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자 직분
작성자:A. G. 클라크
서론
기독교계 안에서, 특히 규칙과 사역의 영역에서, 인간의 질서가 널리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밀어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해 왔다. 신약성경보다는 그리스와 라틴 "교부"의 글에서 받아들인 전통이 교회의 교리와 실행의 정당성을 증명하거나 정죄하는데 이용되었다. 성경적인 단순한 양식을 힘써 따르는 믿는 이들의 모임은 그들 가운데 직분 계급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도자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올바른 인도자직이 없을 경우, 교회는 행정권이 없는 사회와 같이 곧 혼란에 빠질 것이다. 사사기 21:25를 비교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몸인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시며, 성령님은 그분의 유일한 지상 "대리자(Vicar)"이시다. 눈에 보이는 "머리"가 순조롭게 운영되는 조직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참된 안내자는 사람의 의견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주재권(lordship)을 인정하는 것은 그분께서 세우신 모든 규칙에 겸손히 복종하는 것을 포함한다. 부언하면 인도자직의 책임을 지닌 형제들은 이러한 규칙을 금하지 말고 오직 시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교회 안에 "감독"과 "집사"라는 두 가지 형태의 인도자직을 세우셨다. 감독은 지역교회를 인도하고, 집사는 지역교회를 섬긴다. 우리는 "다스리는 것"을 다른 "은사들"과 구별해야 한다. 비록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직무(administration)"와 "사역(ministry)"을 절대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전 2:28). 빌립보서 1:1에 있는 수신자의 순서를 유의해서 보라. "성도"가 제일 먼저 나오고, 다음에 "감독"(감독자-복수)과 "집사"(섬기는 형제)가 나온다.
용어의 의미
"감독자(감독)"와 "장로"는 동일한 사람을 가리킨다. "장로"라는 용어는 나이(영적 성숙도)를 강조하고 "감독"이란 용어는 일을 강조한다. 사도행전 20:17과 18절을, 디도서 1:5과 7절을 각각 비교해 보라. 연로한 사람이 항상 "장로"는 아니다(디도서 2:2과 2:3에 나오는 "연로한(aged)"의 원어는 약간 다르다). 욥기 32:9을 비교하라. 장로직은 구약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회당 안에서 유대인들 가운데 존속되어 왔다(출 3:16; 24:1, 민 11:16, 24-25). 초기에 교회는 "장로"들이 인도하는 모임의 단순한 양식을 따랐다. 그러나 의식주의자들은 더욱 복잡한 성전 예배의 양식을 섬기는 모델로 삼고자 했다. 장로는 예루살렘 교회와 관련해서 처음 언급되며, 또한 사도들의 동역자로도 언급된다(행 11:30, 행 15).
임명
지역교회에 감독자를 "세우는" 이는 성령님이시다(행 20:28). 성령님은 하늘에 계신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상 대행자이시다. 교권에 의한 장로의 임명이나 회중 또는 기존 장로들에 의한 선출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초기에 새로이 세워진 교회들은 장로 없이 교회의 역할을 수행했다. 하나님의 인도 아래 회심자를 교회로 모아들였던 복음전도자가 후에 다시 교회를 방문하였을 때 그들 가운데서 체험적인 안목에서 장로직에 적임인 것으로 보이는 영적 도덕적 자격을 갖춘 형제들을 장로로 택하였다(행 4:23). 유사한 방법으로 바울은 그레테에 있는 교회에서 장로를 임명하도록 디도에게 지시했다(딛 1:5). 이것은 결코 사도 계승의 개념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임명은 말씀을 선포하거나 가르치는 자격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역은 다른 질서를 따르는 것이다. 초기에 새로이 세워진 교회에서 장로를 임명했던 절차는 장로가 임명된 후에도 계속해서 지켜지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필자는 이것이 새로운 지역에서 복음전도자와 선교사가 지켜야 할 하나님의 지침이라고 믿는다. 비록 신약성경이 이어지는 절차에 대해 명확하게 상세한 지침을 주지는 않지만, 바울 사도가 고린도전서에서 제시한 방편의 원칙은 영적 안내자로서 교회 안의 기존의 장로들이 항상 필수적인 자격 요건을 갖춘 형제를 주의해서 살펴보고 교회에게 그들을 알려 주는 것임을 분명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기도하며 의논했을 것이다.
감독을 어떤 지위에 임명하는 것은 신약성경의 질서를 일찍이 벗어난 것이었다. 분명히 정부, 대학, 단체, 심지어 거듭나지 않은 지주(地主) 등에 의해 생계수단으로 수여되는 현대의 직분 임명과 지명 체계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다.
기능
장로직은 엄밀히 한 지역을 돌보는 것이다. 장로직은 다른 교회를 다스리는 권위가 없다. 장로들은 교회를 지배하는 관리가 아니라, 성도들 가운데서 수고하는 일꾼이다(행 20:28, 벧전 5:1-2) 누가복음 22:24-26과 마태복음 20:25-28을 비교하라. 단어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역 교회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인 은사의 순서에서 "돕는 것" 보다 앞에 있지 않고 뒤에 나온다(고전 12:28). 이 은사는 우주적인 교회에 대해서는 생략되었다(엡 4:1). 일반적으로 정성을 다하여 교회의 일반적인 일을 하는 이는 장로 형제인 반면에, 이 "다스리는 것"은 "섬기는 일"(deaconing)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성경은 장로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 양떼를 먹임
그리스도께서는 양떼의 목자장이시며(벧전 5:4, 요 10:16), 지역교회의 장로들은 목자(牧者)이다(벧전 5:2, 행 20:28). 이 두 구절에서 "먹이다(feed)"는 "목자로서 돌보는 것"을 뜻한다. 베드로는 자신을 한 예로 인용하고 있다(벧전 5:1). 요한복음 21:15-17과 비교하라. 바울과 베드로는 사도였을 뿐 아니라, 전(全) 교회를 다니며 목자(pastor, '목사'. 오늘날 일반적인 의미인 '목사'와 구별하기 위해 본 글에서는 '목자'로 번역하여 사용함-편집주)와 교사의 일을 하였다(엡 4:11). 오늘날 일차적인 의미에서 사도는 없지만, 한 지역교회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목자와 교사의 일을 하는 "보냄 받은 자"는 있다. "목자"는 영혼을 다루는 일을 가리키며, "교사"는 성경을 다루는 일을 가리킨다.
목자의 의무는 양떼를 감독하고 돌보고 먹이는 것이다. 성도들 가운데 무지한 자를 가르치고, 병든 자를 방문하며, 임종하는 자를 위문하고, 사별(死別)한 자를 위로하며, 질서 없이 행하는 자를 권면하고, 상심한 자를 격려하며, 약한 자를 북돋우어 주고, 실족한 자를 일으켜 세워주며, 모든 자에게 대하여 오래 참는 것이 필요하다(약 5:14, 살전 5:14, 갈 6:1). 사도행전 20:34-35는 필요할 때, 개인적으로 또는 교회의 모금으로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보여준다. 참된 목자는 항상 양들에게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주목할만한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주님께서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에게 주신 명령 가운데, 17절과 15절에서는 자라나는 양들과 어린양을 먹이고 초장으로 인도하는 것을 뜻하는 용어를 사용하시지만, 16절에서는 돌보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를 사용하셔서, 양들에 대한 전체 요건을 일반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거짓 목자들은 양들을 섬기기보다는 양들을 탈취하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고용은 사랑이 아닌 급료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지 않는다(요 10:12-13). 거짓 목자들은 양떼를 먹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먹인다(유다 2). 에스겔 34:2-6을 비교하라. 슬프게도 오늘날 기독교계 안에서 이러한 자들을 얼마나 많이 보는가! 급료를 위한 가르침이 지식인을 앉히며, 그러한 체제 아래에서는 흔히 돈이 사역의 영역을 고정시키며, 가르쳐야 할 교리와 감추어야 할 교리를 정하게 한다(계 2:6, 유다 11, 벧후 2:15, 하박 1:15-6).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교회 안에 목자는 매우 귀중하지만, 교회에 속한 목자는 비성경적이다".
2. 깨어 있음
감독들은 영혼들을 위하여 깨어 있다(히 13:17). 이것은 에베소서 6:18에서 보듯이 종종 기도와 연관되어 있다. 대적은 권능이 있고, 노련하며, 집요하다(벧전 5:8, 행 20:29-31, 요 10:2, 고후 11:13-15, 마 7:15-20). 목자의 일은 양떼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인도하는 것이다(삼상 17:34-36). 양들 가운데 처지고 낙오하는 양들은 적들의 공격을 받을 위험에 처해있다. 이것은 병든 자와 연약한 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신 25:18).
3. 인도함
인도하다는 말의 원어는 그 의미가 "앞에 서다"로서, 데살로니가전서 5:12에서는 "다스리며"로, 디모데전서 5:7에서는 "다스리는"으로 쓰였다. 목자는 부지런함으로 인도해야 한다(롬 12:8). 동양의 목자는 양들을 몰지 않고 인도한다.
4. 다스림(히 13:7,17,24)
원어는 "지배하다", "주재(主宰)하다"를 뜻한다. 장로들은 군림해서는 안 된다(벧전 5:3)(막 10:42-45). 장로들은 군주가 아니라 본(本)이 되어야 한다. 다스리는 자의 권위는 위임받은 것이지 권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5. 키잡이(행 27:11, 계 18:17)
원어는 배의 키잡이를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2:28에서는 같은 어원을 갖는 "다스리는 것"이 은유적으로 사용되었다. 장로는 교회 안에서 키잡이와 같이 행하여 교회의 증거를 좌초시키는 위험한 "암초"가 없는 곳으로 항해한다.
6. 수고함
이것은 누가복음 5:5에서와 같이 수고하는 일을 가리킨다. 장로의 일은 수고하는 것이다(살전 5:12, 딤전 5:17, 행 20:35). 사도행전 20:35에서 "이같이(so)"라는 작은 단어는 바로 앞 절에 언급된 바울이 두 손으로 섬긴 일을 가리킨다. 장로는 단순히 교회 일을 논의하기 위하여 "형제들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그들 가운데서 수고하되(딛 1:9, 유다 22-23), 항상 겸손한 영으로 그와 같이 한다(벧전 5:5).
7. 청지기(눅 12:42).
청지기는 교회 장로("감독")에 대하여 은유적으로 쓰였다. 주님은 장로들에게 그분의 가족을 책임 있게 돌보는 일을 위임하셨다. 때가 되면 반드시 회계(會計)할 것이다(히 13:7).
위에서 우리는 장로의 의무가 주로 교회의 영적 번영과 관련되었으며, 단지 다음으로 순수하게 물질적인 것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이들 장로 형제들은 다른 성도들과 충만한 교제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상호간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누구든지 장로가 규칙을 불의하게 행하였다고 생각할 경우, 언제든지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더 높은 권위에게 곧, 목자장이신 교회의 머리에게 호소할 수 있다. 장로회(長老會)는 성경적 양식을 따라야 한다(행 15:6; 21:18). 성경이 복수(複數)의 장로를 제시하는 것은 장로들이 함께 기도하고 함께 교회를 상의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암시한다. 장로회는 판단에서 반드시 하나됨을 이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장로의 분열은 교회의 분열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험에서 볼 때, 교회의 전체 모임 앞에서 젊은이와 모든 일을 협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때로 교제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의 도덕적 성품에 관한 문제점이 제기되며, 가능한 징계가 요구된다. 그러한 문제를 필요보다 더 공개적으로 알림으로써 특별히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졌을 때 무죄한 관련자들에게 심각한 해를 줄 수 있다. 이럴 때 사건을 조사한 후, 모든 상세한 사항을 보고하지 않고 교회에 조언하는 일에는 장로가 적절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장로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에 대하여 그리고 모든 양떼들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행 20:28).
자격
디모데전서 3:1-7과 디도서 1:5-9를 보라. 천연적인 능력, 사업의 통찰력, 경제적 번영, 사회적 신분 등은 결코 감독자 직분에 대한 자격이 될 수 없다. 그는 반드시 일에 대한 영적 능력 뿐 아니라 도덕적 성품을 지닌 말씀의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이어야 한다. 요컨대 그는 교리에서 건전해야 하며 삶과 일치해야 한다(히 13:7, 딤후 2:2). 의식주의적 교회(譯者 註:로마 가톨릭)에서는 직분을 가진 자의 인격적 성품이 항상 고려되지는 않는다. "사제"가 사생활에서 방탕하더라도 직분 덕분에 "성례전을 집전하고" 심지어 "죄의 사면을 선언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 참된 기독교에서는 전혀 다르다. 감독자로서 요구되는 성품을 나타내는데 18개의 단어가 사용된다. 두 구절은 그의 능력을 기술하고 세 구절은 그의 신분적 상태를 기술한다.
1. 신분적 상태
감독은 절대로 최근에 회심한 초심자여서는 안 된다(딤전 3:6). 그 이유를 주의하고 5:22와 비교하라. 그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딤전 3:2, 딛 1:6). 이 요건은 여러 명의 아내를 두는 것이 합법적인 관습인 나라에서 그러한 회심자가 모임에 받아드려질 수는 있지만, 장로의 직분은 금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또한 전(前) 아내나 아내들이 아직 살아 있는 이혼한 형제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그러한 경우는 이혼을 쉽게 허용하는 로마제국과 그리스의 부패한 법 때문에 사도시대에는 흔한 것이었다. 또한 장로는 반드시 세상에서 좋은 증거를 가져야 한다(딤전 3:7). 예를 들면, 사업에서 신용이 없는 사람은 장로의 자격이 없다. 제시된 이유를 주의하라.
2. 능력
감독자는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이어야 한다(딤전 3:4, 딛 1:6). 다시 한번 제시된 분명한 이유를 주의하라. 그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딤전 3:2). 반드시 "설교를 잘하는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사적으로 젊은 믿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3. 성품
이에 관하여 성경은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요약하면, 이미 언급된 일반적인 원칙들 외에도, 장로는 행동에서 비방 받을 것이 없어야 하고, 판단에서 사려 분별이 있고 치우치지 않으며, 말과 행위에서 절제하며, 태도에서 합당하며 (고집이 세거나 자기 뜻대로 하지 않으며), 탐욕이 없고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해야 한다.
인정받음
장로들은 그들이 자격을 갖추고 있고, 일을 하기 때문에 성도들에 의해 인정받는다. 성경에는 이에 대한 7 가지 권면이 있다.
1. "알라"(살전 5:12)
이는 주목함으로 그들을 아는 것을 뜻한다. "알라"의 원어는 형식적으로 인정하는 용례로 사용된 적이 없다. 보다 더 공적으로 인정하도록 이끄는 지식은 고린도전서 16:18의 "너희는 이러한 자들을 알아 주라"는 단어에서 보여진다. 장로들은 성도들을 잘 섬길 때 진정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양들은 호소하거나 강압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들이 알고 신뢰하게 된 자를 따를 것이다.
2. "귀히 여기라"(살전 5:13).
성도들은 개인적인 호감보다는 오히려 장로들의 수고로 인하여 사랑 안에서 그들을 귀히 여기며 감사해야 한다.
3. "존경하라"(딤전 5:17)
"배나(갑절로) 존경"은 응당 받아야 할 존경을 표하는 것에 더하여, 전 시간으로 일하는 사람의 경우에, 필요할 때 물질적으로 돕는 것을 의미한다(18절). 고린도전서 9:7 후반절과 비교하라. 사도행전 20:34-35에 보여지는 바울의 본(本)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4. "신뢰하라"(딤전 5:19)
모세의 법에 근거한 원칙에 따라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없이는 장로에 대한 고소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신명기 19:15를 비교하라. 장로들은 그들의 일 때문에, 예를 들면, 징계의 문제로 교회를 조언하기 때문에, 허위진술이나 오해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장로의 충고가 근거가 있는 경우, 아버지께 대하듯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러나 죄가 입증될 경우, 반드시 공개적으로 책망을 받아야 한다(20절). 동료 장로들은 장로들 중 한 명이 실수한 것을 숨겨서는 안 된다.
5. "복종하라"(히 13:17)
주님 앞에서 인도자의 책임이 크기 때문에 인도자에 대해 기꺼이 충성해야 한다.
6. "생각하라"(히 13:7)
아마도 이 구절은 죽은 인도자, 특별히 순교한 인도자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성도들은 인도자들의 삶의 결말, 곧 승리의 종점을 생각해야 하며, 그들의 신실한 본을 따라야 한다. 다음 구절(8절)은 인도자는 사라지더라도 위대한 신앙과 섬김의 대상이신 그리스도는 항상 계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목자는 잠을 자지만 위대한 목자께서는 깨어 계셔서 다른 이들을 세우시며 친히 감독하신다(20절). 베드로전서 2:5를 비교하라.
7. "문안하라"(히 13:24)
장로들이 그들의 일에서 격려를 받도록 친절한 마음으로 인사하라. 그들은 수많은 비난을 접하게 된다! 믿는 이들이 장로들의 결정에 항상 동의하지 못할 경우, 분을 품지 말아야 한다. 장로들을 위하여 기도하라(히 13:18). 데살로니가전서 5:25, 데살로니가후서 3:1과 비교하라.
보상
베드로전서 5:4의 약속은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그 약속은 회계의 날에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히 3:17). 데살로니가전서 2:19, 데살로니가후서 3:1과 비교하라. 이것은 분명히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한 감독자의 일에 대한 풍부한 보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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