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
성경을 읽을 때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실제적인 제안을 드립니다.
1. 규칙적으로 읽는다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보통 하루에 세끼를 먹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자주 먹을까요? 우리는 이런 말을 늘 듣곤 합니다. "오늘 너무 바빠서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아마도 당신은 매일 성경을 읽기에는 시간이 없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위대한 복음전도자인 무디에게 이같은 변명을 늘어놓았더니 무디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친구여, 당신이 매일 성경을 읽지 못할 만큼 바쁘다면 전능하신 하느님보다 더 바쁜 셈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정해 놓으셨지요. 그러니 몇 가지 다른 일을 뒤로하고서라도 성경 읽을 시간을 확보해 두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기 위해 하루 중 특정한 시간을 할애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침을 가장 좋은 시간대로 꼽는데, 이는 하루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은 저녁시간이나 하루 중 조용한 시간에 성경을 읽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성경 읽을 시간을 갖습니다. 어쨌든 각자에게 가장 알맞은 시간대를 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천천히 읽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 얼마가 당신의 마음에 들어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 장을 읽고서 그 내용이 무엇인지 잊어버리는 것보다 한 절을 읽어도 제대로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즉, 읽는 양이 조금이더라도 이해하면서 읽는 것이 서둘러 읽는 것보다 좋다는 것입니다. 1코린14,19의 말씀을 준 사도 바울 역시 수천 단어를 읽고도 아무런 얻는 것이 없는 것보다 다섯 마디를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며 보내는 35분의 시간보다 느긋하게 보내는 5분의 짧은 시간에 주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체계적으로 읽는다
성경을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 지 막막해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론 "아무 데나 걸리는 대로 읽는"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주님, 오늘 읽어야 할 곳을 보여주세요" 그리고 나서 마음대로 성경을 펼치고서 아무 데나 읽기 시작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이런 방법을 통해 역사하실 수도 있지만 대개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 "아무 데나 읽는" 방법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한 가지 예화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이 방법을 사용한 한 사람의 얘기입니다. 이 사람이 성경을 펼쳐들자 먼저 잡힌 곳은 마태27,5인데, 여기에는 가리옷 유다가 "떠나가서 목을 매단" 사건이 있었습니다. 과연 이것을 자기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은 이 남자는 성경을 닫고 다시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누가10,37에는 예수님께서 "너도 가서 그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에 그는 매우 당황해 했습니다. 어떻게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다시 성경을 열어보았습니다. 이제 그의 손가락은 막 떨립니다. 그런데 이번에 펼친 요한13,27 에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네가 하려는 것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방법은 독자로 하여금 문맥과 전혀 상관없이 성경을 읽게 만들므로 성경을 이상하게 이해하도록 합니다.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보통 처음부터 읽기 시작하여 결말에 이릅니다. 저자가 그런 순서로 썼기에 읽을 때도 그렇게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편지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이라고 예외가 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쓴 사도 바오로는 처음에 13장을 쓰고 그 다음 8장을 쓰고 하는 순으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장부터 시작하여 2장, 3장 차례대로 기록하였습니다. 기록이 이렇다면 읽는 것도 이런 순으로 이루어져야하지 않을까요?
성경 통독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많은 믿는 이들이 성경 통독에서 오는 커다란 축복을 누렸습니다. 성경 통독을 돕기 위해 '성경 읽기표'라는 것이 나와있습니다. 하루에 30분씩 1년이면 대부분 성경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 읽기표'는 하루에 얼마를 읽어야 할 지 보여줍니다.
3. 유심히 읽는다.
단어 하나 하나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냥 슬쩍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중요한 것을 찾고 있는 탐정처럼 되십시오. 종종 우리는 눈앞에 있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놓쳐버리곤 합니다. 그리고 눈은 성경에 가 있지만 마음은 딴 곳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늘 이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면 어떨까요? "방금 내가 뭘 읽었지?"
4. 탐구정신을 갖고 읽는다
성경을 읽을 때 늘 이같은 질문을 품고 계십시오. 누구의 기록(말)인가? 대상은 누구인가? 주제는 무엇인가? 각 대명사("그" "그녀" "그들" "그것" "너희"등)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외에도 구절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순종해야할 명령이 있는가?
믿음을 요하는 약속이 있는가?
따를 만한 모범이 있는가?
피해야할 죄가 있는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
사람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가?
하나님께 감사할 제목은 없는가?
이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짐으로 말씀이 실제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마티슨(J.G. Mathieson)은 주일마다 복음의 말씀을 듣는 한 소년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에 그 소년이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자기 방에 가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머니는 위층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고 자기 아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너무 조용하다 싶어 어머니는 아이가 무슨 엉뚱한 장난을 치고 있지 않나 해서 소년을 불렀습니다. "뭐하고 있니?" 그러나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나자로를 살리는 장면을 보고 있어요!"
소년은 요한복음 11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읽기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마치 자신이 그 기적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꼈던 것입니다. 말씀이 모두 그에게는 실제와 같았습니다.
5.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약혼한 몸으로 그 약혼자는 지금 수마일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약혼자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는 순간 그녀가 어떻게 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우편함에 편지가 도착하자마자 얼른 뜯어 열어봅니다. 그리고 단 숨에 편지를 읽어 내려갑니다. 그리고 또 읽습니다. 이번엔 아주 천천히. 단어 하나 하나를 떠올리며, 그가 쓴 문장들을 되씹어 봅니다. "그이가 왜 이 말을 썼을까?" 편지를 다 읽은 다음에도 그녀는 편지의 대부분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온 종일 그 편지를 생각할 것입니다.
성경도 이같이 읽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가 아닙니까?
6.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당신을 가르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읽기 전에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시편 119,18은 그런 기도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것은 지각을 주시는 분이 바로 주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2 디모테오 2,7).
성경을 읽는 것은 영적인 연습의 시작입니다. 이제 나가서 읽은 진리대로 실천하는 것만이 남았습니다. 챕만(J. Wilbur Chapman)은 하느님의 말씀에서 가장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을 몇 가지로 요약해 놓았습니다.
꾸준히 공부하라 -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익힌 다음 하루를 시작하라.
마음판에 새기도록 기도하라 - 공부한 말씀이 당신의 일부가 되기 전에는 성경을 놓지 말라
써놓아라 -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내용을 성경의 여백이나 공책에 적으라.
실천하라 - 아침마다 받은 진리에 따라 살라.
전하라 -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지런히 말해주어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음으로 늘 당신의 마음에 기쁨이 넘쳐나길 기도합니다!
웨슬레가 권면한 성경을 읽을 때 갖을 태도
성경을 읽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일을 이해한는 방법이다. 아침저녁으로 명상하라. 그리하면 최선의 지식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 곧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식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끌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먼저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이 결과로서 여러분은 성경에 기록된 거룩한 모든 성품을 즐겁게 체험하면서 여러분을 거룩해 지라고 부르신 그대로 여러분도 모든 언어와 행실에 있어서 거룩해질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응답이 되기를 바란다면 성경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읽으라고 권면하고 싶다.
1) 가능하면 성경을 상고하기 위하여 적은 시간이나마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따로 정하라
2) 시간이 허락하면 매번 구약에서 한 장 그리고 신약에서 한 장을 읽으라. 시간이 허락하지 않으면 한 장만 읽든지 또는 일부만 읽으라
3) 성경를 읽을 대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대로 행하겠다는 결심 그 한 가지 관심을 기지고 읽도록 하라. 또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하여야 한다
4) 항상 신앙의 유추와 성경의 기본적인 교리들 곧 원죄, 이신득의, 중생, 성결 같은 교리들 간의 연결과 조화에 유의하라
5)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기 전에 진지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라. 성경는 성경를 주신 성령을 통해서 만이 이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 읽기를 마친 때에도 기도하라. 이는 우리가 읽은 것들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기 위해서 이다.
6) 또한 읽는 동안에도 가끔 멈추어 읽는 말씀에 비추어 자기 자신의 마음과 생활에 관하여 검토하여 본다면 유익이 될 것이다. 읽는 가운데 빛을 받으면 최대한 적용하고, 결심한 순간부터 즉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됨을 알 것이다 //
매일 성경 읽는 10가지 방법
1. 분위기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찾자 2.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도하자.(시119:18) 3. 오늘의 본문을 주의하여 천천히 읽자. 4. 읽는 말씀을 깊이 명상해 보자. 5.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씀하는가? 6. 하나님(아버지,예수님,성령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설명하는가? 7. 내게는 어떤 명령과 약속과 경고와 해야한 일과 피해야 할 죄를 말씀하는가? 8. 매주 요긴한 성구 한 절씩 암송하자. 9. 주의 말씀에서 은혜를 감사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각오를 새롭게 하면서 다시 기도하자 10. 성경을 읽을 때 빨간 색연필로 줄을 그으며 읽자. |
용어의 혼용과 구별
성경해석학에는 주석(註釋), 석의(釋義), 주해(註解), 주경(註經), 강해(講解), 해석(解釋), 해석학(解釋學) 등의 용어들이 사용되는데, 이들 용어들은 얼핏 보면 모두 비슷한 말 같아서 많은 경우에 혼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용어들 간에도 서로를 구별할 수 있는 미묘한 개념 차이는 존재하기 때문에 각각의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여 용어의 혼동을 피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해석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관련된 용어들의 개념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용어들이 나타내는 개념은 무엇이며 서로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해석학, 해석
성경해석과 관련된 용어들의 상관 관계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주석에서부터 석의, 주해, 강해 그리고 해석, 해석학의 순서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해석학은 Hermeneutics 또는 Biblical Interpretation 이라고 하며 해석을 다루는 학문으로서 가장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앞에서 말했듯이 해석과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해석은 영어로 Interpretation이라고 하며 광의적으로 해석에 관한 모든 것들을 말하므로 다시 주해와 강해로 구분한다. 주해(註解)가 본문의 뜻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면 강해(講解)는 본문을 적용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는데, 이들을 나누는 것은 앞에서 성경해석의 목적이 나눠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해석의 개념은 학문적으로 정의할 때와 일반적인 의미에서 다르게 사용되는 것 같다. 학문적인 정의로는 위에서 말한 대로 해석이란 주해와 강해를 포함한 포괄적인 개념이 되지만, 일반적으로 해석이라고 할 때는 적용(Application)에 대조되는 개념으로서 단순히 뜻을 아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즉,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주해를 가리키는 협의적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해석이란 용의에 대해서는 광의적인 개념과 협의적인 개념이 혼용되고 있으나,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사용되더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이 책에서도 어떤 경우에는 일반적인 용어 사용법을 따라서 주해를 해석이라는 말로 표현할 때가 있음을 미리 말해둔다.
주해
주해는 주경(註經)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Exegesis 라고 하는데 어원은 '길을 안내하다, 설명하다, 나타내다'의 뜻을 가진 헬라어 엑세게오마이( )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From의 뜻의 에크( ) 전치사와 인도하다라는 뜻의 헤게오마이( ) 동사가 합성된 말인데, ~로부터 인도함을 받는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만일 성경을 해석할 때 자기 사상을 개입시키면 주해가 아닌 외삽(外揷)이 된다. 외삽은 Eisegesis라고 하는데 헬라어 접두어인 에이스( )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생각을 가지고 성경 본문 속으로(Into)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주해는 말뜻에서 보듯이 Into가 아닌 From의 정신으로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주해의 원리는 자신의 경험이나 가치관, 철학, 신조, 교리 등 자신의 잣대를 가지고 성경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안 되며, 오직 성경에서 비춰져 나오는 빛을 겸허하게 받겠다는 정신으로 성경을 대하여야만 한다는 말이다.
주석, 석의
주해는 다시 세분하면 주석과 석의로 나뉘어 진다. 주석과 석의라는 용어는 서로 많이 혼용되지만 실제로 의미상에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말이다. 이들은 범위에 따라 개념이 약간 다른데, 주석이 일반적으로 석의라는 말보다 좁은 의미로 쓰인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주석(註釋)이란 영어로는 Explanation이라고 하며 무엇에 대하여 설명한다는 뜻이다. 곧 주석은 어느 일정 본문 내에서 단락 내지는 어느 일부 구절들을 택하여 뜻풀이를 하는 진행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즉, 본문 전체가 아닌 한 구절씩을 어귀의 뜻풀이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본문 전체를 해석하는 석의보다 좁은 의미를 가지는 주해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반면에 석의(釋義)라는 용어는 Commentary라고 하며 주석을 통하여 구절들의 뜻풀이를 모아서 본문 전체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석의는 주해와 비슷한 개념으로서 두 가지 용어는 흔히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강해가 말씀을 적용하는 측면이라면 석의나 주해는 성경 본문의 최초의 의미를 알아내려는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해와 주석과 석의의 관계를 요약하면 주해는 강해에 대조되는 큰 개념으로 볼 수 있고, 주해의 세부내용은 다시 어귀 해석의 주석과 본문 해석의 석의라는 개념으로 구분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강해
다음, 강해(講解)란 영어로는 Exposition인데, 뜻풀이에 그치지 않고 실제의 삶에 적용하도록 설득시키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즉, 강해 설교(Expository Message)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주해가 본문이 최초 의미하였던 것을 드러내는데 주력함으로써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역사적 이해(Historical Particularity)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강해는 본문의 최초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해서 그 본문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곧 강해는 본문과 나와의 관련성(Contemporary Relevance)을 발견하고 현재 나에게 어떤 교훈이 있는지를 찾아내어 적용시키는 실존적 이해를 다룬다.
주해와 강해의 관계
이상에서 말할 것은 결국 주해도 해석이고 강해도 해석이라는 뜻이다. 주해는 단순히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자 하는 협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고, 강해는 주해를 바탕으로 실제적으로 적용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광의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주해가 성경 말씀을 가능하면 성경이 기록되어진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입장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면, 강해는 역사를 초월하여 모든 성도의 현재적 삶의 문제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주해를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연구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으며, 강해는 그러한 주해를 바탕으로 삶의 증거들과 연관지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해석은 이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해와 실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해를 모두 포함하여야 완벽한 해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평형을 잃게 되며, 건전한 해석을 기대하기 힘들게 되기 때문이다. 만일 주해 쪽으로 기울게 되면 본문의 뜻을 아는데 그치고 실천이 약한 '지식적 그리스도인'을 양산할 수 있고, 강해 쪽으로 기울게 되면 본문의 의도를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감정에 따라 신앙의 기복이 심한 '감각적 그리스도인'이 많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해석은 주해와 강해를 병행하면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경해석의 필요성과 목적
성경해석의 필요성
해석이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성경해석은 당연히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은 성경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곧 성경을 읽는 자는 성경의 해석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읽기 전에 올바른 성경해석방법부터 아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법대로 성경을 해석하면서 그냥 무턱대고 성경을 읽기만 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의 그러한 성경 읽기는 올바르고 건전한 해석방법을 통하지 않고서 자신의 잣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므로 사실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성경의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이 왜곡되기도 하며,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보다는 인간의 생각이 더 많이 지배하게 되는 상황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단(異端)들도 한결같이 성경을 인용하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것은 똑같은 성경을 두고서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만일 그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여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계속해서 이단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밖의 모든 잘못된 신앙도 잘못된 해석이나 잘못된 해석에 입각한 잘못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올바른 성경해석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성경해석이 필요한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언어적인 차이(Language gap)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언어에는 문화와 역사, 사상과 관습 등이 담겨 있으므로 성경의 기록 당시와 독자들 간에는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하여 엄연한 한계가 있는 것이다. 또 많은 사본들과 번역본이 있기 때문에 어떤 본문을 택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더욱 어려움을 주고 있다.
다음은 시간적, 공간적 차이(Chronological and Regional gap)로서 과거의 문서인 성경과 우리 사이에는 과거와 현재라고 하는 시간적 차이가 있으며, 성경의 배경이 된 팔레스타인과 근동 지역 그리고 헬라 반도와 로마 등에 대하여 생소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다음은 의사소통의 차이(Communication gap)인데 성경 기록자들과 우리들간에 지식과 경험이나 문화와 상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본문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끝으로 표현의 차이(Expression!al gap)가 있다. 성경은 많은 문학 장르를 포함하고 또 그 내용과 표현법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들을 잘 알지 못함으로써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이외에도 성경을 이해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보편적으로 위에 제시한 것들 때문에 성경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성경해석의 역할과 목적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한 성경해석의 역할은 마치 우리가 모르는 길을 갈 때 안내자가 필요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만일 누가 모르는 어떤 길을 처음 가게 되었다고 할 때 그 길에 관하여 전혀 지리를 모르고 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가야 한다면 가는데 실패하거나 아니면 가긴 가더라도 꽤 고생을 하면서 시간과 정력을 무척 많이 낭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미리 자세히 물어보고 또 지도를 보면서 간다면 훨씬 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성경해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길을 가는데 안내자가 필요하듯이 성경을 읽을 때도 그 뜻을 잘 알 수 있도록 안내하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성경해석은 성경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잘 깨닫도록 이끌어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해석이라는 안내자의 도움이 필요하게 된 구체적 이유로는 성경이 씌어진 시점과 읽는 자들 간에 엄연한 시간적 격차가 있으며 또 언어적, 문화적, 지리적, 종교적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해석의 목적은 이러한 시간적․공간적 격차를 좁힐 수 있도록 안내함으로써 본문이 의미하는 바를 최대한 정확하게 드러내어 읽는 자로 하여금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도달하도록 하는 동시에, 깨달은 것을 자신의 삶에 효과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인생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도록 만드는데 있는 것이다. 본서에서는 앞으로 이러한 두 가지 방향에서 성경해석에 관한 이론과 실제적인 방법들에 대하여 설명하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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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의 정의와 필요성
세상 책과 다른 구별된 책인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는 세상 책을 읽는 방법만 가지고는 안 될 것이다. 성경해석에는 독특한 무엇이 있는데, 그것을 파악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성경해석이 무엇인지 먼저 그 개념을 정확하게 하고 나서, 성경해석이 왜 필요한지와 혼용되고 있는 성경해석에 관한 용어들에 대하여 정확한 의미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Ⅰ. 성경해석이란 무엇인가?
해석과 해석학의 뜻
성경해석(Biblical Interpretation)을 말하기 전에 '해석'이란 용어의 뜻부터 살펴보자. 해석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뜻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이라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해석이란 일종의 행동으로 볼 수 있으며 자동적으로 '해석학'이라는 학문과 결부되어지게 된다.
따라서 해석학(Hermeneutics)이란 해석과 관련된 이론과 방법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석학이라는 뜻의 영어 Hermeneutics는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말과 글의 신인 헤르메스(Hermes)에서 연유하였다. 로마 신화에서 머큐리(Mercury)에 해당하는 헤르메스는 다른 신들의 사자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므로 신의 뜻을 해석하여 전하는 일을 하였기 때문에 해석이라는 뜻으로 발전한 것 같다.
해석학의 여러 분야
해석과 해석학은 성경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대의 문헌들은 현대인들에게 문화적, 역사적으로 생소한 내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해석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으며, 법률이나 철학, 과학 서적 등을 전문가의 해석 없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음악이나 미술 등의 예술 방면에서도 해석이 필요한데 음악해석, 미술해석 등의 분야가 바로 그런 것들이다. 뿐만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덱거는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존재를 파악해야한다는 의미에서 '존재의 해석'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는데, 이와 같이 해석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해석의 특수성(이해와 적용의 양면성)
이상에서 '성경해석'은 성경 본문의 뜻을 쉽게 풀어서 이해시키는 것이며, 이를 학문적으로 표현하면 '성경해석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해석에 있어서는 단순하게 뜻을 아는 것으로써 해석이 끝났다고 말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성경이 세상의 다른 책들과는 구별되는 신앙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성경 역시 인간의 글자로 내용이 표현된 점은 다른 책과 다를 것이 없으나, 그 안에 포함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지식이 아닌 '계시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었으므로 성경은 이해과정으로 그치지 않게 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였다면 나의 삶에 어떤 교훈이 있는지를 깨달아야만 할 것이다.
성경해석의 특수성(성령의 안내)
또한 성경해석은 통상적인 해석학의 지식으로써만 해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성경에는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초월한 많은 내용들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물질과 현상계 속에서 제한적으로 살고 있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초월적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해석에 관한 이론과 방법을 알아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동시에 성경의 원 저자이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가능하다. 이를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이라고 부르는데 일종의 성령께서 주시는 독해력(Comprehension)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성경을 읽을 수는 있지만 해석을 하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이 일반적인 독해의 기술은 가질 수 있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독해력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가 아닌 자가 성경을 읽을 때 절대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으므로 읽어도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경의 기적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로 이성과 합리주의 정신에 의존하여 성경을 읽고 이해한 것들은 진정한 해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한다는 말을 직통 계시와 같은 어떤 신비적인 현상에 의존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성령의 안내란 오히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지혜와 인격을 건전하게 사용하여 말씀을 이해하되 그러한 방법들에 과오가 없도록 기도하면서 지혜가 부족하지 않도록 위로부터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경해석 원리와 성령의 인도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즉, 성경을 이해하려면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대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것과 여러 가지 연구된 건전한 이론과 방법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동시에 요구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실상 성령의 안내는 이해하는 과정에서보다 삶에 적용하는 과정에 더 많이 요청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경해석의 건전하고 올바른 방법들을 통하여 이해한 말씀을 삶에 적용하기 위하여 묵상할 때 하나님께 기도로써 교통하면서 뜻을 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해석학에서 말하는 건전한 해석방법이란 다른 분야의 해석방법과는 다른 요소들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해석의 정의
성경해석에 있어서 '해석'과 '해석학'이란 용어는 구태여 구별하지 않고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영어에서도 Hermeneutics와 Interpretation이라는 말이 서로 간에 구별 없이 사용되어지며, 비슷한 이유로 성경해석과 성경해석학에 대해서도 Hermeneutics와 Biblical Interpretation 어느 것으로 표기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Hermeneutics만으로 성경해석학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 까닭은 성경해석은 모든 해석의 왕도이며, 성경해석학이야말로 해석에 관한 모든 학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전통을 가진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개념을 구분하자면 '해석학'은 학문이며 '해석'은 하나의 행동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성경해석학(Hermeneutics 또는 Biblical Interpretation)은 성경을 대상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본문의 뜻을 쉽게 풀어 이해시킴과 동시에 본문 이해를 바탕으로 삶에 적용케 하는데 따른 여러 가지 원리와 실제적 방법들에 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경해석학은 학문적으로는 주경 신학(Exegetical Theology)의 한 기초 과목으로 되어 있으나, 어떤 신학이라도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은 것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은 모든 신학을 하기 위한 기본 준비로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성경해석(Interpretation)이란 성경해석학에서 다루는 내용으로서 용어의 정의로는 성경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이해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성경 본문의 뜻을 정확하게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는 자가 자신이 읽고 이해한 본문을 자신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시키기 위한 원리와 방법들까지 총괄하는 것이다.
사본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성경은 원본(Original)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제까지 보존되어진 사본을 비교 분석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즉, 이는 본문비평 연구의 결과에서 얻어진 산출물이라고 하겠다. 사실 사본과 번역본에 대한 연구는 본문비평에 속하는 것이다. 본문비평에 대해서는 뒤에서 성경비평에서 좀 더 다루기로 한다.
사본(Manuscript)이란 원본의 보존을 위해 필사된 것이지만 원본이 사라진 후엔 이전의 사본을 필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원본이 전혀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지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사본의 재질로는 파피루스(Papyrus)와 양피지(Parchment)의 두 종류가 사용되었는데, 형태별로는 낱장을 모아놓은 단편들(Piece)과 책처럼 편철한 코덱스(Codex), 그리고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잇대어 만든 두루마리(Scroll) 형태의 사본들이 있다.
사본은 구약은 서기관들에 의해 필사되어왔고, 신약은 교부들과 수도사들에 의해 필사되어왔다. 신?구약을 막론하고 사본의 필사자들은 누락이나 오기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성경을 베끼긴 했지만 방대한 분량을 일일이 손으로 쓰다보니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본 필사 과정에서 나타난 인위적 오류는 종류가 다양하여 중복, 탈락, 도치, 융합, 분리, 오사(誤寫), 오독(誤讀)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 때문에 때로는 성경 안에 서로 모순되는 표현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구약의 경우는 모음이 개발되기 전에 자음만으로 기록할 때 오류가 많았을 것이고, 신약의 경우는 띄어쓰기가 없던 대문자 사본에서 오류가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필사본의 경우 전적으로 일치하는 사본이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인간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은 어쩔 수 없는 실수와 더불어 필사자의 신앙과 신학적 배경에 따라 의도적으로 부분적인 첨가와 삭제의 관행이 있었음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 발견된 사본들의 보존 상태도 문제가 된다. 사본의 재질은 보통 양피지와 파피루스였으며 대부분 많은 부분들이 훼손된 채 발견되므로 사본 중에서 온전하게 참고할 만한 것은 매우 드물다고 하겠다. 이렇게 사본이 희귀하고 보존성에 의문이 많게 된데다가 수많은 역본까지 등장하게 되었으므로 성경 원본이 가르친 진정한 뜻은 사라지고 말 위험에 처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은 상존하였다.
구약 사본
구약 사본은 파피루스 형태가 드물고 대부분 양피지에 기록한 것들이 많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사본 수는 약 1,000여개 정도로 추정된다. 구약 사본의 경우 고대에 벌써 사본이 안고 있는 한계와 많은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AD 2세기경의 랍비 아키바는 당시에 산재한 사본들을 집대성하고 정리하여 정통적인 히브리어 성경을 제정하고자 주창하였다. 이를 계기로 히브리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많은 구약 주석방법이 개발되었으며, 히브리어 성경의 본문 내용을 구분하기 위한 절(節)의 구분과 각종 부호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노력은 계속되어 마침내 6-7세기경에 맛소라 사본이 만들어짐으로써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맛소라 사본)
맛소라 사본(Codex Massora)은 전통이라는 뜻을 가진 맛소라(Massorah) 학자들에 의해 구약 성경을 히브리어로 정확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히브리어는 원래 별도의 모음이 없이 단어를 이루는 글자 자체의 고유한 소리를 일일이 기억하여 발음하였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포로생활로 인하여 세계 각지로 흩어지면서 팔레스타인에서조차 히브리어가 그들의 생활 언어로 사용되지 않음으로써 히브리어 발음이 유실될 우려가 있게 되자, 맛소라 학자들은 발음의 보존을 위하여 새롭게 히브리어의 모음을 고안하였는데 이를 맛소라 모음이라고 한다.
맛소라 사본은 모든 자음에다 새롭게 고안된 모음을 붙여서 표기함으로써 정확한 발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랍비들이 성경을 필사함에 있어서 다시는 개인적 오류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글자 수와 글자 배열까지 치밀하게 규정한 표준 필사법을 제정하여 그 기준에 미달한 성경은 여지없이 폐기하는 엄격함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맛소라 사본이 만들어지고 나서부터 히브리어 성경은 비교적 정확하게 보존되어져 갔다. 그러나 맛소라 학자들은 자신들이 당시에 입수 가능한 모든 사본을 참조하여 그들 나름의 본문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역과 가문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맛소라 사본은 지역에 따라 바벨론 맛소라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티베리아 맛소라의 두 종류로 나뉜다. 바벨론 맛소라는 근거 사본의 취약 때문에 가치가 적으며 티베리아 맛소라가 중요하다. 티베리아 맛소라는 다시 가문에 따라 벤 납달리 사본과 벤 아쉐르 사본으로 나뉘어지며, 벤 아쉐르 가문의 권위가 더 인정받고 있다. 벤 아쉐르 사본 중에서 9세기경 모세 벤 아쉐르가 필사한 레닌그라드 박물관 소장의 사본(Codex of Moses Ben Asher 또는 Codex Leningradensis)이 유명한데, 이는 전문이 보존된 상태였다.
(사해 사본)
현존하는 히브리어 사본 중에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면서도 가장 오래된 사본이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이다. 사해 사본은 쿰란 사본(Codex Qumran)이라고도 하는데, 1947년 사해 근처 쿰란의 여러 동굴에서 양치는 목동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 사해 사본은 BC 2-1세기경 로마의 예루살렘 침략 때 무혈 저항하던 쿰란 종단에 속한 유대인들이 동굴에 은거하면서 당시의 성경을 필사한 것들인데, 외경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한편 사해에서 발견된 성경과 맛소라 사본을 대조해 본 결과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곧 맛소라 사본의 신뢰성을 확인시켜준 셈이다.
(기타 사본)
그밖에 유명한 사본으로는 이집트에서 발견된 오경의 일부만이 보존된 나쉬 파피루스 사본, AD 9세기에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자음만으로 되어있는 대영박물관 사본, 또 현재 히브리 대학에서 발간중인 HUB 히브리어성경의 모체가 되고 있는 알렙포 사본(레닌그라드 사본 이전 것으로 추정) 등이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히브리어 사본 중에서 주전에 필사된 사본은 사해 사본 말고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맛소라 인쇄본)
1450년 구텐베르크(Gutenberg)의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에는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으며, 인쇄된 맛소라 사본이 탄생하게 되었다. 제일 처음 히브리어성경이 인쇄된 것은 1477년에 시편이었다. 곧 이어 1488년에 구약 전문이 인쇄되었는데, 이것이 히브리어 인쇄본의 효시이다. 이후에 몇몇 히브리어성경이 계속해서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서 1524년에 야곱 벤 하임이라는 유대인에 의하여 편집되고 봄베르그가 출판 제작한 제2 랍비 성경(Bombergiana)이 가장 유명하다. 벤 하임의 제2 랍비 성경은 기존의 맛소라 사본들을 최대한 참고하여 편집한 것으로 20세기까지 세계 모든 구약성경의 근간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사본)
독일의 신학자 키텔은 1906년 벤 하임의 제2 랍비 성경을 토대로 BHK(Biblia Hebraica Kittel)라고 부르는 히브리어 성경 두 권(BHK¹과 BHK²)을 차례로 펴냈었다. 그런데 키텔은 1937년에 제 3판(BHK³)을 내면서 본문을 벤 하임 인쇄본 대신 레닌그라드 사본을 채택하였다.
그것은 벤 하임 인쇄본이 15세기에 편집된 작품임에 비하여, 레닌그라드 사본은 9세기경의 권위 있는 랍비인 모세 벤 아쉐르가 직접 필사한 것이었고, 또 전문이 훼손되지 않은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1977년에 독일성서공회는 BHK³의 오기와 난외에 맛소라 주기를 보충하여 BHS(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발간하였으며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이것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
신약 사본
신약 사본은 구약 사본보다 훨씬 더 많아서 약 5,000 여 종이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성경은 약 3,200여종이 되며 나머지는 헬라어로 된 성구집과 설교들이다. 형태별로 보면 가장 오래된 형태인 파피루스 사본은 소량이며, 대부분은 양피지에 기록된 사본들이다. 신약 27권의 최초의 글은 처음에는 파피루스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파피루스의 훼손되기 쉬운 성질 때문에 보존을 오래할 수 없으므로 곧 필사본이 만들어져야 했고, 성경의 원본들이 얼마 후에 유실된 후에는 파피루스 사본들만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파피루스보다 재질이 견고하고 보존이 용이한 양피지가 개발되면서 파피루스는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양피지에 기록된 사본들은 크게 대문자 사본과 소문자 사본의 두 계열로 나뉘어 대립되어 있다. 대문자 사본은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초기의 사본으로 숫자가 적게 발견되어 소수 사본이라고 하며, 소문자 사본은 비잔틴 계열의 다수 사본으로 대부분 9세기 이후 시대의 사본이다.
알렉산드리아 계열을 신뢰하는 학자들은 대문자 사본이 소문자 사본보다 오래되었기 때문에 더 우수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비잔틴 계열의 사본을 신뢰하는 학자들은 오래된 연도로만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대문자 사본은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제로 많이 사용되지 못했고 오히려 소문자 사본들이 원본에 가까워서 광범위하게 수용되어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간에 공방을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전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양자를 같이 비교하며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여겨진다. 어느 일방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사본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은 원본이 아닌 어디까지나 사본이기 때문이다.
(파피루스 사본)
신약 사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인 파피루스 사본은 AD 2세기부터 8세기경까지 제작되었는데 현재까지 약 90여종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파피루스의 약한 특질상 많이 파손된 상태의 단편들뿐이며, 따라서 아쉽게도 어떤 파피루스도 신약의 완비된 부분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파피루스 사본은 대문자 P로 표시하는데, 가장 오래된 것은 한 조각의 P52라는 사본으로서 AD 130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며 한 면에는 요한복음 18장 31절에서 33절까지, 다른 면에는 18장 37절과 38절이 씌어있다.
그밖에 역시 2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P90과 P98이 있으며, 나머지는 대개 3세기 이후의 사본들이다. 1930년대에 베아티(Beatty)가 이집트에서 수집한 세 종류의 파피루스인 P45, P46, P47도 3세기경의 사본들로서 비교적 많은 쪽수가 발견되었으며, 곧 책으로 출판되어 그 내용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대문자 사본)
대문자 사본(Majuscules)을 언셜체(Uncial) 사본이라고도 부르는데, 현재까지 약 300여종이 발견되었으며 소문자가 개발되기 전까지 파피루스 사본과 함께 8세기경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파피루스 재질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등장한 양피지는 질겼지만, 글씨를 쓰기는 불편하였다. 더군다나 고대에는 초서체의 소문자가 개발되지 않았으므로 대문자로 기록하였는데,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으므로 기록상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대문자 사본은 숫자가 적으므로 소수 사본(Minority Text)이라고 하는데, 이집트와 가이사랴 그리고 라틴을 비롯한 서방 지역에서 주로 많이 제작되었으므로 서방의 대표적인 지명인 알렉산드리아의 이름을 따라 알렉산드리아 계열 사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문자 사본은 소문자 사본보다 훨씬 오래되었으나 발견된 시기로는 오히려 소문자 사본들보다 늦은 것이 대부분이다.
유명한 것들로는 먼저 4세기경의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이 있다. 이는 아무 장식이 없어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히브리서 일부와 목회서신과 요한계시록이 없다. 그리고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도 4세기경의 것인데 구약의 일부를 빼고 신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서 매우 귀중하게 여기는 사본이다. 그 다음 5세기경의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anus)이 있는데, 이는 신구약성경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이상의 세 개의 사본들은 모두 신약뿐 아니라 구약까지 포함하고 있는 사본들이다.
다음은 역시 5세기경의 사본으로서 원래 양피지에 성경을 기록했으나 12세기에 그 성경본문을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에브라임이라는 사람의 설교를 기록한 에브라임 사본(Codex Ephraem)이라는 것이 있다. 또 프랑스인 베자에 의해 수집된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이 포함되어 있는 베자 사본(Codex Bezae)과 사복음서와 예수님의 어록까지 포함된 워싱톤 사본(Codex Washington)도 있다. 그밖에 6세기경의 클라로몬타노 사본(Codex Clarnontanus)과 라우드 사본(Codex Laudianus)이 있고, 8세기경의 레기우스 사본(Codex Regius)이 있다.
(소문자 사본)
소문자 사본(Minuscules)은 대문자 필사의 불편성을 개선하기 위해 초서체 소문자를 고안하여 필사하였기 때문에 초서체 사본이라고 부른다. 대문자 사본은 글씨가 화려하고 크며 더군다나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서 필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초서체 소문자 사본은 비교적 빠르고 쉽게 필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곧 많이 사용되었으므로 현재까지 약 2,800여종이나 발견되었으며 다수 사본(Majority Text)이라고 부른다. 또 2,000여종의 성구집(Lectionaries)과 설교집도 거의 초서체 사본들이다.
한편 서로마 지역은 주로 라틴어성경을 사용하면서 헬라어성경의 필요성이 감소되어 헬라어 필사본을 많이 만들지 않았으나, 비잔틴 지역의 동로마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어 문화권이었으므로 계속해서 헬라어 필사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비잔틴 지역에서 많이 제작된 소문자 사본을 서로마의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사본과 대비하여 비잔틴 계열 사본이라고도 부른다.
소문자 사본은 9세기부터 만들어졌는데 1450년에 구텐베르크에 의해 서양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많이 필사되고 널리 사용되어왔다. 그런데 소문자 사본은 파피루스 시대와 대문자 사본 시대를 거쳐오면서 훨씬 후대에 필사한 것이므로 고대 사본들과 비교하면 더욱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그 신빙성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들로는 비잔틴 사본(Codex Byzantine), 안디옥 사본(Codex Antioch), 시리아 사본(Codex Syrian) 등이 있는데, 이들은 동로마 지역에서 오랫동안 폭넓게 인정되고 수용된 사본들이지만, 그것들도 저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지상에 존재하는 사본간에 완전한 일치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곧 인간이 필사한 사본은 어떤 것을 막론하고 원본에서 조금씩은 이탈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므로, 만일 원본이 아닌 필사본에 불과한 어떤 사본을 맹신하면서 또 융통성 없는 문자적인 해석으로 경직화된 신앙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약 헬라어 사본의 인쇄)
하나님의 말씀은 필사자들의 손에 의해 계속 보존되어 왔으나,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에는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는 더 이상 불필요한 일이 되고 말았다. 즉, 1450년 구텐베르크가 자신이 발명한 인쇄방법으로 라틴 불가타 인쇄본을 출판한 이래 필사본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그 후에는 인쇄기에 의한 대량 출판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헬라어 사본을 최초로 인쇄한 것은 1514년『여러번역 대조성경(Complutensian Polyglot)』에 실린 헬라어신약이었으나, 헬라어 사본이 독자적으로 인쇄?출판된 것은 1516년 에라스무스가『헬라어신약성경』을 발표한 것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성경)
인문주의 신학자인 에라스무스는 주로 동로마 지역에서 사용되던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들을 종합하여 1516년에 헬라어신약성경을 출판하였는데, 이것이 최초의 인쇄된 헬라어 사본으로 간주된다. 당시 에라스무스는 신약 전체가 포함된 사본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사본을 종합하고 편수하여 새로운 본문의 헬라어성경을 만들었으며, 헬라어 사본을 구하기 힘든 경우에는 라틴어 불가타를 헬라어로 번역하여 재구성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에라스무스는 결국 가능한대로 헬라어 신약성경의 원본을 복원하고자 한 것인데,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형태의 본문은 표준원문 또는 수용원문(Textus Receptu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널리 사용되어져 왔으며, 계속 수정?보완되어 전부 5판이 출판되었다. 에라스무스의 헬라어성경은 후에 스테파누스의 헬라어성경을 비롯하여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역성경과 틴데일의 영어역성경 등의 번역 모체가 되었다.
(스테파누스의 헬라어성경)
에라스무스에 뒤를 이어 여러 형태의 헬라어성경이 출판되었는데, 거의가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을 반영하여 편수한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 돋보이는 것은 프랑스 인쇄업자 스테파누스에 의해 1550년에 출판된 헬라어성경이다. 그는 구약은 맛소라 사본을 채택하여 신구약이 포함된 원어성경을 펴냈는데, 이는 역사상 최초로 본문비평적 편집으로 출판되었으며, 또한 제4판부터는 숫자로 절(節)을 구분하여 출판하였다. 그는 또 1553년에는 제네바에서 올리베땅(Olivetan)의 불어 번역본도 출판하였는데, 여기서도 장, 절을 구분함으로써 이후 모든 성경의 표준이 되었다. 장의 구분은 원래 13세기 켄터베리의 주교(Cardinal)였던 랑톤(Langton)이 한 것을 그대로 준용하였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역시 13세기에 카로의 주교였던 유고(Hugo)가 장의 구분을 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베자의 헬라어성경)
칼빈의 뒤를 이어 스위스 개혁교회의 지도자였던 베자는 성경 수집과 사본 연구에 힘을 쏟아 대문자 베자사본을 발견하였고 또한 헬라어신약성경과 라틴어번역성경 등을 출판하였다. 그가 출판한 헬라어성경은 에라스무스로부터 시작된 사본 편집의 방법을 따라 그때까지의 사본들을 수집하여 본문을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많은 헬라어 사본을 종합하여 표준이 되는 본문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는데, 이로써 표준(수용)원문이라는 개념을 일반화시키고 고정시키는데 한 몫을 하였다.
베자는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자신이 발견한 대문자 사본인 베자사본과 기타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들을 편집하여 헬라어성경의 본문으로 채택하고 나서 1565년부터 40년 넘게 수정을 거듭하면서 무려 10판을 펴내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헬라어 신약사본은 1611년 발행된 영어흠정역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엘제비어 형제의 표준원문)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을 편수하여 종합한 본문을 표준원문 또는 수용원문(Textus Receptus)이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1633년 독일의 인쇄업자였던 엘제비어(Elzevier) 형제가 처음 사용하였다. 그들은 에라스무스와 스테파누스의 본문을 재구성한 헬라어성경을 출판하면서 서문에서 모두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본문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후부터 수용원문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하게 되었으며, 줄여서 TR사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엘제비어의 헬라어 성경은 7개판이 나왔는데, 따라서 에라스무스판 5개, 스테파누스판 4개, 베자판 10개를 합치면 TR사본은 모두 26가지가 유통되었다.
(웨스트콧-홀트 헬라어 성경)
17세기에 만들어진 TR사본들은 이후에 계속 보급되어 18-19세기에는 가장 널리 사용되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들어 본문비평의 발달로 TR사본의 가치가 의심스러워지면서 새로운 헬라어성경의 출판이 예고되었는데, 몇몇 신학자들은 TR본문의 근거가 된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들에 대하여 의구심을 품고 더 오래된 사본인 알렉산드리아 계열의 대문자 사본을 근거로 하여 비평적 편집에 의하여 본문을 재구성하여 새롭게 편집된 헬라어 성경들을 출판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1881년 영국에서 성공회 소속인 웨스트콧(Westcott)과 케임브리지 대학의 홀트(Hort)라는 두 신학자가 공동으로 출판한 헬라어 성경이다. TR사본이 비잔틴 계열의 소문자 사본을 근거로 만들어졌다면, 이들에 의한 헬라어성경의 본문은 주로 대문자 사본을 편수하여 만든 것으로 조금 뒤에 네슬레 헬라어 성경에 영향을 주었다.
(네슬레 헬라어성경)
독일의 네슬레(Nestle)는 1898년 독일성서공회 지원을 받아 헬라어 신약성경(Novum Testamentum Graece)을 펴내었다. 그는 웨스트콧과 홀트의 헬라어성경과 몇몇 발행된 헬라어성경을 비교하고, 또 초기의 대문자 사본을 많이 참고해가면서 다수의 사본들이 일치하는 새로운 본문을 만들었는데, 네슬레 헬라어성경은 부자(父子)간에 대를 이어 계속 발행되어 20판까지 출판되었다.
네슬레 헬라어성경의 특징은 사본간에 본문과 번역 및 교부들의 인용구까지 비교하고 다수결의 원칙으로 본문을 채택하여 철저하게 비평적인 편집을 한 것인데, 판을 거듭할 갈수록 우수한 본문으로 인정받으면서 20세기에 들어와서 가장 권위있는 본문으로 서서히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TR사본은 상대적으로 열등한 본문으로 평가되어 그 동안 누려오던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네슬레-알란트 헬라어성경)
네슬레 헬라어성경은 21판 편집부터 역시 독일인인 알란트(Kurt Aland)가 참여함으로써 21판부터는 네슬레-알란트판으로 불리게 된다. 이들은 공동으로 연구하고 보완하면서 거듭 수정판을 내었는데 네슬레판을 포함하여 1993년 현재까지 27판까지 발행되었다. 이들의 헬라어성경은 기존의 대소문자 사본뿐 아니라 AD 200년대의 파피루스 사본까지 최대한 많이 반영하여 수많은 사본을 분석하고 편집한 것인데, 비평적인 편집으로 결정된 헬라어 본문과 본문비평장치의 우수성 때문에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많은 현대 번역성경들이 네슬레-알란트판 헬라어성경을 번역의 저본(底本)으로 사용하고 있다.
2. 번역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신구약을 막론하고 성경 언어인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번역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원어성경을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 번역본이 나오게 된 것이다. 구약의 번역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국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게 됨에 따라 그들의 유대교신앙 보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으며, 신약의 경우는 헬라어가 신약시대 국제공용어로서 성경의 기록 언어였지만,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시대에 라틴어가 중요한 언어가 되면서 라틴어 번역을 시작으로 해서 각국의 언어들로 많은 번역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번역본은 고대 역본과 현대 역본으로 대별하는데, 고대 역본은 손으로 베낀 필사본을 뜻하며 현대 역본은 1450년경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된 후에 인쇄본으로 간행된 것들을 가리킨다. 이들 고대 역본과 현대 역본은 다시 구약 역본과 신약 역본 그리고 신구약 합본 형태의 세 가지 종류를 각각 가지고 있다.
구약 번역본
구약성경은 원래 히브리어로 씌어졌으며, 유대인을 위한 유대인의 성경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영토인 팔레스타인 땅에 거주하면서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할 때는 번역본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 왕국이 완전히 멸망한 후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거의 다 쫓겨나서 팔레스타인에는 소수만 남게 되고 대다수가 바벨론을 비롯한 애굽, 소아시아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따라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히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정착지 언어에 더 익숙한 자들이 많아지게 되었으므로 이들 유대인들을 위하여 그 나라 언어로 성경을 번역할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
BC 450-440 경 에스라, 느헤미야가 주도하여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살던 땅에서 쫓겨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라는 자각을 통하여 그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존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서도 말씀은 가르치고 보존되어야한다는 취지에서 번역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까지 구약성경은 유대인들만의 경전이었으므로 고대의 히브리어 번역은 모두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신약 시대 직전까지 구약의 번역 작업은 국제어였던 아람어와 헬라어로 된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신약 시대 이후에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의 기독교인을 위하여 여러 나라 말로 된 구약 번역이 나타나게 되었다.
(아람어 탈굼)
구약 번역본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된 것은 아람어 번역이다. 아람어는 수메르어와 악카드어를 계승하여 바벨론 후기 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갈대아어를 말하는데, 바사 시대에는 이미 고대 근동에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 널리 사용되는 국제 표준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아람어와 히브리어는 같은 북방 셈어족에 속하는 가까운 언어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쉽게 친숙해 질 수 있었고, 따라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후 모국어인 히브리어보다 당시의 국제어였던 아람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정착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점차 잊어버리게 되자 회당에서 랍비들이 히브리어로 율법을 낭독하고는 아람어로 번역을 해주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구두로 해석하던 것이 점차 정교하고 고정화되면서 문서화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BC 4-3세기경부터 아람어로 번역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제대로 된 번역은 로마에 의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완전히 추방되는 시점인 AD 2세기경에 가서야 아람어 탈굼(Targum)이라는 이름으로 비로소 등장하게 되었다. 아람어 탈굼 중에서 유명한 것은 AD 3세기경의 토라를 번역한 탈굼 옹켈로스와 4세기경의 예언서를 번역한 탈굼 요나단(Targum Yonathan) 등이다.
(70인역)
다음은 유명한 헬라어 70인역(LXX)이다. 셉투아진트(Septuagint)라고 불리는 70인역은 BC 3세기경(250-150) 당시의 애굽의 통치자 프톨레미 2세에 요청에 의하여 유대인 학자들이 각 지파별로 6명씩 72명이 알렉산드리아에 모여서 구약 히브리어 사본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유대인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이방인 독자들을 위한 최초의 번역이기도 한데, 그 내용은 현재의 정경 뿐 아니라 외경까지 다수 포함되어있다. 70인역이 번역되었을 당시 국제 무대는 헬라어가 공용어였으므로 신약에서 인용한 구약 본문은 거의 모두 70인역에서 인용한 것이며, 이후의 초대교회에서도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구약 성경이 될 수밖에 없는 중요한 번역이다. 이에는 많은 사본이 있는데, 나중에는 신약까지 합쳐진 바티칸 사본 등의 합본도 등장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다른 헬라어 번역들)
기독교 교회가 70인역을 널리 사용하자, 유대인들은 그것을 부정확하다고 배격하기 시작했으며, 그래서 구약에 대하여 유대인들만을 위한 새로운 헬라어 번역본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중에는 AD 2세기초에 유대인만을 위해 만들어진 아퀼라 역이 있다. 아퀼라는 랍비 아키바의 제자인데 엄격한 직역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2세기 중엽에는 초기 헬라어역본을 다시 번역한 테오도티온 역 등이 있고, 또 의역을 한 심마쿠스 역은 2세기말의 작품이다.
(오리겐의 헥사플라)
기독교 초기에 70인역을 비롯하여 각지방의 구약 역본들과 또 많은 라틴 역본들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3세기에 이르러서는 성경 본문에 대한 이해의 상충으로 말미암아 신앙적 혼동이 야기되었다. 이에 동방교회 최대의 교부이자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거두인 오리겐은 230년경에 헥사플라(Hexapla) 라고 하는 6개 본문 대조성경을 편찬하였다. 이에는 히브리어 본문을 비롯해서 헬라어 음역, 아퀼라 역, 심마쿠스 역, 70인역과 테오도티온 역의 6개의 본문이 들어있는데, 그는 70인역을 중심으로 다른 구약 본문들을 비교하면서 비평적 방법으로 만들었다. 오리겐의 헥사플라야말로 비평적 본문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원본은 유실되고 사본의 단편만 남아있는 것이 아쉬운 일이다.
(기타 구약 역본)
그밖에는 AD 10세기경의 아랍어 역본으로서 사디아 벤 요셉(Sadia ben joseph)이 히브리어를 아랍어로 번역한 것이 있는데, 이를 계기로 그후에 11-13세기에 걸쳐 몇몇의 아랍어 번역본이 출현하였다. 또 12-13세기경에는 유대인들에 의하여 히브리어 글자로 씌어지고 독일어로 번역된 이디쉬(Yiddish) 역본이 출현하였다.
신구약 합본 또는 신약 번역본
신약 번역본의 필요성은 기독교 초기부터 대두되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이방인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여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는 지역으로 빠르게 전파되어갔으며, 각 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갖기를 희망하였기 때문에 신약시대 초기부터 많은 번역이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유대교가 구약만을 성경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구약에 대한 번역만을 하였다면, 기독교는 신구약을 공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므로 대개는 신구약 합본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신구약 합본은 신약과 구약이 따로 번역되었다가 나중에 합본으로 합쳐진 것들과 처음부터 신구약 합본 상태로 간행된 것들이 있다.
(시리아 페쉬타 역본)
시리아(Syria)는 헬라시대부터 애굽과 다투면서 강한 국력을 가진 나라였다. 시리아의 수도인 안디옥은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고대의 3대 주요도시로서 기독교가 일찍 전파된 곳이었으며, 여러 교회가 있었는데 시리아 지역의 교인들에 의해 시리아어로 번역된 신구약 역본을 페쉬타(Peshita)라고 한다. 페쉬타는 공공 또는 단순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은 9세기경이다.
페쉬타가 만들어진 시기는 2세기말엽부터로 추정되며 시리아의 기독교인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동부 아람어인 시리아어로 번역함으로써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신약에 대한 번역은 시리아 지역의 교인들이 초기에는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을 사용하였지만, 차츰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자신들의 언어인 시리아어로 된 신약성경의 필요 때문에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많은 시리아 페쉬타 역본들이 나오게 되는데, 페쉬타는 구약은 70인역과 조화를 맞추고 신약은 다른 헬라어 사본들과 조화를 맞추면서 수차례 개정 작업을 통하여 9세기까지 필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쉬타의 특징은 시리아어가 아람어의 일종이므로 아람어 탈굼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기타 시리아 역본)
그밖에 시리아 역본으로는 3세기경에 오리겐의 헥사플라 중에서 70인역을 시리아어로 번역한 시리아 헥사플라리스가 있는데, 이는 헬라어를 시리아어로 직역한 것으로서 오리겐의 헥사플라의 70인역 본문을 추정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또 다른 유명한 것으로는 170년경에 저스틴의 제자 타티아누스가 번역한 디아테싸론(Diatessaron)이라는 시리아 역본이다. 이는 헬라어로 넷을 통하여라는 뜻인데 네 권의 복음서를 재배열하여 하나의 연속적인 줄거리로 만듦으로써 소위 연대기적 성경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밖에 시리아에서 번역된 신약성경 중에는 아람어 방언으로 번역된 것들도 나타났다.
(구 라틴 역본)
라틴어 역본은 2세기말 북아프리카에서 70인역 헬라어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터툴리안의 라틴 역본을 비롯하여 4세기까지 각지에서 만들어지고 읽혀지게 되었다. 이것들을 구(舊) 라틴 역본(The Old Latin Translation)이라고 부르는데 번역의 저본으로 히브리어 사본이 아닌 헬라어 70인역을 사용하였으므로 라틴어로 된 70인역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내용 면에서 70인역과 흡사하였다. 구 라틴 역본 중에는 신약을 포함하여 신구약 합본으로 된 것들도 많이 있는데, 당시의 헬라어 사본과 비교하여 보면 서로 다른 내용이 많다고 한다.
(제롬의 불가타 라틴 역본)
구 라틴 역본들이 혼란스러울 정도로 쏟아져 나오게 되자, 380년경 교황 다마수스 1세는 제롬(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에게 구약만큼은 70인역 대신 히브리어 사본으로부터 직접 번역한 신뢰할만한 라틴어 번역을 요청하였다. 이에 제롬은 십수 년간의 노력 끝에 라틴어 역본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제롬의 번역본은 초기에는 당시에 워낙 유행하던 70인역의 영향력 때문에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차츰 로마 교회에서 중요한 성경본문으로 인정받으면서 대중적이라는 뜻을 가진 불가타(Vulgata) 또는 벌게이트(Vulgate)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라틴어가 서방 교회의 교회 표준어가 된 이래 1546년에 트렌트 공의회에서 수정본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세월을 정통 본문으로 통용되었다.
제롬의 라틴역은 처음에는 신약을 포함하지 않았으나, 헬라어 사본에서 직접 번역된 사복음서가 합쳐지고 다시 신약의 나머지 부분들이 더해져서 신구약 합본의 라틴어 번역본이 되었다. 또 다수의 외경을 포함하고 있는데, 제롬은 그것들을 정경과 대등하게 취급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빌미가 되어 나중에 카톨릭 교회에서는 외경까지 포함하여 성경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고트어 역본)
고트어(Gothic)는 고트족(Goths)이 사용한 언어이며, 고트족은 흑해 북동쪽에 자리잡았던 게르만족의 일족으로 동, 서 고트족으로 나뉜다. 이들이 훈족의 침입 때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여 에스파니아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여러 나라를 세운 것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 고트족에게는 원래 문자가 없었으며, 동고트족의 주교였던 울필라스(Ulfilas)가 고트어 문자를 고안하여 성경을 기록함으로써 비로소 문자를 갖게 되었다.
4세기초 울필라스는 헬라어 사본을 자신이 창안한 고트어로 번역하여 고트어 역본을 완성했는데, 여기서 사용된 고트어는 그후에 인도-유럽어 계열의 중요한 언어로서 유럽의 많은 지역과 아프리카 북해안에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되나 지금은 사멸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동고트족의 일부는 3세기 이전에 이미 기독교를 믿었던 것이 확실한데, 아쉽게도 아리우스주의자였던 울필라스의 영향으로 당시 많은 고트족이 아리우스주의 기독교인들이 되었다고 한다.
(콥트어 역본)
다음은 애굽의 콥트어(Coptic) 역본이 있는데, 콥트어는 고대 애굽의 후기 언어로서 AD 3-4세기경부터 신구약에 대한 번역이 이루어졌으며 현재 발견된 것은 대부분 12-13세기경의 것들이다. 콥트어를 사용하던 콥트 교회는 16세기까지 지속되었고 수도원 중심의 발달한 문화를 이루었으나 아랍 세력에 밀려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그들이 사용하던 콥트어도 아랍어에 밀려서 지금은 사어(死語)가 되고 말았다. 콥트어는 남쪽의 사이딕(Saidic) 방언과 북쪽의 보하이릭(Bohairic) 방언으로 나누는데, 각각의 방언으로 된 역본들의 단편들이 현존하고 있다. 그리고 콥트어 신약 번역본은 대부분 요한계시록이 누락된 것이 특징이다.
(에티오피아 역본)
에티오피아는 이집트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자신들의 문화와 문명을 지켜온 나라였다. 에티오피아에는 BC 950년경 솔로몬과 시바 여왕의 교류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건너와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AD 2-3세기경에 기독교가 이집트를 지나 에티오피아에 전해지면서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많아졌다. 에티오피아 교회는 이집트의 콥트 교회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독교인의 증가로 에티오피아 번역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4세기경부터 에티오피아 신구약 역본이 만들어졌다.
(아르메니아 역본)
아르메니아(Armenia)는 시리아 북부에 위치하며 소아시아 동북부 흑해를 끼고 있는 나라인데, 3세기경에 기독교가 전해진 후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그런 만큼 자신들의 언어로 된 번역본의 필요성이 절실하였으므로 아르메니아 역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르메니아 역본에 기원에 관해서는 아르메니아 알파벳을 고안한 메스로브(Mesrob)와 그의 제자인 사하크(Sahak)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아르메니아 역본은 시리아의 페쉬타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번역의 정확성과 표현법의 아름다움이 탁월하여 역본중의 여왕이라고 불리는데 대부분 유실되고 현재 남아있는 것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9세기경의 것이다.
(그루지야 역본)
그루지야(Gruziya)는 아르메니아보더 더 북쪽에 위치하며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지역으로서 시리아의 선교사들에 의해 4세기경 기독교가 전해진 후 번역본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현존하는 그루지야 역본 중에서 오래된 것은 9-10세기경의 것들이 남아있다.
(기타 고대 역본)
그밖에 고대 역본으로는 에베소 공의회(431년)에서 이단으로 몰렸던 네스토리우스파가 번역한 네스토리안(Nestorian) 역본이 있다. 이는 헬라어 사본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번역본인 시리아 성경을 저본으로 하여 2차적으로 번역한 소위 혼합역본으로서 현존하는 것들은 대개 9-10세기경의 것들이다. 또 7세기경에는 아라비아 여러 지역에서 유대인 학자들에 의해 번역된 아라비아(Arabic) 역본이 있는데 역시 시리아 역본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밖에 8-9세기경의 슬라브(Slavic) 역본이 있다. 슬라브족은 현재 동유럽과 러시아의 주된 민족으로서 라틴어 성경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그밖에는 별로 중요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몇 개의 번역본들이 더 있는데, 앵글로-색슨 역본, 페르시아 역본, 누비안 역본, 프랑크어 역본 등이 그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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