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 칭 1) 히브리 성경: "웨엘레 쉐모트"(`또...이름들은 이러하니라') "쉐모트"(`이름들')
2) 헬라어 70인경: "엑소도스"(εξδοs: "나간다") (출 19:1)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란 말에 근거함.
3) 라틴어 벌게이트 역: "Exodus"
4) 영어성경과 개역 성경 영어성경은 `Exodus'라고 하였고, 개역 성경은 "출애굽기"라고 하였다. 그러나 출애굽이 이 책의 주요 주제이긴 하지만, 이 책에는 출애굽 사건 외에도 율법과 성막에 관한 많은 언급들이 있으므로 이것이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말해주는 완전한 제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 저자와 기록 연대 오경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출애굽기의 저자는 모세이다. 이는 B.C. 3C경에 실라의 아들 예수가 쓴 `지혜서'(45:5)에 언급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와(막 1:44, 요 7:19-22) 사도들에 의해서도 인정을 받았다(요 1:45). 또한 출애굽기 자체도 이 책이 모세가 썼다는 사실을 즈억하고 있다.-(예)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출 24 :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출 34 : 27).- 출애굽기에는 가끔 모세가 3인칭으로 등장하는 곳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1인칭을 3인칭으로 개체화하는 표현기법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기법은 이사야나 예레미야서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모세의 소명이 기록된 출3장의 내용은 이 책을 쓴 사람이 모세임을 더욱 분명하게 증거해준다.
3. 기록 목적
1) 역사적 목적 가. 야곱의 일가가(약70명)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 (약200만 명)으로까지 성장했는지를 보여준다(이러한 계산은 남자의 수가 60만 명(민1:16)이었다는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때에 하신 언약대로 (430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일에 대해 간증한다(창 15:13-16).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전 우주에 걸친 크신 능력과 주권을 행사하셨다.
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의 백성임을 고백한다. 이 책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 후손들이 언약의 상속자로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2) 교리적 목적 가. 유월절 어린양과 홍해를 건넌 사건을 통해 묘사된 `구속과 구원'의 주제. 나. 거룩한 백성이 언약 백성으로 지켜야 할 율례들. 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창 13:14-,출 3:7-)에 신실하신 하나님.
3) 기독론적 목적: 여러 상징을 통해 그리스도를 계시함. 가. 모세와 그리스도: 모세는 사환으로 그리스도는 아들로 충성하심(신18:15). 나. 유월절양과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유월절양으로 인류를 위해 희생됨(출12:,고전5:7). 다. 성막과 그리스도-성막은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요1:14). 라. 대제사장과 그리스도-그리스도는 인류를 위한 대 제사장이다(히 7:25). 마. 기타: 5대 제사, 7대 절기, 출애굽, 홍해 도하(구원, 세례), 만나 등.
4. 내용 개관
초점 |
구원 |
예배 |
구분 |
노예 생활 1-2 |
모세 소명3-6 |
10대 재앙 7-10 |
유월절
11-12 |
홍해 도하 13-15 |
시내산까지 16-18 |
십계명
19-24 |
성막 설계 25-31 |
우상 숭배 32-34 |
성막 건축 35-40 |
구원의 준비 |
구원을 위한 사역 |
구원 |
훈련 |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준비 |
주제 및 내용 |
노예 생활 하는 이스라엘 |
구속과 하나님의 은총 |
예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
노예생활과 속박 |
구원과 예배 |
율법수여, 성막 건축 |
애굽에서 |
시내 산을 향해 |
시내 산에서 |
장소 |
애굽 |
광야 |
시내 산 |
시간 |
430년 |
2개월 |
10개월 |
B. 내용 연구
* 참고: 애굽 역사 개관
1. 고왕국과 제1 중간기(주전 3000-2133년; 1-10왕조)-제1 황금기와 제1 중간기 주전 3000년에 나르메르가 델타 지역을 통일함으로 최초의 이집트 통일왕국을 건설함. 그 후 제 1-3왕조 기간동안 이집트는 발전을 계속했고 제 4왕조에 이르러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주전 2500년경). 이때는 이집트의 제 1황금기로서 피라밋이 건설된 시기이다. 그러나 이집트는 제 5왕조에 이르러 약해지기 시작하고, 제 6왕조에 이르러 완전히 무력해지고 말았다. 그 후 제 7-10왕조에 이르는 기간은 혼란이 계속되었는데, 이 기간을 제 1중간기라고 부른다.
2. 중왕국과 제2 중간기(주전 2133-1785년; 11-17왕조)-제2 황금기와 제2 중간기 제 11-12왕조의 때에 이집트는 중왕국 시대였다. 이 시기에 이집트는 다시 나라을 통일하고 국경을 확장했다. 이 시기에 이집트는 대규모 토목사업이 벌였고, 국가체제를 정비했다(제 2황금기). 그러나 계속된 13-15왕조는 무력한 왕조였기 때문에 이 기간 중에 이집트는 국력이 매우 쇠약해졌다. 이로 인해 아시아계인 힉소스 민족이 이집트왕을 누르고 왕이되어 제 16-17왕조 기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13-17왕조 기간을 제 2중간기라 부른다.
3. 신왕국(주전 1567년-1080년; 18-25왕조)-제3 황금기와 제3 중간기 제 18왕조부터 20왕조까지의 이집트는 신왕국시대였다. 이때에 이집트는 다시 정치,경제,문화의 각 부분에서 크게 번영했다. 이때에 이집트는 북으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남으로 수단까지 영토를 확장했다(제 3황금기). 그러나 그 후에 계속된 제 21왕조부터 25왕조까지는 다시 국력이 약해졋으며, 이 기간을 제 3중간기라고 부른다.
4. 후기왕조(1080년-30년; 26-31왕조) 제 26-30왕조 기간에 이집트는 이집트 출신의 왕들이 다스렸지만, 국세가 쇠퇴하고 외적의 침공으로 인해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가 제 31왕조에 이르러 페르시아 출신의 왕이 이집트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왕은 알렉산더를 막지 못하여 332년에 헬라에 의해 정복되고 말았다. 알렉산더 사후에 이집트는 프톨레미스 왕조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에 헬라와, 시리아, 그리고 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로 이주하여 살게되었다. 그러다가 주전 30년에 클레오파트라의 자살과 함께 이집트는 로마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때에 이집트는 로마의 옥타비누스 장군이 다스렸다. 그 후 이집트는 다시 부흥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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