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신론 (Theology Proper)

하나님아들 2020. 8. 11. 15:48

신론 (Theology Proper)

I. 하나님의 존재

A. 삼위일체

1. 유대인의 유일신 신앙: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6:4 Shema 들으라.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이시다!

출애굽 후 광야생활 40년이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신신당부한 말씀.

 

실천적 무신론

아담의 타락 전후에 하나님과 대화, (추론)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을 알지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못했다(불순종). 하나님과 대화를 한다고 해서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니다(가인)

대홍수 이후에 8명이 살아남음. 그의 후예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고 바벨탑을 쌓음.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생각하지 않음.

실천적 무신론: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른 신을 숭배하는 아브라함의 조상. 이 가운데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것은 큰 축복.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다신론적 이집트에서 나와서 다시 다신론적 사회인 가나안으로 들어감. 그래서 모세가 유일신을 매우 강조함. 유대인들은 왜 우리만 유일신을 섬겨야 하는가 하고 회의를 가질 수가 있음.

Monotheism: 여러 신들 중에 한 분만 섬김. Poli-Theism 다신론과 반대.

유일신론: 신은 하나 밖에는 없다.

유일신론의 종교는 3가지 밖에는 없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섬김)

 

너의 존재 전체(100%)를 다 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절대(하나님)는 절대(100%)를 요구함.

영적인 간음: 하나님을 전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 99% 사랑하는 것. 부부관계도 마찬가지 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적은 거의 없다. 가장 심할 때는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던 아합왕 때이다. 850 vs 1. 바알 사제와 엘리야의 기도 대결

산당: 이스라엘 족속들은 산마다 산당이 있었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면서 다른 신을 함께 섬김.

가나안 신화: "가나안의 남신과 여신이 성관계를 맺어 이 땅이 비옥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 vs "가나안의 옛 신들이 이 땅을 지켜줬는데, 우리가 마음을 주지 않으면 화가 올 수도 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한 분만 섬기라고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6:6-9: 마음에 세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라. 항상 자녀들을 위해 교육적으로 생각하며 실천하고, 그를 위해 교육적 환경을 조성해라. 집에 앉았을 때 둔지, 누워있을 때든지

그러나 이것이 습관화가 되었을 경우

1) 생활지침 2) 하나님 말씀에 대한 마음이 없이 하는 습관(형식만 존재)

 

기본적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는 것이다. 세속적 신앙. 번영의 신학.

한국 목사들의 설교 방법 " 하나님을 잘 섬기면, 재물 운은 자연스레 뒤따라온다"

하지만 결국엔 재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게 되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경우가 된다.

 

그러나 그들이 선지자들의 심판예고를 듣지 않자 북 이스라엘은 722, 남 유다는 586에 멸망함. 엘리트들은 전부 잡혀가고 땅의 사람들만 남게 됨.

그 이후에는 그들이 각성을 하여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자 함. 한 분의 하나님 신앙이 강조됨. 그리고 성경이 강조됨. 성전이 없어져서 제사를 드릴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을 필사하는 일이었다. 성경 해석집 탈무드가 등장. 성경을 가르치고 필사하는 사람들인 율법사가 중요하게 됨. 그들은 또한 율법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마가복음 2장에서 그들의 신앙이 잘 드러남.

2:1 가버나움: 갈릴리 사람의 중심지

2:2 Logos

2:3 네 사람 = 여러 사람

2:7 참람=신성모독, 당시의 유대인들 관념 "하나님 한 분만이 죄를 사하실 수 있음."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주장(가끔 자신이 하나님 이심을 드러내심). 그러나 바빌론 포로의 쓰디쓴 체험이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이 사실을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려고 함. 그들이 만약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하나님이 몇 분이신가를 의심하게 됨. 사도 바울도 같은 문제를 갖고 있던 것 같음. 우리가 바리세인의 입장을 잘 이해하여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

 

 

2. 삼위와 일체의 문제

 

계시는 계속해서 진전하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믿지 않으면 유대인들은 구원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구약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르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몇 명인가? 14:16에서 성령까지 끄집어 내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듦.

또 다른 보혜사(알로스 파라클레토스: 옆에 불림을 받은 자) = 성령.

allos: 다르지만 동질의 것.

hetero: 질이 다른 것. hetero sexual.

 

고대의 재판 상황 " 법률적 지식이 없으면 법적인 친구(legal friend)를 옆에 세워두고 그 친구가 전부 귀속말로 이야기해 줌.

이단은 일단 받아들이고 쉬운 해결책을 택한다: '삼신론(위계질서: 하나님-예수님-성령)'

Modalism 양태론: 성부/성자/성령은 서로 다른 mode를 가졌지만, 한 분이시다.

)H2O: 얼음--수증기

 

양태론에 대한 반박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앉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을 세례자 요한이 직접 경험했다. 양태론에 따르면, 동시에 성부 성자 성령이 역사할 수가 없고, 하나님이 자리를 바꾸면서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 본문에는 동시에 일어난 일로 묘사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서 양태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三 과 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삼位일체 Trinitatis

 

하나님의 존재방식

God the Father 거룩하신 아버지

God the Son 아들

God the Holy Spirit 성령 (아버지에게서 나온 성령)

각각은 구별되지만, 모두다 하나님이시다(동일시).

 

삼위일체가 함께 천지창조. 하지만 성부,성자,성령 안에서(구분가능, =:서로가 서로의 안에 존재).

1:1-14 창세전부터 말씀이 있었는데 그 말씀이 예수님이다.

 

일체: 한 본질: Homoousios(호모우시오스) 동일본질

우시아, essentia, subsantia라는 말은 본질이라는 의미이다.

삼위는 권능,영광, 존재에 있어서 동등하시다. 사역상 순종이 가능하다. 성자가 순종을 하신다고 해서 성부보다 조금 못하신 것이 아니다. 경륜상의 순종.

위격: hypostasis = persona=prosopon (가면) person, subsistance

 

17:5: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상호교통(순환,점유) =페리코레시스. 구별이 되면서 서로가 서로 안에 존재한다. (우리가 성령 안에,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

삼위는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일은 모두 같이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성부께만 영광을 돌린다.

 

이 개념이 서지 않으면, 성경이 말한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다(예수님=하나님. 성령님=하나님. 아버지=하나님). 또한 이런 삼위일체의 관계를 이해하면, 양태론을 막을 수 있다. 잘못된 설명을 없애고 되도록 간략하게 설명을 해야 한다.

Augustinus: Si comprehendis, non est Deus: 만약 당신이 완전히 이해한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다.

 

 

3. 구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시사들

 

계시의 이해:

깜깜한 방에 한줄기의 빛이 들어오면, 물건들이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대강의 구도는 볼 수가 있다. 이것이 구약시대의 계시이다. 그러나 낮이 되면(신약시대) 분명히 보인다.

성경계시의 특성: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명료하게 계시됨.

계시의 명료성: 그러나 구약의 계시는 구약 사람들에게 희미한 것이 아니다. 그 시대 안에서는 명료하며, 이것은 신약에 비교할 때에 희미하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교육적이다:

다신론의 사회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임을 강조한다. 삼위일체론을 강조했다면 기독교가 다신론으로 갔을 것. 그러나 구약에 나타난 삼위일체의 가르침은 애매하지는 않다.

 

1 하나님의 신(르아흐 엘로힘)은 요14-16장을 통해 명확해짐. 운행하신다 = 품고 계신다. 그 위에 펄럭인다.

 

1:1: 태초의 말씀이 하나님(호 테오스)과 함께 계시니; (정관사 the) 테오스(God)

말씀이 하나님(테오스)이다: 여기에는 정관사가 없다. 그러나 의미는 동일하다. 즉 말씀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의미이다. 오리겐은 테오스는 호 테오스보다 조금 못하다라고 봄. 여호와 증인은 테오스를 형용사로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피조물인 신으로 본다.

 

만물이 그(로고스, 말씀)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으니:

로고스 아 싸르코스; 몸을 입지 않은 로고스. 태초로부터 계신 하나님.

로고스 엔 싸르코스; 육신을 입으신 로고스.

요한이 창세기 1창을 읽고서 창조에 참여한 말씀이 성자이신 것을 깨달음.

이렇게 창세기 1장에 이미 삼위일체에 대한 시사가 있다.

 

이미 구약시대에도 세상의 창조에 관여했다는 시사가 있다.

8;1 지혜

8;20 지혜를 의인화 시킴. 속성을 의인화하여 얘기했다.

8;22 지혜가 창조 전에 있었다.

8;30 창조자 아몬

1) craft workman 장인 Werkmeister; 지혜는 이 세상을 실제적으로 만드시는 분이다.

2) 사랑받는 사람. Liebling- 성자

 

wisdom christology. 지혜기독론: 지혜는 요1:1의 말씀과 같다.

 

여호와의 사자: 말락 아도나이.

16;7 여호와의 사자=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

16:? 자기가 하나님처럼 하는 사자.

 

14:19: “이스라엘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13;21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심.

한번은 여호와라고 하고 한번은 여호와의 사자라고 함.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자기가 하나님처럼 하는 여호와의 사자라고 해섯하고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13잘과 14장은 다른 자료라고 한다.

 

6:11-24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는데, 여호와와 대화하는 것처럼 내용이 전개됨.

11,20: 말락 아도나이. 14,23: 여호와.

 

13:3: 말락 아도나이 (삼손의 출생 이야기)

13:18 나의 이름은 기묘 geheimnisvoll, wonder

 

3:1: 내 사자를 보내노니. 언약의 사자.

말락 아도나이가 말락 베릿이 됨

 

추론: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성자가 성육신 했다. 장차 성육신 하실 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남.

 

옛날에는 에배할 때는 항상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찬양했다. 오늘날 CCM에는 삼위일체가 없다. 오늘날 실천적인 Unitarian들이 많다. 성부 Unitarian, 성자 Unitarian, 성령 Unitarian.

Unitarian ; 삼위일체설을 부인하고 유일 신격(神格)을 주장하여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

 

18:

1: 야훼가 나타남. 2 세 사람. 3: 아도나이. 9: 주어가 복수. 10: 주어가 단수로 바뀜. 19 1: 두 천사가 소돔으로 감.

추론: 세 사람 중 한 명은 성자.

 

6 비전(환상) 가운데서 봤으므로 여섯 날개를 가진 천사로 묘사됨.

성경에 언급된 천사들은 영이고 성이 없으나, 계시로 나타났을 때는 모두 남자의 모습이였다.

천사이름: 가브리엘, 미하엘 (남자이름)

 

성경을 중요시하되, 성령님과의 교제가 있어야 한다.

성경만 중시하면 죽은 정통이 된다.

환상이나 음성을 듣는 신자들은 문제. 그 경험에 의존하여 성경과 멀어짐. 그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 현상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예배,찬송,기도의 대상은 삼위일체신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는 도무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만 나아갈 수 있다(비 기독교적인 생각 '지성이면 감천이다') 주께서 이 기도를 받아 주셨다는 감사가 있어야 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앞에 뜻을 구한다.

다음 중 아무거나 사용가능

1)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을 다 찾고 기도하기.

2) 영광을 성부 하나님께 돌려드림-전유

3) 우리의 구원을 위한 기도; 성자께.

4) 삶을 인도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 성령.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축도: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

 

성부, 성자, 성령을 의식하고 알맞은 것들을 돌려드리는 것이 성숙한 예배이다.

 

구약에 나타난 성령님

 

63;7-11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비유: 아버지-자녀, -백성, (남편-아내)

10,11: 이스라엘 백성 안에 성령(성신)이 거하심 (10,11: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 떼의 목자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2:5 -성경, - 성령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51 다윗 "하나님의 신을 나에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 자기 안에 성령의 존재를 자각함.

 

7:39: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임하시지 않음을 말함.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구속사적인 작용. 성육신, 성령이 오심, 재림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다. 성령과 로고스는 이전에도 사람 가운데에서 활동하심. 이전에도 중생, 성화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가운데서 계시다가 이제는 교회공동체에 계심.

 

성령님의 역사. 삼중적 은혜.

1) 일반 은총: 모든 일반 사람들에게 역사. 성령님의 힘으로 살지만, 구원과 관계는 없다.

문제: 어떤 이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죄를 짓는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성령의 역사이다.

2) 직임적 임재: 특별 사역. 구원과 관련 없음, 은사로 나타날 수 있음. 사역자로서 사울왕에게 성령님이 함께 하셨다가 후에 떠나심.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 고레스왕: 나의 종.

3) 구원적 임재: 하나님 참백성에게 영원히 함께 하신다.

문제: 성령님께 순종하지 하고 근심을 많이 끼쳤을 경우;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임재가 아니다

 

이적 신앙: 성령님의 직임적 임재. 구원과 관계가 없다. 성령을 받지 않고 은사를 받을 수 있다.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들의 문제점: 주제 넘음, 잘못된 확신

진짜 하나님 백성은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리라

 

구속사 사건 1) 성육신 2) 십자가 3) 부활 4) 성령 5) 예수 재림(완성 조건)

* 구약시대는 준비단계로 볼 수 있음.

 

구약시대에는 민족적 특별은총particularism으로 이스라엘 백성만 택하셔서 성령님이 역사하셨으나, 신약시대이후로는 믿음이 있는 모든 자들에게 성령님이 역사하신다.

두 시대 사이의 성령님 역사의 강도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없다.

구속사의 역사 주인공은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이시다.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활동이 있었지만 구속사적인 면에는 없었다. 구속사적인 임재는 단회적이다.

 

1:1: 충만의 복수. 동사는 남성.

1:26 let us create/make …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우리'에 대한 해석 가능한 견해들

1) 하나님의 위격의 복수성 시사 à 점진적 계시. 자체에서는 수는 모르고, 신약시대에 가서는 삼위일체로 알 수 있다.

2) 충만의 복수 : 엘로힘이라는 명사는 복수인데, 동사는 단수로 쓰인다.

3) 하나님의 자기 의논의 복수. 중요한 일을 할 때 복수로 자신을 칭하심.

4) royal "we". 왕적인 우리. “우리가 대마도를 치자!”

 

잘못된 견해들

1) 천상의 어전회의설 - 사람이 천사의 모습으로 되므로 (천상의 어전회의; 하나님이 천사들을 모아놓고 하는 회의.)

2) 헤르만 궁켈 '다신론의 잔재' - 종교의 발생을 진화론적으로 본다.

 

 

4. 삼위간의 관계

 

삼위일체는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잘못된 비유; 광열, 광선, 광원 = 삼위일체

 

A. 삼위일체 교리에 있어서의 이단들

1) Arius

(4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삼위일체설을 부정하였던 아리우스의 추종자들. 니케아 공의회에서 최초기독교이단으로 결정되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만, 영원 전에는 성부만 계셨다. 성부가 창조계획을 세우신 때에 성자를 만드셨다. 그 다음에 성령이 있다" ; 성자는 있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성부는 영원했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성부가 성자보다 우월하다고 시사한다.

 

313. 기독교 공인.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 거의 반이 아리우스를 따름.

325. 니케아 종교회의. 황제가 통합을 하고자.

392.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자 공직에 진출하려는 자는 무조건 예수님을 믿어야 했다. 태어나면 유아세례를 받음.

영향: nominal christian. Christentum 기독교권 형성. 유아세례의 의미 변질.

(비교: 이전 상황- 생사의 문제 앞에서도 진실한 신자만이 존재)

 

콘스탄틴의 밀라노칙령 동기; 진실한 믿음 혹은 기독교 사상으로 백성들을 통합하고자.

325 니케아 공회; 교회의 교리를 결정하는데 콘스탄틴황제가 소집함.

모인 사람들 1) 아리우스파 2) 아타나시우스파(정통파) 3) 중도파.

회의 결정내용 "성부, 성자는 동일한 본질이시다(이 논란 때문에 모임)" = 성부, 성자는 영원하시다.

그러나 아리우스파는 보편교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음.

 

Homoousios(동질) VS Homoiousios(유사본질)

 

2) Modalism 양태론(성부=성자)

한 하나님이 가면만 바꾸어 나타남. 옛날 배우들은 남자가 여자의 가면을 쓰고 나타남.

Noetus: Patripassionism(성부수난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으므로 하나님 자신이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Cleomenes의 반박: 그렇다면, 예수가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 드립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기가 자신에게 영혼을 부탁한 것이 된다.

교황들도 초기에는 여기에 가담. 교황무오설은 있을 수가 없다. 로마의 교황제도에 따르면 베드로가 1대 교황인데, 베드로 본인은 자신이 교황인지 모른다.

 

B. 과거의 정통파

1) Justin Martyr. 기독교의 변증가

당시 기독인이 받은 대표적인 비난:

i) 무신론자: 로마12신을 믿지 않으므로 무신론자이다.

ii) 피와 살을 먹고 마신다(성찬식을 오해)

iii) 혼음: 교인들끼리 사랑하는 것을 오해했다.

저스틴은 이것을 논리적으로 변증함. 기독교는 가장 높은 철학. 플라톤이 모세에게 배웠다고 함.

그의 삼위일체에 대한 의견은:

성부 하나님은 안 보이는 하나님이고 성자 하나님은 보이는 하나님.

è 성부가 성자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시사했다. 동일본질에 어긋남(종속설 잔재)

 

2) Irenaeus

기독교 신학의 좋은 기초를 놓음. 좋은 선생님.

성부하나님은 안 보이는데, 두 팔(성자, 성령)을 가지셨다. 성자는 조금 보이심.

성부 중심설로 가는 기초를 만듦.

 

3) Origen

그의 신학은 오류는 많지만 이단은 아니다. 예수님 말씀을 잘못 이해하여 스스로 고자가 되었으나 나중에 잘못을 인정함.

기독교 교리를 플라톤 주의와 유사하게 만듦.

영혼 선재설. 우리의 영혼이 하늘에서 이미 타락해서(3은 이것을 비유) 그 벌로 아기로 하나 하나씩 태어남. 영혼은 육체(감옥)을 떠나는 것이 목표. 빨리 많은 사람을 데리고 하늘에 가는 것.

알레코리칼(풍유적) 해석;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기 위해 318명을 데리고 감. 318에서 영적 의미를 찾기 위해 음가를 더하여 그리스도라는 말을 찾아냄. 우리를 구원해 내신 분은 그리스도다!

 

4) Tertulian

삼위일체 단어 창시. 라틴교부. 이때부터 라틴어가 중심이 됨.

그는 법률가였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일함. 법률가로서 쌓은 지식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잘 설명하였다. 나아가서 기독교 신학에도 공헌하였다.

그러나 희랍교부들과는 반대로 모든 철학을 버릴 것을 주장: '아테네(희랍철학)과 예루살렘(성경)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반대로 저스틴은 기독교를 최고의 철학으로 봄. 로고스, 합리적 철학.

그는 철학을 많이 알고 있었다. Trinitatis라는 말을 만들어냄(위격 은 3, 존재는 1). 아테네의 자원을 잘 사용하여 기독교를 잘 설명.

 

문제점: 성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성자는 아버지의 말씀으로 나오신 성육신의 결과로서 독자적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 불행한 표현. “성육신의 결과라는 말이 잘못됨.

 

5) 어거스틴

삼위일체론을 거의 완성함. “삼위일체론”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 김광채). 큰 기여를 함.

1. Vestigium trinitatis. 삼위일체의 흔적.

: 나무는 뿌리, 줄기, 잎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삼위일체를 증명하기에 부적절하다.

2. 심리적 유비: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심.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시도도 역시 부적절함)

: 성부는 love, 성자는 The Beloved 성령은 Love.

알다: 아는 사람, 아는 대상, 사랑.

Knowing God: Understand

Remembering God: Remember

Loving God: Love

 

기여한 점: 삼위의 관계성을 잘 설명한 점.

 

 

C: 올바른 설명

 

성부와 성자의 관계는 영원한 관계이다. 인간의 부자관계와 다르다. 인간의 관계를 적용할 경우에 Arius주의에 빠진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독생자의 영광.

모노게네스; 홀로 나아진 자 "독생자" 유일하게 나아진 자, 성육신 하기 전에도 독생자

성부; 한번도 나아진 적이 없었다. 아겐네시아 agennesia(낳아지지 않음)

agenesia: 시작이 없다. 영원함. 3위 모두에게 해당. agennesia는 성부에게만 해당.

오리겐: 성자는 Eternal generation. 관계성이 영원하다. 오리겐의 큰 기여.

 

2: 제왕시(왕이 등극할 때)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왕(기름 부음을 받은 자)을 대적함.

2;2 에서는 왕을 나타냄.

2;7 해석

1)일차적인 성취; 이스라엘 왕의 등극.

2) 궁극적인 성취; 2;12 아들에게 입맞추라. 사람의 왕에게 적용되기엔 어려운 얘기.

몇몇 유대인들이 그 아들을 장차 오실 메시아라고 생각함.

멀리서 산()이 하나만 보이다가도 가까아 가면 또 하나의 산(메시아)이 보임.

교부들은 이 이야기를 영원 전에 낳아지신 분(1)으로 여김.

 

15:26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

 

사용할 수 있는 말: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서는: 낳으신다, generation, 출생.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구별을 위해.

발출, 발생은 사용금지: 기독교 영지주의. 성부로부터 성자가 유출한다. 가까운 것일수록 선하고 멀수록 악하다.

 

성부는 성자를 영원히 낳으신다. 하나님은 영원히 말씀하신다.

성부는 영원히 숨을 쉬신다: 성령.

 

낳으셨다 라는 말의 의미에 집착하면, 출발점을 찾게 되고 이는 아리우스주의(아버지가 정하신 영원의 시점 존재를 주장)의 생각과 같아진다. 영원의 세계에서는 시작과 끝의 개념이 없다.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신 것은 아버지와 자신을 구별하기 위함이고, 아버지가 더 나으시다는 말을 의도하신 바는 없다. 서로 동등한 관계.

구속의 역사가 종지부를 찍고 나라를 모두 아버지께 바치고(경륜상의 순종) 나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metaphysical fatherhood 형이상학적인 아버지 되심

ontological fatherhood 본체론적인 아버지 되심

official sonship 직무적 아들 됨. 2:31.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이것을 adoption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adoptional (성부와 성자의 관계와 다름)

 

수양설; 성령으로부터 성자

예수님은 겸손을 나타내시고자 우리들을 형제자매나 벗이라고 하셨으나(감사해야 할일)

우리들이 좋은 의미로서 그리스도를 형제자매라 생각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종이다.

 

삼위(세분이 아님)의 관계의 영원성

 

루터파 사람들이 성경과 다른 삶을 살자(죽은 정통), 경건주의가 생겨났다.

정통은 성경에 매이고 삶 또한 그에 따른 것.

 

 

 

5. 삼위일체 교리의 진전사

 

사도신경과 다른 니케아신조보다 발전된 Athanasius신조:

Credimus in Spiritum Sanctum qui a patre (Filioque) procedit '우리는 아버지로부터 나온 성령님을 믿습니다' ( 15:26: 내가 보내는: missio, 곧 아버지로 나오는: processio)

톨레도 공의회에서 Filioque(and from the son)를 삽입함. 신조에 무엇을 첨가함 것은 문제가 있으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아들로부터라는 말은 성경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성경적이다.

 

동방교회(greek orthodox church 희랍 정교회): 계속해서 희랍어를 사용함. 일부가 러시아 정교회가 됨. 결혼한 사제. 머리 속에 성부 우위설이 있다. 성부중심적. 그러나 말은 안 한다. Filioque를 거부함.

튀빙엔 교수 Moltmann: Filioque 반대

Eberhard Juengel: Filioque 찬성

 

그리스도의 임재

1) Spiritual presence 영적으로 (파루시아). 성령이 보내진 후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고 물리적으로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는 않지만, 영적으로는 함께 계신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언급되진 않았으나, 하나님도 같이 계셔야 삼위일체가 성립. 항상 삼위와 함께 하심. 삼위의 교제 속에 우리를 끌여 들여서 우리와 교제하심.

opera trinitatis ad extra sunt indivisa; 삼위일체의 밖으로의 사역은 나누어 지지 않는다.

 

2) physical presence: 예수님은 몸과 인성을 가지시고 하늘에 올라가심. 영적으로만 세상에 존재하심.

 

ontological trinity: 존재론/본체론적 삼위일체. 영원전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원래 그러시다

economic trinity: 경륜/계시적 삼위일체.

 

경륜적 삼위일체 때문에 존재론적 삼위일체를 알게 되었다. 따라서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인식근거가 됨.

반대로 존재론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의 존재근거가 된다.

 

Karl Rahner. 천주교 신학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교수. 논문집 신학적 탐구 그 중 1권 삼위일체: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보수신학자: 경륜적 삼위일체는 존재론적 삼위일체의 인식근거.

 

Karl Barth의 삼위일체론을 20세기에 부흥시킴. 쉴라이어머하를 비판. Schleiermacher는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 인간의 감성을 강조. 그의 신학이 19세기를 석권함. “Christlicher Glaube” 신앙은 신학이다. 그 시대 사람이 어떻게 믿는가가 신학이다. 시대마다 다르다 à 주관적 신학. 그는 삼위일체를 부록으로 다룸.

바르트는 이 사상에 동조하며 공부하다가 그를 벗어남.

칼바르트: 우리의 신학은 삼위일체부터 시작한다. 그 이후 조직신학자들이 삼위일체를 근거로 신학함. 문제는 정통신학과 다르다. à Neo-orthodoxy

성부, 성자, 성령은 존재양식이다(Seinsweise). 이 말은 마치 양태론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런 의미가 아니다. 몰트만은 양태론이라고 비판함.

 

몰트만: 십자가를 중심으로 삼위일체 이해. 십자가에서 삼위일체가 계시될 뿐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삼위일체가 규정되어진다. 십자가가 없으면, 삼위일체가 의미가 없다.

Doxological Trinity 주장함: 본체론적 삼위일체를 찬양할 수 있다. 이것을 최소한도로 말해서: 역사가 하나님께 영향을 미친다. 궁극적으로 역사가 끝났을 때 하나님은 다르다. à Neohegelianism. 헤겔의 역사전개 과정.

 

게르하르트 융엘

몰트만과 더불어 새로운 십자가의 신학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본질은 고난이며 완전에서 더 완전으로 변한다. 그들의 신학은 오류.

 

Hendrikus Berkhof

“Christian Faith”: 화란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조직신학 교과서. 경륜적 삼위일체만 인정. 삼위일체의 틀 속에서 얘기하지만,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언약관계에 대해서만 거론한다. 그의 생각을 끝까지 좇아가면 예수님은 결국 사람이다. Neoliberalism. 이 세상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역사이다. 삼위일체론이 결국에는 없어짐.

 

doxological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

몰트만: 십자가에서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하나님은 예수와 동일시 하면서 구별한다 à 하나님의 자기소외. 십자가에서 하나님 됨이 드러나심. 하나님으로 규정되심. 그러나 영원 전부터 규정됨. 예배 때에만 송영적으로

융엘: “Gottes Sein ist im Werden”. 유명한 책. 이 책에서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바르트의 동의 여부는 모른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변함이 없다고 했는데 융엘은 바르트가 하나님은 변하는 분이라고 했다고 말함.

신인동형론적인 표현:

Anthropomorphism: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심

Anthropopathism: 하나님의 후회, 분노. 그분은 강정이 있지만 우리와 같은 감정이 아니다. 그분은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변하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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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영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기록되고 바로 해석된 말씀.

딤전 4:13: 성경을 낭독하고 전하고 가르치라 (구약)

딤후 3:15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책.

딤후 3:16 하나님의 감동. Pneumatos. 영감. Inspiration. 글이 영감됨.

 

Pneumatos라는 말은 단 2번 사용됨:

  1. 아담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
  2. 성경 저자들을 감동시킴. 독특한 감동.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성경을 읽으면 온전해져야 한다. 성화가 되어야 한다. 성경의 영감을 받아들이면서 성화가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벧후1,20f 말씀은 성경기자들이 영감되었다는 의미.

벧후 1:20 먼저 알 것은 경(성경=구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딤후에서는 성경자체가 영감이 되고 벧후에서는 기자가 영감되었다.

 

어떤 식으로 영감을 받아 성경을 저술했는가?

 

1. 잘못된 견해

1) dictation theology ; 사람의 각 특성이 나타날 수 없다.

1:2-4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à 구원의 확신을 위해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사람들을 찾아가 인터뷰함. 누가는 예수님의 친 제자가 아니였으나 성령님의 작용으로 누가의 모든 기능이 작용하게 하시고, 공부한 모든 것이 작용하게 하셨다. , 눅은 누가(직업; 의사)가 썼으나 의사다운 말로써 썼고 인간적인 오류가 스며들지 않도록 성령님이 작용하셨다 à Organic inspiration

 

2) dynamic inspiration 역동적 영감: 하나님이 기본적 영감을 주시면, 인간이 스스로 알아서 쓰는데 이때 오류가 있을 수 있다.

 

2. 개혁신학의 견해

유기적 영감.organic inspiration: 그 사람의 특성이 다 나타나되, 인간적 실수가 없게 하신다.

성경 무오설

 

3. 영감의 정도

1) 사상 영감; 하나님이 기본 아이디어는 주심.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쓴다. 낭만주의적 견해.

2) 부분 영감; partial inspiration. 교리서인 로마서는 완전 영감이고 복음서와 같은 것은 역사적인 부분에서 오류가 있을 수가 있다.

3) 축자 영감; 글자 하나 하나까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셨다.

이 것은 원본에만 해당한다. 우리는 원본이 없다. 양피지로 썼으니, 소멸되었다.

추론) 모세가 광야에서 놋 뱀을 들고 나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후세에 음란하게 사용.

원본이 남아있었으면, 우상숭배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사본학: 여러 사본들을 놓고서 가장 가까운 원본을 찾아내는 것. F.F. Bruce “신약성경은 믿을 만 한가?”

사본비평: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로 개혁자들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배우게 되어 사본비평을 하게 됨. 이전에는 Latin Bulgate를 사용했기 때문에 관심이 없었다. Lower criticism. 원본 찾는 작업. Erasmus Luther(독일어성경)가 큰 공여를 함.

사본과 원본 사이에는 사소한 차이점들이 있다.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인쇄술이 나오기 전에는 손으로 일일이 써서 사본이 수천개가 있다.

공인기관(구약시대의 서기관)에서만 사본 출판이 가능. 사본을 쓸 때에는 영감이 없었다. 이때는 섭리적인 보호를 하셨다. 기도하고 목욕재개 후 경건한 마음으로 씀. 쓰고 난후 검토, 비교. 그럼에도 사소한 차이점이 있다. ) 철자가 비슷하게 생긴 단어들.

 

벧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 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벧후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5 베드로는 사도바울의 편지를 알고있음.

16 바울의 성경을 읽으면서 다른 성경과 같이”: 바울 서신을 성경으로 인정. 교회가 인정하기 전에 성경이다. 그 자체가 자증성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으므로, 예수님의 제자였던 사도들이 성경으로 인정했다.

가톨릭에서는 교회가 성경을 결정했다고 함. 그러나 성경이 교회를 만들었다. 즉 성경이 교회보다 앞선다.

구약 성경은 에스라시대에 확정. 이미 에스라시대부터 성경으로 받아들여졌다

무라토리안 정경에는 신약 27권의 리스트가 들어있다.

 

Harris '성경의 영감과 정경' 이 분야에서 제일 좋은 책.

정경 대부분은 늘 교회에서 받아들이던 것임. 몇 개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후대에 결정됨.

 

신학을 하지 않으면, 설교를 하나님 앞에서 책임질 수가 없다.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기 위해서 신학을 배운다.

조명 Illumination. 하나님이 우리를 밝혀주셔서, 성령님의 의도를 말씀해주신다.

조명을 위한 기도가 절실히 필요. 성경 봉독 전에 '하나님이 말씀을 보도록 마음을 밝혀주십시오'

 

고등비평

higher criticism. 성경비판. 자유주의.

성경이 틀린 곳이 있다. 그럼에도 성경 안에는 하나님 말씀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을 포함한다.

Adolf von Harnack: “기독교의 본질을 읽어볼 것. 예수는 삼위일체를 안 믿었다. 사람들이 순수한 예수님 말씀에 희랍철학의 옷을 입혔다. 순수한 말씀을 헬라화 한 것.

Karl Barth: Harnack의 제자. 후에 그를 비판함.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없고, 다 인간의 말인데,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인간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한다" Das Wort wird Gottes Wort. 성령님이 역사해서 나를 감동시키면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계시 사건은 순간적인 것이므로, 말씀을 붙잡으면 안 된다. 신 정통주의; 성경비판 용인. 로고스와 레마를 구분한다.

Tota scriptura: 전체성경으로. 한 말씀에만 은혜를 받으면 안 된다. 상호순환 선순환.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성경은 최종적 권위이다.

예수 세미나의 문제.

 

성경의 독특성: 각 성경마다 차이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것을 신학적 작업을 통해 하모니시켜야 한다.

 

이런 신학자들의 말을 따른다면, 본인이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오직 학자의 말에만 의존하게 된다. 학자의 종이 된다.

복음주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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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가 다시 삼위일체로 돌아옴.

 

하나님 본질 하나, 그 위에 있어서는 셋인데.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성부, 성자, 성령간의 교제가 풍부하셔서 이것에 근거해서 삼위일체적 교제를 반영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는데 가장 첫번째로 교회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교제 속으로 끌어들임.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를 하되 우리는 창조자인지 피조물인지 구분을 잘해야 한다.

독일의 신비주의자: 그들의 목표는 물방울이 떨어져 대양 속에 스며들듯이(물이 사라짐) 우리가 하나님으로 들어간다(하나님의 일부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끌어올리시지만, 우리가 그 안에 들어가 일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의 실천적 의미

삼위일체와 교회의 관계성: 요즈음 교회의 큰 테마. 삼위일체(서로가 서로 안에 계심 '페리코레시스")를 모델로 하여 교회 공동체를 만든다. 각자가 성령님과 교제하면서 형제들과 교제함. 이때의 모델이 삼위일체. 구별성이 유지되면서 통일성을 갖춘다.

 

애매한 이론들;

OPEN TRINITY , OPEN HISTORY OF TRINITY 개방된 역사의 삼위일체

SOCIAL TRINITY 사회적 삼위일체. 사용하는 사람마다 의미가 달라진다. 마치 삼위일체의 교제를 사람 셋의 교제와 혼동시킬 수 있다.

à 하나님과 우리의 구분이 명확하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