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3대 시제 (빌 3:13-16)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이 시간에 “믿음과 3대 시제”라는 제목입니다. 3대 시제란 과거 현재 미래를 가리키는 낱말입니다. 매년 12월이면 어느 때보다 세월의 빠름을 절실히 느끼는 계절입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 앞에서 충실한 삶이었는지 돌아보는 좋은 시간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 네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쏘아올린 화살이요, 둘째는 입에서 나간 말, 셋째는 지나간 세월, 그리고 놓쳐버린 기회랍니다. 이 중에서 지나간 세월만큼은 그 누구도 다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어떤 대그룹의 회장이 어느 여성잡지와 인터뷰에서 자기 재산이 3조쯤 되는데 자기를 40대에서 10년만 살게 해준다면 그 재산을 다 주고라도 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시간이란 돌이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 고귀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시간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86,400초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 시간 속에 신앙생활이 충실하면 승리하지만 부실하다면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시간이요, 천국 갈 준비까지도 모든 것이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시간을 대하는 자세를 셋으로 나누어서 말씀합니다.
1. 과거를 대하는 자세가 있습니다.
13절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이처럼 잊어야 할 과거가 있습니다. 기억할수록 손해를 보는 것들이 그것입니다. 성공의 도취감 같은 것 잊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이 이 도취감에 빠져 교만하다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삶을 좌절시키는 실패의 기억도 잊어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 같은 악감들도 다 버려야 합니다. 이런 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우리 속담에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양에도 “용서는 모래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사막을 걸어가다 말다툼으로 친구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사람은 기분이 나빴지만 그는 모래에다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뺨을 때렸다."
오아시스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에서 목욕을 하다가 맞았던 사람이 늪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때 뺨을 때렸던 친구가 그를 구해주었습니다. 늪에서 나온 친구는 이번에는 돌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었다."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가 적었는데, 너를 구해주니까 돌에다가 적었지?" 그때 친구는 "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 우리는 모래에 그 사실을 적어야 해.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 버릴수 있도록 말이야.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였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돌에 기록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이처럼 기억할 것은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마음의 치유입니다. 그래서 사65:17에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은혜 안에서 슬픔도 고통도 원한도 상처도 잘한 것도 못한 것도 기억나지 않고 기쁨으로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이 처리가 잘 되어야 훌륭한 성도입니다.
반면에 잊지 않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5:15에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다고 과거를 상기시키십니다.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을 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를 애굽 땅에서 구원해 낸 여호와라고 강조하시면서, 그것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여러 제도와 절기를 만들고 기념물을 세워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수4:7)에게 설명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위대한 이스라엘이 있게 한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 안 벽에 이런 세 줄의 글이 쓰여 있다고 합니다. “과거를 기억하라(To remember the Past), 현재를 살라(To live the Present), 미래를 확신하라(To trust the future)”라는 글입니다. 그것은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과거를 거울삼을 때 현명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고, 과거를 잘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미래를 대하는 자세가 있습니다.
13-14절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 말씀은 미래를 향해 뛰는 바울의 모습입니다. 미래에도 생각해야 할 미래가 있고, 생각하지 않아야 할 미래도 있습니다. 생각해야 할 미래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천국의 소망입니다.
행2:17에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신 그 비전입니다. 이 꿈은 먼저 복음전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요, 나아가서는 개인과 교회와 민족과 세계와 시대를 향해 주어지는 꿈입니다.
1864년 덴마크는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대패하고 남부의 기름진 땅인 실레스비히와 홀스타인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호남 영남 충청을 잃고 강원도 산악지역만 남았습니다. 전쟁 때문에 경제는 파멸 직전이요, 남자들은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여자들은 살기 위해 몸을 팔았습니다. 덴마크 민족사에 있어서 가장 어두웠던 순간입니다.
그때 민족의 어두움을 밝히려고 그룬트비 목사와 달가스 대령이 얼어나 국민들을 계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룬트비 목사는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자연 사랑을 부르짖었습니다. 달가스 대령 역시 밖에서 잃은 국토를 안에서 찾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족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그 결과 어려움을 극복했고 현재는 최고의 개인소득을 올리는 선진국가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꿈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국내외의 상황을 바라보면서 믿음과 애국심으로 깨어있는 백성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때 우리가 하나님게 부르짖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한국에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항상 꿈꾸어야 할 미래는 천국의 소망입니다. 바울은 빌1:23-24에서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버려야 할 미래가 있습니다. 염려의 미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하셨습니다. 내일 할 염려는 내일해야지 오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버려야 할 미래가 있습니다. 내가 꾸는 인간의 꿈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곡식을 쌓아두고 이제부터 평안히 먹고 마시며 즐기자고 자기를 위해 계획하고 결심하는 헛된 꿈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그 시대에 아라비아에는 약대를 몰고 장사하는 대상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어디 가면 한 밑천 잡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는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5-16)고 경고했습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 뜻이면 할 것이라 해야지 자기를 믿음으로 헛된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에 대한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16절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이것은 현재에 충실한 바울의 모습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사실 시간은 현재밖에는 없습니다. 과거는 지나갔으니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없습니다. 그리고 바른 오늘이 없다면 과거의 경험도 헛것이고 오늘의 준비가 없다면 희망찬 미래도 없다는 점에서도 오늘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고후6:2에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했습니다. 예수 믿고 은혜 받는 일을 뒤로 미루어서는 안 됩니다. 또 오늘 해야 할 일은 피차 사랑하고 격려하며 돕는 것입니다. 히3:13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히3:15에는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했습니다. 현재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빈센트 감독은 매일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구를 매일 반복하였습니다. “나는 오늘도 순수하고 진실하게 생활할 것이다. 불만족 불순한 생각, 자기만의 추구 등등은 모두 물리칠 것이다. 그리하여 기쁨과 정열과 환희와 거룩하고 조용한 행위를 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돈을 쓰며 주의 깊게 행동하고 또 화해하는 삶을 살 것이다. 봉사하는 데는 근면하고 모든 사람을 믿으며 하나님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깨끗한 믿음을 갖도록 애쓸 것이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기 위한 다짐이었습니다.
그러나 마24:48-51에 “그런데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신다고 했듯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면 주님 앞에 서는 그 날 잘했다고 칭찬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열심히 복음전도하고 신앙생활 잘하여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하는 것입니다.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뒤로만 미루는 것은 사단의 거짓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시간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매일 새벽 일어나 어둔 밤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 충실하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셨던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시고 죄인 구원을 위한 미래만 바라보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셨습니다. 우리 주님을 본 받으십시다. 그리고 바울처럼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가장 현명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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