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따라가자 (빌 2:5-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 시간에는 “주님을 따라 가자”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무엇 혹은 누구를 따라 가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데이비드 허친스가 쓴 ‘레밍의 딜레마(Lemming's Dilemma)’라는 책에서 쥐의 일종인 레밍은 매년 선두 쥐를 따라 거대한 무리를 지어 절벽에서 뛰어내려 몰사하는데, 그들은 절벽 밑에 무엇이 있고 뛰어내리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따라가다가 죽음을 당한다고 하면서, 이에 의문을 품던 ‘에미’라는 이름의 한 현명한 쥐를 등장시켜 레밍이라는 대집단이 위기를 모면하는 내용을 작품에 그리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허친스는 이 작품에서 판단도 목적의식도 없이 따라가는 다수의 인생들을 고발하면서, 다들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나도 그렇게 하다가는 크게 잘못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집단이란 개인일 수도 있고 사회나 국가나 어떤 종교나 주의일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도 세상에 나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그저 남들이 살아가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살아가다가는 나중에 그들과 같이 멸망의 길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말씀하셨습니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길입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주님 가신 길은 어떤 길일까요?
1. 주님께서 가신 길은 자기부정의 길입니다.
그 말씀이 6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말씀으로 주님의 철저한 자기부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다는 것 상상할 수나 있겠습니까? 이것은 나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자기부정입니다.
이 자기 부정은 마16:24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신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자기를 부정하신 주님은 욕을 해도 때려도 배반해도 어린양처럼 잠잠하시고 시험 들지 않으셨습니다. 1분 1초라도 내가 감히 하나님인데,,, 그렇게 권리를 찾으셨다면 무슨 일이 나도 크게 났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내가 누군데, 자신의 신분과 자존심 생각하면 열 번이면 열 번 시험들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루이빌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클리포드 컨 박사는 웃음박사로 알려져 있는데 컨 박사에 의하면 5살짜리 어린이는 하루 평균 250번 웃는다고 합니다. 이 횟수에 대해서는 400번이라는 학자들도 있고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이렇게 많이 웃지만, 나이가 들수록 웃음은 점점 줄어들어 어른은 하루 평균 15번 정도 웃는 게 고작이라고 합니다. 아주 웃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웃음을 잃었을까요? 자아의식이 발달해서입니다. 어린이는 나라는 자아의식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물과 사건과 문제를 자기와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웃을 수 있습니다. 시험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크면 달라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린이와 같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18:3-4에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정하면 어떤 일에도 시험 들지 않습니다. 해병대의 인권문제가 도마에 올라 그 문화를 개선하려는 자체노력이 있는 줄 알지만 거기서 견디려면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개성대로 살던 젊은이들이 나를 내려놓고 복종하는 것부터 훈련시키듯 우리 신앙생활도 나 자신을 포기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면 그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
2. 주님께서 가신 길은 겸손의 길입니다.
7-8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과 동등 되시고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낮아져서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더 이상 낮아지려야 더 낮아질 수 없는 자리까지 낮추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말구유에서 탄생하신 것을 비롯하여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오시어 천대와 멸시로 일생을 보내시며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와,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약자를 도우시며 죄인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 시대의 집 없는 노숙자가 주님이셨습니다. 그래서 마8:20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죄인을 용납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그냥 자기부정하고 죽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런 사랑과 겸손까지 가야 진짜 죽는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래서 죽은 순교자도 귀하지만 산 순교자가 더 귀합니다. 매일 매일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곧 산 순교입니다. 내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도 기록된 말씀대로 순종하셨습니다. 시40:7-8에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했던 이 말씀은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말씀이었습니다.
3. 주님이 가신 길은 희생의 길이었습니다.
8절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인류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속죄사역은 주님 고유의 것으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아시면서도 따라가신 길이셨다는 것입니다.
마20:18-20에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희생의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마5:10-12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이 희생 없이 스데반이 경험한 그 영원한 영생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먼저 주님의 고난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아무 것이나 묵상하면 안 됩니다. 인간의 서운한 문제나 세상 것 가지고 밤새 생각하면 시험 듭니다. 그런 묵상 말고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령의 은혜를 깊이깊이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스데반의 얼굴과 같이 기쁨으로 변할 때까지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을 따라 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희생 없이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편안하게 누워서 혹은 오락프로나 보고 웃고 울다가 아닙니다. 마음과 몸을 드려 예배하고 기도하고 충성하고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요일3:17-18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고 했습니다.
4. 그러나 알고 보면 이 길이 최고의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9-11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주님 따라가는 길이 좁은 길 같지만 생명길이요, 고난의 길 같지만 영광의 길이며, 저주의 길 같지만 가장 복된 길입니다.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 하시는 기쁨의 길입니다. 그럴 때 하늘의 복락을 지상에서부터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니 육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너무 강해요. 그러므로 예수 믿고 성령의 도우심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 길만이 우리가 살 길이요, 내가 살 때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삶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님을 따라 자기를 부정하고 사랑과 겸손의 마음으로 희생하면서까지 따라가서 우리 주님처럼 영원한 영광에 이를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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