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직 - 총신대학교 목회 상담학 교수
가족공동체를 세우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 때부터 결혼제도를 만드시고 가정을 이루도록 계획하졌다. 그 가정을 통하여 경건한 언약의 자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최소한의 예배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은 가족공동체를 통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을 쌓기도 했다.
모세를 통하여 율법이 주어진 뒤로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할 것을 구체적으로 명령받았다.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신 11:18∼21).이스라엘 공동체 지도자들에게도 예외 없이 이 말씀에 비추어 자신들의 자녀를 주의 훈계로 잘 양육할 책임이 주어져있었다.
구약에는 자신의 가정을 잘 돌본 지도자들도 있지만 오히려 실패했다고 평가될 수 있는 지도자들도 있다. 신약에서는 지도자로서 가정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된 인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구약을 중심으로 가정목회에비교적 실패했다고 보여지는 네 명의 인물들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그들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이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에 대해 언급하고, 필요한 부분에서는 현대의 목회자들 가정과도 연결시켜 적용해 보고자한다.
1. 갈등과 편애의 구도에서 살았던 야곱
당시의 풍습이기도 했지만 야곱은 본의 아니게 아내를 네 명이나 거느리게 된 족장이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연인 라헬과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안력이 부족하고 매력이 덜한 그 언니 레아와 결혼 첫날밤을 보내게 되면서 시작되었던 야곱의 갈등. 결혼의 출발부터 많은 부담을 안아야만 했다. 그는 원치 않았던 부부관계를 맺어야 했으며, 자매간의 질투 구도 속에서 그녀들의 여종까지 아내로 삼고 아이들을 낳는 혼합결혼의 아픔을 겪어야했고, 또한 그 아픔을 자녀들에게까지 줄 수밖에 없었던 삶을 살았다.
자녀들을 낳은 것도 쌍방이 원해서가 아니라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하여 한 맺힌 마음으로 경쟁적으로 낳다보니, 야곱은 자식의 소중함도 잘 모르고 키웠을 것이다. 아이들이 개별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받기보다는 아내 자신들이 사랑을 받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자신의 아이들을 관심 있게 양육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빌하와 실바는 여종으로서 야곱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에 종으로서의 낮은 자존감을 가졌기 때문에 그 자녀들을 건강한 자존감을 갖도록 양육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다수의 배우자와의 가정은 역기능적이다
한 명의 배우자와도 건강한 결혼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불화를 경험하고 헤어지기도 하는데, 네 명의 아내를 맞이한 야곱은 남편의 사랑을 서로 더 받고자 하는 아내들 틈새에서 건강한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다. 남편 혹은 아내가 둘 이상이 되면 그 가정은 순기능이 되기 매우 어렵고, 대부분의 경우는 역기능적 가정(dysfunctional family)이 된다. 이 같은 가정에서는 부부간의 관계가 원만치 못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고, 건강한 부부생활의 모델이 아니므로 그 자녀들의 가정도 원만치 못한 결혼생활을 하게 될 수 있다.
오늘날 외형적으로 목회자가 둘 이상의 배우자와 더불어 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많은 목회자들이 배우자와 교회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종종 반 농담으로 "제 남편은 교회랑 결혼했대요"라고 말하는 사모님들을 보게 된다. 교회는 목회자가자신의 배우자처럼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가정보다 교회를 더 우선시할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는 많은 목회자들이 가정보다는 교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교인들의 요구는 잘 거절하지 못하고, 선약되어 있는 가족과의 약속까지도 쉽게 취소하기도 한다. 배우자와 교회라는 삼각관계에서, 목회자는 교회와 배우자의 기대감 때문에 긴장을 느끼게 되어 가정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한다.
목회자도 인간인지라 시간적, 감정적으로 교회사역에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면 집에서는 에너지가 별로 남아있지 않아 가족들에게는 관심과 사랑을 덜 주게 된다. 오히려 목회자 자신이 가족들로부터 에너지를 충전 받기를 원하게 되어, 이것이 부부 갈등과 부모-자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교인들에게는 훌륭한 목회자로 인정을 받으면서도 집안 식구들에게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며, 친밀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의외로 많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하게 되면 목회자가정은 역기능적으로 변하게 되며 그 영향이 자녀들에게까지 미치게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한다.
편애는 곧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된다
야곱은 형 에서를 편애하는 아버지 이삭과 자신을 편애하는 어머니 리브가 사이에서 성장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던 야곱은 흥미롭게도 자신의 자녀들을 충분하게 골고루 사랑할 수 없었던 아버지였다. 원치 않는 결혼생활에서 태어난 자식들에게는 건강한 아버지 상을 경험시켜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라헬에게서 태어난 요셉과 베냐민에 대해 편애하는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다른 자녀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요셉이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지만, 요셉에 대한 형들의 분노와 보복심은 아버지 야곱의 요셉에 대한 편애 때문이었다.
건강한 사랑을 받은 부모는 자녀를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물론 건강치 못한 사랑을 받은 부모들 가운데서도자신의 아픔을 자녀들에게 반복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분들도 종종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편애 받은 사람은 타인을 편애하는 경향이 강하다. 편애하는 것은 역기능 가정의 대표적인 증상들 중의 하나이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사랑할 때 편애하게 되면 그 교회는 역기능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도들 중에는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성인아이들이 많이 있는데, 영적인 부모역할을 하는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편애하는 모습을 나타낼 때 이들은 깊은 상처를 받게 된다. 그리고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은 역기능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성장한 분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건강한 부모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던 부모님 밑에서 상처를 받고 자란 목회자들이, 자녀들을 양육할 때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녀들을 편애하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 가정에서 밖으로 문제를 표출시키지 않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영웅 (hero or heroine)성인아이′ 피케이(P. K, Pastors′ Kids)와 문제증상을 표출시키는 ′희생양(scapegoat)성인아이′ 피케이가 한 가정 안에 배출되는 것도 볼 수 있다. 야곱의 가정에서 찾아본다면, 요셉은 ′영웅적인 성인아이′ 이며 자신의 아버지 침상에 올라 세대간의 경계선을 넘는 비행을 저지른 르우벤(창 49:4 참조)은 ′희생양 성인아이′ 라고 지적할 수 있다.
2. 물질과 성(性)에서 무너진 기드온
사사 기드온은 지도자로서 출발과 과정은 비교적 좋았던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겸손하게 나아갔으며 아버지가 세운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상을 찍고 미디안의 군대를 쳐부수는 용맹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의 사역 말년에 보여준 모습은 오늘날 목회자들과 그 가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디안을 정복하고 돌아왔을 때 권력욕에 있어서는 극복한 듯 보였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리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 8:23). 그러나 그 말에 이어서 그는 물질에 대한 애착과 욕심을 드러내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청구하노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8:24). 기드온이 얻었던 탈취물은 금 일천 칠백 세겔과 장식품과 패물, 미디안 왕들의 입었던 자색 의복과 그 약대 목에 둘렀던 사슬이었는데, 기드온은 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신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고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숭상함으로써 스스로 음란하게 되어 그것이 기드온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올무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삿 8:26∼2 7참조).
그 많은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던 동기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을 기념하며 명예를 얻기 위하여 종교적인 상징물로 대체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다른 탈취물도 자신이 취했던 것을 보면, 그는 물질에 대한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아내들을 거느리고 아들만 칠십 명되는 대식구를 거느리기 위해서 물질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지도자로서 물질욕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물질이 자신과 가족에게 ′올무′가 되었고, 그것에 매여 중독되었던 그의 말년의 삶이었다.
사사기는 기드온의 이후 사역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 없이 가정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나이 많아 죽게 된 기록으로 그의 삶을 끝맺고 있다. 그에게는 아내가 많이 있었으며 아들만도 칠십 명이나 되었다. 세겜에 있는 첩에게서도 아들을 낳아 아비멜렉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그 아들은 장차 가정에 큰 비운을 가져오는 인물이 되었다. 많은 아내를 거느릴 만큼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외부적인 매력도 갖추었고, 성적인 힘도 있는 기드온을 상상해 볼 수 있다. 한 여자에게서 만족을 얻지 못하며 여러 아내를 두며 또한 첩까지 거느렸던 기드온은, 성적인 면에서 문란한 지도자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위대한 전사가 남기고 판 추악한 가정파멸
칠십 명의 아들들을 과연 잘 사랑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에는 없지만 배 다른 형제들간의 갈등과 많은 아내들 사이의 갈등들을 중재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을 것이다. 특히 첩에서 난자식인 아비멜렉은 아버지가 죽은 후에 칠십 명의 형제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살상하는 처참한 형제살육을 저지르는 문제아가 되고 말았다.
흔히 목회자가 피해야 할 세 가지 욕망은 명예욕, 물질욕, 성욕이라고 표현한다. 기드온의 경우에는 권력욕은 약했지만 명예욕, 물질욕, 그리고 성욕이 다 강했음을 알 수 있다. 목회자가 명예욕을 갖게 되면 가정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외적인 지위와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을 추구하게 된다.
명예욕을 추구할수록 많은 시간을 바깥에서 보내야하며 정치를 해야하며 사람들을 만나야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가족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게 되며, 특히 자녀들에게 적절한 관심과 사랑을 쏟을 수 없게 된다.
물질욕을 갖게 되면 목회자는 목회자 고유의 고결성과 인격성을 점점 상실하게 되며 인격에 장애가 생기게 된다. 교인들 한사람 한사람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게 되며 헌금 액수와 교회당 건축이 우선순위에 놓이게 된다. 물질욕에 사로잡히는 목회자를 지켜보게 될 때 배우자와 자녀들은 부모와 배우자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며 따라서 가족 간의 신뢰감에 금이 가게 된다.
그리고 부부생활에서 성욕이 적절하게 만족되지 않는 목회자는 점점 성적인 유혹에 취약하게 되는 위험성에 노출될 수도 있다. 배우자 몰래 타인과 성적인 관계를 맺으면서도 위태하게 가정생활을 영위해 가는 목회자들도 있고, 종종 노출되어 교회에서 사임하게 되고 가족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는 목회자들도 있다.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성희롱의 형태로 성욕을 표출시키는 목회자들도 있고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에 중독되어 가족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갖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목회자들도 있다.
목회자의 성생활은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목회자의 성적 비행은 일반가정에 비하여 더 큰 충격과 상처를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다. 특히 자녀들에게는 자존감 형성에 있어 악영향을 줄 수 있으며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음을 명심하고, 다시 한번 목회자들의 경성함이 필요함을 필자는 역설하고 싶다.
3. 자녀교육에 실패한 엘리 제사장
필자도 목회자의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홉니와 비느하스 이야기를 예로 들며 목회자자녀가 잘 행동해야 한다는 교훈을 듣고 마음에 부담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대부분 목회자들의 기도제목 중 하나는 자녀들 중에서 비행을 저지르는 문제아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게다. 구십팔 세를 일기로 삶을 마무리한 엘리 제사장은, 안타깝게도 사십 년 사사생활동안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잘 양육하지 못한 지도자로 오고 오는 세대에 그 이름이 언급되어진 인물이다.
두 아들은 제사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제사장이 된 자들로서, 제사장에 대한소명의식이 전혀 없는 자들이었다. 성경은 그들을 표현하여 "불량자(wicked men)라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they had no regard for the Lord)" (삼상 2:12)라고 기록하였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이 전혀 없이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그들은, 그 인격이 사악한 ′악의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행동을 보면 그들의 인격은 여러 부분에서 장애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타인에 대한 존중심도 결여되어 있고, 제사하는 과정에서도 삶은 고기, 날고기를 가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위협해서 가져가고,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자들을 성폭행 하는 등 그들의 행동은 반사회성 인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의 증상을 전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버지 엘리에 대해서 전혀 존중심이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멸시하며 전혀 개의치 않는 파괴적이며 사악한 ′악의 사람들′이었다.
죄책감에 대한 경계선을 가르치지 않았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악한사람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같은 인격장애의 모습 뒤에는 거의 확실하게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내의 양육방법에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엘리 제사장의 모습은 ′회피성 인격장애′ (avoidant personality disorder)에 가깝다. 하나님의 사람의 경고를 듣고도 별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에도 그는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삼상 3:18)고 반응하였을 뿐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유발시키는 환경적인 요인으로는, 부모의 훈육에 있어서 적절하지 못하며 일관성이 결여된 것 혹은 성장과정에서 폭행을 계속적으로 당했거나 집을 떠나 성장했거나 부모의 양육적인 틀이 없이 성장했을 경우를 들 수 있다. 엘리의 경우에 있어서는 두 아들들의 성장과정에서 잘못할 때에 적절하고도 일관성 있게 훈계하고 야단치지 못하고 문제점들을 그냥 회피하고 지나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성장과정에서 부모로서의 권위를 상실해 버린 엘리는 성장한 두 아들이 계속적으로 비행을 저지름에도 불구하고 엄하게 꾸짖지 못했다. 또한 그의 꾸짖음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못했다. 엘리의 아내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엘리 제사장의 행동패턴으로 볼 때 아내와도 부부간의 갈등은 건강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그냥 회피하고 묻어 두고 표현하지 못하는 결혼생활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역기능적인 가정의 특색은 세대간의 경계선(boundary)이 무너지며 존중되지 않으며 개인적인 경계선도 존중되지 않으며 결혼생활에서 외부적으로도 경계선이 경직되거나 혹은 무너지는 것에 있다. 건강치 못한 부모는 자녀들에게 적절한 경계선을 긋는 방법을 가르치지 못하며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해야 할 일과하지 말아야할 일들에 대하여 가르치며 훈계하지 못한다.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경계선을 마음대로 넘어가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며 하나님에 대해서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또한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고 있는 자들로서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함으로써 넘지 말아야할 성적 경계선도 쉽게 넘었고 그것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심각한 인격장애자들이었다.
가정목회의 실패는 가문의 저주로 이어졌다
엘리 제사장의 가정생활은 현대 목회자들의 가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녀들의 성장기에 적절한 경계선을 긋도록 도와주며 가르치며 훈계하는 책임을 소홀히 하면, 성인이 되어 비행을 저지르는 자녀에게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는 보통의 목회자들에게는 목회활동에 전력을 쏟는 시기이며, 따라서 많은 자녀양육에 대한 책임을 배우자에게 떠맡기게 된다. 종종 배우자마저 목회자의 사역에 깊이 참여하다 보면, 자녀들의 양육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다.
그래서 목회자 부모가 사랑과 관심과 더불어 훈계하는 책임을 회피하게 되면 자녀들이 벗나가게 되어 가정이 역기능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적절하고 일관성 있게 훈계하는 방법을 몰라서 "너는 목회자자녀이니까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직되게 아이들에게 강요하다 보면, 오히려 자녀들의 인격발달이 건강하지 못하고 ′애어른′ 이 되어 나중에 ′어른애′로서 행동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엘리 제사장의 가정목회 실패는 가문의 저주로 이어졌다.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3:13)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삼상 2:31∼33)고 저주하심으로써 영적 지도자의 가정이 역기능화 될 때 무서운 책임성이 있음을 경고하셨다.
전쟁에서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전사소식을 들은 엘리는 비둔한 몸으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처참하게 죽었고, 비느하스의 아내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죽은 소식을 듣고 갑자기 해산하면서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부르며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저주가 당대에서부터 임하는 비극을 맛보아야만 했다.
4. 사역 중심적인 삶을 산 사무엘
사무엘은 한나의 서원으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헤어져 특별한 삶을 살았던 하나님의 종이었다. 엘리 제사장의 밑에서 자라났지만 그는 부모에게서 적절하고 건강한 양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자라나면서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은총을 받았지만, 부모님으로부터는 지속적인 양육을 경험하지 못했다.
오히려 역기능적인 엘리 제사장의 가정의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고 자라나야 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심이 철저했고 그의 사역에서도 매우 영향력이 컸던 사무엘에게서, 양태는 다르지만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보여 주었던 비행들이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에게서도 나타난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 아들들이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dishonest gain)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삼상 8:3).
어떻게 사무엘과 같은 훌륭한 하나님의 선지자가정에서 요엘과 아비야와 같은 비행적인 아들들이 나타날 수 있었을까? 물론 훌륭한 부모 밑에서도 돌연변이처럼 비행자녀가 나타날 수도 간혹 있겠지만, 사무엘의 경우 추측해 본다면 그의 유년시절의 양육경험의 부재와 사 적 중심적인 삶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한 것을 지적해볼 수 있다.
일중독증은 가정에서 악순환을 초래한다
아버지로부터 양육 받은 경험이 없었던 사무엘은 막상 그 자신이 결혼하여 아버지가 되었을 때 두 아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지 모르고 틀 없이 키웠을 듯 하다. 그 자신이 매우 청렴한 삶을 살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의 두 아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는 모습은 자녀양육에 실패한 사무엘의 한계를 보게 된다. 두 아들의 비행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게 점으로 사사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또 다른 가능성을 지적한다면, 사무엘은 사사가 된 뒤에 그의 고향 라마를 본거지로 활동하게 되었는데 그는 전국을 순회하며 사사,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느라 몇 일씩 혹은 몇 달씩 출장을 다니면서 아내와 자녀들과 시간을 공유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라 전체를 돌보기 위해 진력하다보니 막상 가장 가까운 자신의 가정에는 소홀하게 되고 결국에는 요엘과 아비야의 비행을 가져오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사무엘의 삶과 일중독증(workaholism)을 연결시키는 것이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사무엘의 가정은 사역 중심적으로 흐르기 쉬운 현대 목회자들의 가정에 경종을 울려 준다. 목회자가 사역이라는 미명하에 가족들을 희생시키며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면, 막상 집에 돌아와서 자녀들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없어 점차적으로 자녀들과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가정을 돌아보며 휴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당장 눈앞에 닥치는 일들을 처리하는데 급급하다 보면, 점차적으로 일중독증에 걸리게 되며 나중에는 쉬고 싶어도 불안해서 쉬지 못하며 오히려 휴식하면 좀이 쑤시고 불안하고 초조한 증상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게되며 악순환적으로 갈등을 회피하기 위하여 더 일에 집착하게 되며 점차적으로 귀가하는 시간이 늦어지기도 한다.
건강한 목회자 자녀양육에 대한 몇 가지 제안
앞에서 다룬 네 명의 구약인물들에 대해 좀더 세부적인 접근이 가능하지만 대표적인 영역 한 두 가지 이슈를 중심으로 자녀양육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풀러대학 심리학대학원의 가족치료학 교수인 캐머론 리(Cameron Lee)가 저술한 「피케이」(PK)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는 목회자부부가 다음과 같이 자녀들을 대할 때 자녀들은 무시되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첫째, 교회 일에 너무 신경 쓰는 나머지 가족들과 시간을 가질 수 없을 때. 둘째, 너무 바쁜 나머지 자녀들의 이야기에 경청하지 않을 때. 셋째, 교회 밖에서 이루어지는 자녀들의 활동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거나 지지해 주지 않을 때. 넷째, 자녀들을 사역에서 부당하게 이용할 때이다(Cameron Lee, PK: Helping pastors′ Kids Through Their Identity Crisis(Grand Rapids: Zondervan), 1992, P.136).이 책은 목회자자녀들을 이해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을 주는 책으로, 목회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연구 조사한 것을 분석하여 쓴 것이다. 철자가 소장으로 있는 한국목회상담연구소를 통하여 이미 완역이 되었으며 올해 안에 출판될 예정으로 있다.
그는 보다 건강한 목회자 자녀들의 양육을 위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하였다. 보다 분명한 경계선을 그을 것, 자녀들을 일반 가정의 자녀들처럼 평범하게 대우할 것,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 우선이고 목회자자녀의 정체성은 다음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것, 가정에서 안정된 환경을 제공할 것, 대화의 채널을 열어놓을 것, 여섯째, 가족들에게 우선 순위를 부여할 것, 자녀들과 시간을 공유할 것, 자녀들을 자연스럽게 사역에 동참시킬 것, 사역에서 한계를 그을 것, 영적인 지도를 게을리 하지 말 것, 진정한 크리스천의 성품의 모델이 될 것, 그리고 타인들로부터 지원도 받을 수 있게 할 것(ibid,.pp. 183∼200).
이관직 - 부산 공대와 총신대 신대원(M. Div.)을 졸업하고 미국 칼빈신학교(Th. M.)와 남침례교신학교(Ph. D.)에서 공부하였다. 지금은 총신대 신대원의 목회상담학 교수이며 한국목회상담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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