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양소를 빼앗아 간다, '드럭머거' 주의보
입력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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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우리에게 더욱 친숙해진 약이 바로 타이레놀이다. 타이레놀은 아세트아미노펜이란 성분의 해열진통제인데,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다 보니 제품 이름인 타이레놀이 마치 일반명사처럼 불리고 있다. 하지만 타이레놀을 과다 복용하면 간(肝)에 치명타를 입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간에서 아세트아미노펜이 흡수·대사되는 과정에서 글루타치온 성분을 대거 소진시키기 때문이다. 글루타치온은 간에서 독소를 분해하거나 독소를 꽉 붙들어 함께 배설되는 등 해독작용을 한다.
타이레놀 과다 복용하면 간이 망가진다
실제 타이레놀을 과다 복용했다가 응급실에 실려 가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럴 때는 NAC(N-아세틸시스테인)를 대량 주입한다. 글루타치온은 시스테인·글루탐산·글리신 등 3개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분자 구조가 큰 데다 외부에서 직접 주입하면 몸속에서 제각각 분해되어 버린다. 외부에서 글루타치온을 직접 투입하면 효율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따라서 전구체(precursor) 역할을 하는 NAC를 투여하면 몸속에 들어가 글루타치온으로 잘 변환된다는 것이다.
국내 시판 타이레놀 500㎎ 제품에는 '하루 최대 8정(4000㎎)을 초과해서 복용하면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가능한 최단기간 동안 최소 유효용량으로 복용할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1년간 응급실에 온 중독 환자를 조사해 보니 전국 15개 응급의료기관에서 5997명의 중독 환자가 발생했는데, 그중 10대들이 중독된 약물로는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이 21.1%로 가장 많았다. 자해 목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정해진 용량보다 많이 먹으면 더 빨리 나을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만일 타이레놀을 오래 먹어야 한다면 간을 위해 NAC나 글루타치온의 보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렇게 인체의 치료를 위해 먹는 의약품이 몸속에 있는 영양소를 갉아먹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2010년 미국에서 '드럭머거(Drug Muggers)'라는 책이 나왔다. 저자인 수지 코헨은 1989년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했으며 매스컴에도 인기 약사로 자주 등장했다. 드럭머거에서 '머거'란 노상강도를 의미한다. 따라서 드럭머거란 '질병을 치료한다고 오랫동안 의약품을 복용했을 때 몸속에 있는 유익한 영양소가 강탈당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첫째는 의약품이 체내에서 대사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영양소의 양이 몸속에 저장되어 있는 양보다 많거나, 둘째는 의약품 자체가 영양소의 체내 흡수와 합성 과정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기 복용할 경우에는 적절한 영양소의 보급이 필요하다.
사실 드럭머거는 공식적인 의학 용어가 아니다. 동의하지 않는 의사나 약사도 많다. 증상 치료를 주로 하는 일반의학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친 의약품에 대해서만 "근거 있다"고 인정하려는 의료진 입장에서는, 그저 개별 연구나 동물실험 정도에서 확인된 사항을 인정하기는 싫어한다. 하지만 절대 가치로 여기는 임상시험 자체도 설계나 진행 과정에 허점이 한두 개가 아닌 점을 감안하면, 인체 건강을 향한 다양한 길이 있음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드럭머거 이론은 대체로 기능의학을 지지하는 의료진에게 선호받고 있다. 다만 '약으로 인한 영양제의 결핍과 적절한 보충'을 강조하다 보니,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만드는 회사의 마케팅 수단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드럭머거 이야기는 '근거'로 포장한 상술(商術)"이라고 폄하하는 약사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체가 약으로 인해 영양소가 결핍되는 피해를 실제로 당하느냐 하는 점이다.
만성질환 약들이 영양소 결핍 초래 가능
특히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다면, 의사의 처방에 따라 꾸준히 복용하는 약이 많다. 대부분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특정 영양소가 결핍돼 우리 몸에 생각지도 못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요통과 다리 경련의 원인이 고지혈증약 때문일 수도 있고, 부정맥이 변비약 때문에 발생할 수 있으며, 만성피로가 피임약 때문에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희경 약사는 "영양소의 결핍은 이미 갖고 있는 질환의 관리를 어렵게 만든다"면서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약을 복용했는데, 그 약으로 인해 영양소의 결핍이 일어나고, 그 결핍으로 인해 질환의 관리가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밝혔다. 유 약사는 "몸속의 영양소가 부족하면 약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해서 생기는 찌꺼기(호모시스테인)의 농도가 높아진다"면서 "호모시스테인은 일종의 독성 아미노산인데 장기간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에게서 15~20% 높은 것이 확인되었으며, 이 때문에 약을 먹어도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아 병이 악화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덧붙였다.
대한약사회 초청으로 2016년 한국을 방문했던 수지 코헨 약사는 "약을 오래 복용할 수밖에 없는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 환자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면서 "약사가 따로 지도하지 않더라도 약을 복용 중인 환자부터 자신에게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가 무엇인지 알고 보충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드럭머거에 대해 의료진은 더 많은 연구가, 환자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
GC녹십자웰빙은 지난 4월 29일 '만성질환 약제 선택에 따른 영양소 보충과 관리'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최세환 서울성모신경외과 원장이 좌장을 맡았고, 세부 세션으로는 △스타틴 및 메트포르민 계열 약물 복용 시 필요한 영양소(조문숙 제민통합내과정형외과 원장) △비만 약제 복용 시 부작용을 줄이고 치료효과를 올려 줄 수 있는 영양소(김진욱 히포크라타의원 원장) △프로톤펌프억제제(PPI) 복용 시 꼭 필요한 영양소(이홍찬 위비앙병원 원장) △골다공증치료제와 함께 복용해야 하는 영양소(황덕원 참든든내과 원장) 등이 진행됐다. 최근에는 비슷한 세미나가 종종 열리고 있다. 대략 지금까지 알려진 드럭머거의 대표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 당뇨병약(메트포르민)국내 당뇨병 환자의 80%가 처방받고 최근에는 다양한 항산화 기능으로도 주목받는 메트포르민은 포도당의 생산과 흡수를 차단해 혈당을 낮추는 약물이다. 그런데 메트포르민이 장 내부 표면에 달라붙어 포도당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비타민B12(코발라민)의 체내 흡수도 방해하는 부작용이 벌어진다. 미국 미시간대의 9년 전 연구를 보면, 메트포르민 장기복용 환자 30%의 체내 비타민B12 양이 14~30% 감소됐다. 비타민B12는 원래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 장 내부 표면에 있는 수용체에서 흡수되는 비타민이라, 장내 미생물이 건강하지 않으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비타민B12가 부족하면 감각신경에 손상이 생겨 손발이 따끔거리거나 운동신경에 손상이 생겨 팔다리 무력감(無力感)이 생긴다. 드물지만 그에 따른 빈혈이 생길 수도 있다. 일부 환자는 손발이 따끔거리는 것을 놓고 당뇨병 합병증인 당뇨신경병증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수지 코헨 약사는 "비타민B12만 보충해줘도 증상이 금세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자칫 당뇨신경병증을 치료하는 불필요한 약을 하나 더 복용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당뇨병학회(ADA)는 '2022년 당뇨병 관리지침'에서 "메트포르민으로 치료받은 환자들, 특히 빈혈이나 말초신경장애가 있는 환자들의 비타민B12 수치를 주기적으로 측정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타민B12는 육류·해산물·유제품에 많이 들어 있다. 따라서 채식주의자들은 비타민B12가 결핍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영양제 형태라면 합성형이고 저렴한 시아노코발라민보다는 활성형인 메틸코발라민이 더 낫다는 평가다.
● 고혈압약(베타차단제)고혈압약인 베타차단제는 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이 베타라는 이름의 수용체와 결합하는 것을 막는다. 만일 에피네프린이 베타수용체와 결합하면, 심장이 수축하는 힘을 강화해 혈압을 높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베타차단제가 수면을 유도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합성도 방해한다는 점이다. 베타차단제를 오래 복용하면 체내 멜라토닌 양이 줄어든다. 불면증이나 수면장애에 사용되는 멜라토닌의 경우 우리나라는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미국에서는 슈퍼마켓에서 과자 사듯 보충제로 구입할 수 있다. 멜라토닌의 부작용이나 남용을 경계한 것으로 보이지만, 다양한 긍정적 기능이 많은데 굳이 전문의약품으로 묶어 두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수지 코헨 약사는 "이때는 취침 전 1~3㎎의 멜라토닌을 섭취하고, 한 달 후에도 효과가 없으면 의사의 동의하에 4~5㎎으로 늘리라"며 "취침을 위해서는 멜라토닌 대신 비타민B12를 보충해도 된다"고 조언했다. 음식 중에는 귀리·옥수수·토마토·바나나에 멜라토닌 성분이 많다고 한다.
● 고혈압약(이뇨제)고혈압약으로 잘 쓰이는 다이크로지드 등의 이뇨제(利尿劑)는 신장(콩팥)에서 나트륨의 재흡수를 억제하여 소변으로 배설하도록 유도하고 부종을 제거하여 혈압을 낮춘다. 소변량을 늘리고 혈액량을 줄여 혈관에 가하는 압력을 낮춘다는 얘기다. 문제는 소변량이 늘면 수용성 비타민인 비타민B1(티아민)이 몸 밖으로 많이 빠져나간다. 2003년 캐나다 오타와병원 연구 결과, 이뇨제를 장기 복용한 환자의 98%에게서 비타민B1이 결핍돼 있었다고 한다. 비타민B1은 세포가 에너지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성분이라 몸속에서 부족하면 생리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포도당을 에너지로 전환하지 못하고 혈액의 흐름이 느려지면 팔다리 저림, 다리 근력 약화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심장박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부정맥(不整脈)이 생길 수도 있다. 비타민B1은 돼지고기·시금치·양배추·해바라기씨 등에 많다. 영양제를 고른다면 단순 티아민보다는 벤포티아민이나 푸르설티아민 같은 활성형 제품을 추천한다.
● 고지혈증약(스타틴)리피토·크레스토·조코를 비롯한 스타틴계 약물은 오늘날 가장 효능이 뛰어난 의약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스타틴은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효소(HMG-CoA)의 활동을 억제시켜, 체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춘다. 문제는 코엔자임큐텐(Coenzyme Q10) 역시 콜레스테롤과 합성 경로가 같기 때문에, 스타틴을 먹으면 체내에서 생성되는 코엔자임큐텐의 양도 줄어든다. 2007년 미국 예일대 조사 결과, 스타틴을 장기 복용한 경우, 체내 코엔자임큐텐이 16~54% 감소됐다.
사실 코엔자임큐텐은 인체 모든 세포에서 발견되는 조효소이자 항산화 물질로, 미토콘드리아에서 마지막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코엔자임큐텐이 부족하면 심장이나 폐의 기능이 떨어져 호흡곤란이 올 수도 있다. 근육이나 신경의 세포 기능이 떨어져 근육 경련이나 통증이 생길 수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코엔자임큐텐이 스타틴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인다는 임상시험 결과가 제대로 없다는 이유로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관련 연구는 연구대로 진행하되, 코엔자임큐텐을 먹음으로써 스타틴 부작용을 막는다는 의료진도 꽤 많다. 어차피 30~40세부터 체내 합성이 급감하는 영양소가 코엔자임큐텐이므로, 스타틴과 상관없이 먹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유튜브에서 '리틀약사'로 유명한 이성근 약사는 "스타틴 이외에도 가슴의 두근거림이나 혈압약에 쓰는 베타차단제, 혈압약에 주로 복합되어 있는 다이크로지드 같은 이뇨제, 당뇨병 치료제인 아마릴이나 메트포르민이 코엔자임큐텐을 고갈시킬 수 있다"면서 "요약하자면 당뇨병·고혈압·고지혈증이 있는 사람은 코엔자임큐텐을 잘 챙겨 먹는 게 좋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코엔자임큐텐은 소고기·닭고기·고등어·계란·시금치에 많다. 영양제로는 유비퀴논과 좀 더 흡수율을 높인 유비퀴놀 등 2가지 형태가 있다.
● 위산분비억제제(PPI)대부분의 영양소는 음식을 통해 들어온 뒤 위산에 의해 분해되어야만 몸에 흡수될 수 있다. 보통 위염, 위식도역류질환, 소화성궤양 등을 치료하는 관건은 위산 조절에 있다. 위산분비억제제 중에서도 대표적인 프로톤(양성자)펌프억제제(PPI)는 위벽에서 산을 분비하는 펌프의 활동을 억제한다. 그런데 위산분비억제제를 장기간 복용하면 위산의 생성이 줄어들면서 비타민·미네랄 등 대부분 영양소가 체내로 흡수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종합영양제를 함께 복용하는 것이 좋다. 또 위산이 억제되면 음식으로 들어오는 유해균이 파괴되지 않고 장에 도달하기 쉬우므로 유산균 제품을 따로 챙겨 먹는 것도 좋다.
● 피임약(에스트로겐)최근 피임약이 보편화되면서, 한 번 시작하면 오래 복용하게 된다. 먹는 피임약에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들어있는데, 에스트로겐은 우리 몸에서 비타민B군(群) 흡수를 돕는 소화기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피임약 복용은 미네랄인 셀레늄·마그네슘·아연 등의 혈중 농도를 감소시키고, 비타민C도 고갈시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면역력 저하, 수면장애, 우울증 등이 올 수 있다. 오정석 약사는 "경구(經口)피임약과 함께 비타민제를 복용해도 피임약의 효능을 방해하지 않는다"면서 "피임약을 먹는다면 미네랄, 비타민B군(비타민B1·B2·B3·B6·B9·B12), 비타민C를 두루 함께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 변비약(비사코딜)변비약 비사코딜 성분은 변비와 장내 분변 제거에 사용되는 약물이다. 장의 점막에 작용해 점액 분비를 촉진한다. 문제는 이 점액이 칼슘과 칼륨의 흡수를 방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변비약을 오래 먹을 경우 칼슘은 하루 900㎎ 이상, 칼륨은 하루 3500㎎ 이상 섭취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 있다.
● 아스피린혈관계질환 때문에 저용량의 아스피린을 장기간 먹는 사람은 비타민C 결핍을 조심해야 한다. 비타민C는 보통 위장에서 흡수된 다음 단백질과 결합한 형태로 혈중에 남아있다. 그러나 아스피린을 오래 먹게 되면 비타민C를 빼놓고 단백질과만 결합한다. 결과적으로 남아도는 비타민C가 많아지면서 소변으로 배출된다. 아스피린은 또 비타민C가 많이 필요한 백혈구 같은 조직에 비타민C가 도달하는 것을 막아 몸 밖으로 배출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아스피린을 오래 복용하는 사람들은 비타민C가 많은 감·귤·토마토·딸기 등의 과일·채소를 많이 먹어야 한다.
사실 드럭머거는 꼭 약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이성근 약사는 "약물 말고도 영양소를 결핍시키는 생활습관이 있다. 첫째 커피는 우리 몸속의 미네랄을 빼앗아 간다. 둘째 탄산음료인 콜라는 칼슘을 고갈시킬 수 있다. 셋째 술은 비타민과 미네랄을 고갈시킨다. 마지막으로 만병의 근원인 담배는 한 개비당 비타민C가 25㎎ 정도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최홍섭 객원기자 idfch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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