고 간주된다. 시편의 각 권이 송영으로 마치고 있는 것도 의도적인 편집적 작업의 결과라고 보여진다. 또한 시편의 표제와 시 1-2편 및 시 146-150편의 서론 및 결론으로서의 기능, 그리고 시편의 구성에 있어서 각 권의 시작과 끝 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시편들의 역할 등은 편집적 작업의 흔적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편집적 과정 속에서 시편 전체가 종말론적 방향성을 가지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다윗의 생애 및 예루살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제1-3권이 단지 다윗에 대한 선택과 구원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적 실패만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론 및 각 권의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제왕시들(시 2, 72, 89편 등)을 통해 다윗 언약의 완성을 향한 종말론적 기대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제4-5권은 다윗 언약의 실패에 따른 단순한 여호와의 왕권과 통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부(1-3권)에서 나타난 다윗적 기대가 후반부(4-5권)에서 여호와의 왕권 확립에 대한 기대 속에 포함되어 함께 나타나 있음으로 인해 시편 전체가 종말론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시편의 서론에서는 시내산 언약(1편)과 다윗 언약(2편)을 시편 전체의 신학적 핵심으로 가지며 몇 가지 종말론적 기대들을 제시한다(제3장). 먼저 의인과 악인의 지혜문학적 대조와 분리는 두 개의 공동체의 종말론적 분리를 전망하며, 시 1편의 핵심 주제인 토라는 오경 및 선지서(역사서)와의 관련성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삶과 경건의 기초가 되는 언약적 토라(율법)로 이해되며, 고로 시편 안에서 역사서에서와 같이 언약에 실패하는 다윗과 이스라엘을 심판하기도 하며 의로운 남은 자들에게 구원의 소망이 되기도 한다. 시 1편에서의 악인에 대한 심판은, “바람에 나는 겨”라는 표현이 성경의 다른 곳에서 종말론적 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종종 나타나는 것처럼, 종말론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제왕시인 시 2편에서의 이방 나라들과 민족들의 도모와 소동은 신화적 즉 천상적 이미지를 나타내므로 종말론적이라 볼 수 있으며, 이는 또한 천상적 시각을 통해서 하늘에 계신 여호와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선지서에서 시온이 종말론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과도 같이, 하늘의 하나님께서 시온에 왕을 세우시는 것도 시편 안에서도 종말론적인 전망을 가진다. 시 2편이 신화적(천상적)이고 종말론적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아들”도 신화적 개념(즉, 천상적 언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 2편에서의 이방 나라에 대한 통치권과 온 세상에 대한 기업 역시 그리스도에게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따라서 시편의 서론은 종말론적 전망을 담고 있으며, 이는 시편 전체를 종말론적으로 보게 한다.
서론이 종말론적 전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시편 전체가 종말론적 기대를 담고 있다(제4장). 제1권은 대개 다윗의 생애와 관련되거나 다윗의 생애의 사건을 다루는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시고 왕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의 생애 속에서 고난 가운데 그를 구원하신다. 제2권 역시 다윗의 생애를 다루고 있으나 특히 다윗이 왕이 된 이후의 통치 기간을 통해 다윗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시며, 최종적으로 그의 아들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신다. 제1권에서 의인의 삶의 지침인 토라는 기록된 토라(19:7-14)와 기록되지 않은 토라(19:1-6)로 나눌 수 있으며, 토라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도움과 호소의 근거가 된다. 시 18편에서 토라와 왕의 주제가 연합되며 토라를 준수한 왕은 하나님께 구원 받는다. 제1-2권에서 왕은 대개 다윗 왕을 가리키나 종종 세계적 규모의 왕적통치에 대한 전망이 나타난다. (이 또한 종말론적 경향성의 한 표현이다.) 시온에 세워진 왕은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며 심지어 하나님으로 불리기도 하며 하나님의 언약은 미래적 성취를 기대한다.
제3권은 다윗과 이스라엘의 언약적 실패(시 78편)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다윗을 미워하시므로 나라가 멸망에 이르는 비극적인 역사를 기록한다(시 89편). 여기서 언약은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의 통합적 개념으로 나타나며(시 89편), 다윗 후손은 다윗 언약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토라를 지킬 것을 요구받는다(89:30-31). 그러나 율법을 순종하지 못하므로 결국 언약의 실패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 89편은 다윗 약속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함축하는 시인의 호소를 기록하며 또 마지막 송영은 궁극적인 다윗 언약의 회복을 전망한다.
제4권은 바벨론 포로 가운데서의 귀환에 대한 소망을 포함하며(고로 이는 종말론적임)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신실한 자들을 기억하시고 돌보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5권은 포로 귀환 이후의 삶을 다루고 있으며 온 세상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포함한다.
제4권이 모세의 시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과거에 언약적 통치의 기초가 놓여진 것과 같이 (미래에) 새로운 언약적 통치의 구조가 이루어질 것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고로 제4-5권에서 토라의 내용은 전과 동일하게 나타나며 이는 새로운 시대에 토라가 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토라는 여호와의 말씀 및 여호와 자신과도 동일시된다.
토라를 지키는 자는 참된 지혜자이며(107:43) 의인이다(119:110; cf. 1:1). 제4-5권에서 여호와의 왕권 찬양시들은 여호와의 궁극적 통치를 의미하는 종말론적 성격을 가지며, 여호와의 종말론적 통치는 제3권에서의 다윗 왕가의 언약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윗적 통치를 새롭게 기대한다. 왕권 찬양시들은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대한다. 이런 종말론적 공동체는 메시야 왕의 통치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시 110, 132편 등에서 메시야적 왕권에 대한 기대가 여전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 110편에서는 여호와와 메시야적 왕권이 의도적으로 혼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편 각 권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송영뿐만 아니라 시편 전체의 마지막 대 송영(146-150편)은 여호와의 통치가 완성을 이룰 것을 확신하는 종말론적 기대를 표현한다. 이런 종말론적 완성의 때에는 여호와께서 왕으로서 통치하실 뿐만 아니라 메시야적 왕께서 이방나라들과 민족들을 다 부수고 오직 의인들의 공동체를 통치하실 것이다. 메시야적 왕과 의인들에 의해서 토라가 새롭게 회복될 것이다.
시편은 전체로서 종말론적이다. 시편의 서론(시 1-2편)의 지배적인 주제인 시내산 언약과 다윗 언약이 전체 시편의 종말론적 신학의 핵심적 구도로서 작용하며, 시편의 종말론은 그 두 언약의 회복과 성취에 대한 기대로 나타난다. 시편은 나라의 멸망이 시내산 언약의 율법에 대한 배반으로 인해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복과 포로 귀환에 대한 소망이 나타난다. 그 이후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우주적 통치는 메시야 왕의 통치를 위한 종말론적 환상으로 작용한다. 시편의 종말론적 기대는 의인과 악인의 구별과 종말론적 심판, 토라의 회복, 메시야 왕의 통치, 열방과 시온의 회복 등의 주제를 포함한다. 그 가운데 여호와의 왕권과 결합되어 있는 메시야적 왕의 통치의 회복이 시편의 종말론의 핵심적 소망이다. 이 점에서 시편의 종말론은 선지서의 종말론과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오성호 박사(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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