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본질(Essence)
"본질"은 하나님의 "실체(substance)" 또는 "존재(being)"를 뜻한다. 사실상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제한된 마음으로 잡을 수 있는 것과는 다르시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신을 계시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결코 그분의 속성을 제쳐놓고 하나님의 존재나 본질을 말하지 않는다.
I. 요한복음 4:24에 계시된 하나님의 본질
이 표준 구절에서 하나님의 본성(nature) 또는 본질에 관한 세 가지를 주목하자.
1. 생명 2. 영 3. 인격
A.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요한복음 4:24는 "GOD IS--" 라고 시작하지 "GOD WAS--" 라고 시작하지 않는다.
바로 하나님의 본질은 생명이다!
1.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올바르게 정의될 수 없다. 생명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에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은 단순히 "존재(existence)"가 아니라, 행동 안에 있는 관계(relationship)
이다. 실제로 생명은 "직관(intuition)"이다 - 설명할 수 있으나 정의할 수는 없다.
2. 다른 성경기록들이 하나님은 생명임을 선언한다.
요 5:26; 렘 10:10; 행 14:15
3. 예들을 비교하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분이심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다는 사실에 의해 자주 거짓 신들과 비교가 되신다.
예레미아 10:10-16 과 하박국 2:18-20 을 비교해 보라.
B. 하나님은 영이시다 (對 물질주의)
요한복음 4:24절의 본문은 이 성경 구절의 이해를 돕는다. 사마리아 여인은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 예루살렘인가 아니면
게리짐인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답은 하나님은 무한하시다는 것이었다 -
그분은 영이시다.
주 : 부정관사 "a" 가 현대 역본(예:RSV, NASV, NIV, NKJB)에서는 생략되었다.
이 차이점은 중요하며 권위역 성경(KJB)의 표현이 정확하다. - 하나님은 다른
모든 영들과 구별되는 영(a Spirit)이시다.
1. 이것은 무엇을 내포하는가?
"영"은 "물질(matter)"과 대조된다. 이 구절은 다음을 가르친다.
a. 하나님은 형체가 없으신(몸이 없으신) 분이시다 - 눅 24:39
b.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다 - 골 1:15; 딤전 1:17
롬 1:20; 딤전 6:16 도 볼 것.
c. 하나님은 (제한을 받지 않는) 무한하신 분이시다 - 시 139:7
2. 몇 가지 난제 해설
사람들은 간혹 하나님께서 영이시라는 위의 설명과 명백하게 일치되지 않는
것들을 지적한다.
a. 성경의 많은 구절은 하나님께서 발(히 1:10), 손가락(시 8:3),
눈(대하 16:9, 사 59:1), 손(민 11:23), 팔(신 33:27), 등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한다.
어떻게 형체가 없으신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대답 : 하나님에 관한 이러한 표현은 의인화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인간의 용어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b. 다른 구절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복음
1:18은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대답 : 성령은 보이는 형체로 나타날 수 있다. (예: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로, 현현(顯現)(Theophany)). 하나님의 본질은 볼 수 없다.
3.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한복음 4:24는 하나님은 (은사주의자들처럼) 우리의 감각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오직 영으로만 이해될 수 있음을 뜻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으로 진리로 경배한다.
a. 장소 또는 형체와 구별되는 것으로 영 안에서
요 4:20,21; 행 7:48, 17:24-25
b. 불완전한 지식에서 온 거짓 개념들과 구별되는 것으로 진리 안에서
요 4:22, 17:17; 요일 4:6; 사 8:20
4. 다른 구절은 하나님께서 실체가 없으시다(immaterial)고 선언한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는 근거 위에 하나님은 우상을 금하셨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물질적인 분이셨다. 신 4:15-20,23을 볼 것.
C. 하나님은 인격이시다 (對 범신론)
"그분(HIM)을 경배하는 그들이..."('HIM'이지 'IT'가 아니다). 인격은 "자의식
(self-consciousness)" 과 "자기 결정(self-determination)"(의지)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인격은 다음의 3 가지를 포함한다
a. 지(知)(Intellect) - 생각하는 능력. "I KNOW" (예) 출 3:7
b. 정(情)(Sensibility) - 느끼는 능력. "I FEEL" (예) 출 2:24,25
c. 의(意)(Volition) - 의지의 능력. "I WILL" (예) 출 3:17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신다
1. 그분은 인격적인 존함을 가지고 계신다
출 3:14; 시 23:1; 사사 6:24
2. 하나님은 "죽은" 우상과 대조되신다
렘 10:10-16
3. 그분은 인칭대명사로 언급되신다.
예. "Thee & Thou", "He & Him" 예. 요 17:3; 시 16:1,2
4. 그분은 인격의 특성들을 가지고 계신다
a. 슬픔(grief) - 창 6:6
b. 분노 - 왕상 11:9
c. 질투 - 신 6:15
d. 사랑 - 계 3:9
e. 증오 (시 6:16)
5. 하나님은 "I AM" 과 "I WILL" 이시다.
출 3:14 - "I AM" - "자의식"을 뜻한다.
출 6:6-8 - "I WILL" - "자기 결정"을 뜻한다.
6. 하나님은 우주와 인격적인 관계를 갖고 계신다
a.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심.
이것은 소유권(interest)을 보여준다
b. 하나님께서 우주를 유지시키신다 - 히 1:3; 골 1:17
이것은 관심(concern)을 보여준다
7. 하나님은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고 계신다
사람은 교제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리고 단지 두 인격만이 이러한 종류의
교제를 할 수 있다.
예: 구원에서 -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Ⅱ. 하나님의 본성 - 그분의 하나됨(Unity)
(對 단신론, 이원론, 삼신론)
A. 하나님의 "하나됨"의 의미
이것은 "본질(essence)의 하나됨"을 뜻한다 - 인격이 아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사실과, (어느 곳에서든지) 무소부재하시다는 사실은
논리적으로 한 하나님 이상의 존재를 배제한다.
B. 성경은 하나님의 하나됨을 선언한다
신 6:4; 사 44:6-8, 45:5; 요 17:3; 고전 8:4; 엡 4:5-6; 딤전 2:5
C. 성경은 하나(ONE)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자주 "하나(one)"라는 용어가 "복합적 하나됨(compound unity)" 의 의미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두 개가 하나가 될 수 있으며(창 2:24), 다수가 하나가 될 수 있다(빌 2:2).
그러나 이는 우리가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해야 하는 방법은 아니다. 하나님의
하나됨의 교리는 다음에서 보듯이 삼위일체 교리를 위배하지 않는다.
Ⅲ. 하나님의 본성 - 삼위일체
(對 Unitarianism)
A. 하나님의 하나됨과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대조
하나됨 = 본질의 하나 (ONE GOD!)
삼위일체 = 인격의 삼-일 (THREE Persons!)
삼위일체 교리는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 성경이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
B. 구약에서의 삼위일체 교리
1. "하나님"에 관한 "단수-복수"형 존함에서 보여진다.
"하나님(God)"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복수인 "엘로힘"이다. 이 사실을 알기
위하여 히브리어 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 창 1:26,27을 볼 것.
2. "주님의 천사"의 나타남에서 보여진다.
현현(Theophany)은 천사의 형태 안에 계신 하나님(그리스도)이시다.
창세기 22:11,12,15,16을 주의 깊게 연구하고 요한복음 8:56,58과 비교하라.
창 16:7-10,13, 18:1,2,13-33; 19:24 도 볼 것.
3. 성령님의 사역에서 보여진다.
창 1:2; 사사기 6:34
C. 신약에서의 삼위일체 교리
1. "위대한 사명"에서 보여진다.
마 28:19, "이름"이란 단어는 단수형이다.
2. "사도의 축복"에서 보여진다
고후 13:14
3.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밥티스마(침례)에서 보여진다
마 3:16,17
4.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보여진다
요 14:16 "나(I)", "아버지", "다른 위로자"
5. 바울의 가르침에서 보여진다
고전 12:4-6. "성령", "주님", "하나님"
6. 그리스도와 성령의 신성을 고려할 때 보여진다
하나님이신 아버지 - 롬 1:7
하나님이신 아들 - 히 1:8
하나님이신 성령 - 행 5:3,4
주 :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역 (특별히 구원에 있어서)은 다음과 같이
보여질 수 있다 : 아버지로부터(From), 아들에 의해(By), 성령을 통하여(Through).
이것은 또한 기도에서 보여진다 - 엡 2:18
D. 삼위일체에 관한 관찰
1. 세 분 하나님을 의미하지 않는다(삼신론)
기억하라: 한 하나님(ONE God)(본질에서), 세 인격(THREE Persons)
2. 우리는 구별된 인격을 믿는다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다; 아들은 성령이 아니다; 등
E. 삼위일체에 관한 설명
삼위일체에 관해 성경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기 위한 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한 교리가 인간의 마음에 궁극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들은
흔히 불충분하고, 항상 부적절하다.
1. 달걀
달걀은 "껍질","흰자위","노란 자위"로 구성된다. 이 예증은 각 구성요소가 달걀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패다.
2. 인간 관계
나는 사람이다
나는 내 아들의 아버지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 안에 셋이다 - 사람, 아버지, 아들
그러나, 이 예증은 3 개의 관계만을 가르칠 뿐이지 3 인격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실패다. - 이 예증은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부인하기 위하여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3. 물 - H2O
물은 세 가지 상(phase)으로 존재할 수 있다.- 고체(얼음), 액체, 기체(증기).
물은 또한 동일한 시간에 3 단계로 존재할 수 있다. 어떤 형태의 상이든지, 모두
본질은 동일하다.
F. 삼위일체에 관한 최고의 구절 - 요일 5:7
요한일서 5:7 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실제적으로 가르치는 성경의 구절이다 - 그러나
우리는 이것에 관하여 많이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이 그곳에 있어서는
않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예. 스코필드 관주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여백 주석이 있다 :
"7 절은 아무런 실제적인 권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삽입된 것이라는데
일반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1325 페이지)
모든 현대 역본들은 이 구절을 삭제하거나, 혹은 RSV와 NASV와 같은 역본은
기만적으로 6절을 7절로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이 구절이 대부분의
고대 MSS에서, 그중에서도 특히 시내 사본(x)과 바티칸 사본(B)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 대부분의 믿는 이들이 이 구절을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으로
선포하는 대신에 눈가림을 당하여 이 구절을 옆으로 비켜 놓았다.
다음 사항들을 주지해야 한다.
1. 이 구절의 확실성을 증거하는 적합한 증거들이 있다.
a. 라틴 벌게이트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수많은 라틴계 사본에서 발견된다.
b. 61 몬트포르트 사본에서 발견된다
c. Codex Ravianus (88 과 629)에서 발견된다
d. Speculum(m)에서 발견된다.
e. r에서 발견된다 (구 라틴, 5 세기)
f. 터툴리안(160-230)이 인용하였다
g. 사이프리안이 인용하였다(200-258)
h. 프리스킬리안(Priscillian)(385)이 인용하였다
I.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가 인용하였다 (480-570)
j. 5 세기에 몇몇 아프리카 라틴 작가들이 아리안 반달에 대항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방어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이 본문은 비잔틴 계열보다는 라틴 계열을 통하여 보존되어왔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많은 사본에서 이 구절이 삭제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4 가지 가능성이 있다.
a. 이 구절은 결코 처음부터 이곳에 있지 않았으며, 삼위일체설 신봉자들이 그들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하여 고의로 추가한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그리스어
사본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b. 이 구절은 결코 처음부터 이곳에 있지 않았으며, 8 절에 대한 삼위일체설
신봉자들의 해석을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성경기록자들의 호의에 의해 추가된
것이다. 그들은 "영=아버지","물=성령", "피=아들"로 보았다.
c. 이 구절은 유니테리안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하여 고의로 삭제한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론 논쟁이 동방에서 맹렬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그리스어 사본의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d. 이 구절은 "유사한 어미를 가진 구절로 인한 시각적인 실수"인 필사상의 실수
(homoioteleuton)로 인하여 우연히 누락되었다.
요한일서의 내적 증거는 논쟁 구절의 권위를 다음과 같이 지지한다.
· 요한은 그노시스 이단들에 대한 경고를 목적으로 서신서를 1 세기 말 무렵에
썼다. 2:26; 4:1-3을 볼 것
· 케린투스(Cerinthus)는 사도 요한을 대적한 유명한 그노시스주의자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최고의 영원한 로고스와 연합되었고 그가 죽으실
때 분리된 평범한 사람이였다고 가르쳤다.
· 가현론자(Docetist)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의 실제를 부인한 그노시스주의자 무리였다.
· 만약 구절이 본문에서 보존되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증거로서 7 절을, 인간의
증거로서 8 절을 갖는다. 7 절은 케린투스파를 논박한다. 왜냐하면 7 절은 한 본질
안에 구별된 세 인격의 하나됨(unity)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8 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인성을 인정함으로 가현론자를 논박한다.
(예. 요일 1:1; 4:2; 5:6; 요 19:34,35)
3. 이 구절을 지지하는 문법의 증거가 있다
아마도 요일 5:7의 권위를 가장 확신하는 이유는 이 구절이 삭제될 경우 그리스어
문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일 것이다.
a. 대부분의 번역본에서 생략된 단어들을 "하늘에...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한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땅에 증거하는 셋이 있으니..." 이다.
b. 삭제된 불완전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증거하시는 세 분이 계시니, ...영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하나로 일치하느니라."
c. 그리스어 관사 "hoi"는 남성형이지만 명사 "프뉴마(영)", "휴도르(물)",
"하이마(피)"는 모두 성에서 중성명사이다. 이것은 그리스어 구문론에서 큰
오류이다. (중성명사 주어는 남성형 선행사를 취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한
일반적인 답변은 영과 물과 피가 인격화되여서, 남성 관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또한 답변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앞의 인격이 6 절에서
"성령"이며 "프뉴마"는 중성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의미는 논쟁의 단어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존될 때만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단지 남성형 숫자
(treis-셋), 관사(hoi), 분사(marturountes-증거하는) 만이 남성 명사 "pater
(아버지)"와 "logos(말씀)"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단지 다음과 같은
구문론의 규칙만 지켜진다 : "남성 명사는 그들과 연결된 중성 명사를 성(性)에서
지배한다"
2. 만약 논쟁의 단어가 삭제된다면 단어의 흐름은 6 절에서 8절까지 의미없이 반복될
뿐이며, 구절은 불완전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논쟁의 단어가 삭제된다면, 8절의
문자적 구문("이 셋이 하나로 일치하느니라")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 "누가
또는 어떤 것이?" 단어들이 남아있지 않으면 선행사는 없다.
3. 만약 이 구절이 어떤 삼위일체설 신봉자가 그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삽입하였다면 왜 그는 삼위일체의 표준 공식인 "아버지, 아들, 성령"을 사용하지
않았는가? 왜 "말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가?
위에 인용된 이유는 보존의 교리와 함께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인도한다 - 요한일서 5:7, 소위 'Johannine Comma'는 기독교사의 초세기를 거치며 그노시스주의자와 아리안주의자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순수하게 섭리적으로 보존된 것이다.
암송해야 할 교리적 구절 : 요 4:24
암송해야 할 교리적 구절 : 요일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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