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주신 직분 (엡4:7-16)
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Introduction
돌아오는 주일에 새롭게 10분의 권사님들이 추대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은혜로 받는 직분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실 직분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오랜 유교사회를 거치면서 직분이 마치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준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생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특히, ‘사’자가 들어간 직업을 좋아하고 그 직업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예전 부모님들은 특히 자식들이 머리가 좀 좋다 싶으면 고시를 보거나 의사가 되라고 권유하셨습니다. 딸을 두신 부모님들은 ‘사’자 들어간 사위를 얻으려고 열쇠를 몇 개씩 준비하기도 하셨습니다.
사회가 성숙해 가면서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예전처럼 직분에 목을 메지는 않지만 여전히 ‘사’자를 이름뒤에 붙였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이들도 이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 성도님들은 집사에서 안수집사 안수집사에서 또 장로가 되길 바라시고, 여자 성도님들은 집사에서 권사가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또 서열이 높아지면서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모습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는 질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직분에도 서열이 있고 집사보다 권사의 직분이 더 큰 권위를 가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를 세워가기 위한 권위의 문제이지 우리의 신분의 높고 낮음이 아님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들은 직분을 마치 군대의 계급장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장로님인데 다른 사람이 모르고 집사님하고 부르면 얼굴이 일그러집니다. 권사님인데 집사님하고 부르면 “나, 집사가 아니라 권사에요.”라고 속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직분은 신분이 아닙니다. 직분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직분이 올라간다고 우리의 신앙이 자동적으로 따라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직분은 책임에 가깝습니다. 직분이 올라간다는 것은 책임이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책임을 다했는가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너무 대단한 것으로 여겨서 직분에 목을 메어 직분 못받았다고 시험에 드셔도 안되고 또 직분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주어진 책임에 소홀하셔도 안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직분이 무엇이며 직분을 맡은 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1.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는 하나님
첫째로, 우리가 직분에 관해 생각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고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교회에 여러 가지 직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직분은 자격이 있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더 잘 섬기라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선물의 분량’대로 이 은혜를 주셨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각자에게 맞는 선물의 분량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4살 터울지는 여동생이 한 명있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님께 선물을 받으면 제 동생은 늘 불만이 있었습니다. 왜 오빠 것이 자기 것보다 항상 더 좋냐는 것입니다. 자기는 조그만 인형을 받았는데 오빠는 커다란 로보트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제 동생이 정작 그 로봇을 선물로 받았다면 제 동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봇은 저에게 맞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제 동생이 그 때 몰랐던 것이 무엇입니까? 부모님이 우리를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엄마는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또 제 동생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딱 맡는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선물로 받는 직분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아주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바 된다고 말씀 합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아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아시고, 우리가 사람들 몰래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알고 계십니다.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도 아시고, 가정적인 어려움도 완전하게 알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아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직분을 받았건 받지 못했건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고려해서 우리에게 딱 맞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엄마가 자녀를 사랑하듯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때론 자녀가 원해도 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아직 안가지는 것이 갖는 것보다 더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아홉달 된 저희 아들 녀석이 제 노트북 컴퓨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보기만 하면 만지겠다고 난리를 칩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를 아무리 사랑해도 아이에게 노트북을 줄 순 없습니다. 아직 너무 어려서 노트북을 쓸줄도 모를뿐더러 마구 만져서 고장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들이 아직 말을 못하지만 속으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빠 제가 그토록 원하는 걸 아시면서 왜 안주세요? 아빠 저를 그렇게 못믿으세요?” 아직 이런 생각을 할 능력이 없겠지만 혹시라도 이렇게 말을 한다면 이놈은 정말 교만한 놈입니다.
또 반대로 이 녀석이 원하지 않아도 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 아이가 그동안 모유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녀석이 커서 더 이상 모유로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분유를 먹이려고 하는데 먹으려고 하질 않습니다. 얼마나 안먹겠다고 고집을 피우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엄마는 막 주려고 합니다. 아마 속으로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아, 엄마 아직 분유는 너무 부담되요. 아직 제가 아직 분유를 먹을 자격이 안되서요. 저 그냥 분유는 다음에 주시면 먹을께요”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제 아이가 겸손한 아이입니까 교만한 아이입니까? 교만한 아이입니다. 사실 막무가네로 노트북 달라는 놈보다 더 무서운 놈입니다. 겉으로 겸손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지가 엄마보다 자신을 더 잘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분량에 따라 딱 맞는 것을 딱 맞는 시간에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것을 모르면 하나님을 오해하게 되고 괜히 사람에게 서운해지게 됩니다. 우리에게 직분을 누가 주십니까? 하나님이 주십니다. 사람을 통해 당회를 통해 주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를 아시는 아버지를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절대로 해로운 것을 주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직분을 받은 분은 아 내가 때가 돼서 더 봉사하라고 주시는 구나 생각하시고 순종하시고 혹시라도 받고 싶었는데 못 받은 분은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 안주셨으니 뭔가 이유가 있겠구나 생각하시고 감사하시면 됩니다. 사실 하나님은 직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를 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좋은 것만 주시는 분임을 믿는 사람을 인정해주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셔서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는 분임을 믿는 귀한 믿음 소유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2.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
둘째로,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며, 직분자는 이 주인께 충성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여기서 제일 중요한 단어는 바로 ‘그’라는 단어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이십니다. 8절에서 10절까지는 우리에게 직분을 선물로 주신 그리스도에 관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려고 이 땅에 성육신 하셨다가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다시 하늘에 오르신 분 바로 그분이 우리에 딱 맡게 직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다섯 가지의 직분이 나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자, 목사와 교사가 그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장로도 집사도 권사도 들어있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직분을 주신 목적은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직분을 주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교회의 머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누구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몸인 우리의 뜻이 아니라 머리되신 주님의 뜻을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가 이 진리를 너무나 자주 잊어버립니다. 예수님이 머리되신다고 입으로는 고백하면서도 실은 자신이 머리 노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머리가 되어 교회의 주인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의 특징이 직분을 무슨 대단한 특권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분을 이용해 다른 성도를 다스리고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아주 위험한 태도입니다.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되신 예수님은 몸소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겸손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는 대게 반장을 하면 진짜 무슨 벼슬을 한 듯 착각을 했습니다. 칠판에다 떠드는 아이들의 이름을 적을 수 있는 엄청난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장들은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신 자습시간은 진짜 마치 왕처럼 군림합니다. 다른 아이들도 반장의 말이라면 조용히 순종합니다. 칠판에 이름이 적힐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학에도 반장과 똑같은 것이 있습니다. 물론 반장이 아니라 과대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결국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같은 과 친구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반장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더 이상 왕노릇을 못합니다. 자신이 과 친구를 위해 있는 것이지 과 친구들이 자신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직분은 다른 성도를 섬기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다른 성도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분을 주신 목적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여 성도들의 신앙을 온전케 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망각하면 내 눈에 조금 거슬리는 친구가 있으면 칠판에 이름을 적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초등학교 반장처럼 되어버리고 맙니다. 사실 요즘은 초등학교 반장들도 친구들에게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전체적으로 영악해져서 엉터리로 하면 반장이 잘못한다고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기억할 것이 무엇입니까? 직분자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직분자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충성입니다. 하나님이 직분 맡은 자들이 마음으로 충성하길 원하십니다. (고전4:2)
직분을 맡으시는 분들 중 어떤 분들은 나이가 많다고 걱정하시고, 어떤 분은 돈이 없다고 걱정을 하시고 또 어떤 분들은 건강이 부족하다고 염려를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것을 보지 않으십니다. 오직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달란트 비유를 기억하시죠? 어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세명의 종에게 각각 10달란트, 5달란트, 1달란트를 맡기고 갑니다. 시간이 지난 후 돌아와보니 10달란트를 맡은 종은 10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5달란트를 맡은 종은 5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그런데 1달란트를 맡은 종은 그냥 그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성실히 일한 두 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지만 게을렀던 종은 징계를 받습니다.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10달란트를 맡은 종이나 5달란트를 맡은 종이나 주님이 똑같이 칭찬하셨다는 것입니다. 10달란트를 남겼다고 더 기뻐하셨다는 증거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분량만큼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분량이 크면 큰대로 또 좀 작으면 작은대로 충성하면 하나님은 똑같이 충성된 종이라고 인정하시며 칭찬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분들과 비교하는 것은 절대로 지혜가 아닙니다. 돈이나 건강이나 성경적 지식이나 어떤 것이 좀 부족하다고 기가 죽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할 수 없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냥 우리 주님이 맡겨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받은 만큼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맡겨진 일에 충성하시어 주님께 칭찬받는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교회를 세우는 직분자
셋째로 기억할 것은 우리 모두는 교회의 일부이기에 직분자가 교회를 잘섬겨서 교회가 잘되고 축복받는 것은 결국 모두가 잘되고 축복받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직분자들의 목적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직분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첫째로, 직분자들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으로 하나 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바른 지식에 근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무리 강해도 그 믿음이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것이라면 참된 믿음이 될 수 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먼저는 예배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에게 허락된 말씀의 자리를 사모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도록 돕기 위해서 직분자들이 먼저 말씀을 사모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말씀이 달고 오묘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직분자들은 성도들이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인격이 좋다고 하나님 자녀가 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 자녀는 아름다운 인격을 소유하게 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인격은 성도들을 섬길 때 성숙해갑니다. 혼자서 수도를 한다고 인격이 자라지 않습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한다고 우리 인격이 하루아침에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물론 금식 기도를 하면 우리의 죄성이 약해져서 좋은 인격을 갖는데 분명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금식 자체가 우리의 인격을 성숙시키지는 못합니다.
인격은 성도들과 함께 지내고 성도들을 섬기면서 성숙해집니다. 도저히 상대하기 힘든 못된 사람들을 품어주면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들이 먼저 성도들을 품는 모습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성도들이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존경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우와 저 권사님은 진짜 너무 훌륭하신것 같아. 정말 존경스럽다.” 라는 감탄이 나오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억지로 내힘으로 하려다 보면 위선자가 되고 바리새인처럼 되고 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많큼 많은 눈물을 흘리셔야 합니다. 도저히 참기 힘든 인간들을 만났을 때 같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매어달려서 원통함을 호소하는 시간을 가지셔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직분자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 다른 성도가 보기에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케 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형상이 회복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과 지식이 하나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결국, 직분자들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돕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이 은혜가 넘쳐나는 사람들이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늘 강조하시듯) 곁에만 있어도 은혜가 되고, 말 한마디를 들어도 은혜가 되는 성도들이 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말이 쉽지 이게 그냥 되지 않습니다. 나는 매일 죽노라고 고백한 사도바울처럼 매일 매일 말씀 앞에서 드러나는 우리의 죄성를 십자가에 못밖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직분자는 사실 매일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직분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무릇 많이 맡은 자에게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달라고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또한 직분자들은 성도들이 더 이상 어린 아이가 되지 않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너무 순진해서 잘 속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속이기가 참 쉽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 의심하지 않고 그냥 믿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린 신자들을 속이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궤술’은 주사위를 던지다에서 온 말로써 속임수 사기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야바위를 말합니다. 간사한 ‘유혹’은 교활과 간교를 뜻합니다. 이 궤술과 유혹은 모두 도박꾼이 상대방을 속일 때 쓰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아주 교묘한 속임수로 교인들에게 잘못된 교훈을 심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교회에도 성도를 속이고 사기치는 간교하고 교활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2000년전 교회가 생긴 이래 신자를 속이려는 세력이 계속해서 존재해 온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이단 사상을 전하는 사람이 있어왔고, 교회 내에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이 있어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깨지고 무너지길 원하는 어떤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세력이 무엇입니까?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가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신자들이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시험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신자들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고 결국 생명의 근원되시는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마귀의 쓰임을 받아 우리를 속이는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이 좋아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기도도 잘하고 봉사도 잘합니다. 그래야 교인들의 믿음을 살 수 있고 교인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특히 신천지라는 이단 때문에 골치를 썩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이단들은 자신의 이단 신앙을 숨기고 교회에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리고 한 1-2년은 열심히 봉사하고 사람들에게 지극 정성으로 잘해주면서 교인들의 신뢰를 얻어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동안 찍어둔 교인들에게 말씀을 깊이 있게 잘 가르치는 좋은 곳이 있는데 한번 배워보지 않겠냐고 권유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을 끌고 소위 전도방이라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기성 교회를 싸움질이나 하는 음녀 바벨론이라고 하면서 비판하고 조금씩 이단 사상에 물들게 하는 것입니다.
직분 맡은 자들의 아주 중요한 책임 중 하나가 바로 성도들이 분별력을 같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목소리 중 하나가 사랑을 해야 하는 교회에서 왜 싸움을 하냐는 것인데 사실 2000년 교회의 역사는 싸움의 역사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진리가 선포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진리가 선포되는 것을 싫어하는 마귀는 계속해서 이 진리를 왜곡하고 변질시켜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비진리와 죄를 교회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거짓과 죄로부터 성도를 지켜내려면 불가피하게 싸움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하는 곳인 동시에 진리를 지키는 곳입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리가 위협을 받으면 일어나 싸워야 합니다. 사실 바울이 쓴 많은 서신서가 바로 이 진리를 위협하는 세력과 싸우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물론 이 싸움은 사람에 대한 싸움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진리를 위해 대결하는 중에도 악한 세력에게 쓰임 받는 영혼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자들을 속이려는 어두움의 세력과 싸울 수가 있습니까? 그냥 진리의 빛을 비추면 됩니다. 빛을 비추면 거짓의 어두움은 그냥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직분 맡은 자가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 바로 이것입니다.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여기 ‘참된 것을 하여’ 라는 말은 원어를 보면 ‘진리 또는 진실을 말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성도들에게 “사랑 안에서 진리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거짓의 특징은 우리를 혼미케 해서 뭐가 뭔지 모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는 빛처럼 우리가 바로 보게 해주고 우리를 자유케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속이려는 모든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 교훈의 풍조로부터 교인들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리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달가와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잘못되었는데도 무조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면 보이지 않게 썩어서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악화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말하되 진리를 말할 때는 반드시 사랑 안에서 해야 합니다. 이 균형이 중요합니다. 교회 안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에 분명히 진리를 말해주어야 합니다. 바른 말을 해서 잘못을 고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사랑 안에서 해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진실을 전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진리를 말하기 전에 반드시 그 사람을 품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의 눈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치우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사랑없이 바른 말 하는 것만 좋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진리 없이 사랑으로 덮어주자고만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직분자는 성도에게 반드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나게 됩니다. 성도들의 신앙이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말하시되 반드시 사랑 안에서 하셔서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도록 돕는 직분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해,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몸의 부분들인데, 우리가 각자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해 줄 때 사랑 안에서 교회가 자라나고 세워져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온 몸의 지체들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눈은 몸이 다치지 않게 잘 봐야하고, 손과 발은 열심히 움직여서 먹을 것을 찾아가야 하고 또 입은 열심히 먹어야 하고, 소화 기관은 열심히 소화를 시켜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도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힘을 써야 합니다. 교회가 왜 건강해야 합니까? 교회가 건강한 것이 내가 건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가 축복을 받아야 합니까? 교회가 축복을 받는 것이 바로 내가 축복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라는 몸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교회고 나는 나야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떠났는데도 모든 것이 잘된다면 그것은 잠깐은 축복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저주가 되어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여러 가지 직분이 있습니다.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또 집사님.. 하지만 교회는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 직분들도 다 하나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님들이 주님 안에서 잘 자라나도록 돕기 위해 존재에 불과합니다.
결국 직분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주어진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교회인 우리의 입장에서는 새로 10분의 권사님이 추대되시는 것은 우리를 섬겨줄 10명의 손이 더 늘어나는 것입니다. 또 권사님들의 입장에서는 주님의 몸인 교회를 더 잘 세우라고 주님이 권사님들을 믿고 귀한 영혼들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직분을 못받은 성도도 우리를 섬겨줄 분들을 주심에 감사하게 되고 또 직분을 받는 성도도 부족한 나를 믿고 맡겨 주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구원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은혜임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교만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직분도 은혜의 선물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직분이 은혜임을 아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내가 잘나고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서 주신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구원도 은사도 직분도 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주시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알고 계셔서 우리에게 딱맞는 선물을 주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시며 주인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교회가 잘되는 것이 결국 내가 잘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맡았건 못맡았건 교회가 잘되기 위해 하나가 되어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이 우리를 아십니다. 우리를 아셔서 우리에게 딱맡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저희가 믿음으로 이것을 인정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오직 주님만 저희 교회의 주인되십니다. 언제나 저희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저희를 다스려주시옵소서. 하나님 주님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통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저희가 교회를 더 사랑하게 하시고 교회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나되어 일할 수 있도록 힘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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