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이 성립되었는가를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자.
삼위일체의 기초 정의는 니케아 신조(Nicence Creed)에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피조된 것이 아니요, 아버지와 동질이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 동질이라 함은 아들이 아버지와 본체 , 본질, 존재에 있어서 꼭 같다는 뜻이다. 개신교회의 신학교 교재로 사용하는 학교 교재로 사용하는 교회 역사(The Church in History, B.K. Kuiper 지음)에서 삼위 일체설의 역사적인 형성 과정을 살펴보자 (B.K. Kuiper의 같은 서적 41쪽 46쪽 참조).l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이후 약 3백년동안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 상당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두 장로인 아타나시우스(Athanasius)와 아리우스(Arius)는 이 문제에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동질이라고 주장 했으니 즉 성부와 성자는 본체, 본질, 존재에 있어 꼭 같다고 주장했고, 아리우스는 그리스도는 피조물의 첫째되며 아버지와 동질이 아니라고 주장했으며, 그리스도도 하나님, 즉 아들 하나님 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 교회 지도자들은 양분되어 아타나시우스의 이론에 따르거나 아리우스의 이론에 따랐다.
한때는 아리우스의 이론이 더 맹위를 떨쳤으나 논쟁이 계속되어 그 해결을 위하여 당시 기독교인이 아닌 콘스탄틴 황제가 AD 325년에 종교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종교회의를 니케아(Nicaea) 종교회의라고 한다. 이 종교회의에서는 아리우스의 의견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 이유는 한분의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아버지도 하나님이요, 아들도 하나님이라면 이교도와 같이 다신을 믿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한분의 하나님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은 본체와 본질과 존재에서 같은 분이라고 규정해야 했다.
그러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정한 내용에 반발이 심하였고 많은 감독들이 니케아 종교회의 결과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또한 니케아 신조는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는 토의하지 않았고 포함하지 않았다.
그래서 AD 381년에 제 2차 종교회의가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되었고 다시금 아타나시우스의 의견을 정리하여 재확인하였고 성령의 신성에 대해서도 성부, 성자와 동일시하여 삼위일체교리(The Doctrine of the Trinity)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계속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와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AD451년 니케아 근처 갈게돈(Chalcedon)에서 다시금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삼위일체설을 확정했다.
결국은 AD 321년부텨 AD 451년에 걸쳐 1백30년 동안이나 논쟁이 계속되어 결론이 맺어진 종교회의의 결과물이다. 삼위일체설을 주장하게 된 근본 원인은 아버지와 아들이 개체가 다른 두분의 하나님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이교도가 믿는 다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본체와 존재는 같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연구의 전제가 되어온 만큼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리이므로 신중한 해석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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