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원전 작정(RAAD)과 역사 속에서의 행하심(DAAD)
본 연구는 후선택설과 전선택설에 대한 것인데, 화란의 최근 개혁신학계에서 특별히 A. 카이퍼, H. 바빙크, K. 데이크, G.H. 케르스턴, J.J. 판더 스카이트, K.스킬더, 그리고 G.C.베르카우어의 견해들을 요약하고 검토하고 있다. 각 신학자의 견해들의 특징들 몇가지가 먼저 제시되고, 그런 후 우리의 주제에 관한 그의 그들의 견해들이 뒤따르고 있다. 근본적인 주제는, 16세기와 17세기의 이 주제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죄를 그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허용하셨는지(전택설), 아니면 창조의 작정 후에 죄를 작정 가운데서 허용하셨는지(후택설); 선택이 창조와 타락의 전(전택설)에 위치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후(후택설)에 있는 것인지; 그리고 예정의 대상이 유동적인지(homo labilis, 전택설), 아니면 이미 넘어진 자인지(homo lapsus, 후택설)에 관한 것들이다. 후택설과 전택설에 관한 주제는 종교개혁 이후 개혁교회들 안에서 논의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주제가 화란의 압솨이딩(1834)과 돌레앙티(1886)에서 기원한 교회들 안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의 출발점은 이 주제를 재발견하는 것이 교회들의 신조들과 고백들에 새로운 강조를 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서론”에서 우리는 화란의 개혁교회들 안에서 20세기의 20년대에서 40년대에 있었던 논의를 스케치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1장에는 카이퍼와 바빙크가 사역하였던 기간까지 종교개혁 이후 이 주제에 대한 논의의 간략한 역사적 개요가 제시된다. 도르트총회 때 예정의 개념이 뜨겁게 논의되었다. 이 요소와 함께 후택설과 전택설에 대한 변론이 폭발하였다. 특별히 J. 아르미우스와 F. 고마루스 사이에 더욱 그러하였는데, 그 두 요소들, 곧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서 타락의 위치와 작정의 순서는 이미 종교개혁때부터 논의되어 왔던 것이다. 도르트총회는 아르미우스의 생각들을 정죄하였지만, 고마루스의 전택설 입장을 정죄하지도 그렇다고 선택하지도 않았다. 고마루스는 창조되고 타락한 인간(homo creabilis and labilis)을 예정의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총회 후에 G.Voetius가 전택설을 옹호하였는데, 영혼의 내적 삶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과 연관시켜서 옹호하였다. A. 콤리도 또한 전택설자였는데, 특별히 타락의 작정 이전에 “인간” 예수의 선택이 있었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의 시절에, 언약의 전택설적 개념이 유행하였는데, 브라켈도 언약을 강조하였지만 그는 후택설자였다. 시세션 때에 이런 종류의 전택설이 부활하였지만, 헬 더 코크가 언약과 선택에 대하여 성경에 근거하여 세운 입장으로 그것에 있는 약간의 어려움들을 성공적으로 해소시켰다. 화란에서의 자유신학의 태두인 J.H.스콜턴(Scholten)은 apokatastasis panton이라는 개념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전택설을 채택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전택설 그 자체를 반박하였다. 하지만, 헬더 콕은 후택설 입장을 고수하였고 전택설 위에 건축된 몇 개념들은 거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카이퍼와 바빙크는 개혁신학을 발전시켰다. 스콜턴은 그들이 함께 공유하였던 학문적 스승이었지만, 신앙고백에 있어서는 그들은 헬더콕에 동의하였다.
2장에서 우리는 카이퍼의 신학관점을 살펴본다. 그는 신학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정의하였고, 이 지식을 그것에 연루된 방법론으로서의 신학(logy)과 구분하였다. 이런 구분으로 그는 신(theo)학을 그 속의 부분이 되는 기독론과 구원론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였다. 카이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우리의 주제에 대한 그의 관점을 평가할 수 있다. 카이퍼가 후택설과 전택설의 용어들을 자주 언급하였던 것은 유명하지만 그는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는 다른 주제들 예를 들어서 성육신의 이유, 일반은총, 그리고 교회의 유기체적 본질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 이 용어들을 소개하였다. 이 개념들에 대한 카이퍼의 관심은 ‘윤리’신학(D.Chantepie de la Saussaye와 J.H.Gunning jr의)을 논박하려는 그의 노력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 신학은 하나님의 작정의 불변성을 포기하였고, 19세기의 다른 신학적 방향과 일치하면서,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 아담이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더라도 ‘성육하여야 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카이퍼는 아담의 죄 때문에 성육하셔야 했었음을 믿었고, 죄가 하나님의 그 작정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의견에 도달하게 되었다. 카이퍼는 일반은총교리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이것을 전택설체계의 기초 위에서 하였다는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후택설과 전택설의 논의는 예정의 대상의 문제에 집중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죄의 상태로부터 회복되어질 가능성은 예정론의 역사에 있어서 깊히 토론되지 않는다. 후택은 타락한 인류와 함께 시작하기 때문에, 그 안에는 구조적으로 회복의 가능성을 염두에 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전택에 따르면, 창조되어질 인류가 그 예정의 대상이며, 그러므로 그런 회복의 가능성을 염두에 둘 여지가 있다. 이런 방법으로 특별은총 뿐만 아니라 일반은총도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서 계획되어진다. “유기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카이퍼의 입장도 또한 전택설적 관점으로부터의 비슷한 추론에 근거한다. 카이퍼는 신학에 대한 자신의 정의로부터 기독교의 모든 교리의 욧점들에 접근하기를 원하였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의 견해는 죄 때문에 기독론적이며 구원론적인 것이 아니라, 죄에도 불구하고 신학적인 것이 되었다.
3장에서는 H.바빙크의 신학이 취급된다. 먼저, 펠라기안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예지’론을 거부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는데, 펠라기안적 예지론에 따르면,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 자신의 구원에 인간 자신의 선택이 사후적으로 재가받게 된다. 바빙크는 이것을 ‘관념’(idea)이라는 플라톤적 사상의 도움으로 배척하였다. 그는 죄를 포함하여 역사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는 어떤 관념이나 존재도 죄가 있는 것으로 돌리지 않았다(He ascribed neither idea nor being to sin.). 역사와 섭리를 설명하면서 그는 유기체라는 낭만적 개념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목적론적인 것에가 아니라 기계론적인 것에 대립되는 것이다. 그것에 의하여 그는 어떤 목적, 곧 하나님의 자기-영광이라는 목적에 대한 수단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예정론의 역사를 역사적으로 기술하면서, 그는 어거스틴 이후에 예정의 범위가 점점 좁아져서 예지에 국한되어 버렸다는 개념에 주목하였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작정의 개념을 더 넓게 해서 사용하는 것을 택하였는데, 그가 사용한 작정개념은 하나님의 자기-영광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예정을 또한 포함하였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의 행위로서 이중예정 뿐 아니라 유기도 받아들였다. 유기를 받아들이는 견해는 후택설을 취한 사람들에 의해서는 채택되지 않았는데, 후택설자들은 유기를 하나님의 정의의 행위로서 보았지만, 전택설자들에 의해서는 채택되었다(The latter position was not adopted by the infra group, which saw reprobation as an act of divine justice, but by supralapsarians.). 바빙크에 따르며, 전택설자들은 ‘quod ultimum est in executione, primum est in intentione’(집행에 있어서 최종적인 것이 의도상 가장 우선적인 것이다)라는 원리에 의존해서 자신들의 구조를 설명한다. 그 규칙은 이상적인 것이며 목적론적인 것이다. 하지만 후택설자들은 실제적이며 역사적인 순서를 따른다.
그는 후택설과 전택설은 각각 성경의 부분적인 본문들로만 논증이 되기 때문에, 각각 부분적으로만 옳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그의 관점을 ‘신비가로서의 그리스도’(Christus mysticus)라는 개념과 연관되어 있는 그의 ‘관념’(idea)에 대한 가르침으로부터 평가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예정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언약의 머리로서 생각하였다. 여기서 언약이란 구속의 계약(pactum salutis)와 은혜언약을 모두 포함한다. 그런 뒤 그는 그리스도를 행위언약의 머리로서의 아담과 대조하였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또한 은혜언약의 중보자이다. 그는 아담의 죄를 담당하기 위하여 성육되셔야 했다. 그리스도의 두 기능들이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 상호간에 연결되어질 때 하나의 긴장이 발생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머리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실현하기 위해서 지상에 오셔야 했지만, 그의 성육신은 인간의 죄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죄와 성육신이 작정 가운데 함께 포함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빙크의 종합적인 정신 가운데서 하나의 긴장을 보여주는 공식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담의 창조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고려되었다는 것에서 전택설과 후택설 모두가 함께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infralapsarisch”(‘infra-supra-lapsarisch’라고 해야 문맥에 맞지 않을까?SSE)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타락과 그리스도의 오심을 의지하셨다(willed)는 사실을 바빙크는 때로는 전택설적으로, 때로는 후택설적으로 표현하였다.
4장에서 세 신학자들이 세 방향들을 각각 대표하는 사람들로서 취급된다. GKN의 K.데이크(Dijk)는 도르트총회 때의 후택설과 전택설이라는 주제에 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성격상 역사적인 것이지만, 그 논문에서 그는 자기 시대의 중요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그에 의하면, 자기 시대의 논의는 도르트총회 시기의 문제와 한 가지 공통된 것이 있었는데, 예정의 대상이 누구냐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의 결론은 예정의 대상이 어떤 개혁주의 신앙고백문에도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논의하는 것은 합당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택설이 심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허용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택설에 대한 데이크의 이 의견은 한 가지 점에서 수정되었다. 데이크의 논문은 F.쥬니우스(Junius)에 의해서 공식화되어진 대로, 그리스도의 창조-중보자되심을 위한 변증을 포함하는데, 결국 그리스도의 중보자되심은 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정의 유일한 목적은, 죄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중보자되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시키는 것이다. 후에 그는 이 중보자됨의 정의를, 중보자됨은 오직 죄에 의해서만 필요하게 된다는 그 자신의 정의에 기초해서 비판하였다. 이것은 실상 쥬니우스에 의하여 제안된 그리스도의 창조-중보자되심을 부인하게 된다. 후택설과 전택설에 대한 그 자신의 설명에 근거하면 데이크는 전택설자인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작정 안에 죄를 포함시켰다는 것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예정의 순서와 대상에 관하여 그는 전택설에 기울어진다. 하지만 창조-중보자됨을 부인하기 때문에, 그의 관점은 완화되었다.
GGNNA의 G.K.케르스텐(Kerten)은 예정의 대상으로서 타락한 인간(homo labilis)을 확실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분명히 예정의 순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구속의 언약(pactum salutis)에서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인간(hom labilis)은 타락한 인간(homo lapsus)로서 보인다. 이것은 선택과 구속의 언약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관점은 또한 그리스도의 중보자되심에 대하여 생각하는 효력을 갖게 된다. 그는 구속의 언약(pactum salutis)의 머리이면서도 또한 중보자이신데, 이 언약은 은혜언약에서 성취되어진다. 이 두 언약들은 사실 동일한 것이다. 그는 소위 두 개의 언약이라는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의 관점은 가장 전택설주의자인데, 특별히 선택과 유기에 대한 그의 관점에 있어서 그렇다.
CGK의 J.J.판더 스카이츠(van der Schuit)는 데이크와 케르스텐의 견해들을 반대하였다. 그는 도르트총회의 후택설의 가르침이 후택설입장에 기초한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성경적 기초에 근거해서 자신의 후택설 견해를 입증하려고 한다. 그는 세 가지 언약들의 교리의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한다; 그리스도는 은혜언약의 머리는 아니고 단지 이 언약의 중보자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머리라는 것을 그분의 중보자되심을 통해서 알게 된다. 하지만, 그의 관점 안에서 선택과 구속의 언약 사이의 거리는 너무도 가까워서 사실 창조와 통합상태(creation and the status integritatis)를 위하여 어떠한 신학적 여지도 남겨두지 않고 있다.
5장에서는 K.스킬더의 관점을 우리는 논의한다. 그의 사상의 발전을 후택설과 전택설에 대한 그의 견해들의 배경으로서 미리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일반적인 사상은 화란의 개혁신학과 칼 바르트 등의 변증법적 신학과의 대면에 의해서 형성된다. 이것은 역사의 의미에 대하여 깊은 숙고를 하게 하였다. 변증법적 신학은 이 세상에서의 역사를 희생시키면서 “영원”과 “시간”을 상호간 상쇄시켜 버린다. 이것은 타락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부인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스킬더는, 바르트와 모든 종류의 신비주의, 특별히 낭만주의에 반대하면서, 낙원과 타락의 역사성을 견고하게 주장한다. 게다가, 스킬더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역사의 시작점에 서있는 것이다.
후택설과 전택설에 관하여서 말하자면, 스킬더는 이 용어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하였다. 한편으로, 그는 그것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전택설)와 “인간의 관점에서”(후택설)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하였다. 그러함으로써 그는 그 자신의 교회들의 입장을 승인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이 일종의 체계가 되어지게 되면 그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만약 이 용어들이 하나님의 작정 안에서의 순서를 설정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반대하였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소위 ‘quod ultimum est in executione, primum est in intentione’(집행에 있어서 최종적인 것이 의도상 가장 우선적인 것이다)라는 전택설적 원리를 한번 숙고하였다. 그는 이 원리로 전택설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가치를 폄하하고 있는 반면, 후택설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전택설은 이 세상을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여긴다. 곧, 천국에 이르는 곳이냐 아니면 지옥에 이르게 되는 곳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는 전택설의 이런 관점을 거부하였고, 결론을 내리기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고 하였다. 세상은 그 자체로서의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과 동반한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이 우주 안에 있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그는 또한 이 원리의 목적론적 측면을 살려놓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스킬더는 개혁신학의 역사 가운데서 가장 일관적인 전택설주의자로서 여겨지고 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스킬더가 이중예정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진노는 affect(영향을 미치는 것)가 아니고 effect(영향을 입은 것)이며,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라는 명제에 도달하게 되었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스킬더가 하나님의 진노(혹은 하나님의 증오)가 그 진노 자체의 대상들을 만들어낸다(divine wrath or divine hate creates its own bojects)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스킬더의 사상은 신비주의(항론주의신학을 포함하여 영지주의와 동의어로서), 범신론과의 직면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신비주의와 범신론은 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의 자의식의 과정의 동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스킬더는 이 입장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를 없애버리기 때문에 거부하였다. 하나님에 의한 선한 창조와 타락의 역사성이 부인되기 때문이다. 스킬더는 언약의 개념 아래에 분노를 논의하는 것을 포함하기를 원하였다. 언약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보복이 하나님의 진노가 표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약의 하나님의 작정과 연결해서 설명하였다. 진노는 하나님의 심판하시고자 하는 의지이다. 그는 이 두 가지 생각들을 결합시켰는데 그 결과 “진노가 그 대상을 창조한다”(wrath creats its objects)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신비주의에 대한 비판은 받아들이지만, 이런 공식을 불행스러운 것이라고 여긴다.
6장에서는 G.C.벌카우에르의 사상이 분석된다. 제일 먼저, 우리는 그의 사상의 발전을 영원한 칭의(eternal treatment)를 그가 취급하는 것에 대해서 집중해 봄으로써 설명한다. 우리의 의견으로는, 이 분석은 벌카우에르가 교의학적 주제들의 동기를 그것들의 실재보다 더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본질적으로 영원한 칭의를 반대하지만, 그것에 호소한 것은 그 동기를 보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의 K.바르트와의 만남이 그의 신학적 동기화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는 처음에는 변호하고 있던 개혁신학적 예정론을 결국 거부하였다.
그의 책 『하나님의 선택』(Divine Election)은 이런 태도의 변화가 관찰될 수 있는 기간 동안에 저작되었다. 이 책속에서 그는 선택과, 안경(speculum, glass)으로서의 그리스도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 그는 유기를 취급하지만 로마서9~11장을 구원역사로서 취급함으로써 이중예중을 부인하고자 힘쓴다.
전택설과 후택설을 취급하면서 그는 개혁주의 신앙고백문들이 작정의 순서에 관한 한 후택설을 택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 뒤 그는 “무엇이 후택설적 순서의 동기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집중한다. 그는 후택설이 그런 순서(먼저 창조와 타락이 온 뒤 그 다음에 선택이 오는)를 가지기 때문에 죄인이 자신의 죄와 죄책을 변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한다는 견해를 지니고 있다. 그를 평가하기 위해서, 우리는 벌카우에르의 이 입장을, 그의 초기의 입장과 비교하되, 이 주제에 대해서 그가 바르트와 만나게 되는 것을 조사해 봄으로써 비교해 본다. (처음에는?? SSE) 벌카우에르는 바르트가 하나님에 의한 선한 창조를 부인하기 때문에, 바르트를 “영지주의적 전택설자”(gnostic-supra)라고 비난하고 있다.
벌카우에르는 창조와 타락의 순서를 변호하면서도 바르트가 계시를 그리스도유일주의식으로 협소화시키는 것을 반박하였다. 바르트에게 반대하면서 그는 전택설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개혁신학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뒷날 그는 인간의 상실성(타락)을 전면에서 내세었다. 이것도 다시금 바르트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 후기의 동기가 더욱 강조되면서, 하나님의 작정에 대한 개혁신학적 교리를 포함해서, 다른 요소들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신학의 반세기』(A Half Century of Theology)라는 책 속에서 그는 이 후택설적인 동기를 바르트가 주장하였던 다른 동기와 결합시킨다. 곧,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의 실재와 결합시키는데, 이것을 그는 『칼 바르트 신학에서의 은혜의 승리』(The Triumph of Grace in the Theology of Karl Barth)에서 자신의 후택설적 관점에 의해서 비판하였던 것이다. 전택설에 대한 그의 취급을 보면, 우리는 그가 오랫동안 바르트와 대면해 왔다는 것만 아니라, 또한 그 자신의 신학적 사고가 변화되었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세 가지 주제들을 요약한다: 우리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의 역사적 간격; 몇 가지 주제들에 의해서 예시되어진 것과 같이, 우리들의 연구의 결과에 대한 평가; 그리고 우리의 주제가 어떻게 오늘날 제시되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분별.
사변적인 신학자로서의 카이퍼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은 그의 후기 작품들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카이퍼가 전택설입장을 훗날 취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그는 원래 현대신학자로서 죄와 하나님의 작정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일원적으로 지성적으로 짜 맞추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는 “윤리적”(Ethische) 신학으로 개종하게 되었는데, 그 신학은 죄의 윤리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 신학과는 다르게 그는 하나님의 작정의 불변성을 변호하였다. 그 단계에서, 그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작정 가운데서 죄를 취하셨다는 하나의 전택설적인 공식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하나의 종합 그 이상이다; 자신의 교회들에서 불편함을 야기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이퍼와 바빙크의 전택설적 입장의 배경을 논증하기 위해서 A.슈바이쳐(Schweizer)를 소개한다. 그들은 이전의 저자들(‘oude schrijvers’)과는 다르게 예정을 취급하기 때문에, 종교개혁 이후 17세기 중반과 18세기에 있었던 로마교회와 루터교회의 신학과 비교해서 그들(바빙크와 카이퍼)에게는 개혁신학이 이들(로마교회와 루터교회)보다 더욱 발전한 것이다. 특별히 예정론에 있어서 특별히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슈바이처와 일치한 것은 특별히 바빙크이다. 게다가 바빙크는 슈바이처가 어거스틴으로부터 취하여 전택설을 묘사하는 것을 채택하였다. 이것으로부터 바빙크는 지속적으로 전택설적 입장을 선호하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관점은 어떤 소동도 일으키지 않았다. 우리는 후택설과 전택설이 데이크, 케르스텐 그리고 반데 스카이트에 의해서 도식적 체계(schematic systems)를 취하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데이크는 전택설자로 기울어졌고, 케르스텐은 자신이 전택설자임을 고백하였으며, 반더 스카이트는 후택설자가 되었다. 하지만 스킬더와 벌카우에르는 다른 태도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후택설과 전택설을 체계로서 보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분명하게 이 용어들을 신학의 다른 주제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카이퍼와 바빙크를 결합시켰던 것이다.
카이퍼는 하나님께서 죄를 수단으로서 의지하셨다고 진술하면서, 죄를 예정과 연결해서 취급하였다. 이것은 듣기에 거북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는 예정과 성육신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논제를 미리 제시하였다. 이것은 죄를 언급하지 않는 잇점을 가지고 있었다. 카이퍼의 전기와 후기의 입장들은 성육신과 죄의 관계를 설명해야 했다. 이것으로부터 카이퍼는 그가 듣기에 거북하게 하는 죄에 대한 단어들을 처음부터 함의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방식으로 그는 죄와는 무관하게 다른 일들을 또한 숙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창조에 주목한 것은, 일반은총을 예정의 부분으로서 서 있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시도로서 설명이 가능하다. 바빙크가 이런 전택설의 공식을 상대적으로 초기에 사용하였다는 것을 아는 것은 놀랍다. 그는 예정에 대해서 더 넓은 정의를 취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작정 속에 두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성육신만 아니라 죄도 포함된다. 하지만 그는 죄의 원인을 인류 안에 있는 것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면 논의의 중심점은 하나님의 작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낙원과 그 역사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는 구원의 확실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죄의 교리를 하나님의 작정교리에 붙어있게 하였다. 하지만, 이런 수수께끼를 질문해야 한다: 왜 그리고 어디서부터 죄가 오는가?
카이퍼와 바빙크는 모두 “죄를 포함하는 하나님의 작정”(divine decree including sin)이라는 공식을 채택하였다. 우리가 보았던 대로, 이 생각은 그 이전의 전통에서 받았던 것과는 다른 의미를 취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성육신과 같은 교리와 연결해서 취급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창조-중보자되심(그리고 연합된 중보자)을 그리스도에게 주었다(confer). 전택설자였던 크레스턴은 이 칭호를 그리스도에게 붙이는 것을 거부하였고, 후택설자였던 판더 스카이프는 허용하였다. 데이크는 처음에는 그것을 채택하였지만, 성육신은 죄 때문에 필요하게 된다는 것에 근거해서 훗날 포기하였음을 기억하는 것은 흥미롭다. 후택설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전택설에 있어서는 창조와 타락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다. 게다가, 그리스도라는 이 칭호는 분명하게 전선택설적 특징을 갖는다. 이 점을 쥬니우스와 콤리가 강조하였다. 선한 창조에 대하여 이 역사적으로 정향된 관점으로부터, 스킬더는 이 용어를 카이퍼와 바빙크가 사용하는 것을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스킬더의 이 관점은 바르트 등에 반대하는 그 자신의 개혁신학적 전통을 지속하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훗날 그는 바르트 등을 비판할 때 이것을 원천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스킬더는 창조와 타락 사이에 있는 거리를 역사의 한 국면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선구자들이 말하였던 대로 하나님의 작정의 한 국면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후택설과 전택설을 창조의 영역(그리고 섭리의 영역)에서 취급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작정 교리를 포기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의 강조점은 낙원에서의 언약을 그가 해설하는데에 있다. 그는 양방향적인 언약의 존재를 일방향적으로 기원하였다는 점과 결합시키기를 원하였다. 언약이 일방향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작정에 의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정향된 스킬더의 사상은 하나님의 작정에 대한 전통적인 교리를 교정하는 것이다. 그는 구속의 언약(pactum salutis)을 확장시키고, “작정-집행”의 체계를 개혁해보고자 하였다. 우리는 이 관점으로부터 소위 전택설적 규칙과 그가 대면하고자 하였던 것을 평가해 볼 수 있다. 그는 그는 이 문제를 “작정들은 최종적으로 하나님 자신이다”(the decrees are at last God self)는 또 다른 공식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해 보려고 하였던 것이다. 우리들의 의견으로는 스킬더가 여기에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an unresoloved problem)을 하나 남겨두고 있다. 스킬더의 신학과 관계해서, 우리는 PRC의 H.훅세마(Hoeksema)의 전선택설적 입장에 주목하였다. 특별히 그의 언약론에 있어서의 전택설의 위치에 대해서 말이다.
벌카우에르는 스킬더와는 다른 길을 택하였다. 그래서 그는 작정, 죄와의 작정(decree with sin), 창조-중보자됨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도 역시 역사를 강조하였지만, 죄인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강조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죄에 대한 합리적인 변명과 죄의 기원에 대한 사변적인 설명을 질식시켜 버렸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죄와 죄책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일 뿐이다. 스킬더와 같이, 그는 죄와 심판 사이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관계에 주목하였다. 스킬더와 벌카우에르는 둘다 죄는 말끔하게 설명될 수 없는 것이다고 진술하였다. 벌카우에르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죄의 저자가 되실 수 없다는 그의 선험적인 신앙 때문에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스킬더는 하나의 설명을 시도하였다. 그러므로, 말끔하게 설명하는 것을 거절하면서도 스킬더는 그러한 길을 따를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주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 그가 여하튼 전택설을 가르쳤다고 비난을 받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장은 본질적으로 전택설적인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그는 본질적으로 개혁신학적 전통을 따르고 있지만, 벌카우에르에 의해서는 그 전통이 희미해져 가는 것이다.
결론에 있어서,
우리는 화란에서 기원하게 된 우리의 이 주제는 그 내용에 있어서는 아주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 주제의식은 하나님의 작정에 있어서 타락의 위치, 작정의 순서, 그리고 예정의 대상 외에 부가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들은 언약의 개념, 작정의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위치 등에 관한 것이다.
개혁신학은 하나님의 작정을 다뤄야 한다. 하지만, 이 중요한 주제를 명확하게 할 것이 아직 남아 있다. 우리는 카이퍼가 당시에 여러 신학자들에 대항해서 변증했던 그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점에 있어서는 그의 생각에 단점이 있었다는 점도 함께 말이다.
그들이 전택설과 후택설을 두 개의 체계들 중의 하나로서 선택하지 않으면서, 그것들의 도움을 받아서, 개혁신학을 새롭게 발전시킬려고 하였던 것은, 카이퍼와 바빙크 그리고 스킬더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되었다. 개혁신학은 이제 그 유산을 변호하고 발전시켜야 할 명령을 받았다. 우리는 이 작업이 개혁신학적 하나님의 작정교리의 보존과 재발견으로 시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론 (Theology Proper) (0) | 2020.08.21 |
---|---|
신약의 하나님의 이름 (0) | 2020.08.16 |
하나님의 절대적 인격의 속성들 (0) | 2020.08.11 |
신론 (Theology Proper) (0) | 2020.08.11 |
하나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1) (0) | 2020.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