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전도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인간들의 영원한 운명을 포함한 장차 발생할 모든 것을 작정하셨다. 이러한 운명에 관한 하나님의 섭리를 성경에서는 ‘예정’이라 부른다.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그러한 예정은 선택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진리는 에베소서 1장 4-6절, 11절에 나타나 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교회 회의 중 1618년과 1619년에 전 유럽 개혁 교회들이 개최했던 돌트(Dort)회의 만큼 이러한 선택에 대해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심사숙고하게 심의된 회의는 없었다. 이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선택이란 세계의 기초가 생기기 전, 하나님께서 그의 뜻의 주권적 기쁨을 따라 순수한 은혜로부터, 전적으로 타락하여 죄와 파멸 속에 있는 전 인류 중 뽑은 자를, 영원 전부터 중보자이시며 산택 받은 자의 머리이시며 구원의 기초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목적이시다.”(Dort신조 1, 7)
개혁 신조 중 가장 심사숙고하고 기독교계의 가장 위대한 신조로서 많은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제 3장은 이 섭리에 대해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전도에 관해 말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비밀 된 의미”란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우리가 심오한 비밀을 취급하고 있으며, 천사들도 걷기를 두려워하는 거룩한 곳에 있고, 유한한 인간은 무한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사고를 피하고 직접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살아야 함을 우리에게 기억나게 한다.
1.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1] 선택의 근거는 선택 받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 자신 안에 있다.
어떤 학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되 그들이 예수를 믿고자 하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선택하신다고 말하지만 이는 참된 것이 못 된다. 물론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서 발생할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것처럼, 모든 것을 미리 아시고 행동하시지만, 예지가 선택의 이유는 아니었다. 구원 받은 믿음은 선택 받은 자들에게 주신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엡 2장 8절). 예지는 선택의 근거라기보다 선택의 결과 중 하나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대로” 택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엡 1장 5절). 그 말은 단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택하심을 의미할 수 있다.
[2] 선택의 주권적 특성은 선물이 무조건적이었다는 사실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믿을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택하시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작정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것을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고 알려주셨다(살후 2장 13절). 고로 믿음은 선택의 열매이지 선택의 조건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가정된 모든 조건하에서 일어나거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아시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래사나 그런 조건하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어떤 일을 작정하시지 않으셨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
[3] 선택의 주권성은 선택의 불변함 가운데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고 선언하셨다(사 46장 10절). 바울은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선언하셨다(롬 8장 30절).
하나님의 선택받은 모든 자는 분명히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선택받은 자가 특별히 변함이 없도록 계획되었으며, 그 숫자가 정확하며 유한하므로 증가되거나 감소될 수 없음을 주장했다(웨스트민스터 3-4).
돌트 회의는 선택을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기쁨으로 표현했다(돌트 신조 1-11).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를 변함없이 이루신다(약 1장 17절). 연약한 인간은 이 계획을 변화시킬 수 없다. 사탄도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임의로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하신다고 생각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일방적으로 하시는 일이 없다. 하나님은 그가 행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을 영생에 이르도록 선택하기 위해 하나님을 움직였던 것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은 무엇이었는가? 그 질문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 가운데 분명히 대답하셨다. 로마서 8장 29절은 “하나님이 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전서 1장 2절은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택하심을 입었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이 두 곳에서 “아신다.”는 말은 성경에 나타난 풍성한 의미 곧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리 아심”은 영원 전부터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그의 택한 자를 사랑하신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생에 이르도록 선택하셨다. 왜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구별하며 영원 전부터 구원에 이르도록 사랑하셨는가 하는 질문은 우리로 하여금 무지함을 고백하게 한다.
우리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하나님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인간의 생각보다 높다(사 55장 8-9절).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열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 아담 안에서 죽었던 모든 인류는 영원히 죽어 마땅하다. 모든 인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엡 2장 3절).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영원히 멸망 받도록 허락하셨다면. 모두가 그들의 받아야 할 형벌을 받았을 것이며, 아무도 순응할 이유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예정의 경륜 가운데 어떤 사람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를 간과하셨다는 사실을 어떤 사람이 불평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주제넘은 말이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이 없느냐.”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롬 9장 20-21절).
우리는 지옥에 들어가 마땅한 자를 의롭게 취급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오히려 허물을 더욱 발견하게 되므로, 이러한 영원한 은혜로운 구원의 사랑을 인하여 찬송을 돌릴 뿐이다.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선택하셨다고 들었다(엡 1장 4절). 그러한 구절의 참된 의미는 신학자들 간에 많은 논쟁이 되었었다. 오늘날까지도 확고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자도 있다. 분명히 그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어떤 죄인을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현되도록 계획되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선택의 작정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방편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우리는 선택받은 자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선택 받았다고 듣지 못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이르도록 택함을 받은 것이라고 들었다. “그리스도 안에서”란 말은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의 중보자로서 성부 하나님으로 하여금 어떤 사람을 영생에 이르게 선택하도록 촉구시킨 그리스도를 의미할 수는 없다. 그 해석은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 그리스도로 하여금 중보적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세상에 보내도록 사랑에 충동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요한복음 3장 16절과 모순이 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뜻을 택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선택의 경륜 가운데서 그들을 독생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보셨으니, 즉 하나님께서 아들을 사랑하시는 사랑 가운데서 그들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의미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랑 가운데서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에베소서 5장 1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앞 절의 설명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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