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개신교, 개혁주의)
(이 글은 신학적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의 설교와 성도 신앙의 성장을 돕기 위한 것이기에 역사적 사실과 일부 다를 수도 있음을 양해바랍니다.)
-천국가는 방주 대표 김석숭목사-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운동은 마틴 루터(1483-1546)로부터 시작되었다.
16세기 중세교회(서방교회, 로마 카톨릭)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라진 영적 암흑시대였다.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운동은 잃어버린 성경과 기독교(그리스도교) 복음과 신앙의 회복운동이다.
현대 기독교(개신교, 개혁주의 교회)는 바로 종교개혁운동의 산물이요 열매다.
물론 종교개혁운동은 루터 이전과 이후의 수많은 개혁자들의 헌신과 희생의 결과다.
마틴 루터 이전에는 존 위클리프, 얀 후스, 윌리엄 틴들, 사보나롤라 등과 같은 개혁운동의 선구자들이 있었다.
나아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더욱 신학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완성시킨 개혁가는 존 칼빈(1509-1564)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운동을 시작한 역사적 인물 한 사람을 택하라면 일반적으로는 마틴 루터를 가리킨다.
한국교회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기념주일로 정하여 루터의 종교개혁과 16세기의 종교개혁운동을 기념하며 신앙적 유산으로 삼고 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날은 1517년 10월 31일임)
1.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그 영향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독일 출신의 신학자요 종교개혁운동의 선구자다.
마틴 루터는 본래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부로서 아우구스티노스 검은수도원의 ‘수도사’였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교 성서학 사제(교수)로 있으면서 성경을 연구하다가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들이 성경과 불일치하며 성경에서 벗어난 잘못된 것들임을 깨닫게 되었다.
루터가 본격적으로 개혁운동에 뛰어들게 한 시발점이요 종교개혁운동의 뇌관이 된 것은 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면죄부’ 판매였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자금 마련을 위한 면죄부 판매를 승인했고, 유럽 각 나라에 대표를 보내서 죄를 사해주는 면죄부를 구매할 것을 권장했다.
심지어 독일의 수도사요 설교가인 요한 테첼(Johann Tetzel)은 신자들에게 면죄부 판매를 독려하면서 “돈이 헌금궤 속에 떨어질 때 ‘쨍그랑’ 소리와 함께 연옥에 있던 조상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쳤다.
면죄부 판매는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되었다.
마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 논제(조항)의 반박문’을 게시했다.
루터는 반박문을 통해서 당시 교회의 면죄부 판매와 교황권의 연옥설과 공로사상을 강력히 비판하며, 참된 회개와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이단으로 고소당했고 그 후 루터는 계속되는 재판에서 주장을 철회하라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신념을 지켰다.
마틴 루터의 ‘95개 논제의 반박문’ 사건은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횃불이요 신호탄이 되었다.
16세기 곧 중세 말기의 유럽 기독교(로마 카톨릭 교회)는 엄청난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가 세상 나라의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교황권은 유럽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교황들을 비롯하여 많은 성직자들이 종교적 의무보다는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데 더 열심이었다.
특히 성직매매와 면죄부 판매는 당시 중세 교회의 타락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상징이다. 면죄부는 죄를 사면해주는 증서로서 교회가 성전건축을 위한 재정확보를 위해 판매하였다.
무엇보다도 면죄부를 사는 행위를 통해서 자기의 죄는 물론 죽은 자들의 죄까지 사해준다는 교리는 결국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것으로서 신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막강한 교황권과 교회의 권세 앞에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 루터가 담대하게 ‘95개 논제의 반박문’을 통해서 종교개혁의 횃불을 든 것이다.
당시 교황의 권위에 대항한다는 것은 소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실제로 바위를 향해 계란을 던졌다.
1520년,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의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철회를 명령하는 교서를 보냈다. 그리고 루터의 모든 저서를 불태우도록 명령했다.
이에 반발한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문 앞에서 많은 신학생들과 함께 교황의 교서와 로마 교회의 법전 화형식을 거행했다.
루터가 로마 교황청에 소환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재판 자리에 출두하는 것을 만류했다.
그러나 재판 전날 밤, 루터는 시편 46:1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는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내 주는 강한 성이요’(찬송가 585장)라는 찬송시를 지었고 자신을 비롯하여 개혁운동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당시 마틴 루터가 의회 앞에서 심문을 당하면서 한 말이다.
“저는 양심과 달리 어떤 다른 방도를 취할 도리가 없습니다. 저는 여기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도우소서. 아멘.”
결국 루터는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에 의해 파문을 당했고 추방령과 함께 그의 저서들은 금서가 되었다.
그러나 ‘95개 논제의 반박문’ 사건을 발단으로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은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성경 번역 및 출판과 설교를 통해서 많은 지지자들을 얻었고, 칼빈 등 여러 개혁자들의 동참을 통해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1517년에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은 1546년에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쉼없이 계속되었다.
마틴 루터는 30년에 걸친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싸움을 다 마치고 1546년 2월 18일, 64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다음은 마틴 루터의 신앙 표어다.
“어제 주님이 돌아가셨고, 오늘 부활하셨으며, 내일 다시 오실 것처럼 살자.”
마틴 루터는 오늘날까지도 신앙의 자유와 개혁정신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은 마틴 루터 한 사람에 의한 것은 아니다.
마틴 루터 이전에도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개혁운동을 일으킨 많은 개혁자들이 있었다.
마틴 루터 역시 그 이전의 개혁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존 칼빈 등 많은 개혁가들의 동참을 통해서 단순한 신앙 운동에 그치지 않고, 프로테스탄트(개신교, 개혁주의 교회)라는 새로운 종교운동으로 확산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독일 영주들과 유럽의 군주들이 루터의 사상과 개혁을 지지하며 종교개혁에 참여하였고, 이는 로마 카톨릭 교회로부터의 독립을 가속화하고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개혁운동은 특히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와 스코틀랜드 지역 등에서 두드러졌다.
종교개혁운동의 결과 신성 로마 제국 내에서 제국의 분열이 심화되었고, 그것은 결국 유럽 각국의 근대국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운동은 단순히 종교적 변화에 그치지 않고, 서구 사회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변화와 개혁을 이끌어 냈다.
개인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중시하는 루터의 개혁사상은 근대 시민사회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유럽 문명의 발달을 비롯하여 현대 민주주의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큰 기여를 했다.
2.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성경번역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위해 가장 역점을 두고 힘쓴 일은 바로 성경번역이다.
루터는 교황으로부터 파문과 함께 추방을 당한 후에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도망하여 은신하면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루터는 당시 신부들조차 읽기 어려워하던 라틴어로 쓰여진 불가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은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을 통해서 더욱 빠르게, 더 많은 대중들에게 보급되었다.
인쇄술은 루터와 칼빈 등 개혁자들의 설교와 저서를 유럽 각 나라로 널리 퍼뜨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이는 종교개혁운동을 성공시킨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인쇄술의 발명 또한 종교개혁운동의 확산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루터의 종교개혁은 성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잃어버렸던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한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모든 신자들이 성경을 소유하고,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사도시대 이후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기까지 1천년 동안을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중세교회시대 영적 암흑기의 원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성경 외에 다른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대신하고, 성경의 진리를 훼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을 구호로 삼아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것이다.
3.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구호(모토) ‘3대 솔라’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하면서 외친 ‘3대 솔라’가 있다.
①‘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
②‘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
③‘솔라 피데’(오직 믿음)
마틴 루터의 ‘3대 솔라’에 훗날 존 칼빈이 ‘솔루스 크리스투스’(오직 그리스도)와 ‘솔리 데오 글로리아’(오직 하나님께 영광)를 더하여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토대가 된 종교개혁 5대 강령이 만들어졌다.
『종교개혁 5대 강령』
①오직 성경(Sola Scriptura)
②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③오직 믿음(Sola Fide)
④오직 은혜(Sola Gratia)
⑤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i Deo Gloria)
종교개혁 5대 강령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책인 성경66권을 주신 이후 신약시대의 성경적 구원의 원리를 바르고 정확하게 정립한 것이다.
2천년 전이나, 500년 전이나, 현재와 미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성경적 구원의 원리는 동일하며 그것이 바로 종교개혁 5대 강령이다.
오늘날 개신교(개혁주의 교회)는 종교개혁 5대 강령을 목회와 신앙의 푯대로 삼고 그 원리를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
단언컨대 종교개혁 5대 강령의 원리에서 벗어나거나 부족하면 온전한 복음이 아니다.
4. 마틴 루터의 성경관
마틴 루터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외치면서 성경만이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표준임을 강조했다.
루터의 ‘오직 성경’은 종교개혁운동의 핵심 원리로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외침과 함께 ‘오직 성경’만이 최고의 권위를 가지며, ‘오직 성경’ 이외의 그 어떤 것도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성경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는다.
16세기의 중세 교회 시대에는 교황과 교회의 결정이 성경과 같은 권위를 갖거나, 성경 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나아가 성경에 근거가 없는 온갖 거짓 교리들이 난무했다.
대표적으로 교황무오설, 마리아 숭배, 연옥설, 고해성사, 성인과 성상 숭배, 신부사죄권, 외경 등이 있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는 ‘오직 성경’만이 최종적 권위를 가지며, 성경만이 최고의 심판자였다. 루터에게 있어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오류가 없는 완전한 말씀이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해석과 관련하여 “성경은 그 스스로 해석한다.”고 가르쳤다.
루터는 성경은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의 조명에 의해서만 해석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모든 성경은 항상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루터가 성경해석과 관하여 한 말들이다.
“성경은 유일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권위 있는 말씀이며 기독교 교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누구에게나 공개되어 있고, 문체가 명료하며 자기 해석이 가능하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라.”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다. 성경을 따면 그리스도의 피가 나온다.”
“신약은 구약의 해석이다. 구약 성서는 본문이고 신약성서는 해석이다.”
“모든 성서와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가리킨다. 이것은 성서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한 약속된 은혜와 죄사함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고 예수께서 직접 증언하신 것과 같다(눅 24:46-47). 그분을 믿는 자 외에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모든 예언과 예언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가 다른 것에 관하여 말한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곳을 제외하고.”
“성경이 없는 교황보다 성경으로 무장된 평범한 성도들이 더 강하다.”
루터에게 있어서 설교의 핵심은 항상 오직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고, 그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그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 자신이 말씀이기에 설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곧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루터는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실제로 설교로 종교개혁을 이루었으나 동시에 설교의 제한된 영향력을 인정했다.
“설교자로서 나는 단지 사람들의 귀에 말씀을 전할 수 있을 뿐입니다. 나는 그들의 마음속에 믿음을 부어넣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강요하거나 관철시킬 수 없습니다. 오직 마음속에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자유롭게 놓아두어야 합니다. ... 우리는 말씀을 설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루터는 능력 있는 설교자였으나 항상 설교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루터는 구원얻는 믿음은 결국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며, 또한 성령님의 역사임을 인정했다.
그래서 루터는 탁월한 신학자요 설교가임에도 명백한 강요나 강압을 거부하였다.
“나는 설교할 것이고, 말할 것이고, 글을 쓸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에게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자유롭게 강요 없이 다가옵니다.”
루터는 훗날 자기의 경험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은 모든 것을 행하고 바르게 하였습니다.”
5.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의 성경해석 원리(공통점)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은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의 쌍두마차요 두 봉우리다.
루터와 칼빈의 성경관은 대부분 일치한다.
칼빈은 루터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성경해석에 있어서 루터의 성경해석방법을 따랐다.
루터와 칼빈이 성경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은 것이 바로 “성경은 그 스스로 해석한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는 것이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는 오늘날 개혁주의 신학에서 가르치는 성경해석의 대원리가 되었다.
마틴 루터는 모든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을 목표로 성경을 연구하였다.
루터는 성경을 해석하되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해석’을 강조했다.
*마틴 루터 :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다. 성경을 따면 그리스도의 피가 나온다.”
*존 칼빈 : “성경은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어야 한다. 누구든지 이것을 외면하면, 평생 학문에 힘써도, 결코 진리를 알지 못할 것이다.”
루터와 칼빈은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분명한 성경해석원칙 아래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사적 성경해석과 설교’를 강조하였다.
루터와 칼빈은 ‘오직 성경’으로 구원을 얻기에 충분하다고 확신했기에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라’고 외친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성경, 제9절 : “성경 해석상 오류를 범하지 않는 방법은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어떤 성경 구절의 참되고 온전한 뜻을 찾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그 뜻을 더 명백히 나타내는 다른 성경구절로서 밝혀야 한다.”
6.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모토(구호) ‘오직 믿음으로’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7절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근거요 원동력이 된 유명한 성경구절이다.
‘오직 믿음으로’(솔라 피데)는 루터의 신학과 신앙을 대표함과 동시에 종교개혁운동을 승리로 이끌게 한 핵심 모토요 슬로건이다.
루터는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인간의 행위나 선행(공적)을 통해서도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 것에 반대하여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는 ‘오직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진리는 신학적으로 ‘이신칭의’ 또는 ‘칭의구원’의 교리로 불린다.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는 루터의 신앙을 본받아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가르쳐야 한다.
신약시대에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선포하고, 듣는 자들이 ‘오직 믿음’으로 화답할 때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구원받는 믿음을 얻는다는 것이 바로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이 확립한 성경적 참된 구원관이다.
7. 마틴 루터의 만인제사장론(만인사제설)
‘만인제사장론’은 종교개혁의 제2원칙이라고 불리울만큼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대표하는 핵심적 교리다.
‘만인제사장론’은 신약시대의 모든 신자들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으며 따라서 구약시대와 같은 제사장(사제, 중재자)은 더이상 필요 없다는 주장이다(벧전 2:5-9, 계 1:6, 5:10).
‘만인제사장론’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임을 선포한 교리다.
루터의 ‘만인제사장론’은 모든 신자들은 스스로, 직접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고, 또한 평신도들까지도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계급에 의해 구분되지 않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다 평등하다는 사상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사실 당시 사제와 평신도의 구분이 엄격했던 로마 카톨릭 교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주장이었다.
중세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들에게는 말씀 해석권 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사죄권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루터는 모든 구원받은 자들은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영적 제사장임을 선포한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목사는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을 뿐이지 그 외에 어떤 특권도 가지지 않았다. 따라서 목사나 성도나 부르신 은사의 차이만 있을뿐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같은 제사장들이다.
물론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 또는 역할이 다를 뿐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동등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루터의 ‘만인제사장론’은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구분과 경계를 헐고 모든 신자들이 스스로, 직접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루터의 종교개혁과 ‘만인제사장론’은 중세 유럽 사회에 종교적 자유와 개인주의를 확산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였고 또한 오늘날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오늘날 모든 개신교(개혁주의 교회)는 루터의 ‘만인제사장론’을 인정하고 따른다.
♣마치는 글
종교개혁운동의 결과 탄생한 오늘날 개신교(개혁주의 교회)는 마틴 루터와 존 칼빈 등 수많은 개혁자들의 수고와 땀과 피가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
종교개혁운동이 남긴 신앙의 유산 중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들라면 바로 ‘종교개혁 5대 강령’이다.
오늘날 교회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되 ‘종교개혁 5대 강령’의 원칙에 합당해야 한다.
종교개혁 5대 강령은 신약시대의 성경적 구원의 원리를 가장 잘 요약하고 있다.
종교개혁 5대 강령의 틀 안에서 성경을 해석할 때 세계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한 신앙을 소유할 수 있다.
종교개혁 5대 강령은 세계 모든 교회가 전하는 복음이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복음(교회, 신앙)이 되게하는 가장 훌륭한 지침이요 강령이다.
종교개혁 5대 강령을 목회와 신앙의 울타리로 삼자.
마틴 루터와 존 칼빈 등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의 수고와 희생을 잊지 말자.
'오직 성경'신앙을 회복하자.
‘오직 성경’을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믿고 전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자.
[출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그 영향(오직 예수 성경공부)|작성자 예수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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