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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약관련 역사(개요)

하나님아들 2017. 9. 4. 21:11
신약관련 역사(개요)

 

 


I. 먼저 참고로 구약의 역사를 도포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II. 다음으로 구약과 신약을 연결시켜 주는 역활을 하는 중간시대와 신약시대의 주요한 역사, 정치적인 사건들을 도표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멀찌감치 앞에서 부터 설명을 시작합니다.)

     포로귀환, 에스라 느헤미아 시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이 기원전 549년에 파사와 메데를 통일하고 이어서 539년 바벨론을 통일합니다. 그리고 그는 식민지에 대해 유화정책을 폅니다. 그 일환으로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인들을 본국으로 돌려 보냅니다 (기원전 538).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돌아온 귀향인들은 (참고 스 1,2-4; 6,3-5)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재건하면서 성전 중심, 제사장 중심으로 사회가 움직이는 소위 제사장왕국을 만듭니다 (이외에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를 움직이는 특정 정치적인 중심층이나 제도가 없었습니다).
     다른 한편 이 시기에 페르시아를 통해 부활사상이나 응보사상, 이원론적인 사고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등이 이스라엘에 수입됩니다.

     헬라시대: 기원전 332년에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가 팔레스타인을 점령합니다. 그는 통일된 하나의 문화를 이용하여 자기 대제국을 하나로 묶을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원래 (유래가) 동방적이며 국제적인 그리스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하나의 통합된 문화를 만듭니다(헬레니즘). 전 제국에 공용어로 코이네 헬라어가 통용됩니다. 이 헬레니즘은 영향력이 매우 커서, 예를 들면 후에 로마의 통치 기간 중에도 오랜동안 (라틴어가 아니라) 헬라어가 계속 사용됩니다. 성서기자들은 모두 헬라어로 성서를 기록합니다. 따라서 이 헬레니즘은 성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하나의 사상적 배경이 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사후에 대 제국은 곧 분열되여 4개로 나뉘어집니다. 팔레스타인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셀주커스 왕조와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프톨레미우스 왕조 사이에 끼게 됩니다. 그래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두 나라의 패권다툼에 당시 팔레스티나는 늘 전화에 휩쓸립니다.

     막하비혁명과 하스모니아 왕조: 그러던 중 셀주커스 왕조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라는 (BC 175-164) 이스라엘로 볼 때 아주 악독한 군주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로마에 패해서 생긴 배상금을 마련하고자 이집트를 (따라서 길목에 있는 유대도) 공격합니다. 이는 로마의 위협에 직면하여 (천적인 이집트는 당시 신흥세력 로마와 우호적이였다) 자기 제국의 결속을 위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이데올로기적인 통합을 위해 헬레니즘종교를 복속국가들에게 강요합니다. 한편 예루살렘성전에 있는 금은 보화들을 탐냅니다. 안식일에 군사행진을 하는 척하다가 예루살렘성을 공격, 함락시키고 아크라 신상을 세우고 (막하비 1서 1,29-40; 막하비 2서 5,24-26) 헬라 이방제의를 예루살렘성전에서 거행하고 (막하비 1서 1,44-53), 번제단에 주피터 제단을 세우고 (단 11,31; 12,11) 여호와 종교를 말살하려고 합니다. 이에 반대한 유대인들은 모데인의 마타티아스라는 제사장 가족을 중심으로 유대 땅에서 저항운동을 일으킵니다(기원전 167년). 이 저항 운동은 "게릴라식 공격"이라는 뜻인 막하비운동이라 불리워집니다.마타티아스의 가문 5 형제 중 유다스 마클라베우스가 가장 용맹해서 운동의 중심이 되는 데 후에 그의 친구인 하스몬이 이 항거운동을 이끌어 나갑니다 (후에 독립했을 때 유대의 지배체제를 그의 이름을 따서 하스모니아 왕조라고 부릅니다). 3년 만에 (기원전 164년) 저항은 성공을 거두어 유대지역은 하스모니아 왕조에 의한 자치 형태로 다스려 집니다. 레위식의 제사단이 다시 세워지고, 히브리어가 공용어가 되고 히브리문화의 르네상스시대가 열립니다. 당시 안디오커스 4세는 파터라는 나라와 전쟁을 하던 중이라 유대에까지 관여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후에서 셀주커스 왕조는 3차례나 예루살렐을 공격했고, 종국에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기도 하지만 로마의 견제 덕에 유대는 자치상태를 계속 유지합니다.

     로마의 치하: 기원전 63년 팔레스타인은 폼페이우스에 의해 로마의 식민지로 편입됩니다. 로마는 각 원주민의 종교와 문화를 인정해 주면서 이 다양함을 전제로 전체를 포용하는 고도의 정치술을 씁니다. 그래서 유대교도 계속 허용되었고 (유대인 들은 심지어 병역도 면제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아직까지 유대교 내의 작은 분파로 여겨졌던 기독교는 로마의 그러한 관용정책 덕분으로, 그리고 로마가 확보한 정치적인 안정 (Pax Romana), 통일 국가, 잘 발달된 도로망, 대 도시들을 이용하여 급속히 전파됩니다.

     유대전쟁과 성전멸망: 유대 땅에서는 기원후 50대 이후부터 젤롯당을 중심으로 로마에 항거하는 저항의 물결이 점차 거세집니다. 결국 66년 유대 전역에서 로마에 대항하는 전면전이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 항쟁은 로마의 군사력 앞에 처참히 분쇄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 기원후 70년). 그 후 3년을 끌며 최후의 일인 까지 저항했던 사해근처 맛사다 전투를 끝으로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저항운동은 비극적으로 종결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팔레스타인 본토에 살던 많은 유대인들이 당시 로마 전 제국으로 흩어집니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에 본부를 둔 유대인 중심의 기독교는 급속히 초대교회사에서 그 영향력을 잃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방인 중심의 기독교가 상대적으로 이후 기독교 전파의 중심이 됩니다.

     바리새인 중심으로 재편된 유대교:지금까지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정신적인 지주였던 성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70년 이후 부터는 율법을 어떻게 해석 문제가, 해석된 율법이 유대교를 계속 결집시켜 주는 핵심이 됩니다. 이와 함께 율법 해석의 문제에서 원래 평신도 운동이였던 바리새인파들이 주도권을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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