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어제와 오늘 이만열

하나님아들 2021. 10. 2. 09:40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어제와 오늘   이만열

 

1. 머리말

 

한국기독교사 연구가 본격화된 것: 1920년대 백낙준의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에서 시작/ 1930년대, 선교희년을 맞아 연구 분위기 조성/ 전시체제의 강화- 더 이상 진전 불가/ 해방 이후, 김양선의 《韓國基督敎解放十年史》외에 볼만한 것이 없음/ 한국기독교사 관통 파악 노력: 4.19 / 그 후 1980년대 ‘선교10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사 연구에 새로운 분위기 조성.- 첫째 그 동안 신학을 전공한 학자들에 의해서 연구되어 온 한국기독교사 연구가 역사학전공자들의 참여로 국사학의 한 영역으로 접목되었다. 둘째 한국 기독교사 연구가 개인적인 연구에서 공동 연구나 학회수준의 연구로 상승하게 되었다. 셋째 한국 기독교사 연구에 사용되는 자료가, 앞에서 언급한 백낙준의 연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내의 자료의 한계를 거의 넘어서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것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2. 선교사들의 연구

 

선교사들의 한국교회사 연구: 연례보고서 등의 성격을 띄고 기록으로 남김. 선교본부의 선교현장 답사 보고서, 예를 들면 미북장로회의 총무 브라운(A.J.Brown) Report of a Visitation of the Korea Mission of the Presbyterian Board of Foreign Missions (New York, 1902) Report on a Second Visit to China, Japan and Korea (1909), 북장로회 총무로 있던 스피어(Robert E.Speer) Report in the Missions in Korea of the Presbyterian Board of Foreign Missions(1897) Report of Deputation of the Presbyterian Board of Foreign Missions to Siam, the Philippines, Chosen, and China, April-November, 1915 (new york, 1915) 등이 대표적

1909(선교 25주년) 在韓장로교 선교회, 의료 및 교육 사업, 여성선교, 문서사업, 재정 상태, 각종 통계를 실은 25주년기념책자1) , 이는 바로 25년간의 일종의 宣敎史/ 1910(선교 25주년), 뉴욕 미국 감리교 본부, Korea Quarter Centennial Documents 미 감리교회의 한국선교 관련사항-선교의 과정, 기독교 의료와 교육, 부흥운동- 등 열거2) / 1934 (선교희년), 미북장로회 조선 선교부, Jubilee Papers, Korea Missions, Presbyterian Church U.S.A.(YMCA, 1934) 간행  

1910년을 전후한 시기의 이같은 정리: 감리교와 장로교의 선교부(), 한국 선교를 역사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을 절감/ 또 한국 선교 25주년을 맞았고 장로교의 경우 1907년 독노회 조직에 이어 1912년에는 총회가 조직/ 감리교 장로교 간 敎界(선교지분할)

1910년대: 독립선교사 펜윅(M.C.Fenwick, 片爲益): The Church of Christ in Corea (New York, 1911)3) 간행, 영국성공회 트롤로프(Mark N.Trollope, 조마가): The Church of Corea (1915, 북장로교의 클라크(C.A.Clark, 郭安連): 국한문판 《長老敎會史典彙集》와 영문판 Digest of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Chosen) (Yokohama, 1918) 간행→자료집에 불과한 이 책은 역사서라고는 할 수 없지만,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가 한국교회사를 본격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음→클라크는 이 책 서문에서 總會史記, 교회헌법휘집, 총회규칙휘집, 총회의 각위원과 각국의 사기휘집, 선교사와 조선인목사 명부휘집 및 교회장설이래 30년간 총계휘집 등 6대조를 중심으로 편집한다고 함→총회사기는 한국 장로회의 초기 역사를 다루고 있음.→이 전휘집은 비록 자료집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 장로교회의 초기의 역사를 밝히는 데에는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것이다. 이것 자체가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중요한 문헌이다. 기록의 전거를 일일이 밝혀 놓아 이 책 자체가 요약된 역사서/ 이 전휘집 편찬 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5회 총회(1916)에서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를 편찬키로 하고 편집위원 14인을 선정4) →전휘집 편찬자 곽안련도 14인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이 전휘집이 장로회사기와는 다른 것이라고 밝힘→곽안련은 후속편《장로교회사전휘집》(朝鮮耶蘇敎書會, 1935) 간행, 1918년에 간행된 것이 장로교 선교사의 입국에서부터 독로회(獨老會)까지를 다룬 것이라면, 1935년에 간행된 것은 독노회 때의 사적을 간단히 언급한 후에 주로 1912년 총회가 조직된 이후의 사실을 수록함→이것은 장로회 총회에서《조선장로회사기》를 상․하권으로 편집, 간행한 것과 대조를 이룸→전자: 선교사의 입장에서 한국 장로교회사 기록, 후자: 한국 교회의 입장에서 장로교회사 정리

 

선교사들, 한국 선교상황과 관련된 글들을 많이 남김. 1907년 대부흥운동 관련 기록/ 105인사건’ 대표적인 것, The Korean Situation I, II (The Federal Council of the Churches of America. The Commission on Relation with Orient, 1919.7, 1920.4)

선교사들의 한국교회사 서술 본격화: 1930년대/ 먼저 한국의 초대 선교사 언더우드의 아들 언더우드(H. H. Underwood, 元漢慶) 1925년 뉴욕대학에서 한국의 근대교육을 다룬 Modern Education in Korea (New York, 1926)으로 학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도 활동한 피셔(J.E.Fisher, 皮時阿)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Democracy and Mission Education in Korea (New york, 1928) 간행/ 언더우드와 피셔의 저술에 대한 홍이섭의 평가는 경청할 만함5) / 클라크도 네비어스선교정책을 연구하여 학위를 받고 The Korean Church and the Nevius Methods (New York, 1930)6) 간행

선교사들의 한국 선교사에 대한 서술이 본격화되는 1930년대: 1934년 한국선교 50주년/ 그런 분위기 속에서 선교사 정리 시도, 남감리회 소속 쿠퍼(S.Kate Cooper, 巨布計): Evangelism in Korea (Nashville, 1930)-“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의 역사적 개관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만, 기독교복음이 한국이라는 토착문화 속에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보여”줌7) / 미 북장로회 솔타우(Stanley T.Soltau, 蘇悅道), Korea: The Hermit Nation and Its Response to Christianity (New York, 1932)_초기 기독교 수용과 전개과정을 다룸8) /  1930년에 합동한 남북감리교회: 1934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발표된 글들을 묶어 Within the Gate (YMCA, 1934)-여기에 와그너(Ellasue Wagner, 王來)의 극본 At the Hermit's Gate도 실림/ 1934년 선교희년, 남감리회 선교사 왓슨(Alfred W.Wasson, 王瑛德)이 쓴 Church Growth in Korea (New York, 1934)는 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룩한 한국 선교에 대해 최초로 선교학적인 체계로 접근하여 탐구한 수준높은 연구로서 한국 교회 성장의 원인을 규명함에 네비어스 선교방법과의 관련을 중시하고 있음/ 미 북장로회 소속의 로드스(Harry A. Rhodes, 解理):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 18841934 (Seoul, 1934)←앞서 긔독신보(基督申報) 17회나 <朝鮮基督敎會略史>(1 4일자~5 30일자)를 연재, 1933년에 이를 《조선기독교회약사》(조선예수교서회)를 간행한 것과 함께 한국 선교역사 연구의 혁혁한 공헌으로서, 비록 한 교단의 선교사를 정리한 것이지만 다른 교단의 선교사 연구에 큰 영향/ 그는 선교 75주년에 Archibald Campbell과 함께 공동으로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A. Vol. II, 19351959 (New York, 1964) 간행, 미국 북장로회 선교 역사 총정리

 

   

3. 한국인에 의한 연구의 출발 - 백낙준을 중심으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한국 교회에 대한 자기인식 나타낸 것: 감리교회의 <죠션크리스도인 회보>(1897.2.2 창간)와 장로교회의 <그리스도신문>(1897.4.1 창간) 간행-단편적 역사 소개-<그리스도신문>(5 38, 1901 9 19일자)에는 ‘셔션생 샹륜의 경력’이라는 글/ 일제 강점기에 소위 ‘105인 사건’ 같은 한국교회 박해사건-105인 사건’의 만행 폭로, 조선 기독교인 학대에 항의: 이승만의 한국교회 핍박》(1913)/ <基督申報>(19151937)-1928년 ‘조선기독교 각파의 정세’ 소개할 집필자 소개9) / 1934년 선교희년, 解理(로드스)의《조선기독교회 약사》, 및 조선 기독교 각파 略史 소개, 한국기독교계의 여러 기관의 역사와 한국 신학과 문화의 문제 등 언급10) / 거교단적 역사 관심 표명: 1916년 장로회 총회에서 ‘사기편찬위원’을 선정→1918년 클라크(C.A.Clark, 곽안련),敎會史典彙集》을 영문과 국문 편찬/ 일본 총독부는 식민통치의 필요상 기독교에 대한 책자를 내부 업무용으로 편찬→<朝鮮 統治 基督敎>(1905-1919 3·1운동 직후까지의 기독교 상황 정리)

1920년대, 한국인 한국기독교회사 연구 본격화함: (George L.Paik)-평북 선천 信聖학교 졸업, 천진의 新學書院, 1918년 도미, 미주리주 파크(Park) 대학에서 역사학 공부, 프린스턴에서 신학과 역사학 연구, 예일대학에서 당시 선교학과 교회사로 이름이 높던 라투렛(K.S.Latourette) 교수의 지도 아래11)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이라는 논문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 백박사는, 과거 신성학교 시절의 은사였고 미국 파크 대학을 소개해주었으며 그의 귀국 당시에는 평양 숭실대학 학장으로 있던 尹山溫(George S. McCune) 박사의 호의로, 1929년 숭실대학 출판부에서 이 논문을 단행본으로 간행/ 아직 40여년 남짓한 역사밖에 되지 않아서 박사학위 논문의 논제로 삼기에는 여러 가지 난점이 있었으나 용기와 사명감을 가지고 당시 교통편이나 자료수집의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한국의 초기 선교사를 훌륭하게 정리해 냄/ 그의 시도-“한국 개신교의 초기부터 1910년까지 그 수용과 확장 과정에서 실제 일어났던 것들을, 문헌비판적인 확증성이 허용되는 한, 객관적으로 기술, 해석하려는 것”12) , 라투렛의 지도를 받았고 그의 The Study of the History of Missions에서 제시된 관점이 백 박사의 탐구에 기본적인 골격으로 채택되고는 있었지만, 초기의 영문판 저서에서 이 연구를 ‘순전히 선교의 역사’로 단정하지 않음→1973년 국문판으로 번역해 내면서 기독교사가 선교사임을 분명히 했다.

 

 

“기독교사는 그 본질에서 선교사이다. 또한 반드시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기독교사상의 한 중간적 존재이다. 우리 주님이 죽으심으로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만 존재하게 되어 있다.(고전 11: 26) 이 중간적 존재체인 교회의 철두철미한 사명은 복음선포이다. 기독교사는 자초지종에 선교사로 일관되어 왔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에 우리 한국개신교회사도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13)

 

백박사는 한국기독교사 연구에서 초기사를 제대로 다뤄야만 후기사도 정확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초기사를 전문적으로 다룬 저서가 零”하다는 판단 하에 한국기독교사로서는 1910년까지 비교적 초기사에 해당하는 이 분야를 연구테마로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유의한 것은 ‘국사의 한 분류사’라 할 수 있는 한국기독교사를 “서구사학가들의 연구방법을 응용”하여 연구하겠다고 ‘시도’했음14) 따라서 이 연구는 역사학과 신학을 연구한 학자가 서구의 역사학적인 방법을 충분히 구사하면서 역사학과 선교학을 종합하는 관점에서 생산해낸 업적이다. 라투렛 교수가 서문에서 “그는 서양사학가의 방법응용에 능숙할만한 훈련을 받았으므로 持久力을 가지고 자료를 수색 수집하였고, 그 자료의 비판과 해석에는 객관성을 견지할 줄 아는 기술을 소유하였다.15) 고 언급한 것이나, 백박사의 이 연구를 두고, “한국기독교사를 연구하는 저술가나 학생은 백 박사의 저작을 숙독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고 극찬한 것은 이 책이 한국기독교사 연구를 시작하는 학도들에게 꼭 거쳐야 할 입문서이면서 수준 높은 연구로 하여 한국사학사에서도 손꼽혀야 할 한 고전으로서 불후의 가치를 가진 것임을 말해준다.16) 이 저술은 또한 선교사에 의한 것이든 한국인에 의한 것이든 간에 한국 기독교사 연구로서는 학적인 체계를 갖춘 가장 선행적인 연구였고, 이 연구를 계기로 하여 그 뒤 이 분야에 관한 많은 저술들이 나오게 되었다.

예일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백낙준은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문과의 행정책임을 맡아 국학을 강화하는 데에 노력하는 한편 기독교 지도자로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조선은 선교희년을 맞아 193435년에 각종 행사를 치르고 한국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각종 행사를 거행하고 역사문건을 만들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조선기독교 50년사》(신동아, 1935)와 앞서 언더우드 소전을 쓰고 있다.

 

백 박사의 학위논문이 완성된(1927) 후 그것이 아직 간행(1929)되기 직전인 1928년에 한국 기독교사 연구에 주목할 만한 책 두권이 간행되었다. 能和의《朝鮮基督敎及外交史》와 車載明이 저작 겸 발행자로 된《朝鮮예수敎 長老會 史記》가 그것이다.

이능화의《朝鮮基督敎及外交史》는 “한국 기독교의 전개과정을 근대한국의 정세와 국제관계를 통해서 서술”17) 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상, 하편 대부분 주로 천주교를 다루고 있고 개신교에 관해서는 이 책 하편 말미에 약간 취급하고 있는 형편이다.18) 이에 앞서 이능화는 1923 <東明> <朝鮮基督敎史>를 연재(2 2123)한 적이 있다.  조선예수敎長老會史記》는 계발시대와 공의회시대, 독로회시대 등 세 시기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1편 계발시대(18651892)는 토마스(R.J.Thomas) 목사의 한국 연해 접근시기부터 그 시기를 잡고 있지만, 그 전의 천주교의 유래도 다루고 있다. 2편 공의회시대(18931906)는 미국 남북장로회의 선교사들이 1893년 한국에서 선교사공의회(Council of Missions holding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를 조직하고 1901년에는 합동공의회(장로회공의회)로 개칭하여 1907년 독노회를 조직하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3편 독노회시대(19071911)는 대한예수교장로회노회(독노회)를 조직하는 과정과 노회의 의안들을 쓰고 노회 산하의 7대리회의 교회조직과 전도 환란 교육 자선사업 및 진흥을 기술한 것이다.

장로회 총회 사기편집위원회는《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를 편집하면서 원래 1923년까지의 역사를 정리하였던 것같다. 그러나 1928년 이 책을 처음 출간할 때, 1912년 총회조직 때까지의 사실만 수록하고 나머지 총회조직 이후(19121923)의 것은 원고상태로 두고 출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1930년에는 이미 수정 완료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 미간된 ‘사기 하권’의 원고19) 는 몇 부 복사하여 보관하다가, 1965년 동경 오윤태(吳允台)목사 보관본이 발견되어, 1968년 백낙준이 한국교회사학회를 통해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 하권》간행20)

자기 교단 역사 정리: 1929년 성결교회 李明稙,朝鮮耶蘇敎東洋宣敎會 聖潔敎會略史/ 1930년 양주삼(J.S.Ryang, 柱三), 朝鮮南監理敎會 三十年紀念報(朝鮮南監理敎會傳道局, 1930) Southern Methodism in Korea. Thirtieth Anniversary를 한권 간행: 1930년 감리교단 통합에 앞서 남감리회의 역사를 정리한 이 책은 역사가 아니며 역사를 저술코자 한 것도 아니며 다만 “역사를 저술하기에 不少한 자료가 포함되었다”고 밝힘21) , 이 책은 클라크(C.A.Clark) 1918년판 《敎會史典彙集(, 영문)과 좋은 대조, 사료집이라는 점에서는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와도 맥락을 같이함

 

1934, 한국선교 50주년 희견, 50주년의 역사와 기록을 남기려는 작업, 장로교 총회에서는《조선예수교장로회50주년 역사화보》 출판, 鄭仁果《조선예수교장로회50년사 일별》간행, 감리교 50년사 준비, 협성여자신학교 출신의 여류시인 張貞心 1934년《朝鮮基督敎五十年史話/ 전시체제의 분위기에서 東京대학 졸업, 평양신학교 교수 채필근, <기독신문>(1938. 8. 161942. 4. 23) <朝鮮基督敎發達史> 연재,  조선기독교회 전도부에서도《朝鮮基督敎會小史(1941) 편찬, 그러나 일제에 굴종한 한국교회 역사의식 위축

 

4. 해방 후 연구의 재흥 - 최초의 통사화 작업

 

해방 후 10여년간, 이 때 金良, 당대사 《韓國基督敎解放十年史(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종교교육부, 1956)-“한국교회의 초석이 된 가정적인 환경” 때문(백혼준의 외손)에 약관 때부터 한국기독교 사료수집→해방 때까지 5천을 넘는 귀중 사료 수장/ 한국기독교 전래사를 ‘탈고’→ 6·25로 그들 사료 유실/→한국기독교연합회로부터 한국 기독교사 집필 의뢰22) → 기록사료 뿐아니라 경험과 기억을 자료로 활용하려 함→ 백낙준․함석헌 이래 확고한 사관을 가지고 역사를 서술한 기독교인이 없었는데 그런 공간을 메웠다는 점도 내세울만 함→ 《간추린 한국교회사》(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1962),韓國基督敎史(2)-改新敎史(民族文化史大系 VI, 高麗大學校 民族文化硏究所, 1970) 서술, 한국기독교사를 일반 학계에 소개, 그의 사후《韓國基督敎史硏究(基督敎文社, 1971) 간행, “그가 생전에 한국기독교사 개설의 원고를 써놓은 것”인데, “그의 별세 일주년을 기하여 그의 조카 김광수 목사가 이를 정리, 몇 개의 논문을 가하여 하나의 책으로 출판하게 된” 것23)

1950년대는 한국 기독교계 분열: 예일대학에 유학 중인 全聖天 ‘한국기독교의 분열과 연합’을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로 삼음→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 졸업, 조선신학원에서 7년간 교편, 프린스턴에 유학, 석사학위, 예일대학에 진학, 니버(Richard Niebuhr)와 라투렛(Kenneth S. Latourette)의 지도를 받아 Schism and Unity in the Protestant Churches of Korea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 1979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영문 단행본으로 출간 “한국 교회 분열의 경향성의 요인을 밝히고 후대 학자들의 연구토대를 마련하고 그들 연구의 새로운 방향을 준비함에 있다”고 한 바와 같이 한국 교회 분열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연합의 전망을 그 분열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세대로서 학문적인 접근을 꾀하려고 했던 것이다.24) 분열의 현장에서 이를 증언한 김양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전성천이 한국 교회의 분열을 한국기독교의 전 역사에서 조명하려고 했던 점이라 할 것이다.

백낙준과 김양선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1950년대까지 한국기독교계는 아직 한국기독교의 통사를 갖지 못했다. 이 점은 해방 후 일정한 시기까지 한국기독교가 자기의 역사를 관통해 볼 수 있는 역사적인 통찰력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누구보다 안타깝게 생각한 변종호(邊宗浩), 그의 스승 이용도(李龍)의 전기를 쓰고 그의 서간과 시가를 수집, 편찬해 왔는데, “한국에 기독교(개신교)가 전래한지 75년이 되었는데 그 역사책이 한권도 안 나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또 “5년전에 선교 70주년 기념으로 기독교사가 나올 줄 믿었으나 안 나오더니 이제 75주년에도 또 안 나올 모양”25) 인 것같아 1950년대가 저물어 갈 무렵《한국기독교사[개요](心友園, 1959)를 간행하였다. 그는 ‘선교 75주년’을 맞아도 자기의 통사 한권을 갖지 못한 한국기독교의 몰역사성을 안타까워하면서 이 책을 썼던 것이다. 199쪽의 이 책은 내용이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저자로 하여금 한국기독교사 전공자들이 갖지 못한, 한국 최초의 개신교사를 저술한 영예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자기 시대를 통찰할 줄 아는 역사의식의 소산이었다.

 

1960년대:몇몇 교단사, 이렇다 할 한국기독교사 연구가 이뤄지지 않음26) . 오히려 과거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외국인들의 한국교회사에 관한 연구서가 많이 간행: 1960년대에 몇대에 걸친 외국인의 한국 선교가 막을 내리고 있었던만큼 선교사(의 후예)들 중에서는 그들의 한국선교사역을 학문적으로 정리하려고 함. 스톡스(Charles D. Stokes, 都益瑞) History of Methodist Missions in Korea, 18851930(1964)27) ,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브라운(George T.Brown, 夫明光) Mission to Korea (PCUS, 1962)28) , Archibald Campbell(甘富悅) The Christ of Korea Heart (Falco Publishers,1954)와 그가 로드스(H.A.Rhodes, 解理)와 함께 ‘편집’한 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II, 19351959 (Commission on Ecumenical Mission and Relations, 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1964), 클라크(Allen D.Clark, 郭安全) History of the Korean Church(CLS, 1961)29) 와 스웨러(Roy E.Shearer, 徐明源) Wildfire: Church Growth in Korea(1966)30) 

1960년대: “기독교적 관점에서 한국의 종교와 문화적 전통을 재해석함으로 기독교 전통과 민족 전통을 배척과 단절 개념이 아닌, 연결과 보완개념으로 전화시키려는 신학흐름”31)  土着化神學(indigenization theology)을 다룬 연구서들: 尹聖範의《基督敎 韓國思想(대한기독교서회, 1964, 東植의《韓國宗敎 基督敎(대한기독교서회, 1965) 대표적

 

   5. 역사신학의 한 분야 - 1970년대 연구

 

1950년대, 한국기독교계는 교단간의 분열과 6·25 때의 여러 교파와 기관의 이식으로 분열이 가속화되었고, 그만큼 교단의 자기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이는 나름대로의 신학의 정립과 교단사의 정리를 필요로 함→ 교단사는 60년대부터 본격화

   庄鎬,朝鮮基督敎會小史32) 朝鮮基督敎會傳道部, 1941

 

   김용해,《대한기독교침례회사》 대한기독교침례회총회, 1964

   이영린,《한국재림교회사》 시조사, 1965

   편찬위원회 편,《한국기독교장로회50년 약사》 한국기독교장로회, 1965

   이영린,《한국재림교회사연구》 선명문화사, 1968

   김세복,《한국그리스도의교회 교회사》 참빛사, 1969

   이천영,《성결교회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1970

   장희근,《한국장로교회사》 아성출판사, 1970

   장형일,《한국구세군사》 구세군대한본영, 1975

   기독교대한감리회교육국 편,《한국감리교회사》 1975

   최훈,《한국교회박해사》 예수교문서선교회, 1979

   이성삼,《한국감리교회사》33)  기독교대한감리회본부교육국, 1980

전용복,《한국장로교회사》 성광문화사, 1980

김장배,《침례교회의 산 증인들》 침례회출판사, 1980

오만규,《재림교회사:제칠일안식일예수재립교회》 성광, 1980

안수훈,《한국성결교회성장사》 기독교미주성결교회출판부, 1981

편찬위원회 편,《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30년사》 종려문화사, 1981

 

   신학교육에서 ‘구전에 의한 단계’를 넘어→ 1970년대 한국기독교사 연구 본격화함→ 민경배(閔庚培)의 《한국의 기독교회사》(서울 기독교서회, 1970)34) 와 《韓國基督敎會史(대한기독교서회, 1972) 간행으로 본격화함→ 서론에서 ‘기독교회사’의 개념과 범위를 정리하는 한편 ‘한국 교회사의 제 문제’를 다루어 한국교회사 연구를 반성하고 있음→ 먼저 백낙준의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 宣敎史로 보고 선교사가 갖는 한계를, 첫째 ‘순전히 기독교 선교의 역사’이며, 둘째 史料의 선교사 파송국 편중성 때문에 한국 교회 쪽의 고백과 증언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셋째 따라서 ‘한국 교회의 체험과 삶이 혈맥처럼 파동’치는 그러한 방면의 학적인 공헌이 될 수 없다는, 세가지로 요약하였다. 그의 비판 중에서 백 박사가 “자신이 시인하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순전히 기독교 선교의 역사”라고 했다고 한 부분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분명치 않지만, 사료의 편중성 문제는 일찍이 山口正之가 “이 책이 지니는 전면적인 결함이라고 할 것은 조선측의 사료가 일체 묵살된 것”이라고 지적한 것과 같다. 그러나 山口正之는 이렇게 된 이유를 “저자의 알바이트가 주로 미국에서 된 것으로 할 수 없”었다고 여지를 열어 놓았다.

1972년에 이같이 민경배의 비판이 나오자 백 박사는 그 이듬해《韓國改新敎史(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를 번역, 출판하면서, 영문판(1929)과는 다른 내용의 自序를 통해, 앞의 첫째와 둘째번 비판에 대해서는 정면 대응하고, 셋째번 비판에는 답변을 보류한 채 그 답을 독자에게 맡겨 버렸다. 민경배의 비판에 대한 백 박사의 답변에서, 자신은 “기독교사는 그 본질에서 선교사”이며, 따라서 “우리 한국개신교사도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분명히 하였고, 사료의 편중성 문제는 山口正之와 민경배에게 함께 답하기라도 하듯, “이 연구가 진행되던 때와 곳에서는 본래 여기에 인용한 자료 이외의 한국문헌 입수는 불가능한 실정”이었다고 밝힘→ 민경배가 인용한 사료의 양이나 질을 놓고 볼 때, 백 박사의 연구에 대해 사료편중을 들어 비판할 수 있겠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 않다.35)

 

민경배는 또 김양선의《韓國基督敎解放十年史》에 대해서도 “확실히 여기에도 민족 교회사의 의식이 바탕처럼 깔려 있지는 않았다.”고 지적→ 《한국민족교회형성사론》(연세대학교 출판부, 1974)을 써서 자신의 ‘민족교회론’을 확고하게 세워갔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가 백 박사의 교회사를 ‘宣敎史’로 명명한 것처럼, 그의 역사학도 후학들에 의해 ‘민족교회사관’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이런 여러 관점을 통해서 볼 때 민경배의《韓國基督敎會史(대한기독교서회, 1972)는 ‘민족교회사관’이라는 사관을 토대로 쓰여진 것이며, 그런 점에서 스스로 확실한 사관을 의식하면서 쓴 최초의 ‘통사’라고 할 수 있다.36)

1970년대에 주목할 만한 업적: 吳允台, 일본 소재 한국기독교사 자료를 수집하여 그것을 토대로 日語로《韓日基督交流史(1968, 한국어판 1980년 혜선문화사 간행) 이래 70년대 이후 4권의《韓國基督敎史37) 저술,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지평을 넓힘

1960년대 전후부터 한국기독교사의 산 증인 全澤鳧는 ‘토박이 신앙’을 강조하면서 기독교 신앙․신학의 한국적인 맥락을 찾는 데에 열중해 왔다. 그는《인간 신흥우》(1971),《월남 이상재》(1977) 등의 한국YMCA를 이끌었던 인물들의 전기와《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1978)를 쓰는 한편《토박이 신앙산맥 1, 2(1978/1982)와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를 염두에 둔 《한국에큐메니칼운동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1979), 이 땅에 묻힌 선교사들의 행적을 살핀 《이 땅에 묻히리라-양화진외인열전》(홍성사, 1986) 그리고 ‘한국기독교백년사대계’의 제1권인《韓國敎會發展史(대한기독교출판사, 1987)를 집필하였다.

1970년대에 간행된 蔡基恩의 《韓國敎會史(기독교문서선교회, 1977)와 李永獻의《韓國基督敎史(컨콜디아사, 1978)의 주목38) 이 두 책은 신학교에서 한국교회사를 강의하였던 저자들이 평신도를 위해 썼다는 공통성→ 평신도를 위한 한국교회사 필요성

70년대, 시대사와 분류사/ 浩雲 韓國敎會初期史(대한기독교서회, 1970), 光洙 저작들39) , 尹春炳韓國基督敎新聞雜誌百年史(대한기독교출판사, 1975), 신사참배와 공산주의에 항거한 재건교회사→崔薰韓國敎會迫害史(예수교문서선교회, 1979), 한국YWCA50년사편찬위원회의《한국YWCA반백년》(1976), 김남식《韓國基督敎勉勵運動史(성광문화사, 1979), 전택부의《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와《한국에큐메니칼운동사》/ 김현자《기독교여성운동사》(한국기독교교육사, 1974), 이원화《서울YWCA 50년사》(YWCA, 1976)→한국여성운동사 조명, 주선애《장로교여성사》(대한예수교장로회 여전도회전국연합회, 1978), 장병욱《한국감리교여성사》(성광문화사, 1979)→교단적인 차원의 여성운동사40)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에 이르는 한국기독교사 연구는 이제 겨우 신학교에서 역사신학의 한 분야로 강의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70년대에 들어서서는 연구의 질적인 면이나 양적인 면에서 도약이 이뤄졌다. 한국기독교사에 관한 알찬 통사가 저술되어 교회사의 틀이 접혔고, 한국기독교사 연구를 필생의 사업으로 삼겠다는 학자도 나왔으며, 기독교사를 연구, 서술하는 방법과 사관도 학적인 체계를 갖추었던 것이다. 그리고 80년대의 한국 ‘선교100주년’을 역사연구의 측면에서 준비하는 모습도 보여지고 있었다.

 

6. 교회사와 국사학의 만남 - 1980년대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지형이 새롭게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 때에는 유신정권이 무너지는 외적인 변화와 ‘선교 100주년’을 맞는 내적인 변화가 겹쳤다.

‘선교10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사를 정리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1980년부터 간행되기 시작한 기독교문사의《基督敎大百科事典》와 대한기독교서회가 간행한 ‘한국기독교백년사대계’가 대표적이다. 전자는 교회사 관계 항목을 사전에 정리함으로써 이뤄졌는데 중요한 것은 이 때 수집된 기독교문사의 한국기독교사 관계 자료가 이 대백과사전의 편찬에만 활용된 것이 아니고 그 뒤 이 방면 연구자들에게 활용되어 한국기독교사 연구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한편 그들의 공동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41) 후자는 1990년에 설립 백주년을 맞는 기독교서회가 “과거 100년의 역사를 현 시점에서 재검토하고 앞으로 선교 2세기를 전망”42) 하기 위해 시도된 것으로, 전택부(全澤鳧)의 《韓國敎會發展史》를 제1권으로 하여, 송길섭(宋吉燮)의 《韓國神學思想史, 이만열()의 《韓國基督敎文化運動史》 그리고 민경배(閔庚培)의 《韓國基督敎社會運動史》 등 4권을 1987년에 간행하였으나, 원래 계획한 연표는 중도에 좌초되고 말았다.

한국기독교사 연구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의 하나는 1982 9월 말 한국기독교사연구회가 창립되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회는 지금까지 개별연구 단계에 머물렀던 한국기독교사 연구를 공동연구의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새로운 자료의 발굴과 복간에 힘썼으며, 연구방법에서 역사과학적인 방법을 더욱 발전시키게 되었다. 회원 중에는 역사신학을 전공한 이들도 있었지만, 일반 국사학을 전공한 학도들도 있어서, 이 연구회의 결성으로 과거 역사신학적인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한국기독교사 연구가 자연스럽게 역사학적인 문헌비판과 고증을 중시하는 학문적인 풍토가 조성되었고, 회원들에게는 ‘신앙과 학문’을 같이한다는 동지애적인 유대가 아주 끈끈하였다.43) 이 연구회는 매월 연구발표회를 가졌고 일년 일차씩 한국기독교 유적지를 답사하였으며, 1985 4 5(이 날은 100년전 이 땅에 복음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제물포에 도착한 날이다)을 기해서는 <한국기독교사연구>라는 격월간 소식지를 간행하여 회원들의 연구를 발표하는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이 연구회가 모태가 되어 1990 9 27일에는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창립되었다. 자료의 수집과 공람, 연구인력의 조직화와 연구재정의 확보, 연구의 체계화와 계속성 유지 등을 위해서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도 한국기독교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 필요하다는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출발하게 되었다. 연구소로 발전한 뒤에도 매월 연구발표회를 계속하였으며 계간으로 소식지를 간행하는 한편 1991 7월부터는 연 2회를 목표로 <한국기독교와 역사>라는 학술잡지를 간행, 연구를 발표할 수 있는 공동의 장을 마련하였다. 그 동안 연구회와 연구소에서 복간하여 보급한 자료들은44)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저변을 확대하는 일에 크게 공헌하였다. 연구소에서는 또 통사《한국기독교의 역사 I, II(기독교문사, 1989, 1990)를 간행하였는데 한국기독교사의 연구성과를 잘 반영하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사 인식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논문선집과 연구총서 번역총서 등 수십권을 간행하였다.

한국에서 교회사 관계 연구단체로는 역사신학을 교수하는 학자들을 회원으로 하여 1960년대에 조직된 韓國敎會史學會가 있는데, 초기에는 학회지를 간행하고《朝鮮예수敎長老會史記下卷을 간행하는 등 활발하게 움직였다. 90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설립을 전후하여 최근에는 여러 연구기관과 역사자료실 등이 설립되었다. 그 중 한국감리교회사학회와 한국교회사학연구원(1997) 및 한국교회사문헌연구원(원장: 심한보) 등이 저술 발표 복간 사업 등을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시키고 있다.

1980년대 이후의 연구성과에 대해서는 신광철이 비교적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45) 때문에 필자는 먼저 아래와 같이 8090년대의 업적(단행본 수준)만 나열하고, 이 시기의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특징을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1980년대~1990년대 한국기독교사 관계 단행본46)

 

간하배,《한국장로교 신학사상: 장로교신학과 교단의 갈래》 개혁주의신행협회, 1988

강인철,《한국기독교회와 국가․시민사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고신선교40년편찬위원회,《고신선교 40, 1958-1998》 대한예장[고신]총회선교부, 1998

구라다 마사히코(藏田雅彦),《일제의 한국기독교 탄압사》 기독교문사, 1991

 

국제신학연구원,《하나님의성회 교회사》 서울말씀사, 1998

금장태․유동식,《한국종교사상사 2-유교․기독교편》 연세대출판부, 1986

기독교사상편집부,《한국역사와 기독교》 대한기독교서회, 1983

김남식. 간하배,《한국장로교 신학사상사 I》 베다니, 1997

김광우,《한국감리교회 백년:제도변천기》 전망사, 1990

김덕환,《한국교회교단형성사(상․하)》 임마누엘, 1986/1989

김봉희,《한국기독교문서간행사연구(1882-1945)》 이화여대 출판부, 1987

김성준,《한국기독교회사》 한국교회 교육연구원, 1980

김성준,《한국기독교순교사》 한국교회 교육연구원, 1981

김성호,《한국성결교회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출판부, 1992

김수진․한인수, 《한국기독고회사 (호남편)》 범론사, 1980

김승태,《신사참배거부자들의 증언》 다산글방, 1993

김승태,《한국기독교의 역사적 반성》 다산글방, 1994

김승태 편,《한국기독교와 신사참배문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1

김승태 편역,《일제강점기 종교정책사 자료집》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김영재,《한국교회사》47) 개혁주의신행협회, 1992

김인수,《한국기독교회사》 한국장로교출판사, 1994

김진복,《한국장로교회사》 쿰란, 1995

김해연 《한국교회사》 성광문화사, 1993

김흥수 편,《일제하 한국기독교와 사회주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2

김흥수 편,《해방 후 북한교회사-연구․증언․자료-》 다산글방, 1992

김흥수, 《한국전쟁과 기복신앙확산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9

남영환,《한국교회와 교단 - 고신교단사를 중심으로》 소망사, 1988

노고수,《한국기독교서지연구》 예술문화사, 1981

노종해,《한국감리교회의 성격과 민족》 성광문화사, 1983

노종해,《한국감리교사의 새 시각》 도서출판 풍만, 1988

노치준,《일제하 한국기독교 민족운동 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3

대한YMCA연맹 편,《한국 YMCA운동사 18951985》 로출판, 1986

리진호,《한국 성서 백년 I, II》 대한기독교서회, 1996,

민경배,《대한예수교장로회백년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1984

민경배,《한국기독교사회운동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민경배,日帝下 韓國基督敎 民族信仰運動史》 대한기독교서회, 1991

민경배,《한국기독교회사》(신개정판)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3

박명수,《근대복음주의와 한국성결교회》 서울신학대학교, 1994

박영복,《한국기독교사회교육사》 교육과학사, 1995

박용규,《한국장로교사상사》 총신대학출판부, 1992

서정민,《역사 속의 그-한일기독교사론》 한들, 1994

서정민,《한국교회논쟁사》 이레서원, 1994

서정민,《한국교회사회운동사》 이레서원, 1995

손병호,《장로교회의 역사》 그리인, 1993

송길섭,《한국신학사상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신광철,《천주교와 개신교-만남과 갈등의 역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8

 

신기영,《한국기독교의 민족주의 18851945》 도서출판 동혁, 1995

심일섭,《한국민족운동과 기독교수용사고》 아세아문화사, 1982

연규홍,《한국장로교회와 칼빈신학사상:한국장로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한빛, 1996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한국신학사상사 서설》 전망사, 1982

유동식,《한국감리교회 사상사》 전망사, 1993

유동식,《한국감리교회의 역사, 1884-1992, I-II》 기독교대한감리회유지재단, 1994

윤경로,105인사건과 신민회 연구》 일지사, 1990

윤경로,《한국근대사의 기독교사적 이해》 일신사, 1992

윤춘병,《한국감리교 교회성장사》 감리교출판사, 1997

이균성,《성결교회 수난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1994

이덕주,《초기 한국기독교사연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5

이덕주,《한국그리스도인들의 개종이야기》 전망사, 1990

이덕주․조이제 공저,《강화기독교백년사》강화기독교백년사편찬위원회, 1994

이만열,《한국기독교와 역사의식》 지식산업사, 1981

이만열,《한국기독교문화운동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이만열,《한국기독교사특강》 성경읽기사, 1987

이만열,《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 지식산업사, 1991

이만열,《한국기독교수용사 연구》 두레시대, 1998

이만열․옥성득․류대영 공저,《대한성서공회사》 대한성서공회, 1993/1994

이만열 외 편,《한국기독교와 민족운동》 보성, 1986

이성삼,《한국감리교회사》 기독교대한감리회총리원교육국, 1986

이응호,《한국성결교회사 1, 2》 성결문화사, 1992

이장식,《대한기독교서회백년사》 대한기독교서회, 1987

이장식,《한국교회백년》 한국기독교문화진흥원, 1987

이재정,《대한성공회사개관》 대한성공회출판부, 1980

이재정,《대한성공회백년사, 1890-1990》 대한성공회출판부, 1990

전용복,《한국장로교회사》 성광문화사, 1980

전택부,《한국교회발전사》 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정규오,《한국장로교회사》(상․하) 복음문서협회, 1983

정상운,《한국성결교회사》 은성, 1997

증경총회장단 편저,《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정사, 1945-1993》 일정사, 1994

지원용,《한국루터교사 - 회고와 전망》 컨콜디아사, 1989

최광선,《한국기독교회사 - 장로교성장을 중심으로》 칼빈서적, 1991

한국감리교회사학회 편,《한국감리교회성장백년사》 기감본부교육국, 1986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한국기독교의 역사 III》 기독교문사, 1989/1990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북한교회사집필위원회,《북한교회사》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6

한국기독교장로회역사편찬위원회,《한국기독교100년사》 한국기독교장로회출판사,1992

한규무,《일제하 한국기독교 농촌운동 19251937》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석희 저, 김승태 역,《일제의 종교침략사》 기독교문사, 1990

한숭홍,《한국신학사상의 흐름》(상․하)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6

한영제,《한국기독교인물백년》 기독교문사, 1987

한영제,《한국기독교문서운동백년》 기독교문사, 1987

한영제,《한국기독교사진백년》 기독교문사, 1987

한영제,《한국기독교정기간행물백년》 기독교문사, 1987

한영제,《한국성서․찬송가백년》 기독교문사, 1987

 

 

198090년대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경향성에 1984년 한국기독교 ‘선교100주년’을 맞아 교단사와 개교회사를 펴내는 데 열성이었다는 것은, 역사의 대중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럴듯하지만, 도무지 역사서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서술이나 사분오열 분열된 교단을 정당화하는 역사편찬 등이 오히려 역사의식을 흐렸던 점도 간과할 수 없다.

198090년대의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경향으로 교회사와 일반 역사학과의 만남이 본격화되었다고 지적하였다. 과거 한국기독교사가 역사신학의 일부로서 연구될 때는 때때로 사실을 구명함에 역사작적인 방법이 소홀하거나 무시된 적이 있었다. 그러한 사실 구명에 앞서서 해석과 평가를 성급하게 하려는 경향 때문에 잘못된 사실의 인과관계를 가지고 역사를 해석하고 평가하는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또 역사연구에서 지나치게 사관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었고, 사관을 갖지 않고서는 역사적 사실을 대할 수 없는 것처럼 연구자세를 강조하게 되어 역사연구의 기본이라 할 사실 규명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기독교사 연구가 일반 국사학과 만남으로 그 방법론을 통해 문헌비판과 사실 고증이 한층 탄탄하게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점은 한국기독교사연구가 역사과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지는 데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일반 국사학을 전공하는 학도들이 기독교사연구에 투신함으로 한국기독교사와 민족사와의 관련이 더 밀접해졌다. 한말 일제하의 민족운동사에서 민족운동의 한 유파로서의 ‘기독교민족운동’ 분야설정이 가능하게 되어가고 있다. 여기에는 윤경로, 김승태, 한규무, 강명숙, 한석희(韓晳羲)와 구라다마사히코(藏田雅彦)48) 등의 연구와 업적들이 있다. 민족통일문제와 관련, 김흥수, 사와마사히코(澤正彦)의 저술49) 및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북한교회사》(1996)를 들 수 있고, 최근 한국기독교의 통일운동사를 정리하는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50)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의 하나는 한국의 기독교문화를 창달하기 위한 기반조성이라고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문화 전통과 만나 형성되고 있는 한국기독교에 대해 먼저 역사학적인 접근과 분석으로 그 정체성(identity)을 찾아야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연구와 관련, 이덕주의 일련의 저술과 서정민․신광철이 주목된다.

 

6. 맺는 말 -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과제

 

초기-기도교의 이입과정, 입신과정 등과 피선교지와 접맥 과정, 초기의 전도문서 분석 필요/ 한말 일제하- 기독교민족운동의 신앙과 신학적인 기반 연구 필요/ 史觀의 문제_백낙준의 ‘선교사관’, 민경배의 ‘민족사관, ‘민중사관’ 등51) , 자료수집과 보존의 필요성과 협동성/ 해방 후 인권․민주화 운동과의 관계․분열과 연합, 기독교문화 정립 등의 연구과제

[논문 41-2, 한국기독교사 연구의 어제와 오늘》의 요약임]


1)  Quarto-Centennial Papers (Seoul, 1909). 140페이지나 되는 이 책자의 집필자들은, 서문-G.Lee, 인사-H.N.Allen, 복음 사업-S.A.Moffett, 의료 사업-O.R.Avison, 여성 사업-Margaret Best, 교육 사업-Wm.M. Baird, 문서 사업-J.S.Gale, 회상-H.G.Underwood, 사망자 명단-J.E.Adams, 재정-C.A.Clark, 통계-C.A.Clark 등이다.

2)  M. E. Board of Foreign Missions, Korea Quarter Centennial Documents (N.Y., 1910)

3)  이 책은 이길상에 의해《한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예영커뮤니케이션, 1994)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간행

4)  14인은 다음과 같다. 마포삼열, 길선주, 이눌서, 김인전, 공위량, 임택권, 업아력, 박창영, 왕길지, 정재순, 곽안련, 함태영, 함가륜, 정기정

5)  洪以燮, <韓國基督敎史硏究小史>(韓國史 方法, 탐구당, 1968) p. 440

6)  이 책은 박용규․김춘섭에 의해,《한국교회와 네비우스 선교정책》(대한기독교서회, 1994)으로 번역, 출간

7)  이상규, <韓國 基督敎史 硏究 現況 課題>(高神大學 論文集 10, 1982) p.198

8)  이상규, 위의 논문, p.198

9)  참고로 기독신보 1928 4 11일 및 4 25일자에 소개된 필자는, 천주공교(翰洙), 장로교회(吳天泳), 북감리교회(昌俊), 남감리교회(鄭春洙), 성공회(源昶), 안식교회(禹國華), 성결교회(明稙), 회중기독교(一宣), 동아기독교(安大闢) 및 구세군(建泳) 등이다.

10)  <긔독신보>에 보이는 한국기독교사와 다소 관련된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많으나 다음의 것들이 특히 참고되는데, 1934년 한국교회 희년을 맞아 자기의 역사에 대한 의식이 제고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崔志和: <朝鮮 新思潮 基督敎 關係(5)>(1922.11.812. 13), 게일의 離韓講演 <조선선교역사에 대하여>(1927.7.13), 1928 5 2일부터 연재되는 <朝鮮基督敎 各派 紹介>  吳天泳의 ‘조선에서 교파 중 제일 큰 장로교회’를 비롯하여 金昌俊, 禹國華 등의 소개, 具滋玉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연혁>(1928.11.7), 容卨 <조선야소교의 현재 및 장래>(1931.1.12.4), 안대선의 <과거 50년간 면려회 발전사>(1931.1. 14), 班禹巨 <조선 예수교서회 연혁>(1931.9.3010.7), 昶濟, 蔡弼根, 鎭九, 韓致振, 金麟, 具滋玉 등의 <기독교문화운동의 管見>(1933. 1.1일 이후), 양주삼의 <감리교회가 조선에서 선교를 시작한 이야기>(1934.6.20), 朴淵瑞 <監理敎會 小史>(1934.6.279.12), 吉昌 <조선 예수교장로회 교회 오십년약사>(1934. 9.2610.3)  尹仁駒 <朝鮮神學 樹立問題>(1936. 2.5)

11)  홍이섭은 <韓國基督敎史硏究小史>(韓國史 方法, 탐구당, 1968, P. 434)에서 “선생님은 …고국에 돌아올 준비로서 학위를 받을 계획으로 각 대학에 적당한 연구과제가 없는가를 서신으로 문의하였을 때 예일대학의 라뚜렛 교수가 <朝鮮基督敎宣敎史>를 권함에  대학에서 2년간 연찬하여…”라고 하였으나, 백 박사는 1929년에 刊行된 영문판 서문(Preface)에서 “이 연구분야는 원래 예일대학교의 매킨토쉬(D.C.Macintosh) 교수로부터 권유를 받았고, 연구는 라뚜레트 교수의 지도로 이뤄졌다”로 밝혔다.

12)  L.George Paik, The History of Protestant Missions in Korea, 18321910, Preface, iii

13)  ,韓國改新敎史(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 自序 vvi

14)  백낙준, 앞의 책, 自序, vii

15)  K.S.라투렛, <>(백낙준,《한국개신교사》, 연세대학교출판부, 1973) iv

16)  山口正之, 朝鮮新敎史 書評(靑丘學叢 第七號, pp. 144146) 참조

17)  신광철, <한국개신교사 연구사>(종교와 문화, 2, pp. 184185). 이능화의《조선기독교급외교사》에 관해서는 홍이섭, <朝鮮基督敎 及 外交史 複印序> <이능화 선생의 ‘조선기독교 급 외교사’>(《한국사의 방법》, 탐구당, 1968), 김수태, <이능화와 그의 사학: 특히 그의 조선기독교 급 외교사를 중심으로>(동아연구,  4, 1984) <이능화의 한국기독교 연구>(종교연구,  9, 1993), 신광철의 <이능화의 종교사학과 한국 기독교사 연구>(한국기독교와역사 제4, 1995) 등 참조

18)  이 책에서는 개신교와 관련, 하편 14장과 22장의 일부, 29 <立約後基督敎傳布狀態> 30 <地獄卽天堂>에서 간단하게 쓰고 31장에서 <朝鮮基督敎各派現狀及事業統計表>를 제시하는 정도이다.

19)  金永勳, <識 敎會史記後>(朝鮮예수敎長老會史記下卷, 延世大學校出版部, 1968, p. 404)에 보면, 그가 수정완료하고 跋文을 쓴 것이 1930 8 20일로 되어 있다.

20)  백낙준, <緖言>(朝鮮예수敎長老會史記下卷) pp. 12. 참고로 1928년에 간행된 것은 첫 책에는 ‘上卷’이라는 표시가 없다.

21)  梁柱三,朝鮮南監理敎會 三十年紀念報(朝鮮南監理敎會傳道局, 1930), 서언 참조

22)  김양선, <自序>(《한국기독교해방십년사》) p. 33

23)  안광국, <머리말> (韓國基督敎史硏究, 기독교문사, 1971)

24)  전성천,《洛東江 소금배》(현대문학사, 1976) pp. 4950  Schism and Unity in the Protestant Churches of Korea (CLS, 1979) p. ii, author's preface

25)  변종호, <머리말>(《한국기독교사개요》) p. 1

26)  1960년대에 이뤄진 기독교사에 관한 저술을 대력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郭安全․심재원 공저:《한국교회사》(대한기독교서회, 1961), 박용규:《한국교회인물사》(한조문화사, 1961), 김용해:《대한기독교침례회사》(대한기독교침례회총회, 1964), 이영린:《한국재림교회사》(시조사, 1965),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편:《한국기독교장로회50년 약사》(한국장로회, 1965), 서명원(이승익 역):《한국교회성장사》(대한기독교서회, 1966), 이영린:《한국재림교회사연구》(선명문화사, 1968), 김춘배:《한국기독교수난사화》(聖文學舍, 1969)

27)  이 책은 1964년에 학위논문을 제출한 원고를 영인하여 배포한 적이 있다.

28)  이 책은 그가 리치몬드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학위논문으로 제출한, A History of the Korean Mission, Presbyterian Church, U.S., from 1892 to 1962라는, 767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양의 논문을 축약하여 출판한 것이다.

29)  이 책은 심재원에 의해《韓國敎會史(대한기독교서회, 1961)로 번역, 출판되었다.

30)  이 책은 이승익에 의해《韓國敎會成長史(대한기독교서회, 1966)로 번역, 간행되었다.

31)  이덕주, <신학연구의 다양성-성공하는 토착화 신학>, 앞의 책, p. 83

32)  이 책은 언듯 보면 한국기독교회 통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金庄鎬 1918년 조선예수교 장로회 황해노회로부터 해직된 후 <朝鮮基督敎會>라는 교단을 창설한 후 그 교단의 역사를 쓴 것이다.

33)  1975년과 80년에 간행된《한국감리교회사》는 두권 다 이성삼이 집필하였다. 80년에 간행된 책의 판권난에는《한국감리교회사 II (조선감리회 193045)》라고 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면 75년에 간행된《한국감리교회사》를 I권으로 간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34)  이 책은 필자가 입수한 바가 없지만,韓國基督敎會史(대한기독교서회, 1972) p.157  2를 통해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35)  의문의 근거는 이렇다. 민경배의 저술은 백 박사보다 43년이나 뒤에 간행된 것이어서, 여건 상 한국측의 사료는 희귀본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섭렵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백 박사를 비판할 정도로 한국측의 자료를 섭렵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가 말하는 대로 “한국 교회 쪽의 고백과 증언”이 제대로 고려될 수 없었다고 보여진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백 박사가 저술의 하한연도로 잡은 1910년까지의 자료에 국한해서 볼 때 그렇다는 뜻이다.

36)  그의 작업은 계속되어 《韓國基督敎會史》를 두 번이나 개정판을 내었고, 《한국의 기독교》(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5),敎會 民族(대한기독교출판사, 1981), 《순교자 주기철 목사》(대한기독교서회, 1985), 《알렌의 선교와 근대한미외교》, 韓國基督敎社會運動史(대한기독교출판사, 1887), 日帝下 韓國基督敎 民族信仰運動史(대한기독교서회, 1991) 등의 저서와 많은 논문들을 남겼다.

37)  오윤태의《韓國基督敎會史》는 제1 韓國景敎編 <1 東方으로 傳來 基督敎>라 하여 1973년에 간행한 이래, 2 韓國가톨릭 I <2편 가톨릭 敎會 傳來 成長>(1975)으로, 3 韓國가톨릭 II <3편 가톨릭 敎會 迫害史 新敎前史>(1979), 4 改新敎傳來史 <先驅者 樹廷編>(1983)으로 각각 간행하였다.

38)  李永獻, 韓國基督敎史(컨콜디아사, 1978)  머리말

39)  그는 7년 동안에 《東方基督敎史(기독교문사, 1971), 《아시아基督敎擴張史(기독교문사, 1973), 韓國基督敎傳來史(한국교회사연구원, 1974), 韓國基督敎人物史(기독교문사, 1974), 韓國基督敎成長史(기독교문사, 1976), 韓國基督敎受難史(기독교문사, 1978),  長老會神學校七十年史(1971), 大韓예수敎長老會最近史(1974) 등을 집필하였고 그의 숙부 김양선의《韓國基督敎史硏究(기독교문사, 1971)도 편집 간행하여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였음을 알 수 있다.

40)  1980년대 이후에 가면, 한국기독교여성사 관계의 저술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박순경의《한국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대한기독교서회, 1983)가 여성운동의 신학적인 과제를 제시한 데에 이어, 김영삼의《김마리아》(한국신학연구소, 1983) 전기가 간행되었고, 愚貞이《한국기독교 女性百年의 발자취》(민중사, 1985)를 써서 여성운동사 탐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어서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 여성분과위원회에서《여성! 깰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노래할지어다: 한국기독교여성100년사》(대한기독교출판사, 1985)와 배가례의《성결교회 여성사, 19071987(기독교대한성결교회출판부, 1987), 김명현․엄마리 편의《민족사 속의 감리교 여성: 연선교회 월례회 순서 공과》(기감 여선교회 전국연합회, 1989), 이우정․이현숙의《여신도회 60년사》(한국기독교장로회 여신도회전국연합회, 1989) 등이 간행되었다. 한편 이덕주는 한국교회사의 관점에서《한국교회 처음 여성들》(기독교문사, 1990)과《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의 역사》(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1993) 및《한국감리교여선교회의 역사, 18971990(기감여선교회 전국연합회, 1991) 등을 썼다.

41)  기독교문사40년사편찬위원회, 《책에 담은 복음과 나라사랑》(기독교문사, 1995) p. 182

42)  성갑식, <간행사> 韓國敎會發展史(대한기독교출판사, 1987) p. 3

43)  초기 회원들은 이만열 박효생 윤경로 김흥수 이덕주 서굉일 이진호 조영열 심한보 서정민 김형석 김승태 한규무 등이다. 이 중 심한보는 자료를 복간하는 데에 남다른 열성과 희생을 감수하였다. 한국기독교사 연구가 활발하게 된 데에는 자료의 간행 보급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인데 이 점에서 심한보의 공헌과 기독교문사의 협조는 길이 기억될 것이다.

44)  복간 자료에는 선교사들의 저술 등 20여종을 비롯하여 <기독신보>(19151937) 1905년부터 1941년까지 선교사들이 연합하여 간행한 월간지 The Korea Mission Field 등이 있다.

45)  신광철, <한국개신교사 연구사-한국개신교사의 총체적 이해를 지향하며-> 앞의 책, pp. 191195 참조.

46)  이 목록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조사하여 저자명 가나다 순으로 배열한 것이다. 필자의 분류기준에 따라 개 교단사와 전국적인 규모의 기관사는 수록하였지만, 개별적인 노회, 연회 및 개 교회사와 인물의 전기 등은, 학문적인 업적으로 충분히 간주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외되었다. 조사의 미비로 마땅히 이 목록에 들어가야 할 것 중에서도 누락된 저작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이 점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며 기회가 닿는 대로 보완토록 하겠다.

47)  김영재의 이 책은 특히 <서론: 한국 교회사 연구방법론>이 주목된다. 이 서론은 이미 <신학지남>(199, 1983년 가을)에 게재했던 것으로, 한국교회사 중요저서 및 논문을 소개하고 한국교회사와 교회의 전통, 한국교회사의 과제 등을 기술하였는데, 한국교회()를 대하는 저자의 신학사상과 인품이 잘 드러나는 글이다.

48)  구라다마사히코(藏田雅彦), 《일제의 한국기독교탄압사》 (기독교문사, 1991)

49)  사와마사히코 저, 김숙자․강문규 역, 《남북한기독교사론》(原題 南北朝鮮基督敎史論) 민중사, 1997 

50)  참고로 필자의 <한국기독교 통일운동의 전개과정>(《민족통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 두란노, 1994)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의 역사적 의의>(기독교사상, 1995 1월호)도 그런 작업의 하나다.

51)  이 점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펴낸 《한국기독교의 역사 I》의 <머리글>에서 언급된 적이 있고, 이덕주가 <감신대학보>(1993 10 14일자)에서 ‘한국교회사 연구 흐름과 최근 경향’에서 이 점을 거듭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후 이같은 견해가 정설처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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