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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이해하는 방법

하나님아들 2020. 8. 5. 16:46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와 비슷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쓴 사람(원저자)이 이야기하고자 하는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 듯하게 이해를 해도 그것이 글을 쓴 사람이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을 잘못 이해한 가장 극단적인 예가 바로 이단입니다.

글쓴이가 의도한 바대로 최대한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몇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제가 설명하는 방법이 마치 신학공부를 하는 것같이 느껴져 벌써부터 머리가 아플 수 있을 겁니다. 너무 부담같지 마세요. 아래의 내용은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성경 말씀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골치 아파하거나 부담갖지 마세요.

1.원저자-원독자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총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가운데 모세 오경은 3500년 전, 신약성경은 약 2000년 전에 씌여졌습니다. 그 당시 시대 상황, 문화, 언어등을 고려하지 않고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다. 즉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 다소 전문적인 지식과 공부가 필요한데 구글이나 유투브를 검색해보면 좋은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학을 전공해야만 알수 있었던 내용을 지금은 관심만 있으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공부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시대에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는 시대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일부일처제를 허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3000년 전 2500년 전의 상황을 지금 그대로 적용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정탐군을 숨겨준 기생 라합은 단순한 창녀가 아니라 당시 바알신을 섬기던 신전의 사제였습니다. 바알은 다산과 풍요의 신입니다. 바알에게 드리는 제사는 바알을 흥분시키기 위해서 그 앞에서 집단 난교 혼음을 하는 것이고 그 역활을 사제들이 담당했습니다. 라합은 그 일을 하던 사제였습니다.

사도바울 시대에도 사제들은 똑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에 보면 당시 시장에 유통되는 고기들은 전부 이방신전에서 그와같은 음란한 난교의 제사의식을 거친 후 나온 것들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우상에게 먹어도 되느냐 마느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것은 단순이 고기를 먹어도 되냐 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방신 제사에 드려진 고기를 먹어도 되느냐는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우리식으로 하면 기독교인이 제사상 지낸 제사음식을 먹어도 되냐는 것과 비슷합니다. 결론은 먹어도 됩니다. 단 나의 믿음으로는 먹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이 이 때문에 시험에 들거나 마음이 힘들어진다면 않먹는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해, 교회 전체의 덕을 세우기 위해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읽을 때는 그 당시 시대 상황으로 들어가 성경의 원저자가 그 글을 읽은 원독자의 입장이 되어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 시대 상황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성경의 전체적 구조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숲을 먼저 봐야 합니다. 성경 전체 66권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와 각 성경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각 장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저는 특별히 키아즘이라는 것을 주로 사용할 겁니다.

제 아이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치다가 어느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성경강의를 하나 발견을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제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과 거의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너무 똑같아서 아내나 아이들은 제가 그 강의를 보고나서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제가 봐도 너무 신기해서 그 강의를 한 목사님의 다른 유튜브 강의도 몇 개 들어보고 저랑 잘맞는 것같아서 책을 사서 보게 되었습니다. 유석영 목사님이라는 분인데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물론 키아즘만이 절대적인 방법이 아니라 여러 방법 가운데 하나이고 키아즘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데 키아즘을 주로 사용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간략하게 키아즘이 뭔가를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키아즘 Chiasm은 유대인들이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유대인만의 독특한 문장 구조입니다.
우리는 두괄식, 미괄식 혹은 양괄식 등에 익숙하데 유대인들은 말하고 싶은 주제를 문장의 한 가운데 두는 둡니다. 일종의 중괄식인데 특이한 점은 주제 앞뒤의 내용들이 서로 대칭을 이룹니다. 쉽게 말해서 데칼코마니입니다. 데칼코마니 한 가운데에 진짜 말하고 싶은 주제를 놓고 그 양 옆으로 서로 대칭되게 글을 쓴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을 보면
a.하나님 나라 사역준비, 임마누엘1-3장
b.하나님 나라 사역개시 4장
c.하나님 나라 본질과 백성의 삶의 기초 : 산상설교 5-7장
d.하나님 나라 도래결과 (10개 기적) 8-9장
e.하나님 나라 일꾼 파송설교, 외적 사역 10장
f.하나님 나라 배척 11-12장
g.하나님 나라 비유 8개 13장
f' 하나님 나라 배척의 심화, 제자들의 수용과 자기부인 14-17장
e'하나님 나라의 큰자,교회 공동체설교 내적연합 18-20장
d'하나님 나라의 적대자들 : 1주일 고난주간의 시작 21-23장
c'하나님 나라 백성의 종말론적 삶의 자세 24-25장
b'하나님 나라 사역의 완성: 십자가 죽음과 부활 26장-28:15
a'하나님 나라 사역 위임, 임마누엘 28:15-20

한가운데가 13장 천국의 8가지 비유인데 이것이 마태복음 말하고자하는 핵심주제이고
이를 중심으로 양 옆에 다른 이야기들이 대칭을 이루어 글을 쓰는 것을 키아즘이라고 합니다. 너무 머리 아파하지 마시구요. 한마디로 유대인들은 데칼코마니처럼 글을 썼다 이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3.단란과 단락 사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소경을 눈뜨게 한 일같은 어떤 특정 사건이나 예수님이 가르친 설교 비유등에는 익숙하지만 그 앞뒤로 어떤 것이 있는지 모릅니다. 왜 이 사건 전에 어떤 일이 있어고 왜 이 사건 뒤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전체적으로 봐야 되는데 한 문단만 떼어서 읽고 이해하는데 익숙합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에 보면 부자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고 싶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자신을 쫒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 청년은 많은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건 다음에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소경을 치유하는 일이 나오고 그 다음에 세리장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A 부자청년 이야기
B 소경이 눈뜸
A' 삭개오

삭개오는 여리고 지역의 세리들 가운데 장이었습니다. 과도하게 세금을 거두어서 막대한 부를 이룬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나서 과거 자신이 부당하게 축재했던 돈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삶에 변화가 온 것입니다. 이게 진정한 회개죠. 부자 청년은 재물을 포기하지 못해 돌아갔고 그 후 예수님은 소경의 눈을 뜨게 했고 그 다음 세리장 삭개오가 부당하게 모은 재물을 포기하고 자신의 과거를 청산했습니다. 여기서 마태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마태는 이 세가지 사건을 의도적으로 이와같이 배치했습니다. 즉 육신의 눈을 뜨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것-영적인 눈을 뜨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원저자 마태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냥 개별적인 내용만 보면 마태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한 특정 구절만 보지 말고 문단 앞뒤로 어떤 내용이 있는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체적으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의 예에서 설명한 것도 바로 키아즘 구조입니다. 이해하기 쉽지지요. 전혀 어려워할 필요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신약성경에 보면 장과 절이 구별이 되어 있는데요. 이러한 장과 절의 구분을 사용한 것은 대략 16세기부터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장과 절의 구별해서 쓰인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있을 때 로마 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편지를 쓸 때 누가 장과 절을 구별해서 쓰나요?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쭉 쓰는 거지요.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썼을 당시는 자신의 글이 신약성경 정경이 되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읍니다. 그 편지가 로마 교회와 여러 교회들에 읽혀졌고 이후에 성경 말씀으로 인정이 된 것이고 이후 16세기에 어떤 인쇄업자가 아이디어를 내서 지금과같은 방식의 장과 절로 구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장과 절에 얽매이지 말고 문단 앞뒤 전체적으로 보는 습관을 반드시 길러야 합니다.

4. 문맥을 파악을 해야합니다.

문맥을 파악하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또 깊이 들어가면
원어 히브리어, 헬라어도 알아야 되고 엄청 복잡해집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 상식적인 선에서 글을 읽을 때 문맥을 파악해서 읽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빌립보서 4:13절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인데요
(빌 4:13, 개역)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를 들어 얼핏보면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앞뒤의 문맥을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니라 어렵고 궁핍한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것을 배웠고 풍부한 것도 누릴 줄도 안다는 것이다. 뒤에 바울은 다시한번 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 처할 줄 아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이 모두 다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식의 해석은 얼핏보면 놀라운 고백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문맥을 조금만 따져보면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것을 알수 있지요.

5.문자적은 것과 문자적이지 않은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네 눈이 범죄하면 빼버리고 손이 범죄하면 찍어 내버려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죄를 범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한 과정법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문자적으로 해석해야할 것을 영적으로 해석 (Sprittualization, 알레고리적 해석)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한국의 많은 이단들을 보면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런데 로마서 3:3-4 에 보면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 즉 육체적으로 유대인이어 합니다.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유대인이 아니죠. 성결의 영으로는 부활을 해야되는데 자신을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부활한 사람이 없죠. 하나님의 교회는 자신의 교주 안상홍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아직 부활 안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어야 합니다. 앉은 뱅이,소경, 문둥 병자를 고치고 나사로를 살리신 것처럼 죽은 자를 일이크는 능력을 보임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어야 진짜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 모든 조건을 해당하는 사람이 없지요. 그들은 한결같이 영적으로 자신들이 메시야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 유대인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자그대로 해석해야할 경우와 비문자적으로 해석해야할 것을 구별하는 것이 명확하게 구분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경 해석의 오류와 이단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부를 해야합니다. 그것도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6. 원문 성경 : 더 깊이 있게 말씀을 이해하게 합니다.

히브리어, 헬라어를 배워서 원문을 읽으면 훨씬 말씀을 깊이 깨닫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이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첫째, 비록 원문을 몰라도 성경을 이해하고 성경하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둘째, 원문 성경을 해석해주는 인터넷 싸이트들이 있습니다.
세째, 인터넷에 원문을 배울 수 있는 싸이트들이 많습니다. 관심과 필요을 느끼면 공부하면 됩니다.

7.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성경 전체를 봐야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성경이 말하는 전체 내용과 일치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여 행함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만 보면 행위 구원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복음서에도 마치 행위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같은 구절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한 것은 행위 구원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받지만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이전과 다르게 산다는 것입니다. 마치 회개한 삭개오가 자신이 부정축재한 재물을 배상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분명한 행동의 변화, 삶의 변화라는 열매가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하고 성경 전체가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근거하여 각 성경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8. 피상적인 해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공부를 하거나 QT를 할 때 "나에게 이 구절이 이런 의미로 다가왔어요" 또는 "당신에게는 이 구절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고 할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을 해야합니다.

불행히도 많은 성경공부가 무지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기는 하지만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그냥 서로 이야기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기 위해서는 꾸준하고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딤후 2:15). 우리는 공부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9. 삶에 적용을 해야합니다.

모든 성경 공부와 QT를 항상 삶에 적용할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단지 공부와 지식만으로 끝나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히려 지식만 가득한 바리새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해서 다음에 기회가 될 때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1.원저자-원독자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시대,배경,문화에 대한 이해)
2.성경의 전체적 구조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키아즘)
3.단란과 단락 사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4.문맥을 파악을 해야합니다.
5.문자적인 것과 비문자적인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6.원문 성경 : 더 깊이 있게 말씀을 이해하게 합니다.
7.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8.피상적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9.삶에 적용을 해야합니다.

이 가운데 6. 원어 공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평신도들도 능히 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그러니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요즘은 유투브 구글에 너무나 좋은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옥석을 가리는 것이 관건이지 관심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성경을 깊이 공부할 수 있는 놀라운 시대를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