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론의 역사와 신학
삼위일체론의 역사와 신학
1. 서론
4세기 삼위일체 논쟁은 아리우스 신학에 대한 반박으로 일어났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고, 이에 반박한 니케아 공의회(321)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 본질(homoousios)라고 가르쳤다. 이 선언을 통해 하나님의 내재적인 영역에 경륜이 종속된다고 보았다. 또한 갑바도기아 교부들에게는 구원의 신비 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에 대해 종속적이지만, 본성 곧 내재적 삼위일체의 차원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동방에서는 경륜적 삼위일체론에 기초하고 서방의 스콜라철학에서는 내재적 삶을 다룬 형이상학에 기초한 내재적(혹은 심리적) 삼위일체론이 전개되었다. 이 글에서는 니케아회의에서 결정된 초대교회의 삼위일체론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그로부터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론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개괄적으로 살펴본 다음 현대적 의미에서의 삼위일체론의 효과적 적용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삼위일체론의 역사
A.D. 90년 유대교의 랍비인 요하난 벤 자카이를 필두로 한 얌니아(Jamnia) 회의에서 구약 성경의 정경화와 유대교의 정체성 확립이 이루어졌다. 그로 말미암아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분명해졌고, 유대교에 의한 기독교의 핍박은 그 강도를 한층 더하게 된다. 로마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여기고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라진 후 기독교가 점점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자 핍박하기 시작한다. 로마에 의한 기독교 탄압은 말도 못할 만큼 잔혹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인의 수는 날로 더해만 갔다. 그러한 기독교에 대한 실질적 박해는 갈레리우스 황제의 임종 직전 막을 내리게 되었고, 콘스탄티누스 1세에 의해 국가 공인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380년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화 되었다.
기독교 국가 공인의 배경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콘스탄티누스 1세는 경쟁자인 막센티우스를 이탈리아에서 몰아내고 로마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그때 그는 기독교인들의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였다. 그의 꿈속에서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와 “이 표적으로 정복하라”는 구절을 보고, 방패에 십자가를 그린 후 진격하여 312년 10월 28일 막센티우스 군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그 싸움을 그리스도의 능력과 기독교의 우월성의 증거로 생각하였다. 다른 하나는 당시 로마의 힘이 있는 귀족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로 옮겼고, 또한 기독교를 수용하여 기독교 세력을 키워 귀족 세력을 견제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계기로 콘스탄티누스 1세는 기독교를 공인화한다.
일부 역사가들은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을 정치적 계산의 결과라고 판단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러한 배경을 발판 삼아 마침내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었고, 그것을 자신의 야욕을 위해 악용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믿음 없이 신앙을 갖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기독교는 세속화가 되었고, 이전과는 다른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정치적 계획에 의해 공의회가 소집되고 삼위일체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삼위일체 논쟁은 니케아공의회로부터 콘스탄티노플공의회 과정까지 지속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강조가 기독교회에도 전달되었다.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은 예수 안에서는 인간만을 성령 안에서는 신적인 영향력 만을 보았다. 반면에 양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onarchianism은 성부, 성자, 성령을 신적 본체가 계속적으로 나타난 현현의 세 모양으로 간주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유일성을 간과함으로써 삼신론Tritheism에 떨어졌던 사람들도 있었다. John Ascunages와 John Philoponus와 같은 후대의 단성론자들Monophysites 중 어떤 이들이 이러한 오류에 떨어졌다. 중세시대에는 유명론자인 Roscelinus가 같은 잘못으로 비난받았다.
교회는 4세기에 삼위일체론을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Nicea 공의회(325 A.D)이후 성자가 성부와 동일질임을 선언했고 Constantinople공의회(381 A.D)는 비록 니케아 공의회와 같은 정확함은 없지만 성령의 신성을 주장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 교리가 분명치 못하였다. 그러다가 Tertulian이 삼위일체 용어를 사용하여 이 교리를 공식적으로 나타내었다. 그러나 그는 성자를 성부에 종속되었다고 함으로 결함이 있었다. 오리겐은 이 방향을 훨씬 지나 성자는 본질에 관하여 성부에 종속되고, 성령은 성자에 종속되었다고 가르치므로 신격 안에 있는 이 두 위의 본질적 신성을 떨어뜨리고 성자는 성부의 최초의 피조물로 성령은 성자의 최초의 피조물로 주장하므로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부인한 Arianism의 디딤돌을 마련해 주었다. 그 이외에도 단일신론, 삼위이체론 등의 여러 이단들이 나타났다.
그 결과 4세기에 이르러 교회는 삼위일체 교리를 공식으로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325년에 니케아 세계 제1회 종교대회가 소집되어 삼위는 다 동질이며 동등하게 공존한다고 결의하였다. 이때에 주동역할을 한 사람은 Athanasius였다. 고로 이를 아타나시우스 신경이라고 한다. 아타나우스신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들은 삼위일체의 유일신을 섬긴다. 그런데 삼위는 서로 혼동되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각각 분열되어 있는 실체도 아니다. 왜냐하면 성부도 한 인격이요,성자도 또 하나의 인격이요 성신도 또 하나님의 다른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부, 성자, 성신은 한 하나님으로서 꼭 같은 영광을 누리며 영원히 공존하는 주권자이시다. 성부, 성자, 성신은 다 동일하다. 성부는 창조되지 않고 영원 자존하는 분이시다. 성자와 성신도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 성부도 성자도 성신도 다 무한하시다. 성부도 성자도 성신도 다 영원하시다.
그러나 세 분의 신으로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이 신으로 다 영원하시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 분의 신으로 자존하시고 무한한 것이 아니라 한 분의 신으로 지존하시고 무한하시다. 이와 같이 성부도 성자도 성신도 전능하시다. 그러나 세 분의 전능한 신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의 전능한 신의 계시다. 그러므로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다 신이시다. 그러나 세 분의 신들이 아니라 한 분의 신이시다. 그러므로 성부도 성자도 성령도 다 주이시다. 그러나 세 분의 주가 계신 것이 아니라 한 분의 주가 계시다.
우리들은 기독교인의 진실성에 입각하여 삼위는 각각 하나님이 되시며 주가 되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세 분의 신이 계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성부는 어느 존재로부터 탄생된 피조물이 아니다. 성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로서 피조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 분의 성부가 계신 것이 아니라 한 분의 성부가 계시며 또 세 분의 성자가 계신 것이 아니라 한 분의 성자가 계시며 또 세 분의 성령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한 분의 성령이 계시다. 삼위일체 속에는 처음도 나중도 없으며 보다 큰 이도 보다 작은 이도 없다. 영원히 공존하는 세 분이 동등하게 계시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삼위이면서도 일체고 일체이면서도 삼위이시다.”
초대교회의 복음전파 과정에서 발생했던 오랜 갈등과 시련, 고난과 박해 이후 313년 동방의 리키니우스와 서방의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이에 맺어진 밀라노 칙령은 초대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 공인과 함께 관용령을 내려 그 동안 제국에 몰수된 교회의 재산을 반환하고, 국비를 교직자에게 보조하는 것과 교직자의 공역을 면제하고 일요일을 안식과 예배의 날로 선포하였다. 당시 궁정의 요직을 장악한 일부 기독교인들은 모처럼 평화의 시대를 맞아 최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로마는 광대한 영토의 확장과 많은 이민족 문화를 효과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기독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와의 신앙적 일치를 도모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 교파와 내분으로 싸우면 제국의 통일에 위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교회의 내적 일치와 통일을 이루고자 하였다. 이로써 325년 니케아에서 최초의 에큐메니컬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를 통해 콘스탄티누스는 신학적 문제의 정립과 교회의 일치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교회의 권위는 국가 권력의 통제 속에 급속히 약화되었다.
공의회는 여러 가지 신학적 차이와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혼란하였다. 오랜 논쟁 끝에 니케아 공의회는 아타나시우스의 삼위일체 교리를 채택했으나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까지 약 60년 동안 논쟁에 휘말렸다. 이 논쟁으로 교회는 정통과 이단에 대한 신학적인 몇 가지 기준과 원칙을 바로 정립하였지만 동시에 교권에 세속권이 증대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당시 니케아 공의회 참석자들은 일반적으로 교부라 호칭된다. 일반적으로 교부들이란 초기 기독교 시대의 교회 교훈을 위해 소명 받은 모든 저술가들을 말한다.
헬라 개종자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인격의 신비하고 난해한 점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기독교 변증가인 유스티누스(저스틴 마터), 알렉산더의 클레멘트, 오리겐 등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첫째는 성경구절들을 풍유적으로 해석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증언과 철학적 개념 사이의 갈등 해소를 위해 로고스 사상을 도입한 것이다. 당시에 일반적으로 수용된 관념은 불변의 존재와 변화하는 세계 사이에는 말씀 혹은 하나님의 로고스가 위치한다는 것이었다. 특별히 신약의 그리스도는 구약의 어느 선지자보다도 더 많은 로고스를 가지고 계셨다고 했다. 그런데 오리겐이 로고스 기독론을 보급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성삼위에 있어서 서열상 성자인 그리스도를 성부에 종속시켰고 성령을 성자 아래에 두었다. 이 견해는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의 두 상반된 신학파의 출발점이 되었다. 알렉산드리아는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사상과 신비주의적 경향을 지닌 채 하나님의 삼위 관계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을 주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의 단일성을 주장하였다. 한편 안디옥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384-322 BC)의 사상과 역사를 중시하여 그리스도는 다만 제2의 신이며 그 안에 인성과 신성이 구별된다고 강조하였다.
3세기 중엽에 오리겐학파의 Lucianus(240-312)는 삼위일체 교리에 있어서 성자의 성부 종속설을 주장하여 아리우스 사상의 기원이 되었다. 루치아누스는 260-272년까지 역동적 단일신론자로 안디옥의 감독이었던 사모사타의 바울의 제자였다. Dynamic Monarchinism 혹은 양자론은 ‘단순한 인간’이 신적 능력에 의하여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승계되거나 혹은 로고스나 영이 인간 예수에게 임하여 그를 양자로 입양adopted하였다는 생각 속에 삼위의 다이나믹한 움직임이 엿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무인격적인 로고스나 지혜가 예수에게 임한 후로는 인격적 활성을 띠고 인간 예수를 점점 신격화되게 한다는 사모사타의 바울의 사상 속에 이러한 역동적 움직임이 보인다. 성부와 본질적 내재적 관계가 없이 단지 인간인 예수가 세례시 혹은 부활과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로 승격되었거나 혹은 점진적으로 신격화 되었다는 사상은 거의 모든 양자론자들에게 공통적이다. Lucianus의 사상은 점차 각 지역과 그룹간의 논쟁으로 비화되어 결국 이 논재의 해결을 위해서 국가의 공권력이 동원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라틴 교부 터툴리안은 the sole govement of God을 가르쳤다. 여기서 터툴리안은 최초로 하나님과 관계된 용어로 본체라는 라틴어의 substantia를 채용하였다. 터툴리안은 실체상 하나님은한 분이라 선언하고 성부, 성자, 성령은 three personae, 즉 3위라 하였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님의 경륜economy 또는 하나님의 관리적 행동the administrative active of God 안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갖는다. 세계가 창조되기 전 하나님은 삼위로 홀로 계셨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합리적인 이성, 곧 헬라어 로고스가 있었다. 이 이성은 하나님 자신의 사상이며 말씀으로서 그 자체를 말한하다. 그리고 이 말씀은 이성으로 구성되는 바, 성경이 지혜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하다. 이같은 터툴리안의 주장은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요한복음 1:14에 근거한다. 터툴리안은 삼위일체를 설명함에 있어서 본질인 수브스탄티아와 位인 페르소나를 사용하여 신학적 체계를 세우는 데 공헌하였다.
역사적으로 삼위일체 논쟁은 Lucianus를 기원으로한 아리우스 사상에서 비롯되었다.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의 주장에 반박하였다. 그는 ‘축제’라는 책자 등에서 성자의 성부 종속론을 철저히 주장하였다. 이 논쟁은 헬라철학에 기초한 신의 개념 이해에서 시작한다. 헬라철학에서 신적 존재는 불가지론적이다.그러므로 인간이 신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어 신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아리우스는 이 중재자를 로고스 그리스도로 보았다. 그는 로고스를 창조된 피조물로 간주하여 완전한 신도, 완전한 인간도 아닌 제3의 존재로 취급하였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은 결코 같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아버지께 기도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오리겐의 종속 사상, 즉 영원한 출생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이처럼 아리우스는 헬라사상에 기초하여 다신교를 배격하다가 자가당착에 빠졌으며 또한 진정한 신은 물질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는 사고로 흘러 이든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알렉산드리아 감독 알렉산더의 부제인 젊은 학자 아타나시우스는 벧후1:4을 근거로 아리우스를 반박하였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신성을 주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고 주장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온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는 아리우스를 반대하였다. 그리고 감독 알렉산더는 321년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그리하여 323년부터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따로 집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며 기독교 세계를 분열의 위기에 빠뜨리고 제국 전체에 대혼란을 야기시켰다. 이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제국의 질서와 평화의 유지를 위해 중재자로서 교회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국에 흩어져 있는 주교들을 비티니아 지방의 니케아에 소집하여 325년 5월 20일 세계 최초의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이 공의회에 참석한 당시의 교부들은 약300명으로 그중 2명을 제외한 모두가 헬라어를 사용하는 동방교회의 주교들이었다. 이 회의는 2개월 동안 진행되었는데 당시 공의회의 교부들은 크게 세 파로 나뉘었다. 첫째는 아리우스 지지자로 로고스는 성부하나님과 다르다고 주장하였다.(니코메디아의 유세비오). 둘째, 중도파는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로 보수적으로 교회의 평화를 회복하고자 하였는데 대부분의 교부가 여기에 속하였다. 셋째는 소수 정통파로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와 코르도바의 호시우스 등이었다.
니케아 회의 의제는 배교자들의 처리문제와 장로들과 감독들의 선출 및 안수, 그리고 교구들의 순위에 관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아리우스의 논쟁이 벌어졌다.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주교에 의해 상정된 아리우스신경은 주교 17명의 지지를 받았으나 곧 거부되었다. 그후 격론 긑에 공의회는 6월 19일 파사레아의 유세비우스가 제시한 신경을 기초로 아타나시우스가 성부와 성자의 관계를 표현한 호모우시우스homoousios즉 동일 본질이란 단어를 삽입한 신경을 정통교리로 선포하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가 주장한 그리스도의 성부 종속론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의 관계를 동일본성으로 표현하였다. 그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묘사하기 위해 homoousios를 사용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하나의 동등한 본성을 공유하였으므로 성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엿다. 하지만 그같은 본성을 지닌 성부와 성자를 명백하게 구분할 수 없었으므로 hypostasis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서방과 동방 교부들 사이에 혼란을 야기시켰다. 아타나시우스는 이 단어를 homoousios와 동의어로 사용했으나 동방교부들은 본체라는 뜻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을 세 위격을 지닌 하나의 ousia로 묘사하였다. 이는 곧 한 하나님에 세 분의 본체가 있었다는 삼신론의 의혹을 배제할 수 없었다. 한편 동방과 달리 서방 신학자들은 hypostasis를 성부, 성자, 성령을 구별하는데 사용하여 삼위일체에 대해서 하나의 본체와 세 위격으로 표현하였다.
325년 7월 25일 니케아신경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일체의 사물들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성부, 한 하나님을 믿는다. 또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성부의 본질로서 비롯된 하나님이 독생자이며, 하나님의 하나님이시오, 빛 중의 빛이시오, 진정한 하나님 중에 진정한 하나님이시니 그는 창조되지 않고 성부와 동일 본질로서 잉태되셨으니, 그를 통하여 천상과 지상의 만물이 창조되었다. 그는 우리 인간들과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성육신하시고 인간이 되심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제3일에 부활하시어 승천하셨으니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우리는 또한 성령을 믿는다. 그러나 그가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고 말하는 자들, 잉태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자들, 혹은 무에서 그가 비롯되었다는 자들,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 서로 다른 본질 혹은 정수라고 주장하는 자들, 혹은 그가 창조되었다거나 변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보편교회는 저주하는 바이다. 아멘.”
당시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를 포함한 극소수의 감독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감독들이 이 신경에 서명하였다. 그리고 공의회는 아리우스주의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직분을 박탈하였다. 교회 안에서는 아리우스 이단에 동조하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제파와 니케아의 결정을 옹호하는 정통교회파 사이에 투쟁이 발발하였다. 이는 곧 알렉산드리아파와 아타나시우스를 지지하는 로마 교구와 제국에 대한 정치 및 종교적 지도권을 주장하는 콘스탄티노플 총 대주교 간의 투쟁이었다. 하지만 350년 니케아 정통파를 옹호하던 콘스탄스 황제가 게르만의 황제 마그넨티우스에 의해 암살되자 아리우스를 지지하던 콘스탄시우스가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 황제는 그이 통치 아래 계속적으로 니케아의 결정을 뒤엎으려 시도하던 중 351년 시르미움Sirmium과 353년 아를Arles, 그리고 355년 밀라노에서 열린 교회 회의에서 아리우스 지지를 선언하고 그 이듬해 아타나시우스를 귀양 보냈다. 그리고 하나의 존재를 의미하는 ousia(본성)를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단어로 규정하여 사용을 금지하였다. 아리우스와 협력했던 중도파는 그들의 의도와 달리 삼위의 관계가 거부되자 다시 삼위의 유사성 문제를 제기하였다. 결국 대부분의 중도파 주교들은 아리우스의 주장이 점차 과격해지자 아타나시우스의 그리스도론으로 기울어졌다.
이런 혼란기에 아리우스파의 옹호자인 콘스탄시우스가 361년 사망하였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의 유한한 시간 안에서의 아들의 창조 대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영원히 났다고 주장하였다. 그에게 아들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난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된 것은 분리된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스는 난다begotten 혹은 -에서 생겨난다.born from는 말은 아이가 부모의 실재로부터 나오듯이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들의 나심은 인간 자녀가 나는 것과 같지 않으며 아들의 생산은 인간의 생산과 같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들이 시간 속에서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영원하다.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는 낳아진 것이지 창조된 것이 아니며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라고 주장하였다.
373년 아타나시우스의 사망으로 정통교리는 갑바도기아Cappadocia의 세 신학자 Basil of Casarea, Gregory of Nazinazus, Gregory of Nyssa에게 계승되었다. 테오도시우스 1세는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지지하였으며 그라티아누스와 함께, 한 신앙 안에서 제국을 통합한다는 칙령을 선포하엿다. 아리우스는 논쟁을 종결키 위해 381년 콘스탄티노플에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7월 9일 공의회는 법령을 반포하여 아리우스 사상을 단죄하였다. 이로써 아리우스주의는 제국에서 종식되고 단지 게르만족들 사이에서 겨우 명백만 유지하게 되었다. 콘스탄티노플공의회는 “하나님은 세 위격을 갖춘 유일한 존재”라고 결정했다. 이 삼위일체의 최종적 정의를 얻는 데 있어서 갑바도기아의 세 신학자들이 크게 공헌하였다. 갑바도기아의 세 학자는 오리겐의 사상인 세 인격으로 시작하여 그것에 한 하나님이 어떻게 관계되었는지를 이해하려 하였다. 그 결과 마침내 기독교 공의회는 약 70년에 걸친 논의를 통해 아타나시우스의 세 인격 안에 한 하나님과 갑바도기아 세 학자들의 한 하나님 안에 세 인격론을 수용하게 되었다. 갑바도기아의 학자들은 아타나시우스의 동일본질Homoousios에 기초하여 아리우스의 유사본질Homoiousios과 용어상의 구별을 하였다. 갑바도기아의 세 교부들은 사회적 유추의 방법을 사용하여 세 개의 신적 위격들의 상호구별되는 차이점은 오직 그들의 내부적 신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우리는 그의 참된 모습에 일치하는, 한 하나님의 세 인격적인 노출의 특별한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삼위의 상관관계에 관해서는 성자는 성부에 의해 발생하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동방에서는 삼위일체론이 Damascus의 John의 저작에서 서양에서는 어거스틴의 위대한 작품 ‘De Trinitate'에서 그 충분한 진술들을 찾을 수 있었다. 어거스틴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심리적 유추를 통해 탁월하게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형상을 반영한다. 때문에 그는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기억, 지성, 의지와 같다고 했다. 즉 그는 하나님을 세 위격으로가 아니라 하나의 위격으로 생각하였다. 또 다른 곳에서 그는 하나님을 인간의 최고의 덕인 사랑에 비유하여 성부는 사랑하는 분이며, 성자는 사랑 받는 분이며, 성령은 그들을 연결시켜 주는 사랑이라고 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삼위일체론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으며 초기의 몇 가지 잘못된 삼위일체론이 반복적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알미니우스자들인 Episcopius, Curcellaeus, Limborgh는 소위 신성의 유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종속론을 다시금 부활시켰다. 그들은 다른 위격들보다 성부께 순서와 위엄과 능력에 있어서 분명한 탁월성을 귀속키셨다. 영국의 Samuel Clarke와 루터교 신학자인 Kahnis도 이와 상당히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 다른 사람들은 일종의 양태론Modalism을 가르침으로써 Sabelius에 의하여 지적된 길을 따랐는데. 예를 들면 Emanuel Swedenborg는 영원한 신인이 성자에게서 육신이 되었고 성령을 통하여 활동했다고 주장했고, 헤겔은 성부를 자신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 성자를 자기 스스로를 대상화시키는 하나님으로, 성령을 교회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으로 간주하였다.
종교개혁시대에 the Socinians는 아리우스주의자들의 노선을 따랐으나,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으로, 성령을 단순한 능력이나 영향력으로 생각함으로써 아리우스보다도 훨씬 더 나갔다. 그들은 유니테리언파와 함께, 예수님을 신적인 교사로 언급하고 성령을 내재적인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선구자들이었다. 끝으로 존재론적인 삼위일체론에 관한 진술을 비지성적인 것으로 고려함으로써 그러한 진술을 멈추고, 경륜적 삼위일체론, 즉 구속사역과 인간 경험속에 계시된 삼위일체론에 만족하여 남아 있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Moses Stuart, W.L.Alexander, W.A.Brown과 같은 사람들이다. 상당한 기간동안 삼위일체론에 관한 관심이 약화되었으며, 신학적인 논의는 하나님의 인격에 좀더 특별하게 집중되었다.
브루너와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의 중요성에 다시 주목하게 되었다.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에 관한여 교회교의학의 전반부에서 많이 다루었는데, 계시론과 관련하여 그것을 논하였고, 그의 교회학에서 220쪽이나 삼위일체론에 할애하였다. 실제로 그는 그 교리를 성경에서 이끌어내었으나 형식적으로 논리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라는 단순한 문장 안에 포함된 것으로 알았다. 하나님은 계시자(성부)요, 계시(성자)이며, 계시 됨(성령)이시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고, 스스로 계시이며, 또한 계시의 내용이다. 하나님과 그의 계시는 동일하다. 하나님은 그의 계시 안에서도 절대적으로 자유로우시며, 주권적인 하나님으로 남아 계신다. 바르트의 이러한 견해는 사벨리우스의 일종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신성 안의 세 위격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어떠한 종속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처럼 손상되지 않은 유일성 속에서 계시자, 계시, 계시됨인 동일한 하나님에게서,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손상되지 않은 다양성 속에서 이 삼중적 존재 양태가 정확히 기인되었다.
3. 삼위일체론의 신학
1) 성경의 증명
삼위일체 교리는 분명히 계시된 교리로서 인간의 이성으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삼위일체라는 어구를 신구약에서 찾아볼 수는 없다. 이 어구는 신학적 표현으로서 하나님에 대하여 기술하기 위하여 Theophilus(181 A.D)와 터툴리안(220 A.D)에 의해 창안되었다. 그러나 木星이라고 사람들이 그 이름을 짓기 전에 그 별은 존재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삼위일체 교리는 학술적으로 삼위일체라고 부르기 훨씬 전에 이미 성경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구약에서 삼위일체 교리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엘로힘으로 불렀는데 그것은 복수명사로 Gods이다. 비록 창조주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삼위 중 각 위는 모두 창조에 참여하였다(욥33:4; 사44:24). 구약 성경에 각 위에 대한 언급은 성부(사63:16; 말2:10), 여호와의 아들(시45:6,7; 2:6,7; 잠30:4). 메시아(렘23:5, 6; 사9:6), 천사(출23:20, 21), 성령(창1장, 2장; 사11:23, 48:16, 61:1, 63:10). 그리고 삼위일체의 예표를 삼중의 축복(민6:24-26)과 삼중의 송영(사6:3)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약에서는 다음과 같이 삼위일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주Lord(롬10:12; 눅2:11; 고후3:18), 이스라엘의 하나님(마15:31; 눅1:16, 17; 삼하 23:2,3). 입법자Law giver(롬7:25; 갈6:2; 롬8:2; 약4:12) 무소부재하신 신(렘23:24; 엡1:22). 생명의 근원(골3:4; 롬8:10). 각 위는 인간을 창조하셨다(요1:3). 또 그리스도를 부활시켰다(고전6:14; 요2:19; 벧전3:18). 직분을 맡겨 주셨다(고후3:5; 딤전1:12; 행20:28).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신다(유1; 히2:11; 롬15:16). 모든 영적 역사를 수행하신다(고전12:6; 골3:11; 고전12:11).
성부는 창조하시고 성자는 구속하시고 성령은 거룩케하신다. 그러나 어느 활동에 있어서나 삼위는 동시에 참여하신다. 성부는 뛰어난 창조주이시다. 그러나 성자와 성령도 이 창조에 협력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성자는 뛰어난 구속자이시다. 그러나 성부와 성령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성자를 보내신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성령은 성켤케 하시는 분이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께서도 이 일에 협력하신다. 또 서로 증거하신다. 성부께서는 성자를 증거하셨다(마3:17). 그리고 성자는 성부를 증거하셨다(요5:19). 또 성자는 성령을 증거하셨다(요14:26). 삼위일체 교리는 분명히 성경에 계시된 교리로서 인간의 이성으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인격성은 원형적archetypal이지만, 인간의 인격성은 모형적ectypal이다. 후자는 전자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것과의 유사성의 희미한 흔적들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에거서 불완전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 안에서는 무한한 완전으로 존재한다. 인간이 단인격적인 반면에 하나님은 삼위격적이시다. 쉐드는 하나님이 자신의 본질에서 삼위가 아니라면, 하나님은 자기 묵상, 자기 인식, 자기 교통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Bartlett은 하나님이 필연적으로 삼위격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하나님 안에 있는 동등한 위격들의 사귐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인격성이 고려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성경의 계시는 성자의 성육신과 성령의 강림에서와 같이, 하나님이 구속사역이 좀더 분명하게 계시되는 정도에 따라 그 명료성이 점점 더 증가한다. 또한 삼위일체의 영화로운 현실이 역사의 사실들 속에서 점점 드러나게 될수록 삼위일체론적인 진술들은 점점더 분명해진다. 신약성경 속에서의 삼위일체의 더욱 충만한 계시는 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며 성령이 교회 안에 거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
신적인 존재안에는 유일의, 구분할 수 없는 본체가 있다(ousia, essentia). 쉐드는 이 용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essence는 esse에서 유래하며 역동적인 존재를 나타낸다. substance는 substare에서 나왔으며 존재의 잠재적인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한 신적 존재 안에는 세 위격들 혹은 개별적인 실체들subsistences,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존재한다. 헬라의 저자들이 일반적으로 hypostasis라는 용어를 채택하였던 반면, 라틴의 저자들은 persona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고, 때로는 substantia를 사용하였다. 스콜라주의 학자들은 subsistensia라는 말을 새로 만들었다. 하나님의 나누어지지 않은 전 본체가 삼위의 각자에 동등하게 속한다. 신적 존재안에 있는 삼위의 실존과 활동은 분명하게 정해진 순서로 표시된다. 위격적 실존에 있어서 성부는 첫째요, 성자는 둘째, 성령은 셋째이다. 이 순서는 시간이나 본체적 엄위에서의 어떠한 선후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원의 논리적 순서에 있어서만 그러하다. 삼위가 구별되는 어떤 위격적인 속성들이 있다. 삼위의 공동적인 사역도 있지만, 창조는 일차적으로 성부에게, 구원은 성자에게, 성화는 성령에게 돌려진다. 신적 활동들 속에 있는 이러한 순서는 하나님 안에서의 본체적인 순서를 지시하며, 또한 일반적으로 경륜적 삼위일체로 알려져 있는 것의 기초를 형성한다. 교회는 삼위일체를 사람의 이해를 초월하는 신비로 고백한다.
2) 삼위일체론의 신학
초대교회의 삼위일체론의 근원은 흔히 주장되는 바와 같이 철학적 로고스 이론과 신플라톤주의의 삼체론Triadologie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들의 삼위일체적 사건에 대한 신약성서의 증언, 그리고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푸는 교회의 세례에 있다. 초대 교회의 삼위일체론의 형식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단일성을 문제시하는 위험한 이단을 방어함으로써 형성되었다. 이러한 논쟁을 통하여 삼위일체의 교리가 생성되었으며 철학적 개념들을 신학적으로 개조함으로써 이 교리를 표현하였던 것이다.
하나의 명확한 삼위일체론을 형성하게 된 것은 한 면에 있어서 아리안주의를 방어해야 하고, 다른 한 면에 있어서 사벨리안주의를 극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이단은 기독론적인 성격의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의 교리는 기독론으로부터 발전되었다. 이 교리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보존하고 하나님과의 사귐 속에서 이루어질 완전한 구원에 대한 희망의 수립을 위하여 봉사하였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론으 하나의 ‘사변’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삼위일체론은 기독론과 구원론에 대한 신학적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아리우스와 사벨리우스라고 하는 이름과 함께 표현되는 잘못된 생각은 신학적으로 언제나 존속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에 대해 해석학적인 차이를 느끼고 이를 발견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초대교회의 신앙적인 기본 결단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이단설들을 우리는 유형론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다루어야지, 단지 역사적으로 다루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신론적 단일군주론은 엄청난 매력을 가진 종교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였으며 또 지금도 그렇다. 그것은 한 하나님, 한 로고스, 한 인류라고 하는 우주적인 단일종교의 기본 사상이며, 이 단일 종교는 범국가적이고 범종교적인 사회가 지닌 많은 문제들의 해결책으로서 로마제국 안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하늘에 계신 세계의 통치자는 오직 로마의 세계 통치자와 상응할 수 있었다.
일신론적-단일군주론적인 기본 사상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삼위일체론적으로 극복한 이 두 가지 일은 신앙에 관한 이론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신학의 영역에서도 일어난 초대교회의 위대한 신학적인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일신론은 언제나 하나의 정치적 문제였기 때문이며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엄격한 일신론은 이슬람교가 증명하는 바와 같이 신정론적으로 생각되고 관철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의 이론과 예배에 도입될 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위험을 받게 된다. 즉 그리스도는 한 분 하나님 때문에 예언자들 중 한 사람으로 전락한다든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의 여러 현상들 가운데 한 현상으로서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한 분 하나님의 생각을 엄격히 고수할 때 신학의 기독론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왜냐하면 일자는 나누어질 수도 없고, 전달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술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일신론을 가장 강력한 내적 위험으로 간주하였다. 그 반면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일신론적인 표상을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엄격한 일신론은 그리스도 없는 하나님을 생각하도록 강요하며, 따라서 하나님 없이 그리스도를 이해하도록 강요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없이 파악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없이 이해될 수 없다. 이것을 인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아리안주의의 이단설도 거부해야 하며, 이와 동시에 사벨리안주의의 이단설도 거부해야 한다.
아리우스 이단: 일신론적 기독교
한 분 하나님의 개념을 고수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포기할 수 있는 최초의 가능성은 이른바 말하는 종속론Subordinatianismus에 나타난다. 예수의 신성에 관한 이론은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아들 신분에 대한 신앙고백과 요한복음의 로고스론으로부터 생성되었다. 이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견해가 교회의 초기 역사에 나타나는데, 그 근원은 영적 기독록에 있다. 이 성령론적 기독론에 의하면, 예수 안에서 사람이 된 것은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이 예수 안에서 거할 곳을 취하였다. 예수는 성령으로 충만한 인간으로서 가르치고 활동하였다. 신적인 영이 그의 능력이다.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그는 완전하고 모든 신앙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생활을 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역동적 종속론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그 결과 예수는최후의 가장 완전한 예언자이긴 하지만 여하튼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사람으로 되어 버린다. 또한 영적 기독론은 양자론적 종속론을 지배하는데, 양자론적 종속론에 의하면. 예수는 많은 형제들 가운데 장자가 되기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 그 약점은 한 분 하나님의 생각을 고수하기 위하여 예수와 아버지의 본질적 단일성을 말할 수 없었고 그리하여 예수를 통하여 새로운 도덕을 수립할 수는 있었지만 예수를 통한 하나님과의 충만한 사귐을 일깨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의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은 한 분 하나님의 개념에 위배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한 분 아래에 종속되어야 한다.
사모사타의 바울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그 당시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고스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로고스를 한 분 하나님의 속성으로 해석하였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하나의 얼굴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 자신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이 가진 한 속성의 현상에 불과하며 지혜, 영, 혹은 로고스라고 불릴 수 있다. 그것은 예수가 죄가 없고 다라서 모범적인 삶을 그 안에서 영위한 내적인 능력이다. 예수의 완전하고 모범적인 본질은 그가 한 분 하나님 아래에 자기를 종속시킨 바로 여기에 있다.
오리겐학파 출신인 안디옥의 Lukian의 제자 아리우스는 완성된 형태의 종속론을 대변하였다. 아리우스도 한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하나님을 단순하고 가장 높은 실체로 생각하는데, 이 실체는 그의 나누어질 수 없는 단일성으로 인하여 모든 존재의 근거를 형성한다. 一者는 많은 것들의 원칙이요 척도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다른 원인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한 분 하나님은 모든 사물들의 원인이 없는 원인이다. 그러나 일자는 나누어질 수 없기 때문에 진술될 수도 없다. 한 분 하나님은 철저히 전달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모든 사물들의 사귐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중간 존재를 통한 중재가 필요하다. 한 분 하나님과 다양한 세계를 중재하는 중간 존재를 아리우스는 기독교의 전승에 따라 “아들”이라 부르고, 철학적 개념에 따라 “로고스”라 부른다. 그것은 한 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최초의 피조물이며 모든 다른 피조물에 대하여 모범이 되는 피조물이다. 이와 같은 최초의 중재하는 위치를 가진다면, 그 자체는 모든 피조물들과 같이 변화될 수밖에 없고 변천될 수밖에 없으며, 시간적일 수 밖에 없다. 아리우스의 견해에 의하면 아들은 창조의 처음 태어난 자로 이해될 수 있으나, 아버지의 독생자로 이해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리우스는 한 하나님의 단일성을 고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리안주의는 순수한 형태의 일신론적 기독교이다. 이리하여 중재자 기독론은 그리스도를 신비적인 중간적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하르낙이 비판한 것과 같이 “창조된” 하나님 혹은 “半神的” 하나님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여기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는 하나의 세계적인 원형 기독론이다.
독생자 예수가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본질이라면 하나님의 단일성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homoousios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일시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한다면, 신적인 단일성은 더 이상 일원론적으로 이해될 수 없다. 그것은 삼위일체적으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신론과 기독론과 정치에 있어서 심각한 변화를 초래한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더 이상 한 분 하나님의 의미에서 일신론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은 모든 것이 그에게 굴복하는 세계단일군주체제로 이해되거나 기술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구원하는 자유의 역사로 이해되고 기술되어야 한다.
사벨리우스 : 기독교적 일신론
기독교일신론의 한 다른 형태는 양태론에 있다. 흔히 양태론은 종속론과 완전히 다른 반대의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양태론은 종속론의 반대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여기서도 한 하나님과 이 하나의 주체에 의해 통치되는 세계 단일군주체제의 기본사상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의 이 단순한 통일성을 고수하는 방법은 다르다. 즉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한 하나님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한 하나님 안으로 폐기되어 버린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고 제2클레멘트 서신을 말한다. 양태론은 여기서 출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다. 분명히 이것은 그 당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하나님이라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일 뿐만 아니라 사실에 있어서 한분일 수밖에 없다. 한 분 하나님은 그 자신을 자기의 계시의 주체로 만들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불린다. 또한 그는 그 자신의 계시의 대상과 능력이 되기 때문에 “아들”과 “성령”이라고 불리어진다. 하나님의 단순한 단일성을 이러한 방법으로 고수하는 초기의 형식은 시리아의 성부수난설에서 발견된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아들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아버지 자신이 육으로 나타나셨다. 그 자신이 고난을 당하였고, 그 자신이 죽었으며, 그 자신이 자기를 부활시켰다.”
양태론은 사벨리우스를 통하여 신학적으로 표현되었으며, 그의 이름은 이러한 방향의 모든 견해를 대변하였다. 그의 근본사상은 간단하다. 즉 한 하나님은 그의 계시와 구원의 전달의 역사에 있어서 세 가지 형태를 취한다. 아버지의 형태 속에서 구원자로 나타나며, 성령의 형태 속에서 생명의 시여자로 나타난다.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하나님이 나타나는 세 가지 방식이다. 그러나 한 하나님 자신은 一者 자신과 마찬가지로 인식될 수 없고 불리어질 수 없고 진술될 수 없다. 사벨리우스와 마르셀은 한 분 하나님과 기독교적 삼중성을 조화시켰다. 즉 한 분 하나님은 영원하고 단순하며 나누어지지 않는 빛이다. 이 빛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수용성에 따라 인간의 세계를 비춘다. 이 양태론은 겉으로 보기에만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신학이다. 사실에 있어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진술될 수 없고 전달될 수 없는 신성의 일자 자체로 폐기시켜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벨리안주의와 아리안주의는 일신론을 공동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리안주의는 교회사 전체를 통하여 언제나 자유주의적이고 이단적인 방향을 취하였던 반면, 사벨리안주의적 양태론은 때때로 교회의 이론이 되었다. 이 양태론이 정말 극복되었는가의 문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방교회 전체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동방교회의 질문으로 남아 있다.
터툴리안의 삼위일체론
프락세아스에 대한 반박서를 쓴 터툴리안은 기독교의 신론에 있어서 종속론과 양태론으로 인하여 야기된 문제들을 삼위일체론적으로 해결한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터툴리안에 의하면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한 분이지만 혼자는 아니다. 터툴리안은 단일군주체제와 경륜을 구분하려 하였다. 아들은 탄생되었고 세계는 창조되었다. 성령은 나오며 세계는 구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의 경계선은 터툴리안에게 유동적이다.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론
1927년에 바르트는 삼위일체론을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개념으로부터 전개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주요 명제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계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주로서 계시한다. 하나님만이 계시자이다. 그는 완전히 계시이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규정한다. 하나님의 주권의 계시는 그의 신적인 주체성 혹은 자아, 다시 말하여 하나님의 인격성을 유효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유일한 삼위의 하나님, 단 하나의 인격적인, 그러나 오직 삼중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은 그를 지향하는 사유에게 결코 객체가 될 수 없는 하나님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주권의 개념을 하나님의 본질의 개념과 동일시하며, 이 개념을 다시 하나님의 신성의 개념과 동일시한다. 이와같은 동일화에는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인격성이라고 부르는 것도 속한다. “하나님은 세 존재 양식 안에 있는 한 분이다.”라는 것은 다음의 내용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양식, 아들의 양식, 성령의 양식 안에 계시는 단 하나의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바르트에게 나타나는 문제점은 성령론이다. 세 가지 존재 양식을 통하여 자기를 계시하는 하나님은 그의 계시의 능력 곧 성령에 있어서의 주체성을 증명할 수 없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을 결합시키는 사랑의 공통적인 끈에 불과하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주권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성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삼위일체론을 사용한다. 만일 이것으로 끝났다면 바르트의 신학은 인간의 절대의존에 의한 쉴라이에르마허의 인간학을 보충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자유를 근거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실로 칼 바르트는 주권을 자유로 이해한다.
3. 결론: 삼위일체 가운데 한 인격이신 성령님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이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며, 성경에서 그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교회 역사 가운데서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신앙고백이 그다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으나 20세기의 오순절 체험을 통해서 확산된 성령운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삼위일체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유일성을 침해하지 않으시면서도 자신을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하셨다는 삼중성에 있다. 기독교가 타종교와 구별되는 독특한 내용은 홀로 고고하게 자족한 하나님, 인간의 지배와 독재를 정당화시켜주는 독재자 하나님, 군주와 같이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유일 독재자 하나님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귐 가운데 활동하시는 하나님이란 점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다신론, 범신론, 유일신론(유대교)등으로부터 구분된다.
삼위일체론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이 확립되고,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성령의 신성이 확립되어 성부, 성자, 성령이 한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형성되었다. 삼위일체론의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삼위로 존재하시면서도 세 분이 아니라, 한 분의 하나님으로 통일된 인격체이다. 하나님은 서로 다른 위격에 참여하고 그들의 삶 속으로 침투하며 함께 교제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삼위 안에서 독립된 주체를 이루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위격들과 결합하고, 함께 소유하고, 나누고, 사귀면서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서로 순환하고 침투하면서 공동체를 이루신다. 이 삼위는 사람의 인격들처럼 분리된 세 인격이 아니라, 각자 완전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전체를 이루고 있다. 각 위들은 그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 한 위가 다른 위에게 종속되지 않는다.
삼위의 관계에 있어서 성부는 성자를 발생generate하고 성자는 성부에 의해 발생되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현proceed된다. 삼위의 활동을 보면, 성부는 창조와 구속의 섭리, 성자는 창조와 구속의 중보, 성령은 창조와 구속의 완성으로 사역하신다. 그러나 이 구분은 어디까지나 인위적이고 피상적인 것이며, 실제로 한 분이신 하나님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함께 사역하신다.
인격을 지니신 성령은 아들과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고, 아들과 아버지를 화합시키는 주체이다.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이나 감화력이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지니셨다. 성령은 발언, 탐구, 증거, 명령, 계시, 노력, 조정 등의 인격적 행동을 하신다. 우리가 성부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며, 성자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것과 똑같이 성령 하나님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섬기며 인격적으로 환영하고 인정하고 모셔들이는 가운데 따라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를 영생과 진리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출처] 삼위일체론의 역사와 신학|작성자 백향목 나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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