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가까워진 그 날!
지식적 분야에서나 물질적 세계에서나, 영적 세계관, 그 어디를 바라보거나 현대는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인심도 바뀌고 사회질서도 바뀌고 교통수단도 바뀌었다.
교통수단을 보면, 우리네 조상처럼 말을 타고 다니던 그런 때는 아니더라도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유행가 가사처럼 느릿느릿 지나가는 풍경을 음미하며 달리던 기차 여행은 이미 먼 옛이야기가 되었고 비행기를 타면 하루 만에 가지 못할 곳이 없다.
통신수단 역시, 사랑하는 이에게 소식 한번 전하려고 문장을 다듬으며 때로는 밤이 맞도록 편지를 쓰고 찢고, 다시 쓰고 찢던 그런 정서적 시대는 이미 구석기 시대다.
와이어레스 전화기 한 대면 전 세계 어디서든지 다 통한다. 이 모든 현상을 요약하여 한 마디로 표현하면 모든 것이 "별똥별"처럼 빨라졌다 하겠다.
인심: 내가 어린 시절, 시골에 살 때는 대청마루에 앉아 밥을 먹다가 사립문 밖으로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으면 불러서라도 집에 들어오게 하였고 한 술이라도 함께 뜨고서야 길을 가시도록 권장을 했던 때가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하여도 그랬다.
그 이전은 더욱 더 인심이 좋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안으로 불러들이다가는 어떤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다. 같은 자리에서 식사하여도 당신이 먹은 것은 당신이 지급하고 내가 먹은 것은 내가 지급한다. 오히려 부담이 없고 그것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종교계도 급속도로 바뀐다. 요즘은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단체와 유명세를 타던 목사들이 있고 안타깝게도 많은 목사님들이 그들의 괴변에 동조하며 함께한다. 남자와 여자가 그 부모를 떠나 한 가정을 이루던 시대도 이제 옛말이다.
남자는 남자와 여자는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고집한다. 그것이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란다. 목사님들마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발로 짓밟고 뭉개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물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관도 바뀐 탓이겠다. 신본주의가 아니라 인본주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세상 마지막 때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기에 세상이야 그러려니 해야 하겠지만 참 씁쓸하다.
그러나 우리(성도)가 과연 이대로 살아도 좋은가? 물결이 치면 치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휩쓸려가야만 하는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주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향해, 너희는 정결한 신부로 신랑을 맞이할 처녀의 마음이 되라. 술 취함과 방탕함을 버리고 늘 단정히 행하고 깨끗하게 단장하는 삶을 살라고 명하시지 않았는가? 더욱 가까워진 그날(주님 다시 오실 날)을 예고하는 이런 때, 성도가 지향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성도(처녀)들이 지녀야 할 덕목:
순결과 정절을 지키고 정결함으로 자신을 단장해야 한다. 여기에서 정결(cleanness)과 순결( purity, pure)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정결은 깨끗함을 의미하고 순결은 처음부터 더러운 것이 섞이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보겠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영적으로 성도의 정결함(cleanness)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서만 가능하고,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이미 그 피로 깨끗게 하여 주셨기에 모두 정결(cleanness)하다고 보겠다. 그러나 순결(purity, pure)은 자기 자신이 지켜내야 하는 신앙의 정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도(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할 때까지 온갖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엡 4: 19-20절).” ,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 15절 말씀).”
성도(처녀)들이 기억해야 할 말세적 예언(이사야 편):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 약 700-750여 년 전의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2,700여 년 전의 사람이다. 그런데 지금 현 세대를 사는 우리네 여인들의 모습을 눈으로 보듯, 손으로 만지듯, 초상화를 그리듯이 어쩌면 이토록 생생하게 잘 묘사했는지, 정말 기막힌 일이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해 준 참된 선지자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 교만한 여인들과 늘인 목(사 3: 16절상):
이것은 현대 여인들의 사고와 옷차림을 의미한다. 말세적 시대의 여인들은 교만하여 늘인 목으로 다닌다고 했다. 과연 그 말대로, 요즘 여인들은 목을 더 많이 늘이기 위해 목 주위를 깊게 파다 못해 아예 가슴과 등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젊은 여인들은 배꼽티라고 하는 거의 위험수위가 노출될 정도로 깊게 패인 옷들을 걸치고도 부끄럼 없이 거리를 활보한다. 그렇다. 요즘 세대의 여인들처럼 당당하다 못해 교만한 여인 천하는 일찍이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의 세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가부장 제도였다. 가장이 그 집의 주인이요, 지배자란 뜻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남자 아닌 여자나 아이들은 숫자에 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드라마를 보면, 우리 부모의 세대처럼 한 가정의 남편이 주인처럼 지배하며 군림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 같다. 오히려 안주인이 된 아내들이 남편들 위에서 군림(?) 하는 느낌이다.
또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남자들이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 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그런 소리 하다가는 오히려 큰일 난다고 한다. 요즘 시대는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하지 않는 남편은 아내로부터 사랑받지 못할 뿐 아니라 더 심하면 쫓겨(?)난다 고하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 정도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가정에서 호주로 존경받으며 대우받던 남편들이 이제는 아내에게 쫓겨날까 전전긍긍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어떻게 해서 여인들이 그렇게까지 교만해지고 말았는가? 그것은 바로 말세적 예언의 성취시대가 도래했다는 증거다.
2. 아기죽거려 행하며 발로 쟁쟁한 소리를 내는 신발 신은 여인들(사 3:16 하):
나는 아주 어릴 적에 고무신이란 것을 신어본 기억이 있다. 우리 부모님들도 고무신을 신었고, 그 이전의 분들은 짚신을 신었다 했고, 또 그 이전의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무엇을 신었는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거나 이사야 선지자가 본 환상적 여인들처럼 아기죽거리며 걸을 수 있는 신발을 신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고무신이나 짚신을 신고 걷는 여인을 묘사할 때는 어떻게 묘사하는가? “삽뿐, 삽뿐 걷는다” 이다.
요즘 현대 거리에서 사뿐 사뿐 걸어 다니는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가? 없다. 그런 여인들은 이미 구세대, 전설 속의 여인들로 멀어져 갔을 뿐이다. 지금은 “여인들이 아기죽 거려 행하며 발로는 쟁쟁한 소리를 내며 걷는 시대다.
반드시 말세가 되어야만 신게 예언되어 있는 여인들의 신발, 쟁쟁 소리를 내며 아기죽 아기죽 걸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이 신발의 이름은? 그것은 바로 ‘하이힐’이다! 이 하이힐이란 굽이 뾰족하고 높은 신발로써, 모든 여인들 뿐 아니라, 나에게도 사랑받는 신발이다.
이 신발만 신으면 키가 작은 사람은 키가 커보여서 좋고, 키가 큰 사람은 큰 키가 더욱 늘씬하게 뻗어보여서 또 좋다. 여인들이 착 달라붙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면 오리처럼 아기죽 아기죽 걷는 모습, 그야말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기억나게 해 주어서 입가에 쓴 웃음이 돈다.
그뿐인가?. 하이힐 뒤꿈치에는 징이라고 하던가? 뾰족한 쇠붙이가 달려서 아스팔트 위를 걸을 때마다 “딱딱딱, 쟁쟁쟁.”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난다. 재밌지 않은가? “아기죽 아기죽, 딱딱딱, 쟁쟁쟁….” 2,700여 년 전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을 여러분과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3. 정을 통하는 눈은 재론할 여지도 없을 것 같다.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 내가 어릴 때 배운 말이다. 요즘 아이들이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나 하고 있을까? 오히려 그 반대일 것 같다. 남녀칠세자동석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이다.
성도(처녀)들이 기억해야 할 말세적 예언 성취 시대(다니엘 편):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 12: 4절).”
여기를 보자. 다니엘은 말세의 징조 중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서 1.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2. 지식이 더할 것이라 하고 예언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이 시대만큼 사람들이 빨리 왕래한 적은 아마 없는 것 같다.
바로 1세기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경상도에서, 한성, 그러니까 지금의 서울까지 가려면 적어도 석 달 열흘(3개월 10일)이 걸렸다고 한다. 필자가 어릴적만 해도 부산에서 서울 가는 완행열차를 타면 밤새도록 달려야 그 이튿날 아침 늦게 서울역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떤가? 비행기만 타면, 부산서 서울 가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다. 어제 서울에 있던 사람이 오늘 뉴욕에 있을 수 있고, 오늘 미국에 있는 사람이 내일 한국에 있을 수 있는 시대다. 사람들이 놀랍도록 빨리 왕래하는 시대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말세에는 “지식이 더한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인간이 지니고 있던 지식 외에 그 어떤 다른 신지식이 더해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지식 위에 더해진 그 지식이야말로 바로, 지금 이 컴퓨터 시대를 가리킴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은 컴퓨터 하나면 전 세계의 정보를 한눈에 읽을 수 있고, 현대 컴퓨터 공학이야말로, 인간의 지식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놀라운 기적을 창출해 낸 것이다.
성도(처녀)들이 기다리는 신랑은 언제 어떻게 오시는가?
1. 아버지만 아신다(마 24: 36, 42-43, 행 1: 6-7절),
2. 생각지 않은 때 오신다(눅 12:40절),
3. 밤에 도적 같이 오신다(살전 5:2절),
4. 번개가 동에서 번쩍하여 서편에 이름 같이 오신다(마 24: 27절).
5.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와 함께 오신다( 마 16: 27절).
주님께서 말씀하셨음에도 극단적 종말론자들은 날짜 풀이에 관심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까 사탄이 쳐둔 그물에 걸려 헛된 날짜를 예언하다가 불발이 되면 잠시 부끄러움을 당하고 조용한 듯하다가 어느새 다시 또 고개를 쳐들고 세상을, 믿는 성도들을 미혹하려고 한다. 본질보다 비본질에 관심을 더 쏟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가 오실 때의 세상 형편은 어떠한가?
1. 노아의 때와 같이 자기 일에 도취되어 있는 상태,
2. 안전하다 평안하다 (자기 안일 상태)(살전 5: 3절),
3. 거짓 선지자가 미혹하고 표적과 기사로 미혹함(마 24: 24절),
4. 곳곳에 전쟁이 터지고(천재지변).
5. 음란이 팽배해진다.
이단들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진 것은 a) 재림의 긴박성을 지나치게 부추기기 위해 주님의 재림 날짜를 제시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마 24:36, 42-43절 참조) b) 주의 재림은 없다고 가르친다.
“먼저 이것을 알 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3-4절 말씀)”.
이런 때에, 우리 성도(처녀)들은 순결을 지키고, 깨어 기도함으로써 기름준비 잘 하고, 자신을 지켜 정결하며 매일 매 순간을 순전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단장하는 삶을 살다가 신랑 앞에 서게 되는 그날, 수치를 당치 않게 되고, 그분의 사랑을 받을 때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더욱 가까워진 그날, 그 영화로운 천국 잔치에 들어갈 준비를 잘 하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신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살전 5:21-24절 말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음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을 효과적으로 읽는 방법 (0) | 2024.07.12 |
---|---|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 (0) | 2024.07.02 |
성경을 잘 읽는 법 (0) | 2024.06.07 |
하나님의 의 (0) | 2023.07.13 |
언약들 (0) | 2021.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