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스크랩]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아들 2018. 10. 2. 23:06






*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에 속하는 성품

Attributes, Properties, Perfections, Virtues of God



속성을 탐구하는 방법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찾아내려는 시도 (잘못된 방법)

1) Via causalitatis 인과성의 방도: 원인, 결과를 계속 따져가면 최초의 원인(Prima causa), 최초의 시작이 있어야 한다. 최초의 원인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



2) Via negationis 부정의 방도. 제한적인 사람이 갖는 속성의 반대 속성. Aristotels가 대표

사람의 속성:

Mens: immens 연장이 없다. 즉 무한하다.

Corporal: incorporal 몸이 없다.

Mortal: immortal 죽지 않는다. 영원하다.

Comprehensible: incomprehensible. 불가해하다.

Finite: infinite 끝이 없다.



사람이 있는 것을 가지고 부정을 하여 하나님을 정의하게 되는데, 그 하나님은 진짜가 아니다.



3) Via eminentiae 우월의 방도, 우수성의 방도. 최대한으로 우월하게 한다.

omni-science 전지

omni-presence 전재(편재)

omni-potentia 전능

omni-benevolence 전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것을 찾아냄. 중세 때 이것을 발견함. 이런 하나님은 철학자들의 하나님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비슷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일반 은총 가운데 찾아낸 것이지, 성경에 근거해서 찾아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정리할 때는 사용할 수 있으나, 그렇게 찾아낼 수는 없다.

파스칼: 철학자의 하나님은 아브라함, 야곱, 이삭의 하나님(역사를 통하여 계시하시는 하나님,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계시의 발전…)이 아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올바로 아는 방식.

하나님의 속성을 알려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이미 행하신 것을 살펴봐야 한다(물론 지금도 행동하시지만, 인간이 그것을 마음대로 해석 할 수 있으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과거 행하신 일을 보여주고 반드시 설명을 해준다. 이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삶 속에서 확증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추상적으로 보이는 말씀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체험 되어야 한다.

시 37:3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 .

이 먹을거리는 살면서 실천해야 한다.

역사, 체험, 경험: 이것을 모두 성경의 가르침에 종속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싶은 이유

1) 하나님을 진짜로 사랑하면 알고 싶다.

구원이 완성이 되어 하늘나라에 있어도 하나님을 알아 나간다.

성 어거스틴: 나는 하나님과 나의 영혼을 아는 것 밖에는 관심이 없다.

세월이 지날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증진되어야 한다.

2) 배워나갈수록 우리는 피조물의 수준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본 받아야 한다. 우리가 완전해 질 수는 없으나 상대적으로 완전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속성

1) 비공유적 속성; 우리하고는 성질이 다르다. 하나님만 가지신 속성

2) 공유적 속성; 엄밀히 따지면 비교는 안되지만 , 피조물들이 상대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





1. 비공유적 속성



1) 하나님의 지존성(스스로 존재하는 성질)

하나님은 원인이 없다. causa sui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원인이시다.

cf) 부처 "천상천하 유아독존"

스스로 있는 자= (70인역; 나는 그 존재하는 자이다.) I am who/what I am. I will be what I will be.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 나를 규정하려고 하지 말라. 나와 함께 이 구속사건에 참여하면 내가 누군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독립적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며, 역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출 3:1-5

출 3:2 여호와의 사자(성자로 추론, 하나님)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인간이 생각하는 불이 아니다.)

출 3: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하나님 앞에 있는 자리. 우리는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다)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Coram Deo: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제 성지,성지순례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천주교는 성지가 있으나, 개신교는 신자가 가는 곳이 성지이다.

성지순례는 성경지리 및 문화연수 로 바뀌어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성지가 하나님 앞이라 거룩했으나, 신약시대 이후로는 신자가 가는 곳이 성지이다.

청교도는 예배당 뿐만 아니라 상점(속이고 이익을 많이 봐야 함)도 거룩하게 여겼다. 그렇다면 상점에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신인동형적 표현: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것.

출 3:6-14

출 3:8 내가 내려가서(하늘에 있어도 알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함)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하나님이 이끌어내신다고 함)

출 3:11 (첫번째 질문)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3:12 하나님이 이르시되 (첫번째 대답)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출 3:13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출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2) 불변하심 Immutability

말 3:6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언약관계에 있어서는 불변하심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림자는 빛에 따라 변하는 속성이 있다. 회전하는 그림자가 없다는 말은 변하시지 않는 다는 의미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은 믿을 만하다.

시편: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 나의 의지하는 요새시로다



3) 무한성 Infinity

a) 시간과 관련한 하나님의 무한성: 영원

어거스틴: 하나님은 시간 가운데서(in tempore) 창조하신 게 아니라 시간과 함께(cum tempore)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창조 때부터 시간이 흘러간다. 그 전에는 시간이 없었다.

창조 전; 시간이 없는 상태 timelessness 무 시간성 (플라톤과 거의 모든 철학자는 시간과 영원을 대립해서 생각한다)

세상 끝; 시간은 끝없이 계속 간다. 시간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endlessness

Oscar Cullmann 바젤신학자. “Christus und Zeit” 아주 좋은 책. 완전히 옳지는 않음. 플라톤에 대항하여 endlessness를 주장.

창조 전과 세상 끝 이후의 영원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한 사람

플라톤은 timelessness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endlessness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들어오신다. 모든 시간 내에 계신다. 내재하시면서 시간을 초월하신다.

Eternal Now: 이 순간 안에 영원이 들어있다. 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영원의 3중적 의미: 하나님과 관계해서 영원은 3중적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간이 동시대적이다.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도. 모든 순간이 영원으로 차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 있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동시대적 이면서도 나와 함께 동시대적이다.



Karl Barth: 시간 안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면 하나님이 유한적 존재가 되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시간을 스치고 지나가셔야 한다. 시간과 접하지 않으면서 접한다. 탄젠트 point. 하나님이 시간에 들어오시면 검증 가능해진다. 예수는 역사 속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역사를 넘어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 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의 일부를 주심. 우리가 영원성에 참여하도록. 우리는 시간 내에서 살지만 십자가 때문에 영생을 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의 본래적 의미가 나타난다. 십자가가 시간을 구속함. 우리의 삶 전체가 구속된 삶을 산다.



십자가 이전에는 십자가의 예언을 믿는 자는 십자가 구속을 믿는 것과 같다.



b) 공간과 관련된 하나님의 무한성

omni - presence 무소부재.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다

인간의 존재방식: Circumscribitively 부피를 차지해야 존재. 동시에 다른 곳에 있을 수 없다.

천사: 바늘 끝에도 있을 수 있다. Definitively. 시공의 차별을 거의 안 받는다. 한 사람에게 2000의 귀신이 들어감(거라사인)

하나님: 하나님은 온 세상을 채우고 계신다. 부피와 상관이 없다..

존재론적;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이들과 함께 있다.

도덕, 윤리, 종교적; 하나님의 백성하고 만 함께 있다.



c) 하나님의 무한함과 관련한 온전한 존재





2. 공유적 속성



몇 가지 하나님의 속성은 인간에게도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속성과 같다는 것은 아니다.



1) 하나님의 영성 (Spirituality)



하나님의 독특하심

하나님은 영이시고, 몸이 없으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을 볼 것이며 (가시적인 것이 아님)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을 영적으로 뵙고 산다. Spritual vision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하나님을 뵈오나이다” : B. Warfield

딤전 1: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 지어다 아멘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아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함. 모세를 굴속에 넣으시고 손으로 보이시고 등만 보이심: Anthropomorpose. 하나님이 형체를 가지고 계신 것처럼 묘사.



왜곡된 개념: 창조 전에도 하나님이 계셨으므로, 우주 전체가 하나님의 몸이다.



우리가 죽고 나서 영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있는데, 영이신 하나님께서 영으로 보살피신다. 하나님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된다. 인간의 영끼리 육체적으로 교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면, 인간이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인성으로 나타남(계시). 사람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음.

그 분은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심. 그래서 기도가 매우 중요함.

기도란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대화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주기도문). 따라서 신자는 성화가 이루어 지지 않을 수가 없다.



3위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

영적인 관계라는 말은 원래 없다. 이 관계는 지정의의 전 인격적으로 나타남.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좋으면 좋을수록, 세상에서 좋게 살아야 한다. Abraham Kuyper(자유대학 창설자)가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함. 우리는 하나님과 관련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도록 지어짐.









2) 지성적인 속성들



a. 지식(신지식)

i. 필연적 지식(scientia neccesaria):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에 대해 아시는 것. 신적인 의지의 실행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님. 하나님은 그분이 존재하시는 만큼 아신다. 하나님은 존재와 그 의식이 범위가 같다. 동연적이다(연장이 같다)

ii. 자유로운 지식(scientia libera); 통찰의 지식(scientia visionis) 이라고도 함. 역사의 과정에서 실현되는 일에 관한 지식. 어느 영원의 시점에서 천지창조의 마음을 먹으심(작정). 그때부터 이 세상을 아심.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창조 계획이 없으시면 세상에 대한 지식이 필요 없으셨음. 작정은 scientia libera의 원천이다.



가정에서 추론하기.

현실적인 세상; 지금의 세상

가능한 세상들; 나만 없는 세상, 너만 없는 세상.

이런 세상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이미 창조를 작정하셨으므로 우리가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지식: 원형적 지식.

하나님의 지식의 성질: 통찰적 지식. 논증적이거나 추론적인 것이 아님.



인간의 지식: 모형적 지식. 우리는 항상 원형에서 출발해야 한다.

인간의 지식의 성질:

종합적 지식. 우리는 종합 해봐야 하고

분석적 지식. 분석 해봐야 한다

연속적 지식. 계속해서 알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시간은 과거와 오는 미래 사이에 있다. 하나님께는 모든 시간이 동시적이다. 작정하신 순간부터 인간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



b. 지혜

지식을 적용하여 최선의 길을 아는 것. 하나님께는 지식과 지혜가 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가장 최선이다.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감.



인간의 지식은 유비적 지식이다. thinking after God’s thought.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바를 따라서(성경에 근거) 살아야 한다. 이 세상 전체를 하나님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기독교 학문(성경적 관점). 죄의 본질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주장하는 것이다.

잘못된 삶:

i. 아무 생각 없이 살기. 목사나 예언자를 따라감. 만약 하나님만 생각하고 산다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ii. 신비주의. 신앙은 신비적이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아니다.



c. 하나님의 참되심(진실성)

진리다. 믿을만하다. 미쁘시다.





\\\\\\\\\\\\\\\\\\\\\\\\\\\\\\\\\\\\\\\\\\

강사는 이해를 위해 순서를 바꾸어 일단 하나님의 작정(Decree)을 먼저 강의함. 본 정리록에서는 순서를 맞추기 위해 이 작정 부분을 “II. 하나님의 사역” 으로 이전함.



\\\\\\\\\\\\\\\\\\\\\\\\\\\\\\\\\\\\\\\\\\





3) 도덕적인 속성들



1. 하나님의 선하심



a) 일반 은총 common grace

일반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선. 이 세상 전체에 대해서 선하시다. 자연계시.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인간들이 눌러서 우상숭배로 나타남.

(칼 바르트 특별계시만 인정. 일반적 계시, 자연계시를 인정안함-성경에 반함)

특별 은총 = 구원은총: 초자연적인 것. 특별히 하나님 백성에 대해서 더 선하시다. 이런 사람은 일반은총도 인정하고, 구원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하며 산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 모두를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기도해서 나은 병자와 의사가 고친 병자. 둘 다 하나님의 은총에 해당된다. 병이 났을 때 좋은 의사를 찾기보다 하나님께 먼저 아뢰야 한다.



b) 사랑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 사랑하심.

히브리말에서 미워한다는 말은 둘 중에 하나를 더 사랑한다는 말이다(가족을 미워하지 않으면).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함: 특별 은총적 사랑.

이슬람 교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은총이 있다. 그러나 구원과 관련이 없다.

일반은총과 관련된 성령의 역사.



c) 자비

공과에 관계없이, 곤궁과 비탄에 빠진 자들에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선과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음(벌콥)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자비하게 여기시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더 특별히 불쌍하게 여기신다. 헤세드(lovingkindness). 타조는 자기 알을 불쌍히(헤세드) 여지지 않거니와(사막의 열로 부화)



선하신 하나님.



아리스토텔레스: 최고의 선(summum bonum)은 행복(eudaimonism)이다.

기독교: 하나님만이 선이다.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나옴. 하나님과 관계 없이는 선한 것이 없다.

상대적인 선. 시민적인 선: 인간들의 일반적인 선. 안 믿는 사람들도 남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이것도 죄다 à 빛나는 악, 빛나는 죄(어거스틴)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가 배워서 실천해야 한다 ; 불쌍히 여김/ 사랑/타인에게 은혜를 미쳐야 함.

인격요인(인격변수):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나지 않으면 신학이 잘못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이 부차적인 것을 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함.



John Hick: 종교다원주의자. 어느 종교를 믿어도 구원 받을 수 있다.

원래는 복음주의자. IVF 출신. 살펴보니 신자나 불신자나 똑 같더라. 따라서 특별은총은 없다. à 이러한 그의 지적은 인격변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피조물의 수준 하에서 인격이 변해야 한다.



성령에 의해 다시 시작함: 신자는 과거의 빛나는 행위를 다 버리고 새로이 시작해야 한다. 믿은 후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자비로움을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내적치유의 문제:

[내적치유란 변화되지 못한 성품, 속사람이 치유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거듭남과 함께 내적 치유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짐. 예수를 믿으면 (중생 시에) 본질적인 변화가 이루어 짐. 성화라는 것은 이미 이루어진 본질적 변화가 차차 드러나는 것이다. 즉 성화는 정돈이다. 영적인 어린아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안 된다. 자신이 말씀에 복종함으로서 스스로 변화가 된다.

[독일사람의 경우 그들이 거듭나면 거의 즉시 성인이 된다. 그들에게는 어린이의 과정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옛날에 가지고 있던 것이 변화되어(세례받고) 사용되면 좋을 수 있다(사도 바울의 지식). 그러나 이것이 우상(금송아지)이 될 수가 있다. 주께서 그것을 사용하시지만, 그것을 발전시키거나 향상시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중생의 시점을 모른다.



d) 복되심

하나님의 복 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그 복에 참여 시키심. 우리를 여기에 초청하심. 믿으면 참으로 복이 옴. 세상의 복이 아니다.

시편1: 복 된자는 하나님 말씀을 늘 묵상하는 자. 하나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은 영광(무거움; 무게의 중심이 하나님에게로)으로 가득 차 계시다. 하나님 이름만 영광스럽게 된다면 나는 만족.

하나님 백성은 땅을 차지함: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거주자가 된다. 구약으로부터 발전해오는 개념으로 일단 세속적 복 개념은 배제해야 한다.

신자는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야 한다. 최악의 순간에도 감사해야 한다.



번영의 신학: 한국과 미국. 하나님을 믿으면 이 세상에서 잘된다.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도다. 이 말 앞에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므로”가 붙음. 그런데 감옥에 들어감.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형통.

신자는 모든 상황에서 복되다. 이것은 기독교의 본질이다. 복은 순간에 결정됨. 하나님을 믿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순간에 복됨.

영원으로 가는 순간: 순간의 중요성. 십자가 사건의 절대성 때문에 예수님 이전의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음.



하나님의 복 되심에 참여함: 영원토록 감사해도 부족함. 하나님이 이루신 구속, 구원의 감동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동양적인 사상; 세상은 돌고 도니, 순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기독교 사상; 그 순간이 귀하고, 항상 영원처럼 살아야 한다.



2. 하나님의 거룩함

3. 하나님의 의

벌코프 조직신학에 나와있는 이 두 가지 중요한 하나님의 속성은 시간 관계상 다루지 않음.

출처 : 종합예술인 수필가 데보라의 집
글쓴이 : 알프스의 눈동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