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요한 계시록!!

[스크랩] 4. 요한계시록 파노라마

하나님아들 2014. 5. 3. 15:08

4. 요한계시록 파노라마

[읽기만 해도 쉽게 열리는 요한계시록]

 

지난 시간에 우리는 1장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이유를 충분하게 보여주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제일 중요한 그 당시의 절박한 문제가 일단 1장에서 거의 해결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2장과 3장에서 일곱 교회의 정황이 나옵니다. 일곱 교회가 그 당시 처해 있던 상황,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 일곱 교회가 당시에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었는가 하는 것을 쭉 보여주셨는데, 지난번에 요한 계시록을 세 가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 이 세 가지 밖에 없는데 바로 2장과 3장에 있는 일이 그 당시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당시 교회가 처해 있던 일,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책망 받을 만한 그런 일도 있었습니다. 여러 교회가 대개 다 책망이 있었는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큰 책망 없이 칭찬을 받았습니다만 당시에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서머나 교회가 그런대로 칭찬을 받은 편인데, 폴리캅 감독이 요한의 직계 제자인데, 이 분이 순교하기까지 했던 교회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2장 10절에 보면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10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하는 이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여 폴리캅 감독은 정말 죽기까지 순교하기까지 충성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서머나 교회가 서 있습니다.


나머지 교회는 지금 교회가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2장과 3장에는 “지금 있는 일과” 거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여기는 보편성의 원리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처음 사랑을 잊어버린 교회가 그때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고 오늘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차지도 덥지도 않는 그런 라오디게아 같은 교회가 그때도 있었고 오늘날도 그런 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끝머리에 있는 말씀을 잘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매 교회마다 말씀하신 끝에는 꼭 같은 말이 되풀이 되는데,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각각 개인들입니다. 개개인들이 들을 것은 한 교회 것만 듣지 말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러니까 일곱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목록을 빼 가지고 하나님이 무엇을 책망하고 계시는지, 또 어떤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칭찬하셨는지를 잘 살펴보라 하는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구 분

예수님 표현

칭 찬

책 망

당 부

불순종시

순종시 약속

현대적 관점

에베소

(2:1-7)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이 (1)

행위, 수고, 인내, 악 배격, 거짓 사도 드러냄, 참고, 성실 (2-3)

첫 사랑 잃음 (4)

구원의 첫사랑 회복(5)

촛대 옮기리라 (5)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하리라 (7)

정통에 열심이나 θ과 교제는 등한시 하는 교회

서머나

(2:8-11)

처음과 나중이요 죽었다 살아나신 이 (8)

환란과 궁핍하나 실상은 부요한 자 (9)

×

10일간 고난을 받아도 죽도록 충성하라 (10)

×

생명의 면류관 받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음

(10-11)

물질에 초연하고 헌신과 충성을 다하는 교회

버가모

(2:12-17)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 (12)

고난과 순교의 상황에서 믿음 굳게 지킴 (13)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킴 (15)

심판 전에 회개하라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감추었던 만나, 새 이름 기록된 흰 돌 주리라

혼탁한 세태와 결탁한 교회

두아디아

(2:18-29)

불꽃 같은 눈, 빛난 주석 같은 발, 하나님 아들 (18)

행함의 성장, 사업, 사랑, 믿음, 섬김, 인내 (19)

음행과 우상 제물을 먹고, 음행을 회개 안함(20-21)

불의한 자 회개하고 굳게 잡으라 (22-25)

침상 던지고 큰 환란 당하며 자녀가 죽임을 당함 (22-23)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 주리라

많은 이단에 심취되어 진리를 떠난 교회

사데

(3:1-6)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 (1)

몇 사람이 영적 순결 지킴 (4)

형식주의(1), 영적 무기력, 행함 없는 믿음 (2)

신앙을 점검하고 회개하라 (3)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임하리라 (3)

흰 옷 입고 생명책에 이름 오르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음 (5)

그릇된 교리, 형식주의에 빠진 교회

빌라델비아

(3:7-13)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7)

적은 능력 가지고도 말씀 지키고 예수님 이름 배반치 않음 (8)

×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1)

×

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고 θ이름 기록함 (12)

말씀을 잡고 바른 신앙을 견지하는 교회

라오디게아

(3:14-22)

부요하나 가난한 교회

×

미지근함, 교만, 영적 가난, 영적 수치, 영적 소경(15-17)

불로 연단한 금사고 흰 옷 입고 안약 바르고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18-19)

×

주와 친밀한 교재 나누고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겠다.

세태를 좇아 인기를 누리며 물질적 부를 누리는 세속화된 교회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디서 실수를 범하는가 하면 바로 여기서부터 실수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말세교회다” 그렇게 해 가지고 “2장 끝까지 3장 끝까지 가면 이것이 바로 교회 시대가 끝나는 것이고 4장에서부터는 휴거가 시작된다. 그리고 휴거가 있고 나서 7년 대환난이 시작 된다” 이렇게 하면서 세대주의적 종말론 틀을 짜는데 결정적 실수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에베소 교회도 그때 있었고 라오디게아 교회도 그때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지도 덥지도 않는 교회는 그때나 지금도 언제든지 있는 것이고, 발람의 길을 따라 가는 사람이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세벨의 교훈을 쫓는 교회가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어느 시대나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보편성의 원리를 가지고 보셔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4장부터 보면, 4장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장차 될 일을 보여주시려고 예수님께서 그때 당시에 요한을 위로 올라오라고 하시면서 요한을 영으로 데리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요한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어떻든 그는 하늘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때 “이리로 올라오라” 하는 것은 그 당시에 예수님이 사도 요한에게 올라오라고 한 것이지 휴거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세에 있을 종말에 있을 휴거가 아닙니다. 그런데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언필칭 4장 1절에 있는 “이리로 올라오라”가 휴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말할 때는 “3장 끝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말세 교회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교회시대가 끝이 났고 4장 이후부터는 교회라는 말이 없다” 해 가지고 자기들이 큰 착각에 빠진 것인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휴거가 종말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입니다. 가장 큰 영광이 될 테니까 환희가 될 테니까 그렇게 보는 것은 큰 무리가 아닐 텐데, 문제는 일단 성경을 바르게 알고 나서 그리고 종말론을 해야 될 텐데, 성경을 알지 않고 계시록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채 종말론부터 만들면 반드시 실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올라가니까 거기 천상에서 천사들과 이십 사 장로들이 예배하고 있는 장면을 봤습니다. 이 4장에는 아무것도 해석할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좌가 무엇이냐? 무지개가 무엇이냐? 녹보석은 무엇이냐?” 그렇게 해석을 하는데 쓸데없는 것입니다. 요한이 거기 가서 그런 것을 봤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올라갔고 거기 가보니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예배하고 있었다 하는 것만 4장에서 끝이 납니다. 이렇게 계시록은 해석만 하지 않으면 간단한 책입니다. 자꾸 해석에 해석을 더하니까 이것이 상징이고 비유고 묵시고 하면서 자꾸 어렵게 하는데 전혀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5장에 넘어가면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인봉을 뗄 자가 있는가 보니까 아무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아무도 뗄 사람이 없으니까 “누가 저것을 뗄 것인가” 하고 울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때에 유다 지파의 사자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가 이겼으니 예수 그리스도가 뗄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울지 말라고 달래고 있는 장면이 5장인데, 거기도 그것 외에 해석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일곱 인봉이 무엇이냐 하고 그것을 해석할 것이 없는 것은 6장에 가면 그것을 뗍니다. 떼보면 알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떼볼 때까지는 아무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읽어 가면 6장에 가서 인을 떼보면 아는 것입니다.


6장부터 일곱 인을 쭉 떼는데 이때부터 정말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6장에서는 일곱 인이 나오게 되고, 그 다음에 8장에서는 일곱 나팔을 불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이런 식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5장까지 있었던 일은 서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본 막이 3장으로 나누어지겠는데, 큰 장면으로 하면, 첫째 장면은 일곱 인, 둘째는 일곱 나팔, 셋째는 일곱 대접, 이렇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피날레가 됩니다.

 


그래서 이 일곱 인을 뗄 동안에 환난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첫째 인을 떼면 하얀 말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흰 말이 뭐냐고 해가지고 “흰말”이 “예수님이다. 적그리스도다.” 별의 별소리를 하는데 그것은 해석할 것이 없습니다. 흰 말이 지나가도 아무 일이 일어나는 것이 없으니까 그냥 지나가면 됩니다.


그리고 둘째 인을 떼면 붉은 말이 지나가는데, 붉은 말은 대충 전쟁을 의미한다고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셋째 인을 떼면, 손에 저울을 들고 검은 말을 타고 가는 생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데나리온, 한 데나리온은 장정의 일일 품삯인데, 장정이 하루 일하여 밀 한 코이닉스, 한 되라는 말은 코이닉스라는 헬라어인데, 코이닉스는 한 되가 아닙니다. 한 되는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장정 일일 식량분입니다. 그러니까 한 되가 안 되는 것입니다. 장정이 하루 일해 가지고 하루 먹을 양식 밖에 팔지 못하는 그야말로 기근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레위기 26장 26절을 읽어 보시면 저울을 가지고 빵을 달아서 먹을 때는 극심한 기근이 임했을 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빵을 쪼개는데 “네 것이 크다. 내 것이 크다.”서로 시비를 하니까 저울을 가지고 와서 달아 줄 정도로 되었으면 극심한 기근을 이야기 합니다.


그 다음에 넷째 인을 떼면, 넷째 생물의 음성이 들리면서 청황색 말이 나옵니다. 청황색 말은 누른색에다가 푸르스름한 색깔이 있는데 이것은 시체의 색깔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넷째 인을 뗄 때에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지구상의 사람 1/4을 멸하는 권세를 받아 가지고 입니다. 그러면 지금 시대에 인구가 60억이 된다고 하면 1/4이 죽으면 15억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팔을 불기 전에 일곱 인을 떼는 그 환난 기간 동안에 벌써 땅의 인구 1/4 정도가 죽어지는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아직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뒤에 오시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섯째 인을 떼면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탄원하게 되고, 여섯째 인을 떼면 하늘에서 별들이 땅에 떨어집니다. 또 별들이 무엇이냐고 해석을 하는데 아무 해석할 필요가 없고 실제로 별들이 떨어집니다.


얼마 전에 목성으로 떨어졌던 슈메이크 레비나인이라는 해성이 있었습니다. 그 해성이 떨어진 구덩이가 얼마나 컸던지 어떤 구덩이는 지구 하나가 풍덩 빠질 정도로 파졌습니다. 지금도 미국 같은 곳의 유명한 천문학 대학에서는 지구에 근접하는 어떤 물체를 연구하는 것을 국회에서 동의가 되어 용역이 주어져 있습니다. 지구의 근접 물체라고 NEO라고 그러는데, Near Earth Object 라고 지구에 다가오고 있는 어떤 별들이나 해성, 이런 것들이 없는가? 이런 것이 다가오면 언제 어떻게 부딪힐 것인가? 하는 것을 놓고 연구하고 준비하는 용역이 주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딥 입펙트 라든지 아마겟돈 이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신학자들은 알지 못해서 지금 쩔쩔 매고 있는데 일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지구에 근접하는 물체에 대해서 영화를 만들 정도이니 우리가 그 역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드시 별이 떨어집니다.


그 별들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별의 한 궤도가 없어졌습니다. 별이 하나가 더 돌아가야 되는데, 그 간격을 보면 별이 없어져서 깨져 가지고 여러 수 천 수 만 개의 소행성이라고 조각난 별들이 날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 중의 얼마가 목성으로 날아갔는데, 이것이 만일 지구를 보고 날아오면 지구는 끝장이 날 것입니다.


만약에 지난번에 목성에 날아왔던 그렇게 큰 별이 날아오면 계시록 6장에서 끝이 나버립니다. 그래서 그렇게 큰 것이 아니고 적당한 것이 날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아마 굵은 것은 골라서 목성으로 집어 던져 버리고 지금 지구에 날아와도 지구를 뒤 흔들어서 잠을 깨울 만큼의 크기에 맞는 것을 고르고 있는 것이 아니가? 저는 그렇게 보고 있고 천문학자들도 논의를 하고 있는 중이고 또 그 방면에 있는 모든 논문들을 챙겨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 뒤에 일어나는 사건을 보면 이것이 비유가 아니고 실제적으로 별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분명한데, 6장 13절,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렇게 탄원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연장해서 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서초 베데스다 치유센타
글쓴이 : 현주아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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