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강요’에 대한 평가와 칼빈의 성경관
(이 글은 신학적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설교를 돕기 위한 것이기에 이론적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음을 이해바랍니다.-천국가는 방주 대표 김석숭목사-)
♣종교개혁자 존 칼빈에 대한 간략한 소개
존 칼빈(John Calvin,1509-1564)은 16세기 프랑스 출신의 종교개혁가다.
존 칼빈의 프랑스어 이름은 장 칼뱅이다.
존 칼빈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1483-1546)와 함께 종교개혁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두 사람은 종교개혁운동의 쌍두마차요 두 기둥이다.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운동을 칼빈이 신학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완성하였다.
칼빈은 오늘날 개신교(프로테스탄트, 개혁주의)와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의 창시자다.
칼빈은 사도 바울 이후 기독교 역사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받는다.
칼빈은 신학자요 목회자인 동시에 종교개혁가일 뿐만 아니라 법률가요 인문학자였다.
칼빈의 신학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을 ‘칼빈주의자’라고 부른다.
칼빈주의(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은 종교개혁운동의 결과로 새롭게 회복된 기독교(개신교)의 근본 뼈대와 기틀이 되었음은 물론 근대 유럽 문명의 발달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칼빈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를 강조하였으며 동시에 항상 구원받는 믿음을 위한 성령의 역사, 곧 성령의 내적 조명과 인도하심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그래서 칼빈의 이름에는 항상 ‘성경의 신학자’, 또는 ‘성령의 신학자’라는 별칭이 따른다.
칼빈은 본래 천재적 두뇌의 소유자다.
칼빈은 14세에 파리의 대학에 들어갔으며, 여러 대학을 다니면서 당대 최고의 스승들을 만났으며, 라틴어와 헬라어와 히브리어 등 고대 언어에 능통했다.
또한 신학, 법학, 철학, 문학, 수사학, 인문주의 사상 등 다방면에 걸쳐 심오한 지식을 소유했다.
칼빈은 20대 초반에 성경의 진리를 깨달은 후 로마 카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을 했고, 20대의 젊은 나이로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운동을 이끌었으며, 26세에 ‘기독교 강요’를 출판하여 당시 유럽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칼빈의 위대성은 그의 천재성이나, 육적 지식이나 리더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칼빈의 위대성은 당시 다 하나님을 떠나고, 다 성경에 대해 무지했던 중세암흑시대에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다는데 있다.
종교개혁운동은 칼빈 한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다.
루터와 칼빈 이전에 수많은 개혁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또한 칼빈의 종교개혁운동을 지지하며, 목숨까지 바쳐가며 함께 도운 셀수 없이 많은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칼빈 이후에도 개신교(개혁주의) 신앙을 지키기 위한 싸움과 개혁운동은 수백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헌신과 희생의 터 위에 오늘날 개신교가 세워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종교개혁운동의 궁극적 의의는 일천년 동안에 잃어버렸던 ‘오직 성경’신앙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한데에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섭리요, 그 시대를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다.
♣칼빈의 대표 저서 ‘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에 대한 평가
존 칼빈의 대표 저서인 ‘기독교 강요’(초판1536년, 최종판1559년)는 ‘개신교(개혁주의 교회)의 바이블’로 불리운다.
칼빈의 신학과 사상을 따르는 칼빈주의자들(개혁주의 신앙)은 ‘기독교 강요’를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책으로 여긴다.
‘기독교 강요’는 칼빈이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 아래서 훼손되고 왜곡된 성경과 기독교 진리를 알기 쉽게 요약하여 체계화 하고 교리화 한 책이다.
‘기독교 강요’는 칼빈이 당대에 박해받는 개신교(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변증하고 동시에 교회와 성도 신앙을 타락과 미혹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썼다.
‘기독교 강요’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교리의 뿌리요 근간이며 기둥이다.
‘기독교 강요’는 칼빈주의(개혁주의)의 신학과 신앙의 진수요 꽃이며 자랑이다.
‘기독교 강요’는 ‘오직 성경’에 기초한 ‘기독교 신앙의 교과서’다.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 복음과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탁월하게 정리한 책이다.
‘기독교 강요’는 ‘오직 성경’만으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진리를 확증한 책이다.
‘기독교 강요’는 마치 성경을 읽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성경 그대로를 해석한 책이다.
‘기독교 강요’는 500년이 지난 오늘날 교회에도 여전히 올바른 신앙과 삶을 위한 지침이요 거울이며 교훈이 되고 있다.
‘기독교 강요’는 신약시대의 성경적 구원의 원리에 대한 바른 이해와 분별력을 준다.
‘기독교 강요’는 참 교회와 거짓 교회, 참 종과 거짓 종, 참 신앙과 거짓 신앙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눈을 뜨게 해준다.
‘기독교 강요’는 개신교 신학자나 목회자는 물론 신자들 모두가 성경과 함께 반드시 읽어야 할 기독교 명저요 고전이며 훌륭한 신앙 안내서다.
(위에 기록된 ‘기독교 강요’에 대한 평가들은 필자의 견해가 아니라 인터넷에 소개된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의 일반적인 평가들을 수집하여 요약한 것이다.)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칼빈의 성경관(칼빈 어록)
오직 성경만이 믿음과 종교의 규범이다.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은 절대 무오하다.
성경이 인간의 언어로 쓰여졌지만 성경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들어 있는 책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된 하나님의 사상과 감정이 들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숨결이시며 하나님 자신이 성경 안에서 말씀하신다.
성경은 인간의 사상이나 논리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성경은 어느 곳을 읽어도 성령의 감동으로 안된 것이 없다.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기에 통일성이 있고 각 성경의 개체성이 있다.
성령님의 조명 없이는 성경을 올바로 해석할 수 없다.
성령 없이는 말씀은 죽은 문자다.
말씀 없이는 성령은 환상처럼 떠 다닌다.
성령은 성경의 기자를 감동시켜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
동일한 성령은 오늘날에도 우리를 조명하사 하나님의 말씀의 자연스럽고 분명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확신케 한다.
비록 인간이 성경을 해석하지만 성경 해석의 참된 권위자는 성령님이다.
성령은 우리의 내적 교사요 유일한 참된 해석자다.
성경을 기록하신 성령님이 우리의 지성에 계시하시고 마음에 인을 치셔서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으로 증거하며 확신케 한다. 이보다 더 완벽한 증거는 없다.
성경은 성령님이 운영하시고 주관하시는 학교다.
성령님은 내적 교사요, 학생은 성경을 배우는 자다.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충만하게 배우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하시며 가르쳐 주시는 선생이다.
성령님의 감동을 받지 않은 성경해석과 설교와 가르침은 생명력을 줄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요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다.
인간의 언어적 웅변이나 논증으로 불신자들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구원에 대한 지식임을 설득시킬 수 없다. 심지어 설교만으로도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의 사역으로만 이루어질 뿐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 역시 성령께서 감동시키실 때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본질상 항상 명료하고 분명하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처럼 우리의 능력에 맞추어서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
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성경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해석하는 인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다른 성경과 조화해서 해석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모호한 성경 구절을 만나게 될 때,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 비교하여 그 뜻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모세는 철학자로서 혹은 과학자로서 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과 언어로 썼다(창세기 주석).
성경에는 두 가지 하나님 지식이 있다.
바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구속주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다.
구약은 영적 축복을 현세적 축복으로 표현했다.
구약은 문자적이라면 신약은 영적이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안식일이나 절기나 월삭은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 혹은 그림자이며 그리스도는 모형과 그림자의 본체다.
그림자란 본체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본체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며 그림자는 본체가 그대로 드러나면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구약의 제사 제도나 예식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폐하여진 것이다.
성경은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어야 한다. 누구든지 이것을 외면하면, 평생 학문에 힘써도, 결코 진리를 알지 못할 것이다.
(출처 : 총신대 라은성 교수의 ‘이것이 기독교 강요다’를 중심으로 요약, 편집한 것임)
♣마무리
칼빈의 ‘기독교 강요’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 강요’를 성경과 같은 위치에 두고 맹신하는 것은 칼빈도 원치 않을 것이다.
칼빈은 중세교회의 성인 및 성물 숭배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무덤을 신성시할 것을 경계하여 죽을 때 유언으로 자신의 무덤 위치를 알지 못하도록 묘비를 세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칼빈이 종교개혁운동을 이끌 당시의 유럽은 대부분 기독교(카톨릭)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구교든 신교든 둘 중 하나를 국교로 택하던 시대였다.
실제로 칼빈도 스위스의 제네바시 전체를 마치 ‘신의 도성’처럼 여기고 성경으로 다스리기도 했다.
또한 칼빈의 고향인 프랑스에서는 개신교도들(위그노)이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무력으로 대항하였고 30년 동안의 긴 종교전쟁을 치르기까지 하였다(위그노 전쟁).
사실 ‘기독교 강요’는 칼빈이 당시 프랑스 왕에게 자신을 비롯하여 개종한 프로테스탄트들(신교도들)이 괴상한 극단주의자들이 아니라 오직 성경대로 믿고 국가의 법을 준수하는 백성들임을 밝히면서 프로테스탄트 교회(개혁운동)를 변호 및 변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썼다.
따라서 ‘기독교 강요’의 내용 중 일부는 부분적으로 오늘날 시대의 교회에 맞지 않는 것들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강요’가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고 있다거나 기독교 진리를 완전히 대변하는 것처럼 여겨선 안된다.
‘기독교 강요’가 완전하여 우리를 온전한 신앙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바 ‘오직 성경’만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구원의 유일한 표준이요 교과서다.
‘오직 성경’만이 완전무오하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안내하며 구원 얻는 지혜를 준다.
‘기독교 강요’는 우리를 ‘오직 성경’신앙으로 이끄는 훌륭한 안내서다.
그런의미에서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칼빈의 성경관(어록)이 오늘날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올바른 성경해석을 위한 지침이요 안내서가 되기를 바란다.
칼빈은 진실로 ‘오직 성경’의 신학자였다.
칼빈은 진실로 ‘오직 성경’을 위해 살았다.
‘기독교 강요’에 나타난 칼빈은 ‘오직 성경의 사람’이다.
칼빈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성경’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통해서 ‘오직 성경’신앙을 회복하자.
[출처] 기독교 강요에 대한 평가(오직 예수 성경공부)|작성자 예수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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