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호칭의 기원문제
① ‘여호와’ 호칭의 처음 사용
- 이 호칭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가?
이 신명은 주로 어떤 의도로 사용되고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4)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12:8)
“나는…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창14:7)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창28:13)
ⅰ. 하나님의 천지창조 사역이 기록된 1:1-2:3에 이르기까지는 ‘엘로힘’이라는 하나님의 호칭만이 사용되었다.
ⅱ. 2:4에 와서 비로소 ‘여호와’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4절에서 ‘엘로힘’과 더불어 ‘여호와’란 명칭이 함께 사용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ⅲ. ‘엘로힘’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과 장엄을 강조하기 위한 칭호이고, ‘여호와’는 출6:3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의미를 계시하신 이름으로써 ‘언약을 세우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호칭이다.
ⅳ. 이제 2장에서는 ‘인간창조’와 함께 하나님과 인간과의 언약의 내용이 계시된다. 따라서 이 같은 배경 가운데서 ‘여호와’라는 신명이 사용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은 바로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있다.
ⅴ. ‘여호와’라는 이름은 고유명사로 구약에 6,823회 사용되었으며, 한편 하나님의 일반명사인 엘로힘(힘, 존엄, 탁월성의 뜻)은 2,550회 사용되었다.
② ‘여호와’ 호칭의 기원 문제
- ‘여호와’라는 신명이 모세 때에 처음 계시되었는가?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3:13-15)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엘 샤다이)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6:3)
a. 출6:3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알리지 않으셨다고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ⅰ. 이 말씀은 ‘여호와’라는 신명이 모세 때에 처음 계시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ⅱ. 성경에는 셋과 에노스 때의 사람들이 이미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아브라함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 및 야곱에게 친히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다. 그렇다면 성경은 ‘여호와’라는 신명 사용의 기원에 있어서 서로 상충되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ⅲ. 성경에 의하면 여호와라는 신명이 비록 모세 이전부터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호칭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계시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가 모세에게 처음으로 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ⅳ. 모세가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무엇으로 불러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I am who I am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혹은 나는 나다)”라 말씀하셨으며,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는 조상 때부터 불리던 ‘여호와’라고 밝히셨다.
ⅴ. 하나님께서는 모세 이전부터 불려 왔던 ‘여호와’라는 호칭을 통하여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모세 때에 확실하게 계시하신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통해 자신의 존재의 독특함과 유일무이(唯一無二)함을 나타내고자 하셨던 것이다.
ⅵ. 이로 볼 때 성경은 ‘여호와’라는 이름에 대해 모순된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충적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곧, 출6:3은 이미 사용되고 있는‘여호와’라는 신명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존재의 특성(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라는 글자 자체의 의미와 발음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③ ‘여호와’의 이름에 함축된 뜻
* 하나님은 자존자(自存者)이시다.
*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다.
*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a. 하나님은 자존자(自存者)이시다.
ⅰ. 하나님은 유일하게 누구에 의해 존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원래부터 계신 분이시며, 또한 다른 존재들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절대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ⅱ. “하나님 이전에는?” 하고 질문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은 모든 질문의 끝에 계시는 분이시다. 반면에 다른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께 의존하여 존재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은 ‘무’에서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2)
b. 하나님은 영원한 분이시다.
ⅰ. 하나님은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과 시간과의 관계는 불가사의하다.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 없으시며, 또한 모든 시간(과거, 현재, 미래) 안에 동시적으로 계신다.
ⅱ. 따라서 하나님께는 모든 시간이 영원한 현재일 뿐이며, 동시에 모든 시간들을 초월해 계신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년대는 무궁하리이다”(시102:25-27)
ⅲ. 승려 법정이 죽으면서 남긴 말은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이다. 그러나 인간은 죽으나 사나 시간의 제한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c.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다.
ⅰ. 하나님의 자존성은 영원성으로, 그 영원성은 불변성으로 연결된다. 성경은 오직 한 분 하나님만 변함이 없으심을 말씀한다.
ⅱ. 하나님은 항상 완전한 분이시다. 그분은 결코 완성되어 가는 존재가 아니시며, 불교의 주장처럼 무상(無常)의 존재도 아니시다. 무상(無常)이란 모든 것은 다 생멸전변(生滅轉變)하여 상주(常住)함이 없다는 것이다.
ⅲ. 불교에서는 우주는 인연과(因緣果)의 법칙을 따라 연속적 진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성경은 “주는 여상(如常)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시104:27),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고 말씀한다.
ⅳ. 또한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언약하신 대로 위대한 일들을 옛날에 자기 백성들에게 행하셨으며, 과거 어떤 때와 같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행하시는 분이시다.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 하느니라”(말3:6)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④ ‘여호와’와 ‘야웨’
- 원래 발음은 무엇인가?
ⅰ. 오늘날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여호와’는 ‘야웨’로 발음하는 것이 원음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추정한다.
ⅱ. ‘여호와’는 4개의 히브리어 자음인 ‘YHWH(הוהי)’로 되어 있다. 구약성경은 원래 자음으로만 되어 있어서 독자가 알고 있는 언어 지식을 가지고 모음을 붙여 읽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에 이르러서는 직접 발음하는 것이 불경하다고 생각하여 아무도 그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 몇 백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발음을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발음을 잊어버린 이유에 대해 다른 설도 가능함.)
ⅲ. B.C. 3세기 경 세계 최초로 번역된 헬라어 성경인 70인 역에는 ‘여호와’를 ‘퀴리오스’(주)라고 번역하고 있다.
ⅳ. 그 후 A.D. 6-7세기 경 유대의 ‘마소라(전달)’ 학자들은 자음(子音)으로만 씌어진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모음(母音)글자를 새로 붙이는 것을 확정지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인 네 자음글자 ‘YHWH(הוהי)’에다 ‘아도나이(나의 주)’의 모음을 결합하였다. 그리고 ‘YHWH(הוהי)’를 읽을 때에는 반드시 ‘아도나이’로 읽도록 규칙을 정하였다.
ⅴ. 그러다가 A.D. 16세기경(종교개혁 이후부터) 자음자인 ‘YHWH’와 ‘아도나이’의 모음을 결합하여 생긴 발음인 ‘여호와’가 유포되기 시작했으며, 이때로부터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호와’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ⅵ. 여호와와 합성된 복합이름으로는 여호와 이레(예비), 여호와 닛시(나의 기), 여호와 샬롬(평강), 여호와 찌두케누(나의 의), 여호와 삼마(그곳에 계심), 여호와 라파(치료) 등이 있다. 이러한 이름들은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이 자신에 대해 인간에게 알리고자 하였던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보여 준다.
[야웨]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야웨(YHWH,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이 이름은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구원자요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나타냅니다! 인간이 언약을 깨뜨렸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 약속, 언약에 충실하십니다.(참조, 시 103 편).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쉽게 화를 내지 않으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시니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같이 자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크기 때문이다."(시편 103:8, 11)
이 이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곳은 창세기 2:4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엘로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은 대충 이렇다."(창세기 2:4)
이 대목은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를 다시 설명하는 시점에 처음 등장합니다. 1장에서는 엘로힘만 등장합니다. 그럼 왜 같은 창조를 다루는 기사에서 1장은 엘로힘 이라는 호칭만 사용하고 2장에서는 여호와라는 호칭을 사용할까요? 창세기 1장과 2장은 창조에 대한 두 개의 기록이 아니라 두 강조점을 나타내는 위한 기록입니다. (1) 1장은 우주(물질적)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2) 2장은 인류의 특별한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한 저자의 의도적인 기술입니다.
창세기 2:4은 인간의 특권적인 지위와 창조 목적에 대한 특별한 계시를 나타냅니다. 또한 그 특별한 지위와 관련된 인간의 죄와 반역도 다룹니다.
그러므로 야웨(여호와)라는 호칭은 인간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하나님의 호칭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창세기 4:26에서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야웨)을 부르기 시작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셋도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에노스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다."(창세기 4:26)
그렇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기 위해 소수의 믿는 사람들이 사용하던 이름입니다. 그러다 여호와라는 이음은 사람들 속에서 잊혀진 이름이 됩니다. 출애굽기 6:3 은 초기의 언약백성(족장들과 그들의 가족)이 하나님을 오직 '엘 샤다이'로 알았다고 증언합니다.
여호와(야웨)는 ‘있다’(to be)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하야’에서 왔습니다. 이 YHWH의 정확한 발음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데, 이는 그 고대 히브리어 철자는 모음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웨’(Yahweh)라는 발음이 아마도 정확한 듯합니다. 유대인들은 YHWH를 너무 거룩하여 부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을 자존하시며, 자족하시며, 영원하시며, 그리고 주권자 되신 분으로 선언합니다.
야웨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계시된 것은 출애굽기입니다. 야웨라는 이름은 출애굽기 3:13-16에서 단 한 번 하나님에 의해 직접 설명됩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AT I AM)"(출애굽기 3:14)
출애굽기 3:13-16의 문맥에서, 여기서는 미완료형이 완료형의 의미를 가져 “나는 내가 전에 있었던대로 계속해서 그렣게 있을 것이다” 혹은 “나는 내가 항상 되었던 존재로 계속해서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 그리고 하나님의 불변성과 신실하심을 동시에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특히 야웨는 그 백성을 당신의 주권과 자유로 선택하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불변한 (소금)언약으로 유지하시고 그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바울은 야웨라는 이름의 의미를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풀어서 주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로마서 8:30)
* 참고/ 야웨라는 단어의 다양한 어원적 추론
ㄱ. “열렬한 사랑을 나타내다”라는 아랍어 어근에서
ㄴ. “불다”라는 아랍어 어근에서 (야웨를 폭풍우의 신으로 나타냄)
ㄷ. “말하다”라는 우가릿어(가나안어) 어근에서
ㄹ. 페니키아어 비문에 나오는 “유지시키는 분” 혹은 “성취하시는 분”이라는 뜻의 사역동사의 분사형을 따라
ㅁ. “계시는 분” 혹은 “존재하시는 분”(미래적 의미에서는 “앞으로 계실 분”)이라는 히브리어의 칼형에서
ㅂ. “있게 하시는 분”이라는 히브리어의 히필형에서
ㅅ. “영원히 살아계신 유일하신 분”을 뜻하는 “살다”(예, 창 3:20)라는 히브리어 어근에서
야웨의 이름은 종종 축약적 형태로 사용되는데 이 축약적 형태의 이름은 아마도 원래의 형태일 수 있습니다.
(1) 야(예, 할렐루-야)
(2) 야후(이름에서, 이사야)
(3) 요(이름에서, 요엘)
3) 후기의 유대교에서 이 언약적 이름은 매우 거룩하게 되어(4 자음으로 된 이름 YHWH), 유대인들은 출애굽기 20:7; 신명기 5:11; 6:13에 있는 명령을 어기지 않기 위해 이 이름을 발음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히브리어로 “주인,” “지배자,” “남편,” “주”라는 뜻의 '아돈' 혹은 '아도나이'(나의 주님)로 이 이름을 대치했습니다. 그들이 구약 성경에서 야웨라는 이름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주”로 발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어 번역본에서 야웨를 주(LORD)로 표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4) 엘과 같이 야웨라는 이름도 종종 다른 용어와 함께 사용되어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의 어떤 특징을 강조하여 나타냅니다.
ㄱ. 야웨-이레(야웨께서 공급하실 것이다), 창세기 22:14
ㄴ. 야웨-로페카(야웨께서 너희의 치료자이시다), 출애굽 15:26
ㄷ. 야웨- 닛시(야웨께서 나의 깃발이시다), 출애굽기 17:15
ㄹ. 야웨-메캇디스켐 (야웨께서는 너희를 거룩케 하시는 분이시다), 출애굽기 31:13
ㅁ. 야웨-샬롬 (야웨께서 평화이시다), 사사기 6:24
ㅂ. 야웨-쓰바옷 (만군의 야웨), 사무엘상 1:3,11; 4:4; 15:2; 종종 예언서에서 사용됨)
ㅅ. 야웨-로이 (야웨께서 나의 목자이시다), 시편 23:1
ㅇ. 야웨-치드케누 (야웨께서 우리의 의이시다), 예레미야 23:6
ㅈ. 야웨-샴마 (야웨께서 거기 계신다), 에스겔 48:35
● 여호와와 엘로힘
여호와는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나온다. 구약의 이름이라는 것은 신약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천하 만민이 불러야 하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뒤에서 다루게 된다. 먼저 여호와와 야웨를 표기한 히브리어 4문자에 대해 살펴보자.
○ 여호와와 야웨의 신성사문자
여호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글자 4자음 יהוה (신성사문자)을 로마자로 표기하면 'YHWH'이다. 히브리어 발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이 문자를 YHVH·JHWH·JHVH 등으로 표기할 수도 있다. 전자는 영어식이고, 후자는 기타 언어로 표기했을 때의 방식이다.
히브리어는 어순이 좌에서 우 방향이고, 한글과 달리 ㅇ(이응)에 해당하는 글자도 모두 자음이다. 영어로 말하면 A E I O U도 모음이 아닌, 자음이다. 따라서 4문자 중 두 문자를 Y, W로 표기했지만, 이것도 모음이 아니라 자음이다. 영어에선 반자음으로 취급한다. 히브리어에서 모음은 자음 글자에 점(·)이나 선(-) 등을 붙여 표시하는데, 이것은 발음을 위해 후대에 편의상 만든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에 따라 유대인들은 주후 3세기 경부터 이 이름이 적혀 있는 부분을 읽을 때엔 “아도나이”(“나의 주”라는 뜻)라는 말로 대용해 왔다. 이런 습관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옳은 방식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런 경향으로 인해 요즘 영어 성경에선 여호와나 야웨에 해당하는 것을 the LORD로 표기한다. ORD 부분을 일반 글자 크기로 하지 않고 작은 글자 크기로 축소한다. Jehova(여호와)로 표기하는 성경은 많지 않다.
여호와는 신성4문자에 “아도나이”를 표시하는 모음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즉, 아도나이의 모음(A-O-ai)을 'YHWH' יהוה 에 붙인 것이다. ‘A-O-ai’라는 모음을 ‘YHWH(YHVH와 같음)’라는 자음에 그대로 연결해 읽을 경우 Yehowah(여호와 또는 예호바) 등으로 발음된다.
제1모음은 제1자음 아래서는 a로 읽지만 y 아래서는 e로 읽는다는 규칙에 따라 16세기 때부터 여호와(Yehowah, Jehova)라고 표기하게 된 것이다. 독일어 계통에선 J 발음이 영어의 J와 달리 “ㅈ”(지읒)이 아닌, “ㅇ”(이응)이고, v나 w도 “ㅇ”이다. 예루살렘(Jerusalem, 저루살렘)이나 예수(Jesus, 지저스)를 보면 일반 언어와 달리 영어는 J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웨(Yahweh)의 본래의 뜻은 분명하지 않으나, ‘있다’를 뜻하는 ‘하야’ 동사에서 변화된 것으로 대부분 추정한다. הָיָה (hayah) 동사의 어두(語頭) h를 강하게 발음하면 hayah가 되어 ‘산다’를 의미한다. ‘있게 하는 자’, ‘살리는 자’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근년의 연구에서 여호와(Yehowah)는 야웨, 혹은 야훼(Yahweh)로 읽는 것이 바르다고 주장한다.
○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
구약성서에는 4문자 יהוה 가 7,000번 이상 나오지만, 신약성서에는 전혀 나오질 않는다. 신약에서 이 이름이 등장하는 구약 구절을 인용할 때엔, 주(퀴리오스), 하나님(데오스), 아버지(파테르) 등으로 바꾸어 표기한다.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יהוה 가 본래 주, 하나님, 아버지이기 때문인가? 전통적으로는 본래 그렇기 때문에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신약에서 그렇게 나오니까 본래 그런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약에서 그 존재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가 단절과 연속, 모형과 실체라는 기본 전제를 무시한 것이다. 구약의 존재가 신약에서도 그대로 나오게 된다면 여호와는 하나님 아버지이고, 여호와의 사자는 예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설명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기 전에 예수가 이미 오셨다는 것이기에 문제가 된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이 실체로 나타난 게 아니라, 구약 때 이미 실체로 나타났다는 것이라면 성육신 사건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설명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단절과 연속의 관계라고 전제하면서도 단절은 생략하고 연속만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적으로는 연속되지만 실체는 신약 때 나타나셨다는 게 기독교의 정설인데 말이다.
따라서 이것은 모형과 실체라는 것을 통해 설명하지 않으면 혼동하게 된다. 즉, 여호와는 하나님이 모형이고, 그의 사자는 그의 아들이 나타날 것에 대한 모형이다. 구약 때 독생자의 실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 모형은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여” 하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겐 아버지일 수 있지만, 예수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구약은 하나님 아버지의 공의, 신약은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이라는 설명도 적합한 논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서에선 예수를 “하나님의 의”라고 하지 않는가? 또한 구약 시대는 하나님 아버지 성부 시대, 신약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 성자 시대, 지금은 성령 시대라는 설명도 적합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듯이, 예수는 어제인 구약 때나 신약 때인 오늘이나 영원토록 성경과 시대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구원의 주(아르케고스)요 온전케 하는 이(텔레이오테스)라고 하지 않는가(히 12:2). 아르케고스는 주(퀴리오스)라는 말이 아니라, 시작하는 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믿음의 설립자요, 종결자다. 요한계시록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을 히브리서에선 이렇게 말한 것이다.
○ 엘로힘과 엘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은 왜 복수형인가? 엘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하나님을 뜻하는데 왜 굳이 엘로힘이라고 한 것일까? 구약에서 여호와/야웨는 이스라엘과의 언약과 관련되고, 엘로힘/하나님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이름이다. 구약에는 이 단어가 약 2,500회 이상 쓰였고, 여호와/야웨 다음으로 많이 쓰였다. 형태상으로는 복수이지만, 구문에서는 단수로 취한다. 단수동사와 단수형용사가 함께 쓰인다. 영어의 all과 비슷하다.
왜 복수인가에 대한 대체적인 설명은 강하다는 표현이라고 한다. 하나님께 적용된 이 복수형은 위대 또는 장엄을 복수형으로 표현하는 히브리어의 관용적 용법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은 초월한 신적 능력 및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그 존재의 탁월성을 강조해 준다고 말한다. 성경에서는 보편적으로 하나님(God)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고, 간혹 이방의 ‘신들’(gods, 창 35:2; 출 18:11; 20:3; 수 24:20)이나 ‘천사들’(angels, 욥 1:6; 시 8:5; 97:7), ‘행정장관들’(magistrates, 출 21:6; 삼상 2:25) 등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이때의 ‘엘로힘’은 의미상 복수형이 된다. 하지만 하나님과 관련하여서는 비록 그 형태는 복수형을 취하지만 단수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고대 세계에서 공동체의 대표자를 말할 때는 대체로 복수형을 쓰는 것이 관례였으며, 더욱이 히브리어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복수형 표현은 수적인 다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위대함(장엄함)이나 탁월성을 나타내는 관용적 용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같은 표현 방식을 취했을 것으로 추정한다(창 1:1).
엘로힘이 복수형인 것에 대해 삼위일체를 뜻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구약학계에선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장엄의 복수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왕이 자신을 짐(朕)이라고 칭하듯이, 왕이 we라는 표현을 쓰듯이 말이다.
하나님의 교회와 같이 교주 자신을 신격화하는 곳에서는 이것을 교주를 포함한 신적 칭호라고 설명한다.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어머니가 있기에 복수형이라는 것이다. 해괴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복수형일까?
신약에선 “예수”가 “아버지가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했는데(요한복음 17:11-12), 그 이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엘로힘이라는 복수형을 쓴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대리한 자, 곧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호와 혹은 여호와의 사자는 대부분 하나이지만, 그 이름은 가브리엘과 미가엘과 같은 천사장들이 사용했다. 자신을 미가엘이라고 하며 나오는 때도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신 하나님은 유일하시지만, 그가 오기 전까지 하나님을 대리하여 그 길을 준비한 자는 단수의 존재가 아니라 복수의 존재였다.
구약에선 복수형 엘로힘을 사용한 것과 달리 신약에선 오직 데오스만 사용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하나님은 한 분이기 때문이다. 신약에선 데오스가 복수로 나오지 않는다. 단수일 뿐이다. 복수일 수 없는 이유는 마지막 날에 아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실체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마지막 날, 신약 때엔 그 실체를 온전히 드러내신 것이다. 연속과 불연속, 모형과 실상이 여호와와 예수를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야웨/여호와(YHWH)의 해설
우리가 "여호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명칭은 본래 히브리어 4자음 문자 ‘요드, 헤, 와우, 헤(YHWH)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신성 4문자(Tetragammaton)는 하나님 의 인격적 이름으로 성경에서 창세기 2:4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구약성경을 일관해 서 총 6,000여회(cf. BDB) 나타난다.
이 하나님의 이름은 한글 번역본의 개역에서 "여호와", 공동번역에서 "야훼", 영 역본에 Jehovah 라고 음역하고 있지만 그 정확한 발음을 알 수가 없다. 중세 어 느 때에 그 정확한 발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신성 4문자에 대한 정확한 발음과 기원 및 의미는 상당한 논의의 주제가 되어왔다(Freedman. TDNT).
1. YHWH의 발음과 금기
(1) 마소라 본문에서 YHWH는 영속적 케레(qere perpetuum)의 명칭이다.
하나 님의 이름을 구성하는 이 신성 4문자는 너무 거룩하므로, 유대인들은 관습적으로 그 이름을 발음하지 않았다. 사본 필사자들이 신성 4문자를 기록할 때는 매번 완전 히 목욕을 하고 완전히 옷을 갈아 입었으며, 그 문자들을 기록하는데 사용한 붓을 부러뜨렸다. 감히 입으로 말하기가 황송한 그 이름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구약성경 시대 이후(B.C. 3세기 경부터), 회당에서 성경을 낭독할 때, 또는 읽는 자들이 성경 에서 그 이름을 볼 때마다 명사 아도나이(adonay, 나의 주님)로 발음했다.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문자적으로, 헛되이, 경솔히) 일컫지 말라”는 계명과 관련된 것이다.
그 후에 마소라 학자들이 자음으로만 기록되어 있는 구약 본문에 모음을 삽입할 때 아도나이(adonay)를 나타내는 마소라 모음을 신성 4문자 YHWH의 모음으로 첨가했다(C. Brown, TDNT). 그렇다면 야호와(yahowah)로 발음 표기되어야 하는 데 예호와(yehowah)로 발음 표기되어 있다. 이것은 첫 음절에 a 모음을 가지면 그 들이 피해야 하는 바로 그 금기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언어 구조상 가장 특색이 없는 e를 선택하여 예호와(yehowah)로 표기한 것이다. 이러한 기록은 신성 4문자의 첫 음절이 e 혹은 이와 유사한 모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직접적 증거 가 된다(C. H. Gordon, Vgaritic TextBook, Anor, 38, 1965; R. Kittel, "Yahweh", Schaff-Herzog).
(2)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 예호와(yehowah)와 합성된 인명(人名)을 살펴 보면 두 가지 어형을 가지고 있는데 요(yo-)와 예호(yeho-)이다.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 주신다’를 의미하는 yonatan(요나탄, 삼상13:3)과 yehonatan(예호나 탄, 삼상18:1)입니다.
그리고 yehosua(예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칭호는 하나님의 이름을 포 함하고 있는 아주 오래된 이름이다. 세칼(M. H. Segal)은 이 호칭이 일찍부터 존재 했다는 것은 YHWH라는 명칭이 모세에게 계시되기 전에 이미 알려졌음을 나타 내 주는 증거로 보았다. 보다 긴 어형이 보다 짧은 어형보다 더 이른 시대에 사용 되었다. 그렇다면 보다 긴 어형이 분명히 본래의 어형이다(G.J. Botterweck의 TDOT).
그리고 야-(ya-)나 야호-(yaho-)로 부르지 않고 요-(yo-)나 예호(yeho-)라고 부른 것은 야-(ya-)나 야호-(yaho-)가 금기가 되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
어떤 인명의 끝 부분에서 신성 4문자는 역시 두 가지 어형 형태를 가지는데 '-yahu(-야후)와 -yah(야)'이다. 예를 들면‘나의 왕은 여호와이시다’를 의미하 는 malkiyyahu(말키야후)와 malkiyyah/ya(말키야)이며, 여기서도 보다 긴 어형 야후가 우선이다. 야후나 야는 첫음절 이외에는 금기가 되지 않으므로 본래의 발음대로 표기한 것이다.
구약시대 말기(주전 5세기)의 엘레판틴 파피루스(Elephantine papri)의 더 짧은 이름 YHW는 -야후(shemayahu=셰마야후같은 이름에서 처럼)나 야호-(Jehozadek= 예호체닥 같은 이름에서 처럼)로 읽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야호(yho)라는 발 음은 B. C. 1, 2세기 쿰란의 헬라어 단편들과 1세기의 영지주의 문서에서 발견된 헬라어형 iao(야오)에 의해 확증된다.
2. YHWH의 어원 및 의미와 보다 정확한 발음
(1) 어떤 학자들은 이 이름을 달에 대한 숭배와 관련된 감탄의 소리로 간주되고 있는 원시적인 어형 야(Yah)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본다(참조, G. R. Driver, ZAW, 46, 1928). 그래서 그 이름이‘오 그 분’을 의미하는 야후와(Ya -huwa)에서 유 래되었다고 암시하는 학자들도 있다(참조, M. Buder, Moses, 「1946」1958. 49f,: S. Mowinckel, "The Name of the God of Moses").
그러나 이러한 이론은 거부되었다. 그 이유는 그 이름을 감탄사의 소리로 간주하 게 되면 신앙이 언제나 그 이름에 기초를 두어 왔다는 종교적 내용과 그 이름에 부수되는 계시적 가치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참조, E. Jacob, Theology of Old Testament).
(2) 보다 적절한 해석은“있다, 존재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haya(하야)와, 그리 고 그 동의어 hawa(하와)와 관계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출애굽기 3:14에서 하나 님은 모세에게“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ehyeh aser ehyeh) 스스로 있는 자 (ehyeh)가 나를 보내셨다 하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하나님 여호와( YHWH)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효니라”고 말 씀하셨다.
R. de Vaux는 에흐혜 아셰르 에흐혜라는 문구의 번역과 의미에 대해서 가장 좋 은 번역문은 "I am He who Exists"(나는 존재하는 자[그]이다)라고 주장한다. NASB, NRSV는 "I AM WHO I AM"으로 번역했다. 이 문구는 그 의미에 있어 서 초시간적(omnitemporal)이다. '나는 이미 존재하였고, 이제도 존재하고, 앞으로 도 존재할 자, 곧 영원히 존재하는 자이다' 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이름 에흐예(ehyeh)는 칼 미완료 1인칭 단수로“나는 있다”이다. 그러나 사 람은 이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 야훼/여호와라는 이름은 사람이 그를 3 인칭으로 말할 때 생긴다.
따라서 하야(haya)의 미완료 3인칭(히필형)은 야흐예 또는 야혜(yahyeh)이며, 그 동의어 하와(hawa)의 미완료 3인칭(히필형)은 야흐웨 또는 야훼(yahweh)이다. 여 기서 발음상 두 경우에 유사하지만 야훼가 신성 4문자 와 더 근사하다.
혹자는 YHWH가 동사 하와(hawa)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모세 시대에 하와 (hawa)가 발음되었던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어떤 기원이 불분명한 고대의 단 어라고 제시하지만 우리는 출애굽기 3장 내용과 YHWH 를 연관시켜 연구해 본 바 hawa(하와)와 YHWH가 서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N. Walker 등은‘있지도 않은 히필형(사역형)을 만들어 낸다고 비난하지만 W. F. Albright, D. N. Frcedman 등 여러 학자들은 히필형이 남서 셈어에서 알려 지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이었으리라고 시사했다. 따라 서 하나님의 이름인 신성 4문자 YHWH는 하와(hawa)의 미완료 야흐웨(yahweh, 보통 야훼로 발음함)와 YHWH의 후기 표기인 헬라어 야웨(iaoue)나 야베(iabe)에 서 볼 때, 원래의 발음이 YaHWeH였으리라고 생각된다.
데오도레토스(4세기)는 사마리아인들이 신성 4문자를 iabe(야베)로 발음했다고 말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3세기 초)는 iaoue(야웨)로 발음했다.
YHWH의 셋째 문자인 와우(w)를 사마리아인들은 b(ㅂ)로 발음하고 클레멘트 는 ou(우)로 발음한 것이다.
(3) 남부 가나안 언어들(히브리어, 모압어)이 y는 i, w는 u, h는 e, a로 발음되었 다고 본다면 YHWH는 iaue(야웨)로 발음될 수 있다(여러 가지 발음이 제시되고 있을지라도). 이 음역은 앞에서 살펴본 바, 후기 헬라어 표기인 iaoue(야웨), iabe (야베, b를 u로 발음할 때 iaue[야웨〕가 된다)와 일치하며, hawa(하와)의 미완료 3 인칭 히필형 yahweh(야흐웨, 야훼)와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 YHWH의 발음은 야웨(yahweh)이라고 거의 확신할 수 있다.
3. YHWH의 번역들
(1)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하나님의 이름 YHWH는 마소라 본문에서 금 기 때문에 예호와(yehowah)로 나타난다. 우리가 지금 일반적으로 공인하고 있는 70인역본도 이 이름을 유대인들의 읽기(케팁→케레)를 따라 '퀴리오스'로 번역했다. RSV와 다른 역본들도 이 이름이 본문에 나올 때는 언제나 주(LORD)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기록함으로서 이 관계를 따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라틴어 성경도 도미누 스(Dominus:주 Lord)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세계의 거의 모든 성경 번역본들(극소수를 제외하고)은 '주' 라는 말을 사용 하며, 새번역 표준판도 '주' 라고 번역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야훼란 이름을 세계의 모든 성경에서 제외시키는 무서운 음모라고 할 수 있다.
70인역본에 대해 한마디 하고자 한다. 지금 보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70인역본 의 한 사본 단편들에는 헬라어 본문에 히브리어 문자로 쓰여진 신성 4문자 YHWH가 등장한다. 이 관습은 주후 1세기의 후기 유대인 구약성경 역자들에 의하 여 실행되었다. 쿰란에서 발견된 70인역본의 한 사본에는 심지어 신성 4문자가 IAW로 번역되어 있다.
이러한 발견들은 70인역본의 번역자들이 신성 4문자(YHWH)를 '퀴리오스'로 번 역했다고 하는 생각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70인역본의 본문에 있는 신성 4문자를 철저하게 퀴리오스로 대치시킨 것이 주로 기독교인 서기관들의 짓이라는 이론을 뒷받침해 준다(P. E. Kahle, H. Bietenhard).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70인역본으로 공인하고 있는 70인역본은 본래의 70인역본 을 변개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렇다면 이 70인역본을 따르는 것은 진정한 70인 역본과 다른 길로 행하는 것이 된다.
(2) 그리고 예호바(Jehovah)라는 어형은 마소라 본문의 표기에 근거하여 16세기 에 통용되었으며, 갈라티누스(P. Galatinus)의 라틴어 역본에서는 iehoua(예호와)라 는 어형으로 나온다(De Arcanis Cath, Veritatis, 1516, 11).
1530년에 틴데일(Tyndale)은 출애굽기 6:3을 번역할 때 Jehouah(예호와)를 사용 했다. 그 후 Jehovah는 표준 철자가 되었다(C.Broun:DNTT). 따라서 미국표준역성 경(ASV)과 신세계번역본(NWT)는 Jehovah, 한글 개역은“여호와”로 번역했으며, KJV는 일곱개의 구절, 즉 그 이름이 특별히 강조되거나(출 6:3; 시 83:18; 사 12:2; 26:4), 다른 요소와 결합된 구절(창 22:14; 출 17:15; 삿 6:24)에서 Jehovah로 번역했 다.
그러나 “Jehovah"나 "여호와" 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YHWH라는 하나님 의 이름에 대한 바른 음역이라고 할 수 없으며, yahweh가 더 바른 음역이다. 예루 살렘성경과 공동번역은 야훼로 번역했다.
4. YHWH의 이름의 중요성
이름은 신이든 사람이든 그 인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존재의 이름을 아는 자는 누구든지 그 이름에 관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이름은 그 이름 을 가진 자와 매우 밀접히 결합되어 그의 본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능력이다. 이스 라엘에 있어서는 다만 표상 명칭이나 특정인의 인격과 다른 사람의 인격과를 구분 짓는 이상으로 그 인격의 전존재성과 본질성 그 자체와 동일시 하고자 했다.
(1) 구약 종교에 있어서 신의 이름을 아는 것은 그와의 교제(혹은 상대)를 위해 특별히 중요한 것이다.
신을 영화롭게 하고 신의 도움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은 신의 이름을 알아야 한 다. 야곱은 그와 씨름한 강력한 존재에게(창 32:30), 또한 마노아는 신비한 신적 사 자에게(삿 13:17이하), 그들의 이름을 알기 위해 물었다.
그러나 구약의 다른 곳에서 하나님은 친히 그 이름을 계시로 알리셨다(창 17:1; 출 3:14; 6:2). 하나님은 모세에게“나는 여호와(YHWH, 야훼)로다”라고 말씀하셨 다.
모든 이름 중에 여호와의 이름이 가장 의의가 깊고 중요하다. 성경 계시의 가장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특징 중의 하나는 하나님께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인격적인 이름을 가지셨고 그 이름에 의하여 그를 부를 수 있으며 또 불러야 한다.
지정된 전에서 여호와께 호소할 때 그는 가까이 오셔서 복을 주실 것을 약 속하셨으며 그 약속을 지키신다.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서 네게 강 림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심지어 왕까지도 여호와 의 이름으로 축복한다(민 6:2427; 신 10:8; 삼하 6:18).
(2)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여호와를 상대하며 그의 임재를 확보할 수 있 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답을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늘에 거하시지만 그러나 그는 땅에 그의“이름”이 거할 장 소를 선택하셨다(신 12:11; 14:23; 참조:삼하 7:13; 왕상 3:2; 5:17). 그의 이름이 성 전에 거한다는 점에서 여호와의 임재, 그 자체가 보증된다(왕상 8:13이하). 여호와 의 이름은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주권성을 가진다.
그래서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이 그 이름으로 기쁨을 누리리 라'(시5:11; 7:17; 9:2, 10; 18:49 등등)라고 찬양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있어 하나님 예배는 바로 그대로 그 성호를 앙청하고 응답하는 행위로써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그 이름의 실체이신 주권 앞에 완전한 헌신을 뜻하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이름은 그 자체의 능력있고 독립된 존재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것 은 그의 이름이 여호와 그 자신과 여전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 이름 자체의 능력있는 힘을 통하여 경건한 자들은 여호와의 보호와 도움을 경험한 다.(참조:잠 18:10; 말 1 :11; 시 54:6).
(3) 여호와의 이름은 때때로 여호와에 대한“찬양”, 여호와의“영광”이란 의미 로 사용된다(사 26:8; 55:13; 시 41:10).“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혹은“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 15:3; 사 51:15; 렘 10:16; 암 4:13; 시 23:3)와 같은 표현상 의 변화가 있어도 같은 방향을 가르치며, 세상에서,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 의미를 알리는 모든 국가 중에서의 여호와의 주권과 영광에 대한 그의 주장을 지적해 준 다(사 12:4; 시 105:13).
‘진실로 종말에 여호와께서 세상에 계시됨으로서 온갖 우상 숭배가 사라지고 모 든 무릎이 홀로 하나이신 그의 이름 앞에 꿇을 것이다'(슥 14:9; 사 45:23, G. Von Rad).
(4) 여호와의 이름과 관련하여, 그의 이름으로 여호와께 요구하고 기원한다는 종 교 의식을 통해 그에게 예배드린다는 것이다(참조:창 4:26; 12:8). 이러한 표현을 사 용하는 것은 여호와의 권능이 관여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제사장이 백성을 축복 할 때 복을 수여하는 것은 그것과 제사장의 축복 행위와 자유로이 연결시킨 하나 님의 처분에 있는 것이다(민 6: 2426, 27; 참조:신 10:8; 삼하 6:18; 왕하 2:24).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은 마술의 수단이나 방편이 아니라 계시의 선물이다 (Bietenhard). 이것은 야웨의 이름을 언급하거나 부르는 것에 야웨의 능력을 믿는 신앙을 함축한다는 사실을 인정치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베솀 야웨'즉 야웨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맹세(삼상 20:42; 레 19:12), 저 주(왕하 2:24), 혹은 축복할 때(삼하 6:18) 이렇게 발언한 그 이름은 야웨의 임재, 배려(attention)와 실제적 간섭(개입)을 보증한다.
(5) 진실로 여호와의 이름은 그의 인격적 통치와 활동의 강력한 표현이기 때문 에 여호와 자신을 말함에 있어서 그 이름이 대용될 수 있다(레 18:21; 시 7:17; 미 5:45). 여호와께서 인간과 접하시는 면이 바로 그의 이름이며, 이 이름으로 여호 와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신다. 과거(출 3:6, 13, 15)와 현재(출 20:7)와 미래(겔 25:17; 34:50)를 통한 인간에 대한 그의 역사적 다루심은 그의 이름과 불가분의 관 계가 있다.
10계명은 분명히 마술이나 주문 혹은 거짓 맹세에서 이 하나님의 이름을 오용하 는 것을(맹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금하였다.(출 20:7). 왜냐하면 이미 언급한 바 여호와의 이름은 계시의 선물이며 인간이 마음대 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창 17:1; 출 3:14; 6:2).
거짓 선지자들의 여호와께 대한 호소는 불법이다. 이는 그들이 여호와로부터 고 하라는 임무나 말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신 18:20; 렘 14:14이하; 23:25; 29:9). 여호와의 이름은 이스라엘을 신용하여 그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 은 그 이름을 모른다(시 79:6).
이스라엘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것은 예배의식, 희생제사, 기도, 축복과 저주 또한 거룩한 전쟁(Holy war, 시 29:8)에서 일어난다. 다시 말해 서 여호와를 섬기되, 그 만을 섬기며 그의 계명에 복종함으로써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신의 예배 의식에 참예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힙을 뜻 한다(레 19:21).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루살렘(렘 25:29), 성전(렘 7:10), 언약궤(삼하 6:2)를 일컬어 이것들을 성별, 여호와와 관련시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신성화의 유일한 기초이다 (참조:F.F. Brace, DNTT; Bietenhard, TDNT).
(6)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들이 자기를 보낸 자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 가 무엇이라고 말하리까? 라고 물었다. 하나님은“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너희에 게 보낸 이는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념할 나의 표호 니라”고 대답하셨다(출 3 :13-15).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세겜에 모아 놓고 "이제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여호와만 섬기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4-15). 신자에 있어서 여호와는 대대로 기억해야 할 소중하고도 큰 영원한 이 름이다. 이 이름을 잊어버리다니 언어도단이다.
어떤 고대 역사에 의하면 의인 시몬(Simon)이 죽은 후에(B.C. 200년경) 제사장 들은 축복 행위에서 여호와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중지했다고 한다(T. Sot 138). 성전 예배 의식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여전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축복할 때 사 용되었다.
그러나 교육 행위에서 성경 인용시 여호와라는 단어가‘이름’이라는 '셈'으로 대치되었다. 그래서 신성 4문자 YHWH를 사용하기를 중단했으며, 따라서 그 발음 마저 잊어버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세계의 거의 모든 성경 번역자들은 성경에서 여호와/야웨라 는 이름을 없애버린 것이다. 대한성서공회서 번역한 표준 새번역도, 몇 군데를 제 외하고는 여호와란 이름을 모두 없앤 것이다. 역사의 하나님 여호와를 최고의 역사 기록에서 삭제해 버리는 이 무리들은 회개해야 할 것이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 혹은 야웨라는 이름이 소중한 큰 이름임을 명심해야 한다.“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여호와(야웨יהוה) -스스로 존재하는 자
하나님에 대한 이름이 무척 많이 있지만 구약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이름은 “여호와”(Jehovah)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를 위해 준비 된 축복의 이름입니다. 특히 이 여호와의 명칭은 오직 절대자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고유명사로서 “ 스스로 있는 자 (스스로 있을 자), 스스로 존재하는 자”란 의미를 지닌 이 이름은 그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있어서 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것은 즉 인간과의 언약관계를 맺으시는 언약의 주체로서의 하나님의 존재성을 강조하는 이름입니다(출3:14-17) : 출6:2-8).
그리고 이 이름이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원불변하심이 강조됩니다. 여호와는 그의 주권적 사랑을 따라 그의 백성을 택하시고 그의 소유로 삼으셨던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헤르만 바빙크, 하나님의 큰일 p127.)
주 ( LORD, 영어 번역에서는 처음 철자를 대문자로 쓰고, 나머지 철자는 소문자로 씀)라는 말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인 여호와(Jehouah, 혹은 Yahweh)를 가리킵니다. 출애굽기3:14절에서 하나님이“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 고 말씀하셨을 때, 이 어원이 두 번 나왔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존재이십니다.
주 (Lord) 혹은 여호와라는 이름은 구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총 6,823번 이 나오는데 이 이름은 창세기 2:4절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여호와”는 “엘로힘”과 함께 복합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존재하다”, 존재하게 되다“라는 의미를 갖는 아카드어인 ”하와“(havah)에서 유래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하나님의 존재 또는 본질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나단 스톤(Nathan Stone)은 ”우리가 성경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거나 “주”(영어성경에서 대문자로 쓰여진 “Lord")를 일컬을 때 실재 또는 존재 및 생명이라는 용어를 생각하며 여호와를 절대적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실존 자, 그 안에서 스스로 본질적인 생명과 영원한 존재를 갖는 자로 생각해야 한다고”고 말합니다.
그리고 특히 출애굽기3장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가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불타는 가시떨기 나무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고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3:13).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출3:15). “여호와”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I Am who I Am)라는 이름은 언제나 하나님께 적합한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과거에도 항상 존재하셨고, 미래에도 항상 존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원히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즉 과거, 현재,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는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그에게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여호와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여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는 가나안 땅에 관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셨는데 곧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창15:13-21).
스톤(Stone)은 계속하여 “여기서 영존하시는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곧 대대로 그의 말씀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변치 않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격적인 존재, 사람과의 계속적인 교제, 그의 언약에 대한 불변성 및 그분의 구원에 대한 자비로움을 나타내는 이 모든 것이 여호와라는 이름 안에 들어 있다”라고 말합니다.(케이 아더 저, 『하나님의 이름』, 도서출판 프리셉트성경연구원, 1997.8.)
(참고 : 하나님의 이름인 '야웨'(또는 야훼;Yahweh)와 '여호와'(Jehovah)의 용어차이에 있어서
하나님 한 분에 대한 다른 표현의 묘사로서 같은 하나님에 대한 이름이라는 것이 아니라 '야웨'가 곧 '여호와'인 것으로 '야웨'란 말이 '여호와'란 말과 같은 뜻으로 불린 것입니다.
분명히 용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차이는 번역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이는 '야웨'(Yahweh)를 흠정역(KJV)에서는 맛소라 사본에 의해서 '여호바'(Jehovah)로 번역하였고 이를 우리 나라 말인 한글 개역에서는 '여호와'로 번역한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실상은 '야웨 하나님'이란 이름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참고로 공동번역에서는 '야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야웨'란 이름을 부르기를 매우 두려워하였으며 따라서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야웨'라고 발음하는 것을 잘못하고 있는 일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그처럼 하였는가에는 그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레위기 24장 16절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훼방하면 그를 죽이라"고 하였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 죽음을 당한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출애굽기 3장 15절의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를 '이것은 나의 비밀 이름'(문자적으로는 '나의 이름은 감취었느니라'임)로 읽은 데 따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읽은 것은 히브리어에서 '영원하다'( : 레올람)는 자음과 '감취어지다'( : 레알람)의 자음이 동일한 데서 기인한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 '야웨'의 이름을 부르기를 몹시 꺼려하여서 다른 이름을 사용하여서 불렀는데 '아도나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러한 것을 맛소라 학자들은 이 명칭의 본래 자음은 그대로 두었으나 이 명칭의 모음을 '야웨'에 붙임으로써 '여호와'란 이름으로 사용하여 부름에 따라서 '야웨'란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여호와'란 하나님의 이름이 일반적으로 불려졌습니다.
(3) 아도나이 (אדוני ) = 주, 우리의 주인(하나님의 주권적인 이름)
“주”로 번역되는 이 이름은 “재판하다”, 통치하다“에서 유래하여 이 세상의 창조자 되시며 전능한 통치자 되신 하나님의 주권적 속성을 강조합니다. 즉 모든 피조물은 그에게 굴복해야하며 그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철저히 그분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사실이 이 이름 가운데 내포되어 있습니다.
특히 고대 근동 아시아의 셈족어 문서들에서도 신들과 인간에 대하여 사용된 이 명칭의 동족어들이 발견되었는데 ‘주’ 또는 ‘주인’을 뜻하며 구약에 약 30회 출현하는 아돈( אדון )의 복수형에 제 1인칭 공성 단수의 대명사 접미 (ָ아이, my)가 붙은 형태인 아도나이는 모두 449회나타납니다. 발음은 “나의 주인들”( י? ד?, my lords)과 혼동하지 않도록 살짝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Lord)"를 의미하는 여호와(야웨)란 명칭을 대신할 수 있기에 여기의 어미는 접미라기 보다는 명사적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을 택하든 이 명칭은 위엄과 강함을 뜻합니다. 또한 ‘바알’( בעל , “주인”, “남편”)과 유사한 의미로 인하여 적절한 변화가 불가피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용례로는 이 명칭이 315회나 여호와(야웨)라는 명칭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사용된 몇몇의 실 예들은 이 명칭 자체가 통치나 소유권 또는 능력이 아니라 권위에 더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아브라함, 창18:12; 라반, 창31:35; 요셉, 창45:8; 엘리, 삼상1:15). 하나님의 대용으로 이 명칭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선지서인데 모두 320회나 됩니다. 그 중 에스겔서에만 무려 217회 나타나 있습니다. 시편에서도 55회의 용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선지서의 대표적인 용례 중 특히 사3:15;10:24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관련되어 나타납니다.
몇몇의 본문들이 보여주는 보다 보편적인 예로는 “온 땅의 주”(수3:13; 시97:5; 미4:13), “주의 주”(신10:17; 시136:3) 등이 있는데 이 외의 여러 요소들을 종합해 볼 때 아도나이는 “모든 것의 주”를 의미한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여 아도나이의 기본적인 의미는 왕( מלך , 멜렉)이신 ‘하나님의 우주적 주권’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경우에 따라 '주(主)'란 의미를 지닌 이 명칭은 인간에 대하여 사용되기도 하나, 소유자이시며, 통치자 되신 그분의 무한 광대한 주권성이 보여집니다. 하나님의 세 번째 주요한 이름은 히브리어 아도나이(Adonai)를 옮긴, 주 (Lord, 영어 번역에서는 첫 철자만 대문자로 써서 Lord와 구분함)입니다. 이 단어는 종의 주인을 뜻하는 아돈(adon)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특히 이 아도나이 단어의 의미는 다스리시는 분, 주(主:주인), 전능의 지배자, 만물의 소유자(창15:2, 출6:2, 시83:18)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아도나이는 근본적으로 머리됨을 가리킵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을 때, 그는 자기가 드리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시는 주인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 칭호는 두 가지 관계를 함축합니다. 즉 주인은 종에게 명령을 내리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좋은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요13:1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를 구속해 주신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섬김은 주종관계의 중요한 소산이므로 신자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일해야 함을 가리킬 때, 성경에서는 이 아도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3.하나님의 복합적인 구약의 이름
하나님은 오랜 역사 가운데 여러 사건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이때마다 인간은 하나님의 새로운 측면을 발견하고 이를 하나님의 명칭에 반영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신앙고백임과 동시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 방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복합적인 구약의 명칭 가운데 엘로힘(하나님)=창1:1, 여호와(주(LORD)-창2:4, 아도나이(주(Lord), 주인 )-창15:2 이 세 가지 하나님의 주요한 이름들은 종종 서로 결합하거나, 복합어의 형태로 합쳐져서, 하나님의 인격에 관하여 보다 풍부한 지식을 전달해 주고 또한 그분이 자신의 백성들을 어떻게 돌보시는지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주 하나님(LORD GOd)과 여호와 엘로힘(창2:4)은 하나님의 두 가지 주요 이름을 묶은 것인데 이것은 특별히 성경에서 다음 사실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1) 창조에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창2:7-15 참고)
2)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권위(창2:16-17절 참고)
3) 인간이 지상에서 맺는 여러 관계들을 주관하시는 분(창2:18-24절 참고)
4) 인간을 구속하시는 분(창3:8-15, 21참고)
그리고 또한 주 하나님(Lord GOD, 아도나이 여호와)은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 들어 있는 특성보다는 하나님이 가지신 아도나이의 특성 혹은 주가 되시는 특성을 더 강조하는 이름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항상 창조주이시지만 “주 하나님(the Lord GoD)" 이라는 표현은 특별히 그분이 자기 백성의 주인이 되신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세 번째 복합이름인, 주 하나님(Lord God, 아도나이 엘로힘)은 주인과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이 다른 종교의 모든 거짓 신들을 주관하시는 주이심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이“내가..... 주 하나님께 .....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단9:3)라고 기도했을 때, 그는 자기의 주인(아도나이)이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거짓 신들을 다스리시는 참 하나님(엘로힘)이심을 확신한 것입니다.( 엘머 타운즈 저, 박이경역,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들』,생명의 말씀사,1994.6. p.24-25.)
1) 엘과 복합된 형태의 명칭들로는
'강력'이란 의미를 지닌 '울'에서 파생된 '엘'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여러 종류의 복합어를 가집니다. 따라서 엘과 연관 된 하나님의 명칭은 택한 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한가를 보여 줍니다.
(1)첫째, 엘 올람 (אל עולם ) - 신비(神秘)로우신 분, 나타내시는 주님 (창21:33)
영원하신 하나님(사40:28)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번역되었으나 하나님의 완전성을 강조하며 여호와(야웨)와 동격으로 사용된 엘 올람( אל עולם , 창21:33)이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엘 올람은 하나님의 신비하신 속성을 넌지시 알려주는 오묘한 이름입니다. 접두사 엘(El)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엘로힘(Elohim, 강한 창조주)에서 왔습니다. 올람(olam)은 시간 혹은 시대를 의미합니다. 고대 랍비들은 하나님의 신비하신 속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히브리어의 모음을 약간 바꿔서, 이것을 알람(alam, 신비한)으로 표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혹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시간을 초월하는 속성은 하나님의 가장 심오하고 신비한 속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편 기자는 90편 2절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영원(올람)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히브리어 올람(alam)은 시대 혹은 세대의 뜻을 지닌, 헬라어 아이온(aion)과 동의어입니다. 시편 10:1에는 알람, ‘비밀스러운 혹은 신비한’의 뜻이 예시되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과 멀어졌다고 한탄하면서,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라고 묻고 있습니다(레 5:2; 왕하 4:27 참고).
영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사막의 오아시스 브엘세바에서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계시되었습니다. 브엘세바에서는 아브라함이 파 놓은 우물에서만 물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나그네가 황량한 시내 반도로 들어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접할 수 있는 우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브엘세바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오아시스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시 팔레스타인의 족장이었던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에게서 이곳을 강제로 늑탈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을 책망하였고, 이러한 대치국면을 계기로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은 동물을 희생시켜 이 협정을 상징화했고, 또한 맹세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행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엘 올람, 창 21:33)을 불렀습니다.
학자들은 그동안 왜 이런 특정한 시기와 특정한 장소에서 엘올람의 이름이 계시되었는지 연구해 왔습니다. 왜 하나님은 다른 곳이 아닌, 이 브엘세바에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으로 계시되셨는가? 어떤 학자들은 약속의 땅에 거주할 권리를 아브라함이 이곳에서 처음 주장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영원한(올람) 언약’의 일부로서, 그와 그의 후손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7:7).
아브라함이 우물을 파고 그것을 소유한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 대한 믿음의 행위였습니다.아브라함이 여호와를 엘 올람, 영원하신 하나님으로 불렀을 때, 그는 영원한 언약의 하나님께 믿음을 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또한 비밀스러운 혹은 신비한(알람) 사실이 있습니다. 즉 이때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의 우물을 미래 왕국의 첫 지불액으로 여길 만큼 괄목할 만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도 일종의 신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엘 올람으로 불렀을 때, 아브라함은 항상 그리고 영원히 도움을 주시는 분께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신학 용어를 사용하자면, 그는 전지(全知)하시고, 편재(偏在)하시며, 전능(全能)하신 하나님,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부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영원하시고 변치 않으시는 주, 엘 올람으로서의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올람)부터”(시 25:6) 있었기 때문에 그분을 구합니다. 다윗도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100:5)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엘 올람은 다음 구절 속에 그 의미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103:17).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엘 올람을 찾았을 때, 그는 자신이 생존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기의 우물을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한 것입니다. 이 사건 이전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날마다 필요한 것들을 즉시즉시 채워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보호나 지혜 혹은 평강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은 늘 거기에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엘 올람을 불렀을 때, 그는 자기 사후에, 자기 후손의 적들로부터 약속의 땅을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께 특별히 요청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와 약속의 땅이 원원 무궁토록 자기 집안의 기업이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브엘세바에서 신비하신(알람) 하나님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미래를 알지 못했으므로(알람), 미래 시대(올람)의 일을 신기하게 통찰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지적합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친 대로, 이런 구약 시대의 사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일들의 그림자 혹은 모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하는 여자’가 이삭을 낳고, 아브라함이 ‘계집종의 아들’을 내보낸 것은 하나님이 유대인과 이후 이방인들을 다루시는 한 모형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갈 4:22-30 참고). 이런 일들은 신비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즉 즉시 나타나지 않고 한 세대가 지난 후에야 성취되므로 이것들은 엘 올람, 비밀과 신비의 하나님의 장중에 놓여 있습니다.
바울이 경륜과 비밀의 개념을 연계(連繫)시킨 방식을 살펴보면, 영원(혹은 세대)과 비밀(혹은 신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엡 3:2,5).
‘영원’과 ‘비밀’은 종에 관한 구약 율법에서도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떤 종이 자유함을 입고서도 자기 주인을 사랑하여 계속 그를 섬기기를 원한다면, 율법이 정한 대로 송곳으로 그 종의 귀를 뚫어서 그가 선택한 것을 표시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영원히’(올람) 그 주인을 섬겨야 한다는 표였습니다(출 21:6; 신 25:46의 말씀은 노예 살이를 희년까지로 제한하였는데, 이는 올람이 ‘영원한 시기’뿐 아니라 특정한 시기도 의미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런 경우, 아마도 하나님은 이렇게 각별히 주인을 섬긴 그 종을 위하여 어떤 비밀스러운 계획을 갖고 계셨을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예로서,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그녀는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삼상 1:22)라고 말했습니다. 이럼으로써 그녀는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28절) 드렸습니다. 이 일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시려는 비밀스러운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올람이라는 단어는 지난 시대를 묘사할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옛적에(올람) 너희 조상들이……강 저편에 거하여”라고 말했습니다(수 24:2). 그는 조상들이 그곳에 영원히 거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단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어느 특정한 시기 동안만 그곳에 거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현세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73:12)라고 말했을 때, 이것은 그들이 현세에서 혹은 이생에서 평안했다는 뜻입니다. 이런 구절들에서 올람은 단지 하나님의 뜻을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표현한 것뿐이지 무한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막후(幕後)에서 자신의 뜻을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과 그분의 뜻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이 하야(Hayah)라는 동사에서 유래했고, 그 의미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는 것을 이미 살펴 보았습니다. 여호와는 현재 시제의 하나님입니다. 엘 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 즉 ‘스스로 있을 자(will be what I will be)’이신 미래의 하나님입니다.
신약에서 엘 올람은 바울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말한 에베소서 3:8에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뜻을 갖고 계시지만, 그것은 풍성하며 은혜로 가득차있습니다. 바울은 이 비밀이 어떻게 계시되었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10절). 오직 신약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만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11절)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을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우리의 인식 능력을 초월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장자와 처음 익은 열매에 관해 정하신 법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신비한 지혜로써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이룰 자손으로 에서 대신 야곱을 택하셨습니다(롬 9:13 참고). 또한 그분은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에게 더 큰 축복을 내리셨습니다(창 48:14-17 참고). 이런 의문들이 생길 때, 우리는 엘 올람을 쳐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자주 반복되어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시대 구분을 보게 됩니다. 7일, 7주, 7달, 7년, 7의 7배 등(레 25:8, 9). 우리는 성경에서 7년 대환란과 미래의 시대 구분을 보게 되지만, 왜 시간이 7이라는 숫자로 나뉘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럴지라도 엘 올람은 그 이유들을 다 알고 계십니다.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은 6일 동안 일하고 마지막 날에 안식했습니다. 새로운 섭리 속에서는, 대부분의 신자들은 첫날 안식하고 나머지 6일을 일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도 엘 올람만 알고 계신 신비입니다.
우리는 왜 멜기세덱이 첫 제사장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후 하나님께서 왜 제사장직을 레위 반차의 아론의 계통으로 옮기셨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 후 하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멜기세덱의 제사장직을 다시 잇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엘 올람, 오묘한 이름을 가지신 영원한 하나님의 뜻입니다.(엘머 타운즈 저, 박이경 역,『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들』,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94.6.p.8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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