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변천사
성전의 역사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변동사입니다. 에덴동산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남이 곧 구원이고 그것이 영생이고 그것이 확신이고 그것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놓여 있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내셨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변천사는 곧 계시의 완성을 향한 점진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하나님을 만남에 대한 여러 교훈을 줍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를 살피는 가운데 우리의 영적인 교제를 다시 한 번 점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무성전 시대 창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그 시대는 에덴동산의 시대입니다. 에덴에서는 성전이 따로 필요 없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어느 때나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도 계시고 내 밖에도 계시고 온전히 임마누엘 상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진리는 죄가 없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59:1-2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했습니다. 분명 성경은 화평함과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만나지 못하리라(히12:14) 하셨습니다. 혹시 영적인 교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가죽옷 시대 창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안타깝게도 인류는 그 축복을 유지하지 못하고 범죄함으로 하나님과의 평화를 깨고 말았습니다. 그 타락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뱀의 미혹에 넘어가 범죄하고 저주 받게 되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서 구원하시고 만나시기 위해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여기 가죽옷은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구주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구언은 물론이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갈3:27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했습니다. 여기 세례는 곧 성령 세례입니다. 성령 세례는 단회적이면서도 점진적입니다. 그러므로 더 풍성한 은혜 가운데로 나가야 합니다. 아주 예수로 칭의의 옷만이 아니라 성화의 옷까지 입기 위해서 성령세례의 충만한 곳으로 나가십시오. 그 때 하나님과 온전한 영적인 교제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3. 돌단시대 창28:18에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에덴에서 나온 아담 자손들은 돌단을 쌓고 양을 잡아 제사하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기 돌단을 쌓는다는 의미는 오늘날로 치면 무엇일까요? 우리 성도들의 예배생활입니다. 이 제단을 잘 쌓아야 하나님을 만납니다. 즉 기도의 제단을 쌓고 예배의 제단을 쌓고 찬송의 제단을 쌓고 감사의 제단을 쌓고 전도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단을 통해서 보여주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없다면 그것은 제단을 쌓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단이란 구약적 용어이지만 신령한 의미에서는 제단은 계속 쌓아야 합니다(롬12:1). 얼마나 제단 쌓음이 중요한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끊어지면 영적으로 죽습니다. 영적 사망이란 하나님과의 분리입니다. 이 분리가 곧 죄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믿지 않는 것이 죄요, 하나님께 예배하는 생활이 부족한 것이 죄입니다. 그러므로 돌단에서 예배생활 기도생활의 회복을 교훈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영적인 교통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4. 성막시대 성막(聖幕, 출 26:9, 민 9:17)은 장막(帳幕), 회막(會幕)과 혼용되는 말입니다. 제임스 스트롱(J. Strong)은 성막의 역사에 대해 말할 때, 장막, 회막, 성막의 차이를 그 발생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장막이란 이름은 보통 천막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마도 모세 자신이 공적으로 사용하던 그 천막에 적용되었을 것이고, 회막은 여호와와 그 백성이 공적으로 교제하던 정규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막 위에 있던 하나님의 임재의 표적(구름기둥)에 의해 처음으로 구별되었던 것으로 나타난다(출33:7 이하). 이것은 물론 이런 임시적인 설비를 중단하고 이후 성막이란 용어로 알려지게 된 그런 성소를 건립하기 이전에 존재하던 형태였다.( J. Strong, The Tabernacle of Israel,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52). 9.). 장막(Tent) 천막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마도 모세 자신이 공적으로 사용하던 그 천막에 적용되었을 것 대상6:48 “하나님의 집 장막의 모든 일을 맡았더라” 왕상3:2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이 장막시대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실로에 있을 때입니다. 이 때는 삼상1:9의 “여호와의 전 문설주”라는 구절을 참고할 때 텐트형이 아닌 건물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광야생활이 끝나고 이스라엘이 안정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때는 전반적으로 발전이 아니고 퇴보입니다. 왜냐하면 엘리 제사장이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법궤는 얼마 가지 않아서 되돌아오긴 했지만 성전에 안치되기까지 성막과 법궤가 분리된 기간이 약 112년 가량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산당이라 해서 법궤가 없는 장막시대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장막에 법궤가 없음을 우리 신앙에 적용한다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신앙이 잘못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짐을 보여줍니다. 즉 그 문제점이란 무엇일까요? 먼저 엘리 제사장에게서 보듯 게으름과 안일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생활에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에게서 보듯 잘못된 양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또 회개한 후에는 평안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법궤를 이용하려 하다가 빼앗겼듯 내 주권적인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사용되어지는 겸손함을 가져야 합니다. 이처럼 무언가 잘못되어 있으니까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자신을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회막(Tent of Meeting) 여호와와 그 백성이 공적으로 교제하던 정규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막 위에 있던 하나님 임재의 표적에 의해 처음으로 구별되었다 (출33:7 이하) 민16:42 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회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ohel moed)는 출25-40장에서 32번 나오는데, 그 의미는 “만남의 장막”이란 뜻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강조된 용어이다. 회막의 기능은 비제의적이다. 회막에는 법궤가 안치되어 있지 않으며, 제사장이나 희생제사와도 관련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회막 안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구름기둥 가운데 회막 입구에 임한다. 회막은 성막과 달리 아론계 제사장이 아닌, 모세가 필요할 때 수시로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대화 장소이다. 그러나 성막과 회막이 전승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매회 분명하게 구별되어 사용된 것은 아니며, 종종 동의어로 사용되곤 했다(서명수, “성막과 법궤의 기능”, 「구약논단」 제18집(2005/8), 74. 정중호는 성막을 ‘내부 회막’, 회막을 ‘외부 회막’으로 구분해서 사용한다(정중호, “회막전승의 역동성과 법궤”, 「구약논단」 제18집 (2005/8월), 14f.). 성막(Tabernacle)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가 십계명을 보관하려고 성막을 짓게 되었다. 회막의 임시적인 설비를 중단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건립된 성소의 형태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 출처: J. Strong, The Tabernacle of Israel, 1952). (1)최초의 성막은 애굽을 떠난 지 2년째 되던 해 유월절 2주전에 시내산에 세워졌다(출 40:2,17) (2)요단강을 여호수아의 인도하에 건너면서 성막은 여리고 근처인 길갈에 세워졌다(수 4:19). (3)가나안에 정착한 후 성막은 실로에 세워졌고 언약궤는 성막안에 안치되었다 (여호수아 18:1): 380년간(블레셋이 불태움) (4)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 가서 일천번제를 드린 것은 그곳에 성막과 놋 제단이 있었기 때문(대하 1:6; 대하 16:39-40). 민1:53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 사방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의 성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하셨음이라 성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칸(mishikan)은 출25-40장에서 49회 나오는데, 그 문자적 의미는 ‘거주지’로, ‘거주하다’는 의미의 동사 샤칸(shakan)에서 유래되었다. 12지파로 구성되는 진의 중앙에 위치한 야훼의 거주지인 성막은 희생제사, 제사장, 법궤와 같은 제의 제도 및 기구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야훼의 영광’(카봇 야훼)이 성막 지성소에 안치된 법궤의 속죄소(카포레트) 위에 임하였다 5. 성전 시대' 실로의 성막은 몇몇 영구적인 특성을 취하여 '성전'의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삼상 1:9, 3:3). 솔로몬이 성전을지은 후 성막과 그 모든 기물은 법궤와 더불어 성전으로 이전되었다.(왕상 8:1-4) 이로써 성막의 역사는 성전의 역사로 전환되었다. 성막은 텐트처럼 이동할 수 있었지만 성전은 이제 더 이상 옮길 수 없는 건물로서 지어진 것이었다. (1)솔로몬성전: 바벨론에 의해 파괴 (언약궤 없어짐) (2)스룹바벨성전: 바벨론 포로이후 스룹바벨이 재건 (3)해롯성전: 예수님 시대의 성전 마태복음 23: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실로의 성막은 몇몇 영구적인 특성을 취하여 '성전'의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삼상 1:9, 3:3). 솔로몬이 성전을지은 후 성막과 그 모든 기물은 법궤와 더불어 성전으로 이전되었다.(왕상 8:1-4) 이로써 성막의 역사는 성전의 역사로 전환되었다. 성막은 텐트처럼 이동할 수 있었지만 성전은 이제 더 이상 옮길 수 없는 건물로서 지어진 것이었다. 대상22:10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지라” 솔로몬이 금으로 만든 가장 찬란했던 성전시대입니다. 설계도와 재료는 다윗이 준비했고 솔로몬은 그것에 더하여 잘 지었습니다. 가격으로 치면 성전의 금값만 해도 900조에 해당한 답니다. 900조원 상상이라도 됩니까? 900조면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성막의 금값은 약 500억이지만 성전은 그것은 수천 배에 해당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부요를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세계 열방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낙성식한 날 밤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 곳에 와서 기도하면 기도응답을 해 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재앙을 제거해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땅을 고쳐 주시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성전에서 하나님과의 더욱 온전한 교제를 암시한 것입니다. 이 성전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성전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안에서 기도 응답을 받고 예수 안에서 용서를 받고 예수 안에서 고침을 받고 예수 안에서 변화를 받으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음을 가리킵니다. 나아가 우리들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을 어디서 만나느냐? 그것은 예수님 믿어 우리가 성전 되면 거기서 우리를 만나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이제 솔로몬 성전의 온갖 귀한 보물과 같이 우리 몸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마치 다윗이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전리품을 얻어 성전을 지었듯이 우리 마음이 바로 만국입니다. 이 마음을 다 정복하여 온전히 하나님께 다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보배와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이 멀리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우러납니다. 여기 성전시대도 여러 가지 수난을 겪습니다만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1)솔로몬성전: 바벨론에 의해 파괴 (언약궤 없어짐) (2)스룹바벨성전: 바벨론 포로이후 스룹바벨이 재건 (3)해롯성전: 예수님 시대의 성전 마 23: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6. 회당 시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605-432B.C.) 성전에서 예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회당제도가 생김 (시편 74:8). 주로 예배와 교육을 위해서 생겼다. 회당은 지방법정으로도 사용됐다. 구전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약 480여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사도행전 13: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605-432B.C.) 성전에서 예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회당제도가 생김 (시편 74:8). 주로 예배와 교육을 위해서 생겼다. 회당은 지방법정으로도 사용됐다. 구전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약 480여개의 회당이 있었다고 한다. 사도행전 13: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7. 교회시대 마24:2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그 예언대로 A.D.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서 성전은 완전 파괴되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 대한 심판을 의미할 뿐 아니라 더 중요한 의미는 새 시대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마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 시대는 교회시대입니다. 교회시대란 더 이상 하나님께서 건물 성전에 계시지 않고 신령한 성전인 우리 성도들과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들이 신령한 성전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성전으로서의 기능 즉 하나님을 잘 경외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에 문제가 있다면 성전으로서의 역할에 문제가 있는지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8. 세마포시대 계19;8,13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게 하셨은 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또 그가 피뿌린 옷을 입었는 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던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모두 세마포 옷을 갈아 입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같이 성경은 가죽옷에서 시작하여 세마포 옷으로 끝나는 책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피묻은 옷 가죽옷에서 시작하여 피묻은 옷 세마포 옷으로 끝나는 책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