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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룩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아들 2017. 10. 5. 21:20

 거룩이란 무엇인가?



Ⅰ.  이끄는 말
Ⅱ.  거룩의 어의
Ⅲ.  거룩의 정의
Ⅳ.  거룩의 구분
Ⅴ.  거룩의 속성
Ⅵ.  맺는 말  




  “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  (이 6:3 )



Ⅰ.  이끄는 말



  처음으로 기독교에 입문하는 자들이 교회에서 아주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거룩>이다. 예를 들면, ‘거룩하신 하나님’ 또는 ‘거룩한 생활’이라는 말을 비롯하여, ‘거룩한 성전’ 또는 ‘거룩한 예배’라든가, ‘거룩한백성’ 또는 ‘거룩한 주일’ 등 아주 다양하게 표현하는 말들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 교사들이나 성도가 <거룩>이라는 말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을 성경적으로 올바르게 정립하지 못한 채, 자기 나름대로 막연하게 이해하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고 있다.
이렇게 교사들이나 성도가 <거룩>의 개념마저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정립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교사들은 성도에게 거룩한 신앙생활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성도는 교사들의 가르침대로 거룩하게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언어는 정확한 의미 전달이 생명이다.

그런데 교사들이나 성도 사이에는 의미가 분명하지 못한 <거룩>이라는 말이 너무도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인 기독교의 본질마저 흐려지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 교사들은 <거룩>이라는 말의 올바른 개념에 대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들은 성도로 하여금 거룩한 생활을 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한 기독교 실천신학에 대한 체계을 세우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하여 대부분의 교사들은 <거룩>이라는 말을 나름대로 도덕적인 윤리성과 관련을 지어 이해하면서, 성도에게 거룩한 생활을 하게 하려고 도덕적인 윤리생활을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곧 그들 나름의 거룩한 생활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교사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경건주의적인 실천신학을 집요하게 고집하면서 성도에게 금욕주의적인 생활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마치 어떤 종교집단의 수도사나 불교의 수도승처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교사들의 설교 내용은 대부분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 것인가? 라는 주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곧 성도 생활의 방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모세의 율법을 도덕적인 윤리규범으로 생각하면서, 모세의 율법대로 생활하는 것이 성도의 거룩한 생활임을 강조한다.

(행 15: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행 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행 15: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갈 2: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그 결과 기독교가 일반적인 도덕적 윤리종교의 하나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교사들은 <거룩>을 빙자하여 의식주의적인 예배형식의 중요함을 고집한다.

(요  4:20-23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를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러면서 마치 고대 신전(神殿)을 방불케 하는 웅장한 성당 및 성전 안에서 온갖 형식들로 이어지는 제전행사(祭典行事)를 화려하게 진행한다.

물론 내용은 다르지만, 마치 이방 종교 집단들에서 행하는 제전행사를 방불케 한다.

그리고 성도로 하여금 그 제전행사에 참여하도록 강요한다.
그 결과 하나님께 드리는 성경적인 거룩한 영적예배, 곧 산 제사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가 마치 성당 및 성전에서 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제전행사와 같은 것으로 오해를 받게 된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의 형태는 물론 그 본질까지도 변질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의 성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들도 <거룩>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교사들의 가르침에 의하여 <거룩>이라는 말을 도덕적인 윤리성과 관련해서 막연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이 모세의 율법대로 살려는 경건주의자가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도덕적인 윤리규범으로 삼아 도덕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한다.

(갈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다시 말해서, 거룩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하여 어떤 성도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뿐만 아니라, 죄의 형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면서 자기 스스로를 자학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성도는 자기 스스로가 마치 도덕군자(道德君子)나 된 것처럼 착각하여 거만한 자세로 오만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온갖 외식을 하면서 현대판 바리새인이 되어 위선자로 살아가는 자가 있다.

(마 23:1-7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않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이러한 여러 가지 부작용 등은 <거룩>이라는 말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교사들의 신학연구에는 물론, 성도의 신앙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이는 <거룩>이라는 말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이해가 선결되어야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가능해지며, 거룩한 생활에 대한 오해도 사라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본주의적인 도덕적 윤리종교의 하나로 오해받고 있는 현대 기독교도 본래의 숭고한 제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거룩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이에 그 해답을 얻기 위하여 먼저 그 어의를 알아보고, 이어서 그에 대한 정의를 비롯하여 그 구분과 속성을 차례로 노한 다음, 마지막으로 끝맺음을 하려고 한다.

Ⅱ.  거룩의 어의(語義)

  신.구약성경에서 <거룩> 이라는 말이 근본 어근에서 파생된 용어들과 함께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에 대한 여러 용어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를 대략 알아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 용어들이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어떻게 이해되며 사용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대략 검토하여 보기로 한다.

  구악성경에서는 <거룩>이라는 말이 히브리 원문으로 ‘코데쉬(  )’라고 하는데,  이는 ‘구별’이나 ‘밝음’ 또는 ‘새로움’ 그리고 ‘신성’과 ‘거룩’이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말은 ‘성결하다’ 또는 ‘거룩하다’ 그리고 ‘구별되다’ 또는 ‘봉헌되다’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는 ‘카다쉬(  )’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것이다.

이 외에도 ‘카다쉬(  )’라는 동사에서 파생한 단어들이 많이 있다.
그 단어들을 대략 분석하여 보면,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하나님과 관련이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방의 우상신과 관련이 되는 것이다.

전자에 속한 것은 ‘카디쉬(  )’ 또는  ‘카도-쉬(  )’라는 형용사로서,  이는 ‘거룩한’ 또는 ‘신성한’이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미케다쉬(  )’라는 명사로서,  이는 ‘거룩한 장소’  또는 ‘성소’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외에서 거룩한 하나님과 관련을 가지고 사용되는 파생어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후자에 속한 것은 ‘카데쉬(  )’라는 명사로서, 이는 음탕한 우상 숭배를 위하여 ‘바쳐진 남자’ 또는 ‘남창(男娼)’이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케데샤( )’라는 명사로서, 이는 음탕한 우상 숭배를 위하여 ‘바쳐진 창녀’ 또는 ‘창부(娼婦)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거룩> 이라는 말이 여러 가지로 표기되어 있다.
그것은 헬라 원문으로 ‘하기오쉬네(  )’ 또는 ‘하기아스모스(  )’  및  ‘하기오테스(  )’ 그리고 ‘호시오테서(  )’라는 단어들로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용어들이 각각 성격을 달리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하기오쉬네(  )’는 하나의 특성으로서의 거룩을 뜻하고,

‘하기아스모스(  )’는 과정이나 결과로서의 거룩 또는 성별 및 성화를 뜻하고,
(롬 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롬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느니)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살전 4: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니 취할 줄을 알고)
(살전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살후 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딤전  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히 12: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하기오테스(  )’는 상태로서의 거룩을 뜻하고,

(고후 1: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히 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호시오테스(  )’는 생활의 경건과 독실성으로서의 거룩을 뜻한다는 것이다.

(눅 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러나 이와 같은 일반적인 견해는 실제 신약성경 본문을 살펴 대조하여 보면,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보기가 어려운 부분이 많다. 신약성경에서는 <거룩>이라는 말이 주로  ‘하기오스(  )’라는 형용사로 표기되어 사용되고 있다.
또, ‘하기온(  )’은 ‘거룩한 것’이라는 뜻으로서, 이는 제사 음식

(마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이나
지상의 성소

(히 9:1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그리고 ‘타 하기아(  )’는 ‘거룩한 것들’이라는 뜻으로,
이는 성소
(히 8:2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히 8:24-25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 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히 13: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와

성전의 바깥 뜰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에 대하여 사용 되었다.

그리고,
‘호 하기오스(  )’는 ‘거룩한 자’라는 뜻으로서, 주로 성자로서의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그리고 ‘호이하기오이(  )’는 ‘거룩한 자들’이라는 뜻으로서,
천사들
(살전 3: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후 1:10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과 성도들 곧 하나님께 성별된 그리스도인들

(행 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행 9:32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롬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 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롬 15: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고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에게 사용되었다.

(엡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이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빌 4: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집 사람 중 몇이니라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골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딤전 5:10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
(히 6:10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 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에게 사용되었다.


  이상과 같이 신.구약성경에서 사용되고 있는 <거룩>이라는 용어들에 대한 뜻을 대략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용어들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에 대하여도 대략 검토하여 보았다

(기독교 대백과사전 1권, 기독교문사. 1993 참고)
이는 기본적으로 사전적인 검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거룩>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얻기에는 매우 미흡하다.

그러나 이를 종합해서 살펴보면, <거룩>이라는 말이 대부분 절대자인신 하나님과 또는 하나님과 관련된 사물에 대하여 형용사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종교와 관련이 되어서 사용되는 절대용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Ⅲ.  거룩의 정의(定義)

  <거룩>이라는 말에 대한 정의는 그 말의 의미나 용도가 매우 복잡해서 간단하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랜 동안 연구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것은 <거룩>이라는 말이 일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니라, 종교적으로 특수하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므로 그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구한다는 것이 그렇게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이라는 말은 종교적인 특수한 사정을 교려하여 이해하지 아니하면 그 올바른 정의를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1.  세속으로부터의 영원적 초월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룩> 곧 성(聖)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속(俗)의 상대적인 반대 개념으로 이해한다.
곧 <거룩>은 세속(世俗)의 반대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거룩>이라는 말은 종교적으로 특수하게 사용하는 절대용어(絶對用語)로서, 속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상대적인 용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은 속으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를 유지하는 특수한 절대용어다.
여기서 ‘영원적 초월(超越)’이라는 말은 내재(內在)를 제외하는 것이 아니고 포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초월’과 ‘내재’를 완전히 분리해서 이해한다.
그러나 ‘영원적 초월’이라는 말은 ‘내재’를 포함하는 ‘초월’ 상태를 말한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따라서 <거룩>은 세속으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에서 세속과 엄연히 절대적으로 구별된다.
그러므로 성, 곧 <거룩>이라는 것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피조세계인 세속으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로 구별되는 절대본질(絶對本質)이라고 표현 할 수 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세계는 타락 이전이나 이후를 막론하고 상대적인 실존(實存)이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상대적 실존인 피조물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를 유지하는 절대적인 실유(實有)이시다.
그러므로 절대적 실유이신 창조주 하나님게서는 상대적 실존인 피조물과 영원적 초월 상태로 구별되는 본질을 소유하고 계시다.

따라서 영원하신 하나님께 속한 <거룩>은 피조물에 속한 세속과 영원적 초월 상태로 구별되는 본질이다.
예를 들면, 상대적 실존인 피조물은 빛과 어두움과 같이 상대적인 실존으로 존재하지만, 절대적 실유인 창조주 하나님은 상대적 실존인 빛과 어두움으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를 유지하는 절대적 실유로서의 참빛의 본질로 존재하신다.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따라서 절대자 하나님께서는 상대적 실존으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를 유지하는 절대적 실유의 본질을 소유하고 계시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절대적 실유의 본질이 거룩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룩한 자시다.

(레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9: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따라서 <거룩>이란 피조물의 상대적 실존으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로 구별되는 하나님의 절대적 실유의 본질을 말한다.

2.  상대가치로부터의 영원적 초월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룩> 곧 성(聖)을 단순하게 도덕적인 윤리행위와 관련해서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이라는 말을 들으면, 역으로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 곧 불순한 행위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거룩>이라는 말은 종교적인 특수한 절대용어(絶對用語)로서,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불순한 행위와 반대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는 상대적인 용어가 아니라 이러한 행위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를 유지하는 절대개념의 용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은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불순한 이다.
따라서 <거룩>은 피조세계의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인 불순한 행위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를 유지하므로 비도덕적이며 비 윤리적인 불순한 행위와는 엄연히 절대적으로 구별되는 영원적 초월 상태로서 절대가치(絶對價値)인 진(眞). 선(善). 미(美)로부터 영원적 초월(超越) 상태로 구별되는 절대가치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사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 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행 4:27-28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리라)

  상대적 실존인 피조세계에 있어서, 진. 선. 미는 상대적인 가치로서의 이념이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상대적 실존인 피조물의 주관자로서, 상대가치 이념으로부터 영원적초월 상태를 유지하는 절대가치 이념의 소유자이시다.
곧 하나님께서는 상대가치 이념인 진. 선. 미로부터 영원적초월 상태로 구별되는 절대가치 이념의 소유자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진.  선.  미가 피조세계에 있어서는 진(眞)과 위(僞),  선(善)과 악(惡),  미(美)와 추(醜) 등과 같이 상대적 가치의 이념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피조세계를 주관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 있어서는 상대가치 이념과 영원적초월 상태를 유지하는 <거룩>이라는 절대적 가치 이념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절대자 하나님은 절대가치 이념의 소유자로서 근본적으로 <거룩>의 소유자이시다.
그러므로 <거룩>이란 피조세계의 상대가치 이념인 진. 선. 미로부터 영원적 초월 상태로 구별되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절대가치 이념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거룩>에 대한 종합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상대적실존(實存)으로부터 영원적초월 상태로 구별되는 절대실유(絶對實有)의 본질로서, 상대가치의 이념인 진. 선. 미로부터 영원적초월 상태를 유지하는 절대가치(絶對價値)의 이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거룩>이란 상대적인 실존 가치 이념으로부터 영원적초월 상태로 구별되는 절대적 본질 및 가치라는 말이다.

상대적인 실존으로부터 영원적초월 상태로 구별되는 절대실유의 본질이라는 말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본질과 관련된 표현이다.
그리고 상대가치의 이념인  진. 선. 미로부터 영원적초월 상태를 유지하는 절대가치의 이념이라는 말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념(理念)과 관련된 표현이다.   (필자의 저서 “기독교 가치론”을 참조할 것).

따라서 <거룩>이라는 말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본질과 이념에 관한 표현이다.
바꾸어 말하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본질과 이념이 거룩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본질에 있어서나 이념에 있어서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거룩>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영원하신 하나님께만 관련하여 사용하는 종교적인 특수한 절대용어인 것이다.

Ⅳ. 거룩의 구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거룩>이라는 말이 근본적으로 영원하신 하나님께만 관련하여 사용되는 종교적인 특수한 절대용어이다.

그런데 신.구약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말을 영원하신 하나님 스스로에 대하여 사용하기도 하고 하나님과 관련된 피조물에 대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거룩>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인 개념을 정립하려면 이를 구분하여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거룩>은 그 성격상 크게 둘로 구분하다.
그 하나는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 스스로의 거룩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관련된 피조물의 거룩이다.
이를 차례로 분석하여 보기로 한다.

1.  창조주 하나님 스스로의 거룩이다.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영원히 거룩하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거룩>에 대하여 처음으로 언급한 자는 모세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홍해를 건넌 후에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찬양하였다.
(출  15:11  여호와의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이니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심으로 스스로의 거룩함을 나타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 후 여호와께서 스스로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여 주셨다.

(레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게 하셨다.

(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 하였음이니라
시  23:3  이스라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  99:3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 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시  99: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            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시  9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경배할지어다             대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도다)

그리고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하게 하셨다.

(삼상   2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왕하   19:22  네가 누구를 꾸짖었으며 훼방하였느냐 누구를 향하여 소리를 높였으며 눈을 높이 떴느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에게 그리하였도다)
(사   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겔   36:23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8:16  구름이 땅에 덮임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 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로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니라)
(겔   38:2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신약에서는 예수께서 친히 하나님을 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불렀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사도 베드로도 구약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언급하였다.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특히 사도 요한은 그가 본 이상 중에 들은 말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여러 차례 전하여 주었다.
(계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계  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계   15:4   주여 주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계   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특히  신.구약성경에서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거룩>에 대하여 세 번씩 거듭 찬미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구약에서는 여섯 날개가 있는 스랍들을 통하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고 찬미되고 있다.

(사  6:3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그리고 신약에서도 여섯 날개가 있는 네 생물을 통하여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하고 찬미되고 있다.

(계  4: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 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고 계시고 장차 오실자라 하고)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찬미의 효과를 강조하는 의도가 담겨진 것이다.

  2.  하나님과 관련된 피조물의 거룩이다.

  피조물은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거룩하게 된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피조물을 거룩하게 하여 주신다.

(출 19:23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산 사면에 지경을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 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13: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 중 모든 장자 된 자는 다 대속할지니라)

(레  21:15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지니 나는 그들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레  21:23  장 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못할지니 이는 그가 흠이 있음이라 이와 같이 그가 나의 성소를 더럽히지 못할 것은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피조물은 시간과 공간과 형상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그것은 피조물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영원한 것이 시간과 공간과 형상화 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시간과 공간과 형상을 구별하여 거룩한 시간, 거룩한 공간, 거룩한 형상이 되게 하신 것이다.

거룩한 시간에 속하는 것은 거룩한 안식일, 거룩한 절기, 거룩한 연도 등을 꼽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지으시던 일이 다하였을때,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며 그 날을 복 주셔서 거룩하게 하셨다.

(창  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 하셨음이더라

(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성회로 지키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 오십년, 곧 희년(禧年)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고 하셨다.
(레  25:10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레  25: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시간들을 하나님과 관련된 일자나 달이나 연도로 구별하여 거룩하다고 하신 것이다.
거룩한 공간에 속하는 것은 거룩한 땅, 거룩한 산 등을 꼽을 수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시던 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하시며 발에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출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리고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산 사면에 지경을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다고 하였다.
(출 19:23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산 사면에 지경을 세워 산을 거룩하게 하라 하셨사온즉 백성이 시내 산에 오르지 못하리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천지간의 공간을 하나님과 관련된 땅이나 산으로 구별하여 거룩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형상에 속하는 것은 제사장 옷, 회막과 단, 각종 제물 등을 비롯하여 제사장, 이스라엘 백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와 같은 거룩한 옷을 지으라고 명하셨다.

(출 28:1-5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너는 무릇 마음에 지혜 있는 자 곧 내가 지혜로운 영으로 채운자들에게 말하여 아론의 옷을 지어 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으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할지며 그들의 쓸 것은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이니라)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만나는 회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출  29:43-44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내가 그 회막과 단을 거룩하게 하며 아론과 그 아들들도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며

(레  6:26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그리고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물을 비롯하여 소제물과 속건제 희생과 속죄제의 희생등이 거룩하다고 하셨다

(레  2:10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레   6:25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속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희생을 잡을 것이요)

(레   7:6  지극히 거룩하니 이것을 제사장의 남자마다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며)
(레   10:17   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그리고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을 붓고 제사장 옷을 입혀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하도록 위임하여 거룩하게 하라고 하셨다.

(출 28:41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로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출  29:9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서 제사장의 직분을 그들에게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리라고 하셨다.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고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출 22:31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것의 고기를 먹지 말고 개에게 던질지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인본주의적인 도덕적 윤리와는 무관하게 동일한 물질이나 짐승이나 사람을 하나님과 관련된 옷과 회막과 단과 각종 제물과 제사장과 백성으로 구별하여 거룩하다고 하신 것이다.

이렇게 거룩하게 된 것들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는 것들로서, 특별히 영원하신 하나님께로부터 <거룩>을 부여 받아서 거룩하게 되어진 것들이다.

Ⅴ.  거룩의 속성

  <거룩>의 속성은 <거룩>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말한다.
<거룩>에 대한 속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된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구약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말이 영원하신 하나님 스스로에 대하여 사용되기도 하고 하나님과 관련된 피조물에 대하여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에 대한 속성을 살펴보려면 이를 구분하여 각각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하나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관련된 피조물의 <거룩>에 해한 속성이다. 이를 차례로 알아보기로 한다.

  1.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속성이다.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속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하게 언급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정리하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영원성이며, 다른 하나는 절대성이다.

  첫째,  영원성이다.

  영원성은 일반적으로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성질이라고 한다.
이는 영원을 시간과 관련하여 설명할 때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자면, 영원성은 시(時). 공(空). 형(形)의 존재인 피조물의 속성과 영원적으로 초월하여 구별되는 속성을 말한다.  곧 시간과 공간과 형상인 피조물의 속성을 내재적으로 포함하는 초월적 속성을 말한다.  시.공.형은 모두가 유한 (有限)하다.  피조세계는 보이는 물질에 의하여 공간과 시간 개념이 생긴다. 그런데 그 보이는 물질은 유한한 것이다.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따라서 유한한 시간을 영원적으로 초월한 상태는 처음과나중, 또는 시작과 끝이 하나된 상태다.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리고 유한한 공간을 영원적으로 초월한 상태는 저기와 여기, 또는 이곳과 저곳이 하나된 상태다.

(마 24:23-47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그리고 유한한 형상을 영원적으로 초월한 상태는 작은 것과 큰 것, 또는 적은 것과 많은 것이 하나인 상태다.


(눅 9:48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들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이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

막 23:42-43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은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나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은 유한한 시간과 공간과 형상을 영원적으로 초월한 상태로서, 영원성을 가지고 있는 <거룩>의 표준이며 근거이고 본질이다.

  둘째, 절대성이다.

  절대성은 일반적으로 아무 것도 대립되거나 비교될 것이 없는 상태로서 어떤 구속이나 제약(制約)을 받지 않고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성질이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자면, 절대성은 상대적 존재인 피조물의 속성과 영원적으로 초월하여 구별되는 속성을 말한다.  곧 절대성은 상대적 존재인 피조물의 속성을 내재적으로 포함하는 초월적 속성을 말한다.  상재적인 것은 모두가 대립(對立)되어 있다.  그러므로 상대적 것들은 독립되어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각각 상대를 이루어 존재하는 것이다.

(창 1:1-3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창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창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믿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시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상대적으로 대립되어 있는 것들을 영원적으로 초월한 상태는 하늘에 속한 것과 땅에 속한 것, 또는 밤과 낮이 하나된 상태이다.

(엡 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하심이라)
(계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은 상대적으로 대립된 것을 영원적으로 초월한 것으로서,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 <거룩>의 극치(極致)이며 유일하고 완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거룩>은 영원성과 절대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영원한 실유와 더불어 신성에 수반(隨伴)하는 신적 특유성(特有性)이다.

  2.  피조물의 거룩에 대한 속성이다.

  피조물에 대한 <거룩>의 속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하게 언급될 수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두 가지로 요악된다.
하나는 상대성이며 다른 하나는 은혜성이다.

  첫째,   상대성이다.

  상대성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물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기 않고 다른 사물과 의존적 관계를 지니고 있는 성질이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자면, 상대성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속성에 유한적으로 내재되어 구별되는 속성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상대성과 절대성이 각각 분리된 상태가 아니라, 상대성이 절대성에게 유한적으로 내재하여 있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성이 절대성에게 유한적으로 내재하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거룩>은  그 자체 안에 비교 상대가 있어서 서로는 물론, 하나님의 <거룩>에 의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이 피조물에게 부여되었을 때는 상대적이고 의존적인 <거룩>이 되기 때문이다.

(레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따라서 영원한 것으로부터 시간과 공간과 형상화된 피조물은 스스로 <거룩>에 이를 수 없다.   곧 하나님의 <거룩>에 의존하지 않고는 절대로 피조물 스스로의 능력으로 거룩하여 질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과 형상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거룩한 시간과 공간과 형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이들 피조물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거룩>안에 내재하여 거룩한 시간과 공간과 형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은혜성이다.

  은혜성은 일반적으로  자연이나 타인에게서 받는 고마운 혜택과 같은 성질이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자면, 여기서 언급하는 은혜성은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조건 없이 거저 베풀어 주시는 혜택과 같은 속성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은혜성은 피조물 스스로의 노력의 대가나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의 기쁘신 뜻에 따라 사랑으로 부여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거룩함은 인본주의적인 도덕적 윤리행위와 무관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부여 받는다.  
그러나 성도의 거룩한 생활은 그 심령에 내주 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성도 생활의 열매를 성령의 열매라고 일컫는 것이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그러므로 영원한 것으로부터 시간과 공간과 형상화 되어진 피조물의 <거룩>은 대가성이 없는 것이며 전적으로 주권적인 사랑에 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피조물의 <거룩>은 상대성과 은혜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절대적인 하나님의 <거룩>에 의하여 부여(附與)되는 신적 특유성이다.

Ⅵ.  맺는 말

  지금까지 <거룩>이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에 대한 해답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찾아보았다. 매우 까다롭고 어려운 주제였으나, <거룩>에 대한 어의와 정의를 비롯하여 그에 대한 구분과 속성들에 대하여 차례로 알아보았다.
이 외에도 본 주제에 대한 해답이 다른 측면에서 더 충분하게 고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 글에서는 <거룩>에 대한 핵심적인 내용들만을 골라서 대략적으로 고찰하여 본 것이다.

그 결과, 다음의 몇 가지 사항들을 본 주제에 대한 해답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1.  <거룩>이 종교적인 특수한 절대용어라는 것이다.

<거룩>이라는 말은 원칙적으로 오직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되는 절대용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외에 다른 무엇에게도 <거룩>이 라는 말을 사용하거나 붙이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편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종교와 관련이 되어서 사용되는 사실도 있다.  이는 우상을 숭배하는 무속종교도 종교라는 측면에서 그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피조물을 신격화(神格化)하여 거룩한 존재로 숭배하는 것이 무속종교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상은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서, 그것은 절대자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그와 관련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대상에게 <거룩>이라는 절대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며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거룩>이라는 말은 오직 절대자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다.

  2. <거룩>이 절대적인 신적 본질과 가치라는 것이다.

  <거룩>이라는 것은 절대자 하나님의 신적인 본질이며 가치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절대자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본질과 가치 이외에는 거룩한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사들이나 성도는 거룩한 것을 만들어 보거나 이루어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예를 들면, 소위 성의(聖衣) 공 거룩한 옷과 성구(聖具 ) 공 거룩한 가구를 만들거나, 거룩한 인간이 되려고 소위 영성훈련 공 영적인 수련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이는 그들 나름대로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노력하여 만들거나 이루어 놓은 것들은 그 자체가 절대자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을 거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거룩>이라는 말은 오직 절대자 하나님의 신적인 본질과 가치에 대해서만 사용하여야 한다.

  3.  <거룩>이 하나님과 피조물의 것이 있다는 것이다.

  <거룩>은 하나님의 것과 피조물의 것이 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과 관련된 시간이나 공간이나 형상 들을 구별하여 거룩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거룩>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히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자기 스스로가 시(時). 공(空). 형(形)을 초월하신 영원한 <거룩>의 본체이심을 보여주셨다.  따라서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택자만을 성도 곧 거룩한 무리라고 칭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 공. 형을 영원적으로 초월한 그리스도의 몸된 신령한 교회외에 어떤 시간 또는 날과 달을 비롯하여 공간이나 형상에 대하여 거룩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토요일 또는 일요일 성일 곧 거룩한 날이라든가, 기도원이 있는 산을 성산 곧 거룩한 산이라든가, 교회당을 성당 또는 성전 곧 거룩한 집이라든가 하는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행위가 된다.

  4.  <거룩>이 하나님의 신적인 특유성이라는 것이다.

  <거룩>은 절대자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신적인 특유한 성질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절대자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신적인 특유성 이외에는 거룩한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보편성과 상대성을 지니고 있는 피조계에 속한 것들을 특유성을 지닌 거룩한 것으로 바꾸어 변화시켜 보려고 애를 쓴다.  
예를 들면, 어떤 특정한 형상을 만들어 소위 성상(聖像) 공 거룩한 형상이 되게 하고, 또는 특정한 개인을 세워 성자(聖者)가 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가 인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식(假飾)과 과장(誇張)으로 얼룩진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이다.  이는 모두가 비성경적인 것이며 하나님께 불경스러운 것들이다.  그러므로 <거룩>은 영원성과 절대성과 같은 특유한 성질을 지니고 계신 하나님만의 소유다.  따라서 택함을 받은 자들도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성령과 함께 <거룩>을 부여 받아서 거룩한 백성이 된다.

(살후 2:13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그래서 성도의 거룩함도 인본주의적인 도덕적 윤리행위와 무관하게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로 부여 받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거룩한 생활은 그 심령에 내재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성도 생활의 열매를 성령의 열매라고 일컫는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계 4:8)

출처 : 자료바구니(기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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