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서론
창세기 전체를 개괄적으로 다루기는 너무도 어렵고 난해하다. 왜냐하면 창세기 자체가 지닌 내용의 심오함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신학적인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창세기의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며 성경 전체의 흐름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몇 가지 문제만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Ⅰ. 명칭
본래 구약 성경의 각 책에는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의 편리를 위해 각각의 책 첫머리에 나오는 단어를 따서 그 책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본서의 이름도 그러한 유대인의 관습에 의해 창세기의 첫 단어인<tyviareB] ; 빼레쉬트>가 그대로 사용되었는데, 그 뜻은 태초, 시작, 기원을 의미한다. 그 후 70인 역에서는 본서의 명칭을 게네시오스<genesio">라고 불렀는데, 이는 창 2:4절의 이것이 천지 창조의 대략이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이것을 영어 성경에서는 'Genesis'로 표현하였고, 한글 개역 성경에서는 그 말을 번역하여 '창세기'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기원, 시작, 태초라는 의미이고, 이것은 창세기 전체의 성경을 함축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다.
Ⅱ. 저자
창세기의 저자는 오경의 기록자인 모세이다. 왜냐하면 구약성경 자체가 오경의 기록자가 모세임을 증명하였고(참조, 출 17:14; 24:4-8 레 4:12; 6:11 민 5:2-4; 7:19 신 31:9; 31:22 수 11:15; 20:14 왕상 2:3 왕하 14:6 스 6:18 스 13:1 등), 신약 역시 오경이 모세의 저작임을 증명하였기 때문이다(참조, 마 8:4; 19:8 막 1:44; 10:5; 12:26 눅 5:14; 16:31 요 5:47). 이렇듯 오경이 모세의 저작이 분명하다면 출애굽기에 나타난 역사가 창세기 역사의 연속이라는 점과, 출애굽기와 마찬가지로 창세기 역시 동일한 정신과 의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 출애굽기의 저자와 창세기의 저자와 동일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애굽어의 사용과 요셉의 역사 이야기에 묘사된 애굽인의 생활양식에 대한 세밀하고도 정확한 지식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운(참조, 행 7:22) 모세의 교육과 경험에 일치한다. 따라서 모세 외의 그 누구도 창세기 저자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어렵다.
Ⅲ. 기록 목적과 연대
1. 목적
본서의 기록 목적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었던 인간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구원받게 되는 구속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보여 주기 위한 것과, 둘째는 세계의 시작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내려가 신정 국가를 형성하는 준비 단계에 이르는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를 간단하게 서술하는 것이다.
2. 기록 연대
창세기의 정확한 기록 연대를 추정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출애굽부터 모세가 죽기까지의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출애굽 사건은 애굽의 투트모스 3세(Thutmoses, B.C. 1504~1448)를 이스라엘의 탄압자로 보고 그 아들 아멘호텝 2세(Amenhotep, B.C. 1450~1420)때 출애굽 사건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때 약 B.C. 1446년 정도로 측정할 수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출애굽 후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120세에 세상을 떠났다(참조, 신 34:7). 따라서 본서의 저작 연대는 B.C. 1446년부터 40년 동안의 1407년 사이에 기록됐다고 볼 수 있다.
Ⅳ. 특징과 구조
1. 특징
창세기는 한마디로 모든 것의 시작을 말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창조된 우주의 시작, 인류의 기원, 가정의 시작, 종족과 민족의 시작, 안식일의 시작과 죄의 기원, 그리고 선택된 민족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시작 등 모든 것의 기원을 밝힌 책이다. 이 중에서 창세기 전체의 맥락 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하나의 커다란 줄거리를 이루는 사건은 죄의 시작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시작인데, 이것은 후에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예언과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형성이라는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2. 구조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인다. 첫 부분은 1장에서 11장까지로 인류 전체를 그 대상으로 삼아 다루고 있고, 둘째 부분은 12장에서 50장까지의 내용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첫 부분은 주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서 기록했는데 그 중요 사건은 창조, 타락, 홍수, 바벨 탑(민족의 탄생)이며, 둘째 부분은 위대한 인물들에 대한 기록으로서 그 중요 인물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다.
Ⅴ. 창세기의 특별주제들
1. 창조
창세기는 하나님의 우주 창조 기사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에 대해 인간의 이성이 이해할 만한 완벽한 증거나 자료는 없다. 그리하여 예부터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난제들이 대두되어 왔다. 이제 이러한 여러 가지 난제들 중에서 창조 기사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창조와 진화, 창세기 1장, 1절과 2, 3절과의 관계, 창세기의 날들에 관한 문제 등 세 가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살피고자 한다.
1) 창조와 진화론
(1) 진화론의 정의
진화론은 소진화의 대진화로 나눈다. 소진화는 어떤 한 종의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적은 변이를 말하며, 대진화는 한 종에서 새로운 종으로 변화되어 점점 더 고등 생물로 진화된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두 개의 진화론 중에서 같은 종 내에서의 변이, 즉 소진화는 유전학과 분자 생물학에 의해 사실로 판명되어졌는데, 이것은 창조론과 갈등을 일으키지 아니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메바로부터 시작된 진화가 점점 고등 생물로 진화되어 최종적으로는 인간에게까지, 이니 인간에서 더욱 진화된 새로운 생물에게로 끊임없이 진화된다는 대진화이다. 이러한 학설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반대되는 사상인데, 이러한 사상이 학계는 물론이고 종교계의 일각까지 그 영향을 끼쳐 창조론이 아닌 진화론이 우주 만물과 인간의 생성에 대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2) 진화론의 종류
진화론에는 일반 과학에서 말하는 생물 진화, 화학 진화, 물리적 진화, 역 진화, 괴물 이론 등 여러 가지 이론이 있으나 그 모든 학설의 근본은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밝힌 대진화, 즉 돌연 변이에 의한 진화론을 그 골격으로 함으로 언급을 회피하고자 한다. 문제는 이런 자연 과학적 진화론 외에 성경을 근거로 하여 과학적 진화와 결합시키고자 하는 진화론이다. 이러한 진화론에는 '유신론적 진화론'과 '진행적 창조론' 등이 있다.
①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
이 이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진화의 과정을 통해 모든 생물을 창조하셨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한 가지 창조를 이루신 후에 그것이 진화될 때까지 섭리하셨다가 진화가 다 이루어진 후에는 다음 단계의 창조를 시행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참조, 창 2:3)고 말함으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완성되었음을 선언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섭리 사역은 분명히 구분된다. 이렇듯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구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차이를 무시하므로 비성경적이다.
② 진행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
이 이론은 생물체가 오랜 지질학적 기간에 걸쳐 진화하는 동안 진화 과정으로는 완성시킬 수 없는 부분을 하나님이 그때마다 간섭하셔서 창조하셨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인간이 처음에는 원숭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점점 인간의 모양으로 진화하여 오다가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 창조한 영원한 혼을 받아 오늘날의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 역시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음으로 본질상 진화론과 다를 바 없다.
(3) 진화론의 반박 논거
진화론과 창조론에서의 관심의 초점은 사람의 조상, 즉 인류의 기원에 관한 문제이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사람과 동물 사이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학적 차이점인 직립 보행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유인원을 등장시켰고 그에 대한 증거를 밝히기 위해 지금까지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인해 그들이 주장한 근거인 '자바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등의 유인원이 인류와 원숭이의 중간 상태가 아님이 판명되었다.
①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진화론자들에 의해 초기 유인원이라고 주장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영국의 유명한 해부 학자인 '쥬커만 경'의 철저한 연구에 의해 유인원이 아닌 원숭이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려졌으며, 시카고 대학의 해부학 및 인류학 교수인 '옥스나드' 박사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인류의 조상도 아니며 원숭이와 인류 사이의 중간 형태도 아닌 단순한 원숭이일 뿐이라고 증거하였다.
② 자바인(피테칸트로프스)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어 유인원이라고 널리 알려진 '자바인'은 그것을 유인원이라고 발표했던 화란인 외과 의사 '듀보아'(E. Dubois) 자신이 죽기 전 '자바인'은 단지 커다란 긴 팔 원숭이에 불과했다고 번복함으로 유인원이 아닌 단순한 원숭이로 밝혀졌다.
③ 네안데르탈인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에 있는 네안데르 계곡의 한 동굴에서 백여 년 전 처음으로 발견되어 유인원으로 제기되었던 네안데르탈인은 반쯤 서서 다녔던 '유사인'으로 묘사되었었다. 그러나 근래 네안데르탈인은 관절염으로 불구였을 뿐만 아니라 비타민 D의 부족으로 꼽추병 환자였었다는 연구가 보고되었고, '크로마뇽인'처럼 완전 직립이었으므로 현대인과 구별되어질 수 없다고 밝혀졌다(월간 창조, 김해리, 단세포 동물에서 사람까지, p. 6).
④ 크로마뇽인
현대인에 가장 가까운 유인원으로 소개되는 크로마뇽인 역시 완전한 현대인으로 밝혀졌다. 왜냐 하면 인류학자들은 유럽의 크로마뇽인이 남긴 동굴의 벽화 조각품들이 원시성을 보여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 예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음을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요약해 보면 지금까지 진화론자들에 의해 유인원이라고 주장되었던 화석 이론은 원숭이이거나 아니면 완전한 사람을 자신들의 주장을 위한 논거로 삼기 위하여 유인원으로 꾸며 맞춘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4) 성경적 창조론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은 본질적 의미에서의 대진화를 부정하나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에서 말한 이상도 이하도 믿을 수 없으며 인정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창세기 연구를 시작하기 이전에 다음과 같은 창조의 개념을 인식하고 넘어가야 한다.
① 모든 우주와 생명체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 따라서 하나님과 상관없이 출생한 생명체는 하나도 없다.
② 하나님의 창조는 단번에 완전하게 창조되었다. 따라서 진행적 창조론이나 유신론적 진화론과 같은 변태적 진화론은 인정할 수 없다.
③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인 <ar:K; ; 빠라>의 창조와 만들어진 질료로써 질서 있게 조성하시는 <hc;[; ; 아사>의 창조로 구분되어지되 이 두 가지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라는 개념 속에서 완전한 통일을 이룬다.
④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인 대진화는 성경의 사상이 아니며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소진화는 가능하며, 그것은 성경의 사상과 충돌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역 역시 하나님의 주관하심에 의해 이루어진다.
2) 창세기 1장 1절과 2절과의 관계
창세기 1장 1절과 2절과의 관계에 대한 해석은 종속론과 독립론으로 나누인다.
(1) 종속절로서의 1장 1절
이 해석은 1절이 2절에 대한 종속절로서 주어 또는 독립절이 뒤에 있다고 생각하는 해석이다.
① 이븐 에즈라의 해석. 이븐 에즈라(Iben Ezra)와 그 외 여러 학자들은 1절을 2절의 종속절로 간주하며, 본론은 제2절에 있다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의하면 1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할 때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② 유대 랍비들의 견해. 이 주장 역시 제1절을 하나의 종속절로 보는 견해로서 위의 견해와의 차이점은 2절을 1절과 3절의 괄호 안에 넣고 해석하는 이론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할 때에-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다'가 된다.
(2) 종속론의 문제점
1절을 종속절로 간주하는 위의 두 가지 견해는 모두 하나님의 절대 창조인 <ar;B; ; 빠라>의 개념을 무너뜨리게 한다. 즉 이러한 종속론에서는 혼돈된 상태의 땅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이전에 이미 어떠한 물질이 선재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서는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인 하나님의 절대 창조를 단지 일종의 주물(moulding)이나 형태를 조성하는(forming) 조립 정도로 밖에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든다.
(3) 본문의 정확한 해석
본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석은 창세기 1장 1절을 2절이나 3절의 관계절 또는 종속절이 아닌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선언하는 하나의 완전하고도 포괄적인 독립절로 보는 것이다. 즉 1절은 하나님의 주권적이고도 완전한 창조 사역의 전부를 간단하고도 함축적인 한 마디로 선언한 것인데, 이러한 선언에는 2절의 상태 역시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다음의 사실들을 선언하고 있다.
① 하나님의 창조는 1장 1절의 창조와 1장 3절 이하의 두 가지 창조로 나뉠 수 있는데, 편리상 1장 1절의 창조를 '원 창조' 혹은 '질료 창조'라고 말하며, 3절 이하의 창조를 '질서 창조'라고 표현한다.
② 그러나 창조에 대한 이러한 구분이 하나님의 두 번째 창조 또는 재창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구분은 단지 하나님께서 태초에 무에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상태가 2절의 상태였으며, 이러한 상태에서 하나님은 6일간의 창조를 말씀으로 질서 있게 수행하셨음을 의미한다.
③ 따라서 2절에 나타나는 혼돈하고 공허한 땅은 하나님의 창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 창조' 혹은 '질료 창조'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다.
④ 이러한 의미에서 1절의 선언은 2절의 상태에 대한 창조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절의 선언이 2절의 창조 선언뿐만 아니라 3절 이하부터 전개되는 하나님의 모든 창조 사역까지도 포함하는 함축적이고도 포괄적인 선언이다.
⑤ 2절의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 기간은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기간 중에도 하나님의 창조와는 전연 관계없는 어떠한 진화의 과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기간은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혼돈하고 공허한 상태 속에서 하나님의 신의 보호하심과 역사하심만이 있었을 뿐이다.
3) 날에 관한 견해
창조 기사 중에서 세 번째로 대두되는 문제는 창조 때에 언급된 날의 기간에 관한 문제이다. 이것을 다음의 세 가지 학설로 분류해 보았다.
(1) 첫 번째 견해는 날을 하나의 오랜 세대로 해석하는 학설이다. 이런 해석은 성경의 창조 기간을 6일이 아닌 지구 과학에서 주장하는 몇 억 년 혹은 그 이상의 오랜 기간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지질학과 고고학의 주장과 일치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이 견해의 취약점은 너무나 과학적인 사고에 치중하며, 또한 여섯 번씩이나 똑같이 반복되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날이니'라는 문구를 해명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
(2) 두 번째 견해는 첫 날부터 셋째 날까지의 하루 길이와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의 하루 길이가 다르다는 학설이다. 즉 이 학설은 태양이 넷째 날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여서 첫 날부터 셋째 날까지의 날은 오랜 세월의 세대를 의미하며,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의 날은 오늘날과 같은 24시간의 하루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학설은 과학과 성경이 조화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셋째 날에 창조된 식물이 태양이 없이도 몇 억 년 또는 몇 만 년을 지내야 한다는 난제에 부딪히게 된다.
(3) 세 번째 학설은 본문의 날을 오늘날과 같은 24시간의 하루로 생각하는 견해이다. 이 해석은 성경의 증거와 일치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지질학이나 고고학 등의 현대 과학과 상충된다는 단점이 있다.
(4) 날에 대한 견해의 재해석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세 가지 학설 중에서 어떤 이론이 가장 타당한 설명이겠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 앞서 다음의 사실들에 대해 좀더 검토해 보자.
① 첫 번째로는 '날'을 세대로 주장하는 학설의 이면에 깔린 의도가 거의 모두 과학적 이론에 성경의 진리를 끼어 맞추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실은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지구의 오랜 생성기간은 모두다 '진화론'을 근거한 것이라는 사실과, 따라서 그러한 견해에 성경을 맞추고자 하는 의도는 은연중에 진화론에 이르는 길을 허용한다는 사실이다.
② 두 번째는 과학과 지질학이 주장하는 지구의 생성 연대의 부정확성이다. 일반적으로 지구의 생성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많이 쓰였던 '지구의 지질 연대 구분 방법'이나 '방사성 동위 원소의 붕괴 속도에 의한 지구 연대 측정 방법' 등이 현대의 과학자들에 의해 부정확한 것으로 판명된 것은 주지할 만한 사실이다. 오히려 C-14의 생성과 분해 속도, 지구의 자기 능률의 붕괴, 대기 중의 헬륨의 양, 우주진의 유입 등의 과학적 이론은 지구와 생명의 연대가 젊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김영길 외, '과학적 증거는 진화를 부정한다', 한국 창조 과학회, 1985, p.23-27).
③ 세 번째로는 우리의 신앙에 관한 문제이다. 성경은 엄연한 6일간의 창조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6일간의 창조 사역을 지질학적 6연대와 일치시켜서 진화론적 창조에 귀착시키려 한다면 천지를 창조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수십만 년, 또는 수백만 년을 소모하셨다고 여기는 불신앙을 저지르는 것이며 이는 결국 성경을 과학으로써 해결하고자 하는 인위적인 방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5) '날'의 견해에 대한 결론
이상의 증거들에서 '날'을 하나의 오랜 세대로 보고자 하는 견해의 위험성을 살펴보았다. 분명 이러한 견해들은 하나의 가설로써 시작한 진화론과 지구의 지질 연대에만 치중한 해석들로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화론으로 이르는 길을 터놓을 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의 주장에 하나님의 진리를 짜 맞추려 하는 어리석은 시도인 것이다. 따라서 여러 학설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로 삼고 그 말씀을 그대로 수용하고 믿고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2. 타락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아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능력을 부여받은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그들에게 허락된 모든 축복과 권리를 상실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이러한 타락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내포되어 있다.
1)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은 어떠한 의미나 사상만을 전달하는 상징적인 뱀이 아니라 실제적인 뱀이었는데, 이는 사탄이 뱀의 간교한 성품을 이용하여 자신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2)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 자체에는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다주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죽음의 형벌이 임한 것은 선악과 자체의 능력이 아닌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씀의 능력은 성육신 이후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으리라'하신 생명의 약속에서 더욱 밝히 드러난다.
3) 타락한 인간에게 찾아온 죽음은 육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영적인 죽음도 함께 수반하고 있다. 즉 아담과 하와에게 선고된 죽음의 형벌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의 단절로 말미암아 영생을 상실하는 형벌이었지만 육체 역시 서서히 퇴화되어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4) 이러한 타락으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본래의 의를 잃어버렸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과 구원에 이르는 길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5)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비단 그들만의 범죄가 아니었다. 즉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계약에 참가 하였으며, 따라서 모든 인류는 아담의 범죄에 함께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구원의 은총을 필요로 하는 자가 되었다.
3. 홍수
노아의 홍수 사건은 인간의 범죄에 진노하신 하나님께서 노아의 8가족과 선택받은 짐승 외에 땅에서 코로 숨쉬는 모든 생물을 진멸하신 하나님의 대 심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경의 기록이 지질학이나 고고학과 같은 과학과 많은 상충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예부터 홍수 사건을 하나의 설화나 신화로 취급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는 분명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그에 대한 과학적 증거 또한 여러 곳에서 발견됨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종교계뿐 아니라 일반 학계에서까지 그 신뢰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노아의 홍수 사건에 대해서 아직도 여러 가지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으니 그것은 '하늘의 창'(참조, 창 7:11)에 대한 문제와 노아의 홍수가 전 세계적이었는가에 대한 논쟁, 그리고 방주의 크기가 성경이 지시한 모든 동물을 수용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와 방주에 싣지 않았던 식물에 대한 의문 등이다.
1) 홍수의 개략
먼저 노아 홍수 일대기를 살펴보자.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대홍수의 경고를 받은 480세부터 홍수가 시작된 600세까지 120년간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 홍수가 시작되어 40주야에 걸쳐 계속되었고, 홍수가 시작된 지 150일 후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었으며 그 후 3달 동안 물이 빠져서 그 다음해 1월 1일에 물이 걷히고 그 후 57일간 땅이 말랐다. 이것이 노아의 홍수 사건에 대한 개략인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대개의 신화집이 시간과 장소를 언급하지 않는데 비해 성경은 시간과 날짜 그리고 장소까지도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2) 하늘의 창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조 기사에 언급된 '궁창 위의 물'(참조, 창 1:7)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1) 궁창 위의 물
창세기 1장 6절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물을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현존하는 대기권에는 이 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물은 어디로 갔는가? 그것의 해답이 바로 노아의 홍수 사건이다. 노아의 홍수 때 땅에서 깊음의 샘들이 터졌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창이 열림으로 이 물이 다 쏟아졌던 것이다.
(2) '궁창 위의 물'이 지구상에 끼친 영향
궁창 위의 물이 지구상에 끼친 영향은 먼저 고에너지를 갖고 인간의 세포를 파괴해 노쇠 현상을 일으키는 X-선과 같은 고주파 방사선을 완전히 차단하는 역할이었다. 그리하여 지구 전체에 걸쳐 고른 수증기 층을 형성하였고, 이러한 수증기 층은 저주파를 흡수함으로 지구상에 27도내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온실 효과를 내었을 뿐만 아니라 전 지구에 따뜻한 아열대 기후를 형성케 하였다.
(3) 아열대 기후에 대한 성경적 증거
① 창세기 2장 6절에는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슬은 바람이 없어야 형성되며, 바람은 기압 차에 의해 생기고 기압 차는 온도 차에 의해 발생된다. 그러므로 안개만 땅에서 올라왔다는 이야기는 지구상에 온도 차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나타내며 따라서 궁창 위의 물이 끼쳤던 온실 효과를 증거한다.
② 노아 이전 시대에 살았던 성경의 인물은 거의 모두 900세 가까이 향수하였다. 이것은 온도의 변화가 거의 없는 아열대 기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고주파 방사선이 차단되어 사람이 살기에 최적의 기후가 형성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노아 이후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의 생명의 연수가 서서히 감소되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밝히 드러난다.
(4) 아열대 기후에 대한 지질학적 증거
아열대 기후에 대한 지질학적 증거는 화석에 의해 증명된다. 즉 남극에서 활엽수 잎의 화석이 발견되었으며, 시베리아에서도 2.5m정도의 버드나무와 2.7m크기의 과일 나무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과거 한때에 양극이 아열대 권에 있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러한 증거는 열선을 흡수하고 분산시키는 수증기 층을 생각하지 않고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문제들이다.
(5) '궁창 위의 물'과 '하늘의 창'
이렇듯 수증기 층을 형성케 했던 궁창 위의 물은 노아의 홍수 때에 쏟아짐으로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대기권이 되었다. 이제는 극지와 적도 사이에 큰 온도 차가 생기기 시작했고 극지의 물이 얼어붙어 빙하가 형성되었다. 이 온도 차는 기압 변화를 일으켜 창세기 8장 1절에서와 같이 바람이 생기게 되었고, 또한 창세기 8장 22절에서와 같이 사계절이 계속되었으며, 추위와 더위가 쉬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하늘의 창'은 어떠한 상징이나 환상이 아닌 '궁창 위의 물이 쏟아지는 광경'과 그로 인한 수증기 층의 파괴를 묘사하는 말로 보아야 할 것이다.
3) 홍수의 범위: 전체적 홍수인가? 부분적 홍수인가?
(1) 문제 제기
성경의 증거는 전 세계에 홍수가 임했다는 전체적 홍수설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의 주장대로 노아의 홍수가 전체적 홍수였다면 진화의 증거로 제시된 화석의 모든 증거나 지질 연대의 증거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기 때문에 소위 정통 지질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은 지질 연대를 옹호하기 위해 전 세계적 홍수를 강력히 부인한다. 따라서 이러한 강력한 반대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일단의 성경학자들은 노아의 홍수를 부분적 홍수설로 설명하고 있다.
(2) 전체적 홍수의 증거
① 성경적 증거
창세기 7장 19, 20절에 의하면 대홍수로 인해 가장 높은 산들도 다 물로 덮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물이 땅에서 150일을 감한 후에 방주가 머무른 '아라랏산'의 높이가 5,000m였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직접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라고 선언하셨으며(참조, 창 6:17), 그 말씀대로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음'을 당하였다.(참조, 창 7:21-23), 그리고 7장 3절에서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기 위해' 큰 배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만일 홍수가 나지 않는 다른 지역이 있었다면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들도 많을텐데 구태여 그 많은 동물들을 넣을 필요가 있었겠는가? 또한 만약에 홍수가 부분적이었다면 창세기 9장 15절의 '다시는 이런 홍수가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말이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부분적인 홍수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신약에 와서도 베드로(참조, 벧후 2:5; 3:6)과 바울(참조, 히 11:7)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참조, 눅 17:27)라고 말씀하심으로 대홍수로써 온 인류를 멸망시켰음을 증명하셨다.
② 지질학적 증거
전체적 홍수에 대한 지질학적인 증거도 많이 있다. 먼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다지층나무 화석'(Polystratic Tree Fossil)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여러 지층을 수직 관통하여 형성된 나무 화석으로서 진화론의 균일설로는 설명할 수 없고 홍수 등의 격변설로만 가능한데 이러한 화석이 캐나다의 노바 스코티어(Nova Scotia)나 미국의 오레곤(Oregon)주나 테네시(Tennessee)주 등지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은 그곳에도 홍수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여러 곳에 존재하는 염호(鹽湖), 즉 '카스피해'와 고비 사막에 남아 있는 '내지해' 등의 염호는 그 옛날 그곳에 바닷물의 침범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리고 생물 침전 혼적인 석탄과 석유, 과거에 살았던 생물의 흔적이나 유해인 화석이 일정 지대가 아닌 전 세계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전 세계적 홍수설에 대한 좋은 증거가 된다.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 사건이 중동 지방이나 근동의 일부분에만 임했다는 학설은 정확한 이론이 아닌 과학적 사고에 치중한 하나의 가설일 뿐 홍수의 범위는 성경의 증거대로 전 세계에 미친 대홍수였다.
4) 방주의 수용 능력
노아 홍수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학자들은 다음으로 노아의 홍수 때 과연 모든 동물이다 방주에 수용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즉 오늘날 살고 있는 포유류 3,500종, 조류 8,600종, 파충류와 양서류가 5,000종인데, 이러한 숫자를 각 쌍으로 계산할 경우 35,000마일의 수를 다 실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구심은 1609년의 '얀센'(P. Jansen)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는 성경에 명시된 방주의 모양과 크기대로 그와 똑같은 배를 건조했는데, 그 크기가 높이 13-14cm, 폭 22-23m, 길이 약 133-137m, 배수량 약 20,000t, 용적 약 14,000t의 크기로 밝혀졌다. 이러한 크기는 성경이 요구하는 35,200마리의 약 3배가 되는 125,280 마리의 양들을 실을 수 있어서 실제 수용했던 것보다 3배 이상 수용 가능함을 증명했다. 이러한 크기를 통하여 성경이 요구하는 동물을 싣고 난 여분의 장소에는 멸종된 동물, 식량, 노아의 가족, 곤충들을 위해 사용되었으리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5) 방주에 싣지 않았던 식물에 대한 의견
홍수에 대한 마지막 질문은 방주에 싣지 않았던 식물의 생존 여부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심판에는 식물에 대한 멸종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홍수가 끝난 뒤 비둘기가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온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식물을 보호하고 예비하여 노아와 그 가족이 취할 수 있게 하셨다. 또한 전 세계에 걸친 대홍수였기에 소금물의 농도가 옅었을 것이며, 씨나 종자는 소금물 속에서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에서 쉽게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4. 창세기에 나타난 메시아 예언
창세기에는 메시아에 대한 세 가지 독특한 예언이 있다.
1) 여자의 후손(참조, 창 3:15)
창세기에 나타난 최초의 메시아 예언은 유혹자 뱀에게 내려진 선고 중에 나타나는 '여자의 후손'이다. 이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될 것을 예언한 것으로 모든 인생이 남자와 여자의 성적인 결합에 의해 태어나는 반면 그리스도는 남자의 씨와는 상관없는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자의 후손'으로 탄생하실 그리스도는 사탄에게 발꿈치를 물리는 고통, 즉 육체적인 핍박과 정신적 괴로움, 십자가의 죽음 등을 당하시지만 궁극에는 뱀의 머리를 깨뜨리는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2) 아브라함의 씨(참조, 창 22:17)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로써 막연하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시대에 와서 '아브라함의 씨'라는 말로써 좀더 더 구체적으로 계시해 주신다. 그리하여 미래에 탄생하실 그리스도는 육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시지만(참조, 마 1:1), 그가 바로 영원한 축복의 근원이 되실 것을 예언하셨다(참조, 갈 3:16).
3) 유다의 자손(참조, 창 49:8-12)
창세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 중 가장 뚜렷하고도 확실한 예언은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에 관한 축복에서 나타난다. 유다의 축복에 나타난 메시아 예언은 다음과 같다.
(1) '내 형제의 찬송'-그리스도는 모든 찬송과 영광과 존경을 받으셨다.
(2)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승리가 다시 한번 반복된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승리를 말한다.
(3) '사자 새끼'-그리스도의 용맹성과 위엄과 권위를 표현한 말로서, 요한은 계시록 5장 5절에서 그리스도를 유다 지파의 사자로 표현함으로 본문의 의미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
(4) '실로'-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에게 온전한 평강을 얻게 하실 것을 말한다(참조, 사 2:2-4; 9:5 눅 2:13 요 14:27).
이렇듯 창세기에는 죄의 기원과 함께 그 모든 죄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줄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고 있으며, 그 예언이 점차 밝고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5. 창세기와 이스라엘의 형성
창세기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보여 주는 것에 있지만 또 다른 목적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성립에 있다.
1)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이스라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은 그에게 두 가지 축복을 해주셨다. 그 첫째는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루어 아브라함을 큰 민족의 조상으로 삼겠다는 축복과, 둘째는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땅의 모든 것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축복이다(참조, 창 12:1-3). 이것이 선택받은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최초의 예언이었다. 그러나 그 민족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2) 이삭에게 약속된 이스라엘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이러한 축복은 약속의 자손 이삭에게로 이어졌다(참조, 창 26:23-25). 이렇듯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이스라엘에 관한 축복은 몇 번씩 되풀이되었건만 정작 아브라함에게는 단 한명의 자손밖에 없었고, 약속의 계승자 이삭에게도 역시 겨우 에서와 야곱, 이 두 명의 자손밖에 없었으나 큰 민족과 복의 근원이라는 약속만은 계속해서 야곱에게로 이어져 내려갔다.
3) 야곱과 이스라엘
야곱은 이삭의 장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야곱의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그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이때에 처음으로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참조, 창 32:28), 그에게 열 두 아들을 허락하셔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이루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형성의 외적인 조건이 이루어졌다.
4) 요셉과 이스라엘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로 이어져 내려오던 큰 민족에 대한 약속은 요셉에 와서야 실행되기 시작했다. 즉 이스라엘의 기초를 형성해 놓으신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미리 애굽으로 보내어 총리대신이 되게 하셨고, 비옥하고 평안한 생활 속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던 야곱의 70가족이(참조, 출 1:5) 크게 번성하여 장정만 60만을 이루는 거대한 민족 국가로 성장하게 하셨다(참조, 출 12:37). 요셉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러한 자신의 신앙을 형제들에게 증거하였다(참조, 창 45:7). 이와 같은 4명의 족장들과 그들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형성을 위한 자신의 모든 준비를 완성하셨다.
5) 육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
그렇다면 이렇듯 창세기의 목적을 이스라엘 형성의 준비라고 할 만큼 이스라엘의 형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창세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형성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신약 시대에까지 이어지는 영적 이스라엘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1) 이스라엘의 조건이 되는 할례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조건으로서 할례 의식을 제정하셨다(참조, 창 17:9-14).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계약의 표징으로서 할례를 제정하시고,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구약의 할례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하였고 그러한 의미에서 아브라함이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증거하였다.
(2)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의 영적 의미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그이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그는 언약의 조상으로만 남았다. 그런데 그가 받은 축복은 그의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그는 언약의 조상으로만 남았다. 그런데 그가 받은 이스라엘의 조상이라는 의미에 대해 바울 사도는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은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 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쫓는 자들에게도니라'(참조, 롬 4:12)라고 말했다. 따라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큰 민족의 조상'과 '복의 근원'이라는 말씀은 단순한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자취를 쫓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된다는 뜻이며, 따라서 '큰 민족'이란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좇는 모든 자로 말미암아 형성되는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3) 유다가 받은 축복의 의미
유다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에서 영적 이스라엘의 의미는 좀더 확실히 드러난다. 유다에게 약속된 축복 중의 하나가 이스라엘의 통치권에 대한 축복이었으며, 이 축복은 후에 그대로 성취되어 유다지파는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족이 되었다.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통치권은 유다가 망함으로 상실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유다의 후손인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유다의 통치권은 육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 이전되었고, 이러한 통치권의 이전은 이스라엘의 의미 역시 육적인 것에서 영적인 것으로서의 이전을 뜻하는 것이다.
(4) 지금도 계속해서 확장되는 이스라엘
아브라함 단 한 명에게서 시작된 이스라엘은 약속의 후손 이삭 그리고 야곱으로 이어졌고, 야곱에게서는 열두 아들로, 열두 아들에서 70인으로, 70인은 장정만 60만이라는 거대한 민족을 이루어 비로소 성취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의 확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신약 시대에 그 의미가 영적 이스라엘로 전이되면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새 신자로 말미암아 지금도 계속해서 확장되어 가고 있다. 예수님은 겨자씨에 비유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시면서 지금도 계속해서 확장되는 영적 이스라엘을 증거하셨고(참조, 막 4:31-32), 이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후에 끝에 온다고 하심으로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이스라엘의 완성이 세상의 종말임을 증거하셨다.
6) 창세기와 이스라엘에 대한 결론
창세기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시작을 보여 주는 책이다. 그러한 시작을 통해서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보여 주었는데, 그러한 계시의 하나가 이스라엘의 형성이었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형성을 위한 준비는 단순한 민족의 형성을 위한 준비 단계로 볼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준비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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