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스크랩] 삼위일체 하나님 누가 제일 높은가?

하나님아들 2018. 7. 13. 23:27

[질문] 삼위일체 하나님 누가 제일 높은가?


[답변]

삼위일체 하나님은 누가 더 크냐 작으냐처럼 수량적으로 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유일하신 한 하나님의 존재양식 자체를 말하는 거니까요. 삼위일체는 한 신성의 본체에 세 인격(위격)이라는 뜻입니다. 세 인격이 모든 권위와 영광과 권세에 있어 똑같이 동등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만일 등등하지 않고 세 인격 중 한 인격(신격)이라도 다른 인격보다 크거나 열등하다면 종속론이나 삼신론 이단이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 다른 종류의 세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세 인격이 구분되지 않고, 무조건 다 같다고 하면 양태론 이단이 됩니다. 

세 인격이 각각 3분의 1씩 합해서 한 하나님을 이루는 것도 아닙니다. 각 인격으로 절대 완전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작은 머리로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결코 다 알 수 없습니다.  

 

성자 하나님을 가리켜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이라 하고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골 1:15)라고 하여 성부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인 듯 여겨지게 하는 표현은 성육신하실 아들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실 것을 전제한 표현상의 한계적인 

특별한 언급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흔히들 잠언 8장 22-23절에 나오는 말씀 곧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라는 말씀에서 언급되는 지혜를 제2위격이신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여성으로 의인화된 이 지혜를 제2의 신격이나 하나님보다 낮은 신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혜가 하나님의 속성 자체임을 뜻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이 지혜가 육화된 분이며, 하나님께서 이 육화된 인격을 통해 세상을 지으신 것으로 믿습니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요 14:28)는 표현이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는 표현 역시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계실 때의 입장에서 자기를 낮추어(빌립보서 2장 8절에 언급된 것처럼) 이르신 말씀이라고 봅니다.그러니까 성부가 보내시고 명하시는 분으로서 성자보다 권위나 리더십 면에서 더 크시다는 뜻일 뿐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자라며 강하여지고”(눅 2:40), “키가 자라가며”(눅 2:52)처럼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런 경우와 같이 예수님은 지금 여기서 자신의 인성의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것일 뿐 결코 예수님이 그 존재와 본질 면에서 성부보다 열등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 10:30)고 명언하신 데서도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의 특성은 한 인격이자 한 존재 안에서 둘 다 혼동됨 없이 보존되는데, 예수님이 어떻게 이 땅에 인간으로 계실 때 제한된 지식을 소유하면서도 모든 것을 아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땅에서 인간적 지식을 바탕으로 사셨지만 언제든 자신의 무한한 지식에서 무엇이든 생각해내실 수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신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설령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상대적으로 낮춰 본다 하더라도 
마치 사람으로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볼 때 본질상 아버지에게서 난 아들 역시 동물이나 다른 종류가 아니라 사람인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아버지와 똑같은 신이시라는 걸 상식적으로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가리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빌 2:6)라고 언급하는 것입니다. 


구약 스가랴서 14장 4절에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 발이 감람산에 서실 것을 가리켜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라는 표현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발과 동일시하는 대목도 볼 수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아들 하나님을 가리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이 구약의 말씀 또한 분명하게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요 6:20)고 표현하실 때의 “내니라”는 말씀은 원어적으로 보면 구약에서 모세에게 자신을 드러내실 때 성부 하나님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3:14)고 말씀하실 때 그 하나님의 자기 규정의 의미와 똑같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또한 삼위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롬 8:9) 또는 ‘예수의 영’(행 16:7)으로 불리시는 것으로도 확인됩니다. 성령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급이듯 예수님도 단순한 인간이거나 좀 열등한 하나님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세 위격 간에는 질서가 존재할 뿐 그 어떠한 열등이나 우위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좀더 직접적인 언급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라는 말씀에 나타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라는 바울의 축도에도 나타나지요. 


비록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히 나셨다는 표현을 허용한다 해도 그것은 시간적인 선후관계가 아니라 논리적인 위격의 관계라고 보는 것이 기독교 신학의 정설입니다. 교회사에서 삼위일체를 부인한 아리우스는 "성자 하나님은 영원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는 말로 이단이 되었습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계시다는 것이 정통 기독교의 믿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롬 1:2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 광대하심의 신성이 무한광대해 보이는 우주라는 피조물에 드러나 있고, 알라 같은 단일신이 아닌 공동체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God’s society)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의 속성(서로 주고받는 관계공동체에서만 가능한 것이 사랑이기에)은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가정 공동체에 잘 드러나 있지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피조물인 인간이 영과 혼과 몸(살전 5:23)으로 존재하는 것 역시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보기도 하지요.  


또한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에 등장하는 우주의 3대 구성요소인 공간(천), 물질(지), 시간(태초)까지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낸다고 보기도 합니다. 

공간과 시간, 물질은 온 우주에 동시에 존재하는데, 공간은 모든 물리적 실체의 편재 배경이고, 물질(질량 에너지)은 공간을 채우는 요소로 어디서나 관찰됩니다. 또 시간은 계속 흐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물질과 에너지의 현상들을 실제로 경험하게 해줍니다.  


여기서 공간은 모든 곳에 편재하시는 성부 하나님, 물질은 육체로 이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 시간은 그 하나님을 연속적인 시간의 경과 속에서 체험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하지요. 창세기 1장 1절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히브리 원어는 복수명사 엘로힘인데, ‘창조하시니라’는 술어는 원어로 볼 때 단수 주어에 붙는 단수형 동사입니다.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한 문장의 문법에서 마저 동거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어지는 2절에도 나타납니다.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성령 하나님이시고, 3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말씀이신데 그 말씀(로고스)이 곧 성자 하나님으로서 이 말씀을 통해 만물이 논리적으로 질서있게(로고스에서 로직, 즉 논리란 말이 나왔으니까요) 지어졌다고 하지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창조세계를 보더라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성을 부인하면 창조 질서와 원리 자체를 해체시키고 부인하게 될 만큼 크나큰 딜레마를 떠안게 되고 맙니다. 

 

이렇게 성경에서는 명백하게 예수님의 신성뿐만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등함을 아주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보다 조금이라도 열등한 존재라면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일은 엄청난 불경죄요 우상숭배가 될 것입니다.  


비록 특정 성경 구절에 대한 신학적 해석의 차이는 다소간 존재할 수 있어도 정통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이 삼위일체 진리의 근간을 부인하진 않습니다. 부인한다면 신론뿐 아니라 구속론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진리의 뿌리가 다 흔들리게 될 테니까요.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자기를 비워 영원히 온전한 하나님이자 온전한 인간이 되시기로 자처해주셔서 실제로 그 몸에서 피를 흘려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 죄를 온전히 구속해주셨고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어주심으로 우리를 친동생 삼아주셔서 영원토록 친근히 교제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할 뿐이지요. 

그 겸비한 자기 비하를 틈타서 성자 하나님의 온전한 신성에 조금이라도 흠집을 내려는 건 너무 야박하거나 아니면 지나친 월권이라 생각됩니다.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 9:5).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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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임마,누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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