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종말론 - 제 3 장 : 칠십 이레 5. 공백기 - 7. 한 이레의 언약
5] 육십이 이레 후
(1)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짐.
이 예언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3년의 공생애를 마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2) 예루살렘의 멸망.
로마의 디도(Titus)장군과 5만 5천 명의 군대에 의하여 포위 3개월 만에 완전히 함락되었다.
* 마 24: 2 -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3) 예루살렘이 끝까지 황폐하여짐.
다니엘의 예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의 역사가 끊임없이 계속될 것으로 예언되었다.
이스라엘이 독립한 지 7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촉즉발의 전쟁 위험 속에 세계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5. 공백기
육십이 이레 후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의 연결 문제가 제일 설명하기 어려운 난제이다.
전천년설자와 무천년설자와의 사이에 육십구 이레와 칠십 이레를 어떻게 연결하는가? 하는 문제로 많은 논란이 있었다.
1] 두 견해
(1) 연속적 해석(Continuous Interpretation)
연속적 해석은 중단 없이 계속되는 기간으로 해석하는 방법이다.
① 순수하게 칠십 이레의 기간이 연속적으로 흐른다는 무천년설 학자들의 해석법이다.
+---7 이레---+---62 이레---+----1 이레----+
전반 후반
+--------------------------------+--------+-------+
주전 538 주후27 30 34
중건령 공생애 십자가 이방인 복음전파
② 69와 1/2이레는 연속적으로 흐른 후에 나머지 반 이레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보는 방법이다.
소수의 전천년설 학자들의 견해이다.
+----7 이레----+-----62 이레-----+-전3 1/2- +-후3 1/-2+
+--------------------------------------+-------------+------------+
주전457 408 주후27 30 ?
2차귀환령 유대인회복기 공생애 십자가 상징적
(2) 공백기 해석(Gap Interpretation)
69 이레와 70 이레 사이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26절에 나타난 내용들이 성취되는 알 수 없는 시간들이 흐른 뒤에 이어질 것으로 해석하는 방법으로 역사적 전천년설 학자들이 취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공백기적 해석방법이 더욱 분명하게 증명하므로 저자는 공백기적 해석방법을 따르고 있다.
① 본문으로 증명한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와 같이 칠십 번째의 이레는 ‘장차’의 일이다. 그러므로 69이레와 70 이레 사이에는 공백기가 존재한다.
즉 70번째 이레는 장차 맺을 언약이라는 사실이다. ‘중건령’ 후부터 ‘일곱이레가 지나면 성이 중건(25절)’되고 ‘육십이 이레가 지나면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한 왕(25절)’이 일어난 후에 ‘장차 한 이레의 언약이 굳게 정하여질 것(27절)’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26절은 자연스레 공백기임을 증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가 끊어진 사건과 ‘성읍과 성소가 훼파’되는 사건은 이미 성취되었으나 ‘끝까지 전쟁’이 있다는 사건은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② 이방인 시대의 삽입
* 행 13: 46 -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 갈 3: 14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이 배척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며 그 죗값을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 돌리도록 요청한 대로 그들에게는 형벌의 기간이요, 반면 이방인에게는 구원의 기간이 필요하였다.
로마서에서 이스라엘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게 함’이라고 증언하였다. 따라서 충만한 구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공백기가 필요하다.
* 롬 11: 11-12, 25 -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③ 이스라엘의 7대 절기로 입증
이스라엘의 절기는 봄 절기 농사와 가을 절기 농사를 통한 7대 절기가 있다.
레위기 23장에 기록된 7대 농사 절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표상으로써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봄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 복음의 씨를 뿌리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절기를 예표하며, 중간의 넉 달 동안의 기간은 성령 하나님의 은혜 시대로 이방인 구원이 충만하게 이루어지는 시기를 예표하고, 가을 농사 절기인 나팔절과 속죄일, 초막절은 추수의 절기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의 종말을 예표 하는 절기이다.
+ 5 0 일 + 공 백 기 +
십자가 무덤에 부활의 성령강림절 예수재림 -영원속죄 --천년왕국
죽으심 계 심 첫열매
-+----------+---------+----------------+--------------+------------+------------+--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장막절
1월14 1월15 1월16 맥추절 7월1일 7월10일 7월10일
+----------------------+-------------------------------+-------------+------------+--
구원성취(봄절기) 넉달농사, 이방인구원 구원완성(가을절기)
과거 (여름절기) 현재 미래
6. 이스라엘 형벌의 역사
1] 무화과나무의 비유
* 마 21: 19 -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 막 11: 13-14, 20-21 -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본문은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 하루를 주무신 예수님께서 다음날 새벽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다가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잎만 무성함을 보고 나무를 향하여 저주하시니 그 나무가 곧 말라죽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무화과나무의 저주를 기록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무화과나무의 때가 아님에도 열매를 요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왜 사람도 아닌 식물에게 저주를 내리셨을까? 식물을 향하여 저주하신 예수의 사역은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사역과 너무나 판이하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저주사건은 모형적이요 비유적임을 알아야 한다.
무화과나무가 열매는 없이 잎만 무성함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이 신앙의 겉모습만 풍성할 뿐 신앙의 열매가 없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무화과나무의 저주는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예수님의 저주이다.
(1)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2) 길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의 사명을 의미한다.
(3) 잎사귀는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하는 조건을 상징한다.
(4) 무성함은 율법의 형식만 무성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5) 열매 없는 나무는 무성한 형식으로 채워진 텅 빈 믿음의 그림자를 상징한다.
(6) 뿌리째 마름은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한 완전한 멸망을 상징한다.
(7) 영원토록 열매를 맺을 수 없음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영혼 구원의 사명이 이방인에게 주어지고 박탈당함을 상징한다.
2] 완전한 멸망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미 주전 600여 년 전 다니엘을 통하여 예언되었으며 주후 70년 로마에 의하여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였으나 유대인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바벨론에게 멸망당한 전례를 남겼다.
거듭하는 실수를 계속하자 예수의 음성에 기우리지 않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이 또다시 처참한 멸망을 당하였다.
* 마 23: 37-38 -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
3]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다.
* 눅 19: 41-44 -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디도 장군은 야간에 도주하는자들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 밖에서 성의 높이만큼 토성을 쌓았다.
성에 들어간 로마 병사들은 이스라엘 자녀들을 잡히는 대로 백성이 보는 앞에서 성 꼭대기에서 밖으로 던져 죽였다.
금붙이를 삼켜 탈출하려던 이천여 명의 유대인들을 붙잡아 배를 갈라 꺼냈을 뿐 아니라 땅속에 숨겨놓은 금을 찾기 위해 건물의 성터를 파헤쳤으며, 화재로 금이 녹아 돌 사이로 스며들자 그것을 캐내기 위해 완전히 파헤쳐져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았다.
4] 이방인에게 짓밟힘
* 눅 21: 24 -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이방인에게 짓밟힌 예루살렘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1) 주전 63 - 주후 395 : 로마제국
(2) 주후 395 - 638 : 동 로마제국
(3) 주후 614 - 635 : 페르시아
(4) 주후 635 - 1072 : 아랍국가
(5) 주후 1072 - 1099 : 터키
(6) 주후 1099 - 1221 : 십자군
(7) 주후 1221 - 1517 : 이집트
(8) 주후 1517 - 1917 : 오트만터키
(9) 주후 1917 - 1948 : 영국
(10) 주후 1948년 5월 14일 독립
5] 노예로 팔림
* 신 28: 68 -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싣고 전에 네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적군에게 남녀 종으로 팔려 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
이스라엘에게는 출애굽이 민족의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면 애굽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민족의 죽음을 의미한다.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 징계의 회초리가 내린다.
* 왕하 17: 3-6 - 3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4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5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6 호세아 제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 왕하 25: 1-26 - 예루살렘의 멸망, 성전 붕괴, 유다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이집트의 광산으로 보내졌으며, 건장한 장정들은 로마의 투기장으로 17세 이하는 노예로 팔려간 숫자가 9만 7천이나 되었다.
70년 로마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에서 사망한 자는 110만 명이었다. (요세푸스 제 2권, 유대전쟁사 Ⅱ)
6] 피를 흘릴 것이 예언되었다.
* 마 23: 35 -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마 27: 24-25 -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유월절 행사를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유대인들을 디도는 하루에 5백 명씩 십자가 형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럴 뿐만 아니라 히틀러는 6백만 명을 독가스실의 연기로 사라지도록 하였다.
7] 네 자녀를 위해 울라.
* 눅 23: 28-30 -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본문은 두 가지 의미로 살펴보아야 한다.
(1) 나를 위하여 울지 말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죄 많고 저주 받은 인간이 동정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2)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왜냐하면 전대미문의 불행한 사건이 유대인들의 앞날에 전개되기 때문이다.
푸른 나무가 불에 탄다는 것이 이상하듯이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순리적으로 역행함이요 하나님 아버지께 죄를 범하여 진노의 심판에 던져질 마른나무 같은 너희들이 어떻겠느냐?
따라서 본문은 주님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여인들에게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우는 것이 훨씬 위급한 상황임을 깨우쳐주는 권고의 말씀이다.
(3) 요세푸스에 의하면 로마군대의 포위로 말미암아 기근이 심했다.
어머니들이 품안의 자녀들이 여위어 가는데도 그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한 조각의 빵조차 자식의 입 속에서 빼앗아 먹는 것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요단강 건너편에 살았던 마리아라는 여인은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지키려 왔다가 포위되었다. 기근이 극심 하자 자기의 아들을 향하여 ‘오 불쌍한 아가야 전쟁과 기근과 내란 속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 너를 보호하겠니? --- 그러나 노예 신분과 배고파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강도들이란다. 자 아가야, 이리 와서 내 음식이 되어다오. 그래서 강도들에게는 복수의 분노를 보여주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유대인의 재난이 얼마나 극심하였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이야기꺼리가 되어다오.’라며 아들을 죽여 몸을 구운 다음 반은 먹고 반은 싸서 감추어 놓았다.
음식 냄새를 맡고 침입한 강도들로부터 협박을 받고 뜯어먹다 남긴 아들의 시체를 넘겨주니 강도들이 너무나도 끔직한 광경을 보고 공포로 몸을 떨면서 떠나가 버렸다. (요세푸스 유대전쟁사, 6권 3장 p 269-271)
8] 세계의 포로가 된다.
* 눅 21: 24 -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 신 28: 64-68 - 64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 곳에서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 65 그 여러 민족 중에서 네가 평안함을 얻지 못하며 네 발바닥이 쉴 곳도 얻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거기에서 네 마음을 떨게 하고 눈을 쇠하게 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하시리니 66 네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주야로 두려워하며 네 생명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라. 67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이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 68 여호와께서 너를 배에 싣고 전에 네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네가 다시는 그 길을 보지 아니하리라 하시던 그 길로 너를 애굽으로 끌어 가실 것이라 거기서 너희가 너희 몸을 적군에게 남녀 종으로 팔려 하나 너희를 살 자가 없으리라.
7. 한 이레의 언약
칠십 이레 중에서 마지막 한 이레에 대한 예언을 살피고자 한다.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중 하나이다.
이 사건이 초림으로 성취될 것인가 아니면 재림으로 성취될 것인가 하는 기간 문제와 한 이레의 언약을 맺는 ‘그’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1] 여러 견해
한 이레의 기간이 성취되는 시간문제와 한 이레의 언약을 맺을 ‘그’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학 자 : 한 이레 : 그 : 학 자 : 한 이레 : 그 : 학 파
박윤선 : 초림 : 예수그리스도 : 칼 뱅 : 초림 : 예수그리스도 : 무천년설
이상근 : 재림직전 : 적그리스도 : 간 하 배 : 초림 : 예수그리스도 : 무천년설
한정건 : 재림직전 : 적그리스도 : 레온우드 : 재림직전 : 적그리스도 : 전천년설
손기태 : 재림직전 : 적그리스도 : 버 틀 러 : 초림 : 예수그리스도 : 전천년설
장두만 : 재림직전 : 적그리스도 : 할 레 이 : 초림 : 예수그리스도 : 전천년설
천정웅 : 초림 : 예수그리스도 : 라 이 리 : 재림직전 : 적그리스도 : 세대주의
조용기 : 재림직전 : 적그리스도 : 왈부르드 : 재림직전 : 적그리스도 : 세대주의
(1) 초림 예수 그리스도로 보는 견해
마지막 한 이레의 사건을 육십구 이레에 이어져 초림으로 완성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대다수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학자로 7 이레, 62 이레, 한 이레의 구분을 오해한 것 같다.
이들의 주장이 옳다면 70 이레의 예언은 사도행전의 전반부인 주후 34년경을 넘어 설 수 없기 때문이다.
(2) 한 이레의 절반은 초림의 예수로 절반은 신약시대로 보는 견해
한 이레의 전반부는 주님의 공생애 기간으로 후반부는 신약시대 전체의 기간으로 보는 견해다.
이들의 주장도 문제가 있다. 전반부는 실제적인 기간으로 후반부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보기 때문이다.
(3) 마지막 대환란의 기간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로 보는 견해
한 이레의 기간을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의 사건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대환란의 때에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보는 견해다.
‘그’는 대환란 때에 나타날 한 인격체로서의 적그리스도로 보는 견해를 말한다.
칠십 이레를 균형 있게 전개하고 그 예언의 성취를 미래적인 것으로 주장한다.
2] 저자의 견해
한 이레의 언약을 맺는 ‘그’는 적그리스도로 본다.
그의 성격으로 보아 적그리스도와 근접하기 때문이다.
언약을 정할 그 때는 공백기에 이어지는 것으로 아직은 알 수 없으나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나타날 대환란 때의 일로 요한계시록 6장 이하의 내용이 이 때로 본다.
(1)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맺는다.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이 시기적으로는 ‘장차’이며,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적 일로 ‘많은 사람’으로서 범세계적인 사건임을 암시한다.
언약의 기간 역시 ‘한 이레’라는 한정된 시간으로 언약의 방법은 ‘굳게 정하겠고’로서 언약의 성격이 평범한 것이 아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 히 13: 8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2) 이레의 절반에 나타날 결과
한 이레의 조약을 굳게 맺은 ‘그’는 이레의 절반에 이르게 될 때 ‘제사와 예물’을 금하고 그 언약을 파기할 것이다.
이것은 종교의식을 금지함을 암시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셨으므로 종교의식을 더욱 강화시킨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의 무리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헤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 히 10: 23-25 -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3) 잔포하다.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 할 그의 성격은 잔포하다.
즉 종교적 관점에서 가증한 우상숭배를 통하여 무서운 일들을 일으키는 미운 물건이다.
(4)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성격은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라고 하였다.
미운 물건은 혐오스러운 것을 의미하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혐오스런 것이 날개를 뒤덮는 일을 할 수 있을까?
* 요 1: 29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5) 정한 종말이 있다.
‘그’는 ‘정한 종말까지’라는 말씀처럼 제한된 시간 내에서 수행되는 활동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언약을 맺는 주체는 신적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입장에 서있음을 암시한다.
(6) 황폐케 하는 자이다.
‘그’의 성격은 ‘황폐케 하는 자’임을 본문이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언약의 주체자인 그는 정한 종말까지 황폐케 하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면 적그리스도가 어떻게 황폐하게 할 것인가?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칭 하나님이라며 우상숭배의 가증스러움으로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다.
* 살후 2: 4 -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7)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자이다.
‘정한 종말까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는 예언은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기간은 ‘정한 종말’이 있으며 대상은 ‘황폐케 하는 자’임을 묘사하고 있다.
3] 다른 성경으로 입증된다.
다니엘과 예수 그리스도,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종합하여 보자.
구 분 : 명 칭 : 사 역
단 7: 20 : 작은 뿔 : 성도를 이김
단 8: 9 : 작은 뿔 : 군대의 주재를 이김
단 9: 27 : 그 : 제사와 예물을 금지
단 11: 31 : 멸망케 할 미운 물건 :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함
단 12: 11 : 멸망케 할 미운 물건 :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함
마 24: 15 : 멸망의 가증한 것 : 거룩한 곳에 선다
살후 2: 4 : 대적하는 자 : 성전에 앉아 자칭 하나님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한 왕의 백성’이 주후 70년 예루살렘을 파괴시킨 로마의 디도 장군이라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한 그’는 이레 절반이 되면 제사와 예물을 금지시키며 황패케 할 자로 주님의 재림 직전에 있을 적그리스도에 의한 마흔 두 달 동안의 통치를 예표 하는 것이다.
* 계 13: 4-5 -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8. 결 론
70 이레의 비밀은 하나님의 종 다니엘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주신 예언으로 선포되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 예언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축복을 주는지 깨달아야 한다.
1]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 욥 12: 22-23 - 22 어두운 가운데에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23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민족들을 널리 퍼지게도 하시고 다시 끌려가게도 하시며
* 욥 38: 5 -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 행 17: 26-27 -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70 이레의 비밀은 육적 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하여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받을 심판의 그림자로써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회개하여 깨어 기도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 축복을 깨달아 다시 오실 예수로 소망을 삼도록 하는데 있다.
* 계 17: 14 -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2] 여섯 가지의 축복이 성취된다.
70 이레 비밀의 목적이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주어진 예언이다.
육적 이스라엘이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의 모형이라면 이 비밀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성들과 거룩한 교회들을 위해 주신 복음이다.
그러므로 70 이레 후에 발생하는 여섯 가지의 사건은 교회와 성도들에 주신 지상 최대의 축복이다.
3]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면 무서운 심판이 있다.
* 요 3: 16-19 -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예루살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김이 없이 무너짐 같이 추수의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예수를 영접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자가 하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4] 우리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 신 28: 45-46 - 4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네게 명령하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너를 따르고 네게 이르러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 46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징과 훈계가 되리라.
5]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여야 한다.
* 마 16: 3 -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 롬 11: 25-27 -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그들의 죄를 없이 할 때에 그들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6] 한 이레를 예비하는 신앙인이 되자.
육십구 이레의 사건이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이제 남은 한 이레도 역사 가운데 드러날 것이다.
이를 예비하여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자. 따라서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
* 마 24: 36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오직 주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빛의 자녀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다.
* 살전 5: 4-6 -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야 한다.
* 엡 6: 13-20 -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모이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자.
* 히 10: 23-25 -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7] 말씀대로 믿고 따르는 신앙을 소유하자.
* 계 1: 3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오직 예수!재림 신앙!땅 끝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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