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 설교 모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하나님아들 2024. 11. 10. 00:15


1. 본문 정하기
: 가장 중요한 문맥의 구절을 찾으라. (10절 정도가 좋다) 다른 구절들은 설교에서 다룸

2. 성경 분문에서 빗나가지 마라. (몇 번을 읽고 분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보라. 프로페짜이에 올린 분문 주석을 읽고 본문의 뜻을 파악할 것. 정해진 주제에서 설교 제목이 나오고 전체 설교가 진행)

3. 원 포인트 설교를 하라. (주제를 여럿 잡으면 산만해진다. 하나님이 본문을 통해 무엇을 내게 말씀하시는가 한 가지만 잡고 달려가라)

4. 알기 쉬운 설교를 하라. (아무리 유식한 내용도 못 알아들으면 소용이 없다. 초등학교 4학년이 이해할 수 있는 설교를 하라)

5. 재미있는 설교를 하라. (아무리 영양가를 갖췄어도 맛있어야 먹는다. 졸지 않게 하라)

6. 감동적인 설교를 하라. (좋은 예화나 간증을 통해 감동을 주라)

7. 삶에 적용하도록 하라. (적용되지 못하는 설교는 공허한 메아리다)

8.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라. (낮 예배 : 처음 교회 나오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구도자에게 초점을 맞추라.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라)

9. 결론을 전도에 두라. (하나님이 오늘 이렇게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이 교회와 성도의 사명이다. 오늘 들은 말씀을 친지들에게 전하면 성공이다)

10.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전하라. 아버지 같으면 이 말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말할까. 상처를 싸매주고 용기와 격려를 주려는 마음.

11. 설교를 길지 않게 하라. (낮 예배 설교는 30분 정도)

 

* 전해야 할 중요 멧세지. 참고할 설교 중 중요 내용을 복사함.

* 제목 : (주제에서 발견한 전체 설교를 요약할 수 있는 제목을 선정)

* 전개 : (어떻게 설교를 할까를 적어봄) 서두, 이끌어 가기, 적용, 예화, 맺음 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본문 : 엡 6 : 10 - 2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본문 요약 :

 

본문은 우리 성도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요 악한 영들임을 말씀하면서 저들을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말씀합니다. 저들을 이기고 승리해서 하나님 앞에 서도록 교훈합니다. 우리 서로 깨어 기도하므로 복음을 전해 강력한 교회와 성도로 세상을 구원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래 제가 작성한 설교 한 편과 몇 분 목사님들의 설교를 싣습니다.

 

 

엡 6 : 10 - 20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2024. 8. 25

 

순복음 중앙교회 고 조용기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이 교회 개척할 때 이양선 박사라고 적십자 병원 소아과 과장 부인이 있었는데 그 부인 이름이 김순선 여사랍니다. 그런데 의학박사의 부인이 반신불수가 되었어요. 늘 골치가 아프다고 하고 반신불수가 되어가지고서 병원에서 약은 다 쓰고 치료는 다 받아도 안 되니까 조 목사님이 대조동에서 천막교회를 세웠을 때 반신불수가 돼 몸을 끌면서 교회 왔어요. 그 교회에서는 최고로 지성인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편이 의학박사고 가정도 잘 살았어요. 전부 거지들만 모인 곳에 그 분만 교회 들어와서 앉으면 반신불수라도 교회가 환합니다.

 

하루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난 다음에 조 목사님이 안수를 해주는데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축복받게 해주세요. 하니까 손을 탁 치더니만 ‘야 이 자식아’ 그래요. 어휴 교양있는 여자가 그 말을 하는데 너무 기가 막혔어요. ‘뭐라구요?’‘야 이자식아 왜 나에게 손을 얹냐? 왜 젊은 주의 종이 귀부인 머리에 손을 얹고 야단이냐.’‘ 내 손 얹은 것 미안합니다. 나는 축복해 주려고 손 얹었는데 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하니까 ‘야 임마, 교회 당장 집어 치워.’ 말하는 것을 보니까 귀신이 말하는 것 같아서 ‘당신 누구요?’ 그러니까 ‘귀신이다. 어쩔래?’그래서‘귀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오라! ‘허허허~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고 너 몇마디에 나가냐? 안나간다!’그래서 같이 기도하던 몇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더니 겁이 나서 다 달아나 버리고 말았어요.

 

천막교회에 조목사님과 그만 남았는데 와~ 강합디다. 그때 조목사님은 아주 신출내기고 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예수 이름으로 나오는 말만 알아가지고서 예수 이름으로 나오라고 하니까 안나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한 시간을 싸워도 안나온다고 하지요. 두 시간을 싸워도 안 나온다고 하지요. 그런데 왜 계속해서 싸웠냐면 의사부인인데 만일 정신병자가 되어서 이렇게 하면 의사가 와서 보고 이것 우리 마누라 교회 나가더니 미쳤다 말이지. 미치게 만든 것은 주의 종이 미쳤으니 날 고소, 고발하면 이제 경찰 신세까지 지게 되겠다. 그래서 그 부인 걱정이 아니라 내 걱정이 더 되어서‘예수 이름으로 나오라. 안나온다. 나오라. 안나온다.’조 목사님은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었으니 기운이 빠져서 힘이 없는데 이것은 힘이 장사에요. 반신불수가 일어나서 조 목사님을 때리려 달려는데 조목사님은 천막 가운데 도망을 치고 그 여자는 뒤에 따라오고... 조 목사님은 자꾸 물러가라고 하고 안 물러간다고 하고... 무려 8시간을 싸웠습니다. 아침에 싸운 것이 해가 질때까지 싸웠어요. 나중에는 목사님이 힘이 지쳐 어찌할 수 없이 항복해야 되겠다 싶을 때 김순선 씨가 입에 거품을 물더니만 쓰러져요. 그래서 조목사님이 예수 이름으로 나오라! 고함을 치니까 나중에 나가겠다고 그래요. ‘너는 누구냐’ 그러니까 ‘우리는 수가 굉장히 많다. 10년이 넘도록 이 집에 살았다. 그,런데 지금 나를 이렇게 무시하고 쫓아내느냐.’ 그래서 ‘무조건 나가라! 난 모르겠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나가라!’

 

그러니까 한참 만에 눈을 부비더니 크게 하품을 하고 일어나‘아이구 미안합니다.’‘뭐가 미안합니까?’‘누굽니까? 마귀입니까? 진짜 사람입니까?’ 그러니까 진짜 사람이라고 그래요. 그러면서 마귀가 나를 통해서 주의 종하고 싸우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속으로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어찌할 수 없이 잡혀가지고서 욕을 하고 고함을 치고 주먹을 휘둘렀는데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그 다음에 이제는 나았다고... 그래서 빨리 집으로 가라고 남편 병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빨리 가라고... 그리고 내 보내고 난 다음에 혼자서 앉아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또 목사님~ 하면서 뛰어오는 것입니다. 아이구 또 시작이구나... 하나님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그런데 ‘날 보세요.’‘뭘 보란 말입니까?’춤을 추는데 반신불수가 완전히 나았어요. 정말로 너무나 놀랬습니다. 10년 동안 반신불수가 된 사람이 귀신이 쫓겨나가고 난 다음 온몸 전신이 완전히 나아서 춤을 추고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남편 오는데 집밖으로 뛰어나가서 남편을 마중하니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른 여자인줄 알고 정신을 못 차려요. 여보 나야~ 나야! 어떻게 나았느냐? 천막교회 가서 전도사님하고 8시간 고함을 치고 싸우고 귀신이 쫓겨나고 난 다음 나았다고... 그래서 그 다음 주일날 그 남편이 교회를 왔더라구요. 내가 그 이야기를 어제 다른 목사님들 모임 가운데도 이야기했답니다. 마귀는 눈에 안보이지만 배후에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마귀를 강한자를 묶어야 병든 자를 해방시킬 수 있다. 완전히 억압을 당하고 스트레스를 당했으면 그 뒤에 있는 마귀를 묶어야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라. 저가 너를 피하리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고 인간이 아닙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공중의 권세잡은 마귀들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믿음을 강하게 하여 대적하여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 속에 있는 마귀를 쫓아내고 내 주변에 있는 마귀를 묶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승리를 가져오고 평안을 가져와야 하나님 앞에서 축복받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마귀를 이기면 여러분의 생활속에 성령이 임하여서 하늘나라가 여러분 생활속에 들어오게 만들어 주십니다.

 

조우드 박사(Dr. Joad)란 분은 무신론자였는데 스페인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연구하다가 인간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악한 영의 힘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어 훌륭한 성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령도 모르고 사탄 마귀도 믿지 않고 체험을 못했다면 그는 구원도 못 받은 사람이요, 마귀에 속한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가 있습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이 세상은 놀이터가 아니라 사탄과의 전쟁터”라고 했는데 명언입니다. 정말 거듭난 신자라면 인간보다 강한 원수를 직면하게 됩니다. 원수 마귀는 끊임없이 주님의 교회와 우리 성도들을 대항하고 공격하고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 마귀의 존재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영적인 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성도를 괴롭히는 사탄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으며 창조주 하나님이 왜 이런 악한 존재를 만드셨을까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사탄은 원래 악한 영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서(인간이 창조되기 전) 가장 뛰어난 그룹 천사장이었습니다. 용모가 뛰어나고 지혜도 충만하고 큰 권세도 부여받은 영적 존재로 어떤 분은 하나님의 정부의 국무총리라고 합니다. 하나님 밑에서 온 우주를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부여받은 천사장이었습니다. 에스겔 28장 12 - 15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7절을 보면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용모와 지혜와 권세가 뛰어난 하나님의 천사장이었는데 자기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까지 강탈하려고, 뭇별 위에 자기 보좌를 높이려고, 천사들의 3분의 1을 동원하여 하나님을 반역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다가 저주받고 쫓겨나 사탄 마귀가 되고 그 부하 천사들은 귀신이 된 것입니다.

 

사탄, 마귀의 성격은 그 이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탄”(Satan)이란 “대적자”란 뜻입니다. 저주받은 원한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일을 방해합니다. “마귀”(Devil)란 “참소자”, “훼방자”, “고소자”란 뜻입니다. 남의 허물과 죄를 들추어 참소하고 음해하고 고소하는 일을 하며 거짓말을 만들어서 주의 종과 성도들을 죽이고 매장시키는 일을 합니다. “귀신”(Demon)이란 이름은 “유혹자”란 뜻입니다. 사람을 유혹하고 범죄케 하고 타락시키는 일을 합니다. (요 8장 44) 사탄은 간교한 자요, 속임수에 능한 자입니다. “옛 뱀”이라고 했는데 뱀은 변장을 잘합니다. 바위색깔로, 나무색깔로, 풀색깔로 변장하는 것 같이 마귀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악한 계략으로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성도들을 괴롭히고 축복을 가로막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파괴하는 일을 합니다.

 

사탄의 제일 큰 활동목적은 ⒜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일을 합니다. ⒝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멀어지게 합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하게 하고 도리어 루시퍼(Lucifer)처럼 자기를 높이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영광을 받게 하려고 유혹합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가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는 것은 다 거짓 말이야 네가 먹으면 너도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는 거야” 하고 유혹하고 타락시킨 것처럼 오늘날도 유혹합니다. ⒟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나라들에 대한 사탄의 역사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principalities)와 권세(authorities)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rulers)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는데 “정사”는 군주, 우두머리(首位), 주권자란 뜻이고 “권세”란 많은 사람을 다스리는 권력자란 뜻이고 “주관자”들이란 나라와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나 대통령이나 지배자들을 의미합니다.“어두움(darkness)의 세상 주관자들”이란 사탄의 나라에서 부여한 권세와 능력과 계급을 가지고 세상을 혼란케 하고 하나님을 못 믿게 하고 혼돈(chaos)시키며 전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부터 사탄, 마귀가 이 세상의 왕이 되어 흑암의 나라, 사탄의 나라에서 권세와 능력을 받은 왕이나 대통령이나 총통 같은 세상의 지배자를 통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을 죽게 하고 교회를 파괴하게 만듭니다.

 

이 흑암의 나라의 왕 사탄으로부터 권세와 능력과 치리권을 받은 사람의 대표적인 예가 선민 유대인 600만을 학살하고 세상을 어지럽게 했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무신론 사상과 잘못된 경제이념을 가지고 교회를 다 파괴하고 크리스찬들을 죽이고 투옥하고 핍박한 공산주의의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김정일 같은 사람이 바로 흑암의 나라, 사탄으로부터 정사와 권세와 주권을 부여받은 사탄의 종들입니다. 스탈린은 4,500만을 죽였고 모택동은 6,500만을 죽였고 김일성도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 명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붉은용의 사상이라고 합니다. 김정일은 3년 동안에 300만 명을 굶겨 죽이면서도 핵무기, 다량살상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은 지금 빛의 나라와 흑암의 나라 사이의 전쟁터이며 하나님과 사탄의 권세 사이의 영적 전쟁터입니다. 가장 악독한 사탄의 나라, 북한과 5만 교회 1,200만 성도를 가지고 뜨겁게 기도하는 남한과의 대각축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의 싸움터이며 하나님과 사탄과 전쟁입니다. 특히 사탄은 선교의 사명을 가진 대한민국을 둘러엎으려고 합니다.

 

애국심도 없고 6.25전쟁의 처참함과 배고픔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사탄의 사상, 공산주의에 자꾸 오염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사탄의 마수에서 건져준 미국을 미워하게 만들고 외세를 몰아내자는 “자주파”, 공산화 통일이라도 하고 보자는 “민족주의”파들이 이 나라의 정권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영적으로 볼 때 흑암이 하늘을 덮고 있습니다. 수천 년 역사 이래 가장 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깨어 기도할 때입니다.

 

전쟁 가운데 가장 힘든 전쟁은 영적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은 눈에 보이는 무기나 손에 잡히는 병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움의 대상이 영적인 힘을 가진 마귀입니다. 그래서 싸우기도 힘들고 이기기도 힘든 것입니다. 한마디로 싸움의 대상이 마귀라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악한 영이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박효진 장로님이 쓴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대구시 중구청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1981년 10월 교도관으로 자리를 옮겨 부산구치소, 청송제2감호소, 청송교도소, 서울구치소, 성동구치소 경비 교도 대장으로 근무하다가 퇴직 했습니다. 교도소에서 겪었던 일, 만났던 수많은 수감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전도했던 일들을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1995년 장위동에서 일가족 다섯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살인범을 잡고 보니 이호성이라는 젊은이였습니다. 호성이는 자기 아버지 어머니 친형, 형수, 조카 다섯 명을 죽이고 정원에 암매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구치소에 들어온 호성이는 살인은커녕 100원도 빼앗을 수 없는 그런 인상이었습니다. 오랜 교도관의 직감은 범인의 눈빛 몸짓만으로도 흉악범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호성이는 친가족 다섯을 살해할 그런 인상이 아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호성이와 대화를 나누며 그 배후를 살펴나가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기 3일전, 돌연 이상한 물체가 나타났습니다. 산발한 여자 같기도 하고 이상한 짐승 같기도 한 형체가 흐늘거리며 겹쳐진채 호성이를 따라다닙니다. 꿈속에까지 따라다닙니다. 호성이는 거의 미칠 지경입니다. 사흘 뒤 호성이는 아버지한테 용돈을 얻으러 갔다가 거절당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악령이 "죽여라, 신발장에 있는 망치로 죽여라" 그 명령에 미친 호성이는 망치로 부모를 죽이고 형과 형수 조카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호성이가 붙잡혀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는데 악마가 다시 나타나 "네가 무슨 낯짝으로 이렇게 살아있느냐 부모, 형, 형수, 조카까지 죽인 놈이 뻔뻔하게 살아있다니 이젠 네 차례다 네가 죽어라" 그 말대로 경찰서 유치장에서 몇 번 죽으려고 했지만 사람이 많아 죽지 못했습니다. 구치소로 옮기는 날 악마는 "오늘 구치소로 넘어간다. 절대로 오늘을 넘기지 말라"며 런닝셔츠를 찢어 올가미 만드는 법, 창틀에 목을 매는법까지 마치 TV화면처럼 환하게 보여주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호성이는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예수 믿고 구원받고 마귀의 사슬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정체이며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본문의 악의 영이라고 한 것입니다.

 

마귀는 악을 충동하고 집단행동을 조장합니다. 마귀와의 싸움은 주먹싸움도 아니고 핵무기 싸움도 아닙니다.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영적전쟁은 영적인 힘으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본문에서 영적 무장과 승리의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힘과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10~11절을 보면 "너희가 주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세상 전쟁은 핵무기, 탄도미사일, 스커드미사일, 대포동미사일, 중성자탄, 수소탄 등 최신 무기로 싸웁니다. 그러나 마귀와의 싸움은 하나님의 능력과 힘으로 무장하고 싸웁니다. 그 좋은 예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골리앗은 그 당시 최신병기로 무장한 장군입니다. 다윗은 들에서 양몰이 하다가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온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17:47) 라며 돌맹이 하나로 맞서 싸워 이겼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핵무기와 새총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무장했고 골리앗은 창과 칼과 갑옷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다윗이 이겼습니다. 그날 그 싸움은 골리앗 대 다윗의 싸움이 아니라 악령의 힘을 입은 자와 하나님의 힘을 입은 사람의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시고 모든걸 다 아시고 이기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13절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면 마귀를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를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선다는 것은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긴 사람은 서고 진 사람은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마귀의 도전과 유혹을 이기려면 내 힘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2. 신령한 무기로 무장해야 합니다.

10절을 보면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했고 11절을 보면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고, 13절에서는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했고, 14절에서 17절까지는 전신갑주 즉 완전무장의 세목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는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그 가운데 진리(14-), 복음(15-), 믿음(16-), 말씀(17-), 기도(18-)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무장의 구체적 내용인 진리, 복음, 믿음, 말씀, 기도는 모두가 눈으로 보고 손에 쥘 수 있는 무기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없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큰 폭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력 앞에 일본이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진리, 복음, 믿음, 말씀,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그 능력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바꾸고 마귀를 물리칩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40일 금식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마귀가 시험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마귀를 물리쳤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던 살인자 호성이를 구치소까지 따라와 괴롭히던 마귀는 박 장로님의 기도로 물러갔습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악령들(Evilsprits)을 이길 수 있는 영적 권위를 주신 것입니다. 영적 승리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가진 이 권위를 깨달아야 합니다. 원수 마귀는 하나님께서 정복했기 때문에 패배한 원수(Defeated fod)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권위가 주어졌는데도 이것을 아는 신자들이 많지 않고 이런 권세는 몇몇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줄로 아는 신자가 많습니다. 우리가 거듭날 때 이런 영권 권위를 다 부여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갖게 되었으므로 원수 마귀와 싸울 때 기도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용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 신자들이 이런 권세를 가졌다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영적 축복은 우리 것이 된 것입니다. 영적 권위도 우리의 것입니다. 마치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해 주셨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 주셨는데 이것을 모르는 죄인들이 지옥에 가는 것처럼 신자에게 주어진 영적 권위를 모르기 때문에 마귀에게 패배 당하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오래 전에 미국시카고(Chicago)에서 한 누더기 옷을 입고 쓰레기통을 뒤져 먹으며 일주일에 3불씩 주는 거지같은 방에서 신문을 팔아 가며 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20년 동안이나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눈에 잘 띄는 사람인데 며칠 동안 거리에 나타나질 않아서 그 사람 집에 가 보았더니 침대에 죽어 있었습니다. 의사의 부검 결과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허리에는 수천만원에 해당하는 돈을 감고 있었는데 그 돈이면 최고의 음식을 먹으며 좋은 집에서 살수 있었는데 그 거액의 돈을 가졌어도 그것을 쓰지 못하고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참한 패배의 생활을 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가진 권세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망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알지 못해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 전쟁을 이기는 법

그것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 마음의 죄의 뿌리를 관리” 하는 일입니다. 우리들 마음에는 죄의 뿌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뿌리가 참 질기고 깊게 박혀있습니다. 그러다가 때만 되면 이 뿌리가 고개를 들고 나옵니다. 이 뿌리가 너무 깊어서 어느 순간 다 뽑혔나 싶은데 어느 순간 또 나타납니다. 내가 예수 안에 살면서 악습관을 고치고 손을 씻고 살아갑니다. 이제는 내 안에서 그 지긋지긋한 악의 뿌리가 뽑혔겠다고 생각하고 다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 안에 뿌리가 여전히 그냥 박혀 있습니다. 내가 믿음의 힘으로 억누르고 있으니까 조용히 고개 숙이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그 뿌리를 억누르는 힘이 전보다 클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힘이 약화되어 내 마음에 성령의 의존도가 떨어지면 예외 없이 고개를 들고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옛날 지독한 술꾼이었습니다. 그 후 예수를 믿고 술을 끊고 살아갑니다. 그 상태는 악습의 뿌리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여전히 그 뿌리는 그냥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가 양조장 근처를 지나갈 때는 바람에 풍겨오는 술 냄새를 맡게 되는데 그때 그 술 냄새가 아주 구수하게 그리고 회가 동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 안의 그 악습관의 뿌리가 박혀 있다가 순간 고개를 들고 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를 억누르는 힘이 강할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힘이 약해지면 슬그머니 술을 다시 입에 대게 되는 것입니다. 노름도 방랑벽도 도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먼저 주변정리부터 잘 해야 합니다. 내 주변에 그런 악습이 가까이 있으면 금방 영향을 받고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노름의 악습을 끊은 사람도 노름 현장을 배회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 자연히 꿈틀거리는 뿌리를 제어할 수 없게 됩니다. 아직도 뿌리가 남아서 그렇습니다. 마치 나무를 자르면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나오듯이 그 뿌리는 완전히 뽑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서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성령께 강하게 의존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마음에 뿌리박힌 악습을 잘 관리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만병을 이기는 무기이고 장비이고 힘입니다.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은 나라가고 소리칩니다. 그러니까 귀신들이 나갔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고 힘이 있는 강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모든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은 모든 것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신자가 악습인 도벽을 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가게 앞에만 가면 저절로 물건에 손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를 믿게 되었고 도벽을 끊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고 몇 번씩 맹세하고 다짐도 했지만 물건이 있는 곳에만 가면 손이 저절로 갔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어린 딸을 데리고 상점에 가면 안 그럴 줄 알고 갔는데 속에서 미칠 지경으로 훔치고자 하는 열망이 올라오더라고 합니다. 그때 딸 때문에 훔치지 못하게 되자 딸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때 얼마나 어처구니없었겠습니까. 어처구니라는 말을 아십니까.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합니다. 맷돌은 손잡이 때문에 돌릴 수 있는데 그런데 그 손잡이가 없어졌습니다. 그때 상상해 보십시오. 그래서 어처구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자신이 지금 아주 지독한 도벽의 쇠사슬에 매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습관을 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조여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밤에 집으로 가는데 슈퍼 앞을 지나가는데 그때 그 마음에서 자꾸만 도벽의 기운이 솟아오르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 무섭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 도벽의 마음, 도둑질 하라는 생각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너무 다급하니까 누가 있건 말건 소리쳤는데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몇 분 후부터 그 마음이 힘을 잃는 것 같이 느껴져 오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도둑질 안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그 순간 그 안에 깊이 뿌리박힌 이 도벽의 굴레에서, 악의 쇠사슬에서, 저주의 굴레에서 비로소 벗겨진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은 우리 신앙인에게는 최대의 무기입니다.

 

또 “십자가의 축복”을 입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나약함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악습의 쇠사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그를 믿기만 하면 이 영적인 은혜와 소망과 행복과 즐거움과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지 않으니까 여전히 내가 그 쇠사슬에 매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쇠사슬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쇠사슬 중에는 욕망의 쇠사슬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욕망의 쇠사슬이 나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고 신경질 부리게 하고 탐욕을 부리게 하고 시기하게 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하고 자꾸만 불화를 일으키게 합니다. 이것은 모두 욕망의 쇠사슬 때문입니다. 또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쇠사슬이 있습니다. 벗어나려고 몇 번씩이나 다짐해도 번번이 실패합니다. 그 쇠사슬에 매여서 그렇습니다. 수십 년 된 쇠사슬이 보통 쇠사슬이겠습니까. 죽기 살기 식으로 나를 구속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쇠사슬로부터 해방 받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내 안에서 몰아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끊어지고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유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자유에 부응하여 살려고 하면 내가 이 쇠사슬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때 내가 비로소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기독교의 핵심 복음입니다. 구원의 기본적인 의미는 구출입니다. 누군가 깊은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는 고통의 바다에서 스스로 자신이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때 구원의 실마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밖에서 누군가가 밧줄을 던져 주어야 내가 바다에서 헤어 나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구원하시는 분이 내가 아니고 우리 주님이십니다. 고로 내안에 깊이 뿌리박힌 쓴 뿌리에서 나를 건지는 것도 내가 아니고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건지시고 쓴 뿌리로부터 해방시키시는 것입니다.

 

유명한 신유 능력자인 콜드웰 목사님이 쓴「거짓 영들의 정체」라는 책에서 보면 마귀는 오늘날 우리 가정들과 교회들에게 침범하려고 갖은 궤계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부부싸움, 별거나 이혼, 자녀의 가출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마귀가 역사함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점점 악해져만 가는 것도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을 줄 알고 갖은 방법을 다해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탄 마귀는 일반 사회뿐 아니라, 교회까지 침투하여 역사 하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이나 말씀을 듣고 연구하게 하는 생활이나 충성에 게을리 하도록 만드는 등, 신앙생활에 은혜가 떨어지게 만드는 것도 알고 보면 사탄 마귀의 짓입니다. 교인 간에 불평을 일으키게 만들고 교회를 어지럽히거나 부흥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도 마귀의 짓입니다. 어느 분은 말하기를 마귀는 한 번도 우리의 예배에 빠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로 하여금 졸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들고 불신이나 불평하게 만들고 충성하는 자에게 왜인지 피곤하게 만들어 충성을 쉬게 하는 역할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거룩한 예배 중에 사탄 마귀가 감히 틈탈 수 있을까요? 가능할까요? 여러분, 40일 동안 장기금식하시는 예수님에게도 마귀는 세 번이나 와서 속삭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막1:12-13에서는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시중들더라.”라 말씀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나 교회에 끝없이 드나들면서 유혹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연히 오해하게 만들고 혹은 화를 내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제직회나 당회, 혹은 각 기관 모임에도 참석하면서 틈만 있으면 들어와서 시험 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에서도 강조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 남편이나 아내, 자녀의 실수나 교인들 간에 시험이 들거든 육적인 눈으로 판단함으로 결코 식구들이나 교인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영적인 눈을 통해서 사탄 마귀 때문에 생긴 줄 아시고 그 마귀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방법은 경건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11절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먼저 무장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경건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공격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경건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마귀가 틈 탈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경건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모습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4-16절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라 했습니다.

 

(1) 진리의 띠를 띠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갑옷을 입어도 허리띠를 매지 않으면 갑옷은 거추장스럽습니다. 허리띠를 매야 하는데 진리를 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면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심으로 마귀가 감히 틈을 탈수가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의의 흉배를 부쳐야 합니다.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무장입니다. 가슴은 심장부요, 중심인 마음이 있는 곳입니다. 그 심장과 마음은 언제나 의를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불의한 생각이나 의롭지 못한 계획을 가지게 되면 마귀는 그 틈을 이용해서 우리 속에 침입함으로 자기의 뜻대로 죄의 노예가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박금출 목사님이 쓴 「실화사전」이라는 책에서 보면 이런 예화가 나옵니다. 어떤 교회 자매님이 목사님을 찾아와 하소연하기를 “저는 착실한 아내요,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서 댄스홀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안 간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으나 계속 조르기를 구경이나 한번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거절했어야 함에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따라간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예수님을 잘 믿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자만심이 문제였습니다. 한번 구경 가고 나니, 어느 날 또 가고, 세 번째 갔을 때는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댄스에 완전히 미쳐서 길을 가다가도 음악소리만 들리면 미칠 지경이니 어쩌면 좋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귀는 우리를 미혹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 마음속에 불의한 생각을 넣어 주시는 것이니 단호하게 뽑아 버리어야 합니다.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의만 마음에 품어야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심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신을 안 신으면 그것처럼 괴로운 것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신발, 좋은 군화를 신으면 자갈밭이든, 가시밭길이든 두렵지 않고 평안히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길에는 마음의 평안이 있습니다. 가시밭길이든, 풍랑이든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마음의 평안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때 어느 때는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넘치는 평안과 기쁨은 가둘 수가 없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찬송을 부를 때에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압송될 대에 큰 풍랑을 만날 때에도 큰 평안을 주시므로 오히려 그와 함께 276명이 사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쓴 편지에는 평안과 감사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평불만은 마귀가 따라오나 평안과 감사는 향기와 같아서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믿음의 방패를 가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시험의 화전(火箭)을 능히 막는 것은 믿음의 방패를 가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어떠한 풍파와 시험, 어떠한 반대와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능력만 담대히 믿고 나갈 때는 사탄이 쏘는 불화살은 무력해지고 말 것입니다. 요셉이나 모르드개나 욥이나 다니엘은 큰 시험이 닥쳐올 때라도 선하시고 인자하사 우리를 도우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담대히 나갈 때 사탄의 어떠한 시험도 능히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5) 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입니다.

17절 상반절에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 중에 가장 귀한 곳은 머리입니다. 투구는 우리의 머리를 보호하는 무장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빼앗기 위해 자꾸 의심을 넣어 줍니다. 어느 때는 잘못된 신학(神學)으로 성경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어느 때는 구원의 확신을 뺏으려고 합니다. ‘네가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 너같이 못된 성질, 죄를 밥 먹듯 짓는 존재가 구원을 받는다니, 말이 되는가?’라고 조롱합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담대히 고백하기를 ‘나의 공로로는 결코 구원받지 못하나 예수님의 공로로 가는 것이니, 나는 그것을 믿노라.’고 할 때 마귀는 감히 우리의 생각 속에 의심을 넣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엡 2 : 8 - 9)

 

성도 여러분, 진리와 의, 평안과 믿음, 그리고 구원의 확신으로 이루어진 전신갑주를 입고 경건의 길을 가십시오. 그 때에 마귀가 감히 틈타지 못하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 방법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것입니다.

17절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앞에 열거한 전신갑주는 방어용 무기일 뿐입니다. 이제는 전신갑주를 입은 후에 공격용 무기를 소유해야 합니다. 때로 마귀는 가면과 위장을 하고 쳐들어옵니다. 그리고 와서 속삭이며 속삭입니다. 꾀어내어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신하여 깨어서 성령과 악령의 역사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달콤한 말씀과 나타나는 기적만 믿고 따라 가다는 마귀의 올무에 빠지기 쉽습니다.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룩한 영인가, 악한 영인가 분별할 수 있습니까? 그 시험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취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악한 영, 거짓된 영은 말씀의 빛에 노출되면 약해지고 맙니다. 그리고 말씀에 비취어 악한 영임을 발견될 때에는 지체 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함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그 검으로 마귀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세 번 시험할 때에 세 번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떠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말씀에 비취어서 그 문제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분명히 마귀로부터 오는 미혹이나 시험이라면 과감하게 말씀으로 나타내십시오.

 

더 나가서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물리치라. 그러면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칠 것이 분명합니다. 좀 전에 말씀 드린 콜드웰 목사님이 미국 동부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에 어느 집사님이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나는 교회 집사요, 교회학교 교사인데 이제는 사표를 내야겠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거짓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는 사이에도 너무나 많이 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큰 파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아내나 자녀가 믿지 않을 정도이고 이혼 직전에 와 있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기도하자 해 놓고 그 사람 속에 역사 하는 사탄을 향해 명하기를 “이 사람 속에 와서 거짓말로 역사 하는 사탄아, 예수님의 이름을 명하노니 당장에 떠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집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와 고백하기를 “목사님, 이제는 너무나 자유함을 느낍니다. 이제는 거짓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행복된 가정이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의 문제를 육신의 눈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영적인 눈, 말씀의 눈에 비취어 보아서 분명히 사탄의 장난이 분명하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명하므로 사탄을 쫓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의 방법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18-19절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깨어서 기도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아무리 전신 갑주를 입고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깨어서 지키지 못한다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삼국지에 보면 천하장수 장비가 술에 만취되어 잘 때에 앙심을 먹은 어느 장수가 와서 목을 베니까 꼼짝없이 당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깨어 있는 사람, 기도로 깨어 있는 가정, 기도로 깨어 있는 교회는 마귀가 감히 틈타지 못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2) 깨어서 기도할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우리 힘으로나 지혜로는 사탄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력하신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길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무전기와 같습니다. 비록 소수의 부대라도 무전기만 있으면 강력한 후원군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어쩌다 포위를 당하여 심각한 위험에 직면했을지라도 기도라는 무전기를 통해서 원군은 물론이고 포 후원 사격과 비행기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죠지 워싱톤 대통령의 비서였던 로버트 루이스 씨는 증언하기를 “대통령이 아침과 저녁 두 번씩 서재에 들어가 성경을 펴놓고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언제나 목격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워싱톤 장군의 군대는 벨리 포지 지역에서 가장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마을의 농부들은 워싱톤 장군이 반드시 성공할 것을 믿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추위와 식량난과 역경 속에서도 워싱톤 장군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습을 농부들은 날마다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워싱톤은 가장 큰 위기, 가장 큰 절망 가운데 오직 말씀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므로 엄청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악한 마귀는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를 들락거리며 우리의 식구, 우리의 자녀, 우리의 교우들을 유괴하려고 끝없이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암울한 기운이 가득찬 시기가 호기인 줄 알고 최대의 공격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경건의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의 검과 기도를 통해서 그 마귀를 과감히 대적함으로 언제나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는 우리의 필요한 능력입니다. 기도 없이 우리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말렉 군대와 싸울 때 모세는 산 위에서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팔이 내려가면 이스라엘 군대가 불리해지고 다시 팔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치열한 전투의 현장에서 기도의 팔을 든 모습, 이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면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을 보기 때문에 제 기도를 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19∼20절에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 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 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기도함으로 마귀와의 전쟁에서 넉넉히 이기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둠의 권세에 얽매어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지와 이웃들을 축복의 길, 생명의 길로 구원해 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찬송 : 350장 우리들의 싸울 것은

* 찬양 : 기도하세요 지금

 

 

조용기목사 영적전쟁 엡06장 10절 ~ 절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더불어 영적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우주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역자 루시퍼와 그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과 귀신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인간을 공격하여 타락하게 만듭니다. 그 예가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킨 것입니다. 그 후 마귀는 인간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구원 받기 전에는 마귀의 지배 하에서 마귀의 종노릇 하였고 구원 받은 후에는 마귀와 싸우며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은 현재 끊임없이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마귀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성경을 통해서 보면 마귀는 원래 매우 아름답게 지음 받은 그룹 천사장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천사 중에서도 가장 높은 천사인 그룹 천사 중에서도 으뜸이 가는 천사였습니다.

에스겔 28장 13절로 14절에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준비되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고 지키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불타는 돌들 사이에 왕래하였도다”

그가 이렇게 온갖 보석으로 단장하며 아름답게 지음 받은 것은 하나님을 보좌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지휘자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라는 정체성을 잊고 감히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타락한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을 반역하여 쫓겨날 때 그를 따르던 하늘의 천사 3분의 1을 함께 타락시킨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디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따라 산다면 마귀의 종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우리의 대적 마귀

마귀는 그 정체성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해서 이사야 14장 12절에는 더 부연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사 14:12~15)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는 굉장한 명칭을 가진 것이 사탄입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별은 천사를 상징하는데 뭇 천사 중에 가장 높은 자리를 자기가 참여하고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는 것은 북국 집회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 계신 곳에 그가 같이 하여 하나님과 동등 되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결과 구덩이 맨 밑에 빠진 것입니다. 가장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교만과 오만입니다. 탐욕과 욕심인 것입니다. 사탄은 교만과 오만이 그 가슴에 들어오고 탐욕과 욕심이 들어오자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가 타락할 때 혼자 타락한 것이 아니라 그 밑에 따르던 천사 3분지 1을 데리고 타락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모든 세력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대적하는 흉악한 세력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4절에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닌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씨름

우리는 생각하기를 혈과 육으로 우리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북한을 생각하면 김정일이와 그를 따르는 도당들, 인간의 혈과 육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게 원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은 그 배후에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가 그 뒤에서 힘을 주고 마귀의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주어서 싸우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영적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하여 우리는 싸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치자, 대통령, 수상들 높은 자리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 배후에 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반드시 마귀가 조정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통치자들 뒤에는 마귀가 조정하고 있다. 권세자들, 세상의 권세잡은 자들, 권세 있는 자들 뒤에도 마귀가 조정하고 있다.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이 세상 모든 흑암의 세력을 배후에서 조정하는 것은 원수 마귀인 것입니다. 공중에 권세를 잡고 있어 우리의 기도를 막고 하나님의 은혜를 막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우리 사람들에게 찾아와서 일하려고 할 때 못 내려오게 막고 있는 것이 공중에 권세 잡은 악의 영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하라는 것은 우리의 기도를 막고 있는 악의 영들을 격파하고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도록 하기 위해서 씨름을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처해 있습니다. 이 악의 세력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치자들을 지배하고 있고 권세자들을 지배하고 있고, 이 세상 주관자들을 지배하고 있고, 공중에 권세잡아 흑암의 세력으로 우리를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안보이는 엄청난 조직이 배후에서 우리를 대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씨름은 눈에 보이는 혈과 육에 대한 씨름이 아니라 배후에 있는 영적인 세력과 싸워서 이겨야 되기 때문에 영적 세력과 싸우는 것은 주먹으로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지난 2010년 11월 미션매거진(Missionmagazine)에서는 한 선교사님이 죽어가는 유럽 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을 보면, 유럽에서 개신교 출석 교인이 평균 3%에 불과한 나라가 22개국이나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믿음의 선진국들이 주일날 교회 출석하는 성도가 3%밖에 안된다. 프랑스만 보더라도 60년 전에는 전체 인구의 96%가 천주교 미사에 참석했지만, 지금은 불과 6%만 미사에 참석하며 개신교는 2%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1998년 짐바브웨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당시 영국의 대주교는“영국 교회가 피 흘리며 죽어가고 있다” 기도의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교회 성장 정체를 이야기 한 지가 벌써 몇 년 째입니다. 그런 반면, 우리나라의 술 소비는 점점 증가하여 이제는 세계 1위입니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2004년을 기준으로 연간 20조 990억 원에 이르는데 이는 국내 총생산(GDP)의 2.9%가 술을 먹어 날리는 것입니다. 나아가 음주는 자동차 사고, 가정 폭력, 살인, 행동장애, 자살 등의 원인이 되므로 그것이 가져오는 손실이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씨름은 결코 눈 앞에 있는 것들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런 통계를 보고 큰일났다고 생각하지만 배후에 마귀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배후의 세력과 싸우지 않고는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국가가 아무리 힘을 다해서 이러한 것을 다스릴려고 해도 배후에 마귀가 자꾸 조정을 하는데 마귀의 조정을 내버려 두고서 이 현실을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다. 뒤에 있는 마귀를 묶어 버리면 현재 육의 사람들이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마귀의 소근 거리는 것을 묶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마음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실 동안에는 힘이 있지만 성령이 떠나면 힘이 없는 것처럼 마귀들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들어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온갖 악으로 소근 거립니다. 그 마귀를 묶어야 사람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방탕하면 방탕의 마귀를 묶어야 되고, 아내가 방탕하면 방탕의 마귀를 묶어야 하고 술을 먹으면 술 먹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마귀를 묶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혈과 육의 사람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속에 있어서 인간을 조정하는 눈에 안보이는 원수 마귀와 씨름하고 싸워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결코 눈 앞에 있는 것들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 배후에 있는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인 마귀와의 영적 싸움이라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고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지성인 러시아의 소설가 솔제니친은,“우리의 모든 불행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인간들이 교회의 문을 닫으니 하나님께서는 하늘축복의 문을 닫으신 것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교회의 문이 닫히면 하늘문이 닫히고 교회의 문이 열리면 열릴수록 하늘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 1천 2백만 성도가 있고 5만 교회가 있는데 교회가 늘수록 하늘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닫을수록 하늘문이 닫히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자는 먼저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를 떠나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 마귀를 대적해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를 그대로 두고는 승리하는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에베소서 6장 10절로 13절에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여러분 마귀를 대적하여 물리치면 그가 가져오는 많은 흑암의 역사를 멸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종종 간단히 말하면 감기끼가 있다. 몸이 으스스하게 아프다. 편두통이 있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대로 내버려두면 안되지요.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이 병을 배후에 조정하는 영적인 파괴하는 마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예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감기끼를 가져오는 원수 귀신아 묶음을 받으라! 이 편두통아 귀신아 묶음을 받으라.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꾸짖으면 마귀가 물러가면 증상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증상이 생기는 것은 눈에 안보이는 마귀가 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저는 이 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 늘 마음 속이나 몸에 흑암의 세력이 들어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하려고 할 때 곧장 그와 싸웁니다. 곧장 그를 물리치면 나중에 그 증상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자다가 일어나서도 머리가 아프고 몸에 한기가 들고 하면 그대로 자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원수 마귀를 꾸짖습니다. 너희 마귀야 내게서 물러가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어떤 때는 소리치며 나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고요하게 떠나기도 하고 여하간 떠나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깨끗해져요. 상쾌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와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억압이 있으면 마귀가 안떠나는 것입니다. 마음에 억압하는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이 떠나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쾌해질 때까지 싸워야 돼요. 여러분 스스로가 싸워야 돼요. 그렇게 하면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말한 것입니다. 허리띠라는 것은 여러분 바지가 내려가지 않게 튼튼히 묶어 주고 옷을 바로 입을 수 있게 만들어 주지 않습니까? 허리띠를 잘 묶어야지 다윗처럼 허리띠를 잘 못 묶고 춤을 추다가 바지가 내려가서 발가벗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운동하려도 허리를 단단히 묶어야 되지요.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허리에 띠를 잘 띠어야 옷이 몸에 부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로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말씀으로 힘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허리를 질끈 묶으면 허리가 튼튼하고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늘 읽고 듣고 묵상하고 말씀에 선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우리 말씀은 믿음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서서 믿으면 그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14절에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라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 중심, 십자가 중심으로 허리띠를 띠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보면 예수님이 몸찢고 피흘려 우리를 대속했지 않습니까? 어떻게 대속했어요? 죄에서 대속했습니다. 그것을 질끈 허리에 묶어야 돼요. 불의와 추악에서 대속했어요. 그것을 허리에 묶고 병에서 대속했고, 저주에서 대속한 진리를 허리에 묶고 죽음에서 대속한 말씀으로 허리를 묶으면 허리가 튼튼해서 몸이 마음대로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허리가 강해야 몸이 바로서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서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다는 꿈과 환상을 가지고 나가면 이 세상에 승리하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허리가 튼튼하고 말씀의 진리가 허리를 매야지 허리가 아파서 흔들흔들 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등뼈가 상한 사람 여러분 자리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잘 걷지도 못하고 짐도 걸머지지 못하고 뛰지도 못하고 반 병신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서 몸의 중심이 잡혀야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바로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말씀이 충만하면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의 흉배를 붙여라. 흉배라는 것은 가슴을 보호하는 장비인 것입니다. 옛날에는 활을 쏘고 칼로써 싸우지 않습니까? 요사이 총을 쏘면 가슴에 아무리 흉배를 붙여도 뚫고 들어가지만 옛날 비유를 가지고 말씀했으니까 흉배를 붙이면 활을 쏘면 부딪혀서 떨어지고 그 다음 칼로써 쳐도 안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슴이란 것은 우리 마음에 사상을 말합니다. 생각을 말합니다. 생각을 가슴에 품지 생각을 발 뒤꿈치에 품는 사람 봤어요? 생각을 가슴에 품지요.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운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이 가슴에 마귀가 불화살을 쏘아요.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절망적이고 죄악으로 유혹하고 타락하고 파괴하는 생각을 집어 넣어요. 생각의 전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마음 속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생각을 집어 넣어요. 여러분 마음을 말씀으로써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리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을 부여 잡으면 여러분의 운명과 환경이 그것을 따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변화되면 환경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에서 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잘사는 것이나 못사는 것 승리하는 것이나 패배하는 것이 다 마음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먹어야 돼요. 그런데 마음을 잘 먹기 위해서는 여기에 의의 흉배를 붙여야 되는 것입니다. 의의 흉배란 죄사함을 받은 의로운 은혜를 마음 속에 가지고 하나님과 가까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합니다. 의인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수 있습니까? 의인이 되어야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데 의인이라는 것은 죄를 한번도 안지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도 한번도 안지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우리 다 죄인인데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으면 죄가 하나도 안지은 것처럼 변화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피가 왜 위대하냐면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사람도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면 일평생에 죄를 한번도 안지은 사람처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보혈을 믿어 의의 흉배를 붙이면 하나님과 같이 하고 하나님과 같이 하면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한다고 생각해야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고 외롭게 나혼자 인생을 산다면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불면 날리고 불안하고 공포에 들어차고 초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절대로 마음이 동요하지 않고 무섭지 않고 두렵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로움이 있어야 돼요. 의로움은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혈을 떠나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행위로써 의롭다함을 얻을 사람 있어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태어날 때부터 거짓말쟁이요, 불의하고 추악하고 죄를 지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는 희망이 없어요. 오늘도 예수님의 보혈을 믿으면 아멘 하십시다.

에베소서 2장 8절로 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입니다. 오늘 예수를 믿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선물 받으라. 의로움의 선물을 받으라. 의의 흉배를 붙이면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나와 같이 할 수 있고 나에게 나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꿈쩍을 못하지요. 예수님의 보혈이 무서운 것은 마귀의 세력을 멸하고 하나님과 같이 살고 하나님과 함께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율법 행위에 의지해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는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5절에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

신은 삶과 행위의 보호 기구인 것입니다. 여러분 신이 적은 것을 신으면 발 뒤꿈치가 가죽이 벗겨지고 발이 아픕니다. 신은 넉넉하게 신어야 발이 아프지 않습니다. 멋내려고 아주 발에 딱 맞은 신을 신었다가는 발 가죽이 벗겨지고 혼이 나는 것입니다. 발이 편안해야 걸음걸이가 편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은 자기 행위를 보호하는 수단을 말하기 때문에 인간의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학위나 배경이나 다 신발입니다. 모세가 80세에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제일 먼저 모세에게 뭐라고 말했습니까? 네 발의 신을 벗으라. 신을 벗으라. 모세는 바로왕의 왕궁에서 40년 동안 살았습니다. 애굽의 모든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과 지식을 다 배운 사람입니다. 그 다음 사람 때려 죽이고 난 다음 도망을 쳐서 미디안 광야에서 와서 40년 살았습니다. 그래서 80이 되었을 때 하나님을 만나니까 하나님이 제일 먼저 말한 것이 네 발의 신발 벗으라. 신발은 뭡니까? 자기 명예, 지위, 권세, 돈, 교육, 자기 자랑, 자기 보호 기구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보호하는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 보호를 가지고 자랑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것은 다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신발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놀라운 신발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신발 보호하는 은혜를 예비한 것입니다. 그 은혜가 십자가에서 용서와 의의 신발인 것입니다. 용서와 의를 보혈을 통해서 허락해 주시고 거룩함과 성령충만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치료와 건강을 허락해 주시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허락해 주시고 부활 영생 천국을 허락해 준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중심으로 해서 성경은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 약속이 다 여러분 편안하게 살려고 하나님이 은혜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아버지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신발을 신겨라. 맨발 벗은 자에게 신발을 신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맨발 벗은 인생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한 신발을 신기면 여러분 가난한 사람은 부요하게 되고 포로된 사람은 자유를 얻게 되고 눈 먼자는 보게 되고 눌린 자는 자유케 되고 하나님의 은혜의 신발을 신으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어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빈손 들었다.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다.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 은혜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신발을 예비해 놓은 것입니다. 그 목록이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예비해 놓았는가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신발을 신고서 믿음으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와서 여러분을 넘어뜨리려고 해도 튼튼한 신발을 신고 있기 때문에 죄를 덮어씌우려고 해도 안되고 불의를 가지고 더럽게 하려고 해도 안되고 병으로 덮어 씌워도 안되고 망하게 하려고 해도 안되고 지옥으로 데려가려고 해도 안되는 것은 아예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신발을 신고 튼튼하게 서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평안의 신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발을 신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안해야 돼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인생에 불안과 초조, 절망을 가지고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신발이 튼튼하면 아프지 않잖아요. 발이. 평안한 생활을 하기를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이 세상에 끊임없이 방패라는 것은 적이 쏘는 화살을 막는데 쓰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 우리 원수 마귀가 우리 마음 속에 불안, 초조, 절망, 분노, 시기, 염려, 근심 이러한 모든 것이 여러분을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억압한 마음, 괴로움 이런 화살이 날라올 때 이것을 막아야 되겠는데 무엇으로 막습니까? 믿음으로 막아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로 막아야 돼요. 믿으면 하겠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서 마귀가 오면 대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가 오면 하나님이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 했으니 나는 맡겼으니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마음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불안이 다가오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병이 다가오면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얻었다. 물러가라! 공포가 다가오면 하나님이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같이 있겠다고 했으니 물러가라! 일을 시작하고 일이 잘 안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푸른 초장에 뉘워 주시겠다고 말했다. 나를 모든 일에 푸른 초장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우리 가정을 푸른 초장으로 나의 일터를 푸른 초장으로 내 교회를 푸른 초장으로 형통하게 만들어 주겠다 했다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말씀으로써 여러분 원수 마귀를 물리치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다녀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생활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감각적으로 살고 지식으로 살고 경험으로 살고 이성으로 살지만 여러분과 나는 무엇으로 살지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지요?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공부해서 거기에 쓴 것을 전부 마음 속에 꽉 간직하고 마귀가 오면은 말씀을 가지고서 대적하면 우리가 늘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잠언서 30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라.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생각을 언제나 부정적으로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으로 머리에 꽉 채워 놓아서 부정적인 생각이 오면은 막아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여러분 머릿속에 긍정적인 생각이 오도록 입술의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기쁘다. 나는 즐겁다. 나는 평안하다. 나는 형통한다. 나는 건강하다. 나는 사랑한다. 왜 이말을 합니까? 실제 없어도 그 말을 하는 것은 그렇게 하므로 불행과 고통과 괴로움과 실패를 가져오는 마귀를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먼저 생각이 들어오면 그것이 마음 속에 들어가서 꿈을 꾸게 하고 믿음을 갖게 하고 입술로 고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의 투구를 쓰고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총을 늘 머릿속에 간직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시시때때로 여러분 이사야 53장을 외우십시오.

“저가 찔림은 나의 허물을 인함이요 저가 상함은 나의 죄악을 인함이라 저가 징계를 받으므로 내가 평화를 누리고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내가 나음을 입었도다 내가 어린 양 같이 그릇 행하여 내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 나의 죄악을 저에게 담당시켰도다”

나를 적용해서 머릿속에 하나님 말씀을 채우는 것은 굉장히 좋습니다. 더구나 시편 23편은 여러분에게 굉장히 좋은 긍정적인 생각을 주는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것은 나의 생활에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족하게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어떻게,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푸른 초장에 누운 양은 배불리 먹으니까 형통한 것입니다. 여러분 집에 들어가면 우리 가정이 하나님이 푸른 초장으로 만들어 주신다. 직장에는 하나님이 이 직장을 푸른 초장으로 만들어 주신다. 일터에는 하나님이 일터를 푸른 초장으로 만들어 주신다. 하나님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물가에 들어가서 마음에 쉼을 얻는 것처럼 하나님은 마음에 평안을 주신다. 하나님이 나의 평안이다. 집에 들어가나 일터에 가나 밖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평안을 주신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내 영혼을 막 살아서 일어나게 하신다. 기쁨으로 마음이 뛰고 즐거움으로 마음이 흥분되고 마음에 행복으로 활짝 꽃피는 이런 마음을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기쁨으로 흥분해야 돼요. 즐거움으로 흥분해야 돼요. 젊어서는 그렇게 쉽지만 늙어서는 춤추기가 힘들지만 안되면 혼자라도 거울 앞에 서서 한번 춤춰 보세요. 춤추면 마음이 그렇게 기뻐지는 것입니다. 저도 청년회 집회에 한번 춤추고 나니까 기분이 좋더라구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소생시켜 영혼이 활달하게 되기를 원하고 그 다음에 자기 이름을 위해서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 힘으로 아무리 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살려고 해도 안되잖아요. 그렇지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안돼요. 술주정뱅이가 주여, 마음은 먹기 싫어도 육신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한잔, 두잔 자꾸 먹어요. 담배 피는 사람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면서 또 탁 불을 붙이고... 사람의 욕망을 아무리 인간의 힘으로 제어하려고해도 안돼요.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십시오. 이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되지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성령이 와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시편에 저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지 않습니까?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에 고통스러운 일이 매일같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크고 적은 고통이 다가올 때 고통을 바라보지 말고 같이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이 계시면 해를 당치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원수가 다가오면 원수의 목전에는 밥상 차려주시고 성령으로 기름을 부어 잔이 넘치게 하신다. 원수가 아주 싫잖아요.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원수가 우리의 생활 속에 굉장한 기여를 합니다. 원수가 오면 밥상도 차려주고 성령 기름도 부어 주셔서 잔이 넘치는 생활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면 한단계 높아지고 두단계 높아지고 삼단계 높아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수만 보지 말고 목자되신 하나님이 같이 계셔서 그를 이용해서 우리를 발전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른다. 부모가 자식을 평생토록 인자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인자하게 바라보시고 평생토록 돌보아 주시고 하늘나라 영원한 아버지의 집에 데리고 가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게 시편 23편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시편 23편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고백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야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아침에 한번 외우고 점심 때 한번 외우고 저녁에 한 번 외워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흑암에서 광명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무에서 유로 가난에서 부요로 질병에서 건강으로 이러한 변화가 말씀을 통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투구를 쓰는 것입니다. 말씀을 머리에 탁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늘 기억하고 외우고 말씀을 묵상하면 여러분 신앙생활에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해주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의 검인 말씀을 항상 가지고 있으라. 배후의 세력 마귀와 적극적으로 대적하여 싸우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말씀으로 공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있는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내 환경에 있는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매일 여러분이 일터에 나가기 전에 귀신부터 먼저 쫓아내십시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에게 와서 나를 훼방하는 원수 귀신아 물러가라!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그리고 방언기도를 조금 하고... 방언기도를 한 5분이나 10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 주시니까 그러면 그날 생활에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녁에 잠들기 전에도 귀신을 물리치고 쫓아내고 방언기도 좀 하고 자면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방언기도는 여러분, 내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이 대신해서 꼭 필요한 기도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자매님 한분이 내게 와서 간증을 하기를 갑자기 막 기도가 하고 싶은데 무슨 기도를 할지 몰라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방언으로 통성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하고 난 다음에 집 문을 채워 놓고 구역장이니까 구역회 인도하러 갔어요. 그런데 남편이 예수를 안믿고 예수 믿고 구역예배 인도하러 나가고 교회 간다고 핍박을 많이 하는데 그래도 열심히 교회 나왔습니다. 그 구역예배를 인도하고 난 다음에 집에 들어오니까 대문이 문이 열렸어요. 남편이 온줄 알고 당신 왔오? 하고 들어가 보니까 당신이 아니라 옷가지가 마당에 내던져져 있고 도둑놈이 왔어요. 도둑놈이 왔는데 그 동안에 모아놓은 돈 좀 서랍 속에 넣어 놓았는데 이것 다 날라갔으면 이제 죽었다 말이야.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 않아도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는 남편 이제 돈조차 날렸으니 내가 살아날 길이 없다고 하나님 앞에 주저 앉아가지고서 아이고 하나님, 날 살려 주소. 나는 이제 죽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서랍을 열어 보니까 다른 서랍에는 전부다 흐트러서 옷을 끄집어 내서 엉망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서랍의 돈만은 손도 안대고 그대로 놓았어요. 얼마나 흥분했던지 그 길로 내게 뛰어 왔더라구요. 말할 사람이 없어서 내게 왔다면서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다른 것 다 뒤죽박죽 만들어 놓고 난 다음에 가장 귀한 돈은 손도 안대고 그 서랍은 열지도 않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서랍 곁에 올 때 눈을 막아 버렸습니다. 안보이는데 어떻게 서랍을 열어요? 어떻게 그렇게 했습니까? 방언기도 했기 때문에... 벌써 떠나기 전에 하나님은 그놈이 들어올 줄 알고 미리 그 입술을 통해서 막아 달라고 방언으로 기도 해놓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는 그 자매님을 방언으로 기도하게 만들고 난 다음에 지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여러분의 삶에 튼튼한 은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귀신 쫓아내고 방언하고 저녁에 잠자기 전에 귀신 쫓아내고 방언을 말하고 자면은 편안하게 잠잘 수 있고 굉장히 좋습니다. 아주 좋은 보약입니다. 한번 해보세요. 나는 매일같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는 싸워서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보다 강한 무기는 없어요.

마태복음 12장 28절로 29절에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먼저 마귀를 묶어 놓고 나면 모든 일에 훼방을 재켜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강한 자를 묶어 놓고 난 다음에야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지 강한 마귀가 와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훼방을 하는데 일을 할 수가 있어요? 마귀부터 먼저 쫓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들과 싸워서 이겨 놓으면 그 다음에 평안하게 일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우리나라 대통령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될 것은 대통령같은 권세 있는 자의 뒤에는 마귀가 끊임없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훼방을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일을 잘하려고 해도 자기 힘으로 못하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를 해서 강한 자를 묶어 버리면 대통령이 마음에 성령의 은혜와 사랑과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받아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잖아요.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 권세자들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줘야 마귀가 훼방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대적 안하면 마귀는 점점 더 강하게 우리를 쳐들어 와요. 마귀를 대적해야 돼요. 눈에 안보이지만 예수 이름으로 물리쳐야 돼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마귀가 우리를 멸하러 왔는데 예수님은 마귀를 멸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걸머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보혈을 의지하고 내 가슴에서 마귀가 물러가게 대적하고 우리 가족 중에서 마귀가 물러가도록 대적하고 교회를 훼방하는 원수 마귀를 물리치고 생활과 사업을 훼방하는 원수 귀신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대적하면 마귀는 물러가지 대적 안하면 안물러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만 바라보고 마귀를 대적해 나가면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승리를 갖다 주시는 것입니다. 마귀와 싸울 때는 예수님의 이름을 잊지 마십시오. 내 힘으로 싸워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싸워야 되고 마귀와 싸울 때는 말씀을 의지하고 싸워야 되고 성령님을 도우심을 온전히 구해야 되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서 싸우면 마귀는 물러가는 것입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라고 저하고 굉장히 친한 친구가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훌러 신학대학교 교회성장 주임교수로 있었던 분인데 굉장히 오랫동안 편두통으로 고생 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저명한 병원이나 의사들에게 가서 다 조사를 받고 진찰을 받고 약을 먹어도 안 나았어요. 너무나 괴로워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나에게도 종종 만나면 편두통 때문에 고생한다고 괴롭다고... 나도 생각하기를 아마 머릿속에 뭐가 잘못되었나보다 그렇게 생각했지 마귀가 누른 줄은 몰랐어요.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피터 와그너 같이 신령한 목사요, 대학교수요, 지혜로운 사람인데 마귀가 붙었으면 벌써 쫓아냈겠지. 그리고 아무말도 안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너무 골치가 아프고 편두통으로 괴로워서 고통을 당하는데 자기가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그 조용기 목사가 와서 병들거든 귀신을 쫓아내라고 말하는데 혹시 나도 귀신이 붙어서 그런 것 아닌가? 그러면 왜 날 보고서 귀신 쫓아내라는 말 안하느냐? 내가 한번 시험적으로 쫓아봐야겠다. 그냥 하려고 하니까 부끄럽더랍니다. 적어도 신학박사요, 대학교수가 무슨 엎드려서 편두통 마귀야 물러가라! 그 말하기가 곤란해서 샤워실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샤워를 틀어 놓고 편두통 마귀야 물러가라! 나에게 편두통을 가져오는 원수 마귀야 물러가라! 그리고 비누로 이렇게 씻는데 비누방울이 물에 싹 씻겨 내려가는 것처럼 편두통이 싹 사라져 버리더랍니다. 야~ 이것 거짓말 같다. 아예 편두통이 깨끗이 나아버렸어요. 그래서 나에게 말하기를 조목사, 시키는데로 원수 귀신을 쫓아내고 나니까 거짓말같이 편두통이 나았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보태 주었습니다. 마귀는 한번 나갔다가 도로 다시 와서 문을 두드릴테니 도로 편두통이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러니까 에~ 괜히 나았다는 것 거짓말이구나 생각하지 말고 또 물리쳐라. 열 번오면 열 번 물리치고 백번오면 백번 물리치면 물러간다. 그런데 아닌게 아니라 얼마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에 또 편두통이 다가오더랍니다. 다가와서 요 귀신아 안속는다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하니까 또 물러가 버리고... 또 다가오기에 또 물러가라니 또 물러가버리고... 그래서 나중에는 완전히 편두통에서 놓여남 받았다고 간증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귀를 대적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 가슴 속에 들어오는 부정적인 생각도 자꾸 물리쳐야 되고 우울한 마음도 물리쳐야 되고 병의 마귀도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한두번 물리치지 말고 계속 싸워야 돼요. 계속 싸워야 돼요. 가정에 불화가 있으면 불화의 원수 마귀와 싸워야 되고 저주가 오면 저주 마귀와 싸워야 되고 우리에게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은 배후에 원수 마귀가 귀신들과 더불어서 공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좋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되 풍성히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이 다가오면 마귀가 배후에서 역사하는 줄 아십시오. 그리고 마귀를 쫓으십시오. 대결하면 물러가는 것입니다. 내버려 놓으면 같이 살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처음에 와서 여러분과 더불어 있습니다. 따라 다녀요. 같이... 그런데 마음 속에 마귀가 늘 같이 따라다니다가 그 다음에는 내버려 놓으면 여러분 마음을 억압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억압한다는 것이 아주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요사이 흔히 말하는 스트레스. 제일 처음에는 그냥 마귀가 따라다니다가 그것을 내버려 놓으면 스트레스에 걸리게 합니다. 마음에 막 스트레스에 걸리면 얼마 안있다가 그것도 내버려 놓으면 우울증에 걸립니다. 우울증, 조울증에 걸립니다. 우울증, 조울증에 걸리게 내버려 놓으면 정신이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처음에 따라다닐때부터 쫓아내면 괜찮은데 따라다니는 것 내버려 두면은 점령하고 점령한 것을 내버려 두면 억압하고 스트레스하고 스트레스에 걸린 것을 그대로 두면 점령하는데 점령해 놓으면 힘듭니다. 제가 교회 개척할 때 이양선 박사라고 적십자 병원 소아과 과장 부인이 있었는데 그 부인 이름도 아직 기억합니다. 김순선 여사입니다. 그 의학박사의 부인이 반신불수가 되었어요. 늘 골치가 아프다고 하고 반신불수가 되어가지고서 병원에서 약은 다 쓰고 치료는 다 받아도 안되니까 천막교회를 세웠을 때 반신불수가 돼 몸을 이렇게 이렇게 끌면서 교회 왔어요. 우리 교회에서는 최고로 지성인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맡고 남편이 의학박사고 가정도 잘 살았어요. 전부 거지들만 모인 곳에 그 분만 교회 들어와서 앉으면 반신불수라도 교회가 환합니다. 그래서 제가 굉장히 정성을 들였다구요. 하루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난 다음에 내가 안수를 해주는데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축복받게 해주세요. 하니까 손을 탁 치더니만 나를 보고 야 이 자식아 그래요. 어휴 교양있는 여자가 그 말을 하는데 내가 너무 기가 막혔어요. 뭐라구요? 야 이자식아 왜 나에게 손을 얹냐? 왜 젊은 주의 종이 귀부인 머리에 손을 얹고 야단이냐. 미안합니다. 내 손 얹은 것 미안합니다. 나는 축복해 주려고 손 얹었는데 그런 의미로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하니까 야 임마, 교회 당장 집어 치워. 말하는 것을 보니까 귀신이 말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당신 누구요? 그러니까 귀신이다. 어쩔래?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귀신?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오라! 허허허~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고 너 몇마디에 나가냐? 안나간다! 그래서 같이 기도하던 몇사람의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더니 겁이 나서 다 달아나 버리고 말았어요. 천막교회에 나와 그만 남았는데 와~ 강합디다. 그때 나는 아주 신출내기고 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예수 이름으로 나오는 말만 알아가지고서 예수 이름으로 나오라고 하니까 안나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 한시간을 싸워도 안나온다고 하지요. 두시간을 싸워도 안나온다고 하지요. 그런데 왜 계속해서 싸웠냐면 의사부인인데 만일 정신병자가 되어서 이렇게 하면 의사가 와서 보고 이것 우리 마누라 교회 나가더니 미쳤다 말이지. 미치게 만든 것은 주의 종이 미쳤으니 날 고소, 고발하면 이제 경찰 신세까지 지게 되겠다. 그래서 그 부인 걱정이 아니라 내 걱정이 더 되가지고서 내가 예수 이름으로 나오라. 안나온다. 나오라. 안나온다. 나는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었으니 기운이 빠져서 힘이 없는데 이것은 힘이 장사에요. 반신불수가 일어나가지고서 나를 때리려고 달라는데 나는 천막 가운데 도망을 치고 내 뒤에 따라오고... 나는 자꾸 물러가라고 하고 안물러간다고 하고... 여러분 무려 8시간을 싸웠습니다. 아침에 싸운 것이 해가 질때까지 싸웠어요. 나중에는 내가 정 힘이 지쳐서 어찌할 수 없이 내가 항복해야 되겠다 싶을 때 이 김순선 씨가 입에 거품을 물더니만 쓰러져요. 그래서 내가 예수 이름으로 나오라! 고함을 치니까 나중에 나가겠다고 그래요. 누구냐 그러니까 우리는 수가 굉장히 많다. 10년이 넘도록 이 집에 살았다. 그러더니 지금 나를 이렇게 무시하게 쫓아내느냐. 그래서 내가 무조건하고 나가라! 난 모르겠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나가라! 그러니까 한참만에 눈을 부비더니 크게 하품을 하고 일어나더니 아이구 미안합니다. 뭐가 미안합니까? 누굽니까? 마귀입니까? 진짜 사람입니까? 그러니까 진짜 사람이라고 그래요. 내가 마귀가 나를 통해서 주의 종하고 싸우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속으로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어찌할 수 없이 잡혀가지고서 욕을 하고 고함을 치고 주먹을 휘둘렀는데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그 다음에 이제는 나았다고... 그래서 빨리 집으로 가라고 남편 병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빨리 가라고... 그리고 내 보내고 난 다음에 혼자서 앉아서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또 목사님~ 하면서 뛰어오는 것입니다. 아이구 또 시작이구나... 하나님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그 뛰어 들어오는데 왜 그렇습니까? 날 보세요. 뭘 보란 말입니까? 춤을 추는데 반신불수가 완전히 나았어요. 정말로 너무나 놀랬습니다. 10년 동안 반신불수가 된 사람이 귀신이 쫓겨나가고 난 다음 온몸 전신이 완전히 나아서 춤을 추고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데 남편 오는데 집밖으로 뛰어나가서 남편을 마중하니까 남편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른 여자인줄 알고 정신을 못 차려요. 여보 나야~ 나야! 어떻게 나았느냐? 천막교회 가서 전도사님하고 8시간 고함을 치고 싸우고 귀신이 쫓겨나고 난 다음 나았다고.. 그래서 그 다음 주일날 그 남편이 교회를 왔더라구요. 내가 그 이야기를 어제 다른 목사님들 모임 가운데도 이야기했는데 마귀는 눈에 안보이지만 배후에 있어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데 배후에 있는 마귀를 강한자를 묶어야 병든 자를 해방시킬 수 있다. 완전히 억압을 당하고 스트레스를 당했으면 그 뒤에 있는 마귀를 묶어야 스트레스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를 대적하라. 저가 너를 피하리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이 원수 마귀와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닌 것입니다. 인간이 아닌 것입니다. 정사와 권세와 이 세상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공중의 권세잡은 마귀들과의 싸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들과 예수 이름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믿음을 강하게 하여 대적하여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속에 있는 마귀를 쫓아내고 내 주변에 있는 마귀를 묶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승리를 가져오고 평안을 가져와야 하나님 앞에서 축복받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마귀를 이기면 여러분의 생활속에 성령이 넘치게 임하여서 하늘나라가 여러분 생활속에 들어오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기도하겠습니다.

 

이필재목사 악령과 하나님의 전신 갑주 엡06장 10절 ~ 절

 

성경에는‘악령’이라고 하는 사탄의 존재가 확실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가장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악령 존재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대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악령의 존재입니다. 이 악령은 구조상 인격을 지닌 존재이며 동시에 영적 존재로 오늘 성경 말씀에는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상을 주관하는 자” 이렇게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악령의 존재는 창세기에서부터 등장합니다. 하와를 유혹한 사탄의 모습을 보면 아주 교묘합니다. 지성의 능력이 있습니다. 설득력이 있어서 합리적 이유로 하와를 넘어뜨리는데 성공합니다. “네가 하나님이 되면 더 좋을 텐데 왜 하나님 밑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사느냐?” 아주 설득력 있는 지성의 유혹을 해서 하와가 넘어가 버렸습니다. 사탄은 감성도 지녔습니다. 아담에게 먼저 오지 않고 감성이 약한 하와를 선택하였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의지도 대단히 강합니다. 절대로 쉽게 물러서는 법이 없습니다. 하와를 넘어뜨려 하나님을 하와로부터 분리시키는데 성공한 사탄은 예수님마저도 넘어뜨리려고 친절하게 다가와서 창세기 때와 똑같이 유혹을 했습니다. 지성의 능력으로 유혹을 했습니다. “세상 구원은 네가 생각하는 방법으로는 어려우니 내가 일러주는 말로 해야 돼.” 이렇게 예수님을 유혹하고 감성 능력도 동원이 됩니다. “너 배고프지?” 아픈 데를 살짝 긁어주면서 시작하는 것을 볼 수가 있고 의지가 있어서 한두 번에 물러가지 않고 세 번째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이 악령이 하는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인간과 하나님을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 악령의 사역을 보시면 활동 범위가 대단히 광범위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보면 “그는 공중 권세를 잡은 불순종의 영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주 만물에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악령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악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정사와 권세와 어둠의 세력, 이 세상일을 다 알고, 그 일의 권세를 가지고 어둠의 세상을 만드는 일에 능력 있는 주관자로 활동을 하게 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쓰러뜨려서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하는데 성공했으니 얼마나 능력이 있습니까? 신명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집단으로 유혹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게 하는 일에 성공합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사울 왕에게 들어갑니다. 그래서 악령이 들은 사울왕은 자기를 해하게 한다고 생각하는 제사장 85명을 끌어다가 목을 쳐서 죽여 버리는 악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욥기서에 보면 하나님을 그렇게 잘 믿는 동방의 의인 욥을 못살게 굴어서 아들딸 모두를 죽여 버리고 그의 재산을 다 뺏어버리는 일을 하고 욥의 몸에 질병을 주어서 고통을 받게 하는데 “빨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돌아서라.” 시험하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까지 시험에 듭니다. 성도들을 죽이고 이간질시키며 마음을 동역케 해서 하나님의 역사에 방해꾼이 됩니다. 마침내 가룟 유다의 마음에 들어가서 예수를 배반케 하여 예수를 십자가로 인도하는데 공헌하는 기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가 악령의 능력을 당해낼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래야 악령을 대적할 수 있다.” 영적인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 가운데 나이가 많아진 노인들이 판단력이 흐려지고 말과 행동이 정상 수준에서 벗어날 때 “망령을 피운다.”는 말을 합니다. “망하게 하는 영의 지배를 받는다.”는 말이 됩니다. 이 말의 힘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은 성경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보고 ‘군대 마귀’가 들렸다고 하는 기록이 나타나 있습니다. 마귀는 마치 군대 같은 무서운 파괴력을 소유한 영적 존재력이 됩니다. 사탄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알 수도 없으면서도 우리의 모든 배후에서 교묘하게 막강한 힘을 가지고 우리를 파멸시키고 본질적으로 우리를 변질시키는 힘을 갖고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사탄이 어찌나 힘이 강한지 우리가 가진 힘으로서는 도저히 그를 피할 수 없고 맞서 싸워 이겨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보다 훨씬 머리가 영리하고 힘이 강한 능력자인 것을 성경이 인정합니다. 이 악령이 하는 일은 성경에 나타난 대로 잠도 안 잔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능성 있는 사람을 만나면 천사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삽시간에 부하 직원으로 만들어서 자신의 활동 무대를 넓혀가는 존재입니다. 마귀의 문제에 있어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많은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마귀를 물을 때 ‘검은 마귀’와 ‘흰 마귀’라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검은 마귀’란 세상 가운데 있는 마귀를 말하고 ‘흰 마귀’란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마귀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다 마귀의 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에 늘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무서운 악령을 이길 수가 있는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갑주인데 바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악령의 힘이 문제가 안 됩니다. 문제는 성령 충만한 이가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영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 하나님은 영적 존재인 것을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그래서 우리 인간이 영적 존재임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과 나의 영의 만남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이 그 아이의 손을 붙잡고 불러 가라사대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이란 곧 영이다. 하나님이 영이시고 우리가 영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과 나의 영이 교통을 할 때 나는 영의 존재가 되고 성령을 힘입는 존재가 되어서 이 마귀의 영은 우리가 거절할 수 있는, 그리고 물리칠 수 있는 넉넉한 힘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성령 충만을 설교하고 항상 교인들이 성령 충만이 있기를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령이 사람의 영을 지배해 버리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누구의 말도 듣지를 않습니다. 오직 악령의 말만 순종합니다. 여기 본문 11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네 힘으로는 당해낼 수 없다.” 이 전신갑주는 옛날 병사들이 쓰던 옷입니다. 가장 잘된 전신갑주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한번 가보십시오. 머리에 쓰는 투구에서부터 손에 끼는 장갑까지, 발까지 전부 철로 되어 있습니다. 철갑 옷입니다. 그래서 조금도 틈이 없습니다. 상대방의 창끝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몸 전체가 다 전신갑주인데 그것만 입으면 피해를 하나도 당하지 않고 전쟁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너희가 철갑을 옷 입은 병사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러면 악령이 도무지 틈타지 못한다.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오늘 이렇게 권고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 악령의 역사는 하나님이 정해준 시간 안에서만 역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얼마나 남지 않았음을 요한계시록에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이 마귀는 자기의 때가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 온갖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데 놀랍게 역사하고 있음이 성경말씀에 나온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가장 선한 존재, 축복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악령이 들어가면 가장 추악해지는 이 사실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악령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의 노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해서 오늘 여기 성경말씀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본래 바지와 저고리를 따로 따로 입지 않고 하나로 입습니다. 그런데 허리에 띠를 묶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띠가 온 몸에 힘을 주는 의상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허리띠를 띠라고 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다 압니다. 그러니까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 그러면 악령이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여기 옛날 성경에는 “의의 흉배”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우리 생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심장에 의를 품으라. 하나님의 옳은 일을 위해서 살기로 마음에 작정하라.” 그리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어라.” 이렇게 설명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가라는 말입니다. 따라가되 평안의 복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 우리 성도들이 시험에 빠지는 것은 다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떠난 삶은 사탄의 공격을 받도록 노출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약해지는 데서 틈이 생겨버리면 그 틈을 타고 항상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우리 믿음 가운데 나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됨에 대한 확신을 항상 내가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성령의 힘 앞에 악령은 굴복당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힘을 의지해야 되고 나에게 최후의 승리는 이미 무장되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아니한다는 신앙 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를 갖고 살면 마귀가 절대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데 믿음이 약하여 지는데서 모든 문제가 생깁니다. 기독교는 믿음으로 의하여 구원받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믿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너희 믿음이 그것 밖에 안 되느냐?”라고 날마다 책망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하셨습니다. 투구는 모자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라는 것은 “너는 하나님의 백성됨의 영광을 빛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신분은 그 사람이 쓰고 있는 모자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 저 사람은 군인이구나. 아! 저 사람은 경찰이구나.” 거의 우리 사회 문화는 특징 있는 사람들이 머리에 쓰는 모자로 신분을 발표하고 살아가는 문화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의 투구란 뭐냐?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감추지 말고 머리에 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자신감 있게 발표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겁쟁이 좋아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만약 사람 앞에서 나를 부끄러워하면 나도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끄러워하겠다.” 이것은 뭡니까? 집사이면 집사라고 말해야 합니다. 집사가 어디 가서 예수 안 믿는 척 그런 비겁한 행동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나만 봐도 집사인지 알 수 있도록 하란 말입니다. 군대 가는 젊은 친구들이 와서 기도 받고 가게 되면 제가 말합니다. “군대 가면 예수 안 믿는 친구들이 더 많이 생깁니다. 어떻게 할 겁니까? 너 예수쟁이구나! 놀리면 어떻게 할 겁니까? 거기서 그래, 나는 교회 다니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다. 자신감 있게 발표하고 밥 먹을 때도 기도 분명하게 하고 주일날이 되면 부대에 있는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고 괜히 나쁜 애들 휩싸이고 그러지 말고 너 때문에 그 군대 사회가 믿음이 발표되도록 구원의 투구를 써라. 아! 저 놈 예수 믿는구나. 항상 그런 별명이 생길 수 있도록 해라. 예수 안 믿는 척 하고 밥이 나오는데도 기도 안하는 척 눈 뜨고 슬며시 기도하지 마라. 나는 예수 믿는다고 발표해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세상 친구들이 있는 곳이나 어느 좌석에 가서 괜히 예수 믿는 사람 아닌 척 한다면 마귀는 그런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이 놈은 내가 한번 붙잡으면 내 종이 되겠다.’ 예수님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담임 목사인 내가 어디 가서 목사 아닌 척 행동하면 여러분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어휴! 저런 목사를 존경하고 그 교회를 다녔구나!” 금방 실망할 거 아닙니까? “어디를 가서든지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목사이고 집사이고 한 것을 밝히 들어내라. 구원의 투구를 써라. 네 신분을 영적으로 밝혀라.” 그러면 시험에 안 듭니다. 괜히 무서워서 벌벌 떨고 슬슬 기고 눈치 보다가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영광스럽고 자랑스럽지 왜 창피합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마틴 루터 말대로 흰 마귀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전신갑주는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내가 늘 강조하지 않습니까? 교회는 프로그램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예배 프로그램에만 잘 나와도 믿음은 걱정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읽고 실천하도록 노력하면 이것이 전신갑주입니다. 말씀이 보호합니다. 지난 주간에도 우리 갈보리교회에서 146명이 목사 후보생들 다 인터뷰 했습니다. 한 사람씩 다 물어봤습니다. “지금까지 성경 몇 번 읽었습니까?” 인터뷰 한 사람 가운데 제일 많이 읽은 사람이 35번 읽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송합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번 이상은 안 읽어본 것 같습니다.” “여보세요.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내가 신학교 다닐 때는 입학에서 졸업까지 성경 50번 읽어야 졸업시켰소. 교인들 가운데 성경 100독 하신 분도 있소. 이제 성경 1번 읽고 어떻게 목사가 되겠소? 떨어뜨릴까?” “아닙니다. 이제 많이 읽겠습니다.” 제가 언제 큰소리치겠습니까? 후배들에게 큰소리치지요. “아니, 목사 되겠다고 얼굴 내민 사람이 성경 1번 읽어서 성경이 뭔지 알겠소?”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무장은 내가 어떤 경우에 있던지 나를 보호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전신갑주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권하고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 다음에 “깨어 기도하라.”라고 했습니다. 집안 식구들 가운데 한 사람은 새벽 기도하도록 만드십시오. 중요합니다. 기도는 후손들에게까지 가는 하나님의 약속이 됩니다. 그러니 가족 중에 한 사람은 새벽기도 하도록 꼭 만들어보십시오. 틀림없는 하나님의 약속이 나타납니다. 신령한 군인의 영적 최대 공격 무기는 말씀과 기도라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귀는 다 물러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6장을 우리가 공부했는데 거기 보면 예루살렘 교회가 망가졌습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가 싸움 박질하고 헬라파, 히브리파 온통 수라장입니다. 이제 이 교회는 없어지던가 갈라지던가 하는 어려움이 왔을 때 베드로가 말하잖습니까? “왜 교회가 이 모양이 되었는가? 우리가 잘못했다.” 뭘 잘못했는가?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게 되어 있는데 말씀을 제쳐놓고 설교하기가 싫어진 겁니다. 왜 사도들이 설교하기 싫어졌는가? 거기 예루살렘에 있는 교인들은 거의 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설교하는 것을 잘 듣겠습니까? 예수님은 능력을 발휘하면서 권위 있는 말씀을 증거하셨는데 이 사도들도 여태까지 예수님의 설교만 들었지 자기가 전해보지는 않았잖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이제 사도들이 설교를 해야 되는데 교인들이 예수님 설교같이 듣지를 않았습니다. 설교를 왜 저렇게 하느냐,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으니까 귀찮아졌습니다. “하지 말아야겠다. 설교해도 말만 많고….” 목회자들은 다 똑같은가 봅니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고 “못한다, 못한다.” 하면 아주 못해 버리더라고요. 그렇게 설교를 안 하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지니까 마귀가 “와! 이거 내 세상이 되었다.” 금방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랬을 때 사도들이 회개하고 어떻게 말합니까? “아! 설교 안 해서 이 모양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베드로가 선언하지 않습니까? “사도들은 예수님의 사도로 선택받은 우리들,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 우리는 지금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만 전무하리라.”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니까 마귀가 금방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교회 모든 것이 해결되어졌습니다. 교회는 말씀과 기도로 항상 전신갑주를 입어야지 다른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오늘 가르쳐준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이 일을 위해서, 즉 설교를 하기 위해서 쇠사슬에 매인바 되었으니” 손에다 쇠사슬을 묶었습니다. 이것을 끊어버릴 수 없다는 말을 쇠사슬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이렇게 묶어버렸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위해서 평생을 하기 때문에 에베소 교인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는 말씀을 했습니다. “나는 평생 이 일만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나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해 주십시오.” 뭐라고 부탁합니까?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렇게 기도해 달라고 성도들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사도들은 설교를 해야 합니다.

 

저는 신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저는 몸이 약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보니까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활동을 해야 되는데 체력적으로 이것을 당해내지 않으면 힘듭니다. 그러니까 “목사가 매일 새벽기도도 안하고 쿨쿨 잠만 자느냐?” 이런 소리가 금방 나옵니다. ‘이야! 이거, 평생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체력이 안 따라주면 목회도 못하는데 어떡하나? 그런데 소명은 받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두 가지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나를 건강하게 하나님이 인도해 주옵소서. 건강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45년 6개월 동안 목회하는 기간 동안 앞으로는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나는 병원에 입원한 일도 한 번도 없습니다. 어쩌다 감기를 걸려서 콜록 대거나 아니면 예방 주사 맞으러 병원에 갔지 내가 병원에 입원해서 신체상에 건강 어려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46년 6개월 동안 아파서 설교 못 해본 적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은혜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한 가지 기도제목은 “하나님 아버지! 어떤 때는 하루에 10번도 설교를 해야 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계속 설교를 해야 합니다. 심방 열 집을 하면 열 번 설교를 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하나님 아버지! 내가 무슨 말을 그렇게 계속 할 말이 있겠습니까? 내게 말씀을 주셔서 이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나로 입을 벌려 설교할 수 있는 말씀을, 복음의 비밀을 영적으로 내게 터뜨려주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위해서는 이 두 가지, 건강과 말씀을 주옵소서.” 그러니 그것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셔서 지금까지 그때부터 오랫동안 목회했지만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니까 설교 잘하지 않습니까?

 

지금 바울의 투쟁은 상대가 로마 제국입니다. 로마 제국의 감옥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해석했느냐? “로마가 나쁜 나라가 아니다. 로마 군병들이 나쁜 놈들이 아니다. 다 악령의 역사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이 줄을 끊어야 한다. 그러면 로마도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저 로마 군인들도 크리스천이 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겁니다. “어두움의 세력, 악령이 지배하는 정사와 권세, 이 로마는 지금 거기에 붙잡혀서 기독교를 핍박하고 나를 감옥에 가두고 예수 믿는 사람 다 죽이고 있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니까 이 악령의 역사,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요 악의 영들이라.” 그러니까 “나를 감시하는 저 무장한 로마 군인들 벼락 맞아 죽어라.” 그러한 기도를 하지 않고 또, 에베소나 빌립보 교인들에게 “빨리 나로 하여금 감옥에서 나가게 해 달라.” 그러한 기도도 안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 악령의 역사의 줄만 끊어 버리면 이 모든 사람이 다 우리 형제가 된다. 로마의 군병들도 재판관도 총독도 우리가 빨리 구원해야 될 불쌍한 영혼들이라. 모두 악령의 지배 때문에 저렇게 하고 있으니까 악령을 추방하자.” 옛날에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악령이 지배하니 교회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면 북한 사람들이 나쁜가? 아닙니다. 악령이 어두움의 권세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저 모양이 된 겁니다. 그러니 악령을 추방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의 군인들도 민간인들도 정부의 고위 관리들도 악령의 이 지배만 거둬내면 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제가 생각할 때는 북한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수령님 모시듯 예수님을 섬기면 얼마나 전도를 잘하겠습니까? 문제는 악령의 역사입니다. 이 악령을 추방하는, 이 공중의 권세가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 악령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2장 11절에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이 사탄은 날마다 속입니다. “선악과 따먹으면 네가 하나님 될 거야.” 속았습니다. 그래서 하와가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세상에 들어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온 마귀도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속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속지 않았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를 상대로 악령 추방을 위해서 감옥 안에서 쇠사슬에 묶여 외로운 투장을 하고 있는 바울인데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울의 기도가 다 응답 되잖습니까? 악령의 권세는 로마에서 다 응답되고 AD 313년에 콘스탄틴이 밀라노의 칙령을 말해서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어 지금은 교황청이 로마 복판에 있고 베드로는 로마 교황청 밑 무덤에 지금 있잖아요? 온 세계 복음의 센터가 되었습니다. 악령의 지배만 물러가면 온 세상이 이렇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악령의 편에서 보면 완전한 패배 같이 보이는 현장이 하나님의 백성이 보면 승리의 출발점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를 십자가가 못 박은 악령은 이겼다고 노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3일 후에 그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가 승리하여 이렇게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하여지지 않습니까? 문제는 내가 이러한 악령의 역사를 알고 성령의 역사를 믿으면서 성령이 충만하여서 우리 주변의 공중 권세를 잡은 이 악령의 고리를 끊어버릴 때 나를 통한,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세상을 밝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세상을 보면 정사와 권세자들은 악령의 지시대로 인간됨의 최고의 축복인 영혼 구원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는 일은 돌로 떡을 만드는 일, 권세 잡기 위해서 악령에게 절하는 일, 찬란한 문명의 기적, 이것만을 내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자기 영을 괴롭히는 악령과 싸울 때 책상의 잉크병을 항상 벽으로 집어 던지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이렇게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악령의 속임수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내 영에 침투하는 이 악령을 기도와 말씀으로 몰아내고, 평안의 복음의 능력을 우리 속에 가지고 있을 때 악령을 나를 보고 무서워서 꼼짝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감 있게 구원의 투구를 쓰고 말씀과 기도의 전신갑주를 입고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나서면 악령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성령 충만 하라고 우리가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에 “병신 자신은 귀신이 눈만 흘겨도 귀로 벌떡 자빠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악령의 권세가 아무리 커도 겁낼 거 하나도 없습니다. 왜? 이미 그것은 항복한 권세입니다. 우린 십자가 권세, 승리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겁납니까?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일꾼된 것에 대한 자부심과 이런 영적 능력을 구원의 투구로 발표하면서 “십자가 군병들아!” 이렇게 나가면 악령은 꼼짝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크리스천들이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내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발표하지 못하느냐 말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인데 일곱 악령이 들렸던 여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그것이 다 물러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최고로 많이 받은 사람이 그 사람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제일 먼저 설교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모든 악령들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갈지어다.”하고 우리가 힘 있게 나아가면 성령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가지고 항상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행진하는 일꾼들이 된 것입니다. 모두 그렇게 성령이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종순목사 영적전투 엡06장 10절 ~ 13절

 

세계 역사를 보면 전쟁 없었던 시대가 없었습니다. 세계 제1차, 2차 전쟁이 있었고 최근에 있었던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 까지 수를 셀 수 없는 전쟁이 있었습니다.

전쟁의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쟁은 상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 때 북한이 주적이다, 아니다 주적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는 등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북한을 주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북한이 우리를 주적으로 삼고 무기를 사들이고 핵을 개발한다면 결국 우리를 그들에게 내주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복합되기 마련이지만 분명한 것은 전쟁은 상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둘은 승패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기면 승전국이 되고 지면 패전국이 됩니다. 일단 전쟁에 지면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 합니다.

주권도, 자유도, 영토도, 재산도 승리자의 것입니다.

셋은 모든 수단과 방법이 총동원된다는 것입니다. 최신무기, 첩보, 비밀공작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이 총동원됩니다.

전쟁은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들 역시 숱한 전쟁을 겪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거나 공격했던 나라들을 꼽아보면 애굽, 바벨론, 앗수르 같은 강대국이 있었고 작은 부족국가들 가운데는 블레셋, 아말렉, 미디안 등이었습니다.

이길 때도 있었고 질 때도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경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겼고 하나님이 외면하시면 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시면 정권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했습니다.

사무엘상 17:47을 보면 다윗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골리앗과 싸우면서 한 말입니다.

전쟁 가운데 가장 힘든 전쟁은 영적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은 눈에 보이는 무기나 손에 잡히는 병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움의 대상이 영적인 힘을 가진 마귀입니다. 그래서 싸우기도 힘들고 이기기도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을 보면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싸움의 대상이 마귀라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악한 영이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박효진 장로님이 쓴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대구시 중구청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1981년 10월 교도관으로 자리를 옮겨 부산구치소, 청송제2감호소, 청송교도소, 서울구치소, 성동구치소 경비 교도 대장으로 근무하다가 퇴직 했습니다. 교도소에서 겪었던 일, 만났던 수많은 수감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전도했던 일들을 책 속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1995년 장위동에서 일가족 다섯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살인범을 잡고 보니 이호선이라는 젊은이였습니다.

호성이는 자기 아버지 어머니 친형, 형수, 조카 다섯 명을 죽이고 정원에 암매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구치소에 들어온 호성이는 살인은커녕 100원도 배앗을 수 없는 그런 인상이었습니다.

오랜 교도관의 직감은 범인의 눈빛 몸짓만으로도 흉악범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호성이는 친가족 다섯을 살해할 그런 인상이 아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호성이와 대화를 나누며 그 배후를 살펴나가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기 3일전, 돌연 이상한 물체가 나타났습니다. 산발한 여자 같기도 하고 이상한 짐승 같기도 한 형체가 흐늘거리며 겹쳐진채 호성이를 따라다닙니다. 꿈속에까지 따라다닙니다. 호성이는 거의 미칠 지경입니다. 사흘 뒤 호성이는 아버지한테 용돈을 얻으러 갔다가 거절당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악령이 "죽여라, 신발장에 있는 망치로 죽여라"

그 명령에 미친 호성이는 망치로 부모를 죽이고 형과 형수 조카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호성이가 붙잡혀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는데 악마가 다시 나타나 "네가 무슨 낯짝으로 이렇게 살아 있느냐 부모, 형, 형수, 조카까지 죽인 놈이 뻔뻔하게 살아있다니 이젠 네 차례다 네가 죽어라"

그 말대로 경찰서 유치장에서 몇 번 죽으려고 했지만 사람이 많아 죽지 못했습니다.

구치소로 옮기는 날 악마는 "오늘 구치소로 넘어간다. 절대로 오늘을 넘기지 말라"며 런닝셔츠를 찢어 올가미 만드는 법, 창틀에 목을 매는법까지 마치 TV화면처럼 환하게 보여주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호성이는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예수 믿고 구원받고 마귀의 사슬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정체이며 하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본문의 악의 영이라고 한 것입니다.

마귀는 악을 충동하고 집단행동을 조장합니다.

마귀와의 싸움은 주먹싸움도 아니고 핵무기 싸움도 아닙니다.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영적전쟁은 영적인 힘으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바울은 본문에서 영적 무장과 승리의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힘과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10~11절을 보면 "너희가 주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세상 전쟁은 핵무기, 탄도미사일, 스커드미사일, 대포동미사일, 중성자탄, 수소탄 등 최신 무기로 싸웁니다.

그러나 마귀와의 싸움은 하나님의 능력과 힘으로 무장하고 싸웁니다.

그 좋은 예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입니다.

골리앗은 그 당시 최신병기로 무장한 장군입니다. 다윗은 들에서 양몰이 하다가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온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17:47) 라며 돌맹이 하나로 맞서 싸워 이겼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핵무기와 새총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무장했고 골리앗은 창과 칼과 갑옷으로 무장했기 때문에 다윗이 이겼습니다. 그날 그 싸움은 골리앗 대 다윗의 싸움이 아니라 악령의 힘을 입은 자와 하나님의 힘을 입은 사람의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밀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첩보위성이 있어서 적의 동태나 이동을 샅샅이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첩보망과 최신예 무기를 갖춘 미국도 빈라덴의 행방도 모르고 후세인의 생사여부도 확인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쟁에 능하시고 모든걸 다 아시고 이기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57에서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하노라"고 했고, 본문 13절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면 마귀를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를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선다는 것은 이긴다는 것입니다.

이긴 사람은 서고 진 사람은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마귀의 도전과 유혹을 이기려면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손을 잡고 하나님의 무기로 싸워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2. 신령한 무기로 무장해야 합니다.

10절을 보면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라고 했고 11절을 보면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고, 13절에서는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했고, 14절에서 17절까지는 전신갑주 즉 완전무장의 세목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는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그 가운데 진리(14-), 복음(15-), 믿음(16-), 말씀(17-), 기도(18-)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무장의 구체적 내용인 진리, 복음, 믿음, 말씀, 기도는 모두가 눈으로 보고 손에 쥘 수 있는 무기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없습니다. 크다고 강하고 작다고 약한 것이 아닙니다.

골리앗은 컸고 다윗은 작았습니다. 그러나 작은 소년 다윗이 이겼습니다.

바벨론이나 앗수르나 애굽보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건재하고 큰 나라들은 다 없어졌습니다.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큰 폭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력 앞에 일본이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진리, 복음, 믿음, 말씀,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그 능력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바꾸고 마귀를 물리칩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40일 금식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마귀가 시험했습니다.

그때마다 주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마귀를 물리쳤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던 살인자 호성이를 구치소까지 따라와 괴롭히던 마귀는 박 장로님의 기도로 물러갔습니다.

 

한의사 김소형씨가 쓴 글을 읽었습니다. 건강의 3대 원칙은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는 것인데 배설기능은 장에 있기 때문에 장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고 노화도 방지된다는 것입니다. 오장육부라고 합니다만 장은 인체 중 복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장과 소장은 소화 흡수, 배설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신체 외부가 건강해서 신체내부로 건강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가 건강해야 피부도 건강하고 노화가 방지된다는 것입니다.

신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영혼입니다.

영혼이 탄력을 받고 영혼이 건강해야 영적 전쟁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무제는 마귀가 우리의 영혼을 무기력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의 경우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과 교제하고, 사람 얘기를 듣고 사람 손을 잡고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8시간 10시간 인터넷을 들여다봅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사람과 동반 자살을 하고 인터넷 채팅을 통해 몸을 팔고, 물건을 삽니다.

인터넷을 통해 교회를 공격하고 파괴합니다.

선거도 인터넷으로 할 계획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파트너가 인터넷으로 바뀌었습니다.

마귀는 최대한으로 인터넷을 도구화 하고 있습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진리, 말씀, 기도, 복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도전에 맞서 싸워 이기려면 영적인 힘을 길러야 합니다. 마귀는 죽여라, 파괴하라, 너도 죽어라, 공격하라, 이간질하라고 부추깁니다.

거기 넘어가면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해라, 치유해라, 화평하라, 살려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귀의 유혹을 물리칩시다.

악마의 도전을 물리칩시다.

사탄아 물라가라고 선언합시다.

 

 

 

이정익목사 내안에 박힌 쓴 뿌리 엡06장 10절 ~ 17절

 

가을입니다. 가을은 열매 맺는 계절이고 결실의 계절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때가 되면 결실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식물이나 동물 인간 등 생명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사명이고 존재의 의미입니다. 이것은 신앙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지난주일 영적성숙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성숙은 그냥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수고와 연단과 훈련과 자기단련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한번 해 보겠다고 각오를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영적생활을 유지해 보려고 마음을 먹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도 하려고 마음먹고 주일도 잘 지키려고 다짐도 하고 헌신도 하고 봉사도 하고 수고도 하려고 마음으로 작정하고 다짐하고 계획도 세우고 이제 출발하려고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순간부터 내가 마음먹고 다짐한대로 잘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짐하고 각오를 했더니 그때부터 내게 시작되는 것은 시험입니다. 그 시험은 신앙인에게 찾아오는 필수 과정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생활이기 때문에 숫한 영적인 문제들이 도전해 오기 시작합니다. 생각도 하지 못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불화가 시작되고 더 바빠지고 연락도 없던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와 산에 가자, 낚시를 가자, 골프를 치러 가자하고 다가옵니다. 그래서 마음이 약해지고 흔들려 모처럼 다짐했던 마음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 여무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시험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알 것이 있습니다. 건강한 나무나 뿌리 깊은 나무는 가물어도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디어 낸다는 것입니다. 그 나무가 그렇게 뿌리가 깊어지고 단단한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모진 비바람들을 견디어 낸 결과입니다. 그리고 나서 비로소 뿌리 깊은 나무가 탄생된 것입니다. 나무가 한번 뿌리가 깊숙이 내리면 든든해집니다. 좀처럼 흔들림이 없습니다. 못도 깊이 잘 박힌 못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못이 얕게 박히면 흔들립니다. 이도 잇몸이 튼튼한 사람은 이가 건강하고 잇몸이 부실한 사람은 이 때문에 고생합니다. 샘도 깊은 샘은 가물어도 좀처럼 마르지 않습니다. 지식도 깊은 지식은 흔들리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얕은 지식이 문제입니다. 누가 교만하냐 하면 조금 아는 사람입니다. 진정 깊은 지식자는 호들갑을 떨지 않습니다. 운동도 어느 경지에 이르면 까불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까불고 다니냐 하면 초단자들입니다. 웃기지도 않습니다. 진정 부자는 부자 티를 내지 않습니다. 검소하고 고급스럽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부자티를 내고 다니냐 하면 졸부들입니다. 그들은 온 몸에 걸치고 두르고 다닙니다.

 

이것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깊고 무게가 있고 깊이가 있으면 좀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신앙이 깊고 든든해 질 때 그 신앙에는 힘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결박도 풀 수 있게 됩니다. 못된 습관도 풀고 악습도 과감히 끊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것은 내 노력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힘으로 하게 됩니다. 내 노력이나 내 결심은 별로 힘이 없습니다. 깊은 신앙의 힘과 주님이 주시는 영적 능력이 나를 제어하게 하고 끊게 하고 극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전신갑주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입는 갑옷과 투구로 무장된 모습을 말합니다. 바울은 그 모습을 연상하면서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말씀과 영적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이고 발에는 복음의 신을 신고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성령의 검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강조합니다(엡 6:13-17). 여기서 진리, 의, 복음, 믿음, 성령, 말씀이 나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서신을 끝내면서 일반적인 복을 기원하고 평안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본서 말미에서는 영적으로 무장하라고 끝을 맺습니다. 영적 무장에서 몇 가지를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영적 전쟁

 

이 세상에는 전쟁이 많습니다. 국가 대 국가 간의 전쟁이 있습니다. 민족과 민족끼리 일어나는 내란과 분쟁도 있습니다. 이런 전쟁은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신앙의 세계에도 전쟁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전쟁입니다. 신앙은 영적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사로잡는 생활 그것이 성령의 생활입니다. 고로 하나님의 영과 반대되는 악의 영들이 나를 그냥 놔두질 않습니다. 그래서 영적 싸움이 발생하여 내안에서 영적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에는 영적 전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 전쟁의 대상

 

싸움에는 언제나 대상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전쟁의 대상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은 싸움에서 가장 힘든 대상입니다. 나는 참 묘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잘 모릅니다. 그만큼 나는 묘한 존재입니다. 내 안에는 두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본성적인 나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나입니다. 나는 그중 하나를 택하여야 합니다. 둘로부터 다 조종 받으며 살아가면 갈등이 심해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본성인 나를 좆을 것이냐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나를 따를 것이냐 그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소속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다음은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이 세상은 나로 하여금 끝없이 허황되게 하고 마음에 바람을 불어놓고 쾌락을 좆게 만들고 들뜨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모처럼 각오를 하고 다짐을 해도 세상은 나를 풀어지게 만듭니다. 유행에 물들게 하고 풍조에 휘말리게 하고 절제하고 인내하고 경건하려고 애쓰다가 결국 포기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생활 철저하게 하고 하나님 말씀을 계속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배에 와서 졸더라도 부지런히 예배에 참석하며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삶 자체가 믿음이 자라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와서 열심히 들으면 내 안에서 동화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안에서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천국에 갈 것인가”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걱정하는 것은 내가 더 잘 믿어야 할텐데 라는 걱정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틀림없이 간다” 이런 사람은 위험합니다. 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과 싸우는 일이 가장 어려운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는 “악한 영”입니다. 본문을 보면 우리의 싸움의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니고 악한 영들에 대항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악한 영들은 참 교활하고 간사한 영입니다(고후2:11). 이 악한 영들은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물 냄새도 맞지 않는 금식을 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 그 악령이 찾아와 시험을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야 사탄의 시험에 걸리면 100%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기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영적 전쟁의 장비필요

 

영적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장비가 필요합니다. 그 장비는 무기가 아닙니다. 마태복음 26장52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께서 체포당하실 때 순간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칼은 전쟁 때에 사용하는 장비입니다. 그러면 신앙인의 무기는 어떤 것입니까. 그것이 본문에 나와 있는 전신갑주의 무기입니다. 즉 진리, 의, 화평, 믿음, 구원, 말씀 등입니다. 그것이 전신갑주의 무기들입니다. 살상하는 무기를 사용하는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옵니다. 북한이 핵을 만들면 누구든 앉아서 두려워만 하는 것이 아니고 주위에 있는 여러 나라들이 또 더 강력한 핵무기를 만들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쿠데타는 또 다른 쿠데타를 낳습니다. 원수 갚음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그 자손이 또 원수를 갚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을 간단히 죽일 수 있는데도 죽이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렸는가 하면 하나님이 그를 처리하실 때까지입니다. 그것이 완벽하게 승리하는 처리방법입니다. 기다리지 않고 인위적으로 사울을 해치웠을 경우 다윗도 또 다시 당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을 다윗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진리와 의와 화평과 믿음과 구원과 말씀에 의존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이 사울을 아주 깨끗이 이기지 않습니까.

 

영적 전쟁을 이기는 법

그것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 마음의 죄의 뿌리를 관리” 하는 일입니다. 우리들 마음에는 죄의 뿌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뿌리가 참 질기고 깊게 박혀있습니다. 그러다가 때만 되면 이 뿌리가 고개를 들고 나옵니다. 이 뿌리가 너무 깊어서 어느 순간 다 뽑혔나 싶은데 어느 순간 또 나타납니다. 내가 예수 안에 살면서 악습관을 고치고 손을 씻고 살아갑니다. 이제는 내 안에서 그 지긋지긋한 악의 뿌리가 뽑혔겠다고 생각하고 다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 안에 뿌리가 여전히 그냥 박혀 있습니다. 내가 믿음의 힘으로 억누르고 있으니까 조용히 고개 숙이고 있을 뿐입니다. 내가 그 뿌리를 억누르는 힘이 전보다 클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힘이 약화되어 내 마음에 성령의 의존도가 떨어지면 예외 없이 고개를 들고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옛날 지독한 술꾼이었습니다. 그 후 예수를 믿고 술을 끊고 살아갑니다. 그 상태는 악습의 뿌리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여전히 그 뿌리는 그냥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가 양조장 근처를 지나갈 때는 바람에 풍겨오는 술 냄새를 맡게 되는데 그때 그 술 냄새가 아주 구수하게 그리고 회가 동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 안의 그 악습관의 뿌리가 박혀 있다가 순간 고개를 들고 발동했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를 억누르는 힘이 강할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힘이 약해지면 슬그머니 술을 다시 입에 대게 되는 것입니다. 노름도 방랑벽도 도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먼저 주변정리부터 잘 해야 합니다. 내 주변에 그런 악습이 가까이 있으면 금방 영향을 받고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노름의 악습을 끊은 사람도 노름 현장을 배회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면 자연히 꿈틀거리는 뿌리를 제어할 수 없게 됩니다. 아직도 뿌리가 남아서 그렇습니다. 마치 나무를 자르면 그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나오듯이 그 뿌리는 완전히 뽑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서운 책임감을 통감하고 성령께 강하게 의존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 마음에 뿌리박힌 악습을 잘 관리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만병을 이기는 무기이고 장비이고 힘입니다.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은 나라가고 소리칩니다. 그러니까 귀신들이 나갔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권위가 있고 능력이 있고 힘이 있는 강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모든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은 모든 것의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신자가 악습인 도벽을 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가게 앞에만 가면 저절로 물건에 손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를 믿게 되었고 도벽을 끊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고 몇 번씩 맹세하고 다짐도 했지만 물건이 있는 곳에만 가면 손이 저절로 갔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어린 딸을 데리고 상점에 가면 안 그럴 줄 알고 갔는데 속에서 미칠 지경으로 훔치고자 하는 열망이 올라오더라고 합니다. 그때 딸 때문에 훔치지 못하게 되자 딸을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때 얼마나 어처구니없었겠습니까. 어처구니라는 말을 아십니까.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합니다. 맷돌은 손잡이 때문에 돌릴 수 있는데 그런데 그 손잡이가 없어졌습니다. 그때 상상해 보십시오. 그래서 어처구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자신이 지금 아주 지독한 도벽의 쇠사슬에 매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습관을 버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조여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밤에 집으로 가는데 슈퍼 앞을 지나가는데 그때 그 마음에서 자꾸만 도벽의 기운이 솟아오르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 무섭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 도벽의 마음, 도둑질 하라는 생각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너무 다급하니까 누가 있건 말건 소리쳤는데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몇 분 후부터 그 마음이 힘을 잃는 것 같이 느껴져 오더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도둑질 안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그 순간 그 안에 깊이 뿌리박힌 이 도벽의 굴레에서, 악의 쇠사슬에서, 저주의 굴레에서 비로소 벗겨진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은 우리 신앙인에게는 최대의 무기입니다.

 

또 “십자가 고난의 축복”을 입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나약함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악습의 쇠사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그를 믿기만 하면 이 영적인 은혜와 소망과 행복과 즐거움과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지 않으니까 여전히 내가 그 쇠사슬에 매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쇠사슬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쇠사슬 중에는 욕망의 쇠사슬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욕망의 쇠사슬이 나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고 신경질 부리게 하고 탐욕을 부리게 하고 시기하게 하고 질투심에 사로잡히게 하고 자꾸만 불화를 일으키게 합니다. 이것은 모두 욕망의 쇠사슬 때문입니다. 또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쇠사슬이 있습니다. 벗어나려고 몇 번씩이나 다짐해도 번번이 실패합니다. 그 쇠사슬에 매여서 그렇습니다. 수십 년 된 쇠사슬이 보통 쇠사슬이겠습니까. 죽기 살기 식으로 나를 구속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 쇠사슬로부터 해방 받는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내 안에서 몰아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끊어지고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유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자유에 부응하여 살려고 하면 내가 이 쇠사슬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때 내가 비로소 자유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은 기독교의 핵심 복음입니다. 구원의 기본적인 의미는 구출입니다. 누군가 깊은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는 고통의 바다에서 스스로 자신이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때 구원의 실마리는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밖에서 누군가가 밧줄을 던져 주어야 내가 바다에서 헤어 나올 수가 있습니다. 우리를 그렇게 구원하시는 분이 내가 아니고 우리 주님이십니다. 고로 내안에 깊이 뿌리박힌 쓴 뿌리에서 나를 건지는 것도 내가 아니고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건지시고 쓴 뿌리로부터 해방시키시는 것입니다.

 

김태복목사 영적싸움과 신앙자세 엡06장 10절 ~ 19절

 

오늘은 2006년도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해를 되돌아보면 너무나 암울했던 한 해였습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올해 대한민국의 국민의 삶은 집값이 갈랐다. 집값 폭등에 따른 희비는 삶의 가치관마저 뒤흔들었다. 성질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되레 손해 보는 현실은 온 사회를 한탕주의로 몰고 갔다.”고 개탄했습니다.

 

또한 어느 신문에서는 양재동에서 18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경배(47)씨의 이야기를 기사로 썼는데 그 분은 올해처럼 1년 내내 한숨과 울분으로 힘겹게 보낸 적은 없었다고 하면서 탄식하기를 “18년 통틀어 올해가 가장 어려웠어요. 매출이 지난해보다 20~30% 가량 줄었거든요. 물건은 안 팔리는데 인건비와 세금은 늘어나니 도리가 없지요.”라고 합니다.

 

그런데다가 올 한 해는 너무나 수해, 한해가 심하였을 뿐 아니라, 조류독감으로 인해서 농민들 중에 빚더미 위에 앉은 가정들이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취업이 안 됨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민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삶을 사는데 나라의 살림을 맡은 국회의원들은 허구헌날 싸움만 벌이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개탄할 일입니다.

 

한마디로 구태와 정쟁으로 마무리한 2006년 국회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라의 운전대를 맡은 대통령이 너무나 무능하게 운전함으로 온 국정이 갈팡질팡한 혼란에 빠졌던 한해였습니다. 그나마 참여정부에게 유일하게 기대했던 남북문제마저 전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를 보나 저기를 보나 어디 하나 희망이 보이는 곳이 없음으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 때문인지, 많은 가정들과 교회들이 시험이 떠날 날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때일수록 우리 성도들은 더욱 깨어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런 암울한 기운 속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은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정이나 교회 안에 시험이 들고 분규가 일어나는 것은 어떤 문제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마귀가 뒤에서 조종함으로 발생되는 것임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마지막 부분에 와서 신앙생활을 영적 전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0절부터 12절까지는 우리 성도들의 적에 관해서, 13-17절까지는 우리의 무장에 대해서 업급했다면, 18절부터 19절까지는 성도들의 무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적은 바로 마귀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거룩한 영과 악한 영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데, 거룩한 영은 성령님을 말하고 악한 영은 바로 마귀를 말합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거룩한 영의 시종자들인 천사들을 부리면서 역사 하십니다. 그와 반대로 악한 영은 바로 마귀요, 다른 말로는 사탄인데 그 밑에 귀신이라는 많은 부하가 있어서 그 귀신을 통해서 악한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의 기원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전통적인 해석에 의하면 원래는 사탄은 가브리엘, 미가엘과 더불어 하나님의 천사장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쿠테타에 가담했던 부하 천사들과 천국에서 쫓겨나 지금은 세상에서 활동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은 겔 28:16-17, 사 14:12-14, 유1:6입니다. 지금도 마귀는 공중권세를 차지하고 하나님의 일을 끝없이 방해하면서 항전(抗戰)하고 있습니다. 마귀과 귀신들은 크게 다섯 가지 악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1)엡2:2에 보면 이 세상에서 공중 권세를 잡고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에 가두고 생명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2)요13:2에 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 하도록 만듭니다. (3)고후4:4에 보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듭니다. (4)막4:15에 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선을 행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5)눅22:31에 보면 모든 재앙을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자기 졸개인 귀신들을 통해서 모든 범죄를 일으키게 만듭니다.

 

유명한 신유 능력자인 콜드웰 목사님이 쓴「거짓 영들의 정체」라는 책에서 보면 마귀는 오늘날 우리 가정들과 교회들에게 침범하려고 갖은 궤계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부부싸움, 별거나 이혼, 자녀의 가출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마귀가 역사함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점점 악해져만 가는 것도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을 줄 알고 갖은 방법을 다해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탄 마귀는 일반 사회뿐 아니라, 교회까지 침투하여 역사 하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이나 말씀을 듣고 연구하게 하는 생활이나 충성에 게을리 하도록 만드는 등, 신앙생활에 은혜가 떨어지게 만드는 것도 알고 보면 사탄 마귀의 짓인 것입니다.

 

교인 간에 불평을 일으키게 만들고 교회를 어지럽히거나 부흥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도 마귀의 짓인 것입니다. 어느 분은 말하기를 마귀는 한 번도 우리의 예배에 빠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로 하여금 졸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들고 불신이나 불평하게 만들고 충성하는 자에게 왜인지 피곤하게 만들어 충성을 쉬게 하는 역할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거룩한 예배 중에 사탄 마귀가 감히 틈탈 수 있을까요? 그것이 가능할까요? 여러분이여, 40일 동안 장기금식하시는 예수님에게도 마귀는 세 번이나 와서 속삭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막1:12-13에서는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시중들더라.”라 말씀했습니다.

 

옳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믿는 가정이나 교회에 끝없이 드나들면서 유혹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연히 오해하게 만들고 혹은 화를 내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제직회나 당회, 혹은 각 기관 모임에도 참석하면서 틈만 있으면 들어와서 시험 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2절에서도 강조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때로 남편이나 아내, 자녀의 실수나 교인들 간에 시험이 들거든 육적인 눈으로 판단함으로 결코 식구들이나 교인들을 미워하지 말아야 됩니다. 영적인 눈을 통해서 사탄 마귀 때문에 생긴 줄 아시고 그 마귀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자, 그러면 마귀를 대적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방법은 경건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본문 11절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먼저 무장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경건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공격할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경건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마귀가 틈을 탈래야 탈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경건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모습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4-16절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라 했습니다.

 

(1)진리의 띠를 띠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갑옷을 입어도 허리띠를 매지 않으면 갑옷은 거추장스럽습니다. 허리띠를 매야 하는데 진리를 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살면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심으로 마귀가 감히 틈을 탈수가 없습니다.

 

(2)하나님의 의의 흉배를 부쳐야 합니다.

흉배는 가슴을 보호하는 무장입니다. 가슴은 너무나 귀한 곳입니다. 심장부요, 중심인 마음이 있는 곳입니다. 그 심장과 마음은 언제나 의를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 마귀는 감히 침범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불의한 생각이나 의롭지 못한 계획을 가지게 되면 마귀는 그 틈을 이용해서 우리 속에 침입함으로 자기의 뜻대로 죄의 노예가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박금출 목사님이 쓴 「실화사전」이라는 책에서 보면 이런 예화가 나옵니다.

어떤 교회 자매님이 목사님을 찾아와 하소연하기를 “저는 착실한 아내요,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와서 댄스홀에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안 간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으나 계속 조르기를 구경이나 한번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거절했어야 함에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따라간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예수님을 잘 믿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자만심이 문제였습니다. 한번 구경 가고 나니, 어느 날 또 가고, 세 번째 갔을 때는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댄스에 완전히 미쳐서 길을 가다가도 음악소리만 들리면 미칠 지경이니 어쩌면 좋습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아니 됩니다. 마귀는 우리를 미혹하기 위해서 먼저 우리 마음속에 불의한 생각을 넣어 주시는 것이니 단호하게 뽑아 버리어야 합니다.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의만 마음에 품어야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평안의 복음의 신을 심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신발을 안 신으면 그것처럼 괴로운 것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신발, 좋은 군화를 신으면 자갈밭이든, 가시밭길이든 두렵지 않고 평안히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길에는 마음의 평안이 있습니다. 가시밭길이든, 풍랑이든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마음의 평안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때 어느 때는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넘치는 평안과 기쁨은 가둘 수가 없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찬송을 부를 때에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압송될 대에 큰 풍랑을 만날 때에도 큰 평안을 주시므로 오히려 그와 함께 276명이 사는 기적을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쓴 편지에는 평안과 감사의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불평불만은 마귀가 따라오나 평안과 감사는 향기와 같아서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믿음의 방패를 가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시험의 화전(火箭)을 능히 막는 것은 믿음의 방패를 가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어떠한 풍파와 시험, 어떠한 반대와 핍박이 오더라도 하나님의 능력만 담대히 믿고 나갈 때는 사탄이 쏘는 불화살은 무력해지고 말 것입니다. 요셉이나 모르드개나 욥이나 다니엘은 큰 시험이 닥쳐올 때라도 선하시고 인자하사 우리를 도우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담대히 나갈 때 사탄의 어떠한 시험도 능히 이기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5)구원의 투구를 쓰는 것입니다.

17절 상반절에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몸 중에 가장 귀한 곳은 머리입니다. 투구는 우리의 머리를 보호하는 무장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빼앗기 위해 자꾸 의심을 넣어 줍니다. 어느 때는 잘못된 신학(神學)으로 성경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어느 때는 구원의 확신을 뺏으려고 합니다. ‘네가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 너같이 못된 성질, 죄를 밥 먹듯 짓는 존재가 구원을 받는다니, 말이 되는가?’라고 조롱합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담대히 고백하기를 ‘나의 공로로는 결코 구원받지 못하나 예수님의 공로로 가는 것이니, 나는 그것을 믿노라.’고 할 때 마귀는 감히 우리의 생각 속에 의심을 넣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진리와 의, 평안과 믿음, 그리고 구원의 확신으로 이루어진 전신갑주를 입고 경건의 길을 가십시오. 그 때에 마귀가 감히 틈타지 못하는 줄 믿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두 번째 방법은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는 것입니다.

17절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앞에 열거한 전신갑주는 방어용 무기일 뿐입니다. 이제는 전신갑주를 입은 후에 공격용 무기를 소유해야 합니다. 때로 마귀는 가면과 위장을 하고 쳐들어옵니다. 그리고 와서 속삭이며 속삭입니다. 꾀어내어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신하여 깨어서 성령과 악령의 역사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달콤한 말씀과 나타나는 기적만 믿고 따라 가다는 마귀의 올무에 빠지기 쉽습니다.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룩한 영인가, 악한 영인가 분별할 수 있습니까? 그 시험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취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악한 영, 거짓된 영은 말씀의 빛에 노출되면 약해지고 맙니다. 그리고 말씀에 비취어 악한 영임을 발견될 때에는 지체 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대적함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그 검으로 마귀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가 세 번 시험할 때에 세 번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떠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말씀에 비취어서 그 문제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분명히 마귀로부터 오는 미혹이나 시험이라면 과감하게 말씀으로 나타내십시오.

 

더 나가서는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이름’이니 그 이름으로 담대히 물리치라. 그러면 마귀는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칠 것이 분명합니다. 좀 전에 말씀 드린 콜드웰 목사님이 미국 동부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에 어느 집사님이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나는 교회 집사요, 교회학교 교사인데 이제는 사표를 내야겠습니다. 그 이유는 나는 거짓말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르는 사이에도 너무나 많이 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큰 파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아내나 자녀가 믿지 않을 정도이고 이혼 직전에 와 있습니다. 어쩌면 좋겠습니까?”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기도하자 해 놓고 그 사람 속에 역사 하는 사탄을 향해 명하기를 “이 사람 속에 와서 거짓말로 역사 하는 사탄아, 예수님의 이름을 명하노니 당장에 떠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에 그 집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와 고백하기를 “목사님, 이제는 너무나 자유함을 느낍니다. 이제는 거짓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행복된 가정이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의 문제를 육신의 눈으로 판단하지 마시고 영적인 눈, 말씀의 눈에 비취어 보아서 분명히 사탄의 장난이 분명하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명하므로 사탄을 쫓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의 방법은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18-19절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깨어서 기도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아무리 전신 갑주를 입고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깨어서 지키지 못한다면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삼국지에 보면 천하장수 장비가 술에 만취되어 잘 때에 앙심을 먹은 어느 장수가 와서 목을 베니까 꼼짝없이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아무리 도둑이 강심장이라도 어린 아기가 눈을 뜨고 있으면 두려워서 죽이고야 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깨어 있는 사람, 기도로 깨어 있는 가정, 기도로 깨어 있는 교회는 마귀가 감히 틈타지 못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2)깨어서 기도할 이유는 우리가 아무리 능력이 많아도 우리 힘으로나 지혜로는 사탄 마귀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력하신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길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무전기와 같습니다. 비록 소수의 부대라도 무전기만 있으면 강력한 후원군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어쩌다 포위를 당하여 심각한 위험에 직면했을지라도 기도라는 무전기를 통해서 원군은 물론이고 포 후원 사격과 비행기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죠지 워싱톤 대통령의 비서였던 로버트 루이스 씨는 증언하기를 “대통령이 아침과 저녁 두 번씩 서재에 들어가 성경을 펴놓고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언제나 목격하였다.”고 했습니다.

 

또한 워싱톤 장군의 군대는 벨리 포지 지역에서 가장 큰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마을의 농부들은 워싱톤 장군이 반드시 성공할 것을 믿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추위와 식량난과 역경 속에서도 워싱톤 장군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습을 농부들은 날마다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워싱톤은 가장 큰 위기, 가장 큰 절망 가운데 오직 말씀과 기도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므로 엄청난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오늘도 악한 마귀는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를 들락거리며 우리의 식구, 우리의 자녀, 우리의 교우들을 유괴하려고 끝없이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런 암울한 기운이 가득찬 시기가 호기인 줄 알고 최대의 공격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경건의 전신갑주를 입고, 말씀의 검과 기도를 통해서 그 마귀를 과감히 대적함으로 언제나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