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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세기 종교 개혁의 선구자들/ 종교 개혁사( 6 )

하나님아들 2014. 1. 26. 21:44

언론의 자유와 문서 배포에 대한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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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법왕교가 장기간에 걸쳐서 최상권을 잡고 있는 동안 이 세상은 암흑으로 덮여 있었지만, 진리의 빛은 아주 소멸되지 아니하였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의 증인들,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이심을 확실히 믿고, 성경을 인생의 유일한 지침으로 삼고, 참 안식일( 安息日 )을 거룩히 구별하여 지키는 증인들이 있었다.

세상이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은혜를 입었는지에 대하여 후세의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단자로 낙인이 찍히고, 그들의 동기는 비난을 받고, 그들의 품성은 중상을 받고, 그들의 저서들은 압수당하고 오전(誤傳)되고 삭제당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굳게 서서 오는 세대를 위한 신성한 유업으로써 그들의 순결한 믿음을 대대로 물려가며 간직하였다.

로마교가 최상권을 쥐고 있던 암흑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당한 역사는 모두 하늘에 기록되어 있지만 사람의 손으로 기록된 것은 너무도 적다. 그들을 박해한 자들의 비난 이외에는 그 사적에 대하여 기록된 것이 없다.

법왕교의 교리와 명령에 반대하는 자들의 흔적과 영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로마교의 정책이었다. 로마교는 이단적인 것은 사람이든지 서적이든지 간에 박멸하고자 하였다.

법왕교의 교리의 권위에 대하여 의혹이나 의문을 품는 사람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생명을 빼앗기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로마교는 또한 그들의 교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행한 잔인한 행동에 대한 모든 기록을 말살해 버리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법왕이 주최한 종교 회의들은 이러한 종류의 기사를 포함한 서적들을 다 태워 버리도록 결의하였다. 62 인쇄 기계가 발명되기 전에는 서적들의 수가 적었을 뿐만 아니라 그 형태도 보존하기에 극히 불편하였으므로 로마교도들은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방해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로마교의 관할 아래 있는 교회는 언제까지든지 양심의 자유를 누리면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지낼 수 없었다.

법왕권은 권세를 쥐자마자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억누르고자 마수를 뻗쳤다. 그리고 교회들은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그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영국에 있던 초기 그리스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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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매우 일찍부터 순수한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렸다.
최초의 수세기 동안에 영국인들이 받아들인 복음은 로마교의 배교로 부패되지 않은 복음이었다.

영국의 최초의 교회들이 로마로부터 받은 유일의 선물은 멀리 떨어진 해안에까지 미친 이교 황제들의 박해뿐이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국에서의 핍박을 피하여 스코틀랜드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진리는 마침내 아일랜드에까지 퍼져갔는데, 그 나라들은 모두 이 진리를 환영하였다.

색슨족이 영국을 침략하게 되자, 이교도들이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정복자들은 그들이 정복한 피정복민에게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산과 광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은 한동안 가려졌으나, 계속 타고 있었다. 일세기 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나라에까지 퍼져간 빛은 스코틀랜드에서 밝히 빛났다.

아일랜드로부터 경건한 콜룸바(Columba)와 그의 동역자들이 와서 각처에 흩어져 있는 신도들을 적막한 아이오나 섬으로 모았다. 그리하여 그 섬은 그들의 선교 사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전도자들 중에 성경상 안식일( 安息日 )을 준수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진리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아이오나 섬에 한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그 곳에서부터 스코틀랜드와 영국은 물론이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에까지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로마는 영국을 주시하고, 그것을 자기의 패권 아래 넣으려고 결심하였다. 6세기에 법왕교의 선교사들은 이교도인 색슨족을 개종시키고자 하였다. 63 그들은 교만한 야만인들의 환심을 사서 수천 명을 로마교의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이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갈 때 법왕교의 승려들과 개종자들은 순수한 그리스도인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양자 간에는 현저한 대조가 나타났다.

전자는 법왕교의 미신과 허세와 교만을 나타내는 반면에 후자는 단순하고 겸손하며, 품성과 신조와 행동 등이 모두 성경과 부합됨을 보여 주었다.

법왕의 사절들은 이 그리스도교회들에게 법왕의 최상권을 인정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온유한 태도로, 그들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기를 열망하고 있지만 법왕이 교회에서 최상권을 가질 자격이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피차에 대하는 것과 같은 겸손으로 그에게 대할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사절들은 로마의 법왕에게 충성을 표시하게 하고자 계속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은 거만한 사절들의 태도에 놀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주를 인정할 수 없노라고 확고하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법왕교의 정체는 나타났다.
로마교의 지도자는 “너희가 평화를 가져오는 형제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희는 필경 전쟁을 가져오는 원수를 맞이하고야 말 것이다. 너희가 색슨족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는 일에 우리와 연합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결국 그들에게서 죽음의 매를 맞고야 말 것이다”
(J.H.Merle D’Aubigne, History of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b.17, ch.2)

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근거 없는 위협이 아니었다. 전쟁과 음모와 기만 등의 온갖 수단이 성경상 신앙을 가진 그 증인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마침내 영국의 교회들은 파괴되거나 법왕권에 굴복당하고 말았다.



암흑의 세력에 대항한 왈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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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관할 밖에 있는 나라들에는 여러 세기 동안 법왕교의 부패에 전혀 감염되지 아니한 그리스도인 단체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교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그러한 오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신앙의 유일한 표준으로 생각하고 성경에 있는 진리의 대부분을 고수해 왔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믿고 십계명 중의 넷째 계명의 안식일을 지켰다.

이러한 믿음과 생활을 유지해 온 교회들이 중앙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아르메니아 족속들 사이에도 있었다.

64 법왕권의 침입을 저항한 자들 중에서 “왈덴스”(Waldenses)인들이 최선봉에 섰다.
그들은 법왕의 지위가 확립되어 있는 바로 그 나라에 살면서도 그 허위와 부패에 꿋꿋이 저항하였다.

수세기 동안에 피에몽(Piedmonte)의 교회들은 독립을 유지해 왔으나 마침내 로마가 그들에게 복종을 강요할 때가 다가왔다.

로마의 압제에 대하여 무력한 저항을 해본 후에 마침내 그 여러 교회의 지도자들은 거의 온 세계가 존중하는 듯한 법왕의 최상권을 마지못해 인정하였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법왕과 주교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그들의 믿음의 순결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결심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서로 갈라졌다.

여전히 과거의 믿음을 굳게 지키는 사람들 중의 어떤 이들은 이제 고향인 알프스를 뒤에 두고 외국으로 가서 진리의 깃발을 꽂게 되었으며, 어떤 이들은 깊은 산골짜기나 험준한 산 속으로 피해 가서 거기서 자유로이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왈덴스” 교도들이 몇 세기 동안 가르쳐 온 신앙은 로마로부터 나온 허위의 교리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들의 종교적 신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인의 참 제도에 기초되었다.

세상과 차단된 궁벽한 곳에서 날마다 양떼를 치며 포도원을 가꾸는 매일의 고역에 시달리고 있는 비천한 그 농부들은 배교한 교회의 교리와 이설(異設)에 반대되는 진리를 자기들 스스로가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믿음은 새롭게 받은 믿음이 아니었다. 그들의 종교적 신조는 그들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들은 사도 교회의 신앙 곧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 3)로써 만족하였다.

세계의 대도시에 거만하게 자리잡고 있는 교권 교회가 아닌 이 “광야 교회”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나누어 주라고 당신의 백성에게 맡기신 진리의 보화(寶貨)를 잘 간수하고 있던 그리스도의 참 교회였다.

65 참된 교회가 로마교로부터 분리된 주요한 이유의 하나는 성경상 안식일에 대한 로마교의 증오감 때문이었다. 예언에 기록된 바와 같이 법왕권은 진리를 땅에 내어 던졌다. 사람의 유전과 관습이 높임을 받는 반면에 하나님의 율법은 짓밟힘을 당했다.

법왕권의 지배 아래 속한 교회들은 초기부터 일요일을 거룩한 날로 존중하도록 강요되었다. 오류(誤謬)와 미신이 성행하는 중에 많은 사람들, 심지어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들까지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식일( 安息日 )을 준수하는 한편 일요일에 일을 쉬었다.

그러나 법왕교의 지도자들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일요일을 거룩히 여기고 안식일을 더럽히도록 강요하였다. 그리고 안식일( 安息日 )을 거룩하게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아주 과격한 말로 비난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편안하게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로마의 세력권 밖으로 도망해 나가는 길밖에 없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소야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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