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4:32-42
겟세마네의 기도
찬송가 364장(내 기도하는 그 시간)
(막14:32-4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오늘 본문은 기도하시는 주님과 세명의 수제자의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방금전에 주님께 보여드렸던 놀라운 충심어린 고백을 차츰 잊어가고 있습니다. 육신이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육신이 부서져라 기도하시면서 오직 영혼을 굳건히 지키려 몸부림치십니다.
겟세마네
(32-34)
겟세마네에 당도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곳에서 기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2절)”
주님은 자신이 겟세마네 동산의 깊숙한 곳에 들어가 기도하는 동안 제자들은 입구에 앉아 있으라 명하셨습니다. 겟세마네는 감람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동산으로 예루살렘 동쪽 성벽에서 1.2km 떠러진 곳에 있습니다. 이 동산에는 올리브 나무가 많아 올리브 기름을 짜는 방앗간이 있었습니다.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더 깊이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세 제자에게 기도로 도와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3-34절)”
예수님은 놀란 상태입니다. ‘놀라시며 슬퍼하사(ἐκθαμβεῖσθαι καὶ ἀδημονεῖν.에크담베이스다이 카이 아데모네인)’라는 표현은 말문이 막힐 정도로 공포에 떠는 것을 나타냅니다. 즉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될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인간적으로 매우 놀라고 슬퍼하며 근심에 빠진 상태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감각 없는 초인이 아닌 완전한 인간으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그대로 맛보셔야 했던 것이고, 이러한 고통을 기도하는 것 외에는 감수할 도리가 없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세 제자에게 함께 기도하여 줄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주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Περίλυπός.페릴뤼포스)’ ‘죽게(ἕως θανάτου.헤오스 다나투)’ 되었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라고 하셨습니다. ‘슬픔과 고통으로 둘러싸여(Περίλυπός), 극심한 심적 갈등으로 죽게(ἕως θανάτου) 되었노라고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셨습니다.
또 여기서 나를 위해 기도하여 달라는 요구를 “깨어 있으라(γρηγορεῖτε.그레고레이테)”라는 말로 표현하셨는데, 이로 볼 때 주님은 극도의 집중력을 다하기 위해 깨어 있는 상태를 바로 ‘맹렬하게 기도하는 상태’로 이해하고 있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께서 당부하시는 말씀대로 기도한다면 그로인해 주님의 고통은 한결 가벼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제자들이 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기도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후에 교회에 강림하신 성령께서 제자들을 도우시면 이들도 깨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기도
(35-40절)
주님께서 하신 기도의 내용은 고통의 시간, 죄의 짐에 눌려 있는 시간이 속히 지나가게 해달라는 청구입니다. 35-36절, 39절, 41절에서 세 번을 기도하셨는데,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갔을 때 제자들은 잠을 이기지 못하고 졸고 있었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5-36절)”
조금 더 나아가셔서 땅에 엎드시더니, 첫 번째 기도로 될 수 있는 대로 이때를 지나가게 하시옵기를 구하였는데,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셨습니다.
‘메시야(מָשִׁיחַ.마쉬아흐)’께서 겟세마네에서 드리신 기도는 올리브 기름을 짜듯 하는 기도셨습니다. ‘겟세마네(גַּת־שְׁמָנֵי.게트쉐마네)’는 ‘짜다’, ‘압착’을 의미하는 ‘게트(גַּת)’와 ‘기름’을 의미하는 ‘쉐마네(שְׁמָנֵי)’의 합성어로 ‘기름을 짜냄’이라는 의미를 가진 장소명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도 습관적으로 겟세마네 동산에게 기도하셨습니다(눅22:39). 골고다 언덕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비장한 기도를 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셔서 마치 올리브 기름 틀에서 기름을 짜내듯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올리브 기름을 짜는 방식은 기름틀의 올리브 위에 무거운 돌을 추로 올려 누르면 바구니 옆으로 기름이 흘러 나오게 하는데, 예수님께서도 전 인류의 죄 짐이라는 중압감에 눌려 슬픔과 절망에 이른 상태로 고개조차 들 지 못하고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올리브 열매 바구니 옆으로 기름이 추출되듯이 예수님의 이마와 온 몸에서도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흘려 내리셨습니다. 조용하고 고요한 기도가 아니라 “아빠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는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며 절규와 신음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올리브기름은 두 단계로 짭니다. 우선 올리브를 수확하여 맷돌로 분쇄합니다(류모세. 열린다 성경).
잘게 부순 올리브 열매를 망사자루에 담아 압착기 밑에 쌓아둡니다.
무게 추에 돌을 올리게 되어 있는데 1단계에서는 가장 가벼운 돌을 사용합니다. 첫 번째로 짠 기름은 성전에 바치는 가장 거룩한 기름으로 사용하고, 그 다음은 무거운 무게 추를 올려서 남은 찌꺼기로 다시 기름을 짭니다. 이 기름은 일반 가정에서 식용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 더욱 무거운 돌을 올려 짠 기름은 가정마다 올리브 등잔을 밝히는 데 쓰거나 여자들의 화장품과 약품으로도 사용하였습니다. 더 무거운 추로 기름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짠 것은 잿물을 부어 비누로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찌꺼기는 버리지 않고 땔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올리브가 얼마나 소중하게 사용되었는지 버릴 것이 하나 없었습니다. 심지어 나무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으로 추출한 가장 귀한 거룩한 기름은 성전의 촛대(메노라)를 밝히는 기름으로 썼습니다. 왕과 대제사장을 세우기 위해 기름을 붓는 관유로 사용하였습니다. ‘메시야’의 뜻도 ‘기름을 붓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세 제자가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시니 비탄스럽게도 이들은 깨어 있지를 못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 방금 전에 호언장담하였던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7-38절)"
제자들이 깨어 있지 못하고 자는 것을 보신 주님께서는 자상한 형님이 아주 어린 동생을 타이르듯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불어 닥칠 위험과 시련을 내다 보셨습니다. 이를 이기고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깨어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제자들에게 큰 시험이 있을 것이고, 제자들은 이 시험을 이겨 내고자 기도하겠지만 약한 육신으로 인하여 깨어 있지를 못합니다. 이에 주님께서 탄식하셨습니다.
베드로는 29,31절에 호언장담했으나, 기도하지 못한 결과 68,70-71절의 세 번이나 부인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즉 시험은 때가 되면 반드시 오는 것이고, 기도하지 않으면 이 시험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하게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39-40절)”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간절한 기도에 돌입하셨습니다. 내용은 첫 기도와 동일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어라 드릴 말씀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하루 앞두고 이 땅에서의 마지막 밤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 기도를 하면서 보내셨습니다. 평소에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던 주님이신데 십자가형을 앞두고 치열한 영적 전투를 기도로 치르셨던 것입니다.
또 겟세마네의 기도는 자신을 완전히 갈아서 하나님께 소제(מִנְחָ֖ה.민하)로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주님께서 반복하여 기도를 드리셨고, 약한 육신에 이끌리는 제자들은 눈이 피곤하여 기도할 수 없었으나 주님은 자신이 당해내야 할 일을 위해 약한 육신을 기도의 자리로 끌고 나가 기름을 짜듯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41-42절)
주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는 제자들에게 이제 자고 쉬라 하시면서 파는 자에게 가자고 하셨습니다.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41-42절)”
세 번째 기도를 마치시고, 세 제자들에게 오셔서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 어떤 자세로 기도하셨는지 명백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어찌나 집중하여 맹렬하게 하셨는지, 기도하는 시간이야말로 깨어 있는 시간, 싸우는 시간, 일하는 시간입니다.
반면에 기도를 마치고 적들을 마주하는 것은 오히려 자는 것, 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를 쉬시는 동안 가룟 유다는 활력을 얻어 예수님을 팔아버리고, 대적들은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포박하여 강제 연행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는 기도가 가장 크게 힘을 쓰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그만 되었다(ἀπέχει.아페케이)’는 ‘충분하다’, ‘족하다’의 의미입니다. 대적들에게 팔려가기 전에 해야 할 기도를 충분하게 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세 제자들이 이제껏 충분히 졸며 잤으니 이제는 일어나 대적들을 만나러 가자’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결연한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면 전자가 어울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일어나라(ἐγείρεσθε.에게이레스데)’하시고는 ‘함께 가자(ἄγωμεν.아고멘)’ 하셨습니다. 이는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으니 가서 나를 팔아 그 값으로 많은 생명을 사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그대로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한 생명을 팔면 많은 생명, 곧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님께서는 죽음 앞에까지도 당당히 나가는 것임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께서 예고하신대로 모두 도망쳐 버릴 것입니다. 자기만큼은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까지 예수님을 멀찍이에서 좇을 뿐 함께 가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그는 변화되었고 그는 달아났지만 성령께서 그를 붙드시니 능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출처] 겟세마네의 기도/막14:32-42|작성자 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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