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청년 설교

[스크랩] 설교(25편)

하나님아들 2018. 8. 26. 20:32
설교(25편)



1996.8.24(토)
성경본문:빌3:12-14
설교제목:미래를 창조하는 삶

인생을 가리켜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빈손들고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들 한다.
그러나 실상은 빈손들고 왔던 인생이 그대로 빈손 들고 가는 것은 아니다.
비록 우리가 태어날 때에는 빈손으로 왔지만 갈 적에는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고 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남겨 두어야 할 삶의 흔적은 눈물과 땀과 피를 흘려서 이 땅위에 성실하고 위대하게 살아간 삶의 흔적이어야 하며 신앙의 흔적이어야 한다.
위대한 흔적을 남겨두는 인생,성실한 삶의 자국을 남기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그 삶의 흔적이 아름답게 남겨지는 법이다.
인도의 위대한 시인 타고르(R.Tagor)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의 신이 당신의 문을 두드릴 때 당신은 생명의 광주리 속에 무엇을 담아서 그 앞에 놓을 것인가?"
사도 바울도 갈6:17 말씀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아무런 예고 없이 죽음의 신이 우리의 문을 노크할 때,우리는 아무것도 내 놓을 것이 없는 인생을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보람있는 유산을 남겨 놓아야만 한다.하나님과 사람 앞에 한 모퉁이를 담당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독일의 문호 괴테(J.W Goethe)는 말하기를 "자신의 시대를 진실하게 사는 사람은 어는 시대에도 살아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주위 환경이 평탄하니 그저 적당히 살아보자는 생각헤서 불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결국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정성껏 땀을 흘리며 최선의 삶을 사는 사람은 반드시 기쁨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생의 흔적을 남겨 놓아야 한다. 미래를 창조하는 삶을 통해서 흔적을 남겨 놓아야 한다. 미래 세대가 바라보면서 감동을 받을만한 위대한 삶의 흔적이 남겨져야 한다.그렇다면 미래를 창조하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

1.미래를 창조하는 삶은 목표를 정한 삶이다.
그저 우연한 기회를 바라면서 맹목적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목표를 정해야 한다.
생명마다 주어진 의미가 있듯이 인생의 길에도 반드시 목표가 있다.개인생활,가정생활에도 목표가 있을 것이고,신앙생활에도 푯대가 있을 것이고 사회생활에도 목적이 있을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들은 한해,한달,하루의 목표와 계획에 철저한 사람들이었다.정한 목표를 향해서 모든 노력과 힘을 기울이며,그것암을 바라보고 전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대부분의 사람들은 높은 목표를 세우는데 주저한다.왜냐하면,그 목표가 실현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실패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실패하는 것이 두려워서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목표없이 살다가 가는 인생보다 목표를 정하고 살다가 실패된 인생이 더 성공적인 삶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를 바로 세워 놓으면,그 목표를 향해서 전진할 만한 힘이 생기는 것이다.
목표가 우리 앞에 있을 때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마음 속에 집념과 인내의 동기가 끊어오르게 된다.목표는 우리에게 꿈과 이상을 제시해주고 그곳으로 갈 수 있는 길잡이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불란서의 실존주의 철학가 싸르트르(J.P.Sartre)는 말하기를 "인생이란 계획의 연속이다"라고 하였다.
목표와 계획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벌써 삶의 연속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2커밍 워크(Cumming Walk)는 성공의 요인을 네가지로 요약해서 말했다.
첫째는 '머리(I.Q)가 좋아야 한다. 둘째,지식(Knowledge)이 있어야 하며,
셋째는 기술(technique)이 있어야 하며,넷째는 '태도(attitude)가 중요하다고 했다.그런데 이 네가지 요인 중에서 성공적인 삶에 대하여 93%이상으로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태도'라고 하였다.
프랭크 킹덤(Frank Kingdom)이라는 사람은 '성공의 프로그램'이라는 글 속에서 성공하는 삶을 위한 다섯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첫째로,자신의 소원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다.
둘째로,할 수 있다고 믿고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로,목표를 정했으면 즉시 적은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넷째로,설정한 목표를 널리 알리라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만 은밀히 정해 놓은 목표는 책임을 망각하기 쉽다.목표를 남에게 알려 줄 때에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당위적인 요청을 받게 되고 새로운 용기가 생기게 된다.
다섯째로,목표 성취를 위해 자신을 단련시키라는 것이다.

2.뒤엣 것을 잊어버리고 두려움 없이 달려가는 사람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대개 실패하는 사람은 과거의 실패에 매달려 기억하는 사람이다.
불유쾌했던 과거의 실수가 자꾸 기억나서,미래에 대하여 공포와 두려움에 쌓이게 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두려움을 제거해 버리고 달려가야 한다.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Longfellow)는 "죽은 과거로 하여금 그 시체를 파묻게 하라"고 말하였다.과거로부터 해방되어 생생한 현재에 행동하라는 뜻이다.
바울은 과거의 죄된 기억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 사람이다.그리하여 오늘에 행동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다.그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 하다."난 과거에 살인자였어"
모세도 유대인을 학대하는 애굽인을 죽이고 "난 과거에 살인자였어"
자신을 억누르는 과거의 슬픈 기억에 얽매여 있는 한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2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과거를 뒤로 하고 주님을 따랐다."난 과거에 창녀였어"
기생 하랍 "난 과거에 창녀였어" -예수님의 족보에 올랐다.
"자살하는 청소년들"
성적비관,-성적 좀 떨어지면 어때.
이성비관,-너 아니면 사람없냐? 만남의 기회는 또 다시 온다,더 좋은 사람 많다.
외모비관,-못생겨서 죄송합니다.(이주일,방실이)
성폭행 비관 - 정신대 할머니들 -유엔에서 배상요구
신체 허약을 비관-뽀빠이 이상용(국민6년까지 부모가 등교시켜줄 정도로 허약
날마다 친구들 심부름만 하고 다님-중 1때부터 운동을 시작 -미스타 고려대)
"높이 보고 멀리보자" 예수님의 주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비방하기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개천에서 용나랴" "가곡리에서 무슨 인물이 날까?" "가곡교회에서 무슨 훌륭한 신앙인이 날까" 이런 패배주의적 생각을 벗어버리고 미래를 멀리보고 희망을 높은 곳에 두자.
김삼환 목사- 정식학력도 없다.그러나 한국 최고의 교회를 세웠다.
성경의 위인들은 자신의 과거의 처지에 비관하지 않고 하늘을 보았다.그리고 하나님을 찾았다.그리고 그 인생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맏이했다.



1996.8.31(토)
성경본문:잠24:33-34
설교제목:[성공적인 좋은 출발]을 위하여

1.서론.
인간에게 있어서 출발과 목표설정은 대단히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미국의유명한 정신과 의사 빅터플랭크린은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 목표달성이 안되는 것 보다 더 위험하다"
"파브르"의 [곤충기]에 보면 날벌레의 우매함을 발견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날벌레들은 앞에 날아 다니는 것만 무조건 따라 다녔다. 7일간 밤낮 앞서가는 것만 따라 다니다가 모두 기아상태에서 질식해서 죽어버렸다. 가까운 곳에 먹을 것이 있음에도 변함없이 무턱대고 어리석게 행동하였다. 즉 목표가 없이 헛수고 하는 사람은 이 날벌레와 똑같다.사실 모든 문제는 문제해결 보다는 목표설정이 먼저일 것이다.
성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먼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를 목표로 정하여 놓고 그 다음에 가는 방법을 모색하였다.만약 모세가 떠나기 전에 "나는 200백만명이나 되는 사람을 데리고 갈 방법이 생기면 결단을 내리겠소" "가는 중 먹는 것 입을 것은 어떻게 할까요?" 라고 수많은 질문과 문제를 제기했더라면 모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는 가나안 이라는 목표를 정했고 출발하였다.
우리나라 속담에는 "시작이 반이다"라고 하지만 서양속담에는 "시작은 성공이다"라고 한다.
미국의 광고 대리점을 대상으로 2,500명을 조사하면서 "당신은 무엇 때문에 실패하였는가?라는 설문에 실패의 이유 30여가지가 나왔는데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결단력의 부족이라고 했다.
벤 프랭클린은 "여러가지 일을 시도한 사람은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가장 큰 실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출발을 해야 하는가?

1.오늘부터 출발하자.
새학기를 맞이했다. 잘 출발해야 한다.목표를 세워야 한다.남보다 나은 곳에 거하기 위해선 남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여러분은 학생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이 때 꿈을 가지지 않으면 어쩌면 평생 이직업,저직업을 전전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할 것이다"이런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런 사람은 출발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미루는 버릇,연기하는 습관이 생기면 출발이 어렵게 되고,출발이 어려우면 성공의 골인은 더 어렵게 된다.오늘 출발해야 한다.
히말라야 산 속에가면 애맹조가 있다. 낮이면 신나게 즐기다가 밤이면 잘 둥지가 없어서 다른 새의 둥지에 가서 거하며 밤새 구박을 받는다.그는 서러운 눌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내일이면 집을 지으리, 내일이면 집을 지으리"하고 구슬프게 노래한다고 한다.그러나 야맹조는 자기의 일생이 다가도록 집을 짖지 못한다. 오늘 출발은 성공이다.
[예화]
악마와 그의 부하들이 신자들의 신앙생활 방해공작을 위해 전략회의를 열었다.젊은 엘리트 출신 악마가 신자들을 죽이게 되면,순교하여 교회의 씨가 된다고 경고했다.때리자는 제안,가두자는 제안을 했으나 좋은 방안을 얻지 못했다.그 때 악한 지혜가 많은 한 늙은 악마가 전략을 세우기를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하고 사랑도 하자,그러나 내일부터 하게 하자"고 속삭이는 전략을 내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전략이 악마의 최대 성공 전략이었다. 결단의 시간은 언제나 여기서부터이다.

2.적은것부터 출발하자.
성공적인 목표설정이 끝나면 출발해야 한다.출발은 작은것에서부터 큰 것으로,쉬운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해야 한다.
옛날 중국에 황우산이 있었다.황우산의 둘레는 700리나 되는 큰 산이었다. 그 산 부쪽에는 바보라 불리우는 90세 노인이 살고 있었다.노인은 황우산을 깍아 평지로 만들기로 작정하였다.아들과 손자가 협조하여 산을 깍이 시작하였다.흙을 파내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것을 깍고 나면 나의 비옥한 토지가 될 것이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던 것이다.사람들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노인이여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땅은 후손이 없지만 나는 후손이 있읍니다.내 후손에게 땅 깍는 일을 물려 줄것이며 언젠가는 내 후손들 중에 여러분들 보다 더 부유한 사람이 이 땅으로 인하여 생길 것입니다.
노아도 방주를 짖는데 120년이나 걸려서 지었다. 온식구들이 힘을 합해서 작은것부터 시작하면 된다.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작은것부터 한 번 실천해 볼려고 하자.
앞자리에 앉는 것이 그렇게 힘든가? 선생님들께 인사한번 제대로 하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가?

3.있는 것을 가지고 출발하자.
자기에게 있는 것을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
라파엘의 유명한 그림"모자상"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황혼이 깃들어가는 어느랄,농부도 새도 집을 찾는 전원풍경이었다. 그런데 돌지 않는 물레방앗간 문옆의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밑에 여자가 아기를 안고 멀리 신작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곧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그는 본능적으로 그림 그릴 종이를 찾았다.그러나 갑자기 종이가 있을리 없었다. 그는 길 위에 버려진 술통 뚜껑을 주어다가 비록 낡은 나무조각이었지만 그곳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종이는 없었지만 이 그림이 명작 '모자상'이 된 것이다 악의 업시 평화만 깃든 그림이다.그는 있는 것을 사용했다.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불펴아고 불만을 말할 때가 많은데,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것 것이 중요하다.

4.결과는 하나님께 맡기자.
90년전에 한국에는사과가 없었다.스코틀랜드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올 때 사과씨 하나를 가지고 왔다.그리고 그것을 전영찬씨에게 주었다.전영찬씨는 사과씨를 한 곳에 심었다.그리고 첫 사과가 생산되었을 때 그는 다시 그것을 도처에 심었다.오늘날 이 사과는 한국에서 제일가는 과일이 되었다.
미국의 어느 선교사가 일본에 가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그는 10년간 죽도록 일했지만 겨우 한명을 전도하여 세례를 주었을 뿐이다.모두가 실패자라고 비웃었다.자기도 자기를 실패자라고 생각했다.세례를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가 데리고 있던 일본인 가정부였다.그러나 그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갔다 30년 후에 다시 방문을 하였을 때 놀랍게도 그 식모의 아들은 일본의 신학교 학장이 되었있었고 수많은 목회자를 길러내고 있었다.
바보도 사과 속의 씨를 헤아릴 수 있다.그러나 오직 하나님 만이 씨 속의 사과를 헤아릴 수 있다.모든 일에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부끄럽지 않을 만큼 성실하게 생활해야 한다.

5.결론.
무슨 일을 하든지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나의 받은 달란트를 잘 활용하여 성공자가 되자,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오늘부터 출발하자.실패해도 다시 출발하자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자.





























1996.9.7(토)
성경본문:삼상19:1-7
설교제목: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합니다.이러한 교제 중에는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것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교제 중에서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야말로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것입니다.친구들,교역자,선생님,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하나님안에서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아름답고 소중한 교제를 가꾸기 위해서 누력해야 하고 이 만남이 우리 인생에 의미있는 만남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교제할 때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짓과 속임이 없는 진실입니다.
나의 죄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앟고 무겁고 가볍고를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만 하면 다 용서해 주십니다.이런 거짓 없는 진실이야말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뿐만 아니라 친구와의 교제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성서의 예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다.

1.다윗과 요나단은 서로를 기뻐했다.

2.요나단은 아버지의 비밀을 친구에게 말해준다.
청소년들의 비밀이야기는 친구가 가장많다.

3.요나단은 다윗을 숨겨주었고,다윗은 그의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았기에 그를 신뢰했다.

4.서로의 우정은 위기의 때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것 같이 사랑했다.(삼상20:17)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절뚝발이 므비보셋을 자기 아들처럼 돌보아 주었다.

요나단은 왕의 아들이었고 다윗은 베들레헴의 목동출신이다.두 사람은 엄청난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다.그들이 성경에서 제일 아름다운 교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서로에게 진실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했고, 요나단도 불의한 아버지 사울왕 앞에서 정의와 진실을 버리지 않았다.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짐으로 하나님을 피하고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우리도 친구들과 사귐을 가질 때 가식과 숨기는 것이 많으면 참다운 우정을 줄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 누구앞에서나 진실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유대주의 철학자 마틴 부버는 모든 참다운 삶은 만남이라고 했다.그는 사람은 나와 너를 더나서 살 수 없다고 말했다.나와 너의 관계가 바로 대화라고 했다. 그러기에 친구들사이에는 자기의 일방적인 주장이나 이야기보다는 상대방의 의견과 이야기와 부탁을 들어줄 줄 아는
그런 친구가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귈수 있다.
진정한 만남은 가식적인 면을 벗는데서부터 출발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분을 벗어버리고 인간이 되심으로서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셨다.결국,우리도 무엇이든지 자신을 은폐시켰던 가식적인 면을 하나님 앞에서 깨뜨릴 때 만이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15:13 "이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육군 열쇠부대 신병교육대 수해참사이야기.
5시 쯤 기상시킴-10분동안 짐을 챙김.-둑이터짐.-모두 교회첨탑위로 올라감-다른건물들이 무너짐-교회가 무너질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힘. -분대장 상병이 밧줄을 연결시킬 생각을 하고 따라나설 사람 3명이 나옴. 세사람중 수영을 못하는 분대장은 그만 물에 쓸려감-다른 한사람은 물에 들어가자 마자 도로 올라옴.한사람은 끝까지 헤엄쳐 나감.-세찬 물살에 휩쓸려 죽고맘.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아름다움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1996.9.14(토)
성경본문:마17:14-20
설교제목:삶의 자세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옛사람이나 현대인이나, 백만장자나,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에게 공통된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마음의 평화나 행복한 생활일 것이다. 마음의 평화와 행복한 생활, 이것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까?
돈이 없어도,권력이 없어도,그 마음의 자세에 따라 참 평화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실패하는 것도 외부의 조건이나 여건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실패한 그 사람 자신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의 철학자는 술통 같은 통속에서 굴러다니면서 살면서도 알렉산더
대왕의 부귀,명예,영화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또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청바지 NIX가 있는데 얼마나 유행을 하는지 닉스계가 유행을 하고 닉스 미팅까지 생길정도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기업체인데 조그만 사무실 두 개를 가지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모든 청바지 수입업체를 제치고 매출1위를 기록하여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다른 업체들이 불황속에서 허덕이고 어떤 중소기업 사장은 사업운영이 안되서 자살을 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는 이 때에 그들은 이 불황을 기회로 삼자하고 오히려 청바지 값을 대폭올려서 10만원이상의 고가로 만들어 내기로 결심하고 상품기획과 디자인은 태승에서 하고 청바지 물빼기는 세계최고의 기술을 보유한 홍콩에서 하고 광고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의 작품으로 하고 신상품 개발은 이태리에 디자이너들을 파견하여 배우면서 아이디어를 얻게하고 이렇게 해서 고작 사무실 두 개를 가지고 패션업계에서 1위를 탈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마음의 자세에 따라서 생활이 변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의 마음의 자세에 따라서 축복이 될 수도 화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다.
성경에서는 엡4:22-24에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의 자세에 따라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하라고 하는 말은 삶의 방향을 바꾸라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삶, 죄악의 삶,어둠의 삶,실패의 삶,사탄의 유혹에 빠진 삶에서 빛의 삶,성공의 삶,축복의 삶,행복의 삶,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것을 '회개'라고 하는 것이다.
청소년기는 미래의 자신의 삶에 대한 뜻을 품는 시기이며 그 기초를 닦는 시기이다. 미래의 자신에 대한 망상이,허상(Illusion)이 아닌 Vision을 가져야 한다. 이런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높은 이상과 꿈을 가진 사람일수록 문제는 더 크다.누구에게나 문제와 난관과 시련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도전해 들어갈 때에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내가 감명깊게 본 영화라면 "시티 오브 조이(City of Joy)"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소아과 의사인데 수술을 잘못해 애기를 죽이고 그 죄책감에,자신의 무능에 실망하고 미국을 떠나 인도에 가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고 질문을 풀어보려고 갔다가 인도의 수도 뉴델리의 빈민촌에 우연한 사건으로 들어갔다가 그 빈민촌에 의사가 없어서 임시 의사직을 맡게 되는데 그 때 그곳 보건소 같은 간이 치료소에서 일하던 한 여간호사가 자꾸만 그 거리를 뛰쳐나가려는 주인공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는 세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부딫쳤을 때 도망을 하든지, 방관을 하던지, 아니면 도전하던지, 이말을 듣고 주인공은 처음에는 그곳 불량배들의 박해에 도망을 하지만 결국은 도전하는 길을 택하면서 그 빈민촌,문둥이촌을 완전히 기쁨의도시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City of Joy)"입니다.
젖소부인이니,염소부인이니 이런데 벌써부터 청소년들이 기웃거리면 그 미래의 인생은 평범이하이거나 그것도 못한 생을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이 될것이라고 저는 예언할 수가 있다. 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변하면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한 번 변해보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의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세계에 도전해 보겠다면 분명히 그 길을 열어나가는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도전하는 인생, 그야말로 아름답고 귀하다.
마태복음에 보니깐 (17:20) "너희 앞에 어떤 산이 있을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산을 바다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방관하거나 도망하거나 패배의식을 가지고 절망하는 사람이 되지말고 문제를 정면으로 대하면서 앞날을 꿈꾸어 보자. 가난한 청년이 백만장자가 된 일화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문제에 부딪쳐을 때 도전함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일장무식한 현대그룹의 정주영씨는 일과 사업에 대한 지혜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최대의 간척공사를 현대에서 할 때에 바다 이긑과 저끝에서 바다 중간으로 방파제를 만들면서 나가는데 어는 정도쯤 되니간 물상이 너무 세어서 도저히 가로막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서 건설관계자들이 애를 태울 때 정주영씨가 한 번 시찰을 와보고는 "그게 무슨 걱정이냐 간단한 걸 가지고 대형 유조선을 가져와서 중간에 가로막아" 아무도 유학까지 갔다온 건축박사도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내 놓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 간척공사는 마무리 될 수 있었다는 유명하게 알려진 이야기가 있읍니다.
큰 뜻을 이룰려고 하는 사람은 정면으로 도전해서 그 문제의 장애를 다른 곳으로 옮겨놓는 사람이다. 여러분도 이런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들의 친구를 자기의 친구를 낮게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데려갈려고 했지만 도저히 사람들이 많아서 어떻게 들어갈 수가 없어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된다는 심정으로 정면으로 도전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지붕을 뜯는 방법이었다.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한 방법에 도전하기로 마음 먹은 것입니다.
저 분은 분명히 낮게 하실거야! 이 불쌍한 우리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가보자 친구들은 병중에서 고통당하는 그 친구를 낮게 하기 위해서 기발한 방법으로, 확신있는 믿음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장애를 극복해야 합니다.이런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친구들 중 신앙의 세계에 도전하는 마음으로 발을 디디고 싪은 친구들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큰 비젼을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의 꿈을 발견해 보십시오,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의 희망을 키워보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소원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1996.9.21(토요일)
성경본문:눅6:38
설교제목:삶의자세(2)

둘째는,열려진 마음,개방된 마음이다.
큰 뜻을 이룰려는 사람은 열려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이 열려진 마음이란 다음아닌 하나님에게 열려진 마음이다.
개방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새롭게 성공하여 인류생활의 발전에 공헌하는 반면에 페쇄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남에게 유익함을 주지 못하고 항상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늘 열려진 마음을 가질 때에 축복의 손길을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로 끌여들여 뜻을 이루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도꼭지를 틀지도 않고 물을 얻기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수도꼭지를 틀 때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마음의 문을 열고 기다릴 때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이다. 수도꼭지에도 가끔 이물질과 찌꺼기가 끼어 물줄기를 막을 수도 있다. 수도꼭지에 끼여 물줄기를 약하게 하는 찌꺼기를 제거해버려야 한다.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인간의 좁은 편견이나 부정적인 생각은 다 긁어내야 된다. 하나님 앞에서 열린 마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드리워질 수 있으며 성공자가 되는 것이다.
부산에 장기려 박사라는 유명한 외과의사가 있다. 이 분은 수술을 할 때마다 환자를 수술대 위에 뉘여 놓고는 기도를 한다고 한다."하나님, 이 환자의 생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읍니다.당신께서 시키는 대로 제가 이 수술을 하겠읍니다.하나님께서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성공적인 수술이 되게 해 주십시오."이렇게 기도하고 수슬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분은 6.25전에 김일성의 맹장 수술을 하면서도 기도했다고 하는 분이다.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깊은 인간애와 믿음의 결실이 병원을 개원한 후로 한 번의 의료사고를 내지 않은 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는 병원으로 온 사람들의 마음에 기억되게 되었고 그 분은 북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열린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간 분이다.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정말 성자같은 분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열려진 마음을 가진 사람, 고통받는 자들에 대해서 열려진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들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이다.

셋째, 먼저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뜻을 이루는 사람,성공하는 사람은 모드 같은 원칙이 있다. 그것은 축복의 대가를 먼저 지불한다는 것이다. 흡사 가을에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시절에 따라 좋은 씨를 심고,거름을 주고,정성으로 가꾸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여야 하는 것과 같다.
성경에 "주라,그러면 너희에게 되돌려 줄 것이니 후하게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큰 뜻을 이룰려면 먼저 나누어 주어야 한다. 줄줄아는 정성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야 한다.먼저 내 자신이 남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 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끝으로,믿음을 스스로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명예와 재물이 있다해도 그 마음 안에 충성과 헌신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어떤 일을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두려움이요, 다른 하나는 믿음이다. 두려움은 인간적인 것이지 하나님이 주시느 것이 아니다.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 뿐이다.믿음이 있을 대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길 수가 있다. 스스로의 좁은 편견이나 욕심 또는 인간적인 생각에서 행위가 제한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열린마음으로 살아야 하겠다. 또한 먼저 주는 자가 되는 것,이것만이 틀림없는 성공의열쇠이다.
1996.9.27(토) 학생회
성경본문:요7:37-39
설교제목:명절의 목적

1.민족적 단결(신12:5-14)
12절 모두 함께 즐거워 하기를 바라심.
우리민족의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공동체적 정신의 발로다.이를 잘 승화시키면
굉장히 좋은 장점이 된다.

2.하나님을 경배함(출5:1)
지금까지 지켜주심에 대한 감사의 보답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원래 명절의 참모습이다.
조상을 기억하는 것도 그 조상을 총하여 오늘을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이스라엘에서는 족보를 귀중히 여긴다.
우리나라도 족보를 귀중하게 여긴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의 방편으로 쓰임받은 일군들의
위대함을 기리는 것이다.
윗사람은 위사람으로서 그저 존경해야한다.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뜻 그 조상이 살인자였으며 강간자 였으며 매국노였으며
많은 사람의 피를 흘린 사람이었다면 우리가 왜 그 사람들에게 존경해야 하는가
그저 어른들이 하니깐 따라서 하는 그런 절을 한다면 그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조상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그러기에 아버지는 아버지가 계신 그 자체로 존 경받아야 한다. 손윗사람도 마찬가지,자신을 가르치는 사람도 마찬가지,
몹쓸짓을 가르쳐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가지 않는 한 부모님은 날 낳아주셨다는 그 자체 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
무엇을 남보다 나에게 많이 해 주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 감사해야 한다.
우리나라 제사상에 올라가서는 안될 음식중 하나가 마늘이다.
마늘을 왜 쓰지 앟는가? 귀신을 마늘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드랴큐랴는 십자가로 쫒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귀신이라는 뜻이다. 귀신이기 때문에 떠돌다가 명절 때 음식을 먹으러 와서
마늘냄새 때문에 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에 마늘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생각이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 인가? 그럼에도 전국민이 이런 미신
빠져서 전통의 양식이라고 강변한다. 전통의 양식이라는 것은 그런 비합리적인 형식이 아니라
조상의 유훈을 생각하고 세상을 보다 더 바르고 정직하게 삶을 살기를 바라는 그런 교훈적인
덕담을 나누는 것이 바로 제사의 원 의의 즉 목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합리 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이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으면 때려죽일놈이 되는 것이다.
자신들 스스로가 음식을 만들 때 귀신이 싫어하는 마늘을 쓰지 않는 다는 것은 바로
조상이 귀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절을 하라는 것이다.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 대상이지 맏아들여야 할 대상이 아니다.
어리석은 일이다.그러나 가족들이 모여 오랜만에 서로의 정을 나누는 것 부모님을 돌아보는 것 이것이 바로 명절의 참 의미인 것이다.

3.영적인 진리를 예표한다.(요7:37-39)
초막절 끝날의 행진 상황을 설명.(성경주석 참조)



1996.10.5(토)
성경본문:고전11:1
설교제목:참된 영성을 가지자?

오늘 우리는 바야흐로 시와 낭만의 계절 10월달을 맞이했다.
이런 때에 우리가 문학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감명깊었던 것이 있는가?
세익스피어의 4대비극 (햄릿,멕베드,리어왕,오델로)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고
세익스피어의 희극(말광량이 길들이기,베니스의 상인,한여름밤의 꿈,착오연발)
돈키호테(세르반데스)/실락원(밀턴)/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괴테)-남의 약혼녀를 사랑하다가 끝내 자살하는 비극/ 인간무정(한국번역판) 레미제라블(장발장)(비토르위고)/
죄와벌(도스토예프스키)-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현실을 불합리하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 비범한 사람은 범인을 위하여 생긴 법률을 범할 수 있다는 그래서 평범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신념으로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살해한다.그 뒤 순진한 영혼을 지닌 창녀 소냐의 권고로 자수하여,갱생의 기쁨으로 8년의 형기를 받는 다는 내용으로 인간회복에 대한 강렬한 바램을 담은 휴머니즘의 소설/ 전쟁과 평화(톨스토이)/
테스(하디)-순진한 시골처녀 테스는 방탕아 알렉의 유혹에 넘어가 사생아를 낳고 버림을 받았다가 목사의 아들 엔젤 클레어와 결혼한다.그러나 과거를 고백함으로서 또 다시 버림을 받게 되고, 끝내는 알렉을 죽이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는 내용.
부활(톨스토이) 공작 네플류도프가 자기 때문에 타락하여 창녀로 전락,법정에 까지 서게 된 하녀 카츄샤를 갱생시키고 자신도 종교적인 사랑에 의하여 부활한다는 줄거리.예술상의 성서로 불림./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미첼)/ 이방인(카뮈) 학생시절에 이정도는 읽어야 한다.
문학에는 이렇게 문학성이 있어야 하고 시에는 시성이 있어야 하고 스포츠맨에겐 활동성이 뛰어나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기독교인이면 영성을 가져야 하는데 이 영성은 바로 내 안에 계셔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 받고 살아가게끔 자신의 모든 것들을 비우는 자세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살고 계신다.우리를 통해 그 분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낸신다.
나를 숨기고 에수님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영성운동이다.

1.지식적으로 아는것,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많이 활동하는 것이 영성은 아니다.어떤 형편에 처하든 예수님을 생각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바라노라면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나를 변화시켜서 예수님 처럼 닮게 만들어 주신다.
2.얼마나 하나님께 헌신(devotion)하였나?
이 헌신은 단순한 헌신이 아니라 헌신과 깊은 사랑이 합쳐진 것을 말한다.
나의 고민과슬픔을 바치고 찬손과 열정을 바치는 것,사랑하는 분이기 때문에 숨길 것 없이 다 드리는 것,그것이 바로 헌신이다.
3.얼마나 하나님과 친한가?
하나님과 친숙하고,말씀과 친숙하고,기도와 친숙하다.하나님과 더 깊이 친할수록 아들이 아버지를 닮아가듯 하나님을 더 많이 닮아가기 때문이다.

시월 -헤르만 헷세-
아주 고운,노란 빨간 옷을 입고 모든 과목이 서 있다.그들은 조용히 죽어가는 것이다.
고통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며
가을이여, 뜨거운 나의 심장을 식혀다오.
보다 잔잔히 고동하여 이 금빛 나날을 지나, 조용히 겨울로 건너가도록.
1996.10.12(토)
성경본문:빌3:8-12
설교제목:나는 진정한 신앙인인가?

성경 고후13:5에 보면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우리가 얼마나 영적 신앙인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첫째,내가 그 분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여기서 "안다"고 하는 것은 막연히 상대방의 배경이나 현실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친숙하게 상대방에 대해 아느냐 하는 것이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성령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이는 지식적으로보다 체험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한 체험,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과의 만남.내 속에서 나를 위하여 탄식하시는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줄 아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둘째,그 분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열심히 신앙생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 사랑으로 하는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헛된 것이다.
고전13장 낭독
사람이 서로 사랑할려면 많이 만나야 되는 것처럼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랑은 깊어져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셋째, 얼마나 그 분을 닮았는가?
아들은 아버지를 닮고 딸도 어머니도 닮는다.아버지 만큼 아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어머니만큼 자기 딸을 사랑하는 사람도 없다.또 아내는 남편을 알고 남편은 아내를 안다. 만약 어떤 사람을 잘 알고 사랑한다면 우리를 우리가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을 닮아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보면 부부는 이상하게 닮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식은 닮아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 어느 가난한 문인(소설가,시인)이 부인의 외도를 눈치체면서도 무기력하게 말도 못하는 어느 문인은 자신의 부인이 아기를 낳자 아무리 뜯고 뜯어 보아도 자기와 닮은 모습을 찾을 수 없자 한 말이 발가락이 닮았다.는 친구 염상섭을 모델로 한 단편소설이 기억난다.
시집가고 장가가서 낳아보면 안다.닮아야 하지 않닮으면 괸히 오해 받는다. 너는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느니,어느 집에서 데려 왔다느니 하는 식구들 중에 놀림감이 된다.
요즘에는 심심찮게 닮지 않은 아이가 태어나면 의심하고 혈액형 감식,유전자 감식,
그러다 심하면 이혼까지 한다.
병원에서 애기가 바뀌어 져서 곤란을 겪은 이야기가 많이 입에 오르내린다.
한예로 병원측의 실수로 애기가 바뀐지 어릴 때부터 엄마도 아빠도 안닮았다고 주변에서 하도 말이 많았지만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는데, 10몇년이 흘러 이제 다 큰 고등학생들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게 하자 엄청난 불행이 닥쳐오기 시작한다. 공부중 코피를 흘러 병원에 진찰을 해 보다가 확인하게 되었다.한 학생은 부유한 집에서 자라났고,한 학생은 세차장에서 세차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주 가난한 부모 밑에서 가장의 역할을 거의 다하는 학생이었다.기가찰 노릇이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학생은 부유한 친부모밑에 들어가 생활을 함으로서 큰 물질적 불편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하고 부유한 집에 살았던 학생은 가난한 집으로 오자 생활에 전혀 적응을 못해서 밤늦게 귀가하고 점점 문제 학생의 모습으로 변해가자 원래 키웠던 부유한 집의 부모가 그동안 키운 정 때문에 그 학생을 데리고 가서 대학 시험때까지 같이 생활하게 했는데 도대체 둘이 서로 친하지도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어 자녀들 교육에 큰 문제를 남기고 있다는 것을 방송을 통해 본 적이 있다.
이처럼 부모를 닮는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신앙인이 하나님 아버지를 닮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다 닮아야 한다. 우리가 그 분의 자녀라면 닮아야 한다.
우리가 참된 영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리는 틀림없이 예수님을 닮은 모습일 것이다.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하려 하심이라"

이상의 세가지 질문이 참된 영성을 구별하는 질문인 것이다.

1996.10.19(토)
성경말씀:고전2:14-3:3
설교제목:세종류의 인간

신앙적으로 본 인간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자연인과 신앙인이 그것이다.
자연인이란 환경을 사랑하는 그런 환경주의자를 일컽는 것이 아니고 죄의 종으로서 구원받지 못한 자연 그대로의 사람을 말한다.신앙인 중에서도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육신에 속한자요,또 하나는 영적인 사람이다.

첫째,자연인(natural, unsaved man)이다.
육체로 한 번 태어난 인간은 자연이 영적인 진리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것이 미련하게 보이며,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인들에겐 영적인 진리들이 바보처럼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말이다.
안믿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을 볼 때 그렇게 느껴진다.
한 번 태어난 자연인은 육과 혼밖에 없으므로 그보다 한 차원 높은 영의 세계가 이해될리 없다.
따라서 안믿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을 욕하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파트 촌에서의 전도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그러기에 안믿는 사람이 화를 내고 욕하는 것에 대해 속상해 할 필요가 없다.성령께서 그 마음의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안믿어 지는 것이 영적인 진리이다.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때부터 서서히 영의 세계에 대한 눈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 자연인의 본성은 자기 중심적이다.선한 일을 해도 그 안에 이기적인 동기가 들어 있다.자기의 마음의 주인은 자기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자연인이 공부를 많이 하고 머리가 좋다고 해서 영적인 것을 알게 되지는 않는다.
소련을 공산화 시킨 스탈린은 신학생이었고,진화론을 쓴 챨스 다윈도 신학자 였다.
김상복 목사님의 예화
"미국교회에서 기독교에 대해 강의를 하는데 핵공학박사 한명이 자꾸 엉뚱한 질문을 해대고 반론을 하면서 강의를 방해했다.전공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핵공학이라고 했다.그래서 목사님이 "핵이 소금으로 만들어진 것을 아시오? 했더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의아해 했다.
내가 핵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내가 핵이 어떻고 저떻고 하면 얼마나 웃깁니까?마찬가지로 기독교에 대한 것은 내가 전공했으니 내가 얘기하게 좀 놔두시오,그랬더니 무안해서 그냥가더랍니다.
이처럼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예화)어느 서울대 여대생의 택시기사에 대한 전도 일화
천국과 지옥 부인 자신이 죄인임을 부인 내릴 때 아저씨 그럼 지옥가세요.
내려서 화를 냄 그것을 계기로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함.

둘째,육신에 속한자(carnal man)이다.
고후3:1 다같이 봉독
육신에 속한자는 예수님을 믿는자와 믿지 않은 자를 합한 상태의 사람이다.
예수님을 믿는데 생각하고 사는 모습이 안믿는 사람하고 똑 같다.아직 영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으로 깊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 따라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상업도시요,환락가요,우상의 중심지 였다.여기에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는 믿되 예전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그대로 남아 예수 믿은지 얼마 안되는 어리아이와 같은 상태였다. 육신에 속한자의 본성은 자아가 마음 중심에 자리 잡고 예수님은 한편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새롭게 태어났다는 것이지 완전한 성인이 된 것은 아니다.예수님이 그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을려면 신앙이 잘 성장해야 한다.이런 육신에 속한자의 특징은
첫째,미성숙하다는 것이다.(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한다.똥오줌을 못가린다.젖만 먹는다.자기 맘대로 안되면 울고 떼를 쓴다.반항을 한다.온통 어지럽히고 다닌다.)
둘째,영적인 진리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성경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한다.하나님의 전지전능성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셋째,질투심이 많고 비판을 잘한다.(부정형의 인간)
육적인 그리스도인은 남에게 대해 못마땅한 것이 많다.말에 늘 꼬투리를 잡고,질투가 많아 남이 잘되는 것을 못본다.

셋째,영적인 사람(spiritual man)이다.
성령충만한 사람,마음의 중심 보좌에 예수님이 앉아 계시고 언제나 그 분을 중심으로 섬기고,어떻하든지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은 점점 더 없어지고 그 대신 예수님이 점점 더 자신의 삶을 점령하는 그러한 사람이다.예수님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믿음의 마음, 내가 에수님을 믿기 때문에 친구에게 먼저 양보하고 인내하고 먼저 좋은 것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착한 생각을 하는,그래서 건전한 사고방식으로 생활하는 그러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사람은 진리를 배우고 싶어 한다.그리고 이해를 잘한다.
*영적인 사람은 또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마음이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성령이 늘 자신의 생활을 통제하는 그러한 신앙인이 바로 영적인 사람이다.














1996.10.26(토)
성경본문:고전3:16
설교제목:성령의 역할

우리가 지난 시간에 영적인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영적인 사람이란 하나님의 영이 매순간 나의 생각,행동,말을 통제하고 관할하셔서 나를 통해 예수님 만이 늘 나타나는 사람,이 사람이 바로 영적인 사람이다. 이러한 영적인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영할을 바로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성령이 내재하시는가?

첫째,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다 성령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고전3:16) 고 사도 바울이 말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주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이다.입으로 주님을 시인한 사람은 누구든지 주의 성령이 그 마음 속에 들어가신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속에 내재하시되 얼마만큼 성령이 내 삶을 점령하셨는가는 또 다른 이야기 입니다.만약 내 가슴속에 질투 분노,욕심 등이 꽉차 있다면 성령님이 눌려서 활동하시기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자 마자 마음 속의 욕심,악독,분노,질투 같은 것을 자꾸 내버려서 비워 드릴 때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실수 있는 것이다.
엡4:30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은 단일회적인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신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신다.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화로 써 지신 것이기 때문이다.우리가 말씀만 철저히 알아도 성령의 뜻을 대부분 알 수 있다.
말씀과 기도외에는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한 성령은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지만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아주 소중한 것이다.

셋째,영적인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는데
진리를 배우고 싶어할 뿐만 아니라 이해를 잘 합니다.
말씀을 듣고 그것이 귀에 쏙쏙 들어오며 참 좋은 것을 배웠다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설교자가 설교를 썩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들을귀가 있기 때문이다.머리로 들은 것이 금방 가슴으로 전해져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그런 사람이다.
영적인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예수를 닮아갑니다.그것은 지식이 는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다 목사나,신학자는 될 수 없지만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러한 신앙의 목표가 궁극적인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1996.11.2(토)
성경본문:엡4:1-6
설교제목: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모든 숫자와 시작을 알리는 것은 "1"(하나)입니다.
성경에서 "1"(하나)는 뭉쳐진 상태,즉 일치를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에도 많은 조직이 있다.(사지백체, 오장 육보),신경,지방질,호르몬,뼈 등이 서로 관계를 맺어 하나된 육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육체를 움직이는 윤활유가 "피"입니다.피의 활동이 젊은 육체를 움직이며,살아있는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레위기에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젊은이들은 피가 뜨겁다고 합니다.이는 활동력이 많고 움직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크리스챤인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 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은 신앙으로 움직여야 합니다.그리고 움직일 때 몸이 하나인 것 처럼 우리의 믿음을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하나된 믿음이 있는 곳에 신앙의 힘이 생겨나고, 하나된 기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첫째,누구를 위하여 하나가 될 것인가?
자신을 위하여 하나로 연합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분열된 마음으로 우정과 사랑을, 격리된 마음의 상태로 진실을 토론할 수 없다.
우리는 옛부터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속에서 그리스도 곧,우리 주님의 피로 하나가 되었읍니다.그래서 십자가,교회,성경책,찬양,교회 표시의 문자만 보면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은 믿음의 성장에 꼭 필요한 일차적 헌신이다.
자기 자신 안에서 정신이 하나되지 못하면 정신분열증이 생긴다. 가족이 일치하지 못하면 가족이 분열된다.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면 분열된 교회 즉 마귀가 역사하는 교회가 된다. 인간관계가 하나되지 못하면 우정도 깨지고 사랑도 깨지고,스승과 제자의 도리도 깨진다.
이런 것을 먼저 회복 시키려면 자신의 마음을 비워두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한가지 목적을 위하여 힘을 모아야 한다. 11월달은 결산의 달이다. 그만큼 큰일도 많다. 문학의 밤 하나되어 이루어 내야 한다. 전도운동도 마찬가지로 하나되어 이루어 내야 한다.학생회 임원선거도 있다.하나된 마음이 있어야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실 때 그들이 하나되기를 기도하셨읍니다.(요17:20-22)
이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화해해야 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손을 내밀고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

둘째,어떻게 하나가 되는 화해를 할까?
먼저 여러분은 여러분을 크리스챤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야 한다.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왜 거룩한 교회의 한 식구로 불렀을까요? 왜 귀하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지금까지 보호하시고 사랑하셨을까요? 우리 주님은 여러분을 천하 보다 귀한 생명으로 여기신다. 이 천하보다 귀한 생명체가 서로 아우다웅 싸우는 것보다 시기와 경쟁으로 얼룩진 상태보다는 짧은 미소로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말이 멋있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 크리스챤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제의 탕자와 탕녀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우리 만이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이라는 착각을 해서는 안된다.
친구와도 하나되지 못할 때,부모님과 사이가 원만하지 못할 때 기도하자.교회의 선후배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때 기도하자. 자기 욕심을 채울려고 할 때에 하나되지 못한다. 자기 유익만 구할려고 할 때에 하나되지 못한다. 모든 차별의식을 버리고 하나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생활 가운데는 때로는 미움과,사랑과 갈등이 엇갈린다. 그 때 그 순간의 정신적 자세는 행동의 기초가 된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과의 관계를 사랑과 화목의 관계로 유지해야 한다.
1996.11.6
성경본문:요:4:46-54
설교제목:세가지의 믿음. 신하의 믿음 단계

본문의 말씀은 영적인 단계를 설명하는데 자주 쓰여지는 말씀입니다.
믿음을 세가지 단계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왕의 신하는 점차 그 신앙이 자라나서 나중에는 확실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읍니다.그에게는 아들의 병을 고쳐야 하는 절박한 문제가 있었읍니다.이것이 계기가 되어 주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이 신하의 신앙을 단계별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막연한 믿음입니다.(46-48)
이 신하는 가나의 한 결혼식에서 주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다시 그 가나에 내려오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께서 다시 그 가나에 내려오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는 걸어서 6,7시간 걸리는 거리를 주님을 찾아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청하기 위해서,그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올라갔읍니다.이를 보신 주님은 그의 신앙을 정의 하시기를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 신앙"이라고 하셨읍니다. 무언가 기대는 하지만 무엇을 믿어야 할지도 모르는 단계의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가닥을 잡은 믿음입니다.(49-50)
이 신하는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는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갔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주님과 함께 자기 집에 가기를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주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 믿음은 주님의 말씀 속에 자기가 바라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믿는 믿음입니다. 말씀에 만족하고 더 이상 다른 것을 청하지 않고 돌아서 집으로 가는 처음보다는 분명이 발전한 믿음입니다. 막연했던 믿음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알게 되었읍니다.이제 그는 주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로,주님과 연결된 믿음입니다.(51-53)
신하는 집으로 가는 중에 종들을 만나 아들이 살아난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낫게 된 때가 주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때임을 알았습니다. 이 순간이야말로 그의 마음이 주님과 완전히 연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주님이 자신을 위해 역사하심을 아주 구체적이고 개인적으로 믿게된 순간입니다. 그의믿음이 더욱 확실해 졌읍니다.그래서 자기와 온 집이 다 믿었다고 말씀하고 있읍니다.이제 그는 예수님을 소문으로만 만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만 만나지 않습니다.
그에게 실제적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으로 만납니다.
사도 요한은 이런 확실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기를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 리 손으로 만진 바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확실해지기를 원하십니 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에 빠져서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멀리할 때 그들에게 경고하기를 (왕상18:2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면서 백성들에게 신앙의 자세를 바로 확립하기를 종용했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요청했던 것 처럼.
엡3:17-19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믿음은 체험에서 나온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신하가 밟아간 신앙의 단계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믿음이 있기는 합니까?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이 세가지 중에서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아직도 주님과의 구체적 만남은 없이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교회와 집을 왔다갔다 하는 것은 아닙니까?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그래서는 신앙의 기쁨이 없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확인하는 스스로의 작업이 필요합니다.(히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그래야 이 신하처럼 가족을 구원하며 승리의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축복이 열리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1996.11.9(토)
성경말씀:약1:2-8
설교제목:필요한 시험.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도록 되어 있다.
많은 시험들은 바람처럼 파도처럼 찾아온다, 신앙의 유익을 위한 것들도 있지만 신앙의 손해를 보게되는 시험들도 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유익을 가져다 주는 시험이다. 다시 말하면 필요한 시험,필요한 시련,필요한 고통들이다.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계절의 고통,아름다운 예술품이 되기 위한 조가작품의 고통,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한 고통이 있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망치로,정으로,끌로 다듬어져야 하는 돌덩어리가 우리네 10대들이다. 우리를 경건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자신을 발견케 하는 작업이 곧 시험이다.

첫째,여러가지 시험을 만나는 이유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왜 시험을 만나는가? 우리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의 시험에서 낙방했읍니다.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가지의 시험에 걸려 자신을 타락의 장소로 끌고간 사례도 있으나 반대로 슬기롭게 대처하여 승리한 사례도 많다.
그러면 우리가 시험을 만나는 이유중에 첫째가 바로 인간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시험을 만났다.
1.외적으로 우리를 시험하는 것.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9)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2.내적으로 우리를 시험하는 것.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많으면 시험을 당한다.
또 한가지가 있는데 호기심이 많으면 시험을 만나는 이유가 된다.
한국 금연 운동 협의회에서 조사보고 한 바에 따르면 고등학생들의 흡연동기는 호기심에서 가장 많이 나왔다. 왠지 멋있어 보이고,남자답게 보이고,어른스러워 보이고 그래서 호기심으로,
미국에서는 담배는 인체에 치명상을 입힌다고 경고하고 마약과 같은 범주에 넣고 취급하겠다고 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 담배가 해롭다고 그렇게 더 강한 문구로 경고하기로 했다고 한다.
3.힘이 약하기 때문에 시험을 당한다.
여러 가지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지만 잘 안되는 것은 저항하는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반대로 욕심은 무섭게 성장하는 힘이 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의 결국은 사망을 낳는다.이는 비록 영적인 측면 뿐이 아니라 육적인 측면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둘째,여러가지 시험에 대항하는 영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상대는 영적으로 교모한 탈을 쓴 마귀이다.우리가 대련하는 자세는 여러 가지로 취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자세는 전심전력으로 기도하는 자세이다. 이런 기도생활은 마음이 약하고육체가 약한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준다. 기도는 여러분에게 희망을 줍니다. 기도는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게 한다. 조그만 시험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는 그런 어리석은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시험 당할 때 (히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는 말씀을 믿고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다윗의 위대함은 시험 당할 즈음에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했다는 것이다.
욥은 시험을 당하면서도 정금 같이 나오리라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놓지 않았다.
1996.11.16(토)
성경본문:빌2:5-11
설교제목:주님의 마음을 품으라.

이 세상에는 가꾸면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다. 꽃도 가꾸면 제때에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 품을 수가 있다.나무도 잘 가꾸면 멋진 정원과 푸른 산을 만들 수가 있다.
심지어 동물들도 잘 다루면 사람보다 더 훌륭한 임무를 수행해 낼 수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도 잘 가꾸면 아름다워질 수 있지만 아무리 예쁜 얼굴도 잘 가꾸지 않으면 추한 얼굴이 되고 만다. 그러나 오늘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잘 가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 드리고자 한다.

우리는 많은 인물의 흉내를 내며 그들의 좋은 인격과 마음을 본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좇는 것들이 자칫 잘못하면 허영심에 물들게 하거나 우리의 영혼을 파괴시킬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언제 어느 때든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행동과 마음을 항상 가꾸어야 한다. 이롷게 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한다. 이런 주님의 마음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주님의 마음은 빛의 마음이다.

주님은 모든 인류의 빛이기 때문에 어둡고 음침한 양심과 그 생활에 조명등처럼 비추어 준다. 주님의 빛은 생명의 빛이기에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며살아 움직이도록 힘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의 마음을 닮아야 한다.
누구에겐가 필요로 하는 사람,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사람, 빛이 있어야 생명이 있듯이 우리가 있으므로 해서 빛이 나는 장소가 있으면 얼마나 귀중한 자리인가? 여러분이 있으므로 해서 생명이 소생하는 듯한 그런 모임, 그런 장소가 있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의 마음을 닮고자 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분의 아름다운 영혼의 가치를 새삼 경험하게 해주는 그런 곳에 여러분이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교회요, 가정이요,우정의 학교, 봉사의 학교,배움의 학교이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생명을 소생케 하는 주님의 빛처럼 그곳을 빛나게 하는 그런 마음과 행동을 가져야 한다.

두번째로 주님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이다.

사랑의 빛이 없는 사람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남에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내어준다는 것 평범한 마음으론 해내기 어렵다.
예 화: 문둥병자의 성자 다미안 신부.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겠다는 사랑의 마음 그것을 주님은 필요로 하고 계신다.
여러분이 찾아서 한다면 할 것이 참으로 많다.그저 우리가 무관심하게 지나감으로 그 무수한 기회를 놓치는 것 뿐이지 순간순간 이런 희생의 기회는 많이 찾아온다. 우리는 주님을 믿음으로 이런 희생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요, 우리가 끝까지 순수한과 순결성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이다.가정을 위해서,교회를 위해서 학교를 위해서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서 화해를 위해서 봉사를 위해서 자기를 먼저 희생시킬 수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자.
전도서 12:1에 (전12:1)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고 했다.
이런 때에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어보자. 그리고 우리가 작은 예수가 되어보자.


1996.11.23(토)
성경본문:잠18:12
설교제목:겸손한 사람

현대의 10대들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겸손이다.
신세대들은 개성이란 이름아래 윗사람에 대한 예의나 태도들이 많이 결여되어 있다.
"한마디로 제잘난맛에 산다."는 것이다. 자신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친구나,부모나,교사나 안보면 그만이다는 식으로 마음가운데 많이 생각하고 있다.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반성해보는 충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겸손의 미덕에 대해서 늘 강조하고 있다.

(잠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 을 얻으리니
(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 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우리가 겸손을 왜 배워야 하는가?

첫째,겸손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된 것은 바로 교만 때문이었다.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의 마음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지나친 욕심을 부릴 때 갖고 싶어하는 그런 욕망이 있다. 사탄은 이것을 악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교만하게 만든다.
하나님께 맺어야 할 인간의 근본적인 관계는 겸손을 도로 찾음으로서 구원을 회복할 수 있는 그런 관계이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의식이 있을 때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겸손과 비굴함은 구분할 줄 알고 겸손과 아첨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남보다 우월하다고 지나치게 생각하는 공주,왕자병, 조금 알고 있는 지식으로 우쭐대고 수다를 떠는 사람,외모로 친구를 사귀거나 평가하는 사람,말이 지나치게 거친 사람,아첨과 굽실거리는 행동을 하는 사람. 이런사람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 이렇게 겸손한 사람은 때가 되면 높여 주신다.
(벧전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그래서 초대교회 교부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가장 귀중한 지표는 첫째도 겸손,둘째도 겸손,셋째도 겸손이라 했다.
루터는 "성경은 겸손한 독자를 요구한다" "나를 가르치소서"나를 가르치소서 하면서 보는 사람을 원한다.

둘째,그러면 겸손의 실제적인 행동은 어떤 것이 있는가?
겸손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은 얼굴에서 나타난다.
첫째,말에서 표현된다.말의 속도,말의 높낮이,말의 길고 짧음. 그리고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 아야 할 때를 구분하줄 알아야 한다.때와 장소에 따라서 가려서 할 줄 아는 그런 말에 대한 예 절이 필요하다.
혀를 잘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약3:5)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약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약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벧전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벧후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둘째,겸손의 훈련에는 나름대로의 약점을 생각하고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자기 규칙이 있어야 한다. 인사잘하기,목에 기브스하지말고 선생님들이나 어른들보면 인사하자. 미소짓기,
최근에는 중고생들사이에 스마일 마크가 대유행이란다.팬시용품,문구용품,악세사리,등 이 마크가들어가지 않는 소품이 없을 정도로 유행인데,70년대의 노란바탕에 웃는 표정 하나인 마크와는 달리 표정과 색상도 찬차만별 윙크하는 스마일,안경쓴,모자쓴,이빠진 스마일,온통 붕대를 감고 있는 미이라 스마일도 있다. 색상은 기분이 우울한 날에는 회색,남자 친구가 생겼을 때에는 분홍색,기쁜날에는 노란색 빼지를 책가방에 바꿔 달고 다니기도 한다. 삭막한 입시경쟁과 웃음이 사라진 사회 속에서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사람을 바라는 신세대들의 희망이 반영된 현상일 것이라고 내무부 재난관리 국장 이만의씨는 밝혔다.(.1996.10.28 동아일보)

결론:우리가 겸손하는 것이 손해가 아니며 지는 것이 아니며,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며 남에게 무 시를 당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높여 주실 것이다.
우리는 학생시절부터 이런 귀한 덕목을 몸에 잘 익혀 나가야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쓰임받는 일군들이 될 수 있다.
















1996.11.30.(토)-신앙의 밤
성경본문:빌3:8-9
설교제목:가장 아름다운 지식.

우리의 신분은 학생이다. 학생은 이름 그대로 배우는 사람이다.그런데 우리가 배우기는 배우는데 과연 어떤 것을 배워야 하며 무엇을 배워야 내 인생이 보다 더 풍요로와질 수 있을 까?
우리는 그저 학제에 따라 수동적으로 배워지는 그것보다는 이제는 내가 스스로 찾아 배울만한 것이 없을까? 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살려나가야 하는 시대가 왔다.
세상에는 많은 지식이 있다.그리고 현대는 지식이 범람하는 시대이다. 성경에도 보면 많은 사람들의 지식이 더하여 지는 시대가 종말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그래서 그런지 통계상으로도 보면 2차대전 이후의 지식이 지금까지 모든 지식의 90%를 차지한다고 하는 보고가 있는데 그만큼 많은 지식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대가 지금의 시대인데 문제는 우리의 인생을 진정 보람되게 아름답게 가치있게 하는 지식은 과연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 들에게 필요한 지식이 있다면 세가지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 세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첫째, 북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원숭이를 쉽게 잡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원숭이의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린 조롱박에 땅콩이나 밤 등의 열매를 넣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나무에 걸어 둡니다. 그러면 원숭이가 밤중에 냄새를 맡고 살금살금 다가와 그 조롱박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 넣어 그 열매를 한웅큼집습니다.그러나 원숭이는 손을 뺄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열매를 쥔 손의 부피가 너무 커 조그만 구멍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그렇지만 원숭이는 손에 쥔 것을 놓으면 빠진다는 것을 알 만큼 지능이 높지 못합니다.
그래서 밤 새도록 열매를 쥔 채 손목을 빼려고 잡아당기다가 그만 아침이 오면 원주민들에게 발각되어 붙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1865년 겨울 한 여인이 자신의 갓난 아들을 안고 사우스 웨일즈 언덕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 오더니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습니다.
길을 잃은 이 여인은 추위에 떨다가 아기를 안고 숨을 거두웠습니다.
얼마후 사람들은 눈보라가 그쳤을 때 죽은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거의 속옷 차림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의 겉옷을 벗어 아기의 몸을 돌돌 감쌌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 겉옷을 벗겼을 때 놀랍게도 아기가 살아 있었습니다.
이 아기가 바로 1916년 영국 수상이 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였습니다.

셋째.아버지와 아들이 위험한 사막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날씨는 타는 듯 뜨겁고 길은 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힘이 다 빠진데다가 목이 타서 죽겠어요. 더 이상 못가겠어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가 격려 했습니다.
"용기를 내라,우리 선조들도 이 고통의 길을 걸어왔단다. 두려운 것은 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용기를 잃는 것이다.
한참을 걸어가다 보니깐 공동묘지가 나왔습니다.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 저것보세요,우리 선조들은 이 사막길에게서 다 죽었잖아요
우리도 죽고 말거예요."
아들의 말에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무덤은 실망이 아니라 희망이다.공동묘지가 있다는 것은 이 근처에 사람이 사는 마을이 있다는 증거야."

첫째는 욕심을 버리게 하는 지식이요, 둘째는 희생할 줄 알게 만드는 지식이요,세째는 희망이라는 지식이다.
청소년들에게 필요로 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원숭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 나의 마음의 손은 무엇을 잡고 있는가?
영국 수상 로이드 조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생의 참 가치를 알려주고 있다.
지금 여러분을 위해서 누군가 희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하고 있다면 분명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중에서도 가장 하챦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여러분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희망입니다. 이 희망이 우리에게 삶을 여유롭게 풍료롭게 만들어 줍니다.

욕심을 버린 지식, 희생할 줄 아는 용기, 희망이라는 열매의 지식을 가져다 주는 것이 바로 가장 고상한 지식입니다. 이것이 한테 어우러져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맞이하십시오.그리고 주님의 삶의 모범을 따라 그 아름다운 겸손과 희생과 온 인류에게 희망을 가져다 주는 이런 지식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더욱 복될 것입니다.






























1996.12.7(토:학생회 예배)
성경본문:마5:3
설교제목:심령이 가난한자.

가난은 누구나 다 싫어한다.
가난 때문에 가출한 10대,가난 때문에 우등생인데도 불구하고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10대.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가난해야 할 것이 있다면 다름 아닌 영혼의 가난이다.다시 표현하면 "자신의 마음을 비워 둔 상태""욕심이나 욕망이 없는 상태""자신의 환경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만 신뢰하는 상태" 그래서 우리가 마음이 상한 사람들,마음껏 세상에 포로된 사람들,생활의 고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 소식이 있읍니다.그것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우리의 심령속에 천국을 그려 놓고 살아야 한다.수많은 우리의 십대들은 물질적인 가난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외모를 치장하고 변색시키려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다같이 봉독.
(잠15: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잠15:17)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 니라
신앙이 좋은 학생들은 지나치게 외모에 치장하지 않는다.자신의 믿음과 내면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나의 외적인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내면적인 가난이 문제인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은 혈통,가문,국적,능려그학력등이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장 고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예수를 아는 지식이다.
우리가 천국을 소망한다면 마음을 비워야 한다.
심령이 가난했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 부인,자기부조그자기 고백을 하였다.
1) 사사 기드온의 고백(삿6:15)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 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2)대선지자 이사야의 고백(사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3)여러분은 어떤점이 부족하다고 누끼는가?(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주 안에서 해결하자.
다같이 봉독.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996.12.14(학생회 예배)
성경본문:마2:1-8
설교제목:성탄을 준비하자.

도입-예화)오래 전에 영국의 런던에서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여름날,런던 교외의 한 농가를 지나가던 일단의 사람들이 그 집 주인에게 우산을 하나만 빌릴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주인은 별 생각없이 자신이 쓰던 우산 중에서 다 부서진 낡은 우산 하나를 쓰도록 내어 주었읍니다.그들은 자기들의 주인인 한 여인에게 그 우산을 씌워주고 그 곳을 떠났습니다.
다음날 어떤 사람이 아주 예쁘게 포장된 편지와 함께 그 우산을 다시 가져왔는데,그 편지에는 "참 감사합니다."라는 정중한 인사와 함께 어제 우산 빌려쓴 여자의 싸인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 싸인에는 "Qeen Allijabeth"라고 되어 있었다. 농부는 얼마나 가슴을 치며 후회했겠습니까?
"그런 줄 알았더라면 내가 정성을 다해서 그 분을 영접했을 텐데.그 분에게 내가 가진 가장 좋은 우산을 드렸을 것을 ......?
오래 전의 이 무지한 실수는 성탄을 맞이했던 팔레스틴 땅에서도 일어났읍니다.만왕의 왕이시고 만 주의 주이신 예수께서 유대 땅에 오셨지만 그 분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상실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헤롯왕
1,2절 이 왕은 한 조그만 나라의 임금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라고 묻고 있다.
7,8절 그러나 헤롯왕은 내가 왕인데 하는 경쟁의식이 있어서 불쾌하고 불안해했다.
16절에 보니깐 살륙의 칼을 가지고 크리스마스 맞이할려고 했던 임금
이기적인 생각만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사람.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것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이 이익만 챙김.

2.서기관
4,5절 서기관들은 알고 있었음. 종교적 지식은 증가하지만 순수한 믿음은 잃어버리는 사람들,
약2:19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것은 "나는 죄인 입니다." "나는 주님 앞에 항복합니다."
알기는 하지만 예배,고백,봉사,섬김,이 없는 사람들.
약2:26.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행동을 옮기기 전에 앎은 중요하며 거쳐야 하는 단계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이다.













1996.12.28(토)
성경본문:마25:14-30.
설교제목:최후의 승자.

12/28일 일년중 마지막 주일이다. 흔히 마지막이 되면 우리가 되돌아 보는 것이 과연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생활이 얼마나 열매맺는 그런 생활이었나 되돌아 보게 한다. 한 해 동안 원치 않는 일을 많이 겪고, 원수를 맺게되고, 친구의 우정이 깨어지기도 하고,또 한편으로 우리가 바라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이루어져 있는 일이 너무나 현재의 내게 적합한 그러한 형편의 열매도 맺어져 있기도 할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정말 내가 원해서 내게 이루어진 일도 있었을 것이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일이 있었든지,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었든지, 어쨋든 우리는 일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재가 얼마나 주님 보시기에 많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느냐가 중요하다.
오늘 본문의 달란트 비유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시간을 알차게 보내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님의 결산의 방법은 바로 이러한 방법이다.
최종 결산을 생각해 볼 때 그리스도인에게는 세가지 종류로 나누어 진다.

첫째,예수님을 믿다가 나중에 타락하여 아예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성령을 훼방하고,하나님의 교회를 농락하는 그래서 그 결국이 지옥가는 가장 가슴 아픈 경우.
둘째,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기는 얻되 불가운데서 얻는 것 같은 구원(고전3:15절 참조)
셋째,칭찬과 함께 주께서 주시는 상을 받아누리며 천국으로 가는 그리스도인.

우리는 사는 세상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선 시간의 온전한 개념이 없다.다만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뿐이다. 벧후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의 진정한 결산은 언제나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설 때이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얼마나 칭찬을 받겠는가?.
우리가 정한 시간은 지금 가고 또 다른 시간은 오지만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면 우리는 이시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지나온 1년 이란 시간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의 시간을 허락해 주실 것이다.




출처 : 레드 컴퍼스 Red Compass
글쓴이 : David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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