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신학

[스크랩] 선교의 개념에 대한 이해

하나님아들 2017. 1. 22. 22:13

 선교의 개념에 대한 이해


 

 


- 각 선교대회를 중심으로-

 

Ⅰ. 들어가는 말

1910년 에딘버러 대회를 기점으로 선교에 관한 교회의 일치와 연합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에딘버러 대회는 상설위원회를 두었고 이는 1921년 국제 선교사협회(IMC)결성되고 정보센터로써 국내선교와 기독교 연합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국제선교사협회는 1928년 예루살렘대회, 1938년 마드라스대회, 1947년 휘트비대회, 1952년 윌링겐 대회 1958년 가나대회를 이어 오면서 선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1961년 국제선교사협회와 WCC 연합하여 하나의 대회(WCC)로 되었고 1968년에는 멕시코에서 세계선교와 복음 전도위원회(CWME) 대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WCC와 CWME는 계속적으로 대회를 열어가면서 선교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는데 에큐메니칼 진영은 전통적으로 인식되어온 선교에 대한 개념에 대하여 재해석을 하게 되면서 상당한 논란을 가져오고 혼돈스러운 모습을 나타냈다. 이에 복음주의 선교단체가 예큐메니칼 진영에 반대하여 결성되었는데, 1966년 베를린 대회가 그것이다. 이후 복음주의 진영은 복음주의 선교신학을 만들고 본래의 선교적 사명을 지키고 WCC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자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예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 진영의 주장에 차이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용어들에 대한 문제이었고 신학적 해석의 차이였다. 이에 본 소논고는 양진영의 선교 신학적 차이를 비교하여 선교에 관한 이해를 깊이하고 오늘날의 선교 그리고 21세기의 선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살피고자 함이다.

Ⅱ.선교에 관한 논쟁

1. 에큐메니칼의 선교에 대한 해석

1) 에딘버러대회(1910)

에딘버러대회는 신학적인 정의를 내리거나, 신학적인 성과를 얻는 것에 치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복음의 역사와 세계 여러 곳의 많은 증거들로 인해 세계 복음화는 당연한 명령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고, 이 대회를 개최하기 전 미리 교리적인 문제들에 관한 어떠한 토론 및 논쟁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점에 동의를 했었기 때문이다. 이 대회의 과제는 세계 복음화를 위한 전략을 개발하고, 지역 상황의 특색을 기록하고, 미정복 지역을 점령하고, 선교의 역량을 재조정 재배치하고 증가하는 잭임을 서로 나누는 것이었다. 선교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과 교회의 선교의 의무 그리고 세상은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 있어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대회였다. 이러한 입장이 당연시되면서 이 대회는 기독교 세계에서 비기독교 세계로 선교가 진행하는 운동으로 보았고 그것의 미래는 낙관적이라는 믿음이 이 대회를 특징지었다. 하지만 이 대회는 지나치게 서구기독교와 문명의 우월성이 그대로 수용되어진 채로 진행되어 비기독교세계에 대한 이해도 그 수준이었다.

2) 예루살렘대회(1928)

제임스 에이 쉐르는 1928년 예루살렘대회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절대적 가치에 대한 회의와 물질주의의 등장으로 에딘버러의 확신과 선교적 비전은 희생되었다." 에딘버러대회와 예루살렘대회 사이에는 세계1차대전과 러시아혁명(1917)이 일어났고 이로 인하여 에딘버러의 확신과 자신감은 깨어져 버린 것이었다. 서구인들 속에 예수그리스도가 없다고 보여진 결정적 시기였다.

이 대회는 선교의 동기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무가 강조되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는 봉사, 책임, 희생의 상징이 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나누기 위한 의도여야 한다고 보았다. 다음의 글이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외면 할 수 없는 진실한 동기는 우리의 마음을 바친 하나님 안에, 그의 마음 안 에 그리고 그의 성품 안에 놓여있다, 하나님은 사랑이므로 그의 본래적 성격은 주는데 있다....그리스도와의 교제로 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들 속에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하나님을 권하고자 하는 지배적인 충동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예루살렘대회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영적 차원에서 벗어나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관계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과 함께 종합적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접근이 요청된 대회였다. 즉, 선교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직무로부터 출발하였고, 이는 선교사는 이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의 종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에딘버러와 달리 예루살렘은 복음의 사회적 차원에 분명한 관심을 두었고, 이러한 관심은 단지 값싼 '사회복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결과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므로 선교부들이 보건 교육 및 일반 영역에서 한 일은 선교에 '도움을 주는 것'에 그 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참 선교였다고 보았다. 그리스도는 전인적 삶의 주님으로 고백되었다.

예루살렘대회의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었다.

"그리스도가 그 동기이기 때문에 기독교 선교활동의 궁극은 그 동기와 일치도어야 한다. 종극은 살아 계신 구주 그리스도의 교제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또 거룩한 사회에서 삶을 함께 나누는 것을 통하여 개인들 사회들 그리고 민족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닮은 성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데비드 보쉬는 이렇게 평가한다. "그러나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는 불확실한 채로 계속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모습에 대하여도 똑같이 불확실하였다. 예루살렘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던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기대와 소망" 그 이상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3) 탐바람(1938)

1938년의 마드라스 회의의 주요문제는 '선교는 어디서부터? 라는 것이었다

라고 앤더슨은 말하지만 베이비드보쉬는 예언자적 직분의 "증거"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 시기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와 독재집권의 배경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독일의 국가 사회주의, 이탈리아의 독재 국가 사회주의,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 일본의 신도주의가 그것들이라고 말한다.

이대회의 선교동기는 제임스 에이 쉐르에 의하면 "이 때부터 교회 그 자체의 공기와 동일시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교회라는 다섯 분과의 주주제로 표현되었는데, 신앙과 그 신앙에 의산 교회의 삶, 교회의 증거, 교회생활, 교회와 그 환경, 교회의 연합과 협동 문제 등이다. 따라서 탐바람대회는 교회 중심적 선교를 내세웠고 선교지의 교회를 선교 사역의 핵심이 되었다. 이는 편협한 교파주의에 대해 벗어나는 것이었고 교회는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하여 세워진 거룩한 집회로서 그의 뜻을 이 세계에서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대회의 선교의 목적은 교회의 신앙을 증거 하는 것이었다. 이때 핸드릭 크래머는 교회 보편성에 대한 신앙을 재 소유하도록 도전을 주었는데, 성경은 단순한 종교적 진리를 모음 책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기록이고 교회의 삶 과 가르침의 기준이라고 선언했다.

4)윗트비대회(1947)

윗트비 대회는 종말론적 성격이 강했다. 우른에 의하면 종말론적 꿈은 '기대와 전도'라는 형태를 갖게 해주었다고 말한다. 미래는 기다리는 시기 즉 그리스도가 온 것과 이제 올 때까지의 시기를 포함하여 결코 텅 빈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불완전한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로 가득한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교회의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하여 방향이 잡혀있었다.

그리고 윗트비의 영향으로 사도의 신학이 화란 선교 신학에서 전개되게 하였는데, 이것은 교회중심의 선교라는 탐바람의 특징에 더하여 선교중심의 교회라는 개념을 등장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호켄다이크의 "독일 선교학에서의 교회와 국가"에서 교회는 선교 자체이기 때문에 사도적 계승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사도 됨은 사도직분으로써 나타나는 결과이다. 선교는 그에게 있어서 교회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선교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세계사이에서 이 두 가지 영역 안에 다 참여하는 가운데 이둘을 서로 연결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참여가 이루어 졌을 때 보여지는 모습을 샬롬이라고 표현하였고 이 개념은 구원론적 이기보다는 윤리적인 것이었다.

5) 윌링겐 대회(1952)

윌링겐의 주제는 '교회의 선교적 의무'였다. 그러나 윌링겐의 보고서는 주제를 따르지 않고 "십자가를 진 선교(Mission under the Cross,1953)"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나왔다. 이 대회에서 선교신학의 출발점은 교회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시에게서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선교는 교회론에 근거해서는 안되고 기독론에서 그 기초를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윌링겐은 특별히 선교의 근거로 삼위 일체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에다 선교의 근거를 잡아매려는 것이, 처음으로 윌링겐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하튼슈타인이 이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만이 선교의 주체자임을 확신하는 의미에서였다. 우리의 선교를 위한 주도권을 그것이 교회의 선교이든 선교적 교회이든지 간에 하나님만이 가지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주관함 안에서만 선교는 진정으로 선교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호켄다이크는 "흩어지는 교회"라는 논문에서 '교회는 선교의 한 기능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탐바람을 뒤집었다. 그에 의하면 선교의 중심은 세계이지 교회가 아니다. 온 세계가 하나님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에 의하면 전통선교의 문제는 첫째, 교파중심의 선교, 둘째, 개인구원 위주의 교회개척선교로서 빈약하고 폐쇄적인 선교의 모습이라고 비판하면서 세계의 교회화와 전도는 동일하지 않고 오히려 최악의 적이 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교회화가 선교의 목표가 아니고 샬롬 이었다.

호켄다이크는 샬롬의 선교에 대하여 첫째, 샬롬의 선포로서 Kerygma, 둘째, 샬롬을 가진 사람들의 Koinonia, 셋째, 샬롬을 가진 표지로써 Diakonia 즉, K.K.D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윌링겐 대회 이후의 시기에는 하나님의 선교의 개념이 점차로 그 의미를 달리하게 되었다. 이 변환된 개념은 교회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이 세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감추어진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되었고, 또한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게되었다. 이러한 개념의 전환은 역사와 구원역사에 대한 관계성의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윌링겐 대회에 대하여 제임스 에이 쉐르는 이렇게 비평한다.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재 강조했으나, 성경에 근거한 선교 명령에 대한 진술이 없었다. 삼위일체 주의와 기독론 중심 주의와 교회중심 사이에서 갈등이 있었다. 윌링겐 대회는 첫째, 우리의 선교운동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그 근원이 있다고도 말하면서, 둘째,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선교라고도 했으며, 셋째, 교회는 세상 선교를 위해 주어졌다고 말했다.

6) 가나대회(1958)

가나대회는 1948년 조직된 세계교회협의회(WCC)와 국제선교협의회(IMC)의 통합을 준비하기 위해서 모인 대회였다.

2. W.C.C의 선교에 대한 해석

1) 뉴델리대회(1961)

뉴델리 대회는 세계교회협의회와 국제선교협의회가 합하여진 대회였고, 이것은 세계교회협의회의 한 분과 위원회와 세계선교와 전도분과 위원회(CWME)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러한 계기에서 선교의 목적은 '온세 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 끝까지 선포하여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 대회에서 요셉 씨틀러는 에큐메니칼 논쟁에 '우주적 그리스도의 개념'을 소개했다. 그는 골 1:15-29절에 근거하여 창조와 속죄의 관계를 더욱 가까이 하고자 하였다. 즉 속죄를 창조처럼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해석의 결과는 곧 하나님이 세계역사 안의 모든 면에서 활동하고 계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원칙적인 면에서 교회와 세계 사이에 차이점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2년 후 세계선교와 전도분과 위원회(CWME)의 첫 대회가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서 선교가 교회의 본질이라면 선교는 서구를 포함하여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이다 즉 교회가 위치하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 선교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멕시코 대회는 이러한 이해를 표현하는 주제를 내 걸었다. 그 것은 "육대륙 안에 선교(Mission in six continent)"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선교는 더 이상 이교도들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교도들은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교회가 선교하는 터전을 포기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데이비드 보쉬는 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장점과 단점에 대하여 말한다. 먼저 장점으로 첫째, 교회로 하여금 그 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하여 선교적 소명을 의식하게 한다. 둘째, 세계 전체를 선교적 차원으로 강조한다. 셋째, 이것은 고리타분하고 낡은 것이 되어버린 보호주의적인 구조를 없애주는 데 도움을 준다. 넷째, 이것은 선교에 있어서 전통적인 일방통행의 사고방식을 문제시하며 이와 마찬가지로 서구의 선교 독점의식과 자만하는 점을 또한 문제시한다.

단점으로는 교회가 항상 선교적 위치에 있다는 당연한 견해는 어떤 특정한 배경에서는 매우 근시안적으로 즉 자기 교회의 가까운 곳만 보게 한다는 문제를 가진다. 랄프 윈터의 지적처럼 모든 비기독교인의 인구84%가 복음화 가능 범위를 넘어서 살고 있다는 것을 교회가 잊어버리고 있는데, 이는 비기독교 인들이 세계 어떤 곳에서는 어떤 민족 또는 전통적 교회 테두리밖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육대륙 안에 선교'의 구호는 지리적 그리고 사회 정치적 차원이란 면만 치우쳐 강조했고 서구적 사고이다.

2) 웁살라 대회(1968)

웁살라 대회의 선교의 목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간성형성 New Huminity), 회복. 창조"였다. 이는 비인간화에 대한 현사을 극복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이때 사회정의에 대한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제기 되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선교의 개념 문제가 양극화되었다.

이에 대하여 맥가브란은 웁살라 대회를 비판하기를 다음과 같은 말로써 표현하였다.

"Will uppsala beatray 2billions?"(웁살라는 20억을 외면할 것인가?)

웁살라 대회는 20억의 비기독교 인들에 대한 구원의 언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A. Glasser는 세속화된 복음으로 교회의 선교를 사회 정치적 행동주의로 축소시켰다라고 웁살라를 비판하였다.

또 Jhon Sttot는 이렇게 말하였다.

" 사람의 빈곤, 기아에 대한 관심은 정당하다. 그러나 에루살렘성을 보시고우셨던 예수님의 눈물이 웁살라에서는 없었다. 영적 빈곤과 기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불균형적인 모습이었다.

수직적 차원을 상실한 기독교는 소금의 맛을 잃을 것이고 세상에서 쓸데없는 것이다. 동시에 수직적 차원을 책임 회피를 위한 구실로 삼으면 성육신에 나타난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한 것이다.

웁살라 대회가 극좌로 나가게 된 것은 무엇인가? "1968년회고 특집"으로 나온 1988년 4월호 Time지에 의하면 당시에 과격한 학생데모가 일본 미국 유럽에서 진행되었는데,. 이것은 일체의 기성화 된 것에 대하여 부정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나이로비(1975)

나이로비대회에서 선교란 "the whole church bringing the whole gosple to the whole person in the whole world"라고 정의했다. 즉 holistic Mission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 대회에서 에큐메니칼 진영이 약화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교회는 선교는 부분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선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선교는 'a partial'이 아니고 'primary(우선적인)'것이 라는 것이다. 둘째, 로잔대회(1974)에서 에큐메니칼 진영에 동조하지 않는 세력이 많다는 것이 보여졌기 때문이다.

이 대회에서 등장한 'Whole Gosple'은 무엇인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와 선포, 죄와 용서, 하나님의 은총의 제공,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회개에로의 초청, 하나님 교회의 친교에로의 모음,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과 행위를 증거 하라는 명령,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를 위한 노력에 동참하는 책임, 인간의 온전성을 저해하는 일체를 배겨하는 책임. 그리고 그것들의 수용에 의한 헌신이다.

'Whole Person'은 복음이 말하는 인간의 필요가 충족된 인간을 의미하고, 'Whole World'는 모든 사람, 인종 대륙 사회, 지리, 문화. 개념을 포함한다. 'Whole Church'는 교회의 모든 자산 자원 인력 재정.. 등을 뜻한다. 그래서 총력을 다하여 전세계에 복음을 전파하여 'Whole Person'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이로비는 복음주의로 돌아온 대회였다.(서정운).

4) 방콕대회(1973)

CWME 방콕대회는 "오늘의 세계에 있어서 구원"(Salvation day)이라는 주제로 열렸는데, 이 주제는 교회와 세계의 긴장 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사람들은 평화의 위협을 보았고, 부유한 산업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간격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 인식되었다. 제3세계 대표자들은 선교를 통해 그들의 나라로 들어오는 서방 외국 세력의 현저한 증대에 저항하였고, 모라토리움(Moratorium) 즉 한시적 선교 활동 중지를 요구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에서 공통적인 분모를 찾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1974년 로잔 대회(Lausanne) 이후에 "복음주의"(Evangelikalen)의 강력한 집단이 형성되고 그들 자신의 길을 걷게 되었다. 선교의 영적, 초자연적, 수직적 양상이 방콕 대회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많은 이들은 선교의 수평적 양상이 너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는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5) 멜보른 대회(1980)

1980년 멜버른(Melbourne) 협의회는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 개념으로 특징 지워 진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방콕 대회에 대한 의식적인 수정이며 동시에 방콕 대회의 연장이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선교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역설되었다. 이 대회는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성찬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위기가 또한 교회에도 관계 있다는 것과, 불의와 착취가 교회로 하여금 "복음(Gute Nachricht)은 특히 가난한 자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보여주었다. 이 대회에는 복음주의 성향의 대표자들도 참석하였는데, 이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강조점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멜버른 대회에 잇달아 태국의 파타야(Pattaya)에서 개최된 복음주의 협의회에서는 반대되는 견해들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났다.

6) 산 안토니오대회(1989)

1989년 미국의 산 안토니오(San Antonio) 협의회는 "후기 세속화 시대"(nach-sakularen Ara)의 선교를 모색하였다.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이 60년대 자기 견해를 수정하여 "세속 사회의 신화"를 비판한 것에 동의하는 산 안토니오 협의회는 세속 산업 문화의 위기에서 선교의 새로운 신뢰성을 추구하는 문제를 다루며, 창조의 보전을 위한 선교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기독교 선교적 증언은 세상의 권세에 대한 저항과 창조적인 반대 세력이 되어야 함을 제창하였다. 문화와 관련하여서 "문화적 불복종"과 "민간 종교성"의 선교적 역할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획일화된 과학 기술적인 세계로 통일되는 문화에 대한 신학적인 도전과 "가난한 자들의 문화"에 있는 저항의 잠재력에 대한 선교 신학적인 평가가 문화에 대한 중요한 논의의 주제였다.

3.복음주의의 선교에 대한 해석

복음주의는 1910년 에딘버러대회 때부터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다가 1917년 교단 소속이 아닌 선교회(faith mission)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1917년 3월13일 IFMA(The Interdenomiational Foreign Mission Association)를 창설하여 예큐메니칼적인 선교신학과 활동을 견제해 왔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단체로 EFMA(The Evangelical Foreign Mission Association)가 NAE(The National Association of Enangalicals)를 모태로 1954년 형성되어 IFMAdhk 비슷한 선교관을 가지고 선교협의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IMC나 CWME 선교신학이나 활동에 대응하여 보수적인 교회와 선교회의 입장을 조성하고 대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개별적으로 에큐메니칼 선교관에 대해 비판과 수정을 시도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1950년대 호켄다이크에 대한 맥가브란의 비판과 그후의 논쟁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1)베를린대회(1966)

이 대회는 빌리그레이함과 칼 헨리의 중심으로 주도되었고,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교회와 선교회들의 최초의 주목 할 만한 선교대회였다. 이 대회의 주제는 "한 인종, 한 복음, 한 임무"였다. 이 대회는 무디와 학생 자원운동(S.V.M)의 구호였던 "이 세대에 세계 복음화"라는 환상과 정열에로 회귀를 의도하고 있었는데, 이유는 에딘버라대회 이후 에큐메니칼 진영 주도의 세계선교가 위대한 세기를 창출했던 무디의 신앙정신이나 학생자원운동의 환상과 정열을 잃고 지나치게 사회구원의 강조로 이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대회는 한 인종(one race)이라는 말로 모든 인종적 편견과 장애를 그리스도 안에서 초월하려고 했고, 한 복음(One Gospel)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속죄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구원의 복음전파를 공동적인 '한 임무(One Task)로 정리 한 것이다.

특히 전도에 대하 명백한 정의를 시도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도는 정 죄 받고 잃어버린 바 된 죄인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을 믿도록 설득할 목적으로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인류의 유일한 구속자이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삶의 모든 영역의 주로서 그리스도를 그의 몸 된 교회의 친교 속에서, 영광으로 오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섬기도록 하는 것이다."

선교의 동기에 있어서도"명령에 대한 순종"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교회가 복음호의 중심으로 성령의 생생한 임재와 권능의 체험은 교회가 하는 것이며 사도들이 인계한 메시지도 교호에 속하여있음을 천명하였다.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의 전도가 핵심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존 스토트는 이 때 이렇게 말하였다. "'전도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이 대회는 세상을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으로 변화시키는 형태의 선교관을 거부하였다. 그러한 선교관은 복음을 현세적인 윤리체계로 전락시키고 핵심적인 요소인 종말론적인 특징을 제거할 여지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즉 선교를 기본적으로 사회 재건처럼 여기고 전도를 그 같은 목표달성을 위한 우선적인 도구로 격하시킬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윌링겐 대회(1952)이후 하나님의 선교 사상도 거부하여, 베를린 대회에서 이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사역적인 선교관 대신에 그리스도중심의 선교관을 주장했다. 전도가 하나님 구속사역의 핵심이며 전도를 통해서 예수의 위대한 예언자적 환상도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 대회는 상기한 바와 같이 성경적 전도 개념을 확립하기 위하여 모였고, 둘째, 기독교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회였으며, 현대 상황에 대하여 적합한 전도 방법을 모색하는 대회였고, 전도의 장애물에 대한 연구를 한 대회였다.

2) 로잔대회(1974)

복음주의 자들의 모임으로써는 가장 중요한 대회인 로잔 대회는 150개국 130교파, 2743명 이중에 1200명이 비백인이 함께 참석한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정통주의 자들의 큰 변화가 일어난다.

존 스토트는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를 사랑하는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고 간주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위대한 위임은 위대한 계명을 설명하지도, 고갈시키지도, 대신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하는 일은 이웃 사랑과 이웃 봉사의 요구에 대하여 새롭고 긴급한 기독교의 차원을 부가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지상명령 만을 생각하던 주장에서 전도뿐만 아니라 문화적 위임까지도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고 전환되는 대회였다.

존 스토트는 선교는 전도와 사회책임의 불가분리를 주장하면서 사회행동은 전도의 동역자로 보았다. 동역관계로 양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며 독립적이며 어느 한 쪽도 수단이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한다 각기 자체의 목적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회는 전도가 우선이라고 보았다. 한편 데이비드 보쉬는 전도와 선교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포괄적으로 정리 발표하기도 하였다.

4. 통전적 선교

데이비드 보쉬는 복음주의적 선교관이 약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이원논적인 사고 방식에 사로 잡혀있다. 그래서 그 주요 관심사항이 영혼. 구원. 저세상 중심이고 사회봉사는 선택적이었다. 둘째, 생활과 교리의 불일치가 심화되었다. 전통과 교리는 중요시하면서 생활은 덜 중요시한다. 셋째, 편협한 혹은 선택적인 보수주의 경향이 강하다.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이해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세상의 명예, 유행, 제물, 권세에 더 연연해한다는 것이다. 즉 보수를 강조하면서도 자기 유익에 더 밝다. 넷째, 교회와 세계에 대해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의식이 약하다.

반면에 사회선교신학의 약점도 있다. 첫째, 구제에서 선교혁명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복음적이지 않다. 둘째, 회심이 약화되고, 종말론적 의식이 약하고, 인간의 판단과 경혐을 과대 평가한다. 셋째, 교회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넷째, 구원의 한계성이 있는데 이는 영혼구원은 약화되고 육체적 구원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넷째, 특정한 신학에 쉽게 몰두 한다. 유행하고 있는 신학에 입각하여 다른 신학과 교회를 판단한다.

이에 반하여 통전적 선교신학은 에큐메니칼 진영과 복음주의적 진영의 주장들이 수정의 과정을 거쳐서 양 진영이 어느 정도 통전적인 노선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통전적인 모습은 나이로비 대회 때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이다. 이때 제기된 구호가 "온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선교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보수적인 선교신학자들도 로잔 대회 이후부터 전도와 사회 참여를 양분하는 이원적인 이해를 극복하였다. 존 스토트는 전통적인 선교관을 확대시켜 선교는 전도와 사회봉사를 합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1966년 베를린에서의 자기 주장을 수정하였다.

이러한 통전적 사고로의 전환은 '우리의 선교신학'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되어지고 있는 미완성이라는 관점이 서로에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마치 신학의 정수를 다 이룬 것처럼 행동하여 왔던 바 자신들의 견해만을 지키고자 하였던 것이고, 자유주의 진영은 새로운 독창성이라는 이름 하에 무책임하게 행동하여왔던 것이다. 따라서 통전적 선교는 비판적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다 이루지 못하였기에 비판하여 취사 선택하여 종합하는 것이고 적용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전적 선교란 전도와 양육과 봉사와 교제가 다 포함되는 것이다. 이것은 지리에 관계없이 동일문화 권에서, 유사 문화권에서 , 그리고 타문화권에서 행하는 모든 것 즉 전도와 양육과 봉사와 교제가 곧 선교가 되는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세상에 보내시어 하게 하시는 모든 것이다. 여기에서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선교의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생성되고 성장하는 기구이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도구이다. 그 목표는 세계의 복음화이다.

Ⅲ. 나오는 말

21세기는 어떤 상황으로 교회를 몰고 갈 것인가? 미래의 상황은 불확실하다. 새천년의 세기는 고도의 기술 산업 혁명과 정보사회가 되고 새로운 우주관과 과학의 발달이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보고있다. 이러한 미래적 상황은 교회로 하여금 현재와는 다른 모습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그리고 자연적 인구의 증가로 비기독교의 세계는 더 많아 질 것이다.

이러한 미래적 상황은 교회로 하여금 미래를 결코 낙관적으로 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러한 상황은 교회로 하여금 어떤 자세로 선교적 과제에 임하게 하는 것인가? 교회는 두 가지 당면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미래의 상황은 교회의 정체성에 대하여 더욱 회의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에 따른 교회의 생존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회의 정체성이 위협받을 상황 속에서의 교회의 선교는 무엇이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는 두 가지 문제에 답을 함에 있어서 분명한 것은 초대교회적인 신앙의 확고한 정체성이 없이는 교회는 흔들릴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이것은 미래의 사회는 태우는 불처럼 기초가 없는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릴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미래 사회는 교회로 하여금 지금보다 더 분명하게 그 정체성을 요구 할 것이며, 이는 교회로 하여금 애매 모호한 신앙고백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점은 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 할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헌신이 없이는 개교회는 쇠퇴 할 것이다. 지교회는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과 복음화를 위한 열정이 없는 교회는 존재하기 위해 급급해 하는 기관으로 전락 할 것이다. 미래의 사회는 더욱더 강하고 영성 깊은 선교적 준비를 요청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이루어 가면서 선교는 다양한 형태로 전개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선교는 교회로 하여금 헌신을 요구 할 것이다. 즉 편협한 개교회 유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사역에로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 부르심의 방향은 통전적 선교에로의 헌신과 사랑의 실천 일 것이다. 이러한 헌신의 길에 교회는 응답하여야 한다. 그 응답은 교회마다 다르게 나타내 질 것이다. 세계를 향한 증거는 이러한 모습과 헌신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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