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데르 툰의 책은 일전에 소개한 바 있는데, 신명기를 연구하면서 그 편집과정을 추적하는 과정이 상당히 설득적이며 탁월한 것 같다. 사실 대부분의 연구들은 풀어내기 어려운 신명기의 (혹은 다른 책에서도 그러하지만) 상충하고 일관성이 부족한 내용들을 '중요한'(?) 제목들로 '선별'함으로써 해결하는 것 같다. 예언자와 관련해서, 18:15에서는 '나(모세)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34:10에서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일어나지 못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단순하게 모세의 전적인 우월성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으나,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또한 심판과 구원의 시소타기 읽기(29, 30장)에 대해서도, 독자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은 감정의 심한 기복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헛갈린다.
고대문헌과 비교를 통해서, 그리고 성서 자체의 본문 연구를 통해서, 성서의 형성은 서기관들의 지속적인 '기록축적'의 역사라는 것을 주장하는 반 데르 툰은, 바로 신명기를 실례로 들었다. 신명기는 4번의 편집과정을 거쳤다.
기존의 연구는 문체와 어휘의 차이점에 집중하였다. 즉, 단수형과 복수형의 차이(12장)에서 편집의 흔적을 찾으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반 데르 툰은 '관점'의 차이에 주목하였다. 즉, 새로운 자료가 더하여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동기)에서 새로운 이해를 반영한 것을 편집과정에서 찾으려한 것이다(p.150). 그러한 편집과정은 처음과 끝에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고바벨론(1700년)의 판본이 표준판(1100년)에서 새로운 시작부분과 끝부분을 첨가하고 있는 점을 든 것이다.
반 데르 툰은 4단계의 판본을 주장한다. 계약판본, 토라판본, 역사판본, 그리고 지혜판본이다. 결론적으로, 다음의 표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절은 MT를 말한다).
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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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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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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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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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28: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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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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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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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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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8-68 |
29장 |
2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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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
1:1 |
1-3장 |
6-11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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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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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4장 |
34:10-12 | ||||
W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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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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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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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약판본(covenant edition)
소위 원신명기(Urdeuteronomium)라고 부르는 부분으로, 왕하 23:2; 23:21에 '언약책'(셰페르 하베리트)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의 내용이 신 12-26장과 상당히 유사하다. 계약판본의 시작과 끝은 4:45과 28:69에서 찾아낼 수 있다. 4:45은 "계약조항(treaty stipulation)이 이러하다"(엘레 하에두트)로 시작한다. MT는 하에도트이지만, 비평각주를 따르면, 하에두트가 되며 여러 학자들은 계약조항을 인정한다. 콜로폰(colophon, 마지막장에 넣는 부분)은 28:69(한글성서 29:1)로, "언약의 말씀이 이러하다"(엘레 디브레 하베리트)이다. 계약판본은 명확한 제목은 없으나, 조약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 (1) 서언(6:4-9), (2) 조약내용(12:1-16:17,26), (3) 조건적 복/저주선언(28장).
그렇다면, 왜 '조약'의 패턴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 요시야 왕 아래에서 이루어진 (계약을 기반으로 한) 종교개혁(왕하 23:1-3의 언약책)은 모세를 내세우고 있다(28:69). 다시 말해서 역사적 선례를 따르는 것으로 창안해 냈다(invent, p.153). 요시야 개혁은 예루살렘 성전의 야웨제의 중앙화 작업으로, 한 하나님에 한 예배장소를 모토로 잡고 있다. 발견된 책(원신명기)이 개혁의 빌미가 된 것인가? 아니면 결과로써 남은 것인가? 저자는 후자를 선택한다. 12장의 시작은 CE 자체로 창안된 것이다(forgery, 154). 즉, 개혁 이후의 사건을 반영한 것이지,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CE 편집자는 기존의 자료들(royal decree)을 조합한 것이다(그래서 12장에 중복conflation이 발견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CE는 개혁의 pamphlet은 아니었다. CE는 '다양한' 것들까지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예: 제의, 14:3-21). 12:1-16:17이 CE 였을 것이다(결국, CC의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저자는 CE를 'aggiornamento of existing law'(현존하는 율법의 현대화작업)이라고 부른다.
CE의 서기관은, legal scholar 혹은 theologian이지 정치가는 아니라고 보았다. 모세의 권위 아래에서 옛 법을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참조. 국제적(VTE) 조약 장르에 익숙했던 학자라고 할 수 있다.
2. 토라판본(Torah Edition)
토라판본의 제목과 colophon은 4:44과 29:28이다. 4:44에 "율법이 이러하니라"(베조트 하토라)라고 시작하며, 29:28(한글성서 29:29)에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라아소트 에트-콜-디브레 하토라 하조트)로 끝난다.
여기에서는 '율법책'(세폐르 하토라)이란 표현이 등장하며(28:61; 29:20; 30:10), 따라서 모세가 강조되고 있다. 한편, 모세와 율법 혹은 책이 연결되는 다른 성서의 언급은 DH(수 8:31; 23:6; 왕상 2:3)에서 모세의 가르침(토라트 모세)으로, CH(느 13:1; 대하 25:4; 35:12)에서 모세의 책(셰페르 모세)으로 나온다.
토라판본에서 조약(D)은 토라가 된다. 즉, 모세의 가르침으로, 계시되는(갈라흐) 것으로 이해된다. 모세는 특별한 역할이 있다. 5장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서 모세는 '살아서!' 하나님과 말씀을 나누는 독보적인 인물로 소개된다(호렙산, 24절!).
규례와 법도(후킴 베미스파팀)가 이제는 모세의 입(구전)을 통해서 선언된다(5:31). "Moses is the sole human repository!"(p.156). 그런데 '규례와 법도'에 해당하는 고대근동의 관용어구가 있는데, 바벨론에서는 이것을 '주인의 구전지식'(oral lore of the master, 샤/슛 피 움마니)이라고 부르는 것과 일맥 상통한다. 이것은 권위있는 위치를 말하는 특유한 표현이다.
토라판본은 CE에 새로운 해석을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면, 저주문서에 첨가하였다(28:58-68). 이것은 유다의 디아스포라에게 준 것으로(p.157), 이를 통해서 볼 때, 사건 이후의 자료로 이해할 수 있다(ex eventu). 결국 편집자는 포로기 시대의 인물로 보인다(29:27, "오늘날"은 포로기). 따라서, 토라판본에는 회복의 약속이 아직 없다. 포로기 초반일 것이다. CE에 덧붙여진 새로운 해석에는 신명기법조항(Deuteronomic Constitution)을 들 수 있다(16:19-18:22). 이것은 겔 40-48장과 유사한데, 유토피아적 성향을 띈다. 590-570년의 상황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TE는 법전을 공직생활까지 확장한 것으로(16:18-18:22), 정의배교/중앙법/왕/제사장/예언자의 순서로 진행하고 있다. 결국, CE의 개혁문서가 TE에서는 성직자에 의한 신정국가의 천명서로 변한다.
제사장이 중요하게 되었다(17:8-13; 19:17; 21:5). 이들은 왕을 대신한다. 예언자(18:19-22)는 "모세와 같은" 사람으로, 이 말은 계승되고 토라의 교육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할까? 여호야긴(왕)과 예레미야(예언자)를 상정할 수 있다.
한편, TE는 제사장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지만, 다양한 제사장의 직능차이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다시 말해서 포로기 초기의 분열된 상급조직을 생각한다면, 제사장들이라고 해서 일관된 언어만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제사장을 세분화해서, 행정/판사/학자적 제사장 그룹이 이 편집과정을 주도했을 것이며, 그들이 성서 안에서는 '레위인 제사장'으로 소개될 뿐이다.
3. 역사판본(History Edition)
이것은 CE와 TE를 하나로 만든 것이다. 결국 DH를 만들게 된다. DH에서는 CE와 TE의 명확한 구분을 내리지 않고 있다. CE의 '셰페르 하베리트'(왕하 23:2; 23:21)와 TE의 '셰페르 하토라'(왕하 21:18; 22:11)는 구분없이 사용되고 있다.
역사편찬 작업의 일부로 기능한다. 첨가된 부분은 1-3장, 27장, 31-34장이다. 1:1과 34:10-12이 처음과 끝이다.
역시 모세에게 집중하고 있는데, 이젠 '모세와 같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는 수준이다'(이는18:15-18과 대치된다). 과거를 꿈꿀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이스라엘의 죄악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스라엘은 부적합한 대상으로 나타난다. 1-3장에서 40년간의 여정을 회상하면서, 백성들은 일관적으로 부적합한 존재이다(1:12, 26-28, 32, 34-6; 3:26). 오랜 모세 전승에서 백성의 죄와 거역을 다시 재구성하고 있다(31:16-21, 27-29). 참고, 5-11장의 반-이스라엘적인 사상도 HE의 손길을 거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호렙은 거역의 장소인 셈이다(9:7-10:11).
결국, 역사판본은 포로시대에 대한 신정론으로 읽은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한 것이 된다. 이젠 서기관들은 교육자이자, 설교자가 된다.
4. 지혜판본
계약보다는 토라에 기초한 유대인적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은 토라이자 규범(미쯔바)이 된다.
별다른 제목과 colophon없이, 4장과 30장을 삽입하였다. 30:1-5에 포로기에 돌아와 온 세계에 흩어진 현실을 말하고 있는데(4:29-31), 이는 포로기 이후에 불어난 낙관주의의 영향으로 보인다. 메소포타미아의 서기관 전승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페르시아 초기 시대에 바벨론 유대인에 의해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활한 자료를 공급받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적 삶의 우월성에 대해 자각할 것을 요구한다. 이제 유대인들은 세계인이다(cosmoplitan, 4:32,19). 지혜가 부각된다. 지혜는 국제적 가치이기도 한다. 그런데 지혜는 논재의 방식으로 그 빛을 발휘하였다. 따라서 우상숭배를 폄하한다. 그 방법으로 종교적 권위를 내세우기 보다, 지혜로운 논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4:15-35; 4:6//30:11-14).
토라를 수사적 수단으로 적용하고 있는데, 곧 하나님의 마음은 비밀이 아니라고 말한다. 율법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회의주의에 빠지지 말것을 종요한다. 지혜판본은 '가르침'(라마드)을 반복한다(4:1,5,10,14; 여기에서는 복수2인칭에서 단수2인칭으로 변화를 알 수 있다). 결국 서기관은 교사로 변한다. 지혜판본은 교육장치인 셈이다(pedagogical de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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