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스크랩] 기독교 강요 제 1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강론 13장(24-26항)-(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아들 2013. 1. 24. 11:24

 

기독교 강요 제 1부,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 강론 13장(24-26항)-(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김완수

24.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성부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어떤 제한 없이 하나님을 언급할 때 언제나 그것은 성부에게만 적용된다고 그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그와 같은 주장이 허위라는 것을 우리는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통하여 쉽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한 여러 구절에서도 수치스럽게 그들의 무분별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는 성자의 이름이 성부의 이름 곁에 함께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에서 명백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것은 성부의 위에 국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부만이 참되신 하나님인 것이 아니라고 하면 성자는 자신이 바로 자기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라고 그들은 반대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반대는 한 마디 말로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실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신의 지혜를 발생하셨을 뿐만 아니라 중보자의 하나님이신 그가 그 위엄과 순서 때문에 특히 하나님이라고 불린다는 것은 조금도 불합리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 나는 앞으로 적당한 곳에서 보다 충분히 논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신 그때부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만세 전에 성부로부터 나신 영원하신 말씀이었다는 이유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시키기 위해 중보자의 위격과 직책을 취하셨다는 사실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뻔뻔스럽게도 성자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제거하고 있으므로 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알고 싶습니다.

 

 곧 선한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고 성자께서 말씀하셨을 때(마 19:17), 그가 자신에거서 선을 박탈하셨느냐 하는 점입니다. 나는 성자의 인성(人性) 속에 있는 선은 무엇이나 은혜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그들이 반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성자의 인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선한 것이냐 선하지 않은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만일 이 말씀이 선하다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들의 불경건은 그들 자신의 유죄를 충분히 입증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그것을 시인한다면 그들은 또한 자멸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생각할때는 그리스도께서 “선한 자”의 칭호를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으신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우리의 주장을 한층 더 확증시켜 줍니다. 확실히 그것은 유일하신 하나님께 속하는 칭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일반적인 화법에 따라 “선한자”로 인사를 받으셨을 때 그 거짓된 영광을 거절하시고, 자신의 선은 신적인 것이라고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또한, 바울은 하나님만이 썩지 아니하시고(딤전 1:17), 지혜로우시며(롬 16:27), 참되시다고(롬 3:4) 단정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어리석고 거짓된 썩을 존재의 수준에까지 끌어내리는 가라고 묻고 싶습니다. 태초로부터 생명 자체이시며, 천사들에게 불멸성을 부여하신 그가 지혜로우신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진리 자체이신 그가 참되지 않으시다는 말입니까?

 

 더욱이 나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당연한 예배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하여도 묻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모든 무릎이 마땅히 자기에게 꿇기를 정당하게 요구하셨다고 하면(빌 2:10), 그가 바로 자기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예배드리지 말라고 율법으로 금하신 그 하나님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출 20:3). 만일 그들이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고 한 이사야의 말을 다만 성부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나는 이 증거로써 그들을 반박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속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그리스도께 속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셨던 바로 그 육신으로 높임을 받으셨으며 천지의 모든 권세가 그에게 주어진 것은 그가 육신을 취하셨다는 점에 있었다고 교묘하게 구별짓고 있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왕으로서 또는 심판자로서의 위엄이 중보자의 전(全) 인격에 까지 미친다 하더라도 그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 아니었다고 하면, 하나님을 자기 자신과 충돌시키지 않고는 결코 그와 같은 높이에까지 올려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는 종의 형체를 취하시기 전에 벌써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다는 사실을 가르침으로써 이 논쟁의 해결을 훌륭하게 마무리지어 놓았습니다(빌 2:6-7).

 

 실로 그가 여호와로 불리시고, 그룹들을 타시며(참조, 시 18:10, 80:1, 99:1) 온 땅의 왕이시며(시 47:2, 6) 모든 시대의 왕이신 하나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동등성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들이 아무리 넋두리를 한다 하더라도, 이사야가 다른 곳에서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사 25:9)라고 한 말은 그리스도에게서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이사야는 이 말씀에서, 자기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해 내실뿐만 아니라 교회를 그 완전한 수까지 회복시키는 구속주 하나님의 강림을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성부 안에 있는 하나님이었다고 다른 구실을 내세웠지만 그것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순서와 지위에 있어서 신성의 근원이 성부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성부가 성자의 신격의 원작자이거나 한 것처럼 본질이 성부에게만 고유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단정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에 본질이 다양하게 되든가 아니면 그들이 그리스도를 다만 이름만의 상상적인 “하나님”으로 부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자가 하나님이지만 성부 다음가는 하나님이라고 하면, 성부에게 있어서는 비발생적이고 비창조적인 본질이, 성자에게 있어서는 발생적이고 창죄된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한 모세의 글에서 우리는 위의 구별을 짓는데, 이에 대하여 많은 비난자들이 우리를 조롱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한 하나님 안에 위가 여럿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면, 모세의 이 언급이야말로 얼마나 무의미하고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 되겠는가를 경건한 독자들은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성부가 말씀하고 계시는 분들이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자신 곧 이 하나님 한 분 이외에는 창조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의 권능과 명령할 수 있는 권위가 성부, 성자, 성령에게 공통되게 속한다는 것을 저들이 인정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자기 자신 안에서 그와 같이 말씀하지 않으시고 외부의 다른 행동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한 구절만으로도 저들의 두 반론을 즉시 쉽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를 성부에게만 한정시켜서 마치 말씀에는 영적 성질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영”이란 명칭이 성부와 동시에 성자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하면, 성자는 “하나님”이라는 특수화되지 않은 이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나는 결론짓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즉시,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께 정당하게 예배하는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요 4:23). 이 사실에서 또 다른 결과가 생기게 됩니다. 즉, 그리스도는 성부 밑에서 교사의 임무를 수행하셨기 때문에 성부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돌리셨는데, 이것은 자신의 신격을 폐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로 하여금 점차 그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였다는 점입니다.

25. 신성한 본질은 삼위에게 모두 공통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속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이 개체의 각자는 본질의 분리된 일부분을 공유한다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입각해서,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며 그렇기 때문에 성자, 성령의 본질이 비발생적인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부는 순서상 처음이시며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자신으로부터 자기의 지혜를 낳으셨기 때문에, 모든 신성의 기초가 되시며 원천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무한정적으로 볼 때에 발생하신 분이 아니시며, 성부 또한 위(位)라는 점에서는 발생된 분이 아니십니다. 또한, 그들은 어리석게도 우리의 이 견해가 사위일체(四位一體)를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들의 머리로 생각해 낸 허구를 거짓되고 무고하게 우리에게 돌림으로써 우리가 마치 한 본질에서 삼위가 유출된다고 생각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여러 저작에서 명백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위를 본질에서 분리시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삼위를 구별하되 그 각자가 본질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위가 본질에서 분리되었다고 하면 아마 그들의 추론에도 어떤 개연성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면, 그것은 유일신이 그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위들의 삼위일체가 아니라 제신(諸神)의 삼위일체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것은 마치 우리가 세 하나님이 본질로부터 유래된다고 상상이나 한 듯이, 삼위일체를 구성함에 있어서 본질이 협력하였는가 아니하였는가 라고 묻는 그들의 그 무가치한 질문에 대답이 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 없이도 삼위일체가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그들의 답변 역시 똑같은 우매함에서 나온 말입니다. 왜냐하면, 본질이 삼위일체의 부분 혹은 한 성원(成員)으로서의 구별을 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위들은 본질 없이 혹은 본질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성부는 그가 하나님이 아닌 한 성부가 될 수 없으며 성자 또한 그가 하나님이 아닌 한 성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격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자존하신다고 우리는 고백하는 것이요, 그의 위에 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실로 그가 성자인 이상, 우리는 그가 성부로부터 오셨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이, 그의 본질에는 기원이 없으나 그의 위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옛날의 정통적인 저술가들은, 삼위일체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 언제나 이 명칭을 오직 위에만 적용시켰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을 이 구별 안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어리석은 과오일 뿐만 아니라 가장 큰 불경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가 본질, 성자, 성령의 셋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분명히 성자, 성령의 본질을 멸절시키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여러 부분은 서로 혼동하여 파멸을 당하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구별은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성부와 하나님이라는 말이 동의어라고 하면, 성부는 이때 신격의 원작자가 될 것이며 성자에게는 그림자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는 한 하나님과 두 피조물을 결합한 것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26. 성육신하신 말씀이 성부에게 종속된다는 것은 반증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본래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들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나는 한 위와 다른 위를 비교할 때,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사용되지 않고 신격의 근원이신 성부에게 한정된다고 대답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광신자들의 허튼 소리와 같이 본질의 부여와 관련시켜서가 아니고, 순서의 원리에 의해서 그렇게 사용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부에게 하신 말씀, 곧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는 중보자의 위격으로 말함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의 중간 위치를 취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 때문에 자신의 위엄이 감소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를 비웠다고는 하지만(빌 2:7), 성부와 함께 가졌던 영광이 이 세상에 대하여 감춰졌을 뿐 전혀 상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사도는 히브리서 2장에서 그리스도는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한 자였다고 하였으나(히 2:7, 9), 동시에 그리스도는 땅의 기초를 세우셨던 영원하신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히 1:1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중보자의 인격으로 하나님께 말씀하실 때에는 언제나 자기에게도 속하는 그 신격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 명칭하에 두셨던 것이라고 우리는 주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 14:28, 참조, 165:7, 20:17)고 말씀하셨을 때 이것은 영원한 본질과 관련하여 자신이 성부보다 열등하기 때문에 제 2차적인 신격을 자신에게 돌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가 하늘나라의 영광을 얻어 신자들로 하여금 자신과 함께 성부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려고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성부를 보다 높은 위치에 계시는 분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빛나는 광채의 그 완전함이, 육신을 입으신 자신에게서 볼 수 있었던 영광에 비해 훨씬 뛰어나 있음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똑같은 의미로 바울은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께서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때라,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전 15:24,28)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격이 영원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멈추지 않고 처음부터 존재하신 그대로 영원히 존속한다고 할 것 같으면 성부, 성자에게 공통된 하나님의 유일하신 본질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확실히 그리스도는 이러한 이유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아버지께로 높이 올리셨으며 동시에 자신이 성부와 하나이신 까닭에 우리를 자신에게까지도 들어 올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이라는 이름을 성부에게만 한정시키고 성자에게서는 이를 배제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인 것이며 부당한 일입니다. 이것 때문에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참되신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하였는데(요 1:1, 요일 5:20), 이것은 아무도 그리스도를 성부보다 못한 제2류의 신격을 소유하신 분으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더욱이 이들 새로운 신(神)들의 날조자들이 그리스도를 참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즉시 그를 성부의 신격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의심스럽습니다. 그들은 마치 유일하신 하나님 이외에도 참되신 하나님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또 이입(移入)된 신성이 어떤 신기한 허구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신들의 찻집
글쓴이 : 벤자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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