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語基礎講解 12講 敎會란 무엇인가
마16:13~20
☞ 교회의 기준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교회란 무엇인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교회론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회론의 개념이 어떠한 것이며 어디서 왔는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 라는 것은 카톨릭의 개념에서 나온 말입니다.
카톨릭이라는 말은 공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되고 있는가 하면....사도신경을 보면 첫째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나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세 번째에 가서 성령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에 가서 ‘거룩한 공회’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사도신경의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거룩한 공회’라고 하는 공교회의 권위를 어디에다가 놓는가 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권위에 놓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성도의 교통이 그 다음에 나오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이 그 다음에 나옵니다. 그런데 죄를 사해준다는 것이 어디에다가 기준을 두고 있는가 하면 공회에다가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리에서 소위 중세에서 유명한 면죄부가 나온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신부들에게 말하는 고해성사가 무엇을 깃점으로 하고 있느냐 하면 죄를 사함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고백하면 사함을 받는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공회의 개념은 지금 우리가 말씀에서 배우는 교회의 개념이 아니라 교황을 중심한 조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잘못된 개념이 개신교에도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신교에서 교회의 권위를 공회의 개념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기독교를 작은 집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교회가 무엇이다라는 것을 성경적으로 분명하게 알고 그 다음에 그 교회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선교사를 파송하고 사역자를 키우는 문제는 별도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이 모이는 것을 나라 혹은 교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모여가지고 이제는 우리가 이 단체를 유지해 나가는데 어떠한 방법으로 해 나가야 할 것이냐, 해서 이루어진 단체가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수단이요 방법이지 교회의 목적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공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공회는 공회고 교회는 교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주교가 공회에 기초를 두고 세워졌기 때문에 교황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죄를 사해 주는 것은 그리스도가 죄를 사해주는 것과 같은 권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공회라는 개념이 그대로 교회라는 탈을 쓰고 그대로 신자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교회 문턱만 넘어가면 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의 자녀다, 왕 같은 제사장이다 라고 하고 착각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착각이 우리를 바로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스데반집사는 광야교회를 말하고 있는데 광야교회는 구원받은 교회입니까, 멸망 받은 교회입니까? 멸망 받은 교회입니다. 신앙생활은 광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광야가 완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들어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키우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교회가 성경을 가르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을 죽이고 야고보를 죽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공회’가 성령과 예수 하나님을 대적한 결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마태복음 16장을 중심으로 해서 알아 볼 것은....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이 인자론에 대한 착각이 굉장히 심합니다.
인자는 누굽니까? 그리스도십니다.
◆ 사람들;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선지자 중에 하나(마16:13)
◆ 너희(베드로);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마16:15)
◆ 율법(무리); 그리스도는 영원히 산다(요12:34)
(요 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요 12: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요 12: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자,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고 그랬는데 어찌하여 너는 십자가에 죽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어야 되는 인자는 누구이고 영원히 계셔야 되는 인자는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시는 것입니다. ‘계시다’라는 말은 mevnw 라는 말인데 요한복음 14, 15, 16장에서 가장 많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임마누엘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입니다.
◆ mevnw (3306) : 메노 → 계신다.
기본동사;(주어진 장소, 상황, 관계 또는 기대 속에서)??????머물다??????, 거하다, 계속하다, 거주하다, 참다, 출석하다, 남아있다, 서다 <요 15:4; 벧전 1:25>동. to remain;
이 동사는 요14,15,16장에 제일 많이 쓰였다.
◆ jEmmanouhvl (1694): 엠마누엘
기원은 히브리어 【6005】;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임마누엘, 그리스도의 이름 <마1:23>고명. Emmanuel;
laeWnM;[ i(6005): 임마누엘
5973과 접미대명사가 삽입된 410에서 유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사야가 말한 메시야의 예표적 이름 임마누엘:-임마누엘
![i(5973): 임
6004에서 유래; 부사, 또는 전치사로 ‘함께(즉, …와 함께), 다양한 적용에서; 특별히 …와 동등히;자주 접두 전치사와 함께 사용:-동반하는, …대하여, 그리고, …×하는 동안은, ~전에, ...곁에, ~(이유)로, ~으로부터, 안에, 같이, 보다 많은, ~의, …으로, 함께
lae(410): 엘
352에서 온 압축형; ‘힘’ 형용사로서 ‘힘센; 특히’전능자(그러나, 또한 어떤‘신성’에도 사용됨):- 하나님(신), x훌륭한, x위대한, 우상, 힘(센 자), 능력, 강한,??????-엘??????이 있는 이름과 비교
lya'(352): 아일
193과 동형에서 유래; 아마‘힘;따라서힘센 것; 특히(정치적) 우두머리(그 힘에서)수양;(강력한 지지물로서)벽기둥,상수리나무,또는 다른 강한 나무 :- 강력한(사람), 윗인 방, 상수리나무, 기둥, 수양, 나무
lWa(193): 울
‘꼬다, 즉 (함축적으로) ’강하다 란 의미의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오그라진) ‘몸;강한:- 힘센, 힘
마태복음 16장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베드로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라”가 무엇이 그리 대단하기에 이것을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그렇게 칭찬하시며 하나님 아버지를 강조하시는가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보면 ‘그리스도’라고 나가서 말하지 말라고 입을 막으시는가?(마16:20)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쓰셨던 부분은 무엇인가 하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라는 말을 함부로 말하면 공회(조직)에서 쫓겨나게 되어있습니다. 요8장, 9장에서도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죽이라’는 내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 때 당시에도 많았던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뿐이신 메시야이므로 그 이름은 함부로 불리워지지 않았던 이름입니다. 그러한 와중에 더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말은 용납될 수가 없는 분위기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 아니라 영원히 계시는 분으로서 처음도 끝도 없는 분이십니다.(히7장에 나오는 멜기세덱) 그런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그 분의 영원하심의 한 점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육을 입고 오신 기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영생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있음으로 그 분과 연결되는 관계가 되지 않으면 영생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존재하면서 생명이 있고,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전 성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서 8:2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가 성령이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은 보혜사 성령이냐 아니냐 하고 떠드는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 한 마리 놓고 어떤 사람은 배를 만져보고 벽이더라 또 어떤 사람은 코를 만져보고는 기둥이더라 라고 하며 떠들어대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문제는 이런 인자의 권위, 하나님의 존재의 권위보다도 교회 혹은 공회라는 조직이 더 권위가 있어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시중에 가면 지금도 그 책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서울예수’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저자가 얘기를 한 것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이 지금 서울 거리에 나타나시면 그분은 무슨 말씀을 하시고 교회는 그분을 어떻게 대할까, 라는 말이 기억이 납니다. 우리 아주 쉽게 생각을 한 번 해 봅시다. 주님이 지금 서울시내에 오셔가지고 주일날 각 교회를 순회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너희들 참 수고하는구나, 잘했다, 너희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라고 채찍을 드시고 쫓아내시겠습니까? 정말로 이 시대 교회가 하나님의 현실적 실존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인간의 이성으로도 할 수 없는 그런 만행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람의 바탕 위에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라는 망언을 하는 집단을 어떻게 교회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반석이 아닙니다. 그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단이라고 책망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를 받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알게 된 사람이 중심이 아니고 그 계시(말씀)가 중심인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원리를 잊고 인간 생각이 중심이 되거나 혈육이 앞서면 사단의 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Pevtro"(4074): 페트로스 → 베드로
기본어인 듯; 바위( 조각; 3037보다 큰 것), 사도이름, 베드로, 2786과 비교 <마 16:16>남명. peter, stone; 바위(조각)
Khfa'"(2786): 켑하스
기원은 아람어 【3710과 비교】;반석, 게바, 베드로의 별명 <요 1:42>고명.
#Ke(3710): 케프
3721에서 유래; 오목한 바위:- 반석
#p'K;(3721): 카파프
기본어근;구부리다:- 굽히다
livqo"(3037): 리도스
기본어인듯;돌(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맷돌, 거침돌 <눅 11:11;롬 9:32>남명.
그러나 반석으로 번역된 단어는
◆pevtra(4073): 페트라 → 반석
4074와 동일어의 여성;바위(더미; 문자적 혹은 상징적으로), 반석 <마 7:24>여명. rock,
Pevtro"가 pevtra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은 사실이나 페트로스가 페트라는 아닙니다.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게바입니다. 다만 페트로스라는 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16절~18까지의 주어는 pevtra이지 Pevtro"가 아닙니다.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페트라
마 7:24절에 첫 머리에 왜 ‘그러므로’ 나오는가 하면....
15절부터 누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거짓선지자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러므로가 나온 것입니다.
그 집을 반석 위에.....이 반석이라는 말이 반석위에다가 집을 지으면 집이 튼튼하고 모래위에다가 지으면 집이 약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본문에서 반석과 모래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이 세상에서 과연 지혜로운 사람이 여럿이 있을 수 있을까요? 오직 한 분 뿐이십니까? 한 분 뿐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 같아지는 것입니다.
(마 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7:26) 나의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위에 세운 어리석은 같이 된다.
◆poievw(4160): 포이에오 → 행하다
폐어가 된 기본어의 연장형인 듯;하다 ,만들다(폭 넓은 적용으로), (외적사물에 대하여)제조하다, 산출하다, 창조하다(상태에 대하여)행하다, 일으키다, 완수하다, 지키다, 실행하다,준수하다, 실천하다, 일하다, 활동하다, 4238과 비교 <눅 3:10; 요 5:11; 계 3:9>동. to make, to do to practice;
pravssw(4238): 프랏소
기본동사; 행하다, 즉 계속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수행하다(따라서 아마 하나의 행위를 지칭하는 4160과는 다름), 함축적으로 실행하다,성취하다,즉 특별히 세금을 징수하다, (개인적으로)요금을 내다<행 26:9; 롬 2:2>동. to do, practice, accomplish;
◆oJmoiovw (3666): 호모이오오 → 같다
3664에서 유래;같게 하다, 즉 비교하다, (수동태)같아지다, 같다(게 하다), 닮다 <마7:24>동. to compare;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 외에는 지혜로운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를 열매를 보고 분별하라는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닮은 성도가 교회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래 위에 세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 같다고 했는데 누구를 닮은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육에 속한 자로서 용을 닮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이 용이 계시록 17장에 가서 음녀와 짝짝꿍이 됩니다.
◆mwrov"(3474): 모로스 → 어리석은
아마 3466의 어간에서 유래;둔한, 또는 어리석은(마치 꽉 막힌), 즉 부주의한, (도덕적으로)얼간이, 불합리한(인것 같다), 바보(스러운, 스러움) <마 25:2>형. stupid;
musthvrion(3466): 뮈스테리온
muo<뮈오>(입을 다물다)의 파생어에서 유래;비밀, 또는 신비(종교의식에 초대될 때 부과 되는 침묵의 개념으로) <롬 16:25;계 1:20>중명. mystery;
(계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15절에서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무리 열국 방언)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물은 물이 아니라 존재요 모래도 바다의 모래가 아니라 존재입니다
(계 17: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계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계 17: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계 17: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모래 위에 있다는 것은 땅과 바다의 경계선 즉 육에 속한 자요 땅에 속한 자이며 짐승이 음녀와 짝하는 혼합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음녀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이 비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비밀이라는 것이 열리지 않은 자들에게는 어리석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마 13:11)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마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 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ajpokruvptw(613): 아포크뤼프토 → 숨기다
575와 2928에서 유래; 감추다, (즉 전적으로)감추다, 상징적으로 비밀로 하다, 숨기다<마 25:18>동. to hide;
kruvptw(2928): 크뤼프토
기본동사;(본래적 의미로는)감추다, (자신을)감추다, 비밀을 지키다, 비밀(로)하다 <마13:44>동. to hide;
ajpov(575): 아포
기본불변사; 떨어져서, 즉 (가까이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장소,시간, 관계의 여러 의미에서) 멀리 떨어져서(접두어로서), 복합어에서 항상 분리,출발 중지, 완성, 역전을 나타낸다 <마 1:17;막 5:29;눅 16:23;요 8:9>전. away from;에서 떨어져 a)분리의 의미로 b)재료, 혹은 기원의 의미로 c)원인, 혹 결과의 의미로
◆ajpokaluvptw(601): 아포칼립토 → 나타내다
575와 2572에서 유래; 덮개를 제거하다, 즉 나타내다, 폭로하다 <마 10:26;갈 1:16>동.uncover;
kaluvptw(2572): 칼립토
2813과 2928에 유사;덮다(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숨기다 <고후 4:3;벧전 4:8>동. to cover;
◆sofov"(4680): 솝호스 → 지혜롭다(마11:25)
saphes<삽헤스>(깨끗한)과 유사; (일반적인 적용에서)현명한. 5429와 비교 <고전1:19>형. wise;
◆frovnimo"(5429): 프흐로니모스 → 지혜롭다(마7:24);자갈 먹이는 조심성
5424에서 유래; 사려 깊은, 즉 슬기로운, 혹은 신중한(조심성 있는 성격을 내포; 반면에4680은 실질적인 기술이나 예리함을 표시하고 4908은 오히려 지성이나 정신적인 인식을 가리킨다), 나쁜 관점에서는 자만하는 (또한 비교급으로), 더 지혜로운 <마 7:24, 25:2>형.sensible, prudent;
◆sunetov"(4908): 쉬네토스 → 슬기 있는(마11:25)
4920에서 유래; 정신적으로 집중하다(또는 집중하는), 즉 현명한, 슬기로운. 5429와 비교<마 11:25>형. understanding;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을 것이요
또 하나는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을 것이다.
둘 중의 하나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닮았느냐 하는 문제가 고전15장에서 땅에 속한 형체, 하늘에 속한 형체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고전15:38에서 누구의 형체를 가졌느냐? 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반석에 대해서 바울은 고전3:11에서는 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터가 주초이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16:20에서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반석(페트라)이 곧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다음에 21절에 보시면 이때로부터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16:20
Tovte diesteivlato toi'" maqhtai'" aujtou' i{na mhdeni; ei[pwsin
경계하사(1291) 아무에게도~말라 말하지
o{ti aujtov" ejstin jIhsou'" oJ cristov".
~것을 그가 이시다 예수 그리스도
◆ diastevllomai(1291): 디아스텔로마이 → 경계하사
중간태. 1223과 4724에서 유래; 따로 놓다(상징적으로 구별하다), 즉 (함축적으로)명령하다??????, 분부하다 <막 5:43>동. to set apart;
◆ 복음서는; ‘예수’라는 이름이 많이 나오고 그리스도라는 말이 조금 나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지나 로마서를 들어가게 되면 즉 서신서로 들어가게 되면.....
◆ 서신서;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이 많이 줄줄이 나옵니다. (예수 = 그리스도)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 땅에 속죄양으로 오신 분은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제는 어떤 분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까?
그리스도의 존재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도행전까지와 그 다음에 로마서 이후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전에도 항상 말씀을 드렸지만 요한복음은 사도행전 뒤에 가서 붙어야 하고 로마서 앞에 가서 붙어야 맞습니다. 그래서 바로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 그분이 진리의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실, 성경의 가장 큰 핵심 즉 새 언약 성취의 장본인이 바로 그리스도 그분이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런데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이것은 다 바울이 쓴 것이 아니냐? 바울은 반석을 그리스도를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했겠구나 라고 생각을 할 수 있지마는 그럼 주님께 직접 ??????너는 반석이라??????라고 소리를 들은 당사자인 베드로는 어떻게 말했는가 한 번 찾아보도록 합니다.
(벧전 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벧전 2:5)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영적예배, 즉 성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롬12:6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몸의 제사입니다.)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벧전 2:6)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벧전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벧전 2: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페트라:그리스도 자신)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호 로고스)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산 돌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너희도 산 돌같이 즉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되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라고 한 것은 또한 거룩한 제사장이 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신령한 집 즉 교회인 성도 자신이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지 공회 즉 어떤 조직체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지도 아니요 과부도 아니라 착각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성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터가 되고 우리가 집이 되는 이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자신을 드리는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면 그리스도께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어 저들을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단수 이방인, 습관되어진 민족,지파
◆basivleio"(934): 바실레이오스 → 왕 같은
935에서 유래;(성질에 있어서)??????왕다운??????, 왕의 <벧전 2:9>형. royal, kingly;
그러나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에게나 택하신 족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확신이나 착각으로 인한 결과는 비참하기까지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거지도 아니요 과부도 아니라 착각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대로 제자들은 그분이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시는 분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몰랐는데 무덤사이에 거한 귀신들은 알았다는 것입니다. 귀신 되고 나면 압니다.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괴롭게 할려고 여기에 오셨나이까?(마8:29)이제는 그분이 그러한 자들에게 괴롭게 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착각에서 빨리 돌아와야 합니다.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ejrgavzomai(2038): 엘가조마이 → 행하는
중간태, 2041에서 유래; 노력하다(의무, 직업으로서), (함축적으로)효과를 나타내다, 종사하다, 저지르다, 하다 <행 10:35;히 11:33>동. to work;
거듭나지 않으면 주님은 우리를 모른다 할 것이고 택한 자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럼 거듭나는 것은 과연 무엇으로 되는 것입니까?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호 로고스이신 그분이 요1:1절에서 말씀하시는 “태초에 호 로고스” 말씀이 되시니라. 그분이 요1: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2절에서는 그를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바로 이 ‘인자’가 마태복음 16장에서 말하는....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예수밖에는 모르던 시대에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말은 기름부음으로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상태가 됐을 때 그리스도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로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진정한 복음은 무엇인가?
말씀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입니까? 그것이 각 사람을 살리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지 말씀 자체는 아닌 것입니다. 복음은 말씀 자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 그 자체 즉 요한복음 1:1의 말씀이십니다. 이 말씀을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계시가 아니고는 아무도 깨달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복이요 특권인 것입니다.
베드로전후서의 알파와 오메가가 무엇을 말하는 지 알아보도록 합니다.
(벧전 1:5)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벧전 1: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자기 자신들의 구원 문제가 아니라 말세를 사는 너희를 위한 것)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벧전 1: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벧전 1: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 이니라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구원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선지자들이 연구했고,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구원을 사모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결코 억지로 풀거나 사사로이 풀다가는 망하는 길로 탈선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벧후 1:20 - 1:2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성경을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구원을 받기도 하고 멸망을 당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공부가 그래서 두렵고 어려운 것입니다. 성경은 계시를 통해 풀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얽힌 실타래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각과 지식으로 푼다면 더욱 얼키고 설켜 혼미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은 인간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성경에 대한 경외심을 빼앗아갑니다. 그래서 함부로 성경을 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기준
교회의 기준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가타부타 따질 것도 없이.....귀 있는 자는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계 1: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아시아 교회의 일곱 사자는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일곱 영입니다.
(계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그리스도)가라사대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에베소에 있는 교회들)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2:1에서는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계2:7절에선 성령이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곧 성령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성령이냐 아니냐 보혜사냐 따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금방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귀는 듣는 기능입니다.
(히 4:1)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무조건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우기지 말고 이런 말씀을 한 번 좀 보세요
(히 4:2)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자, 들음과 믿음의 문제죠?
이것이 로마서 10장에서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부르짖게 되고 부르짖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이를 알게 한 것은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것을 마음으로 믿었고 베드로가 그것을 입으로 시인한 것이 하나님의 역사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는니라.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려워도 그 부자를 하나님의 아들 만드는 것은 누구만이 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기적인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수용한 것이 믿음이 아니라 말씀이 내 안에 있음으로 주어지는 것이 믿음(구원의 믿음)입니다. 말씀을 떠난 믿음 말씀과 관계가 없는 믿음 이것은 헛것입니다. 말씀은 그리스도와 성령과 관계를 갖고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그저 읽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인 것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롬 10: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이 문제인데 약속의 말씀이 한없이 주어지고 가까이 있어도 기근을 당하는 이유가 뭘까?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은 말씀의 기근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암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그러면 과연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어서 그런가.....
☞ 기근의 문제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아닙니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롬10:18에서 생명의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지만 들을 귀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입니까? 전도자들이 돌아다니면서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공기가 이 지구상에 충만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충만합니다.
시편19:2-4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행 28: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행 28: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행 28: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저들의 문제가 이런 것이라고 지적한 이유를 행28:27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살펴보도록 합니다.
행 28:27
ejpacuvnqh< ga;r hJ kardiva tou'< laou'< touvtou, kai; toi'" wjsi;n barevw" h[kousan,
3975,완악해지다 2588,마음으로 917, 둔하게
kai; tou;"< ojfqalmou;"< aujtw'n ejkavmmusan: mhvpote i[dwsin toi'" ojfqalmoi'",
3788,눈을 2576,감았으니 3379,이는~까 함이라
kai; toi'" wjsi;n ajkouvswsin, kai; th'/ kardiva/ sunw'sin, kai; ejpistrevywsin,
1994,돌아와
kai; ijavswmai aujtouv".
2390.나의 고침을 받을
◆pacuvnw(3975): 파퀴노 → 완악해져서
4078( 두꺼운의 뜻)의 파생어에서 유래;두껍게 하다, 즉(함축적으로)살찌게 하다, (상징적으로)마취시키다, 혹은 굳게 하다, 크게 확대하다 <행 28:27>동. to thicken, fatten stupefy;
phvgnumi(4078): 페그뉘미
기본동사의 연장형(단순형은 어떤 시제에서만 대체형으로 나타남);(말뚝)고정시키다, 즉(특히 장막을)세우다 (치다) <히 8:2>동. to setup to pitcha tent;
◆barevw" (917): 바레오스 → 둔하게
부사. 926에서 유래;(상징적으로)무겁게, 무디게 <마 13:15>부. heavily;
baruv" (926): 바뤼스
922와 동일어에서 유래;무거운, 즉 (상징적으로)짐스러운, 심상치 않은, 슬픈, 무거운,보다 무거운 <마 23:4;행 20:29>형. weighty;
bavro" (922): 바로스
아마도 939(내려가다의 개념을 가지고;899와 비교)와 동일어에서 파생;무게, 신약에서는 단지 상징적으로 짐, 풍부, 권위 <마 20:12>중명. weight;
bavsi" (939): 바시스
baino<바이노>(걷다)에서 유래;걸음(기초), 즉 (함축적으로)발<행 3:7>여명. walking;
※ bavqo" (899): 바도스
901과 동일어에서 유래;깊음, 즉 (함축적으로)정도,(상징적으로)신비, 깊은(~음, 것),깊이<막4:5;고전 2:10>중명. profundity;
baquv" (901): 바뒤스
939의 어간에서 유래;심오한(내려가는;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깊은, 매우 이른<눅24:1>형. deep, profound;
◆kammuvw (2576): 캄뮈오 → 감았으니
2596과 3466의 어간의 합성어의 대용;닫아 내리다, 즉 눈을 감다, 닫다 <마 13:15>동. to shut;
katav (2596);
(전치사)아래 (장소, 또는 시간),자주 반대, 분배 또는 강도를 표시 <마 9:29;눅 6:23>전.down from;
musthvrion (3466): 뮈스테리온
muo<뮈오>(입을 다물다)의 파생어에서 유래;비밀, 또는 신비(종교의식에 초대될 때부과되는 침묵의 개념으로) <롬 16:25;계 1:20>중명. mystery;
◆mhvpote (3379): 메포테 → 이는~까 함이라
또는 me pote(메 포테). 3361과 4218에서 유래;결코 ~아니다, 혹시 (어느 때에든지,우연히) ~않도록, 전혀 ~않다, ~인지 또는 아닌지 <마 7:6;눅 4:11>불. that...not, elst, whether perhaps, in no way, perhaps;
mhv (3361): 메
제한된 부정을 나타내는 기본 불변사(반면에 3756은 절대적인 부정을 나타낸다);(부사)아니,(접속사)~않도록, 또한(부정적 대답【반면에 3756은 확실한 것을 기피한다】을 함축하는 의문사로서)~인지 아닌지, 어느, 그러나, 참다, 하나님이 금하다, 결핍하다, ~입다, ~도 아니다, ~없이, 종종 본질적으로 같은 관계에서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3362,3363, 3364, 3372, 3373, 3375, 3378을 보라 <마 1:19;막 4:5;눅 18:1;요 15:2>불. no,not;
※ouj (3756): 우
역시(모음 앞에서) ouk,<우크>; 그리고(기식음 앞에서) ouch,<우크>; 기본어; 절대부정[3361과 비교】부사;아니 또는 아니다, 오랜, 아니오,도 아닌, 결코 아니다, 아니(사람),아무도,할 수】없다, 아무것, 3364, 3372를 보라 <마 21:21; 요 11:10>부. no, not;
potev (4218): 포테
4225의 어간과 5037에서 유래(부정 부사)언젠가, 과거의 한때 <갈 1:13; 히 1:5>불. formerly, some time;
pouv (4225): 푸
다른 경우에는 폐어가 된 부정대명사 pos<포스>(어떤)의 소유격(4214와 비교); 장소를 나타내는 부사로 어디엔가, 즉 근처에, 대략, 어떤 장소 <히 2:6>부. somewhere, anywhere;
te (5037): 테
연관이나 첨가의 기본 불변사(전접어);둘 다, 혹은 역시, 양쪽의 ~까지도, 인지 아닌지,가끔 복합어에 사용되며 보통은 첨가의 의미로 쓰인다 <눅 2:16; 행 1:13>불. not only~but also, both~and, as~so;
◆ejpistrevfw (1994): 에피스트렙호 → 돌아와
1909와 4762에서 유래; 복귀하다(문자적,상징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다시오다(가다),개종하다,(되)돌아가다<눅 1:16;2:20>동. to turn back;
strevfw (4762): 스트렙호
5157의 어간에서 유래된 강세형;틀다, 즉 반대로 돌리다(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바꾸다, 돌리다<눅 7:44>동. to turn;
trophv (5157): 트로페
아마도 기본어 trepo<트레포>(돌다)에서 유래;회전(비유), 즉혁명(비유적으로 변화),회전<약 1:17>여명. a turning;
◆ijavomai (2390): 이아오마이 → 나의 고침을 받을
기본동사의 중간태인 듯; (문자적으로 상징적으로)치유하다, 온전케 하다 <눅 4:18>동.to heal;
결국 저들의 눈과 귀가 닫힌 것은 하나님께 돌아와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암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그런가? 아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지만 저들의 귀와 눈이 닫혔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고 그것은 곧 하나님이 금하신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이 얼마나 복이고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습니까?
☞교회와 성전의 관계성
오늘은 지난 시간에 계속해서 교회와 성전과의 관계성을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을(개인)지칭해서 하는 말이고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연합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합체라고 하는 것은 다수를 말하고 단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M,
성경에선 연합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한정된 수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정해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호와의 증인이나 기타 이단들이 말하는 것 같은 그런 개념은 아니고 상징적인 수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보면 7장에서 우리가 잘 아는대로 144,000 이야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21장 이후에 넘어가서 보면 144규빗이라고 하는 새 예루살렘 성의 윤곽을 말씀하시고 있는데 12기초석은 열두 제자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고 열 두문은 12지파의 이름으로 되어있고 그 다음에 12문과 12기초석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돌아가면서 산 돌들로 전체가 모여 가지고 성전이 되어지는데 다시 말하면 새 예루살렘이 성이 지어지는데 이것을 천사의 측량으로 재보니까 장광고가 같은 144규빗이더라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서 한정수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들의 개념에서 나오는 숫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계획 속에 들어있는 그 어떤 충만한 수가 즉 하나님의 정하신 한정된 수가 완성되어졌을 때 하나님의 성전은 완성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손으로 지은 성전에 아니 계신다고 하는 것은 바로 영적인 교회들에 연합체 전체 어떤 한정된 수가 완성이 됐을 때 하나님은 그들 속에 거하신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성전 건물이라고 하는 것은 즉 돌로 지은 성전 건물이라고 하는 것은 율법에 의해서 나왔는데 안식일이나 또는 여러 가지 제도들이 장래에 올 온전한 것의 그림자인 것처럼 그 돌로 지은 성전도 일종의 장래에 나타날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닌 사람들로 되어진 하나님의 성전의 모형과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계속 십일조가 율법적인 의미에서 지켜져 내려오는 것처럼 그런 보이는 성전들을 율법적인 의미에서 생각해 오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일부분에서는 율법시대가 끝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그동안 혼란케 했었고 우리가 이 단계에서 깨달아야 할 것은 교회와 성전과의 관계성은 개인 그 연합체 전체가 모여서 성전화 되어지는 것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마지막단계라고 하는 것을 결론적으로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면 오늘은 먼저 교회와 성전관계에서.....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 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엡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
(엡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
둘이 하나된 때부터=이것이 바로 지금 말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히12:1의 허다한 증인들; 약속은 받지 못했으나 증거는 받고 증언하는 자들
●계6:9의순교자들: 예수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영혼들이 성도들과 동일한 하늘의 시민이요 권속들이다.
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머릿돌이 되셨느니라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그들이 닦아 놓은 터가 뭡니까? 고린도전서3장에 나오는대로 예수 그리스도 생명의 말씀이신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 하는 그 반석입니다.
세우심을 입은 자라 = 이것이 바로 반석위에 세운 교회라는 것입니다. (지헤로운 사람 같이 그 반석 위에....)
◆ 하나님의 권속 = 소속과 먹는 양식이 하나님의 사람인 사람들이다.
◆ 하나님의 사람 = 육신을 가진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들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머릿돌이 되셨느니라 = 돌의 문제가 여기서부터 나오는데
왜 여기서 그리스도를 모퉁이 머릿돌이라고 말하느냐?
그것은 그것이 기준이 됐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만 집을 지을 때 벽돌이면 부럭이면 부럭 돌이면 돌이 그 다음에 맞추어지는 돌과 규격이 같아야합니까 틀려야 합니까? 같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간다고 하는 의미에서 모퉁이 돌은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맞아야 그 다음에 같은 규격 같은 수준에 돌로써 차근차근 성전이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 엡2:17에서......
● 먼데 있는 너희
◆makravn (3112): 마크란 → 먼데 있는
3117(3598을 의미함)의 여성 대격 단수;멀리서(문자적 혹은 상징적으로), 상당히 떨어진 <막12:34;엡 2:17>부. far off(of time or distance);
makrov" (3117): 마크로스
3372에서 유래;긴(【먼】 장소에서, 또는 시간 【중성 복수】에서), 오랜 <막 12:40>형. long;
mh'ko" (3372): 메코스
아마도 3173과 유사;(문자적 혹은 상징적으로)길이 <계 21:16>중명. no further,
oJdov" (3598): 호도스
아마 기본어인 듯;길, 함축적으로 진로(그 통로, 그 행위, 그 거리), 상징적으로 형태,또는 수단, 여행, 대로 <눅 1:76; 요 14:4,6; 행 1:12>여명. way;
일차적으로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시간적으로 오래동안 하나님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였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과 관계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인 것입니다.
● 가까운데 있는 저희
◆ ejgguv" (1451): 엥귀스 → 가까운데 있는
기본동사 agcho「앙코」(짜다, 조르다;43의 어간과 유사)에서 유래;(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장소나 시간의)가까운, 으로 부터, 가까이, 준비된 <눅 19:11;계 1:3>부. near;
일차적으로는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시간적으로(역사적으로) 하나님과 거리가 가깝게 지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까운 자들이 진정 이면적 유대인들인 것입니다.
● 평안
◆ eijrhvnh (1515): 에이레네 → 평안
아마도 기본동사 eiro<에이로>(합하다)에서 유래;(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평화,(함축적으로)번영, 하나가 됨, 고요, 안식, 다시 하나가 되다 <롬 1:7;고후 13:11>여명.peace, transquility;
평안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하나가 되어 안식을 누리는 의미인 것입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기준 돌)이라는 것은 이 돌과 같은 규격, 수준이 맞아야 성전의 재료로서 합당하다는 것이고 그런 돌들이 모여 차근차근 성전이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산 제사인 것이며 영적 예배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준이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면 그 분과 같아질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우리의 맏형이 되시고 우리와 함께 하나의 성전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자기를 건축하여 아버지가 거하실 처소를 예비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 산 돌; 그리스도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수준까지 자라나면 산 돌같이되는데 이 일을 누가 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이 하신다. 그것을 믿고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분의 규격과 맞아야지 그 분보다 크거나 작아서도 안 됩니다.먼저 목사가 그리스도의 수준까지 만들어져야 하고 성도들도 동일한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 수준에 오르는 것을 막는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입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모양을 갖고 접근하여 파멸시키는 것입니다.(딤후3:6~9) 생명과 와 선악과는 전혀 다른 것이지 비슷한 형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미혹되는 것은 욕심으로 눈이 가리워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생명은 생명이고 윤리, 도덕은 다른 것입니다.
내가 선하게 살고 진실하게 살고 구제 많이 하고 좋은 일 많이 하는 것이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미혹되지 않는 것입니다.
엡2:21의 건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 oijkodomhv (3619): 오이코도메 → 건물
3624와 1430의 어간의 합성어의 여성(추상명사);건축, 즉(구상적으로)건축물, 상징적으로 확정, 건물, 교회 <고전 14:5>여명. a house or building;
oi\ko" (3624): 오이코스
불확실한 유사어;거주(다소 포괄적, 문자적 또는 상징적), 함축적으로 일가족 (다소 관련된; 문자적 또는 상징적으로), 집안, 집(식구), 신전 <눅 1:23; 행 7:10>남명.inhabited house;
dw'ma (1430): 도마
demo<데모>(세우다)에서 유래;(본래적 의미로는)건물, 즉(특히)지붕, 꼭대기 <마10:27>중명. a building roof;
여기서 건물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 같은가?
여기서 건물은 oijkodomhv 라는 말인데 이 말은 마24장에 보면.......
(마 2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 오니
그러니까 여기서 oijkodomhv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면....
성전에 여러 가지 건물들이 있습니다. 그 건물들을 가리키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돌들을 가리키면서 하는 말입니다.
(마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하나하나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oijkodomh 가 되어야 합니다.
oijkodomh 라는 말은 dw'ma 세우다 즉 집으로 세운, 그런데 우리성경을 보면 ‘덕을 세우다“할 때 전부가 다 oijkodomh 로 되어있습니다. 이것 참 큰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이코도메가 되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 하나하나가 되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 성경에서 설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만약에 ’건물로 세움을 입을지어다‘라고 해 놓으면 성경이 이상해지니까 우리 옛날에 도덕 윤리 좋아하던 사람들이‘덕세움을 입을지니라’로 적당히 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돌 하나하나를 보면서...
그때 당시 헤롯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성전건물을 지었는데 얼마나 좋은 돌을 깎아다가 그 사이사이에다가 무엇을 금을 메끼로 넣어가지고 차곡차곡 해 놓으니까 46년동안에도 완성을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웅장한 건물을 세워 놓으니까 그것이 유대인들의 자랑이요 소망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돌을 무엇으로 말씀하시는가?
산돌을 누구라고 말씀하셨는가?
비유를 하려고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지 실제는 사람을 가리키고 존재를 가리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전 건물을 가리키면서 자랑하려는 제자들에게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 말씀인가? 역사적으로 실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을 예언한 것?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 이면에 육적으로 예루살렘을 구성하고 있는 존재들을 모두 심판하시겠다는 의미가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마치 계시록의 바벨론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 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우리가 집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집으로 세워져 가야 한다.
우리가 건물이다. 교회로 모이는 성도들 자체가 집이요 건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건물(집)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처소인 새 예루살렘 성을 지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가? 헤롯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하신 성전은 어떤 것이었나?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스룹바벨에 의해 지어진 성전 아닌가? 그리고 말라기서 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 차라리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하지 않으셨나? 그 이후에 만들어진 그것도 원수 헤롯에 의해 정치적인 목적으로 지어진 그 성전이 참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신 성전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닙니다.
☞ 서로 연결하여 (4단어의 합성어)
◆sunarmologevw (4883): 쉬날몰로게오 → 서로 연결하여
4862와 719, 3004의 합성어의 파생어에서 유래;밀접하게 연결시키다, 즉 치밀하게 조직하다, 서로 연결하다 <엡 2:21>동. to fit or join properly together;
① suvn (4862): 쉰
기본어, 결합을 의미는 전치사;함께(그러나 3362 혹은 3844보다 밀접하게, 즉 동참, 교제, 진행, 유사, 소유, 도움, 부가 등에 의해서), 곁에, 같이, 합성어에서도 유사한 적용
② aJrmov" (719): 할모스
716와 동일어에서 유래;(인체의)관절, 접합 <히 4:12>남명. joint;
a{rma (716): 할마
아마도 142【아마 전치된 1(연결사로서 연합을 나타내는 불변사)과 함께】에서 유래;마차(높거나 조립된 【719와 비교】) <행 8:28>중명. chariot;
ai[rw (142): 아이로
기본동사;들어올리다, 함축적으로 취하다, 또는 치워버리다, 상징적으로 (소리를)높이다, (마음을)졸이다, 특히 항해하다(즉 닻을 올리다), 히브리어에서 【5375와 비교】??????죄를 속하다, 없이 하다, 지탱하다, 운반하다, 들어올리다, 느슨해지다, 의심하다, 치워버리다, 제거하다, 없이하다, 데리고 올라가다 <마 16:24>동. to take up;
③levgw (3004): 레고
기본동사; 본래적 의미로는 앞에 놓다, 즉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다(말로서 【보통 조직적이거나 또 논리를 써서) 함축적으로 의미하다, 묻다, 명령하다, 자랑하다, 부르다, 묘사하다, 준다, ~라고 부르다, 발표하다, 말하다, 보이다, 이야기하다, 표현하다 < 롬 4:3;엡 5:14>동. to lay out(words), say, tell, ask, answer;
④mevnw (3306): 메노
기본동사;(주어진 장소, 상황, 관계 또는 기대 속에서)머물다, 거하다, 계속하다, 거주하다, 참다, 출석하다, 남아있다, 서다 <요 15:4;벧전 1:25>동. to remain;
☞ sun armo logou mevnh → (동분현수주여단);서로 연결하여
함께 관절, 접합 말씀 처소, 거함
우리가 이런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그 분 안에서 그 분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다.
※ oijkoumevnh → 세상 사람들이 사는 지구, 세상
※ logoumevnh →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
☞ 히4:12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관절로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머리, 우리는 몸으로서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머리와 몸이 관절 24뼈로 연결되어 있는데 머리의 모든 신경 줄이 관절 속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armo"(관절)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우리 성경에 꼭 두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은 고후11:2에서 중매함이로다 라고 번역된 부분이다.
◆aJrmovzw (718): 할모조 → 중매함이로다.
719에서 유래;결합하다, 즉 (상징적으로)구혼하다, (재귀형)약혼하다, 결혼하다 <고후11:2>동.to join together; →719는 aJrmov"로서 관절의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관절로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들과 결합된 것입니다. 결혼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이렇듯 영적인 원리를 깨달으면 자연 원리를 깨닫게 되어 세상사는 원리를 터득하게 됩니다.
물질관, 인생관의 모든 비밀이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세상 살면서 제일 조심해야 될 것은 시간 관리인데 특별히 쓸데없는 일에 매여 간섭하거나 인정에 끌려 맺고 끊지 못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이 우리의 적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그리고 목표를 세상으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생명과에 대한 생각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엡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교회로 부름을 받았고 그러면 그 교회들이 무엇이 되어져 가야 합니까? 성전이 되어져 가야 하는데 성전이 되어져 갈려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엡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원문:자라간다)
◆ aujxavnw (837): 아욱카노 → 되어 가고
기본동사의 연장형;기르다(달이 차다), 즉 커지다(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능동태 혹은 수동태) 자라다, 증가(하게 하다) <엡 4:15>동. to cause to grow;
그런데 ‘만들다’‘짓다’‘창조하다’라는 단어는 ktivzw와 poievw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aujxavnw(자라간다)를 사용했다.
신앙생활은 그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6) 그에게서 (머리인 그리스도)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범사에 라는 것은 ta panta라고 해서 ‘어느 부분에서든지, ‘전체 안에서’‘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제는 누가 먼저 그 분의 수준까지 자라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라는 말도 절대적으로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관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우리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그 분을 ‘주’로 시인하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여! 과연 당신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진정 나의 주가 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머리와의 관계에서 신경이 끊어지면 그것은 곧 시체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연결이 되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 역시 시체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이 없으면 인생은 끝장인 것입니다.
오직 그 분으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도 사실은 과학입니다.
신앙의 과학이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어울리지 않는 말씀 같죠, 현실적이라고 하면 모르지만.... 과학적이라는 말은 사실이 증명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을 비실체적 과학이라고 합니다.
과학의 원리로 무슨 합성법을 써 가지고 증명을 해 내는 것이 아니라 되어진 사람은 과연 그렇습니다. 사실이 자기 자신 속에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 우리 우주과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주를 과학적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영적인 세계를 과학적으로 만드시지 않겠습니까? 내게 이루어진 생명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루어져서 그 사람의 입으로 시인이 되면 그것은 바로 사실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믿음으로 무엇을 바랍니까?
엘리야에게 이루어지고, 바울에게 이루어지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이루어진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믿는 것 아닙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반드시 그것은 내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분은 내 속에서 살아계십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살고 살맛이 나고 삶의 목표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은 수양이나 고행으로 덕행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직접 역사하심으로 그분에 의해서 강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그것을 해 주려고 노력을 해도 인간의 힘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분이 직접 역사하십니다.
자식은 자라나는 맛에 키웁니다. 지식, 지혜, 키… 등 범사에 자라나는 것이 부모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ktivzw (2936): 크티조
아마도 2932와 유사어에서 유래(공장주의 소유권의 의미에서);만들어내다, 즉(근본적으로는,만들다) 주조하다, 창조하다 <고전 11:9;골 1:16>동. to create;
● poievw (4160): 포이에오 → 하나의 행위를 나타냄
폐어가 된 기본어의 연장형인 듯;하다,만들다(폭 넓은 적용으로), (외적사물에 대하여)제조하다, 산출하다, 창조하다,(상태에 대하여)행하다, 일으키다, 완수하다, 지키다, 실행하다,준수하다, 실천하다, 일하다, 활동하다, 4238과 비교 <눅 3:10; 요 5:11; 계 3:9>동. to make, to do to practice;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 sunoikodomevw (4925): 쉬노이코도메오 → 함께 짓다.
4862와 3618에서 유래;건설하다, 즉(수동태) 구성하다(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함께 짓다<엡 2:22>동. to build up together;
그래서 그 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신앙에 인간적인 요소가 끼어들면 그때부터 변질되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요 속에선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법을 알지만 가난 속에서 기쁨을 그것을 축복으로 누리는 법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이 적이 되고 원수가 되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의식의 문제입니다. 거기까지 자라가라는 것입니다. 빈부귀천의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이제 우상의 시대는 지나갑니다.
이 시대에 가장 조심을 할 것은 물질입니다.
(롬 1: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5)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여러분!
666 짐승의 표가 앞으로 언젠가는 나올 것이다.
천만에요. 이미 여러분들 속에 그러한 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이제는 처리만 하면 끝납니다. 그놈이 와서 이것은 내 것이다, 도장만 찍어버리면 짐승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거기서부터 우리가 승리하고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좋아 너 와라....
네가 아무리 그래도
가난 속에서도 평강을 주신 그 하나님이 계시다.
요지부동이다 이겁니다.
신앙좋다! 그러나 나는 가난만큼은 용납 못하겠다.
가난 속에서도 기쁨을 주시고 밤중에도 노래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빨리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라가야 합니다.
(히 3: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히 3: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히 3: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히 3:19)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 4:2)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히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히 4:6)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누구라고 말합니까?
①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는 자(히3:10~11)
② 순종치 않는 자 곧 믿지 않는 자(히3:18~19, 4:6)
③ 믿음을 화합치 못한 자(히4:2~3)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한 마디로 말하면 어떤 자입니까?
어린 아이(원문에는 난장이)입니다.
자라지 못한 자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40년) 변화가 있었습니까? 깨달음인들 있었습니까?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의 군대가 쳐들어오는데 우리를 어떻게 할랍니까 라고 불평불만 하던 그 백성이나 정탐꾼 가나안에 갔다가 와서 포도송이 두 사람 메고 와서 이렇게 생겼더라마는 그러나 아낙 자손이 있고 하니 우리는 거기에 비하면 메뚜기더라 그래서 밤새도록 대성통곡을 하던 그들이나 같죠?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숱한 가르침과 약속과 명령과 각종 기적의 체험이 있었음에도 실제적으로 그들에겐 아무 것도 깨달음도 변화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난장이(=자라지 못한 자)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난장이는 아닌지......
신앙생활 시작할 때나 십 수 년이 지나면서 목사, 장로, 집사가 되었는데 그 때도 먹고 마시고 사는 문제 때문에 근심, 걱정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라난 사람인가? 아니면 난장이인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실수와 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세상 것 때문에 넘어지는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 뒤처리가 문제다. 그 세상 것 때문에 돈 때문에 권력 때문에 명예 때문에 신앙의 실패를 경험했으면 이젠 그것을 원수처럼 여겨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하면서 멀리 떠나보내야 하는데 다시 친구처럼 가까워지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돈은 세상의 보화로서 일만 악의 뿌리라고 성경은 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하나님)는 하늘의 보화로서 영생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그럼 나에게 있어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돈인가 그리스도인가?
나는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성령의 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팔려간 자입니다.
팔려갔으면 산 사람의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좋다보니까 요새 건방진 사람들이 많아가지고....
이거 해라....그러는데도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우선 급한 내 일부터 처리좀 하고요...사업좀 키워놓고 아들딸 좀 키워놓고.....아들딸 다 키우면 마귀가 교회 오게 할것 같습니까?
진정한 자녀교육은 그 자녀로 하여금 하루빨리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나의 아버지가 자식들의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동적으로 내려가는 유산이 아닙니다. 여러분 들의 재산은 유산상속이 될지 몰라도 하나님은 유산상속이 안 됩니다. 아비의 죄는 삼사대요 축복은 수천대라고 하니까 그것이 상속이 되는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고 자식의 아버지는 자식의 아버지입니다.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먼저 아버지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자식들에게 물려줍니다. 왜 경험을 했으니까.....
또한 요사이 마귀는 돈의 권력을 꽉 쥐고 있어서
야! 너 지금 어디가냐? 너 돈 안 벌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때는 늦으리
naov" (3485): 나오스 → 전
기본어 naio<나이오>(거하다)에서 유래;사찰, 사당, 2411과 비교 <마 27:5;행17:24>남명. temple;
iJerovn (2411): 히에론
2413의 중성형;성소, 즉 성전(예루살렘에 있는, 또는 다른 곳의) 정체 경내 (반면에 3485는 지성소 자체를 지시함) <막 11:11>중명. temple;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성령이 거하시는 지성소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성소는 누구의 것입니까?
지성소인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3. 초보적 교회와 장성한 교회
(히5:11~6:3)
우리가 첫 시간에는 반석위에 세워진 교회 그래서 반석은 바로 그리스도라, 그리고 교회의 기준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로 말씀을 드릴 수 있지만 귀 있는 자가 교회다. 라고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귀라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육신적인 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눈과 귀가 되시고 마음이 되실 때 그 분의 눈과 귀로 보고 깨달아 그 분의 마음에 새겨지는 것 그래서 그 분 전체가 곧 내가 되는 것이 참 교회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교회 안에 내주하시고 그 교회의 예배를 받으시고 찬양을 받으시며 그 교회들의 연합된 하나님의 성전을 통해서 영원토록 임마누엘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 교회를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고 아담이 마귀의 말을 받아드림으로서 타락이 시작되었고 결국은 그것을 계시록에서 완성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결산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처음이요 나중이요 시작이요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러한 교회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속에 일어나는 사건 첫째는 초보적인 교회 두 번째는 장성한 자의 교회에 대해서 공부를 하도록 하고 이다음 시간에는 예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공부를 하도록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예배드린다고 하는 것이 일상적으로 습관화되면 우상화가 되기 쉽습니다.
예를들면 마치 이방인들이 제사 날짜가 되면 특별한 의미나 감동이나 기쁨이나 기대감도 없이 날짜가 됐구나 하여 오늘은 제삿날이니까 제사를 드려야만 된다는 식으로 의식적으로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사람들이 신사 앞에서 절을 하려는 것과 같은 것은 우상숭배이지 경배도, 존경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 예배 그 예배 속에서의 찬송이라든지 기도라든지 헌금이라든지 말씀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어떤 의미로 드려질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겠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공부를 하도록 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론에 들어가서......
장선한 자의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라는 것은 우리가 이미 배운바 어떤 조직이나 외모가 아니라 내적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사람을 말한다, 라는 것을 이미 배웠습니다.
히브리서 5:11이하를 보면서 교회의 정의를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히 5:11 - 14)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저희는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히브리서 5:11절 이하를 보면 멜기세덱의 사건이 나옵니다.
멜기세덱의 문제는 히브리서 7장에서 나오는 십일조하고 관계가 되어지는 거죠. 십일조의 사람은 바로 12:1~2의 말씀대로 너희 몸을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하는 자기 자신의 몸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말합니다. 곧 십일조로 드려진 자들이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몸은 그리스도의 것으로서 교회와 연결이 됩니다.
교회가 되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드려질 때 또한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5:11에서 장성한 자(=교회)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데.... (너희들의)듣는 자들의 수준과 상태가 너무 어려서 십일조의 원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단계에 있으므로 말하기가 어렵다고 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초보적 교회와 장성한 자의 교회가 나오는데.....
◆장성한 자의 교회; 자신이 십일조로 드려진 상태의 교회(진리 차원의 교회)
◆초보적 상태의 교회; 자신이 십일조로 드려지기 전의 교회(율법, 은혜차원의 교회)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 히브리서 5:11절이 기록이 된 것입니다.
봅시다.......
11절
◆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다.
완전히 귀가 열려진 상태가 아니어서 어떤 부분은 이해하고 어떤 부분은 닫혀진 상태를 말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수준에서만 알아듣는 상태를 말합니다.
12절
◆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텐데~
모든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다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목사)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먹이는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데....그 마음은 아비 같은 마음을 갖고 말이다.
ojfeivlw (3784): 옵헤일로 → 마땅히
또는(어떤 시제에서는) 그 연장형인 ophelleo,<옵헤일레오>; 아마 3786(이자의 개념으로)의 어간에서 유래;빚진 자(금전상으로). 상징적으로 채무하에 있다, 도덕적으로 의무에 불성실하다, 직분을 다하다, 매여있다, 빚지다, 의무를 지다, 죄(빚)짓다, 필요(하다), 해야하다, 덕을 보다,당연히 하다 <마 23:18; 고후 12:11>동. to owe, debt, due, under obligation;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ta; stoicei'a th'" ajrch'" tw'n logivwn tou' qeou':
보 초 말씀의 하나님의
stoicei'on (4747): 스토이케이온 → 보
4748의 어간에서 추정된 파생어의 중성; 배열에 있어 순서적인것, 즉(함축적으로)연속적(기본의 근본적인, 시초의) 구성(문자적으로), 가정(상징적으로), 요소, 원리, 기초 <갈4:3>중명. elements;
stoicevw (4748): 스토이케오
steicho <스테이코> (규정된 선에 정열하다)의 파생어에서 유래;행진하다 (군대가 발걸음을 맞추어), 즉(상징적으로) 경건과 덕을 이루다, (질서 있게)걷다 <행 21:24>동. to walk in line;
초보라는 말이 헬라어로는 stoicei'on이라고 하는데.....
stoicei'on 이라는 말은 어근이 군대에서 일렬로 정렬을 해서 앞으로 갓, 뒤로돌아 갓, 하면 그 명령에 구호에 의해서 착착 움직이는 것을 초보라고 합니다. 이 초보의 문제가 성경에 많이 나타나는데.....
예를들면 우리가 신앙생활이 이 스토이케이온에 걸리면 참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는 말씀의 시작의 원리와 구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창세기와 요한복음의 원리도 깨닫지 못해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상태를 일컫는 것입니다. 이것은 첫째.....
① 개인적인 의사가 절대 적용될 수 없습니다.
다시말하면 이것이 바로 장로의 유전과 사람들의 가르침을 말하는 것인데, 예를들면 장로교회의 어떤 전통과 교리 습관이 딱 짜여져 가지고 그 안에서 말을 해야하고 그 안에서 가르쳐야 하고 그 안에서 신앙생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stoicei'on 입니다. 내가 그렇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장로교의 교리가 그렇고 전통이 그렇기 때문에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그것은 불신자로 치부를 해버립니다.
예를들면 십일조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돈이 아닌 것 같은데도.....
지금은 율법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율법에서 다 마침이 되셨고 완성되어졌기 때문에 율법시대가 아닌데도 율법시대에 하던 십일조를 계속해야 된다고 하는 것은 뭡니까? 이것은 바로 스토이케이온이라는 것입니다.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장로교의 전통과 교리가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바치라 명령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치 않다 할지라도 장로교전통에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까지도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유대교의 전통이었던 것입니다.
질서를 이루는 면과 통일된 면은 좋으나 그것은 시작의 과정일 뿐입니다. 장성한 자가 되면 그 질서의 기본에서 자유하게 되고 그 자유 안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지킬 줄 알고, 개인의사가 단체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지 망가뜨리지를 않습니다. 다만 이런 개인적 의사와 깊이를 오해하여 그런 자를 매장하고 죽이려는 그 단체의 어린 수준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의 믿음과 이해 즉 깨달음이 달라도 교파의 전통과 교리가 다르다 하여 꼼짝도 못하게 하고 어기면 정죄하여 출교를 시킵니다. 이런 행위는 천주교의“개연의 도”라는 교리와 같습니다.
※개연의 도
자기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윗사람이나 상부조직의 뜻이 어떠하면 무조건 그에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개인 신앙양심을 팔아먹는 행위요 조직은 살아남는 악인 것입니다. 천주교가 그 교리 덕으로 오늘날까지 조직이 왕성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 것은 조직으로 움직이는 단체는 이미 생명은 죽은 단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신교가 이런 천주교의 교리를 답습하여 그대로 모방하므로 개혁의 정신이 쇠퇴하고 오늘날 조직은 살아 있으나 생명은 쇠퇴하고 있는 결과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내 팽개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오늘날 말씀은 제쳐놓고 교회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조직만 팽창시키는 숫자 늘리기 경쟁을 불러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왜곡입니다. 오늘날 이런 정신과 교리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자신들은 깨닫지 못하는 무지가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②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여러분, 생명은 자율적인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산에 가서 나무들을 보고 야! 너희들이 이전까지는 봄에 싹이 나고 잎이 피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러지마라. 라고 명령을 해서 그 나무들이 일률적으로 그렇게 됩니까? 요새 봄이니까 산에 한번 가 보세요.
종류도 많고 형태도 달라서 어떤 것은 일찍 눈이 트는가 하면 어떤 것은 늦게 눈이 트이기도 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각각 얼굴이 다르고 성품이 다르고 환경과 조건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빨리 자라길 바란다고 해서 명령하고 재촉하고, 어떤 틀에 가두어 놓고 훈련한다고 해서 갑자기 자라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리기 때문에 어떤 제도나 틀 속에서 자라게 하는 기간이 필요하지만 결코 빨리 자라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라고 일률적으로 가르친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 얘깁니다. 이것이 stoicei'on 인 것입니다.
어떤 교리의 일률적인 가르침으로 조직이 통일성이 있고, 외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생명이 주어지진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말씀으로 똑같은 교육을 시켜도 어떤 사람은 말씀을 빨리 받아드려서 성장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늦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지 교리에 의해서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주일날 교회 나와서 충성하고 봉사하면 천국간다. 하는 어떤 교리의 일류적인 스토이케이온에는 결코 생명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과와 성취는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의해 하나님의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여 자칫 인간의 계명과 교리와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마15: )
(갈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doulovw (1402): 둘로오 → 종노릇
1401에서 유래;(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노예로 삼다 , 예속시키다, 종이 되다, 종으로 삼다 <롬 6:18;고전 9:19>동. to enslave, subject;
dou'lo" (1401): 둘로스 → 종
1210에서 유래;(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자발적으로 혹은 본의 아니게; 그러므로 자주 복종과 보조의 한정된 의미로)종, 묶인(사람) <엡 6:5;유 1>남명. slavish, slave;
devw (1210): 데오
기본동사;(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여러 면에서)묶다, 동이다, 매듭하다, 조이다, 감다. 또한 1163, 1189를 보라 <마 13:30;롬 7:2>동. to bind, tie;
dei' (1163): 데이
1210의 현재능동태 3인칭 단수; 또한 deon<데온>;중성, 동일어의 능동태분사; 둘 다 비인칭으로 사용;(의무적으로)??????반드시 …내야한다(했다), ~해야 한다, 마주치다, (필요함에)틀림없다, 필요하다 <마 16:21>동. one must;
devomai (1189): 데오마이
1210의 중간태;(스스로 졸라매듯)구하다, 즉 탄원, 간청하다, 기도하다, 청원하다. 4441과 비교 <롬 1:10;고후 10:2>동. to beg;
punqavnomai (4441): 퓐다노마이
중간태. 기본어 putho <퓌도> (어떤 시제에서는 대체형으로만 나타남)의 연장형;물어보다, 즉(단순히 정보로써)탐문한다(호의를 요구하는 뜻인 2065와 엄격하게 어떤 빛을 요구하는 뜻인 154와 또한 감추어진 어떤 것을 찾는뜻이 포함된 2212와 긴급한 필요의 개념이 포함된 1189와는 다름), 함축된 의미로 (지적으로)배우다, 요청하다, 질문하다, 이해하다<마 2:4; 행 10:18>동. to inquire, request information;
종은 자기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싫든 좋든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종으로서 신앙생활 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아들로서 신앙생활 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들은 부모가 무엇을 시켜도 하기 싫으면 당연히 싫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아들입니다. (싫어! 엄마가 해!…)
그러나 파출부(종)는 월급 때문에 싫어도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오늘날 신자들의 신앙생활 중에 주일 지키는 것, 십일조 드리는 것… 등을 무엇 때문에? 왜 합니까? 축복받기 원해서? 아니면 벌받을까봐? 혹은 죄라고 하니까 죄짓기 싫어서… 이런 것들이 stoicei'on입니다. 성경의 stoicei'on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초등학교 수준이라는 개념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초보 개념이라기 보다는 종에게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자유를 강조한 것입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입니다.
(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ejleuqerovw (1659): 엘류데로오 → 자유
1658에서 유래;자유롭게 하다, 즉(상징적으로)(도덕적으로 의례적으로 혹은 인간적인 책임에서)면제되다, 해방하다, 자유롭게 하다 <롬 6:18> eleutho,<엘류도> 2064를 보라.
ejleuvqero" (1658): 엘류데로스
아마도 2064의 대체어에서 유래;(기꺼이 가기 위해)거리낌없는, 즉(시민으로서)노예가 아닌(자유롭게 태어나거나 해방된), 혹은 (일반적으로)(책무나 의무로부터)면제되다, 자유로운(남자, 여자) <요 8:33>형. free;
종의 멍에를 메는 것은 종과 짝짓기를 하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그리고 메지 말라는 의미는 종살이하는 일에 붙잡히거나 대항하여 싸우지 말라는 의미다.
ejnevcw (1758): 에네코 → 메다
1722와 2192에서 유래; 붙잡히다, 즉 함정에 빠뜨리다, 함축적으로 원한을 품다,뒤얽히게 하다, 대항하여 싸우다 <막 6:19>동. to hold in, to be angry;
그러나 인간은 천성적으로 종노릇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 생활이 몸에 배어 광야에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과 같이..... 그리고 이것이 또한 원죄가 인류에게 준 원죄의 사고방식과 체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는 죄로 말미암은 종의 상태에서 벗어나야만 진정한 에덴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질서, 방종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아들로서 누리는 것입니다. 이 자유는 한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고 생활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날의 중요성을 가르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평안 즉 화목을 가르치고자 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키는 것은 율법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날에 어떻게 지내는가를 가르치므로 하나님 안에서는 일하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예배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매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평강을 누리면 매일이 안식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안식일은 생활을 말하는 것이지 어느 지정된 한 날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안식일은 장래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몸은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만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사는 동안 아예 그렇게 살아야만 사는 것 같이 느껴지는 그 애굽의식! 동일하게 수세기 동안 거쳐오는 동안에 몸에 밴 종교생활의 습관들! 그래서 그렇게 모이고 헌금하고 예배드리며 기도해야 믿음생활 하는 것 같은 그 율법적 의식 그것이 개혁을 막고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죄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stoicei'on을 가져다 주고 우리를 지금까지 그 stoicei'on에 묶어 놓고 억압하고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환경적으로, 물질적으로, 조건적으로 얽매어 놓았는가? 바로 이 억압에서 풀려나는 것이 참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초보적 교회는.....?】
히 5:11 “때가 오래무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자가 되었도다.
자, 지금부터 보십시다.
①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 초보적 교회입니다.
본문에서 누구는 어떤 사람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는 의식이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개념 속에 무너지지 않고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목사만이 하나님의 기름 부은 종이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고 섬기고 순종해야 된다 ??????라는 의식이 그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초보에 속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가 목사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시끄러운 것입니다. 목사는 실수할 수도 있고 범죄할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왜 성경에 나타난 지도자들이 실수를 하고 그런 지저분한 일을 했느냐?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큽니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닙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구약적 신앙상태에 있는 동안은 말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 즉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에게는 모두가 기름 부음 받은 종들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서를 따라 세운 종에게 협력하며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면에서는 얼마든지 하나가 되어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목사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그 사이에 끼면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목사의 사명은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중매장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목사(중매장이)가 좋으니 나쁘니 훌륭하니… 하는 얘기들은 부질없는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신랑 될 사람만 좋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의 신랑이 어떤 사람이길 원하는가만 마음속에 정하고 교회에서 말씀을 들으며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각 교회마다 신랑 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나름대로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 신랑이 어떤 사람인지를 성경에 소개하고 있는데 그 신랑에 대한 해석과 보는 각도가 달라서 오해하든지,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전하든지, 올바로 전하든지 할 것이므로 잘 분별하여 바른 신랑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목사라고 해서 추종하는 것은 모세를 따르는 이스라엘과 다름이 없고 그것은 구약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린 아이인 것입니다.
그 목사를 그렇게 훌륭하게 만드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그 목사 따라다닌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언젠가는 변질될 수도 있고, 죽어 없어질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시고 항상 살아 계신 분으로 나와 함께 하실 분이심을 잊지 말라!
그리고 목사는 자신이 만난, 또 자신을 그렇게 만드신 하나님을 진실하게 있는 그대로 나타내 보여주고, 소개하는 것으로 사명을 다하는 것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그 종의 권위가 떨어지느냐 절대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바른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자들은 오히려 더 사랑하여 협력하게 됩니다.
그런 종을 무시하는 신자가 나온다면 아직 뭘 모르는 어린 신자이든지 아니면 가짜라는 얘기 밖에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목사가 됐든지 신자가 됐든지 성장하는 자가 앞서가게 되어 있습니다. 신자들이 어떤 목사에게 은혜를 못 받고 혹은 양식을 못 얻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신자들은 자라나고 있는데 목사는 제자리라는 얘기일 수도 있고, 신자가 병들어 입맛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나보다 약하고 아직 깨달음이나 인격이 모자란 자들을 대하는 태도는 깔보거나 무시하지 말고 나만큼 키우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②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을 못 먹는 자가 된 것이 초보적 교회입니다.
젖과 밥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젖은 밥을 먹어서 소화가 되어 마시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밥은 땅에서 난 곡식을 익혀 씹어서 자신이 직접 소화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에를 들면 수요일 날 여기서 제가 가르치는 것은 젖입니까, 밥입니까?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목사의 설교는 보편적으로 젖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밥은 재료를 가져다가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먹는 것이 밥입니다. 그리고 그 밥을 먹고 소화해서 나오는 것이 젖입니다. 그러면 밥먹는 시간에는 조금 나오고 젖 먹는 시간에는 많이 나오는 것은 어린아이가 많다는 얘깁니까, 어른이 많다는 얘깁니까?
그러니 생각해 보라! 나 십일조 했다 나 주일 지켰다“나 집사됐어! 라고 자랑하고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 행위들, 이게 바로 A급어린 아이가 아니고 뭡니까?
철없는 얘들이 엄마! 나 걸레빨았어, 그래 잘했다 잘했어 개보다 났다. 오죽하면 개보다 났다고 하겠어요.
젖은 먹기는 쉬우나 힘을 쓰기는 어렵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일군은 밥을 먹어야 힘을 씁니다. 그러므로 젖 먹는 사람은 일을 못합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 밖에 없는 오늘의 교회 현실에서 일은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칭찬해주고, 추켜 주고, 상품이나 조건을 내걸고, 충동질하고…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해서 심리를 이용하고 자극하여 일시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 같은 교인들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혹은 자랑하고 싶어서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교회가 시끄럽고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고전 3: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전 3: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 brw'ma (1033): 브로마 → 밥
977의 어간에서 유래;(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음식, 특히 (의례적으로) 유대 법에 의해 허락되거나 금지된 품목, 고기, 음식물 <마 14:15;롬 14:15>중명. food;
전통적으로 혹은 이전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밥을 못 먹는 것이다.
bovskw (1006): 보스코
기본동사의 연장형 【977, 1016과 비교】;방목하다, 연루된 의미로 사료를 주다, (재귀형)풀을 뜯어먹다, 먹이를 먹이다, 돌보다 <요 21:15>동. to feed;
사람을 따라 행한다는 말은 사람을 숭배자로 여기고 따르는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peripatevw (4043): 페리파테오 → 행하다
4012와 3961에서 유래;주위를 걷다, 즉 두루 다니다, 상징적으로(동료나 숭배자로써)살다,행동하다,따르다, 종사하다 <요 5:8; 엡4:1>동. to tread about, walk;
육신에 속한 자의 특징을 말할때 시기, 분쟁, 불화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불화는 개역 성경(알랜드 판)에 빠져 있음)
☞ 육신에 속한 자
sarkikov" (4559): 살키코스
4561에서 유래;육체에 관한, 즉(연루된 의미로)육적인, 육신의, 또는(함축적으로)동물의,중생치 못한 <고전 3:1>형. fleshly, carnal;
savrx (4561): 사륵스
아마도 4563의 어간에서 유래;육체, 즉(엄격하게)동물의 고기(음식으로), 또는 (연루된 의미로)몸(영혼과 반대되는 것으로, 혹은 인간의 외적인 상징으로)육체, 또는 (함축적으로)인간성(【육체적이나 도덕적으로】연약성을 지닌),인간<롬 6:19; 엡 2:3; 히9:10>여명. flesh;
☞시기
zh'lo" (2205): 젤로스
2204에서 유래; 본래적 의미로 열, 즉(상징적으로) 열심(좋은 의미에서), 열정,나쁜 의미에서 남편의상징적으로 하나님의】질투, 또는 적, 악, 경쟁, 시기(함),열렬한 마음, 분개,질시 <롬 10:2;고후 7:7>중명. Zeal;
zevw (2204): 제오
기본동사; 뜨겁다(액체가 끓는, 고체가 빛나는), 즉(상징적으로)열정적이다. (열렬한), 타오르는 듯하다 <행 18:25>동. to boil;
☞불화
dicostasiva (1370): 디코스타시아
1364와 4714의 파생어에서 유래;불화 즉 (상징적으로)알력, 구분, 선동 <롬 16:17;갈5:20>여명. dissension;
div" (1364): 디스
부사. 1417에서 유래;두 번, 다시 <눅 18:12> Dis,<디스> 2203을 보라. 부. twice;
stavsi" (4714): 스타시스
2476의 어간에서 유래;기립(본래적 의미로는 서있는 행위), 즉(유추적으로)위치(존재), 함축적으로 대중의 봉기, 상징적으로 논쟁, 분쟁, 폭동, 소란 <눅 23:19;히 9:8>여명.arebellion, insurrection, standing against authority;
i{Jsthmi (2476): 히스테미
기본동사 stao<스타오>(동일한 의미의, 어떤 시제에서 대신 사용)의 연장형;서다(타동사 또는 자동사), 다양한 용례로 사용(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붙잡다, 거하다, 지적하다, 가져 오다, 이룩하다, 눕히다, 참석하다, 고정하다, 멈추게 하다, 서다(방관하다, 대표하다, 지속하다), 5087과비교 <눅 7:38>동. to cause to stand;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는 말로 다 표현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겉으로 표현되는 말씀보다 더한 깊이의 내용이 그 말하는 사람 속에서 소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소화되어 젖으로서 겉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삼층천에 갔다가 사람의 말로 가히 이를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도 이것이 훈련되지 않으면 후에 하나님 나라 그 분 앞에 들어가게 될 때 그 세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안 통합니다.
(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교만한 자가 말로만 판단하고 실제로 나타나는 결과(열매)가 제대로 판단치 못한 것은 능력이 없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은 지식으로 알아서 그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능력이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며 그 변화의 열매가 말씀을 안다는 자신에게서 나타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먹으며 사는 것인데 그 분의 양식을 받아들일 훈련이 안 되어 못 알아듣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은 말로써 통하는 것보다 먼저 마음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눅16장의 거지 나사로와 부자 사이의 구렁이 무엇입니까? 공간적인 거리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요 의식차원입니다. 부자는 그 상황에서도 자기 고통의 문제를 육신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세상에 있을 때 목마르면 물로 해결을 했거든요. 그러나 나사로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 골이 너무 깊고 차이가 나므로 의식의 교통, 마음의 교통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부자는 기갈을 무엇으로 해결하려고 했는가?
물인가? 말씀인가?
물로만 해결하려던 사람은 물이 없는 곳으로 가면 무엇으로 해결할 것인가? 그런 자리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고통 받는 자가 부자입니다. 거기가 바로 불구덩이입니다. 귀신도 물 없는 곳으로 두루 다닌다고 했죠?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떡으로만, 물로만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이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영의 양식과 생수가 없으면 살기 어렵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그런 것보다 육의 것을 더 원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③ 아직도 초보를 버리지 못한 사람들
초보의 내용들은 히브리서 6장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히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히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 죽은 행실을 회개함
그리스도인은 죽었다가 다시 산 자들입니다.
그런데 죽었을 때에 행하던 행실(윤리, 도덕, 양심의 가책들…)에서 돌이켜 하늘의 법인 사랑으로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양심의 고통이란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꼭 해야 될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받는 심적 고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더 이상 원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갈이나 협박 혹은 강제적인 어떤 의무를 지게 해서 우리의 것을 뜯어내시거나 어떤 행위를 강요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것이 죽은 행실입니다.
아직도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끝없는 반복일 뿐입니다. 절대로 해결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죄 사함, 참된 구속을 받아야만 해결되지 그러기 전에는 끝없는 반복일 뿐입니다.
왜 인간은 율법적으로 완전해 질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내가 해결한다 할지라고 어떤 단계에 이르면 또 문제가 생깁니다.
어린아이 때에는 어린아이 때 대로 문제가, 청소년 때는 그때대로 문제가 생깁니다. 어른이 되면 그런 문제들이 다 해소가 되어버려야 하는데 계속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반복일 뿐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과 사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고통입니다. 그것이 쇠사슬입니다. 그것을 우리의 목에다가 걸고 계속해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너!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죽어....
너는 죄를 짓는거야.....그러면서 우리에게 율법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렇게 끌려가다가 보면 죽도록 해 놓고 나서도 결과적으로 가면 하지 못 하던 것이 산더미 같이 쌓이고 맙니다.
그때가 아차!
사람들이 참으로 이상한 것은 그 사람의 공에 대해서는 따질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는 과만 따집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들 지금까지 예전 교회에서 그렇게 죽도록 충성 봉사를 했지만 그것을 따져줍니까, 안 따져줍니까? 이 양반이 어떻게 교회를 반대하고 목사를 반대하고 떠났는가 하는 과만 따질려고 합니다.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은 그동안에 수고하고 애쓴 것은 다 없어져버리고 죄만 쳐지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이 가져다주는 선물입니다. 이것에 얽메이면 평생토록 종노릇 하고도 끝에 가서는 좋은 소리도 못 듣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면 과는 피로 다 속죄함 받고 공의만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가서 상급을 받지마는 율법아래 종노릇하던 사람들은 죽도록 고생하고도 결과가 과만 남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율법아래 있는 사람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큰 차이점입니다. 죄는 우리의 과만 기억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빨리 해방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닦는다는 말은 다시 그 자리로 내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나아가라는 말은 완전을 향하여 참고 견디며 잘 감당하여 돌진하라는 의미입니다.
fevrw (5342): 훼로 → 나아가라
기본동사 oio,<오이오>와 enegko, <에넹코>처럼 기원과 형이 틀린 동사들이 어떤 시제에서만 대체어로 사용);참는다, 혹은 감당하다(매우 다양한 적용에 있어서, 문자적이고 상징적으로, 다음과 같이), 되다, 참다, 생기게 하다, 감당하다, 오다, 몰다, 계속하다, 놓여지다,인도하다, 움직이다, 도달하다, 돌진하다, 지탱하다 <마 14:11; 눅 23:26; 요 15:2>동. tobear, bring, lead, to endure;
ⓑ 하나님께 대한 신앙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사도신경)
야고보서에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마귀도 믿고 떤다고 했습니다.(약2:19) 귀신입니다
성경에서 누가 더 먼저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았습니까? (막5:6)
귀신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멸하려 여기 오셨나이까?
제자들은 바다 가운데서 풍랑을 만나가지고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주무시기만 하십니까?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하여 의심하느냐, 나중에 잔잔해 지고 나니까...이가 누구시길래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그렇다면 하나님을 안다고 구원받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제자들은 몰랐을 때에도 귀신들은 더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창조 과학회가 진화론과 싸우며 기독교의 하나님을 변증하느라고 수고를 많이 하는데 그것 역시 초보수준입니다. 창세기의 기사는 이 세상 창조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얘깁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들어 놓고 이것은 다 내 것이야, 내가 만들어 놓은 거야, 그러니까 건드리지마! 라는 식으로 싸우는 분으로 묘사한다면 얼마나 유치한 하나님을 만드는 꼴입니까? 마치 어린 아이들이 사소한 것 가지고도 이건 내 꺼야! 하며 챙기는 것과 같은 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속상한 것이 뭐냐면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말씀이 하나님이 이 세상 만물을 내가 만들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니 이거 참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찌....
하나님의 창조한 사실을 찾으려면 창세기 보다는 욥기서나 시편에서 찾는 것이 더 옳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천지가 뭡니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그 다음에 흑암이 깊음(무저갱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성령은 물 위에 운행하시더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빛이 뭐냐고 그러니까.....적외선이래요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예) 하나님이 왜 하늘에 계실까?
명동 땅 한 평이 얼맙니까?
이 땅에 사람들이 땅에 경계선을 그어 놓고 모두 자기 땅이라고 등기해 놓고, 법으로 만들어 자기 것으로 삼아 놓으니....하나님이 배차 차고 기가 찰 노릇이 아니겠어요? 아니! 누구 것을 가지고 지금 지꺼라고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야! 이놈들아 이 땅이 다 너희들 것이라고 하면 나는 어디가 있으면 되냐? 하나님이 서 계실 때가 없네....그래서 하나님이 하늘에 사시는가봐. 그런 하늘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만들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믿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헬렐레 하실 분도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영광 받으실 뿐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은 땅 뺏기 하시는 분이 아니니까? 제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 속에는 하나님이 계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말씀으로 하늘이 된 사람들 속에만 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세례
얼마 전에 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는데.....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믿느뇨? 예
두 번째 침례교 윤리와 교리를 절대로 준행하겠느뇨? 예
침례교의 윤리와 교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러시아가 망할 때 희랍정교의 거두들이 모여서 뭐한 줄 아십니까?
바늘끝에 천사가 몇 마리나 앉겠느냐.
한 쪽에서는 볼세비치 혁명이 일어나서 교회문을 닫고 쳐들어 오는데도 한 쪽에서는 그것가지고 따지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세례를 물을 찍어서 바르던지 물 속에 잡아넣었다가 꺼내든지 그것이 뭐 그렇게 중요하단 말입니까? 그렇게 해서 구원 받는다면 평생 물 속에서 살지 뭐하러 나와.....왜 그런 것을 가지고 정통 이단을 따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초보라는 것입니다. 약하고 천한 짓이란 말입니다.
세례는 죽는 것이고 부활은 사는 것입니다.
ⓓ 안수
안수는 왜 했을까? 안수가 중요한가?
오늘날도 안수가 필요한가?
ⓔ 죽은 자의 부활
ⓕ 영원한 심판
이상은 한 마디로 사도신경의 내용이고 서론을 뺀 조직신학의 내용들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오늘날과 같은 순서나 예식으로 예배드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모든 의식들은 천주교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순서나 바꾸고, 몇 가지 형태나 변형시켰을 뿐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보적 교회의 특성은
성경을 억지로 푼다는 것입니다.
(벧후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억지로’로라는 난외주를 보면 ‘교묘하게’로 되어있습니다.
◆ streblovw (4761): 스트레블로오 → 억지로 풀다
4762의 파생어에서 유래;비틀다, 즉(특히)(고문으로)괴롭히다, 상징적으로 이탈하다,억지로 풀다 <벧후 3:16>동. to twist;
strevfw (4762): 스트렙호
5157의 어간에서 유래된 강세형;틀다, 즉 반대로 돌리다(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바꾸다, 돌리다 <눅 7:44>동. to turn;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의 작품이므로 성령에 가르치심으로 풀어지게 되어있고 풀어지면 성경 전체가 상호관계성을 가지고 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양식(떡)을 여러군데에서 말을 하고 있는데......,
(마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요 6: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마태복음 4:4절에서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하는 것과 마태복음 6:11절에서 일용할 양식도 아르토스(떡)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양식과 일용할 양식은 자동적으로 요한복음 6장의 생명의 떡으로 연결이 됩니다. 생명의 떡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이십니다. 이것은 자동적으로 풀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성경을 이런식으로 풀면 하나도 무리가 없습니다. 왜....성경 자체가 떡에 대해서 자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가 일용할 양식을 어떻게 풀고 있습니까? 육신의 떡도 되고 하나님의 말씀도 되고.....
요한복음6장에서 오병이어를 가지고 분명히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떡을 먹은 사람들이 예수를 누구 삼으려고 쫓아다녔습니까? 세상임금삼으려고 쫓아다니지 않았습니까? 그때 요6:27절에서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성경은 이렇게 분명하게 너희가 찾는 육신의 떡이 아니라 영생의 떡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의 떡도 되고 하나님의 말씀도 된다고 하니 그것은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함입니다.
왜....그렇게 해야 축복론으로 연결이 되니까.
사람들이 축복을 꽤나 좋아하니까.
그런식으로 풀어놓고 보면 이 떡 때문에 이 떡을 잘못 알고 믿는 사람들이 이 떡에 관한 문제 때문에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영생하도록 있는 말씀의 떡입니다.
그러면 이 떡을 육신이 양식이라고 했을 때 일어나는 문제가 뭐냐...?
육신이 떡 문제가 해결이 된 사람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당연히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생명과는 이미 관계가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 떡을 잘못 알고 잘못 믿었기 때문에 이 사실이 그 사람들에게 이루어지지 못해서 생명의 떡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지 못했다면 그 영혼은 누가 책임을 질 것입니까? 이것을 지금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1장후반부에서 마지막으로 그 말을 합니다. 이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사람이요 예수님에게 배신을 때렸던 사람입니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1대 교황이기도 합니다.
(벧후 3:16 - 18)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벧후 1:20)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아전인수식풀이) 풀 것이 아니니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성경은 사적인 상식이나 견해로 풀면 안 됩니다. 자기 머릿속이나 생각 속에서 풀면 아전인수식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반드시 성령의 조명을 통하여 해석되어야 합니다.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 하느니라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비밀, 신비한 것들을 다 찾으시고 조사하실(통달의 뜻) 수 있으므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사사로이 푸는 예를 들어 보도록 합시다.
예)마6:19~ 보물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 qhsaurov" (2344): 데사우로스 → 보물
5087에서 유래; 저축, 즉 부(문자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보물 <막 10:21;눅 12:33>남명. store-house;
tivqhmi (5087): 티데미
기본형 theo<데오> (어떤 시제에서 대체어로만 사용되는)의 연장형;배치하다(광범위한적용에 사용, 문자적으로 비유적으로; 본래적 의미로 수동태와 수평적인 태도에 사용, 반면에 수직적이며 능동의 위치를 의미하는 2476과 다르며, 재귀적이고 극한 패배를 표현하는 2749와 다른), 충고하다, 지적하다, 굴종하다, 맡기다, 이해하다, 죽다, 무릎 꿇다, 두다(옆에, 아래에, 위에), 만들다, 규정하다, 의도하다, 진열하다, 내려앉다 <마 24:51; 눅5:18>동. to put, place, lay;
‘보물’이란 단어는 ‘쌓아 두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보화의 개념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보화를 재물(물질)로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 보화를 헌금으로 생각을 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서 그 보화가 하늘에 쌓아진다고 인식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보화를 어떻게 생각을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보화는 그리스도 자신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가 보화인 사람은 보화가 그리스도로 보이는 것이고 그것이 보화로서의 가치성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을 때는 자연히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이 보화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보화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서 그가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정확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보화를 그리스도로 알고 그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기의 보화를 하나님 앞에 바친다는 개념에서 헌금을 하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본문의 보물을 재물로 해석한다면 이어지는 24절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여기에 모여서 이 말씀에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개념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보화로 삼자고 모여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그토록 많은 교회가 있는데 왜 우리가 이렇게 따로 또 공부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이 보화를 세상 재물로 푸는 자들 때문에 즉 성경을 사사로이 푸는 자들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위의 말씀의 뜻은 하늘의 보물과 땅의 보물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재물을 하나님 섬기듯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뜻입니다. 재물을 섬기든지 하나님을 섬기든지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보물 그러면 재물을 먼저 떠올리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의식 속에 재물이 보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안에 재물이 보물이면 그 빛이 어두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님은.....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이 곧 나에 대해서......그러니까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면 반드시 거기에서 누구를 만나야 합니까?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이 말씀 속에서 스스로 그리스도, 말씀, 생명을 발견하기까지 이끌어주고 안내해주고 중매를 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종들이 할 일입니다. 그리고 중매가 끝났으면 어떻게 합니까? 보내줘야 합니다.
그러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눅12:32과 마19:21을 봅시다.
(눅 12:32)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눅 12:34)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자기에게 있는 재산을 정리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하면 그 공로로 하늘에서 더 큰 재물로 복을 준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소유를 팔아 구제함으로써 그 행위가 하늘에 쌓이는 상급이 되고 그것이 곧 보물이 된다는 의미입니까? 아닙니다. 32절 말씀대로 그 나라가 보물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 나라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곧 천국이요, 왕권을 가지고 오시는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팔라고 하는 소유는 쌓아두어야 할 재물이 아니라 치워버려야 할 쓰레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소유는 무엇이든지 가지고 있을수록 참 보화를 받는 일에 장애만 될 뿐입니다.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헌금은 하늘에 쌓이는 보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상식과 이성의 문제이며 하늘의 보화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헌금이라도 안 해서 교회가 유지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이상만 있고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다 라고 반박한다면 차라리 그런 교회는 문을 닫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돈으로 유지되는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것은 현실을 보장받고 떠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보화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나님이요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벧전 2:7~8)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 timhv (5092): 티메 → 보배
5099에서 유래; 댓가, 즉 지불된 돈, 혹은(추상적이고 집합적인)귀중품, 분석적으로 평가 (특별히 높은 수준의),위엄, 존귀, 값, 존경 <행 5:3; 히 2:7>여명. value;
tivnw (5099): 티노
기본형 tio<티오>(어떤 시제에서 대체어로만 사용)의 강세형;값을 치르다, 즉 형벌로써 벌을 받다<살후 1:9>동. to pay a penalty;
(잠 20:15)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 yliK] (3627): 케리 → 보배
3615에서 유래; 준비된 어떤 것, 즉 어떤 기구 (용도, 도구, 옷 그릇, 또는 무기와 같은): 방패(【방패를 든 자),주머니, 운반 차, +제공하다, 가구, 보석, 만들어진 것, ×서로서로, 속한 것, 항아리, +현악기, 부대, 악기, 물건, 도구, 그릇, 기물, 무지, +무엇이든지
hl;K; (3615): 카라
기본어근; 끝나다, 자동사나(멈추었다,끝나다,멸하다) 타동사로(완성하다, 준비하다, 소비하다) :- 성취하다, 멈추다, 소모하다(써버리다), 결정하다, (완전히)파괴하다, 완료되다(완료되었을 때에), 끝마치다(…의 끝이다), 만료되다, 실패케 하다, 기진하다, 끝마치다, 성취하다,×충분히, ×취하다, 떠나다, (떠나버리다), 동경하다, 생기게 하다, 완전히 획득하다, 일소하다, 소비하다
(사 33:6)너의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너의 보배니라
◆rx;wOa (214): 오짜르 → 보배
686에서 유래;보관소:- 병기고, 지하실, 저장, 저장(창고), 보물(고)
rx'a; (686): 아짜르
기본어근;저장하다 :- 아짜르
(벧후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성경을 사사로이 풀므로 거짓 선생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상고하다 보면 반드시 말씀되신 그리스도가 발견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은 생명을 만나게 하는 중매장이 노릇을 잘해야 되는 것입니다.
【장성한 교회】
장성한 자가 누굽니까?
1.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요6:41~45)
(요 6:41-45)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여러분들 옛날에 영해라는 말씀을 많이 들어보셨죠...?
아! 저거 성경을 영해를 하는구만.....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 저는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왜 그러면 당신들은 성경을 육해 합니까? 라고 묻고 싶습니다.
하늘로서 내려왔다,그러니까 → 내가 그의 부모를 아는데 어찌 하늘에서 왔다고 하느냐?(바리새인) 이것이 바로 육해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영이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영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영해를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비주의자들이 말하는 영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이런 인식의 차이가 둘 사이에 낀 큰 구렁과 같다는 것입니다. 갈수도 없고 올 수도 없는....사람이 제일 답답한 것은 부부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것과 하나님과 말씀이 안 통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저는 부부싸움을 하면 한 시간을 제대로 못갑니다. 말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디거든요. 부부싸움 하고 몇 칠씩 말 안하는 사람들 회개하세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이 말씀이 바로 44절이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사건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것을 체험하지 못하면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기를......죽은 자들(복수)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이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까?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까? 무덤에서 부활하셨죠. 역사적인 부활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사신 그리스도는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내게 오는 자를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니
아버지께서 내게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그래서 요6장에서...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에게 내가 말씀을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
(요 6:45)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절의 저희는 아버지께서 나(그리스도)에게 주신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그래서 와서 무엇이 됩니까? 한몸이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긍휼하심을 따라 은혜를 입어 그리스도께 인도되면 그들은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활(=거듭남)을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요 8:25)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처음부터는 언제부터를 말하는 것입니까? 요1:1의 ajrchv (746)때부터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태초부터입니다.
(요 8:28)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왜 그때는 이런 것들을 알게 됩니까?
그 때가 되면 믿는 자들은 체험을 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 안에 하나님이 계시므로 확증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보혜사 바로 이 분이 그리스도로서 우리에게 오시는 분이며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 성령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분이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로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crivsma)이 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crivsma)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crivsma)안에 거하라
주가 바로 (crivsma)이고 크리스마가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기름 부음으로 번역된 단어는 원어로 crivsma (5545;성령의 공급)입니다. 이것의 복수가 크리스마스(기름부음들)로 크리스마는 성령이요 성령은 곧 말씀이신 주십니다.
(갈 1:11 -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이것은 바울의 직접적인 체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바울에게 나타내셨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으로...... 말씀으로입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각나게 하시므로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 가 알리라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갈 1: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갈 1: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서 직접 가르치실 때 즉 아라비아에 있을 때를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혈육과도 의논하지 않았고, 먼저 사도 된 선배들과도 만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 사람에게 배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자기 안에 계신 기름 부음을 통하여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조용한 골방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궁구할 때 깨달은 것이고 주께 받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부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바울 개인의 사건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사건인 것입니다.
(엡 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 하였느니라
(엡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분명히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 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며
(사 54:14) 너는 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 아니할 것이며 공포 그것도 너를 가까이 못할 것이라
여호와의 교훈의 난하주를 보면 제자로 되어 이“제자’라는 단어는”배우다’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여호와의 가르치심을 받을 것이니라, 제자가 될 것이니라.
dWMli (3928): 리무-드 → 교훈
limmud, 리무드; 3925에서 유래;교훈을 받은:- 익숙한 자, 제자, 학식 있는, 가르침 받은
dm'l; (3925): 라마드
기본어근; 본래의미는 뾰족한 막대기로 찌르다, 즉(함축적으로)가르치다(동방에서 자극을 주기 위해 사용하는 막대기):- 익숙한(익숙치 못한), ×부지런히, 노련한 자, 교훈하다, 배우다, 능숙한, 가르치다(가르치는 자, 가르침) limmud. 리무드 3928을 보라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가 제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참 내 제자가 되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분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자들만이 그 분의 제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 인간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는 그의 제자일 뿐 진정한 주의 제자가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장성한 자는 설명으로 되어지지 않고 훈련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부지런히 경건의 연습을 해야하며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고전 1:11-13)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초보적 교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에 하나가 나는 누구에게 속했다 라는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즉 어느 사람에게 속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쟁으로 나타나 당파가 갈리고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주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 바울은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사건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 교파들입니다. 이 인간 중심의 교회 모습을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가 인간 중심이 되면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되고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롬 1장에서 그렇게 강조한 말입니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롬 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이 한 분뿐이라면 왜 꼭 자기 교파를 강조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의정부 사람이 여의도까지 가야 합니까?
그러면 그 사람의 하나님은 여의도에만 계신 것 아닙니까?
야곱이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하나님이 거기에만 계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벧엘에 와서 돌 베게를 하고 자는데 꿈에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은 것을 보고 뭐라고 합니까? 여기가 하나님의 문이거늘 내가 알지 못했도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아버지 집에만 계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기도 계시네......우리 한국교인들이 하나님이 자기 마음속에 계신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아니, 자기 마음속에 영접해야 된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이 자기 안에서 들려 올 때까지 인도함을 받는 일을 교회에서 도움 받고, 모여서 함께 하는 일은 무엇인지 깨달아 그 일에 힘을 합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유혹에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말씀을 붙잡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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