Ⅸ. 치유사역의 실제
어떤 사역이든지 이론을 아는 것보다 실제로 사역하는 것은 훨씬 더 정교하고 신중함을 요구한다. 사역자들이 미숙함으로 실수하는 것은 사역자의 입장에서는 용납될 수 있을지 몰라도 내담자 입장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역을 시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 많은 사역자들이 실제로 사역하는 현장을 참여하여 보고 훈련을 통해 충분히 숙지하고 사역에 임해야 할 것이다.
1. 사역에 임하는 준비 자세
사역하면서 영적인 능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격적 자세와 내담자를 생각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내담자는 대부분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역자의 태도에 따라서 상처를 잘 받는다. 종종 사역자들의 거친 말투나 행동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다. 훈계식이나 명령식, 또는 책망식의 표현은 특히 권위자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에게 거부감을 주기 때문에 최대한 겸손한 자세를 보여주며 사역자라는 의식보다는 성령님의 조력자라는 자세를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이사야 55:8절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내 길은 높으며.....”라는 구절은 사역자가 깊이 새기고 묵상하며 사역에 임할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님의 생각을 듣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2. 사역을 시작 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들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할 것인지는 그날 아침에 현장에 들어가서 기도하며 마음에서 감동이 오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정해 놓은 순서가 없이 그날그날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감동 주시는 대로 진행한다. 자신이 어떤 계획을 미리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사역자들이 특히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세 가지이다.
찬양과 말씀과 기름부음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때마다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때는 말씀이 먼저 떠오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찬양이 먼저 떠오를 때도 있다. 찬양을 부르며 바로 기름부음으로 들어갈 때도 있다. 찬양은 주로 조용하며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찬양이나 주님의 영광을 높이는 찬양이나 보혈 찬송을 사용한다. 기도는 모든 주도권을 성령님께 넘겨드리는 내용으로 기도한다.
보혈 체험의 기도
보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내가 쓴 책 ⌜그리스도의 보혈⌟을 참고하라. 우리가 말로 명령만 해도 보혈이 임하지만 좀 더 깊은 경험을 위해 우리의 영이 골고다로 나아가자고 설명하고 보혈을 마시게 한다. 우리의 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육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에 갇혀 살지만 영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는 것이며 이것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는 제한을 받지만 영과 혼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도록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은 수 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과거의 그 현장으로 여행할 수 있으며 현재 안방에 앉아서도 전국 방방곡곡 세계 각국을 순방할 수 있다. 흔히 상상이라고 말하지만 그 상상은 우리의 영혼이 자유롭게 활동한 수 있는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2천 년 전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골고다 언덕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맡기는 기도(수술대 기도)
수술대 기도라는 명칭은 내가 사역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이때 이해를 돕기 위해 종종 나 자신이 수술 받던 이야기를 한다. 그 때 간호원이 마취도 안한 상태에서 내 바지를 내려서 민망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성령님이 치유하시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수치스러운 치부를 드러내더라도 그분께 맡겨야 한다고 설명하고 믿음의 상상으로 수술대를 만들고 자신을 그곳에 올려놓고 성령께서 어떻게 진단하시는지 보게 한다. 이 때 강조하는 것은 어떤 계획이나 프로그램도 내려놓고 심지어 아무 기도나 요구사항도 다 내려놓으라고 강조한다. 2~3분간 바라보게 하고 맡기는 기도를 하고 진행하면 성령님의 임재를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경험에 의하면 사역이 막힐 때는 항상 나의 경험대로 생각 없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선입견에 의해서 시작할 때 막히는 것을 종종 보게된다.
한번은 재 경험자 4명이 들어왔는데 기도하는 중 한 젊은 자매에게 태아기를 해야겠다는 감동이 와서 그분에게 물어봤더니 태아기를 세 번이나 했는데 아무것도 안 보였다고 했다. 어떤 사역자에게 받았느냐고 했더니 치유센타에서 태아기를 잘 하시는 분 들 이었다. 순간 그럼 다른 것을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곧바로 그 선입견을 내려놓고 그 자매에게 ‘그동안 때가 안돼서 그럴 수 있으니까 아무 기대 하지 말고 성령님께서 보여주시면 하고 아니면 그만 두자.’하고 말하고 시작 했는데 처음부터 계속해서 상처들이 보이면서 태아기의 많은 상처가 치유되었다. 나는 그분에게 ‘그동안 태아기 해달라고 요청했지요?’ 했더니 그랬다고 대답했다. 바로 그 요청 때문에 성령님이 연기시키신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 방에 왔을 때 그분은 태아기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에 성령님이 사역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가 어떤 요구나 계획을 가지고 시작 할 때 가만히 계시고 완전히 포기할 때 역사 하신다. 사역을 오래 하면서 계속 경험에 의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는데 이것을 물리치기가 매우 힘든 것을 느낀다. 그래서 수술대 기도 시간을 통해서 사역자인 나 자신도 사역자가 아니라 치유 받을 존재이며 성령님만 사역자라고 고백하고 다른 조력자나 내담자에게도 모두가 치유 받을 존재임을 고백하고 우리는 다만 주님의 치유하심을 목격하고 그 영광만 찬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시작한다.
3. 사역 중 먼저 하는 것들
상 담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끝나면 상담을 통해 다음 세 가지를 먼저 조사하고 다시 기도하며 토설을 먼저 할 것인지, 축사를 먼저 할 것인지, 태아기를 먼저 할 것인지를 성령님께 묻고 결정한다. 물론 상담을 이때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상담을 하고 또 토설을 심하게 해서 지쳤을 경우에는 상담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쉬도록 한다.
상담할 때 주의 할 것은 자칫하면 내담자의 말에 끌려서 엉뚱한 잡담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주로 성경의 중요한 내용들(특히 내적 치유나 영적인 존재)을 설명해 주면서 삶에 적용하도록 권면한다. 특히 목회자들이나 장로, 권사 또는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선 지식이 있기 때문에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방해를 받는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들어왔을 때는 먼저 보혈의 복음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그동안 기존의 신앙에서 별 것 아닌 것으로 알고 행해왔던 짐승의 피와 예수보혈에 대한 복음으로 접근하면 대부분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어떤 분들은 감격해 하며 너무 고마워하는 모습도 보게 된다. 그런 상담을 통해 사역자에 대한 신뢰도를 갖게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더구나 젊은 사역자가 선배 목회자를 치유할 때 여러 가지 선입견 때문에 방해를 받는데 보혈의 복음은 그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사역자에게 신뢰를 갖게 하는데 매우 효과가 있다. 특히 마음 문이 닫힌 사람에게는 상담을 통해 마음을 열고 신뢰감을 갖게 하는 것이 사역에 도움이 된다. 상담을 할 때는 용어를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단정적인 말을 피하고 질문을 할 때도 ‘혹시’ 라는 표현을 사용 하여 부드럽게 표현해야 한다. 사역도중에 환상이 보이거나 어떤 확신이 오더라도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사역자는 환상을 보고 ‘당신 속에 지금 무엇이 들어있다.’는 식으로 표현하여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상담은 가능한 부드러운 어조로 말하되 본인이 스스로 자연스럽게 말하게 해야 한다. 책임을 추궁하며 궁지로 몰아넣거나 유도질문으로 치부를 캐내는 식의 상담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가계도 파악
가계도를 파악하면서 상담을 하면 많은 경우에 마음의 문이 열리며 자신의 가계도를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가문에 흐르는 내력을 깨닫게 된다. 가계도를 그리면서 주로 가문에서 우상숭배에 관련된 사람, 특이한 질병, 빈곤의 정도, 부부관계(이혼, 사별), 성적문란(축첩, 외도)의 정도, 중독(도박, 알콜, 마약) 등을 조사한다.
이해도 파악
내적치유의 가장 기초는 '이해'라고 생각한다. 종종 이해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역을 시켜서 거부감을 갖고 있는 내담자들의 호소를 듣는다. 그래서 '왜 토설을 해야 하는지?' '상처가 무엇인지?' '본인이 자신의 문제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등의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를 시킨 후에 진행한다.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역을 진행하는 것은 깊이 치유가 되지 않을뿐더러 더 큰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구원의 확신 점검
구원의 확신을 질문하면 많은 경우에 구원의 확신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론적으로 확실하게 정립이 되지 않아서 설명을 못해 쩔쩔매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에는 보혈의 복음을 중점적으로 설명해 주고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부터 시작해서 자세한 설명을 해 준다.
4. 치 유
토설과 용서
토설을 시작하기 전에 대화를 통해서 반드시 이해부터 시켜야 한다. 용서하고 용서받는 원리를 통해서 토설과 회개라는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이해시키고 시작하면 훨씬 더 잘한다. 또 상처는 피해자의 입장이며 죄는 가해자의 입장임을 설명을 한다. 이 부분은 사역자 자신도 정확히 분별하지 않으면 상처를 주게 된다.
어떤 자매는 초등학교 다니는 딸아이와 함께 참석하였는데 상담을 하는 중 자기 딸아이가 자꾸 손으로 성기를 만지는 것 때문에 고민을 털어놓자 혹시 임신 중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느냐고 물어서 임신 중에 자위행위 한 것을 말했더니 그러면 그 아이에게 가서 사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라고 해서 그대로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더 당당하게 엄마에게 달려들면서 엄마도 그랬잖아! 뭐가 잘못 된 거야?라며 계속 반복해서 엄청난 상처를 받고 치유센타 소리만 나와도 분노가 끓어오른다고 했다. 이런 일은 상담자가 죄와 상처를 구분하지 못해서 일어난 사례 중의 하나이다. 죄의 문제를 상처의 문제와 같은 방법으로 처리를 한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엄마가 자신의 가책되는 문제를 철저히 회개하고 영적인 음란의 세력을 잡아주면 훨씬 더 깊은 치유가 일어날 것이며 딸아이에게도 역시 흐르고 있는 음란의 세력을 잡아주면 큰 문제없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을 사역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오히려 큰 상처를 입히고 마음의 문을 닫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토설을 시킬 때는 특히 어떤 특정인물을 매트에 올려놓고 토설 하라는 것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을 종종 보았기 때문에 그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악한 영이 쓰고 들어온 그 사람의 악한 형상이라고 설명을 하고 토설을 시킨다.
토설을 시킬 때 입은 감정이 빠져나가는 하수구와 같다고 설명하고 마음에서 하고 싶은 말은 어떤 말(욕)이라도 절제하지 말고 뱉으라고 설명한다. 때에 따라서 욕을 전혀 못하는 사람은 생각에서 나오는 감정을 방언으로 하라고 하면 토설이 잘 되는 사람도 있다. 강제로 욕을 시키면 거부감 이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방언을 사용하면 더 토설이 잘 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 한 두 번 정도는 손을 들고 예수님께 상처를 물어서 토설을 시키지만 계속 그런 방법으로 하면 최근에 기억되는 사건들만 계속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또 뿌리를 찾지 못하고 곁가지만 가지고 많은 시간을 낭비하기 때문에 한 두 번의 토설로 감정을 끌어 올린 뒤에는 부모에 대한 삶을 질문하며 집중적으로 부모와 가까운 친척들이나 또는 어린시절 친구관계에서 뿌리를 잡아낸다. 대개의 경우는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뿌리인 경우가 많지만 그것이 뿌리인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가 3살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무 상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상처가 없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고 말하며 태아 시절에도 상처를 받는데 3살이면 아버지가 나를 버리고 갔다는 배신감의 상처가 깊이 박혀 있어서 다른 사람을 깊이 신뢰하지 못하며 하나님도 깊이 신뢰하지 못한다고 설명하고 토설을 시킨다. 그런 경우의 또 다른 상처는 그리움의 상처이다. 그리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생각하고 상처인줄 모르는 상처와는 반대되는 또 다른 상처이다.
어떤 사람은 10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머니에 대한 아무 기억도 없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상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10살에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아무 기억이 없다는 것은 어머니를 잃어버린 깊은 슬픔 때문에 다른 상처나 기억들이 모두 무의식 속으로 잠재해 버린 것이다. 사람은 상처가 클수록 그 아픔을 잊기 위해 망각이라는 방어기재를 사용해서 깊은 무의식으로 밀어 넣기 때문이다.
위의 두 사례와 같이 일찍 돌아가신 경우에는 그리움의 상처가 크기 때문에 욕을 하도록 시키면 역효과가 난다.
이럴 때는 어머니(또는 아버지)를 큰 소리로 반복해서 부르도록 요청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하지만 사역자가 옆에서 더 크게!를 반복하면서 부추기면 몇 번째 안 가서 통곡을 하면서 외칠 때 함께 찬송을 부르며 위로하면 큰 효과가 있다.
또 어떤 경우는 부모가 아닌 자녀가 일찍 죽어서 부모가 받는 상처가 있다. 그럴 경우에 엄마들은 아이가 너무 착하고 잘해서 상처가 없다며 아이를 감싸준다. 그러나 자녀가 잘못한 것이 상처가 아니라 잘하다가 간 자녀는 잘했기 때문에 더 큰 상처가 들어갔음을 인지시킨다. 그리고 그 아이가 죽은 것 때문에 힘들었던 감정을 토설 하게 한다. 이런 때는 욕을 하게 시키는 것보다 그 아이의 이름을 크게 반복해서 부르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통곡을 하면 찬송을 부르며 위로해 주고 마음에서 떠나 보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다. 이 때 사용하는 위로의 찬송은 ‘나같은 죄인 살리신(405장)’의 곡에 ‘아시지요’가사로 바꿔서 부르거나, ‘피와 같이 붉은죄(144장 3절)’ ‘주의 공로 의지하여(337장 3절)’등이 내담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좋은 가사들이다. 마음에서 그 아이를 떠나보내는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낙태시킨 죄책감의 치유’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토설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용서하도록 유도한다. 마음의 감정에서 용서가 안 될 경우는 다시 토설 시키거나 숙제로 남겨주고 충분한 감정 정리가 된 후에 용서하도록 인도한다. 충분한 감정토설이 안 된 경우에 너무 설교 식으로 용서를 강요하면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쉽게 용서해 줘서도 안 된다고 말해 주는 것이 내담자의 마음을 공감해 줌으로 그가 더 성실하게 감정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준다.
회개와 자백
회개의 문제는 토설보다 더 신중하게 다룬다. 특히 여성들이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죄에 대해 강제로 말하도록 하면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은 마음 문이 닫히는 경우도 있고 또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사역자를 피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또 기록하는 것을 보면 더 거부감을 갖게 되고 그래서 죄를 자백하지 못하고 숨기게 되면 다시 숨긴 것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릴 수 있다. 그러므로 우선 죄의 고백은 상담자에게 말할 필요가 없고 예수님께만 고백하면 용서가 된다고 말해주고 큰소리로 고백하든지, 방언으로 하든지, 중요한 것은 진심으로 회개 하는 것이며, 특히 과거에 회개했어도 마음에 용서받은 확신이 없는 것은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개했기 때문에 용서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어렸을 때부터 떠오르는 모든 죄에 대하여 고백하도록 설명을 한다. 그리고 사역자는 내담자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다가 떠오르는 죄가 있으면 함께 회개한다. 내담자에게 회개가 끝나면 사역자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크게 말하게 시키고 끝난 후에는 중요한 몇 가지를 점검한다. 특히 신앙생활 중에 주일을 범한 것이나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한 것 등의 내용을 회개했느냐고 질문하고 안 했을 경우는 그 부분을 회개시키고 용서의 선언과 마무리 기도를 한다. 대부분 그렇게 하면 부담 없이 회개하기 때문에 기록지에는 아무런 내용도 기록할 수 없지만 내담자는 자유로움을 얻는다. 우리의 목표는 내담자에게 치유를 통해 자유를 주는 것이지 기록을 통한 자료수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죄의 문제를 자백하도록 강요하는 것 때문에 상처를 받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상담자에게 자백하도록 하는 것은 일반 상담의 원리일 뿐 기독교 상담자는 철저히 예수님에게 말하도록 해야 한다.
낙태시킨 죄책감의 치유
일단 낙태시킨 경험이 있는지 확인이 되면 그 부분은 특별히 다룬다. 어떤 사람은 전혀 죄책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회개를 했어도 늘 죄책감에 눌려 있는 사람이 있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성경적으로 살인죄를 범했음을 설명해 주고 회개하도록 한다. 특히 태아기 치유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생명은 엄마 뱃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하나님이 영을 보내신 완전한 인격임을 설명해 준다.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눈을 감게 하고 먼저 그 낙태된 아이의 이름을 짓게 한 다음 베개를 가슴에 안게 하고 이름을 불러가면서 아이에게 '미안하다' '엄마를 용서해줘' 등의 말로 사과하도록 인도한다. 이 때 여유를 가지고 충분한 시간을 준다. 어떤 사람은 했는데도 사역자가 서둘러 베개를 빼앗아 가서 치유가 되지 않은 것을 호소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시키며 진행한다.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게 한 다음에는 아이가 뭐라고 하는지 아이의 말을 들어보게 한다. 대부분의 경우 진심으로 뉘우치는 엄마들은 아이가 엄마를 용서하는 말을 듣는다. 아이가 용서하는 음성을 들은 후에는 예수님께 맡기도록 요구한다. 이 때 아이에게 예수님께 잘 부탁해 놓을 테니 내가 갈 때까지 잘 있으라는 하직인사를 하게 한 뒤 예수님에게도 부탁하는 말을 하게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 아이를 맡기라고 하면 베개를 천천히 앞으로 내 밀 때 베개를 받아서 조용히 옆에 내려놓는다. 이 때 본인이 베개를 내 밀 때까지 충분히 기다렸다가 진행한다.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다가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아이에 대해 잊지 못하고 그리움에 사로잡혀 있는 엄마들도 종종 있다. 이런 엄마는 늘 그 아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삶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이 때 죄책감 보다는 그리움을 지우는 작업을 한다. 진행은 낙태시킨 아이나 비슷하게 하지만 대화의 내용을 조절해 준다. 그 아이가 엄마를 버리고 가서 너무 보고 싶고 참기가 힘들다는 내용을 아이에게 말하게 하고 또 아이가 살았을 때 잘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빌게 하고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하게 한 후 예수님께 부탁하게 하는 순서를 갖는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가 살았을 때 함부로 욕을 한 것이나 사달라는 것을 제대로 사주지 못해서 마음에 걸렸던 일들을 얘기하며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데 깊은 치유가 일어난다.
또 한 가지 비슷한 경우는 어릴 때 아버지나 어머니를 잃고 그리움에 사로잡힌 경우에도 같은 원리를 적용해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작업을 한다. 특히 잘 해주시던 부모가 어린 나이에 돌아가심으로 충격을 받고 그리움에 잡혀 있는 사람은 대인관계가 어려우며 배우자에 대해서 아무리 잘 해주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음 중심을 돌아가신 부모가 차지하고 있어서 누구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확히 말해서 우상숭배에 해당됨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서 그리웠던 부모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게하고 그로 인해 받은 상처를 토설하게 시키고 예수님께 맡기도록 인도한 다음 예수님을 영접하는 과정을 통해 치유가 된다.
위의 세 가지 경우에는 바로 이어서 예수님을 만나서 천국 여행을 시키도록 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치유가 된다. 천국 여행을 시킬 때에도 사역자가 의도적으로 ‘영안이 열릴지어다.’ 하고 말하면 열리지 않을 경우에 실망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 지금 저에게 천국 구경시켜 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본인이 말하도록 시키고 내담자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한다. ‘안 된대요.’라고 하기도하지만 본인이 응답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상처가 없고 또 많은 경우에는 천국을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 때 다른 것을 보여주는 안내도 필요하지만 반드시 죽은 아이나 돌아가신 부모를 만나게 해 주실 수 있는지 예수님께 묻게 하고 만나게 해 주는 순서를 진행한다. 낙태를 시킨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대부분 아이를 만난다. 아이를 만났다고 하면 그곳에 상황이 어떤지 형편을 묻게 하면 대부분의 아이는 너무 좋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다시 예수님에게 잘 부탁하는 인사를 하게하고 다음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내담자는 죄책감으로부터 너무너무 자유 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5. 가계치유
가계치유에 대한 간단한 설명
우선 조상의 죄와 저주에 대해 설명을 합니다. 조상이 지은 죄는 나에게 내려오지 않지만 그 죄로 인한 영향력은 후손에게 내려오는데 그 영향력을 저주라고 하며 이 부분은 자동으로 끊어지지 않으며 또 그 영향력 때문에 다시 범죄하게 되며, 그 영향력은 영적으로 자신에게 약점이기 때문에 악한 영의 공격을 많이 받게 되기 때문에 차단시켜야 한다고 설명을 합니다.
대신 회개와 차단
조상의 저주를 차단하는 첫 번째 단계는 죄를 인정하는 것과 대신 회개하는 것이다. 조상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파악하고 그 죄가 얼마나 하나님께 큰 죄인지 인식시키고 조상들이 몰라서 그런 것이니 자손이 대신 회개해야 함을 설명한다. 대신 회개한다고 조상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내려오는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과정임을 성경적으로 설명해 준다. 그리고 진심으로 따라하게 시키면서 가계도를 보고 조상의 죄의 목록을 찾아서 회개를 시킨다. 회개가 끝나면 예수의 이름으로 차단하는데 보통 두세 번 정도 차단하고 조상의 죄가 심각하면 한두 번 더 차단 한다.
보충설명
저주의 부분은 사역자의 한 두 번의 명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본인의 삶에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장기간 동안 싸워야 할 문제임을 인식시켜 준다. 가계의 흐름을 타고 내려온 부분은 습관이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삶을 고쳐가면서 계속 싸워야 할 부분임을 설명해 주고 집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조상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의 삶에 유전된 영향력을 찾아서 고쳐야 한다고 설명한다.
6. 축 사
귀신에 대한 기본 이해
우선 귀신에 대해 바른 이해를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귀신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힘들게 신앙생활 할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신에 대한 많은 전설과 이야기들을 통해서 대단히 무서운 존재로 인식 되어 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귀신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가 서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축사는 대단한 영력이 있는 사역자들이나 가능하고 평범한 신도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안에 있는 세력은 내가 싸워야 할 세력이라는 것이다. 또한 귀신과의 싸움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초점을 맞추면 귀신은 저절로 약해지게 되어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령은 빛이시며 귀신은 어둠이다. 어둠은 빛이 들어오면 사라진다. 그러나 빛이 들어와도 내 안에 어떤 물체가 있으면 그 물체가 있는 밑에는 빛이 들어갈 수 없다. 그 물체는 죄와 상처와 왜곡된 지식(잘못된 지식)이다. 우리가 집중적으로 해야 할 일은 귀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물체를 치우는 작업이다.
축사에 임하는 기본 자세
우선 귀신을 축사할 때 어떤 귀신이 드러나도 내가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내가 사역할 때 드러난 귀신은 다른 아무 사역자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으며 또 다른 사역자들이 축사할 때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여도 못 본척 하고 지나쳐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귀신은 그 사역자에게 맡기시고 훈련시키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축사 사역을 하다보면 지나가던 사역자나 조력자가 덤벼들어 같이 명령하고 호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처하고 곤란할 때가 있다. 귀신은 통제하는 사람이 여럿이면 주위를 분산시켜 방해를 하기 때문에 축사는 반드시 한사람이 통제해야 쉽게 해결된다.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옆에서 기도해 주거나 정보를 제공해 주어서 사역자가 통제하도록 해야 영적인 질서에 무리가 없다.
특히 드러나는 경우에는 악한 영들이 여러 가지로 협박도 하고 공갈도 치고 거짓말도 하는데 어떤 경우라도 성령님께 기도하며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때는 다른 사역자의 이름을 부르며 ‘내가 OOO도 안되는데 너 가지고 될 것 같으냐?’하며 공갈을 친다. 그럴 때는 예수 이름으로 잠잠하도록 시키며 담대하게 대항을 해야지 긴장하거나 서두르거나 자신이 없어하면 악한 영은 귀신같이 알고 더 장난을 친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악한 영이 나가지 않더라도) 신체의 특정 부위를 누르거나 압박을 가하면 안된다. 가끔씩 특정 부위를 누르면 빨리 나간다는 사고를 가지고 자기 경험을 말하는 사역자들이 있다. 그러나 기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프다고 했더니 더 세게 눌러서 억지로 참고 안 아픈 척 했더니 그만하더라는 말을 들을 때 같은 사역자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물론 사역자 본인은 그것을 빨리 나갔다고 해석하겠지만 영적인 존재가 육체에 통증을 주어서 나간다면 맞지 않는 논리다. 몸을 눌러서 축사를 하는 것은 그동안 기도원이나 기존 교회에서 많이 행했던 관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악한 영의 허점이 무엇이며 어떤 원리에 의해 축사가 되는지 이론과 근거를 가지고 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헛된 관습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더구나 악한 영은 여러 가지로 장난을 치기 때문에 몸을 눌러서 축사를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며 오히려 아픈 통증 때문에 악한 영이 나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나간척하게 함으로 오히려 악한 영을 숨겨주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나가지 않을 때는 문제를 진단하고 봉하는 것이 좋다. 무리하게 귀신을 쫓아내는 것보다 순리적으로 내담자 본인이 싸우도록 원리를 가르쳐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더 깊은 치유의 지름길이다.
축사를 진행하는 방법
우선 어떤 사람이든지 기름부음을 한 후 ‘예수의 이름으로 인격과 악한 영을 분리하노라.’ 선언한 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영은 떠나갈지어다.’하고 명령을 하면서 내담자의 눈섭을 주시한다. 특히 축사를 할 때는 반드시 눈을 뜨고 사역하며 여러 가지 반응에 대처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눈썹이 바르르 떨리는 사람은 드러나는 경우가 많고 눈썹이 전혀 떨리지 않는 사람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자연스럽게 마음의 상태(긴장, 불안, 평안등)를 물어보며 진단하기도 한다.
악한 영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
드러나지 않는 경우는 직접 따라하게 시켜서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의 정체가 무엇인지 예수님에게 묻게 하고 응답을 기다린다. 많은 경우 드러나지 않아도 마음의 감동으로 무슨 영이 있는지 본인이 대답한다. 축사 명령을 내리고 ‘붙어!’ ‘나가!’등의 구호를 반복하며 본인이 확신이 올 때까지 외치도록 하기도 한다. 가끔씩 사역자가 일방적으로 3~4회 명령하고 축사를 마친 것 때문에 마음에 꺼려하며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본인에게 확신이 올 때까지 명령하도록 하는 것이 무리가 없다. 뿐만아니라 악한 영은 본인의 의지를 사용해서 축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악한 영이 드러나는 경우
드러날 경우 초보 사역자들은 구체적으로 묻고 정보를 캐내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가능하면 악한 영들과는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악한 영들에게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사역자들도 있지만 악한 영들은 근본이 거짓 영이기 때문에 대부분 거짓말을 하며 또 대부분 악한 영들에게서 얻는 지식은 그 사람을 죄 짓게 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을 사역자가 듣게 되면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내담자는 수치감에 빠지기 쉽다. 어떤 귀신들은 사역자를 칭찬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사역자를 교만하게 하기 위한 술책이기 때문에 악한 영들이 하는 말은 그 어떤 내용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도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광고하는 귀신에게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또한 악한 영들에게서 얻는 정보란 이미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들일 뿐이다.
악한 영들은 사역자를 욕하거나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악한 영들이 사역자를 흥분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사역자를 흥분시키면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과격한 행동으로 대처하게 되는데 이것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광고하는 효과를 노리기 위한 전략이다. 이러한 전략에 속지 말고 오히려 악한 영들의 전략을 비웃으며 조용히 바라보고 있으면 악한 영들은 힘을 잃게 되며 사역자는 전혀 힘 들이지 않고 악한 영들을 다룰 수 있게 된다.
때로는 과격하게 드러나는 사람도 있지만 절대 당황하거나 긴장할 필요가 없다. 드러나면 소리를 지르며 명령하는 사역자도 있지만 사역자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조력자나 옆에 있는 성도들이 긴장을 하게 되고 악한 영이 무서운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되며 목사님도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야단치는 것을 보니 우리는 어림도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가능한 여유를 부리며 오히려 더 작은 소리로 명령하면서 악한 영이 힘이 빠지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하면 옆에 있는 조력자들이나 평신도 들이 아! 악한 영은 별 볼일 없는 존재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교회는 유치부 아이들도 악한 영이 드러나서 폭언을 하며 폭력을 써도 무서워하지 않고 옆에서 같이 예수피를 뿌리며 공격하는 것을 본다. 처음 사역을 할 때는 악한 영들이 드러나면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약을 올리기도 하고 정보를 얻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그런 것들이 다 부질없는 일들이며 예수님의 방법대로 ‘잠잠하고 나오라.’는 명령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이 된다.
7. 태아기 치유
기본원칙
태아기 치유를 할 때는 특히 더 예민하게 성령님의 감동을 기다린다. 그리고 특별히 내담자에게 자신의 요구나 생각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도록 당부를 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목사님, 태아기 치유 좀 해주세요.’하고 요청하는 사람은 본인이 포기할 때까지 시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가계도를 살펴보고 태아기 상처가 많을 듯 한 사람이나 내적치유를 받았으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호소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성령이 감동하시는 대로 태아기 치유를 시도한다.
태아기의 상처가 많은 사람의 유형
태아기의 상처가 많은 사람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임상 경험 중 주로 나타나는 유형은 1)부모가 자주 다투었다는 사람 2)딸만 있는 가정에서 3~4번째 서열 3)식구들 중에(아버지나 작은아버지)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이 있는 경우 4)엄마가 할머니에게 시집살이를 많이 했다는 사람 5)부모가 젊었을 때 질병으로 장기간 고생 했다는 사람 6)어렸을 때 집안이 매우 가난했었다는 사람 7)엄마의 성격이 매우 예민하다는 사람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반드시 태아기 상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태아기 치유의 진행방법
먼저 태아기 치유에 대한 이해를 시켜 줘야 한다. 시편 139:13-16에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라고 기록한 말씀을 근거로 우리의 육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오랜 시간을 거쳐서 성장하지만 결합되는 순간 하나님이 보내시는 영은 완전한 것이기에 태아기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우리의 영이 알고 있으며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영을 일깨워 기억을 회복시키시고 치유하는 것이 태아기 치유라고 설명을 하고 기름부음을 한다. 기름부음은 필요에 따라서 세워놓고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눕혀놓고 한다. 기름부음이 충분히 되었다고 생각할 때는 누운 상태에서 양손을 바로 세우게 하고 ‘예수님의 오른 손에 아빠의 정자가 들려 있습니다. 예수님의 왼손에는 엄마의 난자가 들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두 분이 만나서 결혼하고 엄마 뱃속에 OOO가 잉태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두 손을 포개어 배에 얹고 진행 한다. 특히 태아기를 할 때는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행하며 얼굴 표정이나 몸의 동작이나 말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의 오관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보여 지는 환상이나, 들리는 음성이나, 마음의 느낌이나 냄새까지도 성령님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사용해 달라고 기도하고 본인에게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하고 반응이 나타날 때는 말하도록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다리다가 아무 반응이 없으면 마음의 느낌이 어떤지 물어보고 평안하다고 말하면 평안하게 지켜주신 것에 대해 감사 기도를 하고 다음 달로 넘어간다.
처음에는 잉태된 순간부터 한 달 단위로 끊어서 하지만 출생 후에는 6개월 단위로 하고 첫돌이 지난 후 부터는 1년 단위로 해서 6~8세까지 진행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는 그때그때 성령님의 치유를 기도하고 상태를 확인한 후 다음으로 넘어간다.
주로 확인하는 내용은 상처, 악한 영, 등을 확인하고 상처가 있을 때는 상황을 봐서 토설도 시키고 보혈을 사용하기도 하며 악한 영이 들어왔을 경우는 불러내서 정보도 캐내지만 축사할 때는 천사를 동원시키거나 예수님이 직접 처리하도록 기도하면 축사가 잘 된다. 태아기가 끝나면 대개의 경우 천국으로 인도하는데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도 사역자의 의도로 하지 않고 ‘예수님 지금 저에게 천국 구경 시켜주실 수 있나요?’ 하고 본인을 따라하게 시킨 다음 본인이 응답을 받도록 하면 무리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 본인에게 알려주시며 아무 응답이 없을 때는 보여 달라고 기도하고 그래도 안 되면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보고 못 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주지시켜 주고 사역을 마친다.
8. 성령기름부음과 요람에 대하여
성령기름부음에 대하여
성령기름부음을 하는 경우에는 서서 하거나 앉아서 하거나 누워서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자세로 할 것인지도 성령님께 묻고 감동대로 하는 것이 좋다. 앉아서 하거나 누워서 할 때는 별 무리가 없지만 서서할 경우에 이해되지 않아서 거부감을 갖고 마음이 닫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서서 기름부음을 할 때에는 ‘우리가 기름부음을 할 때 일어서는 것은 귀한 손님이 올 때 일어서서 맞이하는 것처럼 성령님이 기름 부어 주심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맞이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기름부음 할 때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넘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넘어질 때는 뒤에서 받쳐주기 때문에 다치지 않으니 주님께 맡기고 넘어가는 것을 억지로 버티거나 넘어가지 않는 것을 일부러 넘어지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렇게 하면 대부분 넘어지지만 간혹 넘어지지 않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자매님 편안하게 누워 보세요하고 다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종종 성령기름부음 할 때 밀어서 넘어뜨리는 사역자들 때문에 상처 받은 사람이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행위는 사역의 질을 떨어뜨린다. 성령기름부음은 넘어져야 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요람에 대하여
요람을 태울 때 무조건 태우지 않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우선 요람을 태우게 되면 20~30분 정도의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요람에 대해서 설명해 줄 필요도 있다. 굳이 모든 사람에게 요람을 태울 필요는 없다. 사역을 진행하는 중에 많이 지친 사람은 때에 따라서 요람을 태우는 것이 좋다. 천국을 여행한 사람의 경우에는 사역을 마치고 요람을 태우는 것보다 잠시 평안한 상태에서 쉬게 하는 것이 좋으며, 때로는 바로 일으켜 세워도 별 문제는 없다. 요람을 태울 경우는 예수님이 나타나거든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잠이 오면 잠을 자도 좋다고 말하여 부담감을 덜어줘야 한다. 요람은 평안한 마음이 중요하다. 종종 어떤 분들은 아무 설명 없이 요람을 태워놓고 사역자들이 모두 나가는 바람에 언제 일어나야 하는지 잠이 오는데도 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서 갈등을 하며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9. 천국여행과 영안에 대하여
천국 여행을 인도하는 법
어떤 사람들은 천국 여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천국 여행은 치유 받은 내담자들에게 더없이 감격적인 경험이다. 물론 천국 여행을 했다고 그 사람이 갑자기 신앙이 좋아지거나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국의 경험은 그들이 영적인 세계를 믿게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설교로 10년을 말해도 바뀌지 않던 것들이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말씀을 들음으로 그 자리에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집사는 돈이 아까워서 십일조를 제대로 못했는데 천국 가서 예수님께 책망 듣고 온전한 십일조를 하기로 약속하고 십일조를 하는 것을 보았다.
천국 여행은 주로 태아기가 끝난 후에 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너무 깊은 상처를 토설하다가 쓰러지는 경우는 성령이 감동하면 바로 천국으로 인도하여 그 상처에 대한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하기도 한다. 항상 반복되는 얘기지만 사역자가 얼마나 민감하게 성령님의 감동을 순종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진행할 수 있다.
일단 예수님이 나타나시면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셨는지 물어본다. 이것은 악한 영의 장난을 막기 위한 것이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나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날 경우는 악한 영(특히 조상으로부터 온 영)의 장난이기 때문에 곧바로 축사부터 해야 한다. 대부분 예수님의 모습은 긴 세마포 옷을 입으셨으며 얼굴은 찬란한 빛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의심스러울 때는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보여 달라고 기도한다.
천국 여행 시 주로 경험 시키는 것들
천국 여행 시에는 예수님을 만나기 때문에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궁금한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이상한 것을 물어서 이런 프로그램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역자가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쓸데없는 것(특히 미래 일이나 사적인 문제)을 물어볼 때는 차단시킬 수도 있고 또 물어보아도 예수님은 아주 적절한 대답을 하시는 것을 경험한다. 어떤 자매는 ‘제가 직장 옮기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었는데 그것은 ‘네가 기도 하면 응답해 주겠다.’고 대답을 하셨다고 했다. 사역자가 주로 경험시키는 것은 성경에 있는 것들을 근거로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생명 강이나 생명나무를 보여 달라고 하고 먹어보게 한다. 그리고 천국의 자신의 처소를 보여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의 신앙상태에 따라서 다양하게 보여주신다.
어떤 권사는 교회에서 많이 충성을 하는 분이었는데 천국의 집이 아주 초라하게 나무로 지어진 것을 보여주셔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지금까지 충성한 것은 나를 위해 한 것이 아니라 너 자신을 위해 한 것이기 때문이다.’고 하셨으며, 어떻게 하면 황금 집으로 바뀌는지 물었더니 ‘그 나라와 의를 구하고 겸손하게 희생제물이 되어라.’고 응답해 주셔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지? 행위록에 어떤 행위가 기록 되었는지?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 교회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 교회를 위해서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목회자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옥은 어떤 곳인지를 경험하게 한다. 특히 지옥에서는 내담자가 죄를 지었거나 지을 위험성이 있는 항목들을 선택해서 그런 죄인들이 가는 지옥을 보여 달라고 한다. 예를 들면 음란죄를 지은 사람은 어떤 지옥을 가는지? 우상숭배, 제사를 지낸 사람은 어떤 지옥에 가는지? 목회자 괴롭힌 사람은 어떤 지옥에 가는지? 등의 내용을 물어보면 사람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수준에 맞게 보여 주시는 것이라고 설명을 한다. 예를 들면 음란한 사람들이 가는 지옥을 어떤 사람은 뱀이 칭칭 감고 괴롭힌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마귀들이 성폭행을 한다고 말해 똑같은 지옥도 그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보여주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천국 여행을 경험한 후 주의할 사항
천국을 경험한 후에는 반드시 몇 가지 사항을 알려줘야 한다. 먼저 천국에서 경험한 것의 신빙성 문제를 다룬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건이나 들려주신 것을 절대 신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항상 악한 영이 공격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또 자신의 믿음에 따라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개인의 믿음의 수준에서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신앙적 도전을 위해서 참고할 뿐이지 그것을 신뢰하고 게을러지거나 낙심하거나 우쭐하여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사람 저 사람에게 간증하고 다니지 말고 개인의 신앙을 위해 보여주신 것이니 약한 부분을 경건생활로 잘 보충할 것을 당부한다.
영안 사역에 대한 이해
성경에는 영적인 존재인 천사나 악한 영을 보았다거나 대화하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구약에서 뿐아니라 신약에서도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대화하시는 내용이 나오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직후 여인들과 제자들이 천사를 보고 대화를 한다. 또 사도행전 10장에서 고넬료도 기도하다가 천사의 지시를 받아 베드로를 만나고 12장에서는 베드로가 천사의 인도를 받아 감옥에서 나오는 등 천사나 악한 영과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나온다. 오늘날도 사역을 하다보면 악한 영이나 천사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은사에 대하여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속기 쉽고 위험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성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지만 성경에 있는 사실들이 현재에 나타나는 것들은 대단히 경이적인 현상이다. 무기가 위험하다고 그냥 방치해 두면 쓸모 없는 것이 되지만 조심스럽게 사용법을 배우면 적군을 물리치는데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듯이 영적으로도 위험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활용하면 영적 전쟁에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영안 사역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
영안을 열어서 사역을 하려면 몇 가지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먼저 영안은 누구나 열릴 수 있다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 영안이 열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영적 성결이다. 너무 보는 것에 집착하다보면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또 영안이 열리고 안 열리는 것은 그 사람의 믿음과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믿음이 좋아서 열릴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없어서 믿음을 주시려고 열어주시기도 한다. 가끔씩 ‘나는 믿음이 없어서 그런가 왜 아무것도 안보이죠?’하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고 말씀하셨다. 영안은 은사중의 하나로 이해하면 좋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에 따라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아시고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은사를 인간적인 판단으로 생각하는 자세부터 버려야 한다. 또 한 가지는 치유센타에서 보면 영안이 열렸다고 부러워하고 은근히 곁에 다가가서 기도해 달라거나 봐달라는 식의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해 우월의식을 갖게 하고 교만에 사로잡히게 하는 원인이 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영성 사역을 하는 사역자들의 말을 들으면 영안 열린 사람들이 가장 골치 아픈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영안 열린 사람들은 자꾸 주변에서 사람들의 요청을 받으면서 교만해져서 목회자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의 단점 중의 하나는 성경으로 수없이 설교하는 것은 잘 안 믿으면서 본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100% 수용한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4장 29절에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다. 물론 예언과 영안은 약간 다르지만 사용법은 같다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영안 열린 사람들의 믿음생활을 봐야 한다. 영안이 열린 사람은 악한 영의 공격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기초적인 경건 생활이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평신도가 목회자의 보호 없이 개인적으로 사용할 때는 악한 영들에게 많이 속기 쉽다. 어떤 사람은 증권을 하라는 응답을 받고 많은 돈을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악한 영에게 속은 것이다. 본인은 하나님의 지시라고 믿고 하지만 하나님은 비윤리적 이거나 비도덕적인 일은 절대로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증권이나 계놀이는 성경적으로도 고리대금업에 해당하는 것이며 그것은 기독교 윤리에 벗어나는 일이다. 기도원에서 예언하는 사람들이 간혹 무당 행위를 하는 것은 영적인 보호막이 없이 개인적으로 예언사역을 하기 때문에 악한 영에게 속아서 그런 것이다. 기존 교회에서도 영안 열리거나 예언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목회자가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또 관리할 수 있어도 목회자 몰래 개인적인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은사가 있는 사람 곁에는 항상 따라다니며 개인적인 것을 응답받아 달라고 부탁해서 은밀하게 개인행동을 하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영안을 열어서 보고 사역하는 일들은 반드시 영적인 사역자들의 보호 아래서 해야 한다. 그리고 악한 영들이 언제든지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목회자가 영안이 열린 평신도를 통해서 사역할 때에도 일시적으로 영적 경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좋지만 장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사역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한 교회를 맡기실 때 목회자의 인격과 신앙으로 치리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런데 목회자가 항상 평신도의 영안을 열어서 확인하고 사역을 하게 될 경우 목회자의 주도권은 약화되고 목회자가 직접 성령의 감동을 받는 감각이 약화되어 서서히 영안 열린 사람을 의존하게 되며, 그런 경우에 대부분 영안 열린 사람은 교만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영안 사역의 장점
영안 사역의 가장 큰 장점은 교회나 개인의 영적인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는 것과 악한 영의 실체를 보고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상처가 남아있는지? 그 상처가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고백되지 않은 죄가 있는지? 악한 영들이 얼마나 있는지? 악한 영이 왜 안 나가는지? 등의 정보를 얻어서 영적인 싸움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며, 이런 사역을 위해서 영안을 열어주신다고 볼 수 있다. 영안 열린 본인에게나 내담자에게 꼭 알려줘야 할 사항은 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안을 열어서 본 것은 영안 열린 사람의 영적 수준일 뿐이지 영적인 세계는 무한대의 세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청소할 때 눈에 보이는 쓰레기는 치우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훨씬 더 많은 것처럼 영적인 세계도 그렇다. ‘없다.’ ‘다 나갔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수준에서 본 것이지 실제로는 남아있는 세력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밭의 잡초는 깨끗이 제거했다고 해서 없어진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무수한 잡초가 잠재해 있으며 불과 몇 일 이내로 또 다시 올라온다. 영적인 세력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전쟁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영안 사역의 단점
영안 사역의 단점은 속기 쉽다는 것이다. 영안 열린 사람은 분명하게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100% 믿어버린다. 심지어는 성경에서 어긋난 것까지도 믿어버린다. 더군다나 목회자를 통해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더 많이 속는다. 그리고 자칫하면 교만하기 쉽다. 영안 열린 사람은 교만해서 목회자들의 말을 잘 안 듣는 경우가 많다.
영안 사역의 위험성
흔히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래의 사건을 물어보는 등 잘못 사용하는 사례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금 이사를 가야 하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결혼을 해야 하는데 어떤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지? 등 미래의 일들을 점치듯이 묻는 것들은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본 것에 묶이는 것이다. 그것을 참고로 해서 하나님이 왜 하나님이 보여주셨는지? 그 의미를 찾아서 고치고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환상을 운명론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서 꼼짝없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세 번째는 본 것을 전부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어린 딸에게 영안을 열어서 자기 속에 악한 영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며 다른 사람에게 소문을 내고 다니는 경우를 보았다. 그런 사람 속에는 강력한 속이는 영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어린아이의 수준은 아주 미약한 것이다. 그 어린아이가 본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그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의존하는 것이다. 물론 보면서 하기 때문에 실감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 그 방법에 얽매이다 보면 사역자 자신의 믿음이 둔감해지고 영적 감각이 둔해진다. 나중에는 아예 영안을 열어서 사역하지 않으면 답답해지는 현상까지 온다. 사역자는 자신의 영적 감각과 내담자 본인의 인격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주님께서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영안을 열어서 사역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가끔씩 처음 사역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역의 순서를 정해 놓거나 또 진행이 막힐 때 뭐가 안돼서 그렇다는 식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령님은 어떤 이론에도 묶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령님은 어떤 방법이든지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대로 할 때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역이 막힐 때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사역자와 성령님과의 관계의 문제이다. 사역을 오래 하다보면 가장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경험에 의존하는 프로그램 진행과 선입견에 의존하는 프로그램 진행이다. 경험에 의한 진행이나 선입견에 의한 진행을 할 경우 사역이 겉돌고 막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역자는 실수라고 말하지만 내담자에게는 큰 상처가 되기 때문에 사역자는 신중하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역해야 한다. 가끔씩 목사님들이 자신의 치유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방법을 배우려고 하는 자세와 교인들을 치유하는 일에만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하나님이 가장 요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 치유가 아니라 사역자 자신이 치유 받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가 치유 받은 만큼 치유되며, 성도는 목회자가 치유 받은 만큼 치유된다. 사역자는 사역을 시작할 때마다 자신도 똑같은 영적 환자이며 성령님께서 똑같이 치유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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