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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잘 읽는 법

하나님아들 2024. 6. 7. 00:23

성경을 잘 읽는 법

 

 

 

"성경읽기"와 "독서"는 같은 의미 같지만

분명히 구별되어야 할 점을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경읽기"는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듣기 위함'이라는 말이 눈에 박힙니다.

 

성경은 허기진 뱃속을 채우기 위해 허겁지겁 먹어대는 '햄버거' 가 아니라

귀한 연회 자리에서 접하게 되는 나만을 위한 '특별 메뉴'라는것...!

오늘 새롭게 새겨듣게 되는 말입니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도

성경을 꾸준히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그리 체감되지 않아서 일겁니다.

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는 기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책(성경)읽기의 태도(Attitude)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속도가 가치의 중심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속도를 무시한 독서를 이야기하는 것이 우매하게 보일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듣기 위한 독서에서 책을 읽는 속도는 무의미합니다.

 

오늘, 진도(?)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님을 듣기위한 독서'를 시작해 보지 않으실래요?^^ 

 

01.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상기하라

02. 교훈이나 훈계로 듣지 말고 하나님의 인격으로 대하라

03. 장과 절에 매이지 말고 통짜로 읽어라

04. 성령의 감동으로 읽기를 기도하라


05. ‘하나님의 의도’의 안경을 써라

06. 삶 속에 적용되도록 매일 꾸준히 읽어라

07. 이해력과 암기력이 아니다. 믿음으로 읽어라

08. 밥을 먹어야 산다. 영의 양식으로 받아들여라


09. 성경의 사건으로 들어가라. 당신은 지금 그 현장에 있다.

10. 성경을 읽지 않고는 생명과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

11.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라.

12. 하나님은 성경을 실천하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냄을 알라

 

성경, 당연히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읽어야 한다. 어떤 책이든 작자의 인생관에 몰입이 되지 않는 한 그 독서는 별무소득일 것이다. 성령이 성경의 저자이시기에 또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에 성령의 감동에 의해 성경을 읽어야 한다. 따라서 성경의 저자와 같은 감응이 일어나도록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이 단계에 들어가기 까지는 긴 여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경을 읽음에 무슨 왕도가 있겠느냐마는 숲을 헤치듯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며 일반의 독서 방법을 원용하여 독자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를 가이드를 제시해 볼까 한다.

 

 첫째는 통독이다. 성경 권별도 좋고, 사건별이나 인물별 또는 주제별도 좋다. 내가 강의한 모든 성경 강해에 개론을 먼저 제시하는 목적은 통독의 효과 곧 망원경으로 성경의 전체그림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성경의 전체 흐름을 알고 난후에 뒤 돌아보면 성경총론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전체의 스토리의 서정적인 개요를 머리에 담아 두는 것은 성경을 읽는 기초 작업이다. 물론 조직신학의 서론이 많은 도움을 주지만 그건 성경을 엮어 매다는 틀이 될 뿐 성경의 구석구석을 조망하는 데는 부족함이 많다. 두 번째는 정독이다. 정독의 핵심은 반복이다.

 

 예를 들면 로마서 8장 같은 경우는 매일 읽어야 할 만큼 중요하다. 요14-16장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히1-10장도 말할 필요조차 없다. 또 창1-3장은 어쩌고... 마5-7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곳에서 핵심진리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진리를 적용해야기에 반복 정독이 중요하다. 우암송시열은 맹자의 호연지기를 천 번 읽었다고 하지 않는가? 나는 성경을 100번, 500번 아니 계시록을 7,000번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거침없이 성경강해를 한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성경의 인덱스를 잘 알고 줄거리는 파악하고 있을 뿐 그 뜻은 현미경 같이 살피지 못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 중요한 부분을 기록해 보는 것이다. 지금 성경쓰기 운동이 일고 있는데 그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그러나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안간힘을 쓰며 기록하곤 ‘휴, 성경을 한 번 기록했네 기분좋다’ 하는 정도로 그칠 가능이 있다. 중요한 성경구절이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말씀들을 필사해 보는 것은 매우 귀중한 작업이다. 네오날도 다빈치도 필사작업을 그렇게 많이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서예의 기초도 반복해서 명사들의 글을 써 보는 것이다. 그래서 난 많은 분들께 책을 읽든지 성경을 읽다가 깨달은 부분을 자신의 어휘로 글로 옮겨 보길 권한다. 참고로 나는 8-90년 대에 두꺼운 대학노트 열 다섯 권 이상을 독서일지로 사용한 적이 있다. 이런 작업을 통해 뇌의 해마의 용량은 늘어나고 학습과 기억의 양이 무한대로 발전한다.

 

 혹자들은 내가 며칠 동안을 다른 내용의 강의나 설교를 하면서 아무런 메모를 사용하지 않는 걸 보고 내 성경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 성경은 밑줄도 하나 없다. 수시로 새 성경으로 바꾼다. 그건 뇌의 해마를 수십 년 동안 늘려놨기 때문에 그 기억의 창고를 성령께서 터치해서 강의 때에 상기시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빈 뇌를 들고 40일 금식을 몇 번 한다든가 남의 영적인 기운을 전수하기 위해 기도를 받는다든가 다른 사람의 설교를 베끼는 작업을 한 사람이 성령과 합일된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는 곧 레에마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빈 양철동이가 소리는 큰 법이다.

 

 그 다음엔 사색 곧 묵상이다. 시편1편의 묵상은 여호와의 율법 곧 성경의 처음과 나중을 아는 사람의 자기화 작업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색 없는 독서는 죽은 것이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사색을 통해 이성에서 생각 그리고 영의 창고로 생명의 양식이 분별되고 소화되어 쌓여져 간다. 인간적인 처세의 테크닉의 바깥뇌가 아니라 심령 깊숙하게 자리 잡은 중추의 뇌에 주의 영과 생명의 말씀이 충만해져 간다. 성경 구절을 많이 암송하고 재치 있게 사용하는 정도가 아니라 성경 말씀을 통해 주 예수그리스도의 동선을 따라 생각을 수도 없이 움직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주와 합일이 되어 있고 하나님과 아주 밀접해 지게 된다.

 

 그리고 깨달음이 날마다 풍성해 지고, 그 깨달음 안에서 기초적인 믿음의 터 위에 더욱 담대한 믿음과 의와 거룩과 영광에 대한 확신이 뚜렷해진다. 하나님의 자녀와 종으로서 강한 프라이드와 그 분의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지심이 강하게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구원에 대한 전체 로드맵이 보이고 자신의 위치와 때를 알게 된다. 자신을 통해 성령의 능력이 밖으로 나타나므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된다. 남을 사랑하기 위해 성령을 강청할 수 있고 주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스스럼없이 뱉어낸다. 사람을 볼 때에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컨설팅 할 수 있고 그 사람을 섬기고 보충할 수가 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그립던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얻은 은혜의 도구를 사용해서 어렵사리 접근할 수 있다. 하나님의 모든 권능은 이런 사람에게 나타난다. 이쯤가면 어두움에 빠진 사람이나 병든 자에게 손을 얻는 정도는 너무 쉬운 일상사가 된다. 전에는 기도하고 간구했던 내용들이 이제 주와 합일된 자신 안에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깨닫고 그대로 입으로 시인한다. 주의 임재와 그 영광과 권능을 찬양할 때 마다 주의 성령이 강하게 뜨겁게 붙잡아 주는 것을 체험한다. 어둠과 침체된 상황에 처할 때에도 담대하게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 앞에 나아가 자신의 존재의 정체감을 확인하고 상태를 바꾸므로 상황을 장악하는 큰 믿음을 얻게 된다. 성경은 산 책이다. 주께서 성령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정원이다. 이 성경을 더욱 사랑하기를 권한다.

 

 

   
 
 
하나님 앞에서 성경을 잘 읽으려면 사람에게 두 가지 기본적인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첫째는 그 사람이 바르고 훈련된 자라야 하며, 두 번째는 방법 또한 옳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성경을 잘 읽어 내지 못한다. 성경 읽는 방법에 관한 책을 쓴 사람들은 모두 성경을 잘 읽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방법만을 본따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성경을 잘 읽지 못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는 것은 단지 방법이 어떠한가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람이 어떠한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을 읽는 것은 방법이 옳아야 할 뿐 아니라 사람 또한 옳아야 한다. 사람이 옳아야 하며 그리고 나서 비로소 합당한 방법을 사용하여 성경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사람’이 구비해야 할 세 가지 것들
1. 영적이어야 함
성경은 단지 말이나 의문이 아니고 종이를 사용하여 인쇄한 책이 아니다. 성경의 본질은 바로 영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모두 영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만질 수 없고, 영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읽을 수 없다.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영은 바로 거듭난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영을 가리키는데, 우리는 그것을 잠시 ‘거듭난 영’이라고 정하겠다. 이 영은 모든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이 영을 가진 사람만이 읽을 수 있고 이 영이 없는 사람은 읽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영을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사용하고, 또한 성경을 읽기 위해 사용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본래 영에 속한 일을 알 수 있는데 많은 형제 자매들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이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것은 그가 비록 거듭난 영을 가지고 있으나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에 속한 일은 단지 영에 속한 사람만이 통달할 수 있다.
2. 헌신해야 함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완전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헌신이 없으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없다. 헌신이 가지고 있는 매우 특별한 점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게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성경의 교훈을 이해하고 성경의 계시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님 앞에서 져야 할 책임이 있는데, 그것은 절대적으로 완전하게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안에는 하나님의 빛이 충만하지만 이 빛은 그분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은 사람에게 비추인다(고후 3:18).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하나님께 열려 있을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열려짐은 반드시 조건 없고 보류함 없는 헌신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을 향하여 열려 있는 것은 일시적인 태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성품이다. 열려짐은 한 차례 우연한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끊임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열려짐은 단지 조건 없고 보류함 없는 헌신에서만 올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만약 완전하고 절대적이라면 자연히 하나님에 대한 그의 태도는 보류하는 것이 없으며 전혀 닫혀 있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온 몸을 밝게 하고 빛으로 충만케 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우리의 눈이 반드시 단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가리켜 눈이 단일하다고 말하는가? 우리 눈은 비록 두 개이지만 초점은 단지 하나이며, 두 눈은 동시에 하나의 물건을 본다. 정확히 보려면, 단지 한 초점만을 가져야 하고 두 개의 초점을 가져서는 안 된다. 눈이 단일하지 않다면 빛은 나타날 수 없다.
성경의 교리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는 우리의 순복에 근거하여 주어진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순복의 정도가 빛을 얻는 정도이다. 우리가 만약 끊임없이 하나님께 순복한다면 끊임없이 보는 것이 있게 된다. 헌신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볼 수 없고 계속적인 순복이 없으면 점진적인 봄이 없다. 헌신이 철저하지 않으면 빛 비췸이 우리 몸에서 세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문제는 헌신에 있다. 헌신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으면 성경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헌신한 사람도 단지 한 번의 기본적인 헌신에 그치지 않고 주님 앞에서 계속 순종하여야 끊임없이 보게 된다. 사람에게 빛 비췸이 어느 정도인가는 그가 헌신한 후 얼마만큼 순복했는가를 보면 된다. 우리가 만약 완전히 순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완전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3. 숙련된 습관이 있어야 함
첫 번째, 성경을 읽는 모든 사람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두 번째, 성경을 읽을 때 대충 읽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매우 정확한 책으로 한 글자 한 글자 틀리거나 착오가 없음을 말할 수 있다. 조금만 부주의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흘러 떠내려 보낼 수 있다.
세 번째, 우리는 정확해야 하지만 결코 호기심은 갖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정확한 것이며 우리는 호기심을 갖고 그것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애석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때, 거기에서 줄곧 희한한 일만을 찾아낸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많은 시간을 들여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가 포도나무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데 이렇게 성경을 읽는 것은 쓸모가 없다. 우리는 성경이 영적인 책임을 기억해야 하며 거기에서 생명을 만지고, 영을 만지고, 주님을 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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