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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나님아들 2024. 5. 26. 22:43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글/최은상

 

사도행전 19:1-7/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다./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아볼로라는 사람이 고린도 교회에 있을 때에 바울은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에는 아시아라는 이름의 주가 있었는데, 에베소는 그 아시아 주의 수도였습니다. 바울이 다닌 윗 지방은 바울의 제 3차전도 여행지역입니다. 2차전도 여행 때에는 바울이 아시아로 가는 것을 성령이 허락하지 않았었는데, 3차 전도에서는 허락하셨습니다.

 

아볼로라는 사람은 행전 18장에서 처음으로 소개됩니다.

행18: 24-28/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 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아볼로는 웅변에 능하고 논리와 성경에 정통한 자였습니다.

아볼로는 예수님과 사도들을 만난 적도 없었는데, 구약성경을 깊이 연구하다가 예수가 메시아라는 진리를 터득하여 그것을 가르치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그가 에베소에 와서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점을 변론하면서 가르쳤습니다. 그의 강좌를 듣던 회중 가운데 사도 바울로부터 이미 온전한 복음을 듣고 믿게 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는 사람도 끼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볼로의 강의를 들어보니,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아볼로는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대표적인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도달한 지점은 요한의 해석과 요한의 세례까지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말씀과 예수 이후의 사도들의 전도는 아직 접해보지 못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예수님 증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값지고 유익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 스스로가 증언한 바와 같이 요한은 예수님의 신 들 자격도 없는 자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으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광대한 세계가 열렸으며, 구원과 생명의 세계가 광대하게 열렸습니다. 아볼로에게는 바로 예수님 자신을 통해 열린 하나님과 구원의 더 깊은 영역에 대한 접속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 하신 후에는, 12 사도가 예수님과 예수님이 행하신 구원사역을 성령의 영감과 계시로 해석하고 보완하였습니다. 나중에 사도가 된 바울은 이 작업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신약성경 27권중에서 14권을 썼습니다. 사도바울은 생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신 많은 중요한 진리를, 계시를 받아서 전달해 주었습니다. 이 토대 위에 기독교가 세워졌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에게서 배우고 그를 통해 은혜의 구원과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가장 온전한 복음을 간직하고 가장 발전된 수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아볼로의 설교를 들었을 때, 아볼로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열심은 있으나, 요한의 세례 단계에서 그 발전이 멈추어 있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설교 후에 조용히 아볼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하나님의 도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더 깊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볼로는 그들의 가르침을 감사하게 받아들여 자신의 신앙을 순간에 엎그레이드 시켰습니다. 아볼로는 그 두 사람의 추천서를 가지고 아가야라고 하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갔는데, 아가야 지역에 가서는 아볼로가 엎 그레이드 된 복음을 가지고 또 다시 힘있게 복음을 전파하고 반대자들과 변론하여 이겼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세례가 3가지 소개되어 나옵니다.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와 사도들을 통해서 주어진 성령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는 물세례였습니다. 요한이 베푼 물세례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그 회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확실히 하여 예수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는 세례였으므로 회개의 세례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의 세례에는 회개도 포함되어 있지만, 예수님과의 연합을 상징하는 의식으로 베풀어졌습니다. 자가가 왕노릇 하던 지금까지의 삶을 물속에 장사지내고, 그리스도예수를 왕으로 모셔들이고 그 분과 연합하여 새로운 삶을 산다는 의미로 물속에서 다시 올라오는 세례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사건에 대한 압축적인 재현입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십자가의 죽음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연속입니다.

 

기독교 신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행위는 우리가 믿는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와 앞으로 신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 가에 대한 압축적인 재현입니다.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와 연합하여 거듭난 새사람은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부활한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세례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성령 세례는 그 의미가 좀 다릅니다. 성령 세례란 구약 시대의 사사나 왕이나 제사장 선지자들이 받았던 기름부음의 신약적인 버전입니다. 예수님이 베푼 물세례는 구약 시대의 할례와도 같은 것이며, 성령세례는 기름부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할례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다 받았지만, 기름부음은 하나님 나라의 지도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왕의 사역, 제사장 사역, 선지자 사역이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 사역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는 사역입니다. 그 사역을 감당하려면, 할레와 율법만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기름부음을 받아야했습니다. 구약의 기름부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직책에 대한 임명이고, 다른 하나는 그 직책을 능히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성령의 권능과 지혜를 부어주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성령 세례는 예수를 믿는 모든 신자에게 베풀어집니다.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중요한 사역자로 임명되었고, 그 임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해주는 권능과 지혜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교회에서 외관상의 직분은 집사 장로 권사 목사 전도사 등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본질적인 직분은 구약과 똑같이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직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물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가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는 하나님나라의 섬기는 지도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해주는 사역 권능과 지혜를 부어주는 사건입니다.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 단계에 머물러 있다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예수 세례와 성령 세례 단계로 넘어가서 교회의 온전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사도 바울이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에베소 지역으로 갔을 때, 12명 쯤 되는 제자들의 무리를 만났습니다. 누가는 이들을 어떤 제자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제자란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에 따라 자기 생활을 살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대충 신앙 생활하는 자에게 제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바울이 만난 12명의 신자들은 제자의 수준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믿었으며, 아는 것만큼 실천하는 신실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신앙 생활하던 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결함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실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단계가 요한의 세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볼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자들이었습니다만, 성령에 대하여는 들어본적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보다 자세하게 가르쳐주고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주고는 머리 위에 안수하였는데, 그들에게 성령 세례가 임하여 그 자리에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이들 12명의 신자들도 요한의 세례 단계에서 예수 세례를 거쳐 성령 세례의 단계로 넘어 왔습니다.그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자마자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성령 세례는 대부분의 경우, 받았는지에 대한 외적인 징표가 나타납니다.

 

행10:44-48에서/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성령세례의 외적인 징표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방언과 예언입니다. 방언과 예언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매우 직접적인 활력을 불어 넣어 줍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사랑과 능력과 지혜와 생명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강화시켜서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잘 믿게 해 줄 뿐 만 아니라, 하나님의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사역에 입문하게 해줍니다.

 

왕, 제사장, 선지자는 단순히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써 자동적으로 그 사역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되는 전문성을 습득하고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그 직책에 상응하는 전문성과 훈련 위에다가 성령의 세례가 부어지면서 하나님 나라 사역자로서 제 기능을 하게 됩니다. 전문성과 훈련이 완성되기 전에 먼저 성령 세례를 받았으면,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서 그에 걸맞은 전문성과 훈련을 진행시켜가야 합니다.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이런 저런 사역으로 들어가면 적지 않은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그 사역에 필요한 전문성과 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 세례는 분명히 신안 인격의 일부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이 가져다주는 인격변화의 효과는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세례는 인격의 모든 결함과 장애를 일시에 치유하거나 개선해내지는 않습니다. 성령세례가 전문성과 훈련의 결함을 즉각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처럼, 인격적 성숙을 즉각 가져다주지도 못합니다. 전문성, 훈련, 인격적 성숙은 별도의 과정에서 절차를 밟아 진척시켜나가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성령세례가 모든 것을 일시에 해결해주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성령 세례를 매우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마3:11에서 세례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성령 세례는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이 베풀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예수님이 베풀어주시는 성령세례는 받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믿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행8:5-17: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 전도에서처럼 예수를 믿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별도의 사건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발해주는 데는 없을 것입니다.현대 한국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영접할 때, 그 때 성령세례가 임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 주장은 사도행전 8장의 사마리아 전도 사건과는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예수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과정에 성령님의 역사가 없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 분명히 성령님이 역사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에 분명히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일정한 감동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도대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을 수조차 없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외적인 징표가 수반되는 사역권능의 부여로서의 성령세례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누가 12:49절에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으로 불붙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제대로 믿는 다면, 성령 세례를 받아서 성령으로 불타올라야 합니다. 성령 세례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을 위해 마련하신 모든 선물 가운데 단연 으뜸입니다. 이 선물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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