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솔로몬의 기도

하나님아들 2024. 11. 10. 00:17

솔로몬의 기도

 

* 본문 : 왕상 3 : 5 - 14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 본문 요약 :

 

본문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소원을 묻는 하나님께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하며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내용입니다. 그 기도가 마음에 드셔서 하나님은 구하지 않은 복까지 풍성한 은혜를 주셨다 말씀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정성껏 에배를 드리며 성도들을 바르게 이끌 수 있는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아래 제가 작성한 설교 한 편과 몇 분 목사님들의 설교를 싣습니다.

 

 

왕상 3 : 5 – 12 지혜로운 마음을 주소서 2011. 7. 24

 

* 동영상 : 프로 페차이 동영상란 383번. 말씀과 기도의 사람, 위대한 신앙인 링컨 - 2분 40초

 

돈과 여자를 참 좋아하는 어느 사람 앞에 갑자기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천사가 이 사람에게, '무엇이든지 두 가지만 구해라. 내가 다 주겠다.' 했습니다. 그 사람은 생각할 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소원을 늘 외우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돈, 여자를 달라 구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돈 여자를 선물로 받았다고 합니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여자, 돈 여자를 받았답니다.

하하. 올바른 소원에 대한 유머입니다. 무조건 소원만 가지고 기도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드린 한 사람을 생각하려합니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은 스무살 정도에 제 3대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었을 때 솔로몬의 마음은 굉장히 무거웠을 것입니다. 특별히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신은 큰 아들이 아닌데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왕위는 큰 아들이 물려받습니다. 사무엘하 3장에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으로 있을 때 이미 여섯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솔로몬이 태어나기도 전입니다. 그 여섯 명 가운데 큰 아들 암논과 셋째 아들 압살롬은 먼저 죽었습니다. 형 둘이 죽었다 해도 최소한 네 명의 형을 제쳐두고 솔로몬이 왕이 된다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이 된다니까 그 네 명의 형 중 하나인 아도니아가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비록 아버지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긴 했지만, 왕궁 내에서도 막내인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왕이 되었기 때문에 솔로몬은 더 좋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심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부담감은 아버지 다윗 때문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정말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백성들에게도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건 솔로몬이 어려서부터 잘 압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 보면 솔로몬이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내 아버지 다윗은 성실하고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긴 왕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된 나는 너무 부족합니다. 아이에 불과합니다.”

또 오늘 본문 바로 이어 14절에서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칭찬하시면서 다윗처럼만 하면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기에, 아버지처럼 좋은 왕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을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부담감 때문에 솔로몬은 왕이 되면서 늘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왕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네게 무엇을 줄꼬?”물으시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한 것입니다. 평소에 늘‘지혜로운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생각했기 때문입니다.

 

4 – 5절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자신의 절대 부족을 자각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일천번제를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당시는 솔로몬 성전이 건축되기 전이므로 솔로몬은 당시 가장 큰 산당인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일천번제를 드립니다. 번제는‘올라간다’는 뜻인데 재물을 불살라 향기를 드리는 제사로 마음과 뜻을 다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일천번제를 어떻게 드렸는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최고의 양과 소 수컷을 구하여 한 마리 잡아 번제를 드리고 다시 소를 잡고, 연속해서 밤낮 제사를 했을 것이라 하며 그렇게 제사를 드리면 일주일은 걸렸을 것이라 합니다.

어떤 이들은 히브리 전통에 따라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500일을 연속해서 제사한 것이라 합니다.

어떤 이들은 매일 밤, 소를 잡아 일천 날을 제사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한번에 1천 마리 소를 잡든, 아침저녁으로 드렸든, 1천 날을 제사했든, 중요한 것은 솔로몬은 왕이 되자마자 처음 한 일이 하나님께 최고의 예물로, 최선의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솔로몬의 믿음이 귀하구나. 왕이 되고 최고의 예배를 드렸구나.’

 

일천번제에 대한 예화가 있습니다.

지금 유명한 부흥사로 활동하는 박순애 전도사님 간증에 등장하는 어느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박순애 전도사님이 청년 때 분열된 교회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교회 건축헌금을 최고 많이 드리겠다고 작정하고 기도합니다. 새벽마다 돈 한 푼 없는 그가 드리는 기도는 "최고로 많이" 삼창이었습니다. 헌금을 드리기로 약속한 시간을 이틀 남겨두고 아직 손에는 한 푼의 돈도 없었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오다 먼동 트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통곡합니다. 예배당 문밖에서 두 손을 하늘 향해 뻗고 "주여, 내 기도를 들어 주소서!" 몸부림치며 미친 사람처럼 부르짖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성령님은 조간신문을 펼쳐 읽던 어느 장로님에게 역사 하십니다. 박순애에겐 통곡과 부르짖음으로, 장로님에겐 신문 기사를 읽게 하심으로... 그날 장로님이 전화를 걸어옵니다. 오래 전 박순애가 청송교도소 보호감호소 수많은 재소자들에게 추운 겨울에 내복과 양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글을 써서 신문사로 보냈는데 그 글이 오랫동안 실리지 않다가 박순애가 울부짖던 그날, 기사화 된 것입니다. 장로님은 박순애를 만나 필요한 물품을 뭐든지 얼마든지 말하라 합니다. 그때 박순애가 울면서 말했답니다. "재소자들은 감방이라도 있지만 우리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실 방이 없어요." 바로 그때 장로님의 머리와 가슴을 울리는 하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아! 내가 마련한 돈은 가난한 개척교회를 위한 돈이었구나!’

장로님이 "딸아 귀한 믿음 가졌구나." 칭찬하면서 당신이 살아오신 인생을 얘기합니다.

 

장로님은 맨주먹으로 어린 나이에 서울 올라와 공장에 취직을 했는데 15년 만에 70명 직원을 거느리는 그 공장의 사장이 됩니다. 그때까지는 피눈물 나는 새벽기도, 눈물겨운 헌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그가 회사와 공장이 번성하게 되자 점차 하나님과 교회를 멀리하게 됩니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직원은 300명이 넘는 큰 회사로 성장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장로라는 직분까지 달았습니다. 그때쯤 그는 봉사를 멀리한적 오래요, 너무 바빠 기도를 잊은지 오래요, 형식적 껍데기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성공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어느 날, 15억을 막지 못해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맙니다. 회사, 부동산, 살던 집까지 추풍낙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때, 교회 목사님은 예배당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기도 중에 장로님을 건축위원장으로 생각합니다. 장로님은 늘 입만 열면 건축 시작하면 본인이 절반은 감당한다고 말하곤 했었습니다. 그날 새벽, 장로님은 너무나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새벽기도회에 나와 "하나님 살려주세요. 나 부도났어요. 어떡해요." 울며 기도합니다. 얼마나 크게 기도하는지 기도 소리를 듣고 목사님의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습니다. "하나님 성전 건축 어떻게 해요. 우리 교회, 별이 떨어졌네요. 건축 헌금 절반이 날아갔네요." 장로님의 부도소식이 온 매스컴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부도는 났어도 하나님이 응답주신 것이니 믿습니다.’ 하고 건축위원장에 장로님을 임명합니다. 장로님이 임명 받고 말합니다. "목사님, 사실은 너무 창피해서 장로 직 내려놓고 교회 떠나 멀리 가서 살려 했는데요."

이때 목사님의 한마디 대답 "오직 하나님만 아시니 기도하고 순종하세요." - "하나님 어떡할까요. 빚더미에 앉은 날보고 건축위원장 하라니?" 장로님이 기도하다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마지막 방법이 남아 있더랍니다. 모든 재산 다 날아갔는데 처조카 이름으로 등기된 집 한 채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은 살집이 없는데도 그 집을 팔아 제단에 올려드리고 자신은 오직 눈물과 기도로 건축위원장직을 감당하리라 결단하고 바로 그 시간에 일천번제를 작정합니다.

 

첫째, 다 망하고, 좁은 셋방에서 살지만 가정 예배 일천번제를 드리겠습니다.

두 번째, 새벽예배 일천번제를 드리겠습니다.

세 번째,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지만 모든 기도회에 1만원 일천번제 예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봉헌 봉투를 매일 드리는데 언젠가부터 만원이 없어 빈 봉투 들고 그날은 좀 더 일찍 나가 울기 시작합니다. 울다보면 울음소리가 커집니다. "하나님, 만원이 없어 빈 봉투 들고 왔어요. 엉 엉!"

옆에 앉은 교인이 그 기도소리 듣고 너무 불쌍해서 조용히 만원을 무릎위에 얹어 놓고 갑니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교인들이 하는 말 "일천번제는 지가 작정하고 돈은 우리가 내네."

 

일천번제가 1년쯤 계속되는데 성전 건축은 아름답게 올라가고 장로님은 할일도 없어졌으니 밤낮 가리지 않고 성전에 엎드려, 건축현장이 보이는 언덕위에서 매일같이 기도만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종아, 네가 부자로 살았더라면 너는 신실한 종이니 헌금은 했을 게다. 그러나 내 제단에 눈물은 드리지 않았을 게야.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너 자신이요 너의 눈물이었다."

또 하나님이 감동을 주십니다. "종아 때가 되었으니 백지 한 장 들고 빚쟁이들을 찾아가라."

그래서 빚쟁이들을 찾아가 합의서를 써달라고 무릎 꿇어 빕니다. ‘나를 감옥 보내고 빚 떼이면 좋겠습니까? 3년짜리 큰 적금 들고 있는데 3년 후에 갚을 테니 용서해 주세요.’ 3년짜리 큰 적금은 하늘에 붓는 일천번제를 의미했습니다. 이사람 저사람 모두 만나 합의서를 받아 경찰서에 제출하고 다시 공장을 가동시킵니다. 흩어졌던 직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습니다. 일천번제가 마쳐질 무렵, 빚도 갚고 성전건축도 완공이 되었습니다. 회사는 날로 더욱 번창해 갑니다. 그 무렵 장로님의 돈과 물건을 떼먹고 도망갔던 사람이 찾아와 돈을 곱빼기로 내놓습니다. "사장님 용서해 주시고 이 돈 받아 주세요.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합니다." 그래서 그 돈을 받아 정액만큼은 회사에 넣고 절반은 개척교회 섬기겠다고 떼어놓은 것인데 바로 그 돈이 박순애 청년의 교회로 전달이 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일천번제의 파워를 깨닫고 박순애 전도사님은 집회를 인도하는 곳마다 일천번제를 작정시킵니다. 그녀는 순종하는 교회, 순종하는 사람들은 모두 복을 받았다고 자신 있게 간증합니다.

우리교회에서도 여러분들이 일천번제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에서도 우리 아들들이 고3 되면 일천번제를 작정해서 만원씩 헌금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앞길을 인도해주셨습니다.

지난 월요일 설교를 위한 모임인 프로 페차이에서 본문을 나누다가 감동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예전 포이동에 초원교회라는 잘 지어진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특별히 부자가 있어 많은 헌금을 드려 지은 건물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일천번제를 작정해서 지어진 건물이라 합니다. 자기 형편대로 작정해서 일천번제 건축헌금으로 훌륭한 교회를 지어 봉헌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솔로몬처럼 하나님을 감동시키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사업과 자녀들과 하는 일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따라 합시다. ‘일천번제 예물을 드린 솔로몬의 믿음을 본받읍시다.’

 

6 - 9절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8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네게 무엇을 줄꼬?" 하실 때, 일천번제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제사였음을 고백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세 가지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간 부친을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둘째, 과거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친 다윗 왕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셋째, 지금 부족한 자신을 왕의 자리에 앉혀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자신의 한없는 부족을 고백합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도 잘 못하는 철부지입니다"

솔로몬은 스물한 살 어린 나이에 이미 자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귀함이 있습니다. 대개는 이런 나이에 임금 자리에 오르면 뵈는 게 없지요.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쉽게 기성세대를 비판하며 시 건방을 떨만한 나이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을 보십시오. "종은 작은 아이라" 얼마나 귀한 겸손이요 아름다운 자세입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는 내게 구하라" 말씀하실 때 이 일천번제는 자신의 할 일, 사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무거운 것인가를 깨닫고 드린 제사임을 고백합니다. "내 사명이 너무 중요해서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성으로 예물을 준비하여 드렸습니다." 라 고백합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받은 사명과 직분이 너무 귀해서 울어보셨습니까? 셀 리더의 사명이, 교사의 사명, 찬양사역자의 사명, 권사 집사 장로의 사명이 너무 귀해서 울어보셨습니까? 그 사명 바로 감당할 지혜가 필요해서 일천 날을 기도하며 사명만큼 무거운 예물로 예배해 보셨습니까?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바로 이런 제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겨 주십니다.

옆 사람에게. ‘무슨 사명을 받았습니까? 사명을 위해 기도합시다.

 

10 – 13절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11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말입니다.

부자가 되게 해 달라거나, 원수들을 제거해 달라하지 않고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다’고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구하지도 않은 부귀영화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마음’이란‘듣는 마음’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무얼 줄까? 물으실 때에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자식이 지혜로운 자식입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 지혜로운 학생입니다.

사람이 지식이 있다고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술로 망하고, 마약에 빠지고, 노름에 빠지고, 죄 짓고 감옥 가고, 타락해서 가정 깨지고, 몸과 마음을 망치고 자살로 생애를 망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망합니다. 여러분, 그 지혜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지혜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데서 시작됩니다.

이런 말 들어보셨지요? ‘남자는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어렸을 때는 엄마 말 잘 들어야 하고, 결혼해서는 아내 말 잘 들어야 하고, 운전할 때는 네비게이션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한다.’

현명한 남자는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남자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자 말을 잘 듣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 성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琮)이라는 분입니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종침교(琮琛橋)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리는 없어지고 다리표지석만 남아 있습니다만,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조선 성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琮)과 허침(許琛) 형제가 갑자사화의 화를 면한 일화가 얽혀 있는 경복궁 입구 다리 터.”그 일화는 이렇습니다. 당시 성종은 연산군을 낳은 왕후 윤 씨를 폐비시키고 결국 사약을 내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왕후 윤 씨를 폐비시키기 위한 어전회의가 열리던 날, 허종의 누이가 아침 일찍 어전으로 가는 허종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전회의에 나가면 훗날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며, ‘어떻게 해서든지 어전회의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 합니다.

허종은 누이의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어전으로 가던 도중 이 종침 교에서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것을 핑계 삼아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허종이 참석하지 못한 그 어전회의에서 왕후 윤 씨를 폐비시키기로 결정되었고, 폐비가 된 윤 씨는 다음해에 사약을 받아 죽게 됩니다. 후에 폐비 윤 씨의 아들인 연산군이 왕이 되어 자기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당시의 신하들을 다 죽이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역사적으로 그것을 갑자사화(甲子士禍)라고 합니다. 그런데 왕후 윤시를 폐비시키기로 결정한 그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허종과 가족들은 참혹한 죽음의 위기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허종이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침으로 화를 면했다고 해서, 그 다리를 허종 허침 형제의 이름을 따서 종침 교(琮琛橋)라 이름 붙였다 합니다.

따라 합시다. ‘충고를 잘 듣는 게 지혜로운 길이구나. 아내 말도 잘 듣자

 

이렇게 사람의 밀을 듣는 것도 지혜를 얻는 길이지만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33절에“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요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어디에 담겨져 있습니까?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여러분, 지혜를 얻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주십시오. 말씀을 읽고 듣고 사모하도록 심어 주세요. 여름학교에도 보내고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듣는 귀를 열어주십시오. 과외 수업이 중요한 것 아니고 명문대학이 중요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또 솔로몬처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합니다. 야고보서 1:5절 말씀에 보면,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지혜를 구하십시오. 맡겨준 사명 감당을 위해서 지혜를 구하십시오. 영리한 머리 자랑하지 말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나님을 감동시킨 솔로몬! 하나님께 자신의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 지혜를 구한 솔로몬!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부귀와 영광 - 그 보너스가 얼마나 크고 놀라웠던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부자는 미국의 록펠러나 빌게이츠도 아닌 솔로몬이었다 합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얻어 솔로몬이 받았던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따라 합시다. ‘주님, 지혜가 부족합니다. 말씀을 듣는 지혜로운 마음을 저와 자녀들에게 주옵소서.

 

찬양 : 주님 앞에 나와서

 

결단의 기도 : 주님, 솔로몬의 지혜를 얻기를 소원합니다. 먼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서게 하시고 주신 사명 감당을 위해 기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귀를 열어 주셔서 지혜를 얻어 승리하는 인생, 가정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류영모목사 일천번제의 힘 왕상03장 02절 ~ 15절

 

솔로몬은 성군 다윗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세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막 스물을 지나는 나이였습니다. 어린나이에 왕이 되어 막중대사를 감당한다는 것이 쉬워 보일 수야 없었겠지요.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왕상3:7-8)

 

자신의 절대 부족을 자각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일천번제를 드리기로 결단합니다.

당시는 솔로몬 성전이 건축되기 전이므로 제사를 드리고자 할 때 산당에 올라가 제사를 하곤 했습니다. 솔로몬도 당시 가장 큰 산당으로 알려진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일천번제를 드립니다.

 

일천번제를 어떻게 드렸는가에 대한 성경상 자세한 설명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이들은 당시 최고의 양과 소 수컷을 구하여 한마리 잡아 번제를 드리고 한번의 번제가 끝나면 다시 소를 잡고 그래서 연속하며 밤낮 제사를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제사를 드렸다 할찌라도 일주일은 족히 걸렸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이들은 히브리 전통에 따라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500날을 연속해서 제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이들은 매일밤 소를 잡아 일천날을 제사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한번에 1천마리 소를 잡든,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렸든, 1천날을 제사했던 그 방법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적으로는 세가지 설명이 모두 근거가 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솔로몬은 왕이 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이 하나님께 최고의 예물로, 최선의 예배를 드리며, 최고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렇게 일천번제를 마치는 날 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이때 솔로몬은 자신의 제사가 먼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는 감사의 제사였음을 고백합니다. 본문 6절 말씀에 의하면 솔로몬은 하나님께 세 가지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친 다윗 왕에게 베푸신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둘째, 지금 부족한 자신을 왕의 자리에 앉혀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셋째, 미래에 자신을 이어 왕의 자리에 앉혀 주실 아들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나아가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네게 무엇을 줄꼬?" 라고 말씀하실 때, 이 일천번제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제사였음을 고백한 다음 자신의 한없는 부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일상 출입하는 길도 잘 모르는 철부지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깨닫는 자리였습니다. 임금의 일을 감당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고백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인생을 살아본 다음 뒤늦게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나는 부족합니다" 해보는 소리가 아닙니다. 지금 솔로몬은 스물 한 살 어린 나이에 이미 자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귀함이 있습니다.

 

대게는 이 나이에 임금의 자리에 오르고 나면 뵈는게 없지요. 내가 가장 많이 알고, 내가 가장 의롭고,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나이지요. 쉽게 기성세대를 비판하며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시건방을 떨만한 나이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을 보십시요. "종은 작은 아이라" 얼마나 귀한 겸손입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자세입니까? 얼마나 놀라운 지혜입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너는 내게 구하라" 말씀하실 때 이 일천번제는 자신의 할 일, 사명,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직무가 얼마나 소중하고 무거운 것인가를 깨닫고 드린 제사임을 고백합니다. "내 사명이 너무 중요해서 하나님께 메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할 일이 무거운 것만큼 무거운 예물을 준비하여 무거운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본문 8절 9절입니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묻습니다.

당신이 받은 그 사명과 직분이 너무 귀해서 울어보셨습니까? 셀리더의 사명이, 교사의 사명이, 찬양사역자의 사명이, 권사 집사 장로, 목사의 사명이 너무 귀해서 울어보셨습니까? 그 사명 바로 감당할 지혜가 필요해서 일천날을 기도하며 사명만큼이나 무거운 예물로 예배해 보셨습니까?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바로 이런 제사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소중히 여기는 자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겨 주십니다.

 

II. 무엇을 줄꼬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일천번제를 마친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솔로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커다란 영광이요 놀라운 은혜입니까? 솔로몬이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네가 만복의 근원이 나 여호와 하나님인 줄 알았으니 너는 복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복의 출처가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힘과 권력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일찍이 솔로몬의 부왕 다윗이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대상29:11).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마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나의 나된 명예와 부와 귀와 수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왕관이 있고 나라와 백성의 장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생명이나 물질이나 어떤 명예나 다른 아무것도 인생은 가질 수가 없습니다. 결코 인생 자신이 자기의 주인이 되거나 역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장하지 않는 솔로몬의 왕권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5절).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나 바라왔던 순간입니까? 그의 앞날은 이제 무엇을 구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 순간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바른 선택을 합니다. 그 소중한 순간에 하나님 앞에 바른 소원을 구하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는 '이것을 주십시오' '저것을 주십시오' 하고 이것저것 잡다하게 구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요. 나의 명예, 나의 욕망에 매여있는 사람은 우둔해집니다. 내 안에 물질에 대한 욕심이 들어오면 만사에 바른 선택이 어렵습니다. 내 명예에 연연하면 모르는 사이에 나는 바보가 되고 맙니다. 솔로몬은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그 맡겨진 사명을 위하여 내가 존재한다는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 생명이 귀하고 내 왕위가 소중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때만이 존재가치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기중심으로 소원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의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저에게 맡겨진 귀한 사명을 위하여, 저의 백성을 위하여 지혜로운 마음을 소원합니다. 이어서 선악을 분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오래 살게 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없는 평화를 누리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군사력이나 지식이나 번영을 구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이여, 지혜로운 마음을 주시옵소서'라고 구합니다. 지혜라는 것은 환경을 바꾸는 능력이 아닙니다. 그 환경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가지지 못한 것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즐거워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9절)라고 기도합니다.

 

솔로몬은 멋진 기도를 알았던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던 위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위대한 인물들은 위대한 기도를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지난 세기 가장 위대했던 선교사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서 큰 일을 시도하라"(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위대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의 능력으로 불의 세력을 멸하고 성난 사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난세를 평정하고 전쟁을 종식시키고 폭풍우를 잠재우고 마귀를 추방시키고 사망의 결박을 풀고 질병을 치유하고 태양을 머물게 하고 우뢰의 진행을 막으며 죽은 영혼을 소생케 하며 지구를 복음으로 점령한다" 얼마나 위대한 기도입니까? 기도가 위대한 사람이 위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2절 3절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일을 이루시고, 기도 안하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비밀과 신비를 가르쳐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정성이 하나님께 올라 닿도록 기도해 보십시오. 응답해 주십니다. 사람에게 부탁하는 만큼도 정성없이 기도하니까 아직 응답을 못받습니다.

 

무당이 그 신을 신뢰하는 것만큼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깡패들이 의리를 지키는 것 만큼도 하나님 앞에 헌신이 없으니 하나님의 큰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III. 감동의 제사

 

그러나 보십시요.

"다윗은 솔로몬을 낳고" 참으로 위대한 아버지 몸에서 위대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런 가문입니까? 성경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태어날 때 선지자 나단이 나타나 솔로몬을 일컬어 "여디디야"라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란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지혜의 마음을 구하자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자라"고 했습니다. 과연 감동의 물결입니다.

 

사무엘하 7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다윗 왕이 선지자 나단을 불러 이릅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2절)" 나는 이렇게 좋은 궁전에서 사는데 여호와의 법궤는 천막 속에 있구나 탄식합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을 마음이 있도다. 이 계획을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께 아룁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사무엘하 7장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실 수가 없습니다. 누가 너더러 성전을 지으라고 했느냐, 내가 언제 불편하다고 했느냐, 어찌 그리도 기특한 생각을 했느냐며 기뻐하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견고케 하리라(13절)"

 

오늘 솔로몬을 보십시요. 솔로몬은 지혜로운 마음 한가지만을 구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구하는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11절)" 기특하게도 어떻게 그것을 달라고 했느냐, 내 마음에 꼭 든다 라고 하시며 크게 기뻐하십니다. 그리하여 지혜를 주실 뿐만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까지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왜 우리에게는 이렇게 시원한 마음이 없습니까? 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듯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합니까?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칠 때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시시하게 믿으려는 사람에게는 시시한 주님이 나타나고, 값비싸게 믿으려는 사람에게는 값비싼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감동적인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교회 안에도 감동적인 사건,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넘처나길 기대하십니다.

 

성 프랜시스가 살았던 땅은 좁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프랜시스가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하늘과 땅이 진동했습니다.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 건너갔을 때 가봉의 랑바레네라는 작은 지역이 전 우주를 진동시켰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소록도의 애양원에서 나병환자들을 돌볼 때에 천지가 진동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평양의 감옥에서 순교 당하심으로써 영원히 한국교회의 모든 성도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킨 솔로몬! 하나님께 자신의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 지혜를 구한 솔로몬!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부와 영광 - 그 보너스가 얼마나 크고 놀라웠던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부자는 중국의 진시왕도 미국의 록펠러나 빌게이츠도 아닌 바로 솔로몬이었다고 합니다.

 

지혜와 함께 보너스를 얻은 솔로몬이 본문 이후에 어떤 업적을 남겼습니까? 곧이어 그는 7년에 걸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권위있는 통계에 의하면 건축비만도 50억달러, 우리돈으로 6000억원에 달하는 거대한 공사였다고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백성을 잘 송사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의 지혜서 세 권을 기록합니다. 인생이 무엇인가를 노래한 전도서,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가 교훈한 잠언서, 성도가 예수님을 얼마나 아름답게 사랑하며 예수님이 그의 신부된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노래한 아가서를 기록합니다. 그외에도 많은 시편을 기록했으며 솔로몬은 식물학과 동물학에까지 능통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축복이 일천번제의 축복이었다고 하면 정성스런 일천번제의 능력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 아니겠습니까? 일천번이란 숫자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 힘에 지나는 하나님을 향한 예물, 바른 기도의 목적과 내용 -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능력이었습니다.

 

일전에 말씀, 간증 잔치 강사로 왔던 박순애 전도사의 간증에 등장하는 한 장로님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박순애 청년은 분열된 교회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교회 건축비용을 최고 많이 드리겠다고 작정하고 기도합니다. 새벽마다 돈 한푼없는 그가 드리는 기도는 "최고로 많이" 삼창이었습니다. 헌금을 드리기로 약속한 시간을 이틀 남겨두고 아직 손에는 한푼의 돈이 없었습니다.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오다 먼동트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한없이 통곡합니다. 예배당 문밖에서 두 손을 하늘 향해 뻗고 "주여, 내 기도를 들어 주소서!" 몸부림치며 미친 사람처럼 부르짖습니다.

 

바로 그 순간 성령님은 조간신문을 펼쳐서 읽던 한 장로님에게 역사를 하십니다. 박순애에겐 통곡과 부르짖음으로, 장로님에겐 신문의 기사를 읽게 하심으로 역사하셨던 바로 그날 장로님이 전화를 걸어옵니다. 이미 오래전 박순애가 청송교도소 보호감호소 수많은 재소자들에게 추운 겨울 내복과 양말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글을 써 신문사로 보냈습니다. 그 글이 오랫동안 실리지 않고 있다가 박순애가 울부짖던 그날, 장로님이 조간신문을 펼쳤던 그날 기사화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장로님은 박순애를 만나 필요한 물품을 뭐든지 얼마든지 말하라고 합니다. 그때 박순애는 울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재소자들은 감방이라도 있지만 우리교회는 이제 하나님이 거할 방이 없어요." 바로 그때 장로님의 머리와 가슴을 강타하는 하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아! 이 돈은 이미 가난한 개척교회를 위한 돈이었구나! 하나님께 개척교회에 보내겠다고 서원한 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박순애에게 너무 너무 감사하다고 고백합니다. 자칫 교도소 사람들 불쌍하다고 동정하다가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어길뻔 했던 게지요. 장로님이 "딸아 귀한 믿음 가졌구나." 그리고 당신이 살아오신 인생의 걸음 걸음을 얘기하는 겁니다.

 

장로님은 맨주먹으로 어린 나이에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 취직을 합니다. 15년만에 70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그 공장의 사장이 됩니다. 그때까지는 피눈물나는 새벽기도, 눈물겨운 헌신, 힘이 지나는 봉헌으로 하나님을 섬기던 그가 회사, 공장이 번성하면서 점차 하나님과 교회를 멀리하게 됩니다. 10년이 지난 어느날 직원은 300명이 넘는 큰 회사로 성장되었습니다. 교회서는 장로란 이름까지 달았습니다. 그때쯤 그는 봉사 멀리한적 오래요, 너무 바빠 기도 잊은지 오래요, 봉헌은 형식적인 껍데기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성공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어느날 15억을 막지 못해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맙니다. 회사, 부동산, 살던 집까지 추풍낙엽으로 날아갔습니다.

 

교회 목사님은 이무렵 예배당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장로님을 건축위원장으로 생각합니다. 장로님은 늘 입만 열면 건축 시작하면 본인이 절반은 감당한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날 새벽 장로님은 너무나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새벽기도회에 나와 "하나님 살려주세요. 나 부도났어요. 어떡해요." 울며 기도합니다. 목사님의 가슴이 철썩 내려앉았습니다. "하나님 성전 건축 어떻게 해요. 우리 교회 별이 떨어졌네요. 건축 헌금 절반이 날아갔네요." 장로님 부도소식이 온 매스컴에 다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부도난 그 장로님은 한 번 하나님이 응답주신 것이니 하나님을 믿습니다하고 건축위원장에 임명합니다. 장로님이 임명을 받고 말합니다. "목사님, 사실은 너무 창피해서 장로직 내려놓고 이 교회 떠나 멀리 가서 살려고 했는데요." 이때 목사님의 한마디 대답 "오직 하나님만 아시니 기도하고 순종하시오." "하나님 어떡할까요. 빚더미에 앉은 날보고 건축위원장 하라니?" 장로님이 기도하다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시는 마지막 방법이 남아 있더랍니다. 모든 재산 다 날아갔는데 처조카 이름으로 등기된 집 한채가 있더랍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은 살집이 없는데 그 집을 팔아 제단에 올려드리고 자신은 오직 눈물과 기도로 건축위원장직을 감당하리라 결단하고 바로 그 시간 일천번제 작정합니다.

 

첫째, 다 망한 집 좁은 셋방에서 가정 예배 일천번제를 드리겠습니다.

두번째, 새벽예배 일천번제를 드리겠습니다.

세번째, 주머니에 돈 한푼 없지만 모든 기도회에 1만원 예물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봉헌 봉투를 매일 드리는데 언젠가부터 1만원이 없어 빈봉투 들고 그날은 좀더 일찍 나가 울기 시작합니다. 울다보면 울음소리가 커집니다. "하나님, 1만원이 없어 빈봉투 들고 왔어요. 엉 엉!" 옆에 앉은 교인이 그 기도소리 듣고 너무 불쌍해서 조용히 1만원을 무릎위에 얹어 놓고 갑니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교인들이 하는 말 "일천번제는 지가 작정하고 돈은 우리가 내네."

 

일천번제가 1년쯤 계속되는데 성전 건축은 아름답게 올라가고 장로님은 할일도 없어졌으니 밤낮 가리지 않고 성전에 엎드려, 건축현장이 보이는 언덕위에서 매일같이 기도만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종아, 네가 부자로 살았더라면 너는 신실한 종이니 헌금은 했을 게다. 그러나 내 제단에 눈물은 드리지 않았을 게야.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너 자신이요 너의 눈물이었다."

 

하나님이 감동을 주십니다. "종아 때가 되었으니 백지 한장 들고 빚쟁이들을 찾아가라." 빚쟁이들을 찾아가 합의서를 써 달라고 무릎 꿇어 빕니다. 나를 감옥에 보내고 빚 떼이면 좋겠습니까? 3년짜리 큰 적금을 들고 있는데 3년후에 갚을테니 용서해 달라고 빕니다. 여기 3년짜리 적금은 하늘에 붓는 일천번제를 의미했습니다. 그리하여 이사람 저사람 모두 만나 합의서를 받아 경찰서에 제출하고 다시 공장을 가동시킵니다. 흩어졌던 직원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습니다. 일천번제가 마쳐질 무렵, 빚도 갚고 성전건축도 완공이 되었습니다. 회사는 날로 더욱 번창해 갑니다. 그무렵 장로님의 돈과 물건을 떼먹고 도망갔던 사람이 찾아와 돈을 곱배기로 내어놓습니다. "사장님 용서해 주시고 이 돈 받아 주세요. 그래야 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래서 그 돈을 받아 정액만큼 회사에 넣고 배로 가져왔길래 절반은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는구나 싶어 개척교회 섬기겠다고 떼어놓은 것입니다. 바로 그 돈이 박순애 청년의 교회로 전달이 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일천번제의 파우워를 깨닫고 박순애 전도사는 집회를 인도하는 곳마다 일천번제를 작정시킵니다. 순종하는 교회, 순종하는 사람들은 모두 합당한 복을 받았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우리교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일천번제를 작정했고 많은 분들이 이미 일천번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일천번제가 진행되는 앞으로 3년어간 동안 저희교회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있는 기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교회의 비전이 구체화되고 비전의 사닥다리가 완성되고 힘있게 운동화되고 작동되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둘째는 비전센타 건축이 완공되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박순애 전도사야 가는 곳마다 동일한 메시지로 동일한 결단을 요구한 적이겠지만 저는 앞으로 3년이 이 교회의 역사를 좌우할 만큼 너무나 귀한 기간이라 하나님이 우리의 헌신과 기도를 요구하신 명령으로 받았습니다.

 

IV. 일천번제의 자세

 

우리가 오늘 일천번제를 드리고자 할때 어떤 마음, 어떤 자세를 가지고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첫째 자신에게 주신 인생의 목적과 비전 그리고 사명을 바로 감당하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시작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은 너무나 큰데 자신은 너무나 부족하다는 자각에서 시작된 제사였습니다. 그렇다면 세상도 나라도 하나님의 것이요, 모든 권세와 힘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나는 그분께 매달리겠다는 각오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나라를 세우기도 하시는 분이고 이 나라를 무너뜨리기도 하시는 분이시구나. 하나님은 생명을 생명을 주신 분이시며, 거두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내가 가진 모든 자원들을 주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며 거두시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나는 그분앞에 매달려 그분의 힘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이것이 일천번제의 결단입니다.

 

내 자원으로 살아가지 않겠습니다. 내 능력으로 살아가지 않겠습니다. 내 경험으로 살아가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죽이시면 죽고 살리시면 살겠습니다. 당신이 흥하라 하시면 흥하고 망하라 하시면 망하겠습니다. 당신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당신이 주시는 힘으로 살겠습니다는 결단입니다.

 

둘째 일천번제가 계속되는 동안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장로님이 일천 가정예배, 일천 새벽시도회를 작정했듯이 말입니다.

 

물질 때문에 늘 시험을 당하신 분이 계십니까? 물질만 보면 유혹이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리십시오. 하나님이 이번 기회에 여러분에게 물권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영권이 필요하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의 몸과 기도를 드리십시오. 세상을 정복하는 세상을 허락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돕는 손길들 인권을 허락하여 주셔서 천사들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혹 "나는 이 기간동안 성경을 10독 하겠다. 성경을 한번 쓰겠다. 100명을 전도하겠다. 12제자를 만들겠다." 구체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셋째 10가지 기도제목을 너무 쉽게 정하지 말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 잘 정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1천번 공예배나 기도회에 참석할 때마다 일정한 예물을 정성껏 드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1천마리의 숫소를 드렸습니다. 그 예물은 약간 부담이 될만큼 힘에 넘치도록 드리는 것이 일천번제의 정신입니다. 매번 1만원을 드리기로 결단하신 분들은 일천번제가 마쳐지고 본인이 원하시면 천수림 번호를 부여해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교회에 일천번제의 메시지가 선포된데는 크고도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상상도 못할 축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을찌어다!

 

사랑하는 한소망 가족 여러분!

성령님이 감동을 주시는 분들은 결단해 보십시요. 그러나 성령이 감동 주시지 않는 분들은 때를 기다리십시요. 내 의지로 결단하려 하지 마십시오. 인생이 지은 마음은 절대로 3년을 가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면 3년은 30년을 흘러가며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는 역사의 위대한 세계적인 인물들이 여러분의 가정에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인물이 아니라 세계적인 인물 말입니다.

 

그 어느때보다 이 나라와 우리교회는 여러분의 기도와 눈물이 쌓여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천번제의 방법과 수준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정하는 것입니다. 자기 믿음의 수준에서 결정할 일입니다. 뿌린만큼 거두게 될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책임있는 중직자들 사역자들은 의무감에서라도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어린 신앙인들은 성령의 감동에 따라서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소망 모든 가족들이 앞으로 3년동안에 일천번제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났습니다. 순종하면 교회의 비전 중심에 내가 서게 될 것입니다. 꿈도 꿀 수 없었던 믿음이 자라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이 자기 가정의 복이 될 것입니다. 자손 만대의 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신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의 영광을 21세기 이 땅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교회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 자손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솔로몬이 복 받았던 비결! 일천번제 파우워를 믿어 보십시다. 일천번제는 주님의 명령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원하여 기쁨으로 결단한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힘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에게 명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만 순종하십시오. 순종! 하기로 결단했다는 것은 하나님 이미 여러분을 위하여 준비된 복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최낙중목사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 왕상03장 03절 ~ 12절

 

사람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잘 마치려 하거나, 또 유능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실력입니다.

어느 분야에서 집중 연구를 해서 상당한 식견을 가져야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친화력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의 지식이 많고, 똑똑하다 할지라도 사람을 섬길 줄 알고, 여러 흩어져 있는 마음을 묶을 줄 아는 그런 친화력이 없이 자기 혼자 뛰어서는 큰 일을 못 해내기 때문에 친화력이 중요합니다.

세번째는 통찰력이 중요합니다. 통찰력이라고 하는 것은 사물을 꿰뚫어보는 눈이고, 어떤 사건을 접했을 때 그것을 잘 판단할 수 있는 힘입니다.

실력은 공부 열심히 해서 얻을 수 있고, 친화력은 감정지수를 높이고 겸손해야 얻을 수 있고, 통찰력은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세 가지 힘을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실력을 갖추고, 친화력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이 되었을 때 그 가정이 평안합니다. 잘 되어집니다. 그런 것을 갖춘 사람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대국강성, 강성한 대국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갈 때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경험, 지혜, 통찰력, 사람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친화력이나 실력, 그것만으로는 못삽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뭘 아는 것 같아도 모르는 게 많습니다.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일을 모릅니다. 또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통찰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지켜주고 성을 지켜주지 않으면 그 경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고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손에 붙들고 계신 절대자시고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 분과 손을 잡고 사는 것이 최고의 지혜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간이 노력해서 얻어지는 어떤 것보다도 우월하기 때문에 성경은 말하기를 지혜가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솔로몬이 나이 이십 세가 조금 넘어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어서 첫번째로 재판을 하게 되었는데 재판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창기인 두 여인이 삼일 터울로 아이를 낳고, 함께 집에 살다가 어느 날 한 여인이 실수해서 자기 아이를 죽였습니다. 아침에 날이 새서 보니까 한 아이는 죽어 있고, 한 아이는 살아있는데 두 창기가 서로 다투었습니다. 죽은 아이는 네 아이고, 살아있는 아이가 내 아이라고 하며 서로 다툰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증인도 없는데 누가 옳은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며칠 사이에 두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갓난아이들은 얼굴이 비슷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달했다면 DNA, 유전자를 검색해서 친자식이 누구인지 알 수 있지만 지금부터 삼천년전 이야기인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둘이 서로 옥신각신 다투다가 그럼 우리 왕에게 가서 판결을 받자 해서 솔로몬 왕에게 온 것입니다.

솔로몬 왕앞에 온 두 여인은 거기서도 서로 다툽니다. 죽은 아이는 네 아이이고 살아있는 아이는 내 아이라고. 그러니 솔로몬 왕이 누구의 편을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이 시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서로 살아있는 아이가 자기 아이라고 우기니 내가 칼로 살아있는 아이를 반으로 쪼개서 나눠주겠다고 했더니 한 여인은 그 아이를 살리고 싶어서 왕이여 그리하지 마소서. 그 아이를 저 계집에게 주세요 하고 대답하고, 다른 여인은 그렇게 하세요. 반으로 쪼개서 내 것도 저 여자의 것도 못되게 해주세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판단에 누가 그 살아있는 아이의 어머니겠습니까? 비록 내가 기르지 않고 나쁜 여인에게 맡겨서라도 아이를 죽지 않고 살게 하겠다고 하는 그 어머니가 살아있는 아이의 친어머니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한 어머니가 친어머니다, 살아있는 아이의 어머니이니 그에게 주라 하고 판결을 했습니다. 이렇게 지혜로운 솔로몬의 판결로 인하여 온 나라에 지혜의 왕 솔로몬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 뿐만 아니라 열왕기상 4:29-30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동양의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고 애굽의 모든 사람의 지혜보다 뛰어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재판을 할 때만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문학적으로도 지혜가 넘쳐 나서 그가 쓴 잠언, 전도, 아가서에는 얼마나 지혜로운 말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지혜가 넘친 솔로몬 왕에게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락했으니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은 정치를 바로 할 수 있고, 이렇게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 마음에 평안을 심어줄 수 있으며,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사가 되는 것이니 그래서 잠언서 4:7절 말씀에 보면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지혜는 자기 노력으로 얻어진 것입니까? 공부해서 얻었습니까? 스스로 공부해서 얻었습니까? 무슨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혜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노력해야 하지만 노력 이상의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위대한 승리자, 좋은 지도력을 발휘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말 성경에서 지혜라는 말은 히브리 성경으로 보면 호크마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호크마란 말은 듣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 마음자체를 호크마, 지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12:15절 말씀에 보면,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8:33절에 훈계를 듣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라. 잠언서 28:7절 말씀에 보면 율법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최고의 지혜자가 되기 원하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 따라 사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 때 우직스럽고 좀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요, 그 말씀 순종하여 행하는 사람이 최고의 지혜자이니 하나님은 이런 지혜자를 통해서 큰 일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말씀하시고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가 주의 이름으로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했다고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만 주님은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엄한 명령으로 판결할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불법이 무엇입니까? 자기 주관대로 믿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믿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법입니다.

바른 신앙생활은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아니함 같으리라.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오고 바람불고 창수나면 무너짐이 심하리라고 했습니다.

모래로 집을 짓는 것은 자기 주관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반석은 예수님이 반석이고, 하나님이 반석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반석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인줄 믿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9:10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한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따라 신앙생활 하지말고, 말씀 따라 신앙생활 합시다. 환경 따라 예수 믿지 말고, 말씀 따라 예수 믿으십시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내가 누구인가, 자기 정체를 알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 나는 피조물,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가 무엇입니까? 거룩한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모르는 자식이 자식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그 은혜에 감격해서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즐겁게 할꼬, 거룩한 근심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삶을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 100:3절 말씀에 보면,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목자라면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수많은 그의 짐승 가운데 양만큼은 목자 없이 못 사는 짐승입니다.

몸집이 크지 못하고, 힘도 약하고, 발이 빠르지도 못합니다. 눈이 밝지 못하고, 아이큐도 높지 못합니다. 양은 병약합니다. 양은 스스로 못 사는 짐승입니다. 그래서 목자가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안내해야 됩니다.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야 됩니다. 꼴이 어디 있는지, 물이 어디 있는지 양은 모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기 부족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목자, 나는 양, 그 분의 안내를 받기만 하면 푸른 초장이 있고, 쉴만한 물가가 있어서 부족함이 전혀 없을 텐데, 목자의 음성 듣기 싫어 제 고집대로 가는 양, 곁길 가는 양은 길을 잃어버리거나 구렁텅이에 빠지기도 하고, 맹수의 밥이 되거나, 불행한 양이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어디든지 따라 가십시오. 주님이 있는 곳이 천국이고, 주님이 다스리는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지혜 가운데는 마귀가 주는 지혜가 있고, 하나님이 주는 지혜가 있습니다.

마귀가 주는 지혜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약 3:13절 이하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 중에 지혜있는 자가 누구냐, 총명있는 자가 누구냐, 그의 선한 행실로 너희가 지혜있는 자인 것을 보여라. 만일 너희 마음속에 누군가를 시기하고 다투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런 시기, 질투, 미운 감정 등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마귀의 조종속에 들어가서 부정적으로 죄를 범하든지, 하나님이 주는 마음을 좇아 선을 행하여 영광에 이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잘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될지언정 마귀가 활동하는 운동장이 되지 않도록 마음 단속을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 단속을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 마귀의 운동장으로 내어주는 사람과 성전으로 내어주는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한 예를 들면, 감정 처리하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화가 잔뜩 났을 때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십니까? 불신자의 경우 남자들은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웁니다. 고함을 크게 지르거나, 그것도 안되면 폭력을 휘두릅니다.

여자일 경우, 화가 잔뜩 났을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다든지,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든지, 수다를 떨거나 실컷 음식을 먹는다든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런 방법으로는 근본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의사들이 쓴 책이나, 심리학자들이 쓴 책들을 보면 재미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의사인 맥밀란이란 박사님이 쓴 무병이란 책을 보면 사람이 분노할 때 몸에 있는 독소, 아드레날린이라는 독소 분비물이 온 몸에 퍼지게 되면 피가 상하게 되고, 그리고 여러 가지 병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기쁘고 편안하게 가지면 엔돌핀이란 분비물이 나와서 독소를 다 추방시켜서 피를 맑게 하고 건강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동물학자가 연구 보고한 것을 읽어보니까 사자는 오래 살아야 25년을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150년을 넘게 산다고 합니다. 사자를 보면,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적이고 화를 잘 내는데, 거북이는 웬만하면 화를 잘 안 낸다고 합니다. 그러니 오래 살려면 화를 안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북이가 화내는 것 봤습니까? 누가 건드려도 머리를 쑥 집어넣을 뿐입니다. 사자는 파리만 와도 어홍 어흥, 파리가 와서 귀찮게 하면 입을 있는 대로 다 벌리고 화를 내니 그 성질 때문에 25년도 못 산다는 것입니다. 사자같이 살지 말고 거북이처럼 살아야 된답니다. 인간에게도 동물적인 요소가 있지 않습니까? 만일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면 동물과 똑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 처리하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을 드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지혜자는 누구인가 하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이 나서 돌아가신 게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뿐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어떻게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이 뛰어난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솔로몬이 통치한 40년 동안에 그런 평화와 번성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솔로몬이 말년에 노망이 들었는지 곁길로 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왕이 된 초년때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섰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은혜 주시고 지혜 주신 것은 기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기도보다 먼저 귀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본문 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얻으려거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 사랑하는 방법이 제사 드림이었습니다. 2절 말씀에 보면, 그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때가 아직 아니었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4절 말씀에 보면,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에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번제를 드렸다.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이 제사 행위로 나타났으니 구약 시대에 제사는 신약 시대에 예배입니다.

예배에 성공하십시오. 예배를 정성껏 드리십시오.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하나님 사랑함을 예배로 보이십시오. 그러면 하늘의 지혜가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당시, 아직 성전이 건축되기 전이었으므로 예배장소가 산에 있었고, 기브온이란 산은 예루살렘에서 약 12km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교통수단이 오늘처럼 발달되지 않은 시대이니, 12km를 걸어가면 몇 시간 걸릴 것입니다. 한두 시간 정도 걸리는 먼 곳에 가서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일천번제를 연구해 보니, 천일 동안, 즉 2년 9개월 동안 하루 한 마리씩 소를 바쳐 제사드렸다는 의미가 아니고 불과 며칠 사이에 일천 마리 소를 계속 연속해서 드린 것입니다.

번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감사 제사입니다. 주를 위해 살겠다고 하는 헌신을 다짐하는 제사가 번제입니다.

솔로몬은 나이 이십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이십세이면 성인이라고 하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뒤를 이어서, 아버지 신앙을 계승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는 앞장섰습니다. 일천 마리의 황소를 갖다 바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게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제사를 드려야겠습니까?

무엇을 주 앞에 바쳐야겠습니까? 주님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몸입니다.

로마서 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산 제사로 드리라. 우리 몸을 주 앞에 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몸이 있는 곳에 시간도 있고, 돈도 있고, 몸이 있는 곳에 재능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만은 안됩니다. 몸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으로만 하나님 섬기지 말고 여러분의 몸이 주일날 주 앞에 나와 예배드리고 정한 시간에 나와 또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몸을 드리십시오.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번제드림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천이라는 개념은 그냥 천이라는 것이 아니고 무한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0:5절 말씀에 보면, 그 부모가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와 규례를 지켜 살면 수천 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했는데 그 천대는 무한정 복을 준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1:11절 말씀에 현재의 복보다 천배로 복 주신다는 말씀이 있는데 거기서 말하는 천배도 무한한 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약속된 복은 무한한 복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뭔가 주 앞에 바치는 것을 보면 그들의 진실로 어느 정도인지 드러납니다. 우리 예수님은 누가복음 7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 중 시몬이라고 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초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식사에 초대받아 그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식사 중에 이웃에 살고 있던 죄 많은 여인이 와서 눈물로 예수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그것을 씻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몸에 부었습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시몬이 예수님을 의심합니다. 이 분이 선지자라면 저 여자가 얼마나 부정한 죄인인지 알 것인데 부정한 여인이 자기 몸을 만지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 이 분이 과연 선지자인가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그 속마음을 아시고,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하니 네, 말씀하십시오 하고 대답합니다. 어떤 사람이 빚주는 사람에게 오백데나리온의 빚을 주었고, 오백 데나리온의 돈은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이천오백만원 정도의 돈이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오십 데나리온의 돈을 주었느니라. 우리나라 돈으로 이백오십만원 정도 빚을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빚 갚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님을 불쌍히 여기사 둘 다 탕감해 주었느니라. 네 의견에는 어떤 사람이 그 빚 준 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고 물으니 탕감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네 판단이 옳도다. 그런데 시몬아, 너는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에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씻었고, 머리털로 닦았다. 너는 내게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는데 이 여인은 향유를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으니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죄사함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주님을 많이 사랑하고, 조금 사함 받은 사람은 주님을 조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입으로 큰 소리를 친다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몸에다 향유를 갖다 붓고 겸손히 무릎꿇어 눈물을 흘리며 발을 씻어주는 이 여인이야말로 분명히 과거에는 죄많은 여인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이 그 여인을 향하여서, 여인이여, 그대의 죄가 다 사해졌느니라 하고 구원을 선포한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이 뜨거운 사람은 죄사함을 받았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만 가지 죄를 다 주님이 사했다, 그러므로 나는 내 생명 다 바쳐 주를 위해 살겠다. 죄사함과 헌신을 이렇게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죄 문제가 철저하게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헌신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죄 사함에 대한 감격이 있을 때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주님이 너무 좋아서, 주님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은 나의 생명,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삶의 의미요 가치요 목적이라, 예수님만이 나의 생애의 전부라, 그렇게 믿어지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몸, 시간, 재능, 다 바쳐도 아깝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그런 감정으로 일천번제를 바쳤습니다. 그 날밤에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 원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뜨거우면 구하기도 전에 줄 것부터 생각하시는 하나님, 어떤 이는 많이 구했는데도 응답이 없고, 어떤 이는 아무것도 안 구했는데도 하나님이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사랑하면 아깝지 않고 다 주고 싶습니다. 미우면 준 것도 빼앗고 싶습니다. 우리 삶이 하나님의 눈에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때 무엇을 구했습니까? 하나님, 나는 하나님 앞에서 작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나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 많은 백성을 나에게 맡겼는데, 그 때 당시는 삼권분립이 없는 때라 왕이 되면 입법, 사법, 행정을 혼자 다 할 때입니다. 주님, 내가 어떻게 법을 세우고, 이 백성을 다스리며,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너무 무거운 짐을 졌습니다. 나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이 대답하기를 너는 다른 왕과 다른 데가 있구나. 다른 왕은 오래 살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 주세요,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주세요, 우리 원수를 갚아주세요, 그렇게 구하는데 너는 수도 구하지 않고 부도 구하지 않고,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지도 않고 내 백성을 잘 통치하고 다스리겠다고, 내 백성을 바로 섬기겠다고, 네가 지혜를 구하니 네 마음이 내 마음에 합하도다. 그러므로 네가 구하는 지혜도 주고, 총명도 주고,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누리게 하겠노라.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했더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했더니, 구하지 아니한 것도 덤으로 주셨습니다. 이게 바로 중요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주의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슨 기도를 하십니까? 여러분들이 2002년도에 이루고자 하는 소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께서 12월 31일밤 송구영신예배 드릴 때 2002년도에 이루기를 원하는 소원을 내가 노트에 정리했습니다. 어떤 분은 성령 충만 받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은 좋은 배필 만나 시집 장가가길 원합니다. 어떤 분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어떤 분은 사업이 번창해서 천만원 이상 십일조 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은 더 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나는 일년 동안에 오백명 전도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이런 것들을 다 내가 노트에 정리하고 내가 그것을 요즘 외우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의 백성을 위한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 솔로몬의 기도에는 자기를 위한 기도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 백성을 어떻게 하면 복받게 합니까? 사명 감당과 백성을 위한 기도를 했더니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것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태복음 6:33절에 나온 말씀입니다.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했습니다. 그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백성은 그 나라의 백성입니다.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삼대 요소가 있어야 됩니다. 영토, 주권자, 백성, 백성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그 나라와 의를 위해서 구하십니까? 더 많은 영혼 구원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백성 없는 나라가 나라입니까? 백성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꼭 말씀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복 받기를 위해서 기도했던 솔로몬, 그래서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지혜를 구해야 됩니다.

야고보서 1:5절 말씀에 보면, 너희 중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혜를 구하십시오. 맡겨준 사명 감당을 위해서 지혜를 구하십시오. 영리한 머리 자랑하지 말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홍해가 갈라졌던 것, 인간의 경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바다위로 내밀라, 그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이 볼 때에 그것은 웃기는 것이요 장난치는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를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지혜를 갖고 살면,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웃기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정신이 돌았나, 미쳤나, 예수를 믿더니 저 사람 아주 버렸구먼. 십자가의 도는 망할 사람에게는 미련하게 보입니다. 무슨 금식이냐, 철야냐 하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고 난 이후에 과거에 그렇게 자기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들을 다 분토처럼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기 때문에 이 십자가의 놀라운 비밀을 깨닫고 난 이후에 마치 진주를 캐는 것처럼 보화를 얻은 것처럼 다른 것 다 버렸습니다. 예수님 붙들었더니 그 속에 다 있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손잡은 솔로몬처럼 주님 손잡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가 함께 할 때 악한 자가 손 못 대도록 하시고, 그와 함께 하면 어려운 문제도 아주 편안하고 쉽게 풀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무엘상 13: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 지도자를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맞는 자가 무릎꿇는 자요, 주의 도움을 구하는 자이고, 말씀대로 사는 자입니다. 여호와의 신이 우리에게 임하면 지혜가 올 뿐아니라 총명도 오고, 모략과 재능도 임하게 되는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이러한 신을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 말씀 앞에 언제나 예만 하고 아니오 없이 살았더니 하나님이 예수님께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도행전 10: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권능을 기름 붓듯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 전파하고 병든 사람은 고치고, 귀신 들린 사람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지혜주십니다.

우리가 이성주의와 합리주의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믿음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뒤에 하나님이 장래 이렇게 하리라 하고 응답이 왔을 때 솔로몬은 어떻게 했습니까?

15절 말씀에,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수은제를 드리고 모든 신복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은혜 받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응답 받고 난 뒤에 또 번제 드리고, 이번엔 수은제까지 드렸습니다. 수은제라는 말은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제사를 수은제라고 합니다.

응답 받기 전에는 매달려 기도하던 사람이 응답 받고 난 뒤에는 기도는 안하고 잠만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응답 받기 전에도 일천번제 드렸고, 응답 받고 난 뒤에도 또 제사를 드렸습니다. 늘 몸을 드리고 마음을 드렸습니다. 주님을 향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과 함께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와서 시간 바치는 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허비가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찬양하는 것, 성경 읽는 것, 심방하고 전도하는 것,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그것은 확실한 투자입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투자입니다. 그것은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눈물을 흘려가면서라도 심어보십시오. 반드시 기쁨의 단을 가질 날이 올 것입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피곤하지 아니하고 때가 되면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솔로몬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중표 목사 듣 는 마 음 왕상03장 04절 ~ 11절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복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솔로몬입니다.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12-13절). 어떤 왕도 솔로몬 왕과 같은 그런 부와 영광을 누린 사람이 이 땅에 없습니다.

 

솔로몬은 왜 이런 복을 받았을까요? 하나님 앞에 예배를 잘 드리므로 받았습니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4절). 일천 번제는 천번의 번제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번제는 히브리어로 ‘hl;[o’인데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하여 자원하여 드리는 제사요, 온전한 헌신과 경건의 표현입니다. 번제는 재물을 불살라서 향기로 드리는 제사로서 우리 전 마음과 뜻을 다 불살라서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런 제사를 천 번 드렸습니다. 일천 마리의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제사를 드림으로 전무후무한 복을 받게 됩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올 때도 온전한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늦게 오면 안됩니다. 예배시간 전에 와서 기도로 준비해야 됩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됩니다. 옷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와야 됩니다. 헌금도 집에서 미리 정성스럽게 준비해가지고 와야 합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묻습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하나님은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가장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구하라”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할 때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이미 받은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6절)

솔로몬은 은혜를 기억하되 부모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최고의 은혜가 부모를 통해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전체가 다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입니다. 외모, 성격, 지혜, 모든 것이 다 부모를 통해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라고 말씀하신 것은 부모를 통해서 나타난 은혜를 기억하는 솔로몬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잘나서 공부하고, 내가 잘나서 출세하고, 내가 잘나서 복받은 줄 압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복은 다 부모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상처까지도 부모로부터 받아서 이것을 은혜로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기 출신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불륜 관계로 맺은 밧세바의 아들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기가 받은 왕의 자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통해 준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알고 있는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하고 묻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부귀도 구하지 않고, 왕의 영광을 구하지도 않고, 원수를 멸하는 능력을 구하지도 않고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지혜로운 마음은 히브리 말로 ‘['mevo bl’라는 말인데 ‘bl’는 ‘마음’이라는 뜻이고, ‘['mev’는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마음은 듣는 마음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자식이 지혜로운 자식입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 지혜로운 학생입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님 말씀을 잘 듣는 성도가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들으면 살고 듣지 않으면 망한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많은 것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다윗이 받았던 마음입니다.

“주여, 말씀하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이것은 겸손입니다. 순종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듣는 마음을 순종하는 마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10절).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말입니다.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11-12절)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준다고 약속하십니다. 솔로몬은 이 마음을 받아서 잠언서, 아가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이 어떻게 지혜롭게 살 수 있는가, 어떻게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는가, 어떻게 허무한 삶 속에서 바르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태리 밀라노 집회를 인도하고 거기서 500km를 달려 앗시시를 찾았습니다. 그곳은 제가 평소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그 땅 이곳 저곳을 돌아봤습니다. 앗시시는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성 프랜치스코가 1182년 9월 26일에 태어나 44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던 곳입니다. 그는 기독교 전 역사를 통해서 가장 위대한 성자요, 종교적 천재요, 종교적 낭만주의를 일으킨 성인입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모든 인간을 사랑한 성자였습니다.

저는 프랜치스코가 밟았던 길, 기도하던 굴, 새들과 노래하던 숲속, 하나님을 찬미하던 산책길, 그를 기념하는 성당, 그가 죽은 자리까지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그가 앗시시 고을들을 바라봤던 산 위에 앉아 ‘성 프랜치스코가 위대한 성자가 된 비밀이 뭘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그때 저에게 이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렇다, 그는 듣는 마음을 가졌구나.”

성 프랜치스코는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었으며, 형제들의 아픔과 그 마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내면의 깊은 음성에 귀 기울이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믿음입니다. 사람의 소리를 듣는 마음은 사랑입니다. 자기 소리를 듣는 마음은 소망입니다.

성 프랜치스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들려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을 들었기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가 되었습니다.

자식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효자와 불효자입니다. 효자나 불효자나 다 부모님으로부터 상속을 받습니다. 족보를 받습니다. 부모를 닮습니다. 그런데 불효자는 한가지를 못받습니다. 부모의 마음을 못받습니다. 재산도 알고, 생긴 얼굴도 알고, 족보도 아는데 부모의 마음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효자입니다.

교인 중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중표 목사를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굴도 알고, 이름도 알고, 설교도 알지만 마음을 모릅니다. 그래서 저의 깊은 정을 못느끼는 성도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부르고, 헌금도 합니다. 그런데 수십년 동안 다녀도 예수님과 마음이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안타까이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

 

프랜치스코는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날에는 거리를 방황하며 호탕하게 살았습니다. 또한 전쟁터에 나갔다가 사로잡혀 1년동안 포로생활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가 23세 때 성 다미엔 성당 십자가 밑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프랜치스코야, 너는 내 집을 수리하라 내 집이 무너져가고 있다.” 처음에 그는 성당을 수리하라는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돌을 모아다가 성당을 수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내 집을 수리하라.” 비로소 그는 그 음성이 건물을 수리하라는 것이 아니라 프랜치스코 자신을 수리해서, 무너져가는 기독교를 바로 세우라는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프랜치스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여 자기를 고쳤습니다.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마 10:10). 그는 말씀을 듣고 즉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외투도 벗어버리고 남루한 옷을 입고 일생을 한 벌 옷으로 사는 걸식 수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장사를 했고, 이태리에서 포목상을 해서 큰 재산을 일군 앗시시의 대부호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자신이 애써 모은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함부로 나누어주면서 거지처럼 살아갈 때 그의 아버지는 배신과 실망감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들에 대한 재산상속권을 박탈해달라고 법정에 제소하였습니다. 재판하는 날 앗시시의 모든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법정에 모여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주교가 법정의 재판관이었는데 최종 판결을 이렇게 내렸습니다. 󰡒성 프랜치스코. 그대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남을 구제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 재산은 그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즉시 프랜치스코는 자기 몸에서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모든 옷을 다 벗어버리고 법정에 알몸으로 섰습니다. 주교는 안타까이 여겨 자기의 겉옷을 벗어다가 그에게 덮어주었습니다. 그때 프랜치스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로 삐에트라 베르나도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 부르겠습니다.” 그는 막대한 아버지의 재산을 포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등지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의 음성을 들은 사람

 

일반적으로 수도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등지고 심산유곡으로 들어갑니다. 별세의 첫 단계는 떠남에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앗시시의 지형은 신기하였습니다. 깊은 산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세상이 잘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앗시시라는 도시는 하나의 큰 산처럼 생겼는데 마을로부터 산으로 깊이 들어가면 그 산정으로부터 세상이 품에 들어오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도한다고 세상을 떠난 만큼 더욱 세상을 넓고 깊게 보게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성 프랜치스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떠남의 별세를 이루었지만 수도에 정진하면서 세상을 보았고 거기서 들려오는 민중들의 고통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문둥병자를 돌보았고, 가난한 자들을 사랑으로 돌봐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가난한 자들과 병자들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깊은 산속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에 정진하고 있을 때 묵상 중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충만히 임했습니다. 순간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내가 산 속에 들어와 이렇게 수행만 해야 하는가? 아니면 세상에 나가 주님의 일을 해야 되는가?󰡓 그는 그를 따라 수도하던 제자 마태오를 불렀습니다. “마태오야, 내가 산속에 남아서 수도를 해야 할 것인지 나가서 일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생겼다 그러니 신실한 두 사람 실바스 형제와 클라라 자매에게 가서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물어봐다오.” 마태오의 전언을 따라 두 사람은 기도를 한 후 성 프랜치스코에게 이렇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프랜치스코를 오직 한 분만을 위해 만들지 않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성 프랜치스코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옳도다. 주의 뜻을 따라 내가 마을로 내려가리라.’ 그리하여 그는 수도를 정진하다가 일어서서 마을로 내려가서 전도도 하였고, 예수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성 프랜치스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세상을 떠난 별세의 수도사일뿐만 아니라, 형제의 음성을 듣고 세상 속으로 돌아와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별세의 성자가 된 것입니다.

귀로 듣는 사람은 청중이고 마음으로 듣는 사람은 제자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이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곳이 천국입니다. 내 음성을 들어줄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기도입니다.

 

자기 영혼의 깊은 간구를 들은 사람

 

성 프랜치스코는 하나님께서 내면의 영혼이 소원하는 바 그 깊은 간구를 들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여, 내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내려주옵소서. 첫째, 내가 영혼과 육신의 고통 속에서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맛보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둘째, 주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그토록 큰 고통을 참으실 수 있었던 불타는 사랑을 내 안에도 간직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성 프랜시스는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날개 넷이 달린 천사였는데, 프랜치스코에게 가까이 와서 두 날개로는 날갯짓을 하며 날았고, 날개 두 개는 몸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천사의 몸에 십자가의 거룩한 상흔이 각인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성 프랜시스는 마음속에 타오르는 듯한 뜨거운 감동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즉시 프랜시스의 몸에도 상흔이 생겼습니다. 손과 발에는 못 자국이, 옆구리 오른쪽에는 창자국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피가 흘러 내리는데 아무리 붕대를 감아도 피가 멈추지 않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 프랜치스코는 전무후무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주님의 마음을 담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흔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앗시시는 오직 성 프랜시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역사적 도시였습니다. 그의 유적지와 그를 기념하는 물건을 파는 곳 외에는 관광을 위한 구경거리는 물론 음식점조차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재산은 유리관에 넣어져 보관된 일평생 입고 다녔던 옷 한 벌뿐이었지만, 수 백년이 지난 오늘도 앗시시 곳곳에는 성 프랜시스의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담아 믿음, 사랑, 소망으로 유일한 행복, 축복,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안효관목사 지혜로운 마음을 주소서 왕상03장 04절 ~ 12절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지요? 남자는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에는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결혼해서는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운전할 때에는 네비게이션 안에 있는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현명한 남자는 여자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주장대로 살아가는 강한 남자가 아니라, 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남자입니다. 역사적으로 여자의 말을 잘 듣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시대 성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琮)이라는 분입니다.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종침교(琮琛橋)라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리는 없어지고 다리표지석만 남아 있습니다만,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습니다. “조선 성종 때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琮)과 허침(許琛) 형제가 갑자사화의 화를 면한 일화가 얽혀 있는 경복궁 입구 다리터.” 그 일화는 이렇습니다. 당시 성종은 연산군을 낳은 왕후 윤씨를 폐비시키고 결국 사약을 내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왕후 윤씨를 폐비시키기 위한 어전회의가 열리던 날, 허종의 누이가 아침 일찍 어전으로 가는 허종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전회의에 나가면 훗날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며, ‘어떻게 해서든지 어전회의에 나가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누이의 말을 들은 허종은 누이의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어전으로 가던 도중 궁궐로 들어가기 전에 이 종침교에서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습니다. 그것을 핑계 삼아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허종이 참석하지 못한 그 어전회의에서 왕후 윤씨를 폐비시키기로 결정되었고, 폐비가 된 윤씨는 다음해에 사약을 받아 죽게 됩니다. 후에 폐비 윤씨의 아들인 연산군이 왕이 되어 자기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당시의 신하들을 다 죽이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역사적으로 그것을 갑자사화(甲子士禍)라고 합니다. 그런데 왕후 윤시를 폐비시키기로 결정한 그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던 허종과 그 가족들은 그 참혹한 죽음의 위기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허종이 일부러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침으로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화를 면했다고 해서, 그 다리를 허종 허침 형제의 이름을 따서 종침교(琮琛橋)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때로 누군가를 말을 귀담아 잘 들으면 화를 면하고 복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지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혜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지혜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데서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자 솔로몬이 인생의 지혜를 가르쳐준 잠언에서 몇 구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 잘 들어보시고 공통적으로 무엇을 말씀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잠언 1:5)

-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언 12:15)

-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잠언 13:1)

- “교만에서는 다툼이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언 13:10)

-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잠언 23:19)

여러분, 벌써 눈치 채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엇이 지혜입니까? 잘 듣는 것입니다. 잘 들어야 지혜가 생겨나고 잘 들어야 지혜로운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잠언에 나오는 몇 구절만 읽었지만, 이 외에도 잠언 뿐만 아니라 성경 다른 곳에도 잘 들어야 한다는 말씀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말씀이고, 참 부러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내게 구하라.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들어주마.”라고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종종 해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좋은 신앙을 물려받은 솔로몬은 아직 성전이 건축되지 않은 때이기에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1천 번제를 드리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솔로몬은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대답합니다. 본문 9절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여기서 솔로몬이 하나님께 달라고 한 ‘지혜로운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냥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달라고 하지 않고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했습니다.

9절에 나오는 ‘지혜로운 마음’이란 말을 좀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듣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번역한 개역개정판에서는 본문의 ‘지혜로운 마음’을 ‘듣는 마음’으로 번역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무얼 줄까?’ 라고 물으실 때에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줄까?’라고 물으실 때 ‘듣는 마음’을 달라고 했습니까? 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재판을 바르게 할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을 달라는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솔로몬은 스스로를 ‘작은 아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몇 살에 왕이 되었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솔로몬이 왕이 될 때가 20세 전후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이 스무 살이면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몇 주 전에 말씀드린 요시야 왕은 불과 8살에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된 지 12년 되는 해에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나이가 20살이었습니다. 20살이면 전국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우상들을 제거하겠다고 결단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20살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아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으로서 하나님 앞에, 또 백성들 앞에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못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귀한 왕의 직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마음(듣는 마음)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솔로몬이 꿈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본문 바로 뒤인 15절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성경은 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얼 줄까?’ 라고 물으시고, 솔로몬이 ‘지혜로운 마음(듣는 마음)을 달라’고 말한 이 사건이 꿈이었다는 것은 강조합니까? 저는 이 말씀을 놓고 깊이 묵상해 보았습니다. ‘솔로몬에게 정말 중요한 이 사건을 말하면서 왜 꿈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강조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솔로몬은 20살 정도에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었을 때 솔로몬의 마음은 굉장히 무거웠을 것입니다. 특별히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신은 큰 아들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왕위는 큰 아들이 물려받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큰 아들이 아닙니다. 사무엘하 3장에 보면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으로 있을 때 이미 6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솔로몬이 때어나기도 전입니다. 물론 그 6명 가운데 큰 아들 암논과 셋째 아들 압살롬은 먼저 죽었습니다. 형 둘이 죽었다 해도 솔로몬에게는 최소한 4명의 형이 있었습니다. 4명의 형을 제쳐두고 솔로몬이 왕이 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이 된다고 하니까 그 4명의 형 가운데 하나인 아도니아가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비록 아버지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긴 했지만, 왕궁 내에서도 형들을 제쳐두고 거의 막내 뻘인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왕이 되었기 때문에 솔로몬은 더 좋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심했을 것입니다. 형 아도니아를 죽여가면서 왕위에 올랐기에 백성들로부터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이 잘 된 일이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게 여간 심한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하나의 부담감은 아버지 다윗으로 인한 부담감입니다. 아버지 다윗은 정말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고 백성들에게도 정말 좋은 왕이었고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건 솔로몬이 어려서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6절에 보면 솔로몬이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내 아버지 다윗은 성실하고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긴 왕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 뒤를 이어 왕이 된 나는 너무 부족합니다. 나는 아이에 불과합니다.” 또 오늘 본문 바로 이어 14절에서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칭찬하시면서 다윗처럼만 하면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정도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참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었기에, 아버지처럼 좋은 왕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을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부담감 때문에 솔로몬은 왕이 되면서 늘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왕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이 잘된 일’이라고 평가해줄까? 그런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좋은 왕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어떤 일을 골똘히 생각하면 그것이 꿈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목사님들도 그럴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꿈에 설교하는 꿈을 자주 꿉니다. 어떤 때에는 정말 열정적으로 설교하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러면 꿈에서 깨어나서도 꿈에서 했던 설교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설교 준비가 잘 안 되었을 때에는 불안한 꿈을 꿉니다. 예배 시간이 다 되어서 예배를 드리러 가야하는데 설교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서 가슴이 쿵쾅거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꿈을 꾸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예배 시간이 다 되었는데, 넥타이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어 헤매기도 하고, 바쁘게 준비해서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갔는데 바지를 안 입고 강단에 올라가기도 하고, 벼라별 꿈을 다 꿉니다. 왜요? 늘 설교를 생각하다보니까 그게 부담이 되어, 불안한 마음에 그런 꿈을 꾸는 것입니다.

아마도 장사하는 분들은 어느 날은 벌떼 같이 손님이 찾아오는 꿈을 꾸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장사가 안 돼서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꿈을 꾸기도 할 것입니다.

 

골똘하게 생각하면 그것이 꿈에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솔로몬도 그랬을 것입니다. 늘 ‘어떻게 하면 좋은 왕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지혜로운 왕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게 네게 무엇을 줄꼬?” 라고 물으시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지혜로운 마음(듣는 마음)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왜요? 평소에 늘 ‘지혜로운 마음(듣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지혜로운 마음(듣는 마음)을 달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평소에 무엇을 많이 생각하십니까?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라고 물으시면 여러분은 무어라고 대답하실 것 같습니까? 지금은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그래야지’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하는 것과 꿈속에서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꿈속에서도 ‘이걸 주시라’고 말할 정도로 그것에 깊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올바른 것을 놓고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간구를 들으시고는 마음이 너무너무 흡족해 하셨습니다. 11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말하지도 않고, 원수들을 제거해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했다’고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구하지도 않은 부귀영화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솔로몬은 꿈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구할 만큼 평소에 그것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꿈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평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믿는 자답게 사는 것인지,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꿈속에서도 그걸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솔로몬에게는 지혜로운 마음(듣는 마음)이 그렇게 중요했겠습니까? 솔로몬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듣는 마음이야말로 지혜로운 마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잠언에서 보았듯이, 솔로몬은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듣는 마음이야말로 지혜로운 마음이고, 듣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지혜를 얻는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듣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잘 들어야 합니다. 두 가지를 잘 들어야 지혜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고 똑똑한 척 하더라도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아는 것처럼 보여도 어떻게 하나님과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1: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요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인간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린도전서 1:25)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궁무진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지혜가 어디에 담겨져 있습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명의 길이 어디인지 모르고 방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말씀은 생명이 어디에 있고, 어느 길로 가야 그 생명을 얻는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을 참된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해 헤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 담긴 말씀은 이것이 행복이라고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혜를 얻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지혜는 들음에서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지혜가 생겨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잘 들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소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잘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 것은 백성들의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입니다. 좋은 왕이 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들어야 좋은 왕이 됩니다. 그것을 솔로몬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소리를 잘 듣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소리에 귀를 막아버린 왕은 좋은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솔로몬 왕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그랬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백성들이 르호보암 왕을 찾아와서 ‘솔로몬 왕 때에 우리가 노역을 너무 많이 했고, 세금도 너무 과중했으니 그것들을 좀 감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더욱 왕을 잘 섬기겠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 왕은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더 버거운 노역을 시켰고,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12개 지파 가운데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를 제외한 10개 지파가 여로보암으로 왕을 삼고서 르호보암 왕을 배신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은 둘로 나눠지고 맙니다. 백성들의 말을 듣지 않다가 나라가 분열되는 큰 아픔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도 잘 들어야 하지만, 사람들의 말도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말을 잘 듣되 좋은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잘못된 길로 유혹하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때로는 듣지 싫은 소리일지라도 들어야 합니다. 그게 나에게 유익된 것이라면 말입니다. 들어야 할 것을 잘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잘 듣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침묵하는 것입니다. 침묵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어느 글에서 이런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영어 동사 가운데 listen이란 말이 있습니다. 듣는다는 동사입니다. listen이란 6개의 철자를 가지고 만들 수 있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silent이란 단어입니다. 똑같은 철자 6개인데 조합만 달리하면 listen(듣는다)이 될 수도 있고, silent(침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침묵과 듣는다는 것은 형제와 같습니다.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침묵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때로는 기도할 때에도 침묵할 줄 알아야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자주 하나님 앞에 침묵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침묵하지 못하니까 열심히 기도해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떤 큰 문제가 내 앞에 놓였거들랑 하나님께 하소연한다고 내 소리만 내지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왜 내게 이런 시련과 고난을 주시는지, 하나님의 계획은 무엇인지 조용히 들으려 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내 소리가 너무 크니까 하나님의 소리가 내 귀에 들려지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똑똑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아닙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많이 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무게가 없어 보입니다.

여러분, 말을 조금씩 더 아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안에 하늘의 지혜가 쌓입니다. 조금 더 침묵하는 것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가 들려집니다.

말이 많은 곳에서는 오해가 생겨납니다. 갈등이 일어납니다. 싸움이 생깁니다. 말을 많이 하는데서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지, 듣고 침묵하는 것에서는 문제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을 들었어도 말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문제가 일어났어도 모두가 침묵해 버리면 그 문제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내 사라져버립니다. 말을 많이 하고난 다음에 후회하는 경우는 많아도, 침묵한 다음에 후회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들으라는 말씀은 많이 하지만, 말하라는 말씀은 거의 하지 않으십니다. 말 잘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씀하지 않고, 잘 듣는 것이 지혜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야고보서 1:19)는 말씀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지혜이고, 지혜를 얻는 방법입니다. “하나님!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옵소서.” 이것이 우리의 기도이기를 소망합니다.

 

인명진목사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왕상03장 04절 ~ 14절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을 찾아가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고 하신 것처럼 저에게도 그렇게 물으신다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일생일대에 단 한번 있을 기회인데 무슨 소원을 말할까, 이 기회를 잘 사용해야 하는데 하는 공상에 빠지곤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제가 몇 년 전에 큰맘 먹고 솔로몬처럼 천일 연속 새벽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천일, 약 삼 년이 되는 날을 빠지지 않고 기도드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삼 년 동안 한 번도 해외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하기로 작정했으니까 외국에 나가면 약속이 깨지는 것이니까 한 번도 외국 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또 지방에 가도 밤중이든 새벽이든 올라와야 했습니다. 삼년 동안 아파서 도저히 일어나기 힘든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지축동 북한산 밑에서 살았는데 차로도 3-40분 걸리는 먼 거리였습니다. 여름 장마철에는 물이 불어서 다리를 건널 수 없어서 고생을 했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 서 저 멀리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갔다가 걸어서 내려와 차를 타고 와야 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일 은 저희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세상을 떠나셨는데 장례를 모시면서도 새벽예배를 드린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다시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것을 천일 예배를 드렸다고 하기도 하고, 천 마리의 소를 잡아 천 번 제사를 드렸다고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대단한 일입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 하나 님이 찾아오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고 하니 저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뭐라고 대답할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딱히 이거다, 이것을 말씀드려야겠다는 것을 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소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딱 한 가지 만을 골라서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은퇴 후 바닷가에 편히 살 수 있는 그림 같은 집을 달라고 할까 뭐를 달라고 할까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엉겁결에 한 가지 말했다가 후회할지 모르니까 걱정입니다.

 

옛날 어느 산골에 착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는데 하루는 산신령이 나타나 이 할아버지에게 세 가지 소원을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생각하다가 하얀 쌀밥에 고깃국이 먹고 싶다고 하 자 산신령이 그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고작 그런 소원을 말했다고 잔소리를 해댔습니 다. 할머니의 잔소리가 계속되자 할아버지는 속이 상해서 할머니가 잔소리 못하도록 입이 돌아가도록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즉시 할머니의 입이 돌아가 말도 못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질질 흘리고 힘들어 했습 니다. 결국 그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입이 다시 돌아오도록 마지막 소원을 말했다고 합니다.

 

성경에 보니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는 하나 님의 말씀에 솔로몬은 즉시 대답했습니다. 솔로 몬 왕에게는 마음속에 준비된 소원이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꿈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소원은 무엇입니까? 혹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도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물으 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솔로몬처럼 주저없이 대답해야 하는데 준비된 대답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준비된 소원은 제가 짐작컨대 뻔합니다. 돈 좀 많이 벌게 해주세요 하는 것과 자식 잘 되게 해달라는 것일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의 7-80%가 이런 소원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질문에 준비된 솔로몬의 대답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3장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 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 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 를 구한 것을 보고 크 게 감동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어려서 왕이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 필요한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권력을 잘 유지하게 해달라, 신하들이 충성을 바치고 백성들은 나를 잘 따르게 해달라는 소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외세가 쳐 들어오면 이기게 해주고 국가안보를 든든히 지켜주고 나라가 잘 발전되어 경제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해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후세에 영원히 남을 수 있는 치적을 남길 수 있게 해달라 고도 하고, 자손만대에 이 왕국을 이어가게 해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건강하고 왕의 자리에 오래 있 게 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달라고 자신을 위해서도 소원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런 모든 것을 다 제쳐놓고 지혜를 달라고 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잘못 말한 것이 아닌가, 정말 그 많은 것들을 놔두고 지혜를 구했다면 솔로몬은 참으로 어리석 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열왕기상 3 장 10절 말씀을 보면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 면 솔로몬이 다른 소원을 말했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감동하신 나머지 그가 구하지 않은 것까지 다 주셨습니다. 13-14절 말씀을 보면 내가 또 네 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 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 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모든 부귀 영화와 함께 장수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돈도 아니고 자식이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지혜를 구했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 다. 전에도 그렇게 지혜로운 사람이 없었고 후에도 그런 지혜가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미련 하고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지혜가 좋은 것이고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귀하고 값진 것이어서 지혜 를 구한 것입니다. 지혜를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열왕기 상 3장 9절 말씀을 보면 듣는 마음을 종에 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 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듣는 마음 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잘난 척하고 아는 것 많은 사람, 말하기를 잘하는 사람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 이 말하는 것을 듣는 사람을 똑똑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듣는 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지혜가 없 는 사람입니다.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습 니다. 그러므로 지혜를 달라는 것은 겸손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다 잘 알고 능력있는 사람은 다 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청와대에 들어갈 때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들어가지만 나올 때 는 다 영광스럽게 나오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시체로도 나오고 어떤 사람은 끌려가다시피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청와대의 터를 잘못 잡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들이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다가도 점점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합니다. 더군다나 자기 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누가 쓴 소리를 한다고 듣는 자리가 아 닌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 손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내 생각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생 각이 무엇인지 늘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길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가는 인생의 길이 어디인지를 다 아시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면 실패할 일이 없습니다.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는 내 생각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아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술로 간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귀 로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달라고 한 것은 기도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 목사를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는데 우리가 기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달라고 한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 도록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 어날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안 것입 니다. 그러니까 지혜를 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게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이 들을 수 있습니다. 내 것만 고집하고 마음이 닫혀 있는 사람은 절대로 들으려 고 하지 않습니다. 들어도 귓가로 흘려보내고 맙니다. 마음이 활짝 열린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 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깨닫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에 나올 때 나는 이렇게 살기로 작정한 사람이라고 마음을 닫고 나오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 라도 귓전으로 흘려듣고 맙니다. 말씀을 듣고도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안 들으려고 작정하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말씀은 좋은데 그렇게 못삽니다. 그렇게 안 삽니다.' 벌써 마음을 정한 것입 니다. 마음이 닫혀 있습니다. 귀가 닫혀 있어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인생이 불행하게 될 것입 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인생이 평탄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 을 거슬러서 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길이 평탄하지 않은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면 바람이 뒤에서 불면 잘 나가지만 맞바람이 불면 자전거가 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 살면 인생이 고단하고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우리 인생이 뒷바람을 맞고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술술 풀릴 것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 문을 열고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그 계획에 맞추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에 우리 인생을 맞추어 살아야 행복하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형통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재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 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우리의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의 흐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2019년부터는 우리나라의 인구가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러면 많은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집 값이 내려갈 것입니 다. 지금도 집을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번 정부에서 학원을 없앤다고 하니까 지금 학원을 차리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정부의 정책이 어디로 가는가 잘 살펴야 합니다. 요즘은 더 말할 것 도 없이 환경 쪽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 맞추어서 사업을 해야 합니다. 정부에 정책에 대해 알지 못하면 사업이 잘 될 리가 없습니다.

 

솔로몬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거기에 내 인생을 맞추면 돈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형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 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 뜻에 맞게 내 인생을 살아가고, 그 뜻에 맞게 나라를 맡길 수 있 는 임금이 되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실패할 리가 없습니다. 솔로몬의 인생은 너무도 큰 성공을 거둔 인생이었습니다. 너무도 큰 축복을 받은 인생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축복을 주체하지 못했 습니다. 잠언 3장에 14-15절 말씀을 보면 지혜를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 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 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라 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알고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솔로몬을 축 복하셨습니다. 그 옛날 지혜를 간구함으로 말미암아 큰 축복을 얻었던 솔로몬의 은혜가 여러분에게도 함 께 하시길 바랍니다.

 

이필재목사 솔로몬의 의는 무엇인가? 왕상03장 04절 ~ 15절

 

솔로몬에 대해서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안 다니는 사람이나 모두 잘 압니다. 아마 이 세상을 살다간 유명하고 영광스러운 인물들 중에 몇 번째 안 되는 사람으로 다 인정을 합니다. 우리가 솔로몬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은 그는 영화를 많이 누린 왕이고 지혜로운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솔로몬의 영광을 말씀하실 정도였습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못하였느니라.” 예수님의 설교에도 솔로몬이 그렇게 인용되었습니다. 유대 나라 사람들은 살아온 민족 역사가 항상 전쟁, 고난, 식민지로 살았습니다. 지금도 편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 민족 역사 가운데 가장 평화롭고 좋았던 시절이 언제입니까? 모두 다윗과 솔로몬 통치 시절이라고 말을 합니다. 다윗 통치 40년과 솔로몬 통치 40년은 아주 굉장한 영화와 부귀, 평화, 안정된 생활권,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다윗이나 솔로몬에게 잘 보이려고 조공을 바쳐야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살펴봤을 때 사생활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죄가 많고 칭찬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약을 초점 없이 잘못 읽으면 윤리관의 시행착오가 많은 갈등을 줄 때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사생활은 성경에 나옵니다. 공식적으로 궁중에 데리고 사는 여인만 700명이 넘는 생활을 했습니다. 자기 나라, 이웃 나라 할 것 없이 욕심나는 미인은 모조리 데려다가 후궁을 삼아서 데리고 살았고, 솔로몬 왕의 왕후 자리에 앉은 여자는 애굽 바로의 딸입니다. 그 다음에는 암몬 족속의 딸 라마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실 상대도 안했는데 솔로몬이 이상하게 상대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나라 여자들을 데려다가 왕비를 삼았습니다. 시바 여왕이 찾아왔을 때는 여기서 나와 살자며 데리고 살 정도로 아주 형편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여인을 많이 데리고 살았어도 우리나라와는 게임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임금님은 3천 궁녀를 데리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말년은 그 이방 여인들에게 사로 잡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막 성화를 부려서 우상 숭배까지 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윤리관을 평가하면 솔로몬은 파렴치한 탕자같이 평가할 수가 있습니다. 아마 그 당시에 그 나라에서 사생활이 제일 타락성 있게 산 사람은 솔로몬이었다고 말해도 괜찮을 만한 생활을 보낸 것이 성경에 나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솔로몬에 대해서는 누구도 나쁜 평가를 안 하려고 합니다. 좋은 평가만 열심히 합니다. 설교자들도 솔로몬의 나쁜 점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좋은 지혜나 영광 이렇게 좋은 면만 자꾸 설교하려고 하고 부러워는 해도 욕은 안 하는 문화가 완전히 형성되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든 안 다니는 사람이든 다 똑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오히려 그를 본받으려는 문화가 형성됩니다. 우리나라에도 솔로몬 재판이라고 하는 정의 기구가 생겼지 않습니까? 솔로몬의 영광이라는 선전은 온 세상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솔로몬 저축 은행도 생겼습니다. 제 동기생 한명은 서울 굉장한 번화가에 개업을 한다며 동기생들을 오라고 해서 무슨 개업을 하나 하고 찾아갔더니 술집을 냈습니다. 그런데 간판이 “솔로몬”입니다. 왜 술집에 “솔로몬”이라고 간판을 걸었느냐고 물었더니 “이 목사는 목사면서 그것도 몰라? 솔로몬이 술을 얼마나 잘 먹었는데?” 대답했습니다.

 

솔로몬은 너무 말년에 향락에만 취하다가 죄를 많이 짓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를 그렇게 끝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는가?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솔로몬은 인생 초기가 아주 훌륭했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 인생 초기에 그와 약속하신 모든 약속을 솔로몬의 말년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신실성이 나타난 것이 솔로몬입니다. 사람들의 판단 기준으로는 이해가 좀 힘든 부분인데 인생 초기에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얼마나 들었는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끝까지 그 약속을 지켜주신 신실성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그의 인생 초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보면 됩니다. 먼저, 솔로몬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는가? 다윗의 대를 이어 솔로몬이 왕이 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합니다. 다윗은 성경에 나타난 대로 공식적으로 9명의 왕비를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19명의 아들이 생겼습니다. 공식적인 아들들 말고 그 외에 얼마나 있었는지 누구도 모릅니다. 복잡한 가족 인맥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본처의 아들들이 아주 가득합니다. 암논, 아도니야, 압살롬 이 사람들이 다 대권 후보자들입니다. 솔로몬은 엄격히 말하면 사생아입니다. 밧세바가 자기 부인입니까? 남의 부인을 빼앗아다가 살아서 거기서 낳았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솔로몬이 왕이 된다는 것은 원치도 않고 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또, 나이도 제일 어립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세워주셨는가? 우리 상식으로는 판단이 안 됩니다. 이렇게 몇 가지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 어린 시절에 다윗 왕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습니다.

 

“나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를 자는 솔로몬으로 하옵소서.” 서원 기도했습니다. 그 서원을 옆에서 들은 사람이 그 어머니 밧세바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약속하고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지킨 것입니다. 18명의 왕 후보자들이 있었는데 그 나이 많은 넉넉한 후보자들을 다 물리치고 21살 가장 어린 솔로몬을 왕에 굳건하게 앉혔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내가 하나님과 서원했고 너와도 서원했다. 그 약속을 내가 지킨 것이다.” 그래서 왕이 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이제 나이가 많아서 늙었기 때문에 이제는 통치자의 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때가 왔습니다. 바깥출입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들 가운데 다윗 왕의 제일 신임을 받고 있고 용무도 준수하고 통솔력이 있고 국민의 신임을 얻고 있는 아들이 아도니야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윗 왕이 너무 늙어서 자기 혼자 생활도 어려워진 그 때가 되었을 때 이 아도니야는 틀림없이 내가 왕이 되어야 한다 생각하고 또 온 국민도 그렇게 원했고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일이라서 아도니야는 왕위 취임식을 스스로 했습니다. 어느 날 국민의 존경과 부왕의 신임과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기가 왕이 되면 함께 일할 수 있는 국가의 모든 실력자들을 다 초대해서 왕 취임식을 스스로 한 사람입니다. 소를 잡아서 잔치를 베풀고 왕위 계승을 선포했습니다. 이 소식이 늙은 다윗 왕에게 들어갔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부릅니다. 그리고 거기서 말합니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내가 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한 게 있다. 너와도 약속한 게 있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나 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그것을 시행하노라. 아도니야가 왕위 취임식을 한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아주 강력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그래서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과 사람과의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오늘 말씀 열왕기상 3장 솔로몬이 왕이 된 후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솔로몬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서 한 일을 굉장히 감동 있게 의로 여기셨습니다. 무엇을 했습니까? 두 가지 큰 것을 했습니다. 하나는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이때는 솔로몬이 흠과 티가 없을 만큼 깨끗한데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살던 그 시절입니다. 그런데 21살에 왕이 되고 나니까, 지금 뛰어다니면서 공이나 차고 연애나 할 나이에 국민을 다스리라니 이게 얼마나 벅찬 책임감입니까? 그러나 안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 일을 잘하기 위해 그는 제일 먼저 한 일이 산당이 있는 기브온으로 가서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번제 한번 드리려면 양 한 마리를 죽여야 합니다. 또, 왕이 번제를 드리기 때문에 군중 신하들이 다 따라가야 합니다. 아마 그때 그 번제에 참석하는 신하들은 질력이 났을 것입니다.

 

“번제를 한번만 드리면 되는 것이지 일천 번을 계속하니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다른 일을 하지 않고 예배만 날마다 드리고 있으면 무엇이 되나? 오늘 양을 잡아서 또 제사 드리나?” 이렇게 당연히 생각했을 거 아닙니까? 여러분! 똑같은 번제를 10번만 드려도 질력이 나는데 일천 번을 계속하고 있으니 얼마나 질력이 났겠습니까? 지금은 번제가 구약 방법대로 드려지지 아니하고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께 우리가 영광을 돌립니다. 마틴 루터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되는 사명을 받은 후에 하루에 두 번 이상 설교를 하지 않으면 회개했다고 했습니다. “365일 중 하루에 두 번 이상 내가 설교를 해야지 하나님이 주신 이 사명을 게을리 해서 내가 설교도 하지 않고 무엇을 했나?” 회개했다고 루터의 기록에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무슨 예배가 이렇게 많아? 일주일에 몇 번씩 교회를 가야 돼?’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배를 드리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라고 했습니다. 번제 드리듯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교회 오실 때는 미리미리 집에서부터 기도로 준비를 하시고 몸도 깨끗하게 정리하시고 제일 깨끗하게 마련된 옷을 입으시고 헌금은 정성껏 봉투에 넣어서 가지고 오시고 제발 헌금 시간에 주머니 이쪽 주머니 저쪽 주머니 찾지 마십시오. 예배 시간 전에 오셔서 일주일 동안 살아온 과정의 잘못된 부분을 다 고백 기도로 마음을 다 정리하십시오. 그래야 영적으로 말씀이 들어오고 아멘으로 화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번제를 드리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이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린 사람은 솔로몬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감동하셨습니다. 왜? 그런 사람이 지구상에 한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900번을 드리고도 얘가 쉬지를 않는구나.” 일천번제를 드리는 것에 하나님이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아!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그리고 소원을 물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왕들은 자신의 말이 법입니다. 옛날에는 국가 재산도 “이거 너 가져라.” 그러면 그냥 갖는 것입니다. 제가 이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분당리 이 동쪽에 위치한 이 산들은 네가 가져라.” 그래서 양녕대군, 효령대군 자손들이 나눠 가져서 살고 종중 재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임금님이 주시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하면서 뒷걸음질만 잘 쳐서 나오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줄 수 있는 자가 여러분에게 소원을 물었을 때 무엇을 달라고 하실 겁니까?

 

이솝의 이야기 가운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억납니다. 전능자가 어느 날 가난하지만 착하게 사는 늙은 부부를 불러서 “소원 세 가지를 말하라. 내가 세 가지를 다 들어주겠다.” 그런데 할머니가 너무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찰떡이 너무나 먹고 싶어서 “찰떡 좀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급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느냐? 찰떡이 소원이냐? 들어주겠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찰떡을 주니까 할아버지가 옆에서 보고 있다가 화가 났습니다. “아니, 이 할망구가 찰떡이 소원이냐? 우리가 세 가지 소원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있는데 그까짓 찰떡이나 달라고 하다니! 내가 말하기도 전에 성급하게 찰떡 소리를 하냐?” 그래서 둘째 소원으로 “이 찰떡 좀 할망구 이마에 붙어라!” 그랬더니 찰떡이 이마에 달라붙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가 끝났습니다. 화가 나서 그렇게 말했지만 찰떡을 이마에 붙이고 어떻게 삽니까? 할 수 없이 세 번째 소원은 “찰떡을 이마에서 떼어주세요.” 그래서 소원이 다 끝났다고 합니다. 솔로몬은 21살입니다. 얼마나 하나님 앞에 달라고 할 게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이것도 솔로몬의 큰 고민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행함으로 주께서 우리 아버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나이다. 나도 그렇게 해주옵소서. 내가 오늘 이렇게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건방진 소리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왕 될 사람인 내 형들이 18명이나 있었습니다. 나는 그 중에 작은 아이이기 때문에 이 궁중 문을 출입하기에도 벅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아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내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는 왕이 되게 하여 주소서.” 이것이 또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되어서 온 세상이 빛나게 하옵소서.” 그러지도 아니하고 “경제 대국이 되어 백성으로 하여금 잘 먹고 잘 사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적어도 내가 50년 동안, 100년 동안 이 나라 왕으로 살게 하옵소서.” 이런 걸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혜를 주셔서 이 백성들을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랬더니 성경에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또 한 번 감동하셨습니다. 욕심 따라서 구하지 아니함이 솔로몬의 지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응답을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십시오. 그로부터 40년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주변의 나라가 모두 솔로몬을 두려워했습니다. 이 일은 B.C 962년에 이루어진 일이니까 3천 년 전 사건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도 온 세상의 문화는 지혜를 말할 때는 솔로몬을 비유하지 않습니까? “너와 같은 자 없을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구하는 문제에 대해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 솔로몬이 먼저 행했습니다. 우리 개인도 교회도 나라도 어떤 일을 할 때 계획에 있어서 ‘이 일이 내 마음에 드는가? 내 소원인가?’를 따지기 전에 ‘하나님의 뜻인가?’ 여기에 대해서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틀림없습니다. 다른 것은 그냥 따라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솔로몬에게 주어진 마지막 사역이 성전 건축입니다. “너희 아버지 다윗이 하고 싶어 했으나 내가 허락지 아니했다. 이것은 너에게 주겠다.” 여러분! 우리 갈보리교회가 성전 건축을 세계에 많이 하지 않습니까? 축복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사명의 완수를 솔로몬이 다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이나 다윗 같은 사람은 우리 보통 평민보다도 훨씬 죄가 많은데 오늘 제 설교 제목 “솔로몬의 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가 솔로몬의 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성은 뭐냐?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을 끝까지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실하신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28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를 지키며 너와 함께 이루어야 할 모든 일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약속했습니다. 그랬더니 야곱도 하나님께 약속을 했습니다. “하나님! 만약 그렇게 해주시면 내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것이요 소득의 십일조를 평생 반드시 드리겠나이다.” 피차 약속했습니다. 야곱이 지켰습니까?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어디다 성전을 건축합니까? 십일조를 어디에 냅니까? 외삼촌 라반의 재산을 다 빼먹고 사기만 칩니다. 하나님의 일 아무 것도 안했습니다. 하나님은 다 지키셨습니다. “네가 벧엘에서 하란을 떠나 갈 때 나에게 뭐라고 했지? 먹을 양식 입을 옷을 달라고 했지? 준다고 했지?”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그 당시의 재산 거기서 돌아올 때 규모를 보십시오. 현대 21세기 사회에서도 그 만큼 가진 사람 큰 부자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켜주시고 야곱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떠나고 모를 때도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붙들어 주셔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의가 곧 야곱의 의가 되고 솔로몬의 의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다 제외하고 나 자신을 생각하십시오. 내 의는 무엇인가? 주님의 의가 내 의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의는 주님 앞에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뛰쳐나갑니다. 예수 믿고 사는 것보다도 더 좋은 것이 있을 때 이것이 양자택일이 되었을 때 얼마든지 뛰쳐나가서 세상으로 나가서 살아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떡하십니까? 택한 백성을 안 놓치십니다. 끝까지 지켜주십니다. 그게 곧 내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실하신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인생 초기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가 하나님이 잊어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며 온갖 타락의 길을 갈 때도 하나님은 끝까지 참고 끝까지 솔로몬을 붙들고 일하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제가 이 곡을 반주 없이 불렀지만 반주 들으면서 다 같이 불러봅시다.

 

“1.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2.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할렐루야!

 

박종순목사 일천번제 드리고 받은 은혜 왕상03장 10절 ~ 15절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세 번째 왕이 된 것은 그의 나이 스무살 때였습니다. 그는 40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문제는 20세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고 국정의 무거운 짐을 홀로 져야 했던 점입니다.

지금은 입법, 사법, 행정으로 삼권이 분리되어 있지만 그 당시는 왕이 삼권을 총괄하고 행사해야 했기 때문에 그 책임과 권한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스무 살 철부지 나이에 국가 통치의 전권을 맡게 된 솔로몬의 그 당시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본문 3:7-8을 보면 솔로몬이 자신을 가리켜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백성은 수가 많아 셀 수도,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절대 부족을 자각한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일천 번제를 드렸고 그 응답으로 엄청난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본문의 줄거리인 것입니다.

 

1. 솔로몬의 신앙 태도를 살펴보십시다.

3절을 보면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는 "일천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번제란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 중의 하나입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렸다는 것은 일천 마리의 짐승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주경학자들은 적어도 일천 마리의 짐승을 잡아 번제를 드리려면 최소한 7-8일은 걸렸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누구도 일천 번제를 드린 사람이 없었습니다. 주목할 것은 그 동기입니다.

 

3절을 보면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부친의 법도를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린 동기는 의무도 아니었고 규율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과 믿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예배하는 자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이며 하나님과의 교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과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억지로 드리는 예배는 참 예배가 못됩니다. 억지로 나오는 것은 예배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신앙인의 삶은 하나님을 섭섭하게 해 드려도 안 되고 하나님을 소홀히 대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25을 보면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말세가 가까워지면 모이기를 싫어하고, 모이는 것을 없애는 풍조가 일어날텐데 그런 습관을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주중인 수요일이나 목요일에도 수 천 명씩 모이는 교회가 있는가 하면 여름이 되면 3개월씩 문닫고 방학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문제는 문 닫고, 휴가 떠나고, 방학하는 교회 교인들의 신앙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편할수록 시들고 타락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아무리 자주 만나도 감사하고 기쁩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그 동기가 사랑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동기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2. 일천 번제를 생각해 보십니다.

일천 번제는 일천 마리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최소한 일주일이 필요했습니다. 시간, 정열, 정성, 물질을 종합해 드려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드린 사람과 먼저 드리고 그 후에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먼저 드리고 받은 축복이 더 큽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을 찾아온 하나님 일행을 정성껏 대접해 드리고 아들 낳는 복을 받았습니다.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고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로마서 11:35을 보면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먼저 드리고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1999년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병실에 있으면서 저희 집사람과 일천 번제를 드리기로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이 불러 가시면 일천 번제를 다 드리지 못하겠지만 일천 번제를 다 받으시려면 최소한 일천 번제가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 주시리라 믿고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새벽 낮, 밤, 수요일, 금요일 교회 나갈 때마다 했습니다. 일천 번제를 드리며 제 건강은 놀라우리 만큼 빨리 회복되었습니다.

 

1999년 4월 15일에 시작해 2003년 4월에 일천 번제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바로 두 번째 일천 번제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부어주시니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도 큽니다.

먼저 드립시다. 반드시 천만배로 갚아 주십니다. 사랑과 물질, 정성과 삶을 먼저 드립시다.

 

3. 받은 은혜를 살펴봅시다.

일천번제 후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5-).

솔로몬은 백성을 재판하고 다스릴 지혜를 주시라고 대답했습니다(9-).

중요한 것은 응답입니다.

 

11절을 보면 "수도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라(12-)고 했고,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라(13-)고 했습니다.

부귀, 영광, 지혜, 건강, 솔로몬이 구하지 아니한 것까지 다 주셨습니다. 지혜는 통치자의 리더십에 필요합니다. 부귀는 살아가는데 필요합니다. 영광은 인생을 보람 있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왕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일천번제 후에 허락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처럼 제단 쌓기를 힘씁니다.

솔로몬처럼 일천번제를 드립시다. 드리기를 힘쓰고 먼저 드립시다. 솔로몬처럼 주님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합시다.

 

누가 복을 받겠습니까? 누가 더 큰 은혜를 받겠습니까? 누가 은혜를 받겠습니까?

일천번제 신앙으로 드리고 더 큰 은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