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스크랩] 신학이란?

하나님아들 2013. 7. 21. 00:14


                   I. 신학(神學)의 배경과 어의(語義)

A. 어원과 배경

신학(Theologia:라, Theology:영)이란 용어의 어원은 헬라어의 데오스(    :신)와 로고스(     :말씀)의 합성(合成)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 합성어     +     = Theologia(라)라는 말은 처음에 플라톤의 "공화정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신에 대한 논설과 교의(敎義) 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초기 기독교의 신학은 헬라의 철학적인 영향을 받아서 발전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지식과 선행을 동일시하였다. {인간은 본래부터 덕을 갖고 태어나는데 하나님은 인간 속에 있는 덕의 근원으로서 모든 환경 속에서 인간을 이끌어주신다. 따라서 인간 속에 있는 이 덕을 깨우쳐 명확한 지식을 갖게 해주면 인간은 선행을 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악행은 무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소크라테스의 도덕주의는 처음부터 수세기 동안 많은 교부들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 플라톤의 신개념(神槪念)은 선(善)으로서 모든 선하고 유익한 사물의 근원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악의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한 사상은 기독교 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관념(神觀念)도 역시 선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형성의 주요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헬라의 철학적인 영향을 받아서 기독교 신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신학의 우주론적 성격은 희랍사상의 특징적인 것이다. 희랍인에 있어서 신학과 철학은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혼합체였으며 신탁(神託)의 해설자를 신학자라고 했었다. 고대에 있어서 신학이라는 말은 신화적 의미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철학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로 함께 사용하였던 것이다.

B. 교부(敎父)들이 사용한 의미

 성경에는 이런 신학이란 단어가 없으며, 초기 기독교도들은 이교도들이 신학(Theologia)이라는 단어를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이 단어를 사용하기를 꺼려했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이시도루스(Isidorus, 7C)까지도 신학이라는 단어를 고대 이교(異敎)의 백성들이 사용하던 뜻 그대로 사용하였다. 서방교회는 라틴어를 사용한 서쪽 교회를 말하며, 동방교회는 희랍어를 주로 사용한 동쪽 교회를 말하는데, 동방교회에서는 오리게네스(Origenes 3C)가 처음으로 이 말을 기독교의 신인식(神認識) 및 신론(神論)에 적용하였다 유세비우스(Eusebius:5C) 이후 이 말을 널리 사용하게 되었는데 특히 아리우스(Arius)와 투쟁하면서 성삼위(聖三位) 교리에 대하여 성삼위의 신성에 대해 논하는 것을 신학 혹은 신론이라 하였고, 데올로지아(Theologia)는 하나님은 누구신가를 논하는 것이라 하였고. 이 시대의 수도원의 저자들은 신(神)에 대한 영성적 신비적 인식을 데올로지아(Theologia)라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4C-5C)는 데올로지아(Theologia)라는 말로 기독교 신학을 지칭하지 않고, 다만 이교도를 기독교로 이끌기 위해서 참된 신론은 기독교 교리라고 주장하였다. 오히려 그는 기독교 신학을 {기독교 교리}(Doctrino Christiana)라고 불렀다.

C. 현대적 어의.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뜻에 가까운 뜻으로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벨라두스(Abelardus:7C)이다. 그는 자신이 지은 책의 제목을 {기독교 신학}(Theologia Christiana)이라 하였다.  중세기에 많이 사용된 말은 일반적으로 {거룩한 페이지}(Sacra paging), {거룩한 지식}(Sacra eruditio)이었고 토마스는 {거룩한 교리}(Sacra doctrina)란 말을 사용하였다.
13C부터 대학에서 신학강좌가 개설되어 신학(Theologia)이라는 단어가 학자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데올로지아}(Theologia)는 협의로는 신론(神論)을 뜻하고 광의로는 계시 진리의 논리적이면서도 체계적 인식을 말하는 {신학(神學)}을 의미하게 되었다.
지금은 신학이란 용어를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삶을 연결시키는 학문"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배우고 연구하는 학문"을 의미하여 보편적으로 쓰고 있다.


                                 Ⅱ. 신학의 기원
 
A. 계시(啓示=Revelatio)

신학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지혜와 사상과 말씀이 발표되었다는 계시에 있는 것이다. 그 계시는 두 가지로 주어졌다.

1. 자연 계시

창조를 통해서 즉 창조된 피조물을 관찰함으로써 피조물이 존재하는 원인이 되는 창조주를 인식할 수 있고 또 그 사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렇게 피조물의 존재와 작용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아보는 것을 자연적 계시라 한다.
  {사람들이 하나님에 관해서 알만한 것은 하나님께서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해서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 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했습니까?}(롬1:19-20)
그러나 자연 계시는 하나님 편에서는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는 지혜와 전능으로써 되는 것이지만 그 나타내시는 의미를 파악하는 자,  즉 세상만물에 포함된 하나님의 뜻을 이성을 가진 인간이 획득해야만 자연적 계시가 성립되는 것이다.

2. 초자연적 계시: 성경

하나님의 뜻은 창조된 만물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욱 적극적으로 인간 역사에 직접 개입하시고 말씀하심으로써 인간에게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알릴 수 있도록 인간화(언어화)되는 것이다.  
그 첫째 단계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예언자들이나 사도들이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발표된 하나님의 사상 자체와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진행되는 구속사의 내용 등이 {초자연적 계시}이다.
이 초자연적 계시의 절정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신 성자께서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인간이 되신 강생(降生)의 신비인 것이다. 따라서 예수 자신이 초자연적 계시의 내용인 동시에 계시자(啓示者)가 되신다.
그러기에 우리 기독교 신학의 기원은 초자연적 계시의 기록인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에 두고 있는 것이다.(고전1:21; 히1:1-3; 요1:14)

B. 신앙(계시의 이성적 수용)

하나님의 뜻이 인간화됨의 제 2단계는 이 계시를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인 응답이 신앙이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계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충실한 대답을 찾는 노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이란 하나님의 은총의 선물인 동시에 인간의 활동이기도 하다. 이것을 합리적인 순종이라 하며(롬서12:2) 또 계시의 이성적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간직한다는 것은 말씀의 뜻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를 무조건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맞아들이고 규명하는 인간적인 노력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을 하나님께 대한 무조건적 신뢰로 규정하는 프로테스탄트적(개신교적) 신앙관(信仰觀)이 인간의 이성을 무시한 것이라는 말은 편견이다. 따라서 신앙인이 믿는 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신앙자체를 조금도 손상하지 않는다.
신앙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데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신비적 인식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성령의 은사에 힘입어 하나님의 신비를 직감하는 것이다. 이러한 직감은 추리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신비를 터득하는 것으로 인식(認識)한 사람 자신만의 것이고 논리로써 타인에게 설득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그 자신만의 구원의 길이므로 타인에게 빌려 줄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고 다만 증언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을 성령의 은사 중에서 {통달함}이라고 한다.
· 통달함(通達: Intellectus): 배우지 않고도 모든 것을 알게 되는 것.
뛰어난 신비가(神秘家)들의 신인식(神認識)은 고차원적 현상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도달한 신비적 인식이 반드시 이러한 대 신비가들의 인식과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는 아무도 단정적으로 논할 수가 없다. 그리고 많은 신자들의 신비적 인식도(認識度) 정도는 얕지만 이런 범주의 것이며, 이것은 일반적으로 믿어보아야 한다는 경지이다.
또 한가지는 이론적 탐구를 통해서 계시를 이해하는 길이다. 이 길은 신앙으로 받아들인 것을 근본적으로 인정하면서 그 이론을 우리 정신의 사유 능력으로 궁리해서 논리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이다.
신앙 안에서 인간은 자기 양심과 자유를 하나님의 계획안에 맡겨버리는 것이고 그 신앙 안에서 인간은 지성을 활용하여 가능한 한 더 많이, 더 정확하게, 더 충만하게 계시내용을 인식하려는 것이므로 이러한 인간의 지적 노력을 신학이라고 한다. 따라서 신학의 출발점은 근원적으로는 계시에 있으나 학문적으로는 신앙에 입각한 지성(知性)에 있는 것이다.
· 신앙에 입각하지 않은 학문은 종교철학이지 신학은 아닌 것이다

C. 신학(神學)

1. 계시의 이성적 탐구

이러한 신학적 노력은 구약시대 즉 고대의 유다 이전에는 없던 현상이다. 기독교 교도들은 일찍부터 이러한 노력을 시작했으니 신학이란 기독교적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예외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n)가 있지만 그는 기원 후 사람이다.
변증가(辨證家)들은 신앙의 내용을 다른 이에게 설명하거나 반대의 학설을 반박하기 위해서 신학을 연구하였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와 아우구스티누스, 기타의 교부들은 그들이 가진 문화적 교양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봉사하기 위해 이성이 신앙의 준비단계가 되고 신앙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신학을 하였으며, 키프리아누스(Cyprianus)와 터툴리아누스(Tertullianus) 같은 이들은 전심전력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뿐만 아니라 지성까지 동원하여 연구함으로써 신학을 하였다.
신학은 인간이 자기 이성의 능력을 동원하여 체계적으로 신앙 내용을 연구하고 표현하는 학문이며 이것은 두 가지 대 전제 위에 성립한다.
첫째 전제는 한가지 진리가 다른 진리와 모순될 수 없다는 것과 건전한 이성과 건전한 신앙사이에는 모순이 있을 수 없다는 기본 전제이다. 왜냐하면 이성이나 신앙의 근원은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전제는 인간의 인식은 꼭 논리적이고 체계적이라야 하기 때문에 신앙도 일종의 인식이라면 무질서한 판단들의 집합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우리 인간이성의 요구와 구조에 따라서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자연계시나 초자연계시의 내용을 인간지성의 법칙에 따라서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바로 신학을 연구하는 일이다.

2. 신학의 학문성

신학의 내용이 되는 대상은 하나님과 관계되는 사물이요, 이 사물들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은 근원적으로는 신앙의 빛이지만 직접적으로는 신앙의 빛과 이성의 능력의 공동작용인 것이다. 이것을 {신앙으로 조명된 이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신학은 계시된 것에 대한 철학적 사변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이성과 결합된 신앙으로 계시를 해명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은 철학을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신앙으로 규명하는 것이지 이성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신학과 종교철학은 본질적으로 다른 학문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
모든 학문은 어떤 결과 또는 현상을 그것의 원인 내지 원리에서부터 논리적으로 모순 없이 풀어나가 원리에서 현상까지의 과정이 명백해질 때 비로소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이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모든 학문이 학문으로서 성립되는데 요구되는 필수 조건이다.
그런데 각 학문의 기초 원리는 자명(自明)하든가 아니면 그 원리를 상위(上位)의 학문에서 얻어 와야 한다. 이때 하위의 학문을 종속된 학문이라고 한다. 신학의 원리는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신 인식에 있으므로 신학은 신앙에 종속된 학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인식-계시-신앙-신학.


                               III. 신학의 내용

A. 신학의 주체(Subjectum)

신학이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 지성으로 이해하는 학문이라 하면 신학의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다시 말해서 신학이 취급하는 대상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이 인간의 언어로 표시되고 기록된 것이 성경이다.
성경을 통해서 신학자가 찾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토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학의 주체는 하나님이다.
기독교 신앙이 헬라의 문화와 접촉했을 때 헬레니즘의 위험 앞에 서게 되었다. 헬레니즘의 세계관은 신을 우주의 정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신학은 우주론의 마지막 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독교 교부들은 처음부터 헬라철학을 경계하면서 신앙의 철학화(哲學化)를 반대하였다.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이 출발점이고 귀착점이다. 초월하고 절대적이며 자유롭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논하고 그분과 인간, 그분과 우주와의 관계를 논하는 것이 기독교 신학이다. 신학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많은 사물을 취급하지만(철학적 신학), 존재의 정점(頂点)으로서의 하나님을 대상으로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란 이유에서 하나님을 취급한다.
그러므로 신학은 신의 본체나 속성의 개념을 탐구하는 순수한 사변적 학문일 수만 없고(자연학문에 속함) 인간에게 자기를 드러내 보이시는 하나님, 즉 인간과의 구체적인 관계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탐구한다. 즉
{이스라엘을 에집트에서 해방하시는 하나님},
{그들과 특별한 계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위하여 도성인신(道成人身)하여 구속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고 함께 계시는 하나님}
등등. 순수 철학에서 탐구한 하나님의 본질이나 속성도 신학의 내용이 되지만 사실은 구속사(救贖史)에서 구체화된 상태로서만 신학의 내용이 된다. 즉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全能)하신 분,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전지(全知)하신 분, 이스라엘과 이교 백성을 훈계하시고 징계하시는 공의로우신 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시는 전능하신 분 등등이다.
신학에는 여러 가지 분과가 있고 명제들이 있지만 신학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하나님 자신이다. 최근 신학계에 유행하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는 우리가 말하는 신 중심주의와 조금도 모순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가장 적극적이고 결정적인 계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앎으로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그리스도가 신학의 중심 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학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이해하려 할 때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학은 방법론상으로는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되고 주체로서는 신 중심주의가 된다.
초기 교부들이 갈파한 것처럼 신학은 계시의 학문이고 계시의 중심점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소위 신비(Mysterium) 즉, 영원한 하나님의 뜻이 시간 안에서 구원의 경륜으로 나타나는 것이므로 성삼위론과 기독론을 분리해서 그 어느 것만 주장할 때에 신학은 성립되지 않는다


B. 신학의 소재(素材)

학의 주체는 하나님 자신이며 그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지기 때문에 계시의 내용을 배우는 것이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계시는 각 사람의 두뇌 안에서 직접 밝혀진 자연계시만 아니라,  역사 안에서 구현된 구체적 사건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계시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통해 계시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계시전달의 과정들이 신학의 소재가 된다.
계시전달의 여러 가지 과정과 방법을 분석하고 통찰함으로써 신학자는 계시의 내용인 하나님을 학문적으로 파악한다. 그 계시를 기록해 놓은 것이 바로 성경이다. 따라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성경을 연구한다는 말이 된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계시의 내용을 구성하는 소재이다
하나님께서 구속사의 핵심적 도구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회 안에서 사건으로서의 하나님의 계시를 담은 그릇이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신학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고 소재이다.
문헌으로 본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원시 교회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실천되었는지를 증언하는 가장 귀중한 문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성경은 단순한 역사적인 사료나 전거(典據)로서의 가치를 능가하고 있다. 그것은 성경이 단순히 기록되던 시대의 인간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인간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문헌으로서는 고문서(古文書)에 속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는 언제나 새롭고 현실적으로 모든 시대의 인간들에게 말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의 소재로서의 성경은 문헌학이나 문학이나 또 역사학적 연구 대상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주경 신학의 범위도 초월하는 것이다. 문헌학, 문학, 역사학에 그친다면 성경을 고문서의 하나로서만 취급하는 것이 되고 주경신학(註經神學)에 국한한다면 이스라엘이나 초대 교회가 야훼나 그리스도의 실제에 대해서 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신들 스스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던가를 인식하는가에서 끝난다.
그러나 신학은 성경의 주석을 원재료로 삼아서 이것을 지금(et nunc), 여기서(hic)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자는 성경을 연구하되 성경주석(聖經註釋)에 머물지 않고 주석된 내용을 기초로 해서 논리적, 체계적으로 계시 내용을 정돈하고 오늘의 인간에게도 성경이 또는 성경 내용이 현실화 되도록 반성한다. 신학의 모든 분과는 성경에서 그 내용과 원리를 얻어올 뿐만 아니라  이해된 성경이 신학의 마지막 논거(論據)가 되는 것이다.
성경을 주석하는 것이 성경 연구의 본 과제이나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성경의 영감(Inspiratio), 무오성(無誤性-Inerrantio), 정경(正經-Canon), 정전성(正典性-Authenticitas)과 원본, 역본, 주석의 규칙 등등을 고려해야 한다. 성경주석에 필요한 언어학, 고고학, 민속학, 서지학(書誌學), 역사학, 지리학, 비교종교학 등의 보조 과학들도 크게 신학을 도와준다.
·
정경(正經) : 무슨 책, 무슨 책이 성경에 속하느냐는 것
· 무오성: 성경은 인간의 구원에 대해서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것.
· 정전성(正典性-Authenticitas): 성경으로서의 믿을만한 근거를 가지는 것

 

                        IV. 신학적 사변(思辯)과 방법

A. 신학적 사변

신학의 소재들을 연구 정리하는 신학이 제시하는 연구 결과는 하나님의 계시를 확인하고 그 계시의 표현양식을 파악하는데 의미가 있지만 그것만으로 신학이라는 학문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성의 인식법칙(認識法則)에 따라서 개념 규정과 명제의 판단과 추리작용을 통해 계시된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며 설명하고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진술할 수 있어야 신학이 성립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을 신학적 사변(神學的思辨)이라 한다.
신학적 사변을 전개하려면 계시의 전제 조건이 되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 속성에 대한 규명과 인간 영성(靈性)의 본질에 대한 규명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것은 건전한 철학으로 가능한 일이다. 다음 논리와 역사에 의거하여 계시의 가능성과 계시사실의 존재를 논증하는 계시 외적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가 인간의 건전한 이성적 진리와 모순되지 않으며 인간 본성의 요청에 부응한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연구들은 신학의 성립 가능성을 밝히는 일이기 때문에 기초 신학이라 부르기도 하고 또 이것은 반대자들의 공격을 반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변증학(Apologetica:호교론)이라고도 한다.

B. 논리적 방법

기초신학을 한 후에 본격적으로 계시 내용 자체에 대한 연구가 따른다. 여기에는 당연히 철학적 인식론에 의한 논리적인 방법이 사용된다.

1) 통속적인 언어로 계시되었거나 상징적 이미지로 표현된 것은 보다 명확하고 엄밀한 세련된 개념으로 설명한다.
· 성삼위 교리의 Persoena 개념, 바울의 in Christ, 사랑의 여러 개념.

2) 계시의 내용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고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사물과 비교해서 유추적으로(Analogic) 설명한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개념을 유추한 것임.
   아우구스티누스가 삼위 일체의 개념을 설명할 때 사용 결과를 보고서 원인을 유추하기도 한다.

3) 계시된 단편적인 명제들을 논리적으로 원인과 결과의 상호 관련을 밝힘으로써 체계화하는 일이 신학의 주된 임무이다.
· 우리의 부활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결. 하나님의 보편적 현존으로 보편적 원인성을 밝힌다는 것이다.

4) 이미 확인된 두개의 계시 진리에서 추리를 통하여 새로운 진리를 도출할 수도 있다. -교리

또 어떤 경우에는 한 가지 계시 진리와 또 다른 한 가지 이성적 진리를 전제로 하는 추리를 통해 어떤 신학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신학은 여러 가지 분과(分科)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분과가 합하여 종합적인 단일 학문이 된다.
신학이 방법론적으로나 실용적 이유로 여러 개의 분과로 나누어 연구할 수 있지만 결국 모든 것을 계시에 입각한 신앙의 조명을 받은 이성으로 탐구하기 때문에 하나의 신학을 구성하는 것이다.
신학의 연구가 깊어지고 연구결과의 유용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보조 학문이 신설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보조 학문들이 신학

 연구에 유용하려면 보조학문 자체가 정통 학문이어야지 신학자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서 취사 선택되거나 이용당해서는 정상적인 신학 연구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학은 사변적(思辨的)이며, 동시에 실천적(實踐的) 학문이다. 하나님의 신비를 관조(觀照)하는 것만이 아니라 구속사(救贖史) 안에서 하나님의 창조목적 즉 인간의 구원에 이바지하는 것이 신학의 임무인 것이다.

 

                              V. 신학의 분류

A. 주경 신학
 
1. 총론

1) 성서 고고학
2) 성서 언어학
3) 신구약 총론
4) 정경론
5) 해석학

2. 개론

1) 구약개론
2) 신약개론

3. 주석학 : 각 권별

4. 성서 신학

1) 구약신학
2) 신약신학

B. 역사 신학

1. 성경 역사

1) 성경사
2) 성경교리사

2. 교회 역사

1) 교회사
2) 교리사
3) 교부학
4) 신조학
5) 역사신학
6) 기독교사상사

C. 교의신학

1. 교의학

1) 서론
2) 신론
3) 인간론
4) 기독론
5) 성령론
6) 구원론
7) 교회론
8) 천사론
9) 종말론

2. 변증학
3. 험증학
4. 요리문답
5. 화해론

D. 실천신학

1. 목회학
2. 예배학
3. 설교학
4. 전도학
5. 선교학
6. 상담학
7. 윤리학


                  150-805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4가 32-100,  402호

                      총회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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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메타-성경신학연구회
글쓴이 : 펄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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