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히 9:7, 18)
1. 구약의 가르침
아벨은 양떼들 가운데 첫 새끼를 여호와께 가지고 와서 제사를 드렸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예배행위에서 피가 흘려졌던 것이다. 우리는 히브리서의 “믿음으로” 아벨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를 드렸다(11:4)는 말씀을 통해 그의 이름이 성경에서 믿는 자라고 호칭하는 자들에 대하여 기록하는 서열의 맨 첫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아벨은 의롭다”는 증거를 얻은 것이다.
그 증거는 보혈이 없이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으며, 신앙으로 그분과 교제를 할 수도 없으며, 또한 그분의 마음을 즐겁게 해 드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그 뒤를 이어서 오는 16세기간의 기간에 짤막한 요점만을 제시하고 있다. 그 후에 바로 대홍수가 왔다. 그것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이었으며 그로 인해서 인류는 멸망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놀라운 물세례로부터 세계를 이루셨다. 그 새로운 세상도 피로 씻음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사실이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맨 처음에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아벨과 마찬가지로 노아도 피와 더불어 출발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죄가 또다시 세상에 만연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그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전적으로 새로운 기초를 놓으셨다. 그 역사는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그리고 기적적인 이삭의 출생으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배할 백성을 이루는 일을 착수하셨다. 그러나 이 목적 역시 피를 흘리는 것을 떠나서는 성취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과 언약 관계를 시작하셨으며, 아브라함의 신앙은 이미 혹독하게 시험을 당했다. 그는 그 시험을 견뎌 냈으며 그로 인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로 여기셨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약속의 아들인 이삭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했으며, 그 이삭의 죽음으로만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했다.
이삭은 반드시 죽어야만 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누구를 막론하고 오직 죽음으로만 자아의 생명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취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반드시 이삭을 제단에 올려놓아야 했다. 그것은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한 생명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는 신적인 진리를 알리는 계시였다. 그의 생명이 보호되었다. 어린양 한 마리가 이삭 대신 제물로 드려졌다.
이삭으로부터 다시 400년이 흘렸다. 그리고 이삭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루었다. 하나님께서 애굽 나라의 속박으로부터 그의 백성을 구출해 내심으로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장자로 선택된 민족이라는 사실이 인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런 역사는 피를 흘림으로 이루어졌다.
모리아 산상에서 한 민족의 조상이 될 한 사람을 위해서 이루어진 피의 역사를 이제는 그 민족이 반드시 체험해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뿌림으로, 또한 “내가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가리니”라는 말씀과 함께 끊임없이 지속되는 의식인 유월절을 제정함으로, 생명은 오직 대속자의 죽음으로만 구원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서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기초로서 율법을 주셨던 것이다. 그 언약은 이제 시행되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서 9:7의 “피 없이는 아니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희생의 피가 제단에 뿌려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 후에,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그 언약서에서 뿌려졌고, 그 피를 일컬어 “언약의 피”라고 선포하였던 것이다(출 24장).
그 언약이 그 자체의 기초와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은 바로 이 피 안에서였다.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의 언약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것도 바로 이피로써만 가능했다. 에덴입구에서, 아라랏 산에서, 그리고 모리아 산과 애굽에서 미리 보여 준 이 모든 것들이 이제 시내 산 밑에서 가장 엄숙한 방법으로 재확인 되었던 것이다. 피가 없이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접근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모리아 산에서는 피를 흘림으로 생명이 구속되었다. 애굽에서는 피를 문설주에다 뿌렸다. 그러나 시내 광야에서는 피를 사람들에게 직접 뿌렸던 것이다. 접촉이나 단계적으로 가까워지고 그 사용은 점점 더 능력이 있어졌다. 언약이 확정된 바로 직후에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게 하리라”(출 25:8)는 명령을 하셨다. 그들은 이제 언약의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는 넘치는 축복을 향유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가장 사소한 일까지 돌보심으로 그 성소를 정리하는 것과 관리하는 것에 관한 지시를 하셨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피가 이 모든 것의 중심이며 전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거룩하신 왕이 계시는 지상 성전의 현관 가까이에 이르게 되면 맨 먼저 눈에 뜨이는 것에 번제단이다. 그 번제단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계속해서 피가 뿌려진다. 그리고 성소에 들어가게 되면 가장 눈에 잘 띄는 것이 금으로 된 향단이다. 그 향단도 휘장과 함께 계속해서 피 뿌림을 받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비치고 있는 황급 보좌도 1년에 한 번씩 피 뿌림을 받았다. 대제사장이 매년마다 한 번씩 혼자 피를 가지고 거기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했던 것이다.
2. 예수님의 가르침
주님이 오심으로 옛날 일들은 지나갔으며 모든 것은 이제 새것이 되었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이 땅에 오셨으며 그래서 그분은 우리에게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신적인 말씀으로 제시해 주실 수가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오심을 선포하면서 그분에 대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참으로 그분이 지니고 계시는 이중적인 사역을 수행하는 것에 대하여 말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으로 그분을 묘사했다. 성령이 부어지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어린양의 보혈이 부어져야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자기가 죽는 것이 이 세상에서 오신 목적이라고 직접 확실하게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 죽음은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인 구속과 생명의 필요 조건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죽음과 함께 자신이 보혈을 흘리는 것이 필요 불가결함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6장)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우리의 잃어버린 생명을 회복해 주셨다. 그리고 주님은 친히 우리를 위해서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이일을 하실 수가 있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선포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가 그 보혈의 능력을 받는 참여자가 되게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 자신도 우리가 그 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비록 영원한 생명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어 놓으신 것이라 할지라고 우리로 하여금 그 영생을 갖게 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자기의 생명을 많은 사람을 위한 속전으로 내어줌으로 이루실, 그분 생애의 위대한 사업을 완성하시기 전에, 거룩한 성만찬을 배설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태복음 26:28)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죄 사함이 없는 곳에는 생명이 없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신의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를 위해서 새 생명을 취득해 놓으셨다. 주님은 그분이 흘리신 보혈을 우리가 마시기를 요구하심으로 그분이 지니신 생명을 우리와 함께 나누어 가지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분의 “피를 마심으로” 우리는 그분의 생명을 갖게 된다. 그 보혈은 우리를 악에서 해방시키는 속죄를 위해 흘려진 것이다. 믿음으로 우리가 마시는 그 보혈은 그분이 지니고 계시는 생명을 우리에게 내려준다. 그분이 흘리신 보혈은 먼저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보혈이다.
3. 성령의 감동으로 말한 사도들의 가르침
우리 주님이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에는 더 이상 그분의 육체가 사도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상징적인 모든 것은 지나갔으며, 상징적으로 표현되었던 영적인 깊은 진리들을 가리웠던 베일이 벗겨졌다. 히브리서 어디에서나 성령께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진정한 영적인 면을 강조한 곳에서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이 그 성경 말씀에 새로운 가치를 보여해 주는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다.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히 9:12).
또한 14절에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10:19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12:24에서는 “새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13:12, 13에서는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그에게 나아가자”라고 했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13:20).
이러한 모든 성경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피야말로 전체구속의 중심이 되는 능력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피 없이 아니함으로라는’ 사실은 구약에서와 같이 신약에서도 똑같이 유효하다.
바울 사도는 기록하기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 3:24, 25), 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롬 5:9)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그는 선포하기를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라”(고전10:16) 그는 또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 가운데서 그와 똑같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십자가”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한편 골로새서에서는 그 두 가지 말을 연합하여 “그의 십자가의 보혈” 이라고 말하고 있다(갈라디아서6:14, 골로새서1:20).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에베소서 1:7) 그리고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느니라”(에베소서 2:13)고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베드로전서 1:2)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1:19)구속되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럼 이제 사도 요한이 그의 “어린 자녀들”에게 어떻게 확신을 시키고 있는가를 보도록 하자. 그는 요한 일서 1:7에서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한다.
이 모든 사도들이 한결같이 보혈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영원한 구속이 그 보혈의 능력으로 성취되었으며, 그 능력이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각자에게 적용이 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그 보혈 안에서 영광을 돌리는 데 관하여 이 모든 사도들이 다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4. 그러나 이러한 표현은 단지 지상의 언어로 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 하늘 나라의 언어로는 무엇이라고 표현하겠는가? 우리는 과연 미래의 영광과 보혈에 관하여 기록된 요한 계시록에서는 무엇을 배우는가?
보좌 위에서 요한 사도는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계 5:6)고 묘사되는 광경을 보았다. 장로들이 그 어린양 앞에 끓어 엎드려 다음과 같은 새 노래를 부르는데, “...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음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8, 9절)라는 내용이다. 그 후에 그는 아무도 셀 수 없는 큰 물리를 보고 그들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의 말에 대답하기를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7:14)고 했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계 12 :11)
하늘나라에서 요한 사도가 본 대로 이 어린양의 보혈이라는 말을 빼놓으면 하나님의 위대하신 목적과 하나님 아들의 엄청난 사랑과 그분의 구속의 능력과 그리고 구속받은 자들이 드리는 기쁨과 감사를 한마디로 요약해서 묘사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것이다. 성경의 처음부터 맨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에덴동산이 철폐된 때로부터 하늘나라 시온성의 문이 개방되기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과정을 통틀어서 성경 전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황금 실이 있으니, 그것은 처음과 나중을 연합시키며 죄가 파괴해 버린 것을 영광스럽게 회복하는 바로 보혈이다.
1. 하나님에게는 보혈을 통하지 않고 죄나 죄인을 다루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죄를 정복하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을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은혜의 모든 신비들은 바로 이 성육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그 성육신을 통해서 그분은 우리의 육체와 피를 자신이 입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의 모든 신비들은 또한 자신을 아끼지 않고 송두리째 완전히 죽음에 복종시킨 그 특별한 사랑과 죄의 대가인 형벌이 치러지기 전에는 결코 죄가 용서될 수 없는 그 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주님께서 자기의 피를 우리에게 주시면서 마시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생명 가운데서 진정한 하나 됨에 그 신비의 초점이 집중되어 있다. 더욱이 “우리를 구속하여 하나님께 드리시고”라는 찬양을 하는 영원한 기쁨에 그 신비의 초점이 전적을 집중되어 있으니, 이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고귀한 보혈로부터 우리에게 반사되는 놀라운 빛의 광선이다.
2. 그 보혈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처럼 우리의 심령 가운데서도 똑같은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관계하시기 전, 아니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부터 마음속으로부터 그 보혈로 인하여 기뻐하셨다. 그 보혈의 능력 가운데 행하면서 영광을 돌리기 전에는 우리의 마음도 절대로 안식을 찾지 못하며 구원을 찾지 못할 것이다. 구속함을 받은 자들도 보혈이 증거로 존재해 있는 성전의 은혜보좌 위에 하나님께서 좌정하여 계시는 한, 보혈을 영적인 눈으로 끊임없이 바라보며 사는 삶 만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과 영광으로 채워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해 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3. 보혈의 온전한 축복과 능력을 우리의 시간과 정력을 모두 투자하여 충분히 체험하자
예수님의 보혈은 가장 위대하고 영원한 신비이며 가장 심오한 하나님의 지혜의 신비이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희생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바치시고 보혈을 흘리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우리에게도 생명의 희생을 가능한 것으로, 또한 장려할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보혈의 감추어진 가치는 자기희생의 정신이다. 그 보혈이 심령에 진정으로 닿으면 자기희생의 정신이 그 심령 가운데서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혈이 마련해 놓은 새로운 생명의 온전한 능력으로 우리 자신과 우리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와 신앙으로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복종시켜서 우리의 생각이나 우리 자신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거나 붙잡지 않도록 하자. 오직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말자. 온전히 송두리째 하나님께 복종시키자.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 두신 영광스럽고 복스런 생명을 내려 주실 것이다.
4. 주님께서 보혈의 능력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도록 우리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보혈이 이루어 놓은 축복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은 확신있는 믿음이다. 보혈을 흘리셨으며 영원히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그 보혈의 능력을 입게 하시는 제사장으로부터 보혈을 절대로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를 위해서 보혈을 흘러 주신 그분이 어찌 매순간마다 그 보혈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는가! 이러한 일을 하시도록 우리는 전적으로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자. 당신의 눈을 활짝 여시고 보다 깊은 영적인 통찰력을 당신에게 주시도록 그분을 의지하자. 하나님께서 당신을 가르쳐 그분이 보혈을 생각하신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분을 의지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비밀한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시어, 그 능력이 당신 안에서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게 해주시도록 그분을 의지하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영원하신 그분의 대제사장직을 의지하여 당신 안에서 그의 보혈의 충만한 공로를 끊임없이 역사하시게 하자. 그리하여 당신의 전생애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거룩한 성소에 거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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