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스크랩] 기독교 강요 제 1부/(반(反)삼위일체 이단에 대한 논박. 21-29)

하나님아들 2013. 1. 24. 11:16

기독교 강요 제 1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강론 13장(21-23항)

김명복 |

 

(반(反)삼위일체 이단에 대한 논박. 21-29)

21. 모든 이단의 근거 : 모두에 대한 경고
더욱이 사단은 우리의 신앙을 그 근본으로부터 뒤집어 엎기 위해, 부분적으로는 성자와 성령의 신적 본질에 관하여, 또 부분적으로는 위(位)의 구별에 대하여 언제나 커다란 분쟁을 선동하여 왔습니다. 사탄은 거의 모든 시대를 통해서 불경한 정신의 소유자들을 선동하여 이 문제로 정통주의적 교사들을 괴롭혀 왔으며, 오늘날까지 그 타다 남은 불로 새로운 불을 붙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어떤 사람들의 그 왜곡된 헛소리들을 반박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의 나의 특별한 목적은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데 있었지, 강퍅하며 논쟁적인 사람들과 맞부딪쳐 싸우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지금까지 평화스럽게 해석되어 온 진리를 사악한 사람들의 모든 비방에서 보호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갖추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견고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도록 끝까지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만일 여기서 진실로 성경의 감추인 신비에 대하여 논할 경우가 있게 된다면, 우리는 이에 대하여 마땅히 냉정하고 아주 신중하게 사색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사상과 우리의 언어 그 어느 하나도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가 허락하는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그 적은 재능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본질을 측량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매일 같이 바라보면서도 그 태양의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도 아직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닙니까? 실로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터에, 어떻게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본질을 규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힐라리(Hilary)가 말한 대로 하나님만이 자신에 대한 유일한 충분한 증거이시며,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알려질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씀을 떠나 다른 곳에서 그를 찾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신 그대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하나님 자신께 맡기게 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크리소스톰(Chrysostom)이 아노모에오스파(Anomoeans)를 반박하여 행한 설교가 아직 다섯 편이나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설교들은 그 건방진 궤변론자들의 횡설수설하는 입술을 제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곳에서 행한 것 보다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경솔한 행동에 대한 불행한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이 문제를 난해하게 연구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보다 알기 쉽게 연구하도록 하는 경고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 외에는 어떠한 곳에서도 하나님을 찾지 않을 것,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것 외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을 것, 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신성 안에 있는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이 파악하기 힘들다고 하여 그것이 어떤 사람들의 이해력에 기대 이상의 어려움과 고통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인간의 마음은 호기심을 충족시킬 때에는 미궁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저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합시다. 그리고 저들이 비록 이 신비의 고귀함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하늘에 속한 말씀에 스스로 복종하여 지배받게 합시다.


22. 세르베투스의 반(反)삼위일체론
이 교리에 대하여 우리의 신앙의 순수성을 공격한 여러 오류들의 목록을 작성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거추장스럽고 아무런 유익도 없는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야수와 같이 헛소리하는 너무나 많은 이단자들이 하나님의 영광 전체를 전복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저들은 일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무식자들을 불안하게 하며 혼란하게 만드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실로 이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즉시 많은 분파가 생겨났으며, 어떤이들은 하나님의 본질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위의 구별을 혼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이미 충분히 입증된 대로 한 하나님의 본질은 단일하시며 분할되지 않는다는 것, 이 본질은 성부, 성자, 성령에게 다같이 속한다는 것, 한편 성부는 어떤 특성에 의해 성자와 구별되시며 성자도 성령과 구별되신다는 점 등을 확고하게 고수한다면, 아리우스나 사벨리우스 뿐만 아니라 고대의 모든 오류를 주장한 자들에 대하여도 문은 굳게 닫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세르베투스나 그의 부류들과 같은 광신자들이 일어나서 새로운 속임수로 만사를 혼란시키고 있기 때문에, 간단하게나마 저들의 오류를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세르베투스에게 있어서는 몹시 증오스럽고 혐오스러운 말이었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삼위일체론자들을 가리켜 보통 무신론자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여기서 그가 삼위일체론자들을 공박하기 위해 생각해 낸 몰상식한 말들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 일로 이것은 그의 생각의 전체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본질 안에 삼위가 존재한다고 하면 하나님은 셋으로 나누어진 것이 되며, 이것은 하나님의 유일성과 모순되기 때문에, 공상적인 삼부조(三部組)가 될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위(位)란 하나님의 본질 속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표현해 주는 어떤 외적인 관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말씀과 성령이 원래는 하나요 동일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하나님에게는 구별이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으로 오심에 따라 그로부터 다시 다른 하나님인 성령이 유출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세르베투스는 자신의 불합리한 주장에 대해 비유로 착색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이며 그의 관념의 반영이고 따라서 성령은 신격의 그림자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그는 마치 우리 안에와 심지어는 나무나 돌 속에 동일한 영이 실질적으로 존재하여 하나님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기나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분배의 양식에 따라 성자와 성령 안에 하나님의 일부분이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성자와 성령의 신격을 파괴하였습니다. 중보자의 위에 대하여 그가 무슨 헛소리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적당한 곳에서 검토하고자 합니다. 실로 “위(位)”를, 하나님의 영광의 가시적인 현현으로 보았던 이 기괴한 허구에 대하여 구태여 장황하게 반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왜냐하면,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 벌써 말씀이 하나님이셨다고 요한은 확언을 하였지만 그는 말씀과 관념을 완전히 구별하여 놓았기 때문입니다(요 1:1). 그러므로 영원전부터 하나님인신 말씀이 아바지와 함께 계셨으며 아버지와 함께 그 영광을 소유하셨다고 하면(요 17:5), 그는 확실히 외부적인 또는 상징적인 광채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하나님 자신 안에 거하시는 한 실재였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더욱이 천지창조 역사 이외에서는 성령에 대하여 언급된 것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은 여기서 그림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적인 능력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모세는 혼돈한 덩어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유지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창 1:2). 그러므로 여기서 명백해지는 것은 영원하신 성령이 항상 하나님 안에 거하셔서 아주 조심스럽게 천지의 혼돈한 물질들을 유지하시며 또한 여기에 미와 질서를 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은 확실히, 세르베투스가 꿈꾼 것과 같은 하나님의 한 모양이나 표현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곳에서는 자신의 불경건한 사상을 더 공공연하게 드러냈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원한 이성을 통하여 자신을 위해 눈이 보이는 아들을 작정하심으로, 자신을 가시적으로 나타내 보이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세르베투스는 실재(實在)를 환상물로 바꾸어 이를 변형함으로써, 하나님에게 새로운 우연적인 특성들을 조금도 주저함 없이 거짓되게 첨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저주받아야 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과 성령을 보통 피조물과 무분별하게 혼합시키고 있는데, 이들 각 부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그는 공공연하게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신자들의 영혼은 하나님과 동질적이며 영원히 하나님과 공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다른 곳에서, 인간의 영혼 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에게까지도 실질적인 신격을 부여하였습니다.

23. 성자는 성부로서의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이 늪에서 또다른 비슷한 괴물이 나왔습니다. 어떤 악한들은 세르베투스의 불경건이 저지른 그 오명과 수치를 피하기 위해 삼위가 있다는 것을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부만이 진실로 또한 당연히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이 하나님께서 성자와 성령을 지으시고 이들에게 자신의 신격을 주입하셨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실로 저들은 이 가공스런 말을 삼가지 아니하고, 여전히 성부만이 유일한 “본질의 수여자”이시며 이와 같은 특징 때문에 성부는 성자와 성령과 구별되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의 그 가시적인 논증의 최초의 주장점은, 그리스도께서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에서, 바로말해서 성부만이 하나님이시라고 그들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성자에게도 공통으로 적용되지만 성부가 신격의 원천이시며 근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다 우월하므로 탁월한 방법으로 성부에게 이 명칭이 적용되었으며, 또한 이것은 본질의 유일한 단일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만일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그를 한 위격의 아들로 생각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하여 반대합니다. 나는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이 모두 진실이라고 답변합니다. 즉,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말씀이 만세 전에 벌써 성부에게서 나셨기 때문입니다(참조, 고전 2:7), (아직은 중보자의 위격에 대하여 말할 기외가 아니다). 그리고 더욱이 명확함을 기하기 위하여 우리는 위격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여기서 무조건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부와 동등한 말로 이해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성부 이외에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확실히 성자를 이 하나님의 품위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격에 대하여 언급될 때에는, 언제나 참된 하나님의 명칭이 마치 성부에게만 속하거나 하는 것처럼 성부와 성자 사이에 어떤 대립이 허용되어서는 안됩니다. 분명히 이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셨으며(사 6:1), 이 하나님을 가리켜 요한은 그리스도라고 단정하였기 때문입니다(요 12:41).

 

 마찬가지로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자기가 유대인이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거라고 증거하신 분도(사 8:14)역시, 바울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한 유일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롬 9:33). 또한 이사야를 통하여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사 45:23)라고 말씀하신 분도 유일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와 동일하신 분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롬 14:11). 이에 대하여 사도는 다음과 같은 증거들을 첨가하였습니다.

 

 곧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히 1:10, 시 102:25-26)는 구절과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히 1:6, 시 97:7)라는 구절입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에게만 사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께 합당한 명칭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므로(히 1:3), 하나님의 고유한 것이 그리스도께 옮겨진다고 하는 궤변은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라는 명칭은 어디서나 그리스도께 적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존재는 신격에 관한한 자존하시는 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호와라면 이사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분이 바로 그와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 예레미야의 말 또한 주의 말한마디 즉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렘 10:11).


한편 하나님의 아들이 우주 창조 때부터 신격을 소유하였다고 이사야가 자주 증거한 데 대해서도 시인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물에게 존재를 부여케 하신 창조주가 어떻게 자존하지 않으시고 또 자신의 본질을 다른 곳으로부터 빌어 올 수가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성자가 자신의 본질을 성부에게서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자의 자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이를 반대하고, 성자에게 여호와라는 명칭을 부여합니다. 그런데 만일 전체 본질이 성부에게만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 본질은 분할할 수 있는 것이 되든가 아니면 성자에게서 옮겨질 수 있는 것이 되든가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성자가 본질을 빼앗기게 되면 다만 명목상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만일 이 허튼 소리를 하는 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하나님만이 존재하시며 바로 이 하나님이 성자의 본질 수여자이신 까닭에 하나님의 본질은 다만 성부에게만 속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자의 신성은 마침내는 하나님의 본질에서 나온 무엇이 되든가 또는 전체에서 끌어 낸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필연적으로 자기들의 전체에 따라, 성령은 다만 성부만의 영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오직 성부에게만 고유한 그 근원적인 본질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당연한 성자의 영으로 간주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이 다같이 성부와 성자의 영이라(롬 8:9)고 한 바울의 증거에 의하여 반박됩니다. 더욱이 성부의 위가 삼위일체에서 제거된다고 하면, 성부만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 이외에 어떤 점에서 성자 성령과 다르다고 하겠습니까?

 

그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성부와는 다르다고 합니다. 반대로 성부가 성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떤 구별의 특성이 필요합니다. 이 특성을 본질이라고 하는 자들은 본질, 아니 그것도 전체본질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참된 신격을 분명히 말살시키는 것이 됩니다. 확실히 성부는, 성자와 공통되지 않는 어떤 특수한 무엇을 자신 안에 소유하지 않는 한 성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성부를 구별시키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발견하였던 것입니까? 만일 이 구별이 본질에 있다고 하면 성부가 이 본질을 성자와 공유하였는가 공유하지 않았는가에 대하여 그들은 우리에게 답변해야 할 것입니다. 실로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절반만 신이라고 날조하는 것은 가증스런 죄악된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외에도 그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본질을 비참하게 찢어 놓곤 하였습니다. 본질은 성부와 성자에게 다같이 전적으로 또는 완전하게 공통된다는 사실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것이 만일 참이라고 하면, 본질에 관한 한 양자 사이에는 아무런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성부가 본질을 수여하고도 여전히 본질을 그 속에 지니고 있는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그들이 해석한다고 하면, 그리스도는 상징적인 하나님이요 외형적인 명목상의 하나님일 뿐 사실은 하나님 자신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는 말씀대로 하나님께는 “존재한다”는 것보다 더 특수한 것이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출처 : 신들의 찻집
글쓴이 : 벤자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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