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학!! 구약개론!!

[스크랩] 구약성서신학과 다윗의계약

하나님아들 2013. 7. 30. 23:06


구약성서신학과 다윗의계약



I. 서 론

A.문제제기 및 목적

구약 성서신학은 이스라엘이 구체적인 역사적 시간을 통해 체험하고 야웨에 관해 고백한 증언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대상을 다룸에 있어 많은 성서학자들은 다양한 시대와 계층안에서 제시되어 온 이스라엘의 증언들이 주요한 몇 개의 기본 주제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음에 착안하여 이를 연구 발전 시켜 왔다. 그 성격상 다양한 전체 구약의 내용을 하나의 중심 주제로써 집약할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방법론적 시도는 구약성서의 메세지를 이해 하는데 있어 중요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근래에 들어와 구약신학의 거장 아이히로트(W.Eichrodt)는 특히 그의 저서 '구약 성서 신학'에서 계약을 신학적인 의미로 해석해서 구약 전체의 중심 주제로 봄으로써 현대 구약신학의 방법론에 있어 하나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는 계약 개념을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함으로써 구약성서에 나타난 신학적 계약의 형태를 분석하거나 유형을 구별하여 취급하지 않았는데 바로 여기에 그의 약점이 있다 하겠다. 즉 그는 구약 전체의 자료들을 전부 시내산 계약에 종속 시킴으로써 아브라함, 모세, 다윗 계약의 역사적 관련성과 이념적인 차이를 등한시 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미 19세기 말 크레츠쉬마르(R. Kraetzschmar)가 구약성서에는 아브라함과 다윗 계약과 같은 편무 형태의 계약과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맺어진 쌍무 형태의 계약 등 두가지 유형의 계약이 있음을 연구 발표한 바 있었으나 반세기 동안 별로 큰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 이후 1947년 로스트(L. Rost)는 'Sinaibund und Davidsbund'에서 이 두가지 계약 사상을 구분하고 그들의 기원과 전승을 고찰 하였는데 이 논문은 구약에 있어서 계약 신학의 유형을 구별하고 연구하는 계기를 새롭게 마련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구약성서신학의 핵심적 주제로서 등장하는 계약 가운데 다윗 계약으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이 다윗계약을 통하여 약속과 성취를 도식을 그려볼 수 있겠다. 이 도식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선물의 지울 수 없는 유효성을 보장하는 것으로써 이스라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미 옛날에 야웨께서 말씀으로 약속함을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약속의 성취는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하신 야웨의 신실하심을 선포하는 것이며 또한 역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이다.
메시야 사상에 관한 문제에서 구약성서에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많이 있다는 주장은 모빙켈(S. Mowinlcel), 예니(E. Jenni), 침멀리(W. Zimmerli), 링그렌(H. Ringgren)과 같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반면에 신약성서에서 주장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 메시야 예언의 성취라는 문제에 대하여 베커(J. Becker)는 구약 성서의 문서 및 역사적 비평의 결과로서 구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이 아니라고 말하며 동시에 신약성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야의 고백은 어디까지나 신약 성서의 눈을 가지고 구약성서를 보는 기독교인의 고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는 메시야 예언이 많이 있다면서 야곱의 임종축복(창49:8-12), 발람의 예언(민24:1-19)중에서 "야곱에게서 한 별"을, 이사야11장, 스가랴6:9-11; 9:9-11, 시편2; 110편, 과 역대상17장을 메시야 예언으로 보기로 하는데 여기에 이견이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구약성서의 다윗계약에 메시야 사상과 예언이 있다는 이론을 지지하며 메시야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 작업으로서 다윗계약에 대한 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 메시야 사상과의 관계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B.연구 방법과 범위

본 논문에서는 다윗계약의 텍스트 중 사무엘하7:1-17을 주제 본문으로 선택하였다. 물론 본문의 나단 신탁에는 구약에서 계약이란 뜻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라는 말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있어서 계약을 나타내는 용어의 다양성을 전제로 할 때 본문에는 의 동의어인 헤세드(hesed:v.15)라는 용어가 본문의 내용이 계약적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hesed가 계약과 연결되어 쓰이는 것은 느헤미아1:5 그리고 시편 89편을 볼 수 있다.
또한 본문이 계약적임을 뒷받침하는 다른 근거로서는 사무엘하23:5과 시편89:3,4에서 말하는 계약의 내용이 본문과 일치하고 있다는데 있다. 전자의 경우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세우겠다는 약속을 다윗은 영원한 계약이라 부른다. 한편 후자에서는 다윗계약이 다윗의 자손(seed)과 왕위(Kingship)를 하나님께서 영원히 세우리라는 내용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본문을 다윗계약이라 부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으며 본 연구를 위한 주제본문으로 적절하다 하겠다.
다윗계약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제2장에서는 계약의 어원적 고찰과 유형에 대하여 살펴보고 제3장에서는 다윗계약의 고찰을 통하여 특성과 내용 그리고 다윗계약과 아브라함계약의 연관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제4장에서는 본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한 방법론적 시도로 예비적 분석을 실시하겠다. 문맥 분석을 통해 본문의 위치와 성격을 살펴보고 이어 병행기사와의 비교와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예비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본문주석을 하게 될 것이다. 제5장에서는 고대근동지역의 왕권 사상과 이스라엘의 왕권 사상을 알아본 후 다윗 왕권과 메사야와의 관계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Ⅱ. 계약의 의미

A.어원적 고찰

약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인데 이 말은 구약 성서에 286회 나타난다. 여러 학자들이 를 아카이드어인 biritu를 따라 "속박"으로 아라비아어를 따라 "쪼개다"로 혹은 히브리어
와 관련하여 식사의 의미로, 아카드어 "birit"를 따라 중개의 의미인 "중간"으로 해석 하였다. 이처럼 베리트에 대한 해석에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는데 이러한 여러 견해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바인벨트(M. Weinfeld)는 베리트는 에서 온 여성 명사로서 식사하다를 의미하며 이는 계약의식에 수반되는 축제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케러(L. Koehler)도 베리트가 원래 식물이나 먹는 것을 의미하며 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계약의 원래 의미가 계약의식의 식사에서 기원된 것이라고주장하였으며, 힐러(D. R Hiller) 도 언약 체결의식 으로서 식사가 수반됨을 지지한다.
베리트에 대한 다른 견해로서 알브라이트(W. F. Albright)등은 베리트를 아카드어인 사슬 속박을 의미한 biritu에서 온 것으로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쿠치(E. Kutsch)는 이사야28:15,18에 나타나는 와 사무엘상17:8에 나타나는 를 근거로 하여 베리트를 서로 상대방에게 부과 하기도 하고 짊어지기도 하는 의무라고 해석함으로써 널리 쓰이는 표현인 를 "결정짓다, 의무를 지다" 의 의미라고 주장한다. 그는 베리트가 결속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은 랍비적 해석이기 때문에 잘못이므로 의무나 명령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노트(M. Noth)는 계약이란 히브리어 단어는 히브리어 전치사 (between)에 해당하는 아카디아어 birit<to kill an ass between (birit) the Hanu and Idamaras>에서 유래 했다고 주장한다. 즉 위의 문장에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짐승의 이름이 탈락되자"To kill xxx between the Hanu and Idamaras"로 단축되었다. 뒤이어 계약 당사자 이름이 빠져나가 "to kill between (birit)"로 단축되었다가 마침내 "사이에(between = birit)가 명사화가 되어 본래 뜻과는 다른 "계약"이라는 용어가 되어 이것이 히브리어의 berith로 전래 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여러 연구 결과를 살펴본 바와 같이 계약용어의 어원적 의미를 일반화된 개념으로 정립하기엔 많은 문제가 있을 만큼 계약 자체가 다양서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그러므로 확실한 문헌적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한 베리트의 어원적 의미를 정확히 말할 수 없겠으나 지금의 단계로는 노트의 견해가 가장 수긍이 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B.계약의 유형

계약은 개인들 간에 (창21:22 이하, 31:44 이하) 국가들 혹은 대표들간에 (왕하3:13,왕상 5:26, 20:34), 왕들과 신하들간에 (왕하 5:3 ; 왕하 11:4,17) 남편과 아내간에(겔 16:8; 2:14)맺어졌으며 특히 인간과 동물사이(욥 5:23 ; 40:28)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계약의 유형은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1.동등권적 계약
동등권적 계약이란 당사자간의 동등한 쌍무계약으로 똑같은 특권과 책임을 가지고 계약을 맺는 것이다. 이때에는 계약 당사자들이 서로 동등한 입장을 인정하거나 동의하게되며두 당사자는 서로 맹세로 묶이게 된다. 이러한 계약은 특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과 의무 조건 없이 쌍방간의 평화를 보전하는 것으로 나뉜다. 또 계약은 참여 당사자들에게 부과하는 권리와 의무를 다같이 지니는 상호관계이므로 계약 당사자간에 상호 동등한 구속력이 작용한다.
이와같이 평등한 입장에 있는 집단들 혹은 개인들의 협정을 동등권적 쌍무 계약이라 하며 평화계약 (창 14:13; 21-23; 창 21:25-32; 26:27-31; 31:44-46) 형제계약 (암 1:9),우호협약(삼상 23:18), 결혼( 말2:14)등이 이에 속한다. 기브온 거민들과의 계약(수 9:3-27)은 동등권적 평화계약 이었으나 후에 종주권적 계약으로 변질된다.

2.종주권적 계약
당사자가 동등한 위치가 아닐때 계약은 우월한 당사자가 스스로 규정한 의무에 열등한 자를 묶는다. 이를 종주권적 계약이라(suzeraminty)이라 한다. 이런 전형적인 예는 사무엘상 11:1 이며 야베스 길르앗이 나하스에게 계약 관계에 따라 섬기겠다고 제의하며 에스겔 17:13은 바벨론과 시드기야 사이에 체결한 표준형 종주권 조약을 제시하고 있다. 호세아 12: 1(앗스르와의 계약)도 사용된 낱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꼭 그렇지는 않지만 위에서 지적한 종주권 조약의 유형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종주권 계약은 세력이 강한 자편에서 약한 자를 묶기도 하지만 우월한 자도 자신의 자유를 다소간 포기한다.
이와같이 종주권자와 종속자와의 관계는 일단 계약이 성립되고 난 뒤에는 힘만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었고 그는 종속자에게 요구하는 사실을 성문법화 하였고 그 이상의 독단적 실력 행사를 하지 않았다.

3.보호계약
보호계약은 우월한 지위에 있는 당사자가 열등한 자의 이익을 위하여 스스로 어떤 의무에 묶이는 유형이다. 또 계약에는 아브라함 계약과 다윗 계약이 포함 된다. 아브라함 계약에서 행동하는 편은 오직 여호와 뿐이다. 또한 지상의 상대자는 받아들이는 자로서 수동적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완전히 무의식 상태에 빠지고 여호와 홀로 계약의식을 거행한다. 또한 여호와가 스스로 맺은 계약중에는 다윗계약이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상하 23:5)로 부터 약간 다를 맥락에 등장하는 아브넬의 말(상하 3:9)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시편의 여러 대목 (시 89:3, 28-29; 110:4)등 몇가지 자료에서 증명되고 있다.

4.약속계약
약속계약의 일차적인 의도는 두 당사자간에 새로운 관계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규정된 의무를 미래에 이행하겠다는 보장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유형의 계약에는 일방의 당사자 밖에 없다. 이 약속계약은 맹세를 통하여 미래의 규약된 행동을 신의 처벌에 맡겨 이행하게 하려던 다른 유형과는 다른다. 약속의 맹세라고 이름지어 부르는 이 계약은 약속의 이행을 위해서 신의 처벌에 의존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레미아 34:8이 좋은 실례인데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었으나 얼마 뒤에 포위가 일시 풀리자 그러한 맹세를 가볍게 잊어 버리고 말았다. 따라서 일반의 계약인 이 계약으로 당사자간에 새로운 관계가 창출되지는 않는다.
이와같은 고찰로 볼때 계약에 대한 요소들이 구약전체를 흐르나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자기에게 이끄시기 위하여 죽으실 수도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상세한 것은 알수 없었다.


Ⅲ. 다윗 계약의 고찰

A.다윗계약의 특성

웨와 그의 백성간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 다윗의 게약은 야웨께서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이스라엘에게 자기 자신을 위탁하시는 약속의 계약 형태이다. 이러한 계약의 형태는 족장들의 계약 형태와 동일한 것으로 계약의 존속 여부는 인간의 복종에 의존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 자신의 은혜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족장들의 계약과 다윗의 계약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약속의 계약은 무조건적인 약속에 의한 영원한 관계를 의미한다.
모세계약은 "만일 내가…"하는 조건부적인 것이다. 거기에 비해 영원한 계약형태인 다윗계약은 무조건적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맹세를 통한 일방적인 것이다. 영원한 계약의 존속은 인간의 복종여부와는 상관없이 온전히 하나님 자신의 일방적인 사랑( )에 기인한다.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다윗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말씀은 사무엘하 7장을 보면 다윗계약 성격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성전)을 짓겠다는 열망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다윗에게 집(왕조)을 지어 주실 것을 말씀하신다. 특히 영원히 라는 말을 반복 사용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선택하여 세우신 그의 왕조가 영속할 것을 약속하신다. 따라서 하나님과 다윗이 맺은 이 계약은 하나님의 성실한 맹세 (시 132:11)에 의하여 그 관계가 영원히 계속되는 영원한 계약 (berith olam)이라는 것이 그 특징이다.
개개의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께 불복종 할때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막대기 와 인생채찍"(삼하 7:14)으로 그들을 징계 하신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윗과의 계약을 파기하는 것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계약의 책임이 야웨께 있으며 그 분은 일관되게 자신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진실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약적 특성은 시편 89:19-37과 매우 밀접하게 병행하고 있으며 동일한 주제가 시편 132:11-18과 사무엘하 23:5-7에서 언급하고 있는바 이러한 귀절들 안에서도 영원한 왕조가 다윗에게 약속되고 있으며 영속성이 야훼의 뜻에 대한 자손들의 충실성에 의해서 결코 제한되어 지지 않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다윗계약은 하나님편에 계약의 책임이 부과된 편무계약의 형태이다.

B.다윗계약의 내용

다윗계약은 두 가지 약속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다윗의 왕조와 예루살렘 땅에 관한 것이다. 다윗계약의 전통적인 표현은 사무엘하 7장4절 부터 17절 까지의 나단의 신탁으로 되어 있다. 이 신탁의 내용은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지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의 집을 지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윗을 위한 집은 다윗이 이미 백합수궁에 살았으므로 왕궁은 분명히 아니라 다윗의 집에 대한 말씀은 그의 후손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무엘하 7장 16절에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 하리라" 는 표현은 다윗의 왕조가 영원히 통치할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계약 계획에 새로이 추가된 것이었다. 이것은 이미 족장들과 출애굽시기 동안의 계약안에 있던 한 항목 즉, 나라 (출19:6)와 주권 (민24:19)을 포함하여 왕을 갖게 되는 것 (창 17:6, 16;35:11)이 성취되는 순간이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계약 하셨던 것은 그의 이전 축복과는 관련성이 없는 전혀 새로운 주제는 아니었다.
다윗 계열의 보전과 예루살렘 보전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은 여러 곳에 반복된다. 솔로몬의 죄로 인해 하나님은 그에게서 나라를 빼앗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다윗을 위하여 한 지파를 주고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있게 하시겠다고 하셨다.(왕하 11:32,36) 또한 르호보암의 후계자 아비암이 죄를 지음으로 마땅히 심판을 받아야 하겠지만, "다윗을 위하여 여호와 그의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후사가 되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케 하셨으니"라고 하셨다(왕상 15:4). 여호람이 왕위에 있을 때에도 역시 그가 비록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지만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 아니 하셨으니 이는 저와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왕하 8:19)라고 지적한다. 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할 때 그 성과 왕권은 하나님의 약속에 달려 있게 된다. 사자를 통해 하나님은 "내가 나와 내 종 다윗을 위해 이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왕하 19:34)고 선언하신다. 이와같이 예루살렘성과 다윗왕권은 계약적인 은혜로 보전된다.
유다의 바벨론에 의한 멸망에 이르기 까지 다윗의 혈통과 예루살렘 수도는 놀라운 기록으로 발전해 왔다. 다윗이 즉위한 B.C.1,000년경 부터 예루살렘이 무너지기 까지 400년 이상이 경과 되었다.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에서 가장 안정시대 였을 동안의 평균 왕조는 100년을 넘지 못했다. 다윗 왕조의 끈질김은 북쪽 이스라엘 왕들의 경우와 생생하게 대조된다. 북쪽 이스라엘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느 것도 100년을 넘지 못했다. 하나님은 분명히 다윗에게 독특한 진실함을 나타내셨다. 여섯 차례에 걸쳐 다윗의 나라는 영원하리라는 선포가 있었다.(삼하 7:13,16,24,25,26,29)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끝나 버렸다. 이러한 문제에 부딪힐 때에 다윗계약이 조건적인가 아니면 무조건적인 계약 규정의 성취를 보장하는가 하는 것이다.
구약 역사에서 다윗의 왕위 계승이 끊어진 것은 이스라엘 왕권의 예언적 역할이라는 말로 평가될 수 있다. 다윗혈통은 예수 그리스도 통치의 영원한 성격을 그림자 형태로 예언 하였다. 다윗의 통치는 다윗 왕권과 하나님 왕권을 최종적으로 통합하는 메시야적 구원의 실재를 그림자 형태로 예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경적 통찰이 이루어 지려면 이스라엘 왕권과 하나님 왕권의 실재적인 동일성을 인식해야 한다. 다윗의 합법적인 게승자로 솔로몬이 세워졌을때 역대기 기자는 "솔로몬이 여호와께서 주신 위(位)에 앉아 부친 다윗을 이어 왕이 되어"(대상 29:23)라고 기록 하였다.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주신 위에 앉은 것이다. 즉 다윗 자손의 왕위는 적어도 하나님 자신의 왕위인 것이다. 다윗 왕위에 대한 이런 관점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하나님 왕위의 계승자로서 다윗을 처음 지명한 것과 부합한다. 더욱더 이것은 시온에서의 하나님 왕위와 예루살렘에서의 다윗 자손의 왕위의 면밀한 관계에 대해서 역사서, 예언서, 시편에서 계속적으로 강조하는 것과 일치한다. 나라가 무너질 때 예언자는 더 위대한 날을 예언한다. 다윗의 왕위에 앉게 될 위대한 자가 올 것이다. 그는 다윗의 왕위에 영원히 앉을 것이다.

C.다윗계약과 아브라함계약의 연관성

다윗에 대한 계약의 내용은 아브라함 계약에 담긴 것들과 아주 유사하다. 이름이 존귀케 될 것(삼하 7:9; 창 12:21), 땅에 대한 약속(삼하 7:10; 창 12:7), 열왕에 대한 약속(삼하 7:12-16;창 17:6,6) 복의 개념(삼하 7:24; 창 17:7,8),계약의 영원성(삼하 7:13,16, 24-25,29; 창 17:7) 등으로 나타난다. 다윗계약에 누락된 아브라함 계약의 요소는 축복의 이방인에게 까지 확대 되리라는 것 한가지 뿐이다
이 중 땅에 대한 약속을 보면 땅의 소유에 대한 전체 족장 전통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 이 약속은 여호수아 시대의 정복들을(수 11:7;12:7) 넘어서 최종적으로 다윗이 이스라엘의 적들을 물리치고 백성들에게 약속된 땅에서 평안을 누리게 함으로써 성취되었다. 이것은 삼하 8장에 있는 승리의 기록에 대한 언급에 의해 사무엘하 7:10 이하에서 묘사되고 있다.
또 다윗 계약과 아브라함 계약과의 연결된 사실을 살펴보면 다윗은 솔로몬을 위해 기도하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간청했다.(대상 29:18) 여호사밧 역시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벗인 아브라함의 후손 이라는 점을 알고서 그렇게 기도했다.(대하 20:7) 여호아하스 당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하면서 그들이 시리아 왕 하사엘에게 항복하지 않아도 되게끔 보살펴 주신 것도 그가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 때문이었다(왕하 13:23). 멘델홀(G. Mendenhall)은 하나님께서 의무를 진 계약이라고 항복을 설정해 아브라함, 다윗, 노아 계약을 거기에 포함 시킨 바 있다. 아브라함 계약을 규범적으로 표현한 곳이 창세기 15장인 바 여기서 아브라함 에게 하나님께서 자손의 번영을 약속하시며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겠노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아브라함은 계약 체결시 어떠한 역할도 맡고 있지 않다. 곧 아브라함이 수행하겠노라고 서약한 바가 없다는 것, 의무가 없다는 의미이다. 이 계약이 할례와 연결되어 있으나 이는 의무로 주어진 표시가 아니라 계약의 표시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계약을 하나님께서 의무를 진 형태의 계약 즉 편무계약이라고 할수 있겠다. 다윗 계약도 계약의 특성에서 고찰한 것처럼 편무계약이고 미래에 대한 야웨의 약속을 근거로 하고 또 성격상 무조건적이었다. 이상과 같이 아브라함 계약과 다윗 계약의 관련성을 고찰해 볼때 내용과 계약의 특성상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을 보게된다.

Ⅳ. 다윗계약의 주석적 고찰 - 사무엘하 7:1-17

A.예비적 분석

1.문맥분석
무엘상 12장 사사시대 부터 왕정시대로 가는 전환점을 이루는 사무엘의 요약설교로서 백성들의 왕의 요구에 대해 내키지 않는 동의를 하고 있으나 전체적인 관점은 왕정에 대해 부정적인 논조를 띄고 있다. 사실상 왕을 요구하는(12절) 백성들의 동기는 야웨를 거부하고 이방인의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것으로서 사사시대의 절정에 달한 죄로 보여진다. 따라서 이 장은 하나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기 보다는 불행한 시대에 대한 결론이라 하겠다. 또한 사무엘상 12장과 본문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개념에 의한 화해라는 측면에서 명확한 연결고리로 연결되고 있는바 전자에서 야웨 당신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용서하고 있으나 후자에는 그의 이름의 영광이 다윗가문에 결합되어있다.
이어 나오는 사무엘상 13장에서는 사울이 거부됨으로써 왕정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에 변화가 시작되는데 사울에 대한 거부에 따른 쇠퇴와 함께 다윗에 대한 나단 신탁을 예견케 하는 언급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즉 여기서 표현되는 계승자와 그 후손의 영원한 왕권에 대한 언급은 나단의 약속에 적절한 개념으로써 이것을 상실한 사울과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계승자의 대조 안에서 암시되고 있다.
그뒤 이야기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그 계승자는 다윗과 동일시되고 있다. 이러한 전개에 있어 중심 주제는 영원한 왕조의 약속을 통해 주어지는 축복으로서 다음과 같은 귀절들에서 다윗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미리 준비되고 있다.
① 사무엘상 20: 5 그의 왕좌는 지속될 것이며 야웨께서
그 적을 물리칠 것이다.
② 사무엘상 25:28 그는 든든한 집을 가지게 될 것이다.
③ 사무엘하 3:18 그는 사사들을 계승할 것이며 성공적
으로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④ 사무엘하 5: 3 그는 하나님 백성의 목자가 될 것이
다.
이 귀절들의 내용들이 이제 본문에 이르러 나단을 통한 야웨의 말씀안에 집약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나단신탁에 의해 주어진 왕조약속은 이스라엘 전 왕정사를 꿰뚫어 흐르는 중심적 주제로 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후에 제기될 메시아니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2.병행 기사와의 비교
본문 기사와 병행문인 역대상 17장과의 비교분석을 하여보고자 한다. 다윗에게 전해진 나단신탁의 두 인용문 사이에는 부분적인 삭제와 함께 용어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가 발견되고 있으나 신학적 관점에서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a.사무엘하 7:16과 역대상 17:14
① 사무엘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견고 하리라.
② 역대상 17:14 내가 영영히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
우리니 그위가 영원히 견고 하리라.

먼저 지시 대명사에 있어 이 두 귀절은 차이가 있는 바 본문에서는 - 네 집, 네 나라, 네 위 - 약속의 대상이 모두 다윗인데 비하여 역대기에는 '내 집과 내 나라'에 있어서 야웨를 '그 위'는 솔로몬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본문에서 말하는 '집'이 다윗의 왕조를 가리키는 반면 역대기에 있어서 집(공동 번역은 '내가 세워준 이 왕조')이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다. 이러한 용어선택의 차이는 두 귀절 안에 내재하는 신학적 관점의 차이를 뚜렷이 보여주는 바 본문이 다윗왕조에 그 중점이 있는 반면 역대기에는 신학적 주제인 신정주의적 배경을 나타내주고 있다 하겠다.
b.사무엘하 7:11과 역대상 17:10
역대기 저자는 10절에 (build)라는 동사를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 동사는 집의 건축이나 왕조의 설립을 의미할 수도 있으나 성전 건축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성전보다 왕조에 촛점을 둔 보다 덜 모호한 (make)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지금까지 어휘선택에 촛점을 두고 두 병행문을 비교분석한 결과 정치적 역사적 관점 보다는 제의적(cultic) 관점에서 자료들을 취급하여 솔로몬과 성전에 중점을 둔 역대기 저자와는 달리 본문의 귀절은 나단 예언자들을 통해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왕조의 영속성을 보여 주고 있다 하겠다.

3.역사적 배경
a.부족 동맹 체제
팔레스티나에 정착하게된 초기 이스라엘은 정치적 통일체가 아니라 여웨의 계약으로 말미암아 결합된 부족들의 동맹체였다. 이런동맹체제는 주위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국가로서의 상태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중앙정부나 수도 그리고 행정기구도 없었으며 단지 계약의 제재 규정에 따라 지파들간의 평화가 유지되고 또한 일치된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각 지파의 조직은 족장중심이었는데 가나안 봉건제도의 특색인 계층적 구성은 없었으며 계약의 궤가 안치된 성소가 동맹의 중심이 되었다.
여호수아 24장에서 나타나는 세겜에서의 성대한 계약집회에 관한 기사는 이러한 동맹형성의 경위를 묘사해 주고 있다.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각 부족의 족장들이 모인 이 회의는 가나안 정복및 각 지파별 땅 분배 과정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출애굽시 광야에서 체결된 계약을 갱신하고 야웨 하나님에 대한 공동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하였다. 한편 이스라엘 부족동맹은 그 체제상 산만한 통치형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200년간이나 존속하였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분석해 볼 수 있다. 먼저 이스라엘이 직면했던 군사적 위협들이 대부분 국지적 성격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이때 사사들이 등장하였는 바 그들은 야웨의 영을 받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들로서 지파들을 연합하여 물리쳤다. 또 다른 이유는 동맹이 일정한 범위안에서만 지파들의 행동을 제한하고 그 외는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동맹의 창설 근원인 야웨와 맺은 계약의 정신을 잘 구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부족동맹은 초기 이스라엘의 특성을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는 조직이라 하겠다.

b.새로운 상황의 발생
1) 블레셋의 등장과 침략
고대 이스라엘의 부족동맹이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지금까지 분쟁을 일으켜오던 미디안 암몬과 같은 군소 적국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력한 블레셋의 등장 때문이었다. 블레셋인들은 미노아 제국이 붕괴됨에 따라 동쪽 지중해안으로 진출한 외부민족으로서 블레셋이란 어원적으로 바다의 사람들을 뜻하였다. 그들은 에집트 정복 실패후 팔레스티나로 진출, 해안선을 따라 욥바(Joba)에서 가자(gaza)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하였으며 사사시대 때부터 이스라엘과 공존하였으나 점차 심한 알력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 원인은 정치체제상 상호 반목하는 가나안 도시국가들과는 달리 과두지배체제의 잇점이 있었고 철제무기와 뛰어난 기동성있는 공격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1050년경에 이르러서는 이들이 이스라엘을 그들의 안보 혹은 해안으로부터 내륙으로 통하는 교역통로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서부 팔레스티나를 정복하려고 했던 것 같으며 나아가 팔레스티나의 전역을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이들의 위협은 인접한 몇몇 지파들에게만 관계되는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이제 이스라엘 전체의 존립을 위협케 하였는바 이처럼 고도로 통합된 군사적 위협 앞에서 이스라엘의 부족동맹체제는 무력한 기구임이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2) 부족동맹체제의 붕괴
기원전 1050년 직후 해안 평야의 변두리에 있는 아벡(Aphek)부근에서 내륙진출을 시도하던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졌다(삼상4장).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실로(Siloh)성소에서 계약의 궤를 싸움터로 옮겨오는 등 총력을 기울였으나 그 결과는 철저한 패배였다. 이스라엘 군대는 분쇄되어 무장을 해제 당했고 성궤를 모시고 있던 제관 홉니(Hophni)와 비느하스(Phinehas)는 살해되었으며 성소는 파괴되고 성궤 자체도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침공에 대처할 능력을 상실하였던 것이다.

c.이스라엘의 왕정경험
이스라엘에 있어 군주체제를 갖추고자한 시도는 이미 사사시대에 있었는데 므낫세 사람 기드온이 미디안을 쳐부순 후 북부지방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즉 므낫세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나안식으로 왕국을 수립하려고 하였으나 (삿9:1-7)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삿9:8-20)좌절되고 말았다. 이후 전술한 바 있는 블레셋의 위협에 직면해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왕을 요구하기 시작하였으며 기브아(Gibeah)성읍의 베냐민지파 출신인 사울이 왕으로 옹립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사들과 마찬가지로 야웨의 영으로 인도된 카리스마적인 인물로서(삼상11:6) 여전히 부족동맹의 계약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왕정의 시작으로 보기는 힘들다.
이제 다윗에 이르러 왕권제도가 확립되었는데 다윗의 왕국은 정치적으로는 주변제국의 모형을 모방하였으나 계약의 궤를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실로의 제사장 계열인 아비아달을 제사장으로 택함으로써 그의 왕권이 부족동맹의 야웨신앙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단신탁이 다윗왕조를 신적약속의 보관자로 인정하게 되었다.

B.본문주석

1.1-7절 (성전건축에 대한 내용)
1절 야웨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이 거하게 하신 때에 이 절은 이어나올 기사의 상황 즉 시기와 장소를 알려주는 도입절로서 본분의 핵심적인 단어인 집( )을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절 형태는 시편 132:3-5에서 암시되어지고 있다. "내가 실로 나의 거하는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침상에 오르지 아니하며 내 눈으로 잠들게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아니하기를 야웨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시132:3-5). 그런데 이제 그 장소가 마련되었고 그는 그의 집(궁)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따라서 이 귀절은 문학적으로나 주제상 연결기능을 하고 있다 하겠다.

2절 나단에게 하는 다윗의 제의내용은 송백의 궁에 머무는 자신과 휘장 가운데 있는 야웨의 궤 사이에 대조를 이루면서 성전 건축에 대한 경건한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성전과 왕조 모티브는 고대 근동의 예들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쿠취는 현 귀절의 내용에 대한 특별히 적절한 병행문을 인증하였는바 메소포타미아 왕들이 빈번히 신들에 대한 그들의 봉사와 관련된 성전 건축에 대한 기록들을 하였는데 이것은 번영과 계속되는 통치 때로는 그들 자손들의 계속되는 통치를 포함한 개인적인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3절 나단은 야웨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란 말로 대답한다. 이 말은 다윗 이야기에서 잘 알려진 중요구절이고 그의 행운의 비밀을 가리킨다. 이 신의 현존은 축복과 성공을 가져오는 것이다. 절에서 나단의 대답은 동의와 격려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어 나오는 5절b의 성전건축에 대한 부정적인 계시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4절b-7절 앞부분의 사건에 이어 여기서는 전형적인 형식으로 표현되는 성전건축에 대한 야웨 계시가 나단에게 내리고 있다. 4절b의 '야웨의 말씀이 - 내렸다'라는 표현은 잘 알고 있는 예언자의 언어 양식이다.

5절b는 다윗이 성전을 짓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이 귀절의 해석을 위해서는 특히 구문법에 대한 주의가 필요한데 이것은 수사학적 질문으로서 그 자체 안에는 신적 분노가 암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 문장에 있어 강조점은 네가(You)와나를(Me)의 두 인칭 대명사에 있으므로 내용에 있어서도 강조가 성전의 건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윗이 야웨를 위하여 성전을 짓겠다고 제의한 사실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분명히 드러나는 신학적인 내용은 비록 다윗이 왕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인간존재에 불과하며 하나님만이 주도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사상은 8절 표현 즉 '내가 너를 - 취하여' 에서도 계속 나타나는데 다윗의 모든 성공은 오로지 야웨께 기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6-7절은 성전에 대하여 부정적인 경향을 띤 표현으로서 성전 거부에 대한 이유가 설명되고 있다. 1) 시내산 계약을 토대로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성소는 옛 장막이며 2) 이전의 어떤 지파에게도 성전을 지으라고 명한적이 없다는 것이다.
6절에서 주목할 것은 언어와 구문법에 대한 것으로 첫번째 동사 '내가(집안에)거하지 아니하고' ( )는 한 장소에서 지속적인 체류 또는 현존을 말하는 것인 반면 '내가 장막과 회막에 거하며 행하였나니'( ) 란 동사적 표현은 이동의 자유를 지시하는 관용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대조는 '집'과'장막'에 의해 강화되어 지는데 이러한 표현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짓고자 하는 성전이 신적 자유에 대해 제한을 부여하는 것임을 강하게 함축하고 있다.

2.8-11a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여기에서 야웨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집을 지어주실 것이라는 약속에 접근하게 되는데 그것은 야웨께서 과거 다윗을 어떻게 보호해 왔으며 이끌어 왔는가를 설명해 주는 기사들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8절에서 특별한 관심을 주권자(Nagid)란 기술적 단어의 사용과 다윗이 권력에로 부상하는 과정에 있어 그 용어의 독립적인 사용에 기울여진다. 이 표현은 이스라엘의 지명된 왕 혹은 왕자를 의미하고 있는데 특히 전자는 왕권에 대한 예언적인 이해의 중요한 요소이머 이스라엘의 지도자에 대한 선발과 배척에 있어 야웨와의 자유로운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 명칭은 다윗이 항상 야웨께 보여준 무조건적인 충실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선택되어졌으며 다윗의 역사적 인물과 이스라엘의 이전의 역사를 연결해 주고 있음은 명백하다. 이 용어는 현 귀절이 언급하고 있는 사무엘상 16:1-13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다윗의 임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다른 두 곳에서 사용되는 바 하나는 사무엘에 의해 사울을 책망하는 신탁에서이고(삼상 13:14)다른 하나는 아비가일에 의한 행운을 예견하는 말(삼상 25:30)안에서 이다.
9절b-11절에서는 세가지 중요한 요소가 나타나고 있다. 먼저 9절에서 야웨는 다윗에게 성전과 왕조에 선행하는 약속으로서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줄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이어서 야웨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의 영원하고 고정된 거룩한 장소 (10-11절a)인 한 곳을 설립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평안하게 될것이다 (11절a). 여기서 평안과 야웨가 선택할 장소에 대한 고대 약속들 (신12:10-12)이 다윗시대에 이르러 성취를 맞게 되었으며 다음 부분에 나올 왕조의 가사는 이러한 발전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다. 바로 이 약속은 야웨가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온 핵심적인 요소라 하겠다.
9절 '내가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라는 표현은 많은 고대 근동 언어 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한 개인의 기억을 미래에도 생생하게 유지하기 위한 '영영한 표징'(사55:13)인 일종의 기념물 건립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13절a에서 예언되고 있는 것과 같이 다윗의 자손에 의한 성전의 건축이 여기서 암시되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이름이 또한 그의 자손들 안에서도 지속되어지는 까닭에(14:7;18:18) 이 귀절에서 나타나는 다윗을 위한 이름의 약속을 무엇보다도 아래 11절b-16절에서 나타날 왕조약속에 대한 예견으로서 이해할 수 있겠다.
10절a. 본문에서 약속의 땅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곳'은 구약성서에서 일반적으로 경배의 장소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명사
은 신이 나타나는 곳( :민10:35;시132:8)이며 특히 경배를 위한 선택된 장소에 대한 표현 (신12:11)에서는 장막 또는 다른 신현현 장소의 의미로 쓰임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문에서의 장소에 대한 언급은 예루살렘 성전의 건립에 대한 예견으로 이해되어지며 11절a 의 평안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가 더욱 뚜렷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10절b-11절
10절b의 전과 같이( )은 불의한 사람들에 의한 압제의 시기에 대해 언급하는 표현으로서 11절a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와 연결되고 있으며 이 두 귀절은 사사 시대 동안의 고통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평안'이란 개념은 고통 상태로 부터의 해방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하겠다.

11절a 모세가 최초로 평안의 약속을 언급하고 있는 신명기 12장에서 '야웨께서 선택할 장소'(8절)에 관심이 기울여져 있으며, 10-11절에서는 평안과 선택된 장소에 대한 주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제 백성들이 기대하고 있는 최종적인 평안은 야웨의 선택된 장소의 설립과 함께 올 것인데 그것은 현신탁에 있는 9절a의 귀절들이 언급하고 있는 시기이다.

3.11절b-16절.(왕조 약속)
11절b '야웨가 또 네게 이르노니 야웨가 너를 위하여 집
을 이루고'
a.야웨의 말씀이 전달될때 다른 곳에는 일반적으로 일인칭으로 표현되고 있음에 비해 본 귀절에서는 삼인칭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 선언에 장엄성을 부여하고 있다.
b.문장의 도치로서 목적어인 '집'( )이 문장 앞에 와서 강조되고 있다. 이 단어는 5절의 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집'(성전)이 거부되어졌다. 이제 11절b에서 관심이 다윗에게 돌려지고 있으며 다윗이 야웨께 집을 지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야웨께서 다윗에게 집을 지어주실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집은 물질적인 건물이 아니라 -다윗은 이미 궁을 가지고 있다.(1-2절)- 왕조를 의미하고 있다.
12절 해석에 있어 주목해야 할 것은 자손 ( )의 범위설정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는 13-16절에 계속 나오는 삼인칭 단수 대명사들이 집합적인가 아니면 단수로 해석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대해서 로스트를 비롯한 많은 주석가들은 이 말이 본래의 신탁에서는 집단적으로 이해되었으나 명백히 솔로몬을 가리키는 13절에 의해 국한 되어졌다는 견해를 제시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왕조 약속이 한 개인의 영역안에서만 적용 될 수 없다는 학설이 제기됨으로써 이러한 견해는 재고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자손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의 용법을 살펴봄으로써 더 분명한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는 그 활용에 있어 언제나 단수형으로 쓰이나 의미상 집합명사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한 단위로서의 후손들의 전 계보를 가리킨다 하겠다. 하지만 그 활용에 있어 전체집단을 대표하는 한 사람이나 어느 한 계보에 속해 있는 많은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을 만큼 유연성이 있음을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13절a가명백히 솔로몬을 가리키고 있다 할지라도 단어의 활용과 내용상의 타당성을 고려해 볼 때 그 외의 다른 절들에 있어서는 개인 솔로몬을 포함하는 다윗 가문의 모든 후계자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4절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라는 표현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는 양자결연의 형식이다. 이 형식은 사실상 영원한 왕조라는 선물에 대한 법적 기초이며 야웨께서 그 왕에게 주시기로 약속한 것이 그 왕의 후손들에게도 세습적으로 계속될 것임을 보장하는 것이다. 칼데론(Calderone)과 바이펠트(Weinfeld)는 그 용어가 쓰여지는 모델이 왕이나 군주에 의해 궁중신하에게 주어지는 땅이나 '집'의 하사물임을 증명함으로써 이 귀절을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하사물은 군주와 신하 사이의 합법적인 양자관계에 의해서 세습적으로 주어졌으며 영원한 것이었다. 양자관계는 누가복음3:22, 사도행전 13;33, 히브리서 1:5 에서 다윗의 자손 예수께 문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14절-15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다윗의 후손들이 만약 복종하지 않으면 말 안듣는 아이들 처럼 벌받을 것이라는 이러한 표현은 야웨의 아들로서 맺어진 양자관계에 수반되는 것이다. 바인펠트는 이 귀절을 해석함에 있어 누지에서 발굴된 문서들을 인용 비교 하면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만약 아무개(양자) 아무개(양부)를 공경하지 않으면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다루는 것과 꼭같이 아무개(양부)가 아무개(양자)를 다룰것이다" 이 문서들에 아들을 훈계한다는 관념과 함께 영구상속이라는 규정이 나오는데 이것은 본문의 14-15절의 내용과 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다윗의 자손들은 만약 그들이 양자관계로 맺어진 야웨께 존경심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벌을 받을 것이 틀림없이 예상된다. 그러나 그 벌은 복종치 않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일상적인 종류의 징벌을 넘어 확장되지는 않을 것이며 나아가 그들에게 주어진 사랑도 취소되지 않을 것이다. 자켄펠트(Sakenfeld)에 의하면 본문에 사용되는 헤세드 ( )란 하나님께서 다윗의 가문에 그 왕조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것을 지탱해 주는 힘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야웨의 헤세드는 사실상 영원히 왕권을 유지시켜 줄 것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16절 11절-15절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 이 귀절은 다윗 왕조의 영원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주목할 사항이 있다.
① 약속의 대상인 '네 집' 과 '네 나라'가 중언법(重言法)에 의해 표현되어져 있고 같은 절의 '네 위'와 병행을 이루고 있다.
② 70인역과 역본은 (before Me)로 표기된 반면 히브리어 본에서는 (before You)로 표기되어 있다.
③ 영원히( )의 두 번에 걸친 반복된 표현은 왕국의 설립과 다윗의 왕위가 솔로몬의 시대를 초월하여 영원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며 다윗후손의 영원한 존속을 가리킨다.

4.결론
이 본문은 후에 메시야 기대(히1:5)의 모체가 되었다. 더우기 이것은 왕조 원리와 다윗왕조의 통치를 정당화 하였다. 이 약속은 다윗의 집이 정치적 힘이 없어졌을때도 나단의 신탁은 여전히 미래 세대와 관련되었다. 기독교 공동체는 다윗의 자손(마1:1,행13:22-23,히1:5)이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위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V. 다윗 계약에서 본 메시야 사상

스라엘에서는 왕을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자 라고 불렀다. 왕은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거룩한 자 즉 메시야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야웨의 지배권과 통치권을 위임받아 야웨의 대리자로 봉사하게 되었다. 시편중에 " "라는 구절이 나온다. 개역 성서에서는 "야웨가 통치하시다"로 번역한데 비해 공동번역에서는 "야웨가 왕위에 오르시다"(시 93:1), "야웨가 왕이시다"(시 96:10)라고 번역함으로써 왕이라는 말을 넣고 있다. 왕제도는 이스라엘에 있어서 기본적인 제도는 아니었다. 그것은 열국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는 환경에서 외국 관습을 본받아 만든 것으로 생각되었다.(삼상 8:4-5) 신명기 17장 14-20절에서 왕제도는 이스라엘 민족이 후대에 외국으로 부터 받아들인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왕권 사상은 애굽적인 것과 바벨론 및 앗수르의 것과 본질적인 차이도 있고 유사점도 있을 것이다. 본 장에서는 이스라엘 왕권 사상에 영향을 준 고대 근동 제국의 왕권 사상을 살피고 이스라엘의 왕권 개념을 고찰하여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왕권 개념에 근거하여 메시야 왕권을 살펴보고자 한다.

A.고대 근동 지역에 있었던 왕권 사상

1.고대 애굽의 왕권 사상
애굽의 초기 부터 바로는 단순한 왕 이상으로 신같은 존재가 아니라 바로 신으로 이해되었다. 곧 호루스(Horus)신, 셑(Seth)신, 오시리스(Osiris)신들이 지상에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왕은 Horus가 성육신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애굽의 모든 왕은 Horus이다. 왕은 출생때부터 신으로 태어나고 또 출생이전에 벌써 선재해 있었던 존재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왕이 위(位)에 오르는 대관식은 신에 의하여 거행된다고 보았다.
또 애굽 사람들은 신 레(Re) 숭배의 발달로 왕을 태양신 레(Re)가 낳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성적으로 신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Horus 신은 Osiris 신의 아들이며 계승자이다. 즉 살아있는 왕은 모두가 Horus 신이고 죽은 왕은 모두가 Osiris신이다. 이와같은 생각으로는 단순히 정의를 보장하는 임무를 감당할 뿐 아니라 자기 나라의 법을 제정하는 절대권을 가지고 계율(戒律)에 따라 나라를 다스린다. 왕의 건강과 안녕은 곧 백성과 국가의 부와 안녕이다. 또 바로는 Osiris신 처럼 생명을 부여하는 자요 번영을 지키는 자요 흡족한 복을 부여하는 자였다. 같은 국가에만 영향을 미칠뿐만 아니라 그의 왕권은 농작물의 풍작과도 밀접히 관계된 것이다. 그는 행복과 풍작을 들여오는 기관이다. 애굽의 월력 6째달에 승리의 축제가 열린다. 이 드라마의 목적은 Horus가 그의 적을 물리친 승리 전 애굽의 왕으로서 즉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극적 의식을 통하여 신의 죽음과 부활이 수행되고 거룩한 결혼(Sacred Marriage) 이 행해진다. 이 거룩한 결혼은 풍작을 위한 종교 의식의 일부로 행해진다.
종교적으로 제사의식에서는 왕이 또한 대제사장과 같이 행사한다. 일반적으로 제사의식에서 왕은 제사장의 일을 대행해야 하므로 때로는 제사장으로 대치되기도 하지만 제사장은 원칙적으로 왕과 동일하다고 보았다. 보통 왕은 종교의식에서 인간 앞에서 신을 대표하고 동시에 신 앞에서 인간을 대표하지만 애굽에서는 전자에 강조가 있다. 그는 유일자이며 통치자로서 제사장 왕이다. 그는 그들 선조의 본질이며 선조의 영으로 충만한 자이다. 그 영으로 왕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행하고 일반적으로 성전 건축자로서 또한 성전 건축의 임무를 맡았다. 그리고 Osiris신에 대한 예배나 기념식에서 왕 자신과 그의 일가들은 주역을 맡는 것이다. 그리고 예배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다. 따라서 애굽의 왕 개념은 신-왕(God-King)이며 제사장-왕(Priest-King)이었다.
애굽의 바로를 지상의 신으로 묘사하는 이유는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왕에 대한 관념 때문에 이와같이 표현을 한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그는 모든 질서와 진리의 주인공이다. 이 사실은 그가 모든 외부적인 대적들을 정복하는 승리의 용사임을 암시한다. 또 왕은 대대적으로 국가의 완전한 통치자요 무엇보다도 넓은 의미로는 정의의 집행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위에서 그는 자기 나라를 위하여 선한 목자요 요새가 되고 과부나 고아에게는 아버지가 되며 집없는 자에게는 피난처가 된다. 그러므로 그 왕의 주요 의무는 지상적 행정만을 맡은 왕이 아니라 법을 맡은 왕이요 하늘의 신이라고 생각한다.

2.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왕권사상
원시 유목민들이 살던 시대에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제국들이 생각한 왕의 개념도 신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원시 유목민들은 흔히 그들의 왕을 타인에 의하여 탁월성이 있다고 인정하였으나 역시 하나의 인간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고대 바벨론 제국과 앗수르 제국에 있었던 왕권의 개념을 살펴보기로 한다.

a.바벨론 제국의 왕권사상
유목민의 왕은 신의 대변자로서 백성을 통치한다는 이상이 있었으나 고대 바벨론 제국의 국민들은 왕들에게 흔히 '신'이라는 칭호를 붙여 사용했다. 그러나 바벨론의 왕은 신의 통치를 지탱하기 위하여 선택된 신의 종이었다. 그래서 바벨론의 왕은 신과의 관계를 신의 아들의 자격으로 이해한다. 그 아들의 자격은 본성에 있어서가 아니고 양자로 취급되는 한계에 있다. 또한 그 신의 선택이 왕으로 하여금 신적인 초인적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형이상학적이기 보다 기능적인 의미로 생각하였다. 이러한 개념으로 미루어서 본래 바벨론의 왕은 애굽의 왕처럼 결코 예배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본다.
바벨론 왕의 임무는 한마디로 말해서 신과 백성간의 중개역할을 담당한 것이므로 왕의 주요기능 중의 하나는 신에게 대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의식에 동참하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특히 신년 축제에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곧 창조신화를 재연하는 예식의 연극에서 왕은 연중의 우주적 질서를 수립하기 위하여 신들을 도와주는 일을 담당한다.
즉 왕의 임무는 신들에게 예배하고 신의 뜻을 지상에 전달하는데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왕은 신들 앞에서 백성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고 본다. 비록 직업적인 제사장들이 있다 할지라도 왕도 역시 원칙적으로 제사장이었다. 그리하여 사원에서 꿈으로 신탁을 받으며 또한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한 속죄의식을 집행해야 했다. 이상과 같이 바벨론의 왕권은 애굽의 그것과 같이 신적 존재의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 휼륭한 제사장의 기능을 가진 것이다. 이 기능을 가지고 신들과 우호관계를 맺으면 그 왕은 백성들에게 자연의 축복과 좋은 수확과 풍요와 평화를 안겨줄 수 있다. 그가 신은 아니나 신과 같은 존재요 시적 표현으로 말하면 '태양' 이라고 일컬을 수 있고 '생명나무' 라고 할 수도 있다. 결국 바벨론은 기능적인 의미만을 지녔을 뿐이며 왕 자신이 복을 창조해 내지는 못하나 신들에게 복을 요청하는 기도를 할 자격을 가진 자이다.

b.앗수르 제국의 왕권사상
앗수르의 왕권은 메소포타미아의 일반적인 경향을 따라 바벨론의 왕권과 대동소이 하다. 앗수르에 있어서 왕은 니누르타(Niurta)신을 상징한다. 니누르타는 마르둑의 아들 나부(Nabu)가 차지했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왕이 니누르타 즉 신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왕은 제사의식에서 가시적 신의 대변자요 옹호자로써 인간들 앞에서 신을 상징하는 자이다. 앗수르의 왕은 때로 주신(主神) 아슈르(Ashur)자신이나 전차를 타고 있는 야슈르의 아들 니누르타를 상징한다. 말하자면 왕은 전쟁에서 신의 군대를 이끄는 사령관이라 할수 있다.
그리고 왕은 역시 혼돈과 파멸의 세력을 대항하여 싸우는 신들의 전쟁에서 지도자로 등장한다. 이와같이 앗수르의 왕은 역시 신의 위치에 처하여 있으므로 백성들로 하여금 왕은 나의 생명이요, 왕은 나의 신이라고 불리어 진다. 또한 백성들은 신을 두고 맹세하기도 하고 왕을 두고 맹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왕이 죽은 후에는 숭배의 대상으로 신격화 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만한다. 이러한 사건은 죽은 선조나 추장이 권력과 축복의 원천이 된다는 원시적 관념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
동방종교의 예배의식에서 왕의 신성과 신의 대리자로써의 왕의 의식에 대한 일반적인 가정에 대하여 최근의 몇몇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왕이 고난을 받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신과 동등한 존재로서의 왕이 성격상 그리고 왕의 이데올로기에 있어서 본래 타고난 특성이다. 그리고 이 고난의 모습을 왕 관념(Royal ideology)에 있어서 불변의 요소' 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왕이 신과 절대적으로 동일하다는 이론적 전제는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c.헽(Hittite)제국의 왕권사상
헽제국(Hittite Empire)은 1,600년경(B.C) 소아시아를 통일하고 1,500년(B.C) 에 바벨론 성을 함락시켰으나 내란으로 인해 국세가 약화되어 약 150년간 소아시아 지방에 국한하여 국세를 유지하여 왔다. 문화와 종교는 근방제국의 여러가지 다른 요소들을 받아드렸으므로 왕권에 대한 이상도 다양성을 지니고 있음이 당연하다.
헽제국의 왕은 전쟁에서는 유능한 지휘관이요 최고 재판장 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의식의 대제사장도 된다. 그래서 왕위와 제사장직의 임무가 분리되지 않고 겸직되는 형편이었다. 헽제국의 왕도 역시 신에 의해 초인적 재능으로 무장한 영웅이었다. 이 왕국이 점차 확장됨에 따라 판도를 넓혔고 이에 따라 고대 근동제국의 문화적 영향을 받았으므로 북방 메소포타미아의 호리 족속 (Hurrian)과 소아시아 지방의 앗수르 문화에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애굽과의 정치적 교섭을 가졌으므로 애굽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그러므로 헽 왕은 '나의 태양'이라는 공식적 칭호를 가졌다. 한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처럼 폭풍우와 전쟁의 신인 테슈브(Teshub)의 아들이라 칭했다. 또한 왕의 모친은 신의 어머니라 칭했다. 왕이 죽은 후에는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 신이 된다고 하여 왕의 죽음을 단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사실은 아마도 애굽왕에 대한 관념과 고대 조상숭배 사상이 결합된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영향들이 애굽왕의 관념보다 오히려 개별적으로 영향을 받아 빌려온 요소임을 밝혀둔다. 그러나 헽왕 역시 신의 재능과 자격을 부여받은 초인이요 신과 같은 존재로 간주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헽 족속은 살아 있는 왕을 신으로 모시거나 예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왕의 신성은 신앙의 대상이었다.
결론적으로 애굽과 고대 근동지역의 왕권개념의 차이가 있으나 동시에 일반적인 공통점이 있다. 즉 왕은 신으로 경배되지 아니했다는 사실이다. 즉 왕은 신의 소명으로 초인적인 능력과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신들과 같은 정도에 까지 높여진다. 그는 다분히 신성을 부여하여 금기적(Taboo) 존재이다. 그는 신을 대표한다. 그러나 신에 대한 백성의 대표적인 성격이 짙다. 근동에 공통된 왕 개념은 성스러운 성격을 가지며 백성의 제사장으로 이해된다. 더욱이 왕은 군사, 정치 및 제사적인 면에 있어서 책임적인 위치를 가진다. 이러한 왕의 지위는 그들이 섬기는 신 개념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권위는 해마다 신년제 (New Year Festival)에서 거행되는 종교의식에서 되풀이 되어 강화되며 인정되었다. 이처럼 근동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왕권 개념은 왕권의 신성을 믿는 신앙이 있었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한다.

B.이스라엘의 왕권사상

1.야웨의 왕권사상
이미 살펴본 것 처럼 고대근동의 모든 종교에 있어 신의 왕권사상은 공통적인 관념이었는데 이러한 신화적 표현들은 지상의 왕에게 신성한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이용되었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이러한 고대근동의 왕권사상을 채용함에 있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였다. 특히 야훼의 왕권에 대한 연구는 근래에 들어와서 신의 왕권(Divine Kingship)문제로서 구약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되어왔다. 부버(M. Buber)는 이스라엘의 야웨 하나님을 왕이란 칭호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야웨의 왕권개념의 기원이 이스라엘에 있다는 견해를 개진하였다. 그러나 베커는 (J. Becker)는 사회적 측면에서 그의 견해를 비판하였는 바 이스라엘 사회구조가 원래 사막 문화권의 반 유목민족인 부족체제였기 때문에 농경 문화권의 정착된 도시문명 즉 모든 사회기구와 왕권까지도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표현하게 된 것은 왕국시대부터 였음을 전제로 할때 왕 개념은 다분히 이교적인 것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이스라엘 내에서의 신의 왕권개념은 이스라엘 자체의 사상이 아니라 외부로 부터 채용된 것이라 하겠다.
한편 노트는 왕정이전 이스라엘에서는 왕이 신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틴에 정착 후 가나안 문화를 이어받아 왕권 개념을 채택하게 되었다고 보았으며 알트(Alt)역시 야웨 왕권의 기원 문제에 있어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이방신전 사상에 접하게 되면서 야웨의 통치권이 신적 존재-야웨와 비교됨으로서 천사적인 존재로 격하된-의 영역에 까지 미침을 주장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신의 왕권 사상은 고대 근동 여러나라의 사상과 비교해 볼때 유사점과 상이한 특징이 있는 바 전자는 야웨가 이스라엘의 주인이요 이스라엘을 돕고 구원하며 정의와 행복을 가져오는 능력을 가졌다는 신앙고백으로서 이스라엘 왕국은 곧 야웨의 왕국이라는 사상이다. 그러나 후자는 고대 근동의 신관이 다신교적인 내용을 가진 것에 비해 이스라엘의 왕은 철저하게 유일신 야웨와 관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2.인간의 왕권
고대 이스라엘 사회는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가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기인하는 주권 개념이 없었으며 이스라엘 역사가들은 정치이념에서 보다 야웨가 역사를 지배하신다는 신앙적 관점에서 왕이 가진 주권의 출처 기원을 전적으로 야웨 하나님께 두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왕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양자 관계로 표현되고 있는데 고대 근동의 예들과의 비교는 이스라엘 왕의 양자됨의 의미를 잘 드러내 주게 된다.

a.양자관계
고대 근동에서는 임금들을 신의 아들로 존경하였는데 그것은 항상 군주의 인격이 신화(神化)되었다는 신화적 관점에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바 있는 근동의 왕권개념에 비추어 요약해 보면 에집트의 파라오는 신의 피를 받은 신의 소생으로서 혈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는 곧 신이었다. 그러나 바벨론에 있어서 왕은 신이 아니라 신의 아들로 인정되는 양자삼기(Adoption)의 의미로 이해되었다. 즉 왕은 인간 중에서 최고의 존재로서 백성들의 신과 가장 가까우며 신이 가진 능력과 신성함을 받은 자였다. 따라서 왕을 신적 존재라 할수 있지만 신이라고 부르기를 꺼리며 단지 신의 대리인으로 (Divine Agent)로 생각했다.
구약성서는 이러한 고대근동의 신화적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왕 역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서 동일한 신법에 종속되어 있고 같은 법률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왕은 신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아들로 인정받는 것이며 이 인정은 전적으로 신의 의사에 달려 있는 바 하나님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왕을 양자로 삼는다.
이스라엘에 있어 이러한 양자관계는 다윗시대에 처음 나타나는데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삼하 7:14;시 89:27-28)라는 언급을 통해 야웨와 왕사이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서 규정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구체적으로 다윗과 그 후손들이 선택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운명을 같이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왕은 하나의 대표자나 중개자 일뿐 아니라 실제로 그의 인격안에 이스라엘 전체성을 통합하고 있으며 야웨는 그 왕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b.왕의 역할
이처럼 왕은 야웨와의 양자관계에 의해 그 존재에 있어 특수성이 확립되었으며 이에 따라 왕에게 고유한 여러 특권들과 역할들이주어지게 되었다.
① 왕은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중개자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대표자로서 야웨의 뜻이 이스라엘에 전달되도록 하는 신적 신탁의 수령인 이었으며 백성들의 요구와 호소를 야웨께 전달하였다.
② 왕은 신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특권을 가졌다.
그는 양자관계에 의해 상속자가 되며 야웨는 그에게 백성들을 맡겨 소유를 삼게 한다. 나아가 그는 열방을 유업으로 받는 통치의 특권과 그의 소유를 땅 끝까지 이르게 한다는 소유의 특권을 받는다.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어떤 지도자들에게도 이렇게 크고 광범위한 특권이 주어진 적이 없었으며 다만 야웨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만이 가지는 특권이었다.
③ 외부를 향한 왕의 직책은 전쟁을 지휘하는 것이다.
왕은 외부의 적들에 대한 승리를 통해 백성의 번영을 확보해야 하는데(시 20:21)그는 백성의 적들과 싸우며 야웨 자신이 그로 하여금 이것을 위해 나서게 한다.(시 18:40)
④ 왕은 내부를 향해 법과 정의의 수호자로서 보장자로서 활동한다. 이를 위한 전제는 야웨에 대한 그 자신의 자세이다. 왕은 자신이 야웨의 뜻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음을 안다. 그는 의로운 자 ( ) 로서 야웨와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고 (삼하 23:3-5;시 101:2-4;18:23) 이에 따라 정의로 백성을 다스릴 의무를 지고 있다(시 45:4-8;72:1-7,12-24). 그러므로 왕의 현세적 임무는 계약과 율법의 기본적인 목표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왕권과 야웨의 관계는 양자 결연에 의해 맺어졌으며 또한 신의 왕권에 철저히 복종했고 왕의 신권을 철저히 거부한 것이 이스라엘 왕권사상의 특징이라 하겠다.

3.다윗에게 나타난 이상적 왕권
이스라엘 왕국의 이상은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영원한 계약속에 깃들여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상적 왕국을 세우기 위하여 맺은 이 영원한 계약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조로 되어 있다. 일찌기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된 이 계약의 내용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합법적 근거가 된다고 보았다. 이 계약은 본 논문의 주제 본문인 사무엘하 7장에서 나타나는 바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셔서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만드
셨고
둘째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세째 다윗의 왕권으로 말미암아 평안을 주고
네째 다윗의 가문을 축복하여 다윗의 집을 세우고 대대로 왕이
나서 나라를 다스리게 할 것이며
다섯째 야웨는 아버지가 되고 다윗은 야웨의 아들로서 양자관계
를 맺게 되며
여섯째 다윗의 집과 나라는 영원히 보전될 것이다.
이러한 계약의 말씀은 이스라엘 왕권에 의한 이상형을 묘사하고 있다. 다윗과 그의후손을 통하여 나타난 이스라엘의 왕도는 역사적 성격의 왕권을 명백히 하고 있고 하나님이 택하시고 기름 부으신 왕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왕권을 역사적으로 구현하셨다. 결국 이스라엘의 이상적 왕에 대한 사상은 다윗의 영원한 왕국의 허락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인들의 메시야 대망 사상은 다윗 왕조가 망한 후인 바벨론 포로 기간에도 사라지지 않고 이스라엘의 종말론으로 계승되고 위대한 다윗의 후손인 메시야의 출현을 기다리게 되었다.

C.메시야 왕권

1.왕의 칭호로서의 메시야
메시야(Messiah)란 말은 히브리어로 인데 그 뜻은 기름부음 받은자 (The anointed)란 뜻이다. 이 어근은 셈족어로 로 원래는 칠을 입힌다. 또는 기름으로 단장 한다란 뜻이다. 곧 "기름부음 받은자"란 표현만이 마지막 때의 인물인 왕을 지칭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메시야 칭호가 등장하고 있지 않거나 다른 이름으로 대치되고 있을 때에도 우리는 메시야 기대사상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구약성서에서는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을 야웨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불렀다.
구약에 39번 나오는 이 용어는 대부분의 경우 당시 통치하던 유다나 이스라엘의 왕을 우선적으로 지칭하는 것이었다(29회) 또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사 45:1) 포로후기 문헌에서는 가끔 왕의 기능을 일부 담당했던 대제사장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으며 (단 9:25-26) 마지막으로 선지자로 이해되었던 족장들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시 105:15;대상 16:22) 특별히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자의 형태는 그 상황에 따라서 여러가지 다른 표현을 하고 있다. 즉 나의기름 부음 받은자라고 했고 또한 당신의 기름 부음 받은자 라는 표현으로 다윗과 솔로몬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 다른 곳에는 그의 기름 부음 받은자 라는 말로 사무엘이 사울과 다윗과 다윗의 후손에 대해서 지적한 곳이 있다. 그리고 한번은 야곱의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표현으로 다윗을 지적했다(삼하 23:1).
왕에게 베푸는 기름부음 의식은 매우 중요한 뜻을 가진다. 아마르나 문서 (Amarna Letter)가운데 한편을 보면 주전 14세기에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왕에게 기름 부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른바 요담의 우화에도 왕들의 기름부음이 언급되고 있다 (삿 9:15). 왕에게 기름부음은 단순히 대관식의 일부에 그치지 않고 왕의 권세를 행사하는 권력 이양의 표상이었으므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름부음을 받음으로써 그 왕은 사무엘상 9:16이 밝혀주듯 하나님의 신정적 신하가 되었다. 사울(삼상 10:1), 다윗(삼상 16:3), 솔로몬 (왕상 1:39), 예후(왕하 9:6) 그리고 유다의 요아스(왕하 11:12)의 기름부음은 아주 상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반면 압살롬(삼하 19:10)의 기름부음은 여호아하스의 경우(왕하 23:30)처럼 간단히 언급되고 있다.
왕에게 기름 붓는 것은 원래 선지자가 집행했다. 선지자 나단 역시 솔로몬의 기름부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왕상 1:45) 그 뒤에 와서 왕에게 기름붓는 권리는 전적으로 제사장들의 특권이 된 것이 분명하다.(왕상 1:39; 왕하 11:12)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제사장 또는 선지자가 집권하는 신정적 의미의 왕에게 기름붓는 것 외에도 민주적인 기름부음이 행해졌으며 이때 백성들이 그들의 대표인 장로들을 통해서 왕에게 기름부었다고 어떤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들 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유랑시대의 히브리인들은 선출된 특정 개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서 기름부음으로 족장에 임명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슬람교 이전의 아랍유목민들이 행하던 것과 꼭 같은 의식이라고 한다. 또한 이스라엘 왕의 기름부음 역시 초기 왕국 시대에는 그와 비슷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서에는 이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
기름부음의 신정적인 성격은 왕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자(삼상 24:6 ; 26:16)였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의 백성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신하였다는 사실에도 그 예증을 찾을수 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자 라는 호칭은 뒷날 기름부음 받은자 로 축소되어 히브리어와 아람어로는 메시야로 표기되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Christ)로 옮겨졌다. 예수 역시 성령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였다. 이와 같이 구약성경 중에는 주로 왕을 가리켜서 기름부음을 받은자라고 했다. 이와 같은 표현은 야웨와 왕 사이의 긴밀한 관련성을 지적해 준다. 이스라엘의 신앙속에는 야웨 하나님을 그들의 왕으로 호칭하기가 일쑤였으나 이와 구별하여 세상 나라와 그 백성들을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부여받은 왕을 가리키는 것이다.

2.다윗의 왕권과 메시야의 관계
메시야라는 낱말은 야웨의 기름부음을 받은자 라는 표현에 대한 약칭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사실은 종말론적 의미로 쓰이는 메시야란 이름이 고대 이스라엘 왕들의 성별된 칭호에서 이끌어 왔다고 본다. 그러므로 메시야 사상은 역사적 다윗왕조에 나타나 있다. 즉 메시야에 대한 기대는 다윗의 집에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윗을 통하여 나타난 이스라엘 왕권 사상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준 약속은 다윗왕을 모든 왕의 표준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그 왕을 통하여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미래 왕국의 성격과 운명을 밝히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 예언자들과 시인들은 이 역사적 너머에 나타날 미래의 왕국이 첫째 정치적 카테고리를 벗어난 형태의 왕국일 것이며, 둘째 이 왕국은 다윗왕과 같이 기름부음을 받은 한 메시야로 말미암아 임할 것을 말했고, 세째 그 왕은 반드시 다윗왕의 후손에서 나타날 것을 예언했고 또 그 확신을 전했다. 구약에 나타날 메시야 예언은 장차 오실 한 분에 대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왕국 그 자체보다 그 왕국을 다스릴 왕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가진 것을 본다. 이것은 다윗을 통하여 나타나 여기서는 왕으로써의 메시야를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메시야 왕은 다윗의 집안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하여 메시야의 역사적 존재가 다윗 집안과 관계되었음을 밝힌다. 또 9장에는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리라"(7절)했다. 예레미야서에도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23:5)했다. 그리고 제왕시인 89편(4,20,35절), 132편에도(1,1,11절)다윗의 집안에 약속된 메시야를 말하고 있다.
둘째 이 메시야의 직분이 왕으로 임할 것임을 밝혔다. 이사야 9장에는 "평강의 왕이라"했으며(6절), 예레미야 23장에도 "그가 왕이 되어 지헤롭게 행사하며"라고 했으며(5절), 제왕시 중에서 특히 제2편, 72편, 89편, 132편 등은 왕의 위신과 왕의 권위를 행사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왕위의 영원성과 견고성에 대하여 시편 89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그 위는 해같이 내앞에 항상 있으며 또 궁창에 확실한 증인 달 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36-37절).
세째 이 메시야 왕이 행사하는 정치는 공평과 정의임을 보여준다. 이사야 9장에 "지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보전할 것이라" 했고(7절) 11장에는 "공의롤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라고 했다(5절) 예레미야 23장에는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5절)라고 했으며 또한 제왕시 중에서 특히 72편은 이 공평과 정의가 어떤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라는 첫 기도에서 왕이 공평과 의를 소유할 것을 말하며 그 공평과 의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 백성에게 평강을 주며....가난한자와 궁핍한 자를 긍훌히 여기며....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리니"라고 했다.(1,2,3,13,14절)이런 공의를 행했기 때문에 "그 이름이 해와 같이 장구하리로다.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니 열방이 다 그를 복되다 하리로다" 찬송하고 있다.(17절)
네째 메시야 왕은 구원을 행하시는 분이다. 예레미야 23장에는 "그의 나라에 유다는 구원을 얻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16절)라고 했다. 이 구원의 행사는 제왕시에 더 확실히 나타나 있다. 18편이 그 대표적이다. "야웨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부음 받은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영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50절) 이 구원의 사상이 이사야 40-55장에는 더 강조되어 고난의 종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을 예언했다.
다윗에게 보여주신 이상적인 왕권은 현실 왕들에게는 성취될 수 없음을 알게된 예언자들은 미래에서 그 이상적인 왕을 모색하고 대망하고 있다.

Ⅵ. 결 론

나님의 구원 섭리는 인간이 죄로 인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반복적인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과 자비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죄된 인간을 포기 하지 아니하고 달래기도 하고 훈련 시키면서 역사의 흐름속 에서 그가 택한 백성들과 사람들을 통해 점진적으로 나타내 왔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택하여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과의 긴 여정의 밀애속에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과 섭리 그리고 그의 신성이 나타나 있다. 특히 이 과정 속에 나타난 메시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고난과 역경을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생을 뜨겁고 열광하게 만들었으며 강렬한 소망을 안겨 주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강렬한 소망을 안겨 주었던 메시야 사상의 기원과 발달 과정에서 다윗계약이 가장 중심적이고 전환점이 되었던 것이다.
본 필자가 주제 본문으로 잡은 사무엘하 7:1-17에 대표적인 용어인 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윗계약임을 논증함으로출발점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계약의 의미에 대하여 서술하고 다윗계약에 대한 주석적 작업을 하기 전 다윗계약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특성과 내용, 아브라함과 다윗계약의 연관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 다음에 구약성서 신학의 중요한 주제로서 부각되는 다윗계약에 대한 텍스트인 사무엘하 7:1-17을 중심으로 하여 주석적 고찰을 하였다. 먼저 본문이해를 위한 다각적인 예비분석을 실시하였는데 문맥분석을 통하여 사무엘서의 전체적인 내용이 다윗왕조의 창건과 예언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왕조의 영속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아래 본문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대기와의 병행기사와의 비교를 통하여 역대기 저자는 제의적 관점에서 솔로몬과 성전에 중점을 둔 반면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왕조의 영속성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부족 동맹체제를 중심으로 한 왕정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예비분석의 결과를 토대로 주석작업을 하였다. 그 결과 본문은 집 이란 중추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옛 선조들의 약속이 취해졌으며 다윗이 야웨를 위하여 집(성전)을 지을 것이 아니라(5절) 야웨께서 다윗에게 집(왕조)를 지어주실 것(11절b)이라는 대귀를 근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핵심은 11절b와 16절에 집약되고 있는 다윗 왕국의 설립과 영원성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결론에 이 본문이 메시야 기대의 모체가 되었음을 밝혔다. 다윗 계약에서 본 메시야 사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 왕정제도가 고대근동의 왕권사상에 영향을 받았음을 전제하고 고대근동의 왕권사상과 이스라엘의 왕권사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스라엘의 왕정제도는 유목생활에서 점차 정착생활로 들어가는 때에 보다 강력한 정치적 결합을 필요로 하는데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왕정제도의 도입은 역사적 필연성에 의하여 생긴 것이다. 역사적 필연성 때문에 생긴 왕권은 주변제국의 왕권과는 차이가 있다. 즉 주변제국들의 왕 개념은 신적인 왕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권사상은 신의 왕권에 철저히 복종했고 왕의 신권을 철저히 부인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권 사상은 고대 제국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구별되는 가운데 다윗의 영원한 약속이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영원한 약속의 허락은 후에 메시야 사상의 원천으로서 왕과 관련된 메시야 예언이 이사야 9장, 11장, 예레미야 23:5-8 그리고 제왕시편 들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구원사상이 강조되고 있는 이사야서의 고난의 종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역사가 그의 기름받은 자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임이 예언되고 있다는 사실에도 주목하여야 한다. 결국 다윗에게 주어진 나단신탁의 약속은 후대 왕을 넘어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이 대망의 메시야가 출현했음을 알린다.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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