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죽은 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원

하나님아들 2012. 7. 27. 00:08

죽은 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원

 

 비성경적 교리의 원조인 로마 카톨릭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에 구원에 관한 또 다른 찬스가 있는 것처럼 속이는 “연옥”교리를 만들었는가 하면, 어린이들이 죽어서 가는 곳, 즉 “림보”라는 가상의 장소를 만들어 놓고 교리로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을 위한 성직자들의 기도와 살아남아 있는 가족들이 헌금 상자에 던진 동전 소리와 함께 죽은 자의 영혼이 연옥에서 조금씩 올라온다고 가르친다.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철학자들로부터 유래한 이 연옥의 교리는 대표적으로 플라톤도 주장했는데, 로마 카톨릭이 적극적으로 발전시켰다.

 

한마디로 죄인들이 탈출구를 만들어 놓고 자신도 속고 남도 속이고 있는 것이다. “림보”에 관한 교리 역시 카톨릭의 주요 교리 중 하나인데, “실제로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세례로 원죄를 씻지 못한 채 죽은 갓난아이들이 머무는 ‘어린이 림보’가 있다. 이 ‘어린이 림보’에는 세례를 받지 않고 죽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정신박약자도 머문다.”고 가르치고 있다.


한마디로 종교인들에 의하여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속고 있는 것이다.

구원받지 않고서는 죽은 후에는 구원에 관한 한 결코 어떠한 새로운 길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살아 있을 때만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주어진다.

 

살아 있는 모든 자에게 참여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나니, 이는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라』(전 9:4). 그런데도 사람들은 죽은 후에 또 다른 기회라도 주어지는 줄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들은 모두 다 성경을 믿지 않고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종교인들이 인간적인 발상으로 만든 이단 교리에 불과하다.

 

성경을 나누지 못하고 억지로 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는데, 그러한 구절은 사후에 또 다른 구원의 기회라도 있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구절들이다. 그러한 구절 중에서도 다음의 구절들은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넘어질 수 있는 대표적인 구절들이다.


그가 성령으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서 전파하셨으니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셨을 때에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 몇 명뿐이니 곧 여덟 혼들이라』(벧전 3:19,20).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문자적 적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때 당시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것은 복음이 아니었고, 전파한 대상도 죄인들의 혼이 아닌 노아시대 당시 순종하지 않았던 영들이었다.

그 영들은 일반 사람의 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며(회수),

죽은 사람의 은 지옥에 가든지 낙원에 가는 것이다.

사람의 영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누가 알리요?』(전 3:21).


 물론 당시 구약성도들의 혼은 지하 낙원에 있었다. 그래서 이 구절이 의미하는 것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특정한 영들에게 전파하신 것이다.(벧후 2:4). 그런데 몇 구절 아래인 벧전 4장에서는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연유로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과 일치하여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일치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벧전 4:6). 특별히 이 구절이 사람들을 더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인데, 말씀을 나누어 보면 결코 어렵거나 오해할 구절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삼일동안 지하세계에 내려가셨다.

그곳에 가셔서 첫째로는 모든 인류의 죄를 지옥에 가셔서 내려놓으시고 지옥의 열쇠를 가지신 그분께서 지옥의 문을 잠그셨다. 그 다음에 당시 지하세계에 있던 아브라함의 품(눅 16:22)이라 불리는 낙원으로 가셨다. 그 낙원은 당시에 지하세계에 있었는데, 창세 이래로 구원받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죽었던 의인들의 혼들이 있던 장소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으시기까지 그곳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 직후 곧바로 그곳에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신 후 자신의 피를 적용하여 그들을 데리고 지금의 셋째 하늘로 데리고 올려가셨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갔고 사람들에게는 은사들을 주셨다.”고 하셨느니라. (따라서 그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먼저 내려가셨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내려가셨던 그가 모든 하늘들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니 그가 모든 것을 충만케 하시려 함이니라.)』(엡 4:8-10).


그래서 지금은 기술적으로 보자면 구약성도들이 가서 대기하고 있던 낙원은 현재 비어 있는 상태이며, 신약시대의 성도들이 죽어서가는 낙원은 사도바울이 밝힌 삼층 천, 즉 셋째 하늘 있는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경영방침이 놀랍지 않는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사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로마카톨릭이 주장하는 것처럼 “연옥”이나 “림보”라는 가상의 장소는 성경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방법은 달랐지만 살아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주장이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죄인에게 다음과 같이 쉬운 예를 하나 들겠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듯이 인터넷을 통해서 어떤 프로그램이든 내려 받기를 하려면 그 순서가 정해져 있다. 그것을 내려 받아 내 것이 되게 하려면 화면상의 명령에 따라서 클릭을 하고 난 다음 맨 마지막에 “설정”이라는 마지막 단계가 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따라서 다 했다할지라도 “설정”을 클릭하지 않으면 결국은 그 내려 받기는 무효로 돌아간다. 그 내려 받기를 열 번, 백번, 천 번을 시도해도 마지막에 “설정”을 클릭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내려 받고자 모든 절차를 마치고 “설정”이라는 단어를 클릭했을 때 그 프로그램이 자신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듯이, 구원도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의 중요성을 깨달아 알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해야만 이루어진다. 지나치게 쉽다는 생각이 들어 썩 마음에 내키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힘들여 한 후에 구원받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즉시 겸손하게 엎드려야만 한다.

 

그렇다. 구원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아무리 관념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지식적으로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분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다른 방법을 쓴다고 하더라도 구원하고는 관계가 없다.


 이런 일은 아직 살아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고 그 믿음을 입술로 고백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결코 다른 길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기능을 주셨고 그 입술로 말하라고 하신다. 마음속에 있는 것이 사람들의 입술에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구세주가 된다고 마음으로 믿는다면 주저하지 말고 당장에 입술로 말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노라.”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롬 10:8-10). 
캐나다 박재권 주재 기자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일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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